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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선미

며칠 전 미스코리아 선발이 있었다. 예전에는 TV 공중파에 중계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만 오늘날엔 그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이제 한국의 미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져서 일까? 아니면 이제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일까? 어쩌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거세져서 일지도 모른다.이런 많은 논란에도 미스코리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왜 미스코리아를 진선미로 나누어 뽑을까? 사람들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데 왜 1, 2, 3등을 진선미로 뽑을까? 미스코리아라면 당연히 `미`가 1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선미에 위계가 있고 이를 미스코리아에 적용한 것일까?철학에서 뭘 배우는지 종종 사람들이 묻고 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미스코리아에서 무엇을 뽑는지 물어본다. 진선미라고 대답하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아주 예전엔 진선미는 하나였다. 즉 참된 것이 좋은 것(선)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말하듯 서양 합리주의가 발전하면서 진선미는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합리화과정을 그는 인지적, 미학적, 도덕적 영역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전문가 문화가 유럽에서 출현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각기 진리문제, 취향문제, 선의 문제로 전문화된다. 그래서 우리가 전문가에게 많은 권위를 주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이 세분화된 영역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점점 세분화되고 깊어짐으로써 그들의 전문적 영역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말로 되어 갔다. 서양에서는 이런 과정을 합리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한 분야에서만 깊이 아는 전문가는 외눈박이일 수밖에 없다. 옛날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을 보고 헛똑똑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철학이 철학자만의 어려운 이야기가 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요즘 학문에서는 융합과 통섭이 화두이다. 통섭은 여러 사물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어쩌면 학문뿐만 아니라 사람도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인격이 더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14

아, 대한민국!

그랜드캐니언은 대단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주가 만들어낸 작품을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보았다. 콜로라도 강줄기를 마치 미니어처 속의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만든 미국인의 노력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 잇츠 그랜드! 너무나 대단해서 부르던 그대로가 지명이 되어버렸다는데 가히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게는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이 있었다. 경비행기에서 헤드폰을 쓰면 나오는 5개 국어 안내 방송에 한국어가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상혼이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기까지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받아들이니 로키산맥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만으로 흐른다는 콜로라도 강의 길이와 후버댐에 관한 설명도 느긋하게 들렸다. 그뿐 아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콩나물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해발 4천미터가 넘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를 갈아타면서 올랐다. 스위스 농가에서 방목하는 소들이 우리나라 워낭의 열 배는 돼 보이게 큰 목걸이를 걸고는, 마치 바위덩이처럼 앉아서 자고 있었다.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그들이 뒤척일 때마다 떨거덩거리는 워낭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것 같다. 한여름의 복장으로 출발해서는 만년설 속에 내려야 했으니,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어도 콧물이 흐를 듯 추웠다. 그곳에서도 매력적인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매운 냄새만으로도 코가 뻥 뚫리는 한국산 빨간 컵라면이 꽤 비싼 가격의 유로로 팔리고 있었다. 내려와서는 석회가 많이 섞여, 만년설 녹은 뿌연 물빛보다 더 짙은 곰탕과 김치며 고추장 비빔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며칠 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모처럼 두부까지 반듯반듯 정성들여 썰어 넣었다. “먹어봐, 그립지 않았어? 엄마표 된장찌개!” 아이는 말했다. “웃기지 마세요, 아침마다 `장모님 해장국` 먹었거든요”.오, 필승 코리아! 우리의 힘, 세계가 좁을 지경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는 착취당한 우리 조상들의 피와 한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윤은현(수필가)

2015-07-13

미니수박

충북농업기술원이 소비자 기호에 맞는 2kg 이하 미니수박의 재배를 시험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애플수박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문경, 음성, 논산 등 일부지역 농가에서 도입하여 재배하고 있으나 마땅한 지침서가 없어 일반수박을 기준으로 재배하면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어왔기 때문. 미니수박은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앙증맞을 뿐 아니라 쓰레기 발생량이 적어 대다수의 소비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트에서 종종 속이 훤히 보이는 수박 반 통을 본 적 있지만, 미니수박을 이제 마트에서 구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출아하면 1~2인 가족에게는 기존의 대형수박에 비해 수요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큰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두고 대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한 조각씩 나누어 먹던 풍경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점 사라질 것이다.미니수박의 등장은 과학기술이 만든 농업분야의 발전이지만 사회상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마트에는 오래전부터 개인이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등장하였고 미니수박도 그와 유사하게 한 두사람이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소포장 제품인 셈이다.원래 가족이라 하면 부모와 형제들이 최소한 5인은 기본수였는데, 최근에는 3인 가족, 2인 가족, 심지어 혼자 사는 가정도 많다. 그래서 자녀가 셋인 5인 가정은 다복가정이라 하여 복지 혜택도 주고 있다. 농업인구도 점점 줄어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로 핵가족시대를 지나 국가의 장래가 인구감소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에 처한 농업과 현재의 가정형태가 미니수박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영어의 가족이라는 단어 `family`는 그 첫 스펠을 따라 아버지(father), 그리고(and) 어머니(mother) 나(I) 이 세 사람이 사랑하는(love you) 형태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너무 인위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우리의 옛말 `식구(食口)`라는 말은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인 가족형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미니수박을 사 먹는 시대, 대가족이 큰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던 시절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0

한국식 이력(履歷)

영화 `부러진 화살`이 연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밤 9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 앞에서 한 남성이 퇴근 중이던 박영수 변호사(63)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러 목 부위에 12㎝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했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났다고 보고 이른바 보복의 흉기를 휘둘렀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은 하나같이 `변호사`인 박영수 피해자를 `전 고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변호사`보다 `고검장`이 더 나은 모양이다. 김승희의 시 `한국식 죽음`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김금동 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 씨(오성물산 상무 이사) 빙부상 - 김금연 씨(세화 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 씨(삼성 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 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 `한국식 죽음`전문시의 형식이 낯설지만 어렵지 않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속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부고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명복이나 상주에 대한 위로는 없다. 오직 상주의 사회적 레테르가 중요할 뿐이다.공교롭게도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영수`이다. 시적 상황은 박영수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의 처가는 시쳇말로 빵빵하다. 처남들이 검사장, 병원장, 신문사 차장 등이다. 동서들도 잘 나가는 자리에 있다. 대학교수, 사업가 등이다. 그의 부인 김금연씨도 가정과 교수이다. 그런데 처제들은 별 볼일 없는 모양이다. 이름 석 자 없는 것을 보니.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는 부고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 오직 중요한 것은 상주든 망자든 사회적 영향력이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런 세상을 살았다.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는 이유를 알겠느냐?/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09

이카로스의 날개

정국이 혼탁하고 볼썽사납게 치닫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촉발된 사태에 대하여,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여당 원내대표는“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허리를 숙였지만 어깃장을 감추지 않았다.예견된 양상이었다. 친박계는 즉각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고 비박계는 20여 명의 의원들이 원내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민심도 갈렸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원내대표 사퇴에 대한 찬성이 45%에 이른 반면,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56%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지지층의 성원을 받는 여당 원내대표가 탄생한 것이다.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래 대통령 대선 공약 사항과 정부 정책 등에 대하여 수시로 엇박자를 놓더니,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하지 말라는 정부의 당부까지 묵살했다. 그런 그를 어떤 언론에서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고 조명했다. 그러나 그는 선을 넘어섰다.팔공산 `왕건 올레길`이다. 쉼터 벤치에 칠십대 중후반 노인 대여섯 명이 앉거나 둘러선 채로 설왕설래하고 있다. 점차 톤이 높아지고 격앙되더니 “분수를 모르는 자, 숙맥불변(菽麥不辨)인 자”로 의견이 모아진다. 여당 원내대표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다. 대구의 동구, 여기는 그의 지역구다.이카로스(Icaros)는 그리스의 신화 속 인물이다. 그는 미노스의 미궁에 갇혀 있다가 명장(名匠)인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아올라 크레타섬을 탈출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내려 날개가 해체되면서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그의 부상(浮上)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대구 동구 지역구에서의 정치적 생명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대다수의 여론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새정치연합의 지지층 쪽으로 정치 영역을 변경해야만 될 것 같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08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진주에 일이 있어 차를 몰고 다녀왔다. 예전엔 몇 시간, 며칠이나 걸리던 길이 이제 1~2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새로 닦은 남해고속도로는 훨씬 시간을 단축하게 만들었다. 아니 뿐만 아니라 더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만든다. 편안함과 편리를 추구하는 길이 과학기술의 목적이 아닐까? 끝이 없이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예전에 그렇게 찾아다녔던 공중전화가 이제는 내 호주머니 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그러나 예전보다 빨리 갈수 있고 편하게 전화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삶은 점점 더 바빠지는 것일까?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더 불편해질까?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모모가 찾아주듯이 우리 또한 시간을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더 풍요로워지고 더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더 바빠지고 마음은 더 불편해졌을 수 있다.과학기술이 발전해 우리 삶과 세상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반면에 과학기술은 결국 우리 세상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과학기술이 유토피아를 만든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과학기술이 디스토피아를 만들 것이라는 부정적 입장이 있는 것이다. 아니면 과학기술은 중립적이며 이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입장도 있다. 원자력처럼 좋게 쓰면 전기를 만들 수 있고 나쁘게 사용하면 폭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어쩌면 과학기술은 나와 상관없이 계속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내가 긍정적 입장이든 부정적 입장이든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은 고삐 풀린 망아지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슬로시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슬로시티란 느린 삶,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영상보다는 사진이, 사진보다는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그 대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법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07

엘리베이터를 `삐대다`

엘리베이터는 깨끗하다. 비누 얼룩이 금방 생겨나는 내 집 욕실 거울보다 깨끗하다. 비상계단도 언제나 깨끗하다. 계단 끝 모서리마다 금속선이 반짝이는 것이 내 집 현관보다 반들하니 주부로서 곤혹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상냥하기도 하다. 입주민인 내가 불편하지 않게, 밝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며칠 전까지의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새로 왔어요….”, “어머나, 수고가 많으시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별로 상냥하지 못한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알 수 없는 힘까지 있다.아침 시간 허둥대며 엘리베이터를 들어서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후다닥 발을 들여놓고 보니 금방 닦인 바닥은 보송하게 마르고 있고 할머니는 몸을 기울여 벽면을 닦고 있다. 가방을 고쳐 메고 신발을 제대로 신다가 놀라 주춤한다. 내가 디딘 자리마다 발자국이 꾹꾹 나 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금방 닦아놓은 바닥을 막 `삐댔나`보네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금방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밟아야지 안 밟고 우짭니까?”역시 깔끔하고 상냥했던 지난 번 청소 할머니가 생각난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 갔다고 들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했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바쁘게 쓸고 닦는 모습으로 기억되던 그 할머니, 조금의 얼룩도 용납하지 않을 듯 깔끔하던, 그러나 나는 그가 불편했다. 청소하는 옆을 지날 때마다 슬쩍슬쩍 느껴지던 무거운 마음을, 자기 일을 열심히 완벽하게 하는 사람 앞에서 당연히 느껴야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견뎌왔었다.훌륭한 사람들은 나를 왜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어릴 적 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도, 얼굴이 예쁜 친구도, 운동회 날은 달리기 잘하는 친구까지 능력 있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순전히 나의 열등의식 때문일까? 훌륭하다는 것은 이런 마음조차 헤아릴 수 있는 것이진 않을까? 깨끗하고 반짝이는 자리, 청소하는 사람의 손길을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그 자리에 내가 편안함을 누릴 공간은 부족했다. 조금만 더 속 깊은 성실이었다면, 그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배려가 있었을까? 새로 온 청소할머니가 참 편안한 아침을 열어준다./윤은현(수필가)

2015-07-06

공의가 강물처럼

기미년 만세운동 직후 조선총독부는 1919년 3월 22일 선교사 9명을 초청하여 만세운동 재발 방지를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조선의 봉기를 선교사들이 막아 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셈이다. 이에 대하여 선교사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선교사들의 주장은 `조선인은 의(義)를 중요시하며 실천되지 않는 의는 곧 불의를 보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막으려는 것보다 대의명분이 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100년 전의 조선인상은 배고파도 의롭게 사는 것이었다.해방 70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배가 고파도 의롭게 살던 선배들에 비해 배가 불러 의를 외면하고 있다. 스포츠의 상업화, 컴퓨터 게임의 대중화 및 각종 영상문화의 보급으로 점차 구경꾼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 결과 나 혼자의 만족에 취한 `구경 중독`에 걸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사회자본`이라고 할 때 사회자본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밑거름인데 그 쇠퇴는 우리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고 있다.충청도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가 어느 군 문화예술회관을 방문했다. 마침 건물 리모델링으로 분주했다. 그 지역을 소개하는 돌 비석이 그 본래 자리에서 뽑혀 건물 가장자리에 방치되고 있었다. 아마 새롭게 자리를 잡고 새 단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고장은 의(義)를 숭상하는 지역이라는 비문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과거의 의로운 조상들을 기리고, 독립운동가의 버려진 묘역을 정비하는 것 등은 후손들의 마땅한 일이다.그러나 한편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바친 선조들의 의로운 정신을 실질적으로 계승하는 일이다. 그들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역사를 오늘의 통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분단 70년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의 새날이 도래하기를 바란다.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역사적 대의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그 돌비석이 곧 제자리를 다시 잡을 것처럼 우리 사회에 개인적인 이기심을 넘어 공동체적 의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바람이 불기를 희망해 본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통합사회, 통일조국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03

산수공식

요즘 우리 축구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평가전에서 염기훈이 선제골을 터뜨렸고 이어 이용재, 이정협이 추가골을 넣었다. 3대0으로 시원스럽게 완승을 거뒀다. 모두 낯선 이름들이다. 곧바로 이 신인들은 매체에 오르내리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깜짝 발탁`된 선수들이라고.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슈틸리케 감독이 뽑았다는 것과 `깜짝`뽑혔다는 것이다. 이 `깜짝 발탁`이라는 말이 참 중의적이다. 하나는 이들 세 선수의 실력에 만족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날 느닷없이 대표팀이 되었다는 비아냥거림이다. 어느 경우든 산수공식을 제대로 대입하지 않고 얻은 의외의 값이라는 의미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히딩크는 박지성, 김남일 등 무명선수를 깜짝 발탁했다. 이에 대해서 비난과 감독 교체설 등이 나돌았다. 그러나 막상 당시 우리 대표선수들은 의외라 할 정도의 놀라운 경기능력을 보여주었다. 히딩크의 산수공식은 정확한 답을 찾아냈다.지난 6월11일 치른 평가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만족스런 경기를 펼쳤다. 특히 깜짝 발탁된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이렇듯 해외파 두 감독의 산수공식의 핵심은 `눈`이었다. 그렇다면 국내파 감독들은 선수를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산수공식에도 눈은 있다. 히딩크나 슈틸리케 감독은 오직 선수를 보는 `눈`만 가지고 있다. 그 외의 학연, 지연 등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국내파 감독은 `눈` 이외에 학연, 지연 등의 또 다른 것들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눈±선수±학연±지연=발탁`같은 산수공식 말이다. 그래서 `눈`으로 선수의 활약 이외의 다른 것들도 보기 때문에 `깜짝 발탁`이 매우 힘든 모양이다.정치도 그런가 보다. 국민 행복 이외의 다른 그 무엇으로 만든 산수공식을 적용하여 현안을 풀고 있나보다. 진영논리나 내년 총선 등 그들만의 산수. 최근 이들이 더하고 뺀 산수의 값은 황교안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 국회법 거부권 행사, 여당대표의 사퇴 압력 및 버티기 등./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02

산길에서 만난 편작(扁鵲)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장년기에 들어서며 하나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 명치를 찌르는 십이지장궤양의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 산행으로 1년 후 득의의 해방감을 얻었다.50대 후반 어느 날 잠결에 엄지발가락의 촉감이 이상했다. 젖히고 오므리자 극심한 아픔이 전해 왔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통풍이로 구나. 새벽 5시 엄지발가락 주위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양말을 신으며 까무러친 고통은 등산화에 발을 밀어 넣자 기어이 눈물이 솟아나왔다. 어금니를 악물고 절뚝절뚝 두어 시간 남짓 산길을 걸었다.다음날 새벽 5시 스치는 이불자락에 자지러져 선잠을 깼다. 발등까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꿀꺽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등산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망치로 내리쳐 버리고 싶은 깨어지는 질통, 스물여덟 개 치아 꽉 깨물고 비탈길을 오르며 뚝뚝 가슴속에 더운 눈물이 흘러내린다.이튿날 새벽 의외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들여다보니 엄지발가락에 가느다란 주름이 3개나 생겼다. 환한 얼굴로 산길에 들어서자 어제 그제는 들리지 않던 산새 울음소리가 더없이 명징하다. 서너 발자국 앞서 폴폴거리는 까치 한 마리가 더없이 이채롭고 정겹다.편작(扁鵲)은 중국 전국시대 명의다. 죽은 사람마저 살려냈다고 하니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갈관지`에서 그는 자기 맏형은 사람의 표정과 음색으로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해 주고, 중형은 병이 미미한 발병 초기에 치료해 주는데, 자신은 병이 깊어져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비로소 치료해 주기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말한다.빗물에 씻긴 창밖 풍경이 티 없이 말갛다. 뒷짐을 지고 까치발로 무게 중심을 지긋이 옮겨 본다. 발가락이 발등이 깃털처럼 가볍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겐지 모를 탄성이 봉선화 씨앗처럼 터져 나온다. 창밖 이팝나무 꽃송이가 눈부시도록 하얗다. 이 무모한 발상을, 이 지독한 선택을, 사람들은 의사는 뭐라고 할까. 나는 이렇게 기원전 6세기의 편작을 산길에서 다시 만났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01

자연

가뭄이 심하다고 모두들 걱정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아직은 가뭄을 해소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가뭄이나 홍수는 하늘의 일이기에 아직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예전에 가뭄이나 홍수 때 자연이나 신에 기원하듯이 오늘날에도 하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을까?그러나 전지구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과연 이것이 단순히 자연의 섭리만인가는 의문이다. 인간이 세계를 자신과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과 대립할 때 인간 밖에 놓인 세계는 단지 인간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우리가 살기위한 하나의 먹잇감이거나 정복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서양의 전통은 나와 남을 분리하고 나와 바깥 세계를 분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살리기 위한 역사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 끝에 남은 것은 자연파괴와 인간성 파괴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그 피해가 인간에게 오기에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이 생각엔 여전히 사람이, `나`가 중심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런 환경보호론을 인간중심주의적 견해라 칭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 인간 세상을 파괴하기에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자연파괴나 생물의 멸종은 허용되는가? 어쩌면 지금도 이름 모를 식물이나 동물은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해서 자연중심주의적 환경보호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연도 인간과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다. 극단적 자연보호로도 흐를 수 있는 이 생각엔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다.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나의 뜻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거슬리지 않는 것. 공자가 `논어`에서 나이 50에 하늘을 뜻을 알게 되고, 70세에 종심이라 말한 경지일까? 무엇이든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자연의 원리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자연이고 `인간 속의 자연`을 회복하는 것이 좋은 삶일지도 모른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6-30

학기를 마치며

학기말 시험을 끝으로 한 학기는 끝이 난다. 꽁꽁 잠들어 있던 겨울 캠퍼스를 깨워낸 건 그들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대학생이었던 것처럼, 학교라고는 대학밖에 모른다는 듯 자유롭고 씩씩하게 온 학교를 누비고 다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들은 미처 고등학생 티를 다 벗지 못한 신입생들이었다. 빈 강의 시간을 주체 못하고, 식사메뉴를 혼자서 결정하는 일도 금방 걱정거리가 되던 스무 살 그들에겐 기류변화가 극심했다. 가족과 집을 떠나와 룸메이트도 과동기생을 사귀는 일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먼저 다가가고 인사 건네고 그것이 설령 사랑일지라도 풍덩 빠지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도서관에서부터 영역을 확보하길 무엇보다 꼭 새겨주고 싶었다. 4년 후 혹은 10년 또 30년 후 어디에 있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가끔씩 혹은 자주 생각해보며 그곳으로 다가가는 하루하루를 살기를 그래서 그 길을 도서관에서 찾아내기를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다.동아리방도 학과 사무실도 지도교수 연구실까지도 어려워하지 말기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찾아내기를, 어느 구석에선가 분명 어머니를 느끼게 하는 단골 밥집도 개척하기를, 캠퍼스 으슥한 산책로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끊임없이 말해주고 싶었다.장학금을 향한 비장한 각오를 숨기지 않던 여학생이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 메운 답안지를 내고 돌아선다. 문득 그 작은 어깨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굳이 괄호를 열고 밝히지 않아도 필자는 여선생이다. 남학생이라 하더라도 어깨 두드리며 가볍게 허그해주는 일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장성한 아들도 있음을 독자 제위께서는 알아주셨으면 한다.저들은 내일쯤 방을 빼리라. 별것 없을 줄 알지만 꺼내놓으면 결코 적지 않은 물건들,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유들이 소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더하여 어떻게 자신을 증명해 낼 것인지 여름볕 아래서 더 단단히 여물어 왔으면 좋겠다. 하늘이 높아지고 가을빛이 선연할 때쯤 다시 만날 기대로 벌써 설렌다./윤은현(수필가)

2015-06-29

프롤로테라피

프롤로테라피(Prolotherapy)는 증식(Proliferation)과 치료(Therapy)의 합성어로 세포재생치료법이다. 흔히 인대강화주사라고 알려져 있다. 인대의 염증부분에 주사하여 인위적인 염증반응을 유도하고 재생세포의 증식을 유발해 강화 및 치료를 하는 통증클리닉에서 많이 시행되는 비수술적 치료방법이다.상처가 생긴 조직에 주사액을 주입하면 삼투작용에 의해 염증이 유발되었다가 조직이 회복되도록 도움을 주는데 프롤로 치료를 받으면 일시적인 아픔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인대 혹은 힘줄 자체가 강화된다는 것이다.오래전 무거운 짐을 옭기다가 팔꿈치를 인대에 이상이 생겨 6개월 이상 고생을 하였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기도 하고 한방에서 침을 맞기도 했다.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벌침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시내 큰 병원에 가서 MRI를 한번 찍어 검사해 보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비싼 값을 주고 검사할 필요도 없고 별 뾰족한 치료도 없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완치가 쉽지 않다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고 계속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주변에 운동을 하다가 팔꿈치를 다친 분이 수술을 하기도 했는데, 완치의 확신도 없지만 나도 수술을 해야 하나 생각중이었다.그러던 중에 어떤 분이 우연히 내게 알려준 치료방법이 포롤로테라피이다. 치료효과에 대해서는 치료 후에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완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최근 `힐링`이란 말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어찌 팔꿈치 뿐이겠는가? 내 인생의 여러 부분에 프롤로테라피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영성도 회복되어야 한다.인간의 희랍어 `안드로포스`는 `머리를 하늘로 향한 존재`라는 뜻이란다.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영성의 목 근력을 키워야겠다. 인간은 지성적인 존재, 감성적인 존재이므로 인 인생의 여러 근육들을 강화해야겠다. 비수술적 치료로서 환치율이 높은 근본치료라는 프롤로테라피에 대한 기대와 내 팔꿈치의 통증의 완화를 넘어 내 인생의 근력을 키워보기를 희망한다./곽규진(목사)

2015-06-26

말 한마디의 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3일 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담한 심정, 책임을 통감` 그래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카메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국민들은 감동받기보다는 사과한 저의를 궁금해 한다. 참 나쁜 국민들이라고 욕하기 전에 그도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1일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이 메르스 확산에 대해서 문제의식도 없고, 뚫린 것 아니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이렇게 답했다. “국가가 뚫린 것이다”라고. 그 당당함에 놀랐던 국민들이니, 이 정도의 사과가 생뚱맞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따지고 보면 삼성(병원)도 억울할 것이다. 방역당국이 초기 대응을 적절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원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삼성은 병원으로서의 전문적인 판단과 신속한 대처를 다 했던가. 책임추궁을 떠나서 `우리(삼성)가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온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까닭은 그 말의 힘이다. 그 과장이 국가와 정부의 개념을 혼동한 것은 차치하고, 순간적으로 나온 말의 힘, 여기서 국민은 삼성의 권력을 본 것이다.이런 가운데 삼성그룹의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니 미덥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경제논리와 기업 이미지가 뒤에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볼 뿐이다.“미안/ 아깐 내가 너무 욕심부렸나봐// 짝의 한마디에/ 달콤한 초콜릿처럼/ 사르르 녹아 버린 내 마음// -아이, 부끄러워라” -윤이현, `말 한마디` 전문한 마디 말에 사과를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달콤한 초콜릿처럼` 마음이 풀어지는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국민들은 `삼성의 무게`를 뺀 사과를 기대하고 있다. 위 동시에서 보듯이 전제가 없는 사과야 말로 받는 사람을 되레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6-25

이제는 바람을, 깃발을 내려놓을 때다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도심과 재래시장은 한산해졌고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으며 유통업계와 중소기업, 소상공인업자와 농민 등 계파와 계층을 막론하고 휘청거리지 않는 곳이 없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침병(侵病) 이후 월여 동안의 풍경이다.언제나 무능과 무지가 축(軸)을 같이한다. 정부는 “낙타 만지지 말고, 사람 많은 곳 피하고, 손 깨끗이 씻으라는”무소신의 한심함으로 초기 대응을 그르쳤다.정보 공개로 방침을 바꾼 뒤에도 정부는 허둥거렸다. 접촉면을 차단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겠다던 장담은 `메르스 병원명단`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기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람들마저 나타났다. 늦은 밤 개선장군처럼 불확실성 정보를 공개한 어느 시장이 그러하고, 국회에서 국가를 탓하며 회피성 발언을 한 어느 의사가 또한 그러하다.묵묵히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료진들은 무게 3~10kg의 방호복을 착용하고 각자 위치에서 매일매일 힘든 사투를 벌여 왔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아파트에서는 “우리 아파트에 소방관이 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방송을 했고, 어느 학교에서는 의료진의 자녀들을 강제 귀가시켰다고 한다.아름다운 소식도 들린다. 평택에서는 대학생들이 시민들에게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나누어주며 캠페인을 하고, 서울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이 저소득층 메르스 환자를 위한 성금을 보내왔으며, 울산과 구미에서는 공무원들이 특별 헌혈 행사를 가졌다.절에서 승려들이 다투고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당간지주의 깃발을 보고 한쪽 편에서는 바람이 흔들린다고 했고 다른 편에서는 깃발이 흔들린다고 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15여 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혜능(慧能)선사의 제일성이었다.그렇다. 이제는 바람과 깃발을 내려놓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위기에서 어김없이 빛을 발하는 대한민국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6-24

윤리를 왜 공부하나?

때로 윤리학 수업을 하다보면 받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왜 윤리, 도덕을 공부해야 하나요? 학생들의 말에는 은연중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분들이 청문회 등에서 보여 준 말과 행동은 윤리, 도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당연히 좋은 대학도 나오고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인데 그들의 삶은 윤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윤리, 도덕을 공부한다고 도덕적이지 않다면 윤리, 도덕을 배울 이유가 있을까? 윤리, 도덕을 실천학문이라 한다. 이 말은 윤리, 도덕은 그 이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직접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윤리, 도덕을 배우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윤리와 도덕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학생들에게 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대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하면 누가 좋을까? 효도해라, 거짓말하지 말라!와 같은 것을 실천하면 누구에게 좋을까? 먼저 나에게 좋고 부모님이 좋고 남들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윤리, 도덕의 목적은 결국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삶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그렇다면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인 `공부 열심히 해라!`는 윤리와 도덕일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 열심히 해라`는 윤리, 도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누가 좋을까? 먼저 내가 좋고 부모님이 좋고 선생님이 좋고 우리 사회가 좋아하지 않을까? 윤리, 도덕의 다른 말처럼 `공부해라`도 결국 좋은 삶을 위한 것이다. 부모들은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가고 좋은 대학가면 좋은데 취직해 돈 많이 벌고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기에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 사회가 착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면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착하게 살아라!`를 제일 많이 말할 것이다. 착한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면!/이상형(철학박사)

2015-06-23

편 가르기

지인들과 영화보기 모임을 만들었다. 독서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나쯤은 늘 소속되어 살고 있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쇄술이 보급되고 오랫동안 그 가치를 누리고,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책은 이제 그 위상을 다른 매체들과 나누고 있다. 지금이라고 책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렵게 구해 읽던 만큼의 오롯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을 고백한다. 몇 번을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는 일이 놀랍다. 함께 보는 이가 누구인가도 상관된다. 지나간 영화를 혼자서 다시 보기는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같이 보는 일은 기대가 되고 그의 반응 또한 궁금해진다. 모두가 같은 장면을 보는데도 관점과 해석이 다른 것도 참 신기하다.그는 주옥같은 대사에 감동하고, 또 다른 그는 주인공과 배우에 빠진다. 주인공의 늙은 얼굴이 분장이 아니라 세월이 준 무늬임을 자신의 나이에서 증명해낸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의 모습이야말로 따뜻한 힘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낯선 도시의 풍경에 마음을 홀딱 빼앗긴다. 지도 속에 동그라미를 치고 언젠가 훌쩍 저 도시를 향해 떠나고 저 돌길을 걸어보리라 계획한다.하나의 이야기가 각자의 가슴에 제각각의 빛깔로 스며든다. 주인공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리라, 아니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똑같은 장면을 보고 함께 있지만 다르게 예측한다. 이미 자기의 스펙트럼으로 여과해낸 것이다. 잊고 있었던 내 경험과 감정이 연상되고, 나와 다르게 보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관점이 확장되고, 혼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된다.함께 있지만 달라서 좋다. 그의 다름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우리들만의 편 가르기일까. 세상 모든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지 않고 그들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고, 그들과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세상 모든 그들 또한 그럴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현실은 흑백이 아닌 여러 명암의 불확실한 구분임을 인정한다. 한낮의 열기를 조금씩 덜어내며 지나가는 초여름 밤의 바람이 신선하다./윤은현(수필가)

2015-06-22

격대교육

`격대교육(隔代敎育)`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소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3대(三代)가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산업화로 인해 부부 중심의 핵가족 제도로 바뀌어 갔고, 교육의 주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젊은 부부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농촌에는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많다. 그동안 조부모들은 농사일로 바쁘기도 하고 교육정도가 낮아서 손자녀를 교육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차로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 조부모들이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손자녀를 돌보기 시작하는 추세이다.부모들이 자기의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들의 양육은 현실적으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거의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기와 부모가 사회에 진출하여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기가 맞물려 있다. 어떤 형태로든 조부모의 도움이 절실하다.외국에도 격대교육의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빌 게이츠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우이다. 부모 모두 사회활동에 바빠서 외할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빌 게이츠는 외할머니로부터 독서와 기부의 습관을 익혔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한 오바마도 외조부모의 격려와 지원으로 청소년시절의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오랜 전통의 성공적인 사례들이 많다. 조선시대 명문 가문들은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문중에서 직접 서당을 짓고 좋은 스승들을 모셨다. 최근에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등에서,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예는 그 전통을 잇는 좋은 사례다.마을과 지역 사회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교육역량을 잘 활용하자. 경로당에 할아버지 학교를 개설하고 문화강좌에 격대교육의 미래를 모색하는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자. 시간적 여유와 삶의 지혜를 가진 조부모의 격대교육의 활성화는 우리 사회의 미래교육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곽규진(목사)

2015-06-19

캄캄하다

어릴 적 캄캄한 골목길을 걸을 때면 불안과 공포가 밀려온다. 무엇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나를 헤치려고 숨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둠 때문에 주위를 분간할 수 없어서 그렇다. 어둠은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작은 손전등이라도 하나 들면 그나마 인심이 되는 것은 그 불빛이 주변을 분간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근 한 달 동안 퍼지고 있는 메르스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어둠` 때문이다. 우리는 메르스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또 충분한 연구 결과를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당국이 발표하는 대책은 어둠 속에서 떠도는 듯하다. 메르스는 공기감염이 안 되고, 또 지역전파도 없을 것이라 했다. 즉 병원 내 감염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원이 아닌 보성의 한 농촌마을을 통째로 통제 했다. 이 대응이 이상하고 불안하다.삼성서울병원의 한 이송요원은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9일간이나 근무를 계속했다. 또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30대 의사도 확진판정을 받았지만 격리되지 않고 2주 동안이나 진료를 했단다. 이 의료진들이 이른바 슈퍼 전파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국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반면 전남 보성의 한 마을은 일주일 가까이 통째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살았다는 것이 이유이다. 지금 이 마을에는 의심 증상을 보이는 주민도 없다고 한다. 국민들이 보기엔 이상하기 짝이 없다.병원은 바이러스 감염 경로를 잘 아니까 알아서 할 것이고, 농촌마을 주민들은 그것을 잘 모르니까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보성의 한 농촌은 통째 격리해도 우리나라 농산물 수급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가. 개방농정이 이를 잘 조절해 주니까. 반면 삼성서울병원을 통째 격리하면 환자들이 모두 사경을 헤매고 혼란에 빠질까봐 그런가. 아직 의료진 수입을 할 수 있는 개방의료행정이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까. 무지와 안일함을 넘어 자본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도통 캄캄하기만 하다. 손전등이라도 하나 있으면 그 속내를 비쳐보고 싶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6-18

한 조각 마음의 피안(彼岸)

교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종교를 대한 것은 지금부터 반세기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인문학 강의 시간이다.골목길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빵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따라 홀린 듯 성당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황홀경에 멍하니 서있는데 하얀 옷차림의 수녀가 나타나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빵과 예쁜 수녀 누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고등학교 때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 성가대 활동과 토론회 등 여학생들과의 교류로 시작된 교회의 매력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운동 금지를 어기고 유인물을 만들다가 담임목사에게 들켜 그만 교회를 떠나게 된다.`불교 학생회`주관 수련회에서였다. 송광사에서 구산스님과 법정스님을 만났다.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구산 노스님의 설법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비유하며 법문을 전하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경이와 감동 그 자체였다.스님의 배려로 암자에서 학승과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학승은 박학다식했다. 그러나 얼마 후 경외심은 깔보는 마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전화로 동생에게 “너 임마,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말 좀 잘 들어라.”라든가, 어머니에게 “누구에게 이야기해 놨으니 돈 빌려 쓰세요.”라는 등의 말은 중생인 나와 별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속내를 털어놓자 학승은 단번에 시인을 했다. “내가 수도승이라고 하지만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부처님 세계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중생들과 다른 점은 어떤 결정을 할 때 50대 50의 싸움에서, 겨우 51대 49로 선(善)을 택하는 결정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다. 중생들이 3:7이라면 나는 7:3의 비율은 된다.”생각이었을까. 말을 맺는 교수의 둥근 얼굴에 고승의 미소가 번진다. 가슴속이 대번에 환해졌다. 왜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몰랐을까. 1%의 사색이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 한 조각 마음이 바로 차안(此岸)의 그 너머 피안(彼岸)인 것을./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