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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찾아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바짓단을 물고서 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러 나가자고 보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듯 그윽한 눈, 쳐다봐 달라고 찡찡거리는 연약함, 한 번 안으면 내려놓기 싫어지는 포근함, 딱딱한 것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보들보들한 발바닥은 꽃가루라도 밟고 온 것일까, 예쁜 발자국을 남긴다. 냉장고 밑에 오줌을 싸놓고 소파 밑을 자신의 비밀공간으로 만들어 놓아도 특별한 이의 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땀을 뻘뻘 흘리며 젖을 먹고 난 후 아기는 곤히 잠든다. 성가시게 굴던 일을 금방 잊어버리고 깨워서 놀고 싶어진다. 뿅뿅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서 통통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유치원 간다고 집을 나설 때 꽃잎처럼 팔랑거리며 흔드는 조그맣고 하얀 손, 온 놀이터의 모래를 다 실어 나를 듯 현관 바닥을 어지럽히던 번잡함도 잠시, 어느새 쑥쑥 키가 자라는 아이들, 세상 어떤 것이 이처럼 순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보신 분 연락바랍니다. 사례하겠습니다.` 며칠 전 나들이 다녀오는 길에서 본 현수막이다. 인상착의를 보여주는 사진 속 주인공은 강아지였다. 옆자리의 친구는 “개 꼬라지하고는….”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강아지가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은 반려견이라는 품위 격상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집과 먹이를 제공해주고 바라보는 만족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 등 그들의 가치를 재인식한 것이다. 당연히 찾아나서야 할 일인데, 왜 무던한 내 친구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일까.OECD 국가이면서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라는 오명은 어쩔 것이냐며 친구는 말머리를 돌린다. 그 책임이 오롯이 내게 있는 듯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고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버려지는 아이의 수는 늘어나고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여전히 만만찮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무관하게 유기되고,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타인에게서 기대해야 하는 아이들, 허기진 세상 곳곳에 엄마를 심고 싶다는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부모가 제 손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가정의 달 5월, 지난 11일은 입양의 날이었다./윤은현(수필가)

2015-05-18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B에서 시작하여 D로 끝나는 것. 어떤 실존철학자가 인생을 표현한 말이다. 탄생(Birth)을 의미하는 B와 죽음(Death)를 의미하는 D 사이에는 인생의 내용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다. 알파벳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 인생의 내용인 C를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어떤 사상가는 그의 주저에서 인간의 본질을 그리스 신화를 빗대어 기술한 적이 있다.쿠라(염려)가 강을 건널 때 점토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빚기 시작했다. 유피테르(쥬피터)가 혼을 불어넣어주자 그 후 서로 자기 이름을 붙이고자 다투게 되었다. 텔루스(대지)도 자기의 몸 일부가 제공되었으니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모신 재판관 사투르누스(시간)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유피테르는 혼을 주었으니 그가 죽을 때 혼을 받아가고, 텔루스는 육체를 제공했으니 육체를 받아가라. 하지만`염려`는 이 존재를 처음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살아있는 동안 그대의 것으로 삼아라. 그러나 그것이 후무스(흙)로 만들어졌으니 `호모(인간)`라 불러라.” 이 신화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본질은 염려라 할 수 있다.어버이날 지인들로부터 생일 축하가 쇄도했다.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과분한 생일축하인사도 받았다. 어버이날이 생일이니 어머님에게 내가 최고의 선물이 되었겠다고 어떤 분이 말했다.생일날 저녁에는 문상을 갔다. 95세의 할머니는 정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피부가 좋고 총기가 좋았다고 70세 상주가 회고한다. 영정사진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망자의 인생을 빛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염려를 본질로 하는 인생에서도 행복감이 그녀의 인생을 빛나게 한다. 6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우시면서 인생을 밝게 살고, 고통을 참으며,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가족들을 향해 베풀었던 부단한 사랑이 행복의 원천이었다. 사랑은 모든 염려를 이기게 하는 힘이다. 인생을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다./곽규진(목사)

2015-05-15

그냥

얼마 전에 시집을 한 권 냈다. 출판사가 책값을 정했는데, 내가 들인 공과 창작에 걸린 시간 등은 전혀 고려치 않고 1만원으로 정했단다.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그냥` 대체로 이정도 가격으로 한단다. 시집 한 권의 값이 너무 비싸면 독자가 외면할 것이고, 또 이보다 싸면 좀 그렇고…. 출판업자의 답변이다.그렇다. 책값이 수요공급의 원칙과 경제학적인 법칙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해지듯이 우리는 지금 객관성을 결여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현대인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도 사회문화적 현상도 그냥 보고 있다.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언제부터인가 TV에서 아기를 출연시킨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삼둥이, 쌍둥이`들이 인기를 얻고 난 이후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는 연예인들이 자기 자식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청자들은 그냥보고 있다. 그 아이들이 특별한 끼나 재주를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냥 누구의 아들딸이라는 사실만으로 출연을 하는데도 말이다.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아니면 학원에서 그들의 끼를 찾아 보여주기 위해서 수 년 간에 걸쳐 땀을 흘린다. 그리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도 유명 연예인의 아이들은 그냥 출연한다. 이들이 가지는 프리미엄은 가격으로 계산할 수 없다. `특실`의 자리에 무임승차하는 격이다. 그리고는 거기에 주어진 온갖 혜택을 누린다. 나는 그냥 걱정이다. 이들에게서 `갑 의식`이 싹 틀까봐.각종 부정과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그냥 버틴다. 민생관련 법안이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그냥 쌓여있단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뜻도 모를 매체언어를 남발하면서도 그냥 재미있단다. 이렇게 우리는 그냥 서 있다. 버스 정류장을 그냥 통과하는 시내버스도 그냥 두고 봐야 할 것인지 `그냥` 한번 생각해 봤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14

익은 감자

정의의 어원을 생각해 본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정의를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사건 사고에는 언제나 두각을 나타내는 단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노총은 팽목항을 찾아와 대통령에 분노하라는 유인물을 뿌렸고, 전교조는 희생된 학생들을 `김주열·박종철`에 비유하는 선동과 함께 대통령 퇴진 운동을 호언장담했다. 자칭 `엄마의 노란 손수건`과 `세월호 참사 시민 촛불 원탁회의`라는 단체에서는 대통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정의를 부르짖었다.정의가 반드시 양심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과 일본 극우 세력들의 혐한 시위를 보며 떠올린 감정이다. 이스라엘의 남부 도시 스데로트 언덕에는 밤마다 주민들이 소파를 들고 와 불꽃놀이를 감상하듯, 팔레스타인의 비명을 듣는다고 한다. 일본에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시로 확성기를 튼 차량을 타고 한국인 초등학교에 몰려가 “김치 냄새난다” “쳐 죽여라” 등의 폭언을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한다.통합진보당 의원 이석기가 있다. 검찰은 그에게 내란음모 등의 혐의를 적용, 항소심에서도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그보다 하루 앞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이 서울고등법원에 이석기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유로 그들은 사회의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천할 기회, 누구의 어떤 죄라도 용서하는 것이 종교인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그들에게만 통하는 그들만의 정의다.어릴 때의 기억이다. 군불에 감자를 구워 먹은 적이 있는데 조급한 마음에 감자를 빨리 꺼내면 겉은 익고 속은 익지 않은 설익은 감자가 되고 만다. 설익은 감자는 비리고 아린데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 가지 관점을 벗어난 정의는 바로 설익은 감자와 다름없다./전병덕(수필가)

2015-05-13

기억에 대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몸이 바쁜 것만큼이나 마음까지 덩달아 바쁜 날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날들을 기념하게 되었을까? 이렇게라도 정해놓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살면서 그만큼 많은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은 어쩌면 각자가 마음대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예전 미국에서 기억에 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14세 소년을 모아 인터뷰를 한 후 34년이 지나고 그때의 일을 기억하게 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그들이 기억한 10대의 일과 그 당시 기록이 일치하지 않았다. 부모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기억한 이는 실제로 10대에는 부모와 갈등이 많았다고 기록했었다. 또한 10대에 외향적이었다고 기억한 이의 기록에는 자신을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고 적었다. 왜 이럴까? 기억에 현재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통째로 저장되지 않고 조각으로 분류돼 저장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짜 맞추어 끄집어낸다. 그렇다면 기억은 현재의 내가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그럼에도 계속해서 기억을 들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순간과 내가 경험한 것은 오로지 나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점차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 삶의 흔적들은 나의 기억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이 세계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면 끊임없이 기억을 회상하려 한다.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과 그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내가 살았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어쩌면 우리는 지금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이는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길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 세상에 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이가 자신의 과거를 따뜻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까?/이상형(철학박사)

2015-05-12

귀싸대기를 쳐라

극단 파피루스의 `귀싸대기를 쳐라`공연을 보았다. 사회의 부조리한 인간들, 권력을 이용하고 법망을 피해가며 비열하게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속 시원하게 귀싸대기를 때려주는 블랙 코미디이다. 기획을 맡은 곽 선생에게서, 배우들이 귀싸대기를 많이 맞는다며 무척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는 얘기는 미리 들었다. “저런 놈은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붙여야 하는데”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 있다면 순간순간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특별히 맥줏집 장면에서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되어 배우의 귀싸대기를 힘껏 치게도 된다. 대학로에서 이 극이 공연되지 못하는 이유는 배우의 안전문제 때문인데 실제로 고막이 파열된 적도 있다고 하니 충분히 수긍이 간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극단 파피루스팀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 큰 호사였다. 특히 일인다역으로 귀싸대기를 맞았던 멀티맨 역의 배우 김훈진씨의 이야기는, 웃고 있었지만 눈물겨웠다. 키 크고 잘 생긴 배우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맞았다. 연습 때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거의 100대를 맞았다고 한다. 더구나 어느 날 즉석에서 캐스팅된 관객은 차지게 한 대 후려갈기는 것으로 부족했던지 거의 평소 쌓인 울분을 토해내는 수준으로 연타를 날렸다니.나쁘고 얄미운 인간 군상을 찾아 속 시원히 귀싸대기를 치는 기발하고 통쾌한 주제도 좋고, 열악한 지방 연극무대를 꿋꿋이 지켜오는 문화 이야기도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 남짓, 배우 김훈진의 소회이다. 그는 지금껏 살면서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해 다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혹시 자기도 모르는 채 넘어왔던 모든 잘못에 대한 회개라니.어쩌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휘청할 것처럼 여리고 얼굴 하얀 청년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을까. 맡은 배역이야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르고 저질렀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한 반성, 혹은 맞아야 했지만 곱게 넘겨 용서해 주셨던 분들께의 찬란한 헌사라니. 그는 평생 맞을 것 이번 기회에 다 맞았으니, 앞으로 누구에게도 귀싸대기 맞을 일 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 것이다. 그나저나 조심해야겠다. 언제 귀싸대기를 맞을지 모른다./윤은현(수필가)

2015-05-11

균형추

네팔 강진으로 1만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대만 동해안의 지진 소식이 있었다. 지난 주 타이베이를 방문하여 초고층 빌딩 `타이베이101`에 올랐을 때 지진을 견디는 내진설계인 `댐퍼보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댐퍼보이는 타이베이101의 87층에 있는 대형 추로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흔들리면 반대쪽으로 기울어 건물의 진폭을 줄여주는 내진설계 장치다. 지름 5.5m, 무게는 660t, 제작비는 400만 달러(약 43억원)에 달한다. 2002년 3월 31일 대만 북부 지역에서 7.1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 저층 건물들이 쓰러진 반면 타이베이101은 공사 중이었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완공 후에도 수차례 큰 지진이 났지만 현재까지 피해를 본 적은 없다.지난 세월호 참사도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배 밑창의 바닥짐(ballst)인 평행수를 제거하고 선상에 짐을 과적한 것이 가장 큰 화근이었다. 균형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히고 그 지향점은 낮은 곳을 향한다. 본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빌딩의 안전을 보장해 준 내진설계처럼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줄 균형추는 무엇인가? 만약 인생의 내진장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인생의 큰 집을 지으면서 균형추가 없다면 고난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인생이라는 긴 항로를 항해하는 배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배 밑에 있는 바닥짐 때문이다. 그것은 힘들고 거추장스럽더라도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진리이다.우리의 삶을 보다 견고하게 할 뿌리는 있는가? 신앙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균형 잡을 수 있는 본질적인 영역,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일상 속에서 균형추로 혹은 바닥짐으로 존재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중심 추의 부재는 인생과 사회에 위기를 초래한다.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교가 끊어지는 것은 본질을 잊고 외부만 치장하는 어리석음이 빚어낸 과오였다. 자유로운 진리, 정직한 소망과 겸손한 사랑이 절실한 요즘이다./곽규진(수필가)

2015-05-08

쓸데없는 소리

해마다 5월이면 떠들썩하고 바쁘다. 메이데이(May Day)부터 시작해서 무슨 날이 참 많은 달이다. 4일이 월요일이니까 그날 하루만 휴가를 내면 1일부터 5일까지 이른바 징검다리 연휴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학교도 한몫 거들었다. 대부분의 초중학교가 어버이날인 8일 전후까지 약 10일 내외의 `단기방학`을 하였다. `연휴`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새겨보라는 교육적 취지가 더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부도 이 시기에 맞춰 `봄 관광주간`(5월1~14일)을 정했다. 자녀를 집에 남겨두고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노동자의 무거운 발걸음을 보며 `복지`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또 `봄 관광주간`이 단기방학기간과 겹치는 것을 두고 `경제 특수`를 위한 꼼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는 결정이겠지, 설마…. 오비이락(烏飛梨落)일거야.그런데 일부 학원에서 이 기간 동안에 단기 특강반을 만들어 호황을 누렸다는 소식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단기방학`이 `단기학원집중기간`으로 바뀐 셈이니, 그 많은 빨간 날 속에 정작 우리 아이가 쉴 시간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 단기방학이 매년 지속된다면 5월은 사랑 넘치는 가정의 달이 아닌 입시경쟁이 치열한 사교육의 달로 바뀌지 않을까. 이런 현실 앞에서 가정의 달, 단기방학 등은 모두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하다.바쁜 5월이 더 바빠졌다. 어린이도 챙겨야 하고, 부모님도 찾아뵈어야 하고, 관광도 해야 하고, 게다가 이제 자녀들 시험 준비도 시켜야 한다. 시험 답안지에 “어제는 시골 할머니를 뵙고 오느라 공부를 다 못했습니다”라고 쓸 수 없기에,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어머님, 애들 시험기간이라서….”라며 우물쭈물하는 전화 안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단기방학,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른들께 인사할 수 있는 가정의 달, 일상을 벗어나는 힐링의 관광 주간이 `쓸데없는 소리`가 아닌 의미 있는 소리가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5-07

동리·목월 생가

경주 모량리에 복원된 목월(木月) 생가는 초가집 안채 사랑채 방앗간 장독대 등 목월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을 갖추기는 했으나 앞으로 손 볼 일이 적지 않다. 고창 선운사 인근의 미당 서정주 고향은 온통 국화천지다. `국화옆에서`를 모티브로 온 들판에 국화를 심었다. 선운사와 미당 생가와 기념관을 연계한 관광벨트가 형성된 것이다. 경남 통영의 청마 유치환문학관도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과 기념관이 어울어져 통영관광의 중심이 돼 있다. 춘천의 김유정문학관은 마을 전체가 기념관이다. `봄봄`에 나오는 장소들이 다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소설 속의 장소를 현장에서 돌아보는 즐거움을 누린다.이같은 문인들의 기념관·문학관에 비해 경주의 동리목월문학관은 관광자원화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불국사 앞에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은 동리의 생가와는 8㎞가량 떨어져 있고, 목월의 생가와는 16㎞ 밖이니, 동리·목월의 체취를 느낄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국사에 있는 문학관은 문학강좌나 세미나, 문학강연장으로 사용하고, 동리 목월 생가를 중심으로 관광자원화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동리의 생가는 경주 시내에 있고, 근처에 `무녀도`의 현장인 금장대와 애기청소가 있다. 독일 라인강변의 롤렐라이언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로렐라이언덕은 시인 음악가 화가들이 열심히 작품을 제작해 온 세계에 보급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지만 금장대와 애기청소는 `무녀도`이래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목월의 시에는 산도화, 박꽃, 느릅나무, 밀밭, 사슴, 목련, 청노루 등이 나온다. 그런데 목월 생가에는 이런 것들이 아직 없다. 박넝쿨 한 포기, 손바닥만한 밀밭 등이 있을 뿐 산도화 할 그루 없고, 오히려 외래종 꽃이 더 많이 심어져 있다. 목월 시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생가로 만들어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낄 것이다. 지역의 우뚝한 문화예술인들을 선양하는 일이 지역발전의 요체임을 경주시와 경북도가 알고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5-06

안 해본 일

중간고사가 끝났다. 공부 아닌 것이면 무엇이든 다 즐거울 듯 지루했지만 시험은 결국 이렇게 끝이 예상된 일이었다. 조심스럽고 반짝이던 신입생들의 눈빛이 조금씩 흐트러지고 살짝 오만한 표정을 들키기도 한다. 이제 저들은 느긋하게 걸을 것이고, 이른바 자체휴강으로 한 번쯤 강의실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 삼삼오오 왁자하게 떠들면서 학관사이를 오가고 체육대회며 축제를 즐기다 순식간에 기말고사를 맞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 학기를 반복하며 대학생활도 청춘의 한 때도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재방송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폭죽을 터뜨리듯 피어나던 봄꽃에 놀라는가 싶었는데 세상은 어느새 연두 빛이 가득하다. 새 달력을 거는 일도, 그 첫 장을 넘기는 일도 새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성큼 지나버린 시간에 놀라며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비하는 것도 잠시, 이 한 해도 금방 다가고 말리라 예감한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누군가는 가까이 혹은 멀리로 떠나간다. 그때마다 처음인 듯 가슴이 써늘하지만, 이 역시 가끔씩은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계절이 바뀌는 동안 감기도 된통 앓게 된다. 사정없이 콧물을 훌쩍이며, 체면을 구기는 일도 잊을 만하면 꼭 한 번씩 찾아온다. 뻔히 아는 것에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 분하긴 해도, 감기 역시 그렇게 나를 곯려 먹는 일에 익숙한 듯하다. 언감생심 도전과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제와 같은 이 고요는 안녕이며 평화일지도 모른다.익숙한 일상 속에서 안 해 본 일은 피하고 싶거나, 미룰 대로 미룰 만큼 성가시고 두렵다. 그러나 반짝이는 저 한 때, 안 해본 일은 살아있음의 뜨거운 확인이며 내 세계를 바꾸는 중요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은 놀랍고 두렵기도 하다. 게으른 시간과 얕은 정신이 독자들께 실망이나 폐를 끼칠까 걱정된다. 그 조심스러움에 기꺼이 마음을 맡기기로 한다. 두 달 전 신입생들을 만나며 혹여 소홀했던 일상을 반성한다. 중간고사를 끝낸 그들이 일찍 핀 보랏빛 꽃향기를 흩으며 지나간다./윤은현(수필가)

2015-05-04

할랄과 하람

코란 제5장 3절에는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피와 돼지고기와 알라의 이름으로 잡은 고기가 아닌 것. 목 졸라 죽인 것과 때려서 잡은 것과 떨어져서 죽은 것과 싸워서 죽은 것과 다른 야생이 일부를 먹어버린 나머지와 우상에 제물로 바쳤던 것과 화살에 점성을 걸고 잡은 것이거늘, 이것들은 불결한 것이라” 했는데, 할랄과 하람은 여기서 유래됐다.마호메트의 `선언`을 근거로 세부적인 이슬람 법률이 제정되는데, 샤리아가 그 대표적이다.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시행령을 만들면서 `문제성 있는 음식`들도 구분하는데, 가령, 장어 같은 비늘 없는 생선은 금한다든가, 술은 돼지고기만큼 금지된 음료라든가, 빵을 만드는 이스트 또한 술을 만드는 효모라 해서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또 짐승을 도축하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 `다비하`인데, 도축할 가축의 머리를 메카쪽으로 누인 후, 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는 기도문을 외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단숨에 참수해서 동물이 느낄 고통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참수한 후에는 거꾸로 매달아 `부정한 피`가 빠져나가게 한 후에 비로소 조리할 수 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삼겹살을 엄청 좋아하는데, 이슬람이 보면, 신의 뜻을 거역한 `악행`이다. 중국이나 유럽 사람들도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잘 먹고,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데, “소는 전생의 어머니”라 믿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모친상을 당한 사람이 “전생에 우리의 경을 싣고 다니던 소가 죽었다”는 부고를 전하는 기록이 있다. 인도불교의 영향이다. 석가모니가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열반에 든 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불자들도 있지만 다들 별로 가리지 않는데 이슬람에서는 유별나게 돼지를 저주한다.세계 인구 40%가 무슬림이고, 할랄시장은 1천500조원 규모여서 한국 기업들이 군침을 삼킬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길에 MON을 체결해 할랄시장에 진출할 길을 열었다. `할랄 인정`을 받으려면, `무슬림의 다름`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5-01

군견의 노후

개는 사람에 비해 후각은 1만배, 청각은 40배, 시각은 10배 우수하다. 그래서 군과 경찰에서 요긴하게 이를 활용한다. 순수혈통의 종견(種犬)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3개월째부터 신병훈련소에 입소한다. 앉아! 서!, 물어! 놓아! 뛰어! 돌아와! 같은 명령어를 알아듣는 기초훈련을, 7개월부터는 작전훈련에 돌입한다. 1년여 훈련을 이수하면`적격 심사`를 받는데, 10마리 중 2마리가 통과한다. 군견에는 세퍼트가 80%이고, 말리노이즈가 20%, 리트리버가 2% 정도 있는데, 용맹한 진돗개는 실격이다. 충성심이 너무 많아서 고락을 함께 했던 군견병이 제대를 하면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고, 오래 그를 잊지 않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탈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퍼트는 친화력과 넉살이 좋아서 짝꿍이 바뀌어도 일주일만 같이 있으면 그 군견병과 친해진다. 세퍼트가 가장 많은 이유다.군견도 상징적 계급이 있는데 보통 부사관급으로 대우해준다. 그런데`소위`에 추서된 군견이 있다. 제4땅굴 발견 당시 북한군이 매설해놓은 지뢰에 몸을 던져 1개 분대병력을 살려내고 산화한 `헌터 소위`가 그 충견이다. 제4땅굴 입구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고, 예쁜 묘지도 있으며, 헌터의 행적과 공적을 새긴 동판과 `충견`이라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그리고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했을 당시 숨어 있는 공비를 찾아내 사살하는데 큰 공헌을 한 군경 `린틴`은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군견이 받은 최초의 훈장이다.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군견병과 군견의 이별이다. 군견병이 예편할 때, 군견이 8세가 되어 제대하고 안락사 당할 때이다. 전에는 제대한 군견은 실험용으로 가거나 안락사를 시켰다. 안락사테이블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군견을 차마 보지 못해 눈물을 펑펑 쏟는 군견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법이 개정되어서 반려견으로 기증돼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됐다. 12살된 폭발물 탐지견 `평화`가 제대하고, 새 주인을 만났다. 평화로운 노후를…./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30

영의정·국무총리

조선시대 영의정은 170명인데, 그 중 최장수 영의정은 황희. 그는 태종이 3남을 후계자로 세울 뜻을 품고 있을때 “장남 양녕대군을 올리셔야 합니다” 주장하다가 유배됐다. 세종은 정적(政敵)인 그를 불러들여 무려 18년이나 영상의 자리를 지키게 했다. 당시에는 `영의정의 권한`이 볼품 없었다. 좌의정은 이조, 예조, 병조판서를 겸했고, 우의정은 호조, 형조, 공조판서를 겸임했으나, 영의정은 서열만 높을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눈썹`과 같아서 자리는 제일 높은데 하는 역할이 없었다.그래서 세종은 황희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영의정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앞으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국사를 협의해서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왕명에 의해 영의정의 역할이 만들어졌다. 모든 국사는 3공(公)이 관장하는 의정부에 일단 올라간 후 거기서 가부를 결정한 후 왕에 보고했고, 왕명은 의정부를 통해 6조에 하달됐다. 다만 세종은 이조의 인사권과 병조의 병권에 관한 사항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보토록했다. 권한의 절묘한 안배였다.영의정 중에서 백성들이 가장 좋아했던 분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이었다. 그가 중국으로 사신 떠날때 장안의 백성들이 길거리가 터지도록 몰려나와 “편히 다녀오소서” 환송을 했는데, 이 장면을 본 사람이 상왕 태종이었다. 심온 영의정은 `인기가 너무 높은 죄`로 상왕에 의해 역모죄를 쓰고 숙청됐다. 그래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불행한 영의정`이란 말을 들었다.조선조 초대 영의정은 경상도 성주 출신의 성산배씨 배극렴이었다. 위화도 회군을 주도하며 태조의 신망을 한몸에 받은 개국공신1등이었다. 그의 묘소는 충북 증평군 증편읍 송산리에 있고, 충북도 기념물 98호로 지정돼 있다. 이 전통을 이어 충청도 국무총리 한번 내보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그곳 출신 여러 인물들이 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간신히 국회를 통과하고도 중도 하차한다. 아무래도 살풀이 씻김굿이라도 한번 벌여야 할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9

양철북

`오스카`는 태어날 때 이미 성인급 두뇌를 가졌고, 처음 세상을 보는 순간 “아차! 잘못된 시절에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이미 탯줄이 잘려서 포기하고, 살아보기로 한다. 어머니가 “3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주마”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더 용기를 냈다. 세살이 되던 해 양철북을 받았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더 알게되었다.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하면서 더 절망하고, “지금부터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겠다” 며, 지하실에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면서 `성장판`이 닫혔다.오스카는 부조리를 볼때 마다 쇠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유리창이 깨어졌다. 나치군대가 행진을 할 때 따라다니면서 양철북을 쳐댔고, 행진곡은 엉망이 되고, 행렬도 흐트러졌다. 히틀러가 오스카의 고향마을에 와서 선전선동 연설을 할때마다 양철북을 쳐서 연설을 망쳐버렸다. 그러나 세살짜리 젖먹이가 하는 짓이라 잡혀가지는 않았다. 무슨짓을 해도 면책이 되기 때문에는 3살짜리로 머물러 있기로 했던 것.귄터 그라스(1927~2015)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양철북`의 줄거리다. 그는 1차대전후에 태어나 청년기에 2차대전을 겪는 불우한 세월을 살았다. 두 차례나 패전한 독일에서 살았던 작가는 “전후의 부조리와 모순과 갈등과 빈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절실히 그린 소설은 없었다”란 평가를 받았으며, `양심의 상징`이란 소리도 들었다. 사실 그는 독일의 양심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17세때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던 적이 있다”라고 고백했다. 맞아죽을 일이었지만 그는 양심을 선택했다. “나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가지면 세계평화를 위협한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반유대주의자로 찍힐까봐 입을 닫는 비겁한 인간이었다”란 자백까지 했다.우리에게도 이런 양심(良心)이 필요하다. 같이 죽자며 `물귀신 리스트`를 남기고,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놓고,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우리의 현실이 `양철북 소리`를 간절히 기다린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8

정경(政經)의 고리

1961년 6월 이병철 삼성 회장은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당시 여러 경제인들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속돼 있었다. 이 회장은 이렇게 설득했다. “경제인들이 탈세와 부정축재자로 몰린 것은 비합리적인 세율 때문입니다. 경제인들을 처벌하면 경제가 위축되고 세수가 줄어 국가 운영이 타격을 받습니다. 이들에게 경제건설의 역할을 맡기면 어떨까요” “그것은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 박정희는 미소를 지었다.경제인들은 구속에서 풀려났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병철도 103억400만환의 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은 다시 박정희에게 건의했다. “현금 대신 그 벌금으로 공장을 지어 그 주식을 정부에 납부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제안도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투자명령`이라는 좀 이상한 법령으로 실현되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관계에 빠진다 해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고, 타협에 의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회될 수 있는 사례였다.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행보가 바로 전형적인 정·경 유착이었다. 자기 자신은 5만원짜리 양복을 입으며, 가난했던 청소년시절의 검약정신이 체질화됐지만, 사업에 도움이 될 정권실세들에게 집어주는 돈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성완종 다이어리`에 오른 국회의원만 220명이나 되고, 그 힘에 의해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무려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데, 그 또한 돈의 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아무리 `돈 안 쓰는 정치`를 외쳐보지만, 우리나라처럼 `청렴도 하위권`국가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헛구호다. 성 전 회장의 장례식에 온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하고, 권력자들은 “그 사람 잘 모른다”며 도망갈 개구멍만 찾는다. 온 나라가 공황에 빠져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7

사람과 개는 천친(天親)

“왜 유독 개가 사람에게 충성스러운가”를 알아보려고 일본의 한 연구팀이 개와 사람을 한 방에 넣어 눈을 맞추게 한 후 소변검사를 했더니,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이 분비됐음을 발견했다. 옥시토신은 출산을 돕고, 젖을 잘 돌게 하며, 산모가 아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남편에게 모성본능을 갖게 하고, 협상을 할 때 코끝에 뿌리면 신뢰감이 커진다.다른 동물에는 반응이 없는데, 유독 개와 사람 사이에는 분비되니, 개는 사람에 대한 `충성유전인자`를 갖게 된 모양이다. 연구팀은 “수천년전 사람이 개를 길들여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받아 DNA가 함께 바뀌는 공(共)진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했다. 노자(子)는 “아기는 엄마가 못생겨도 외면하지 않고, 개는 주인이 가난해도 무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의 법칙이 그런 본성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미국에서는 “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 될 생각을 말라”한다. “내 가족에게는 욕을 해도 내 애견 팔라는 욕하지 말라”고 말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내가 죽어 동상을 세우려거든 필라의 것도 함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그대로 됐다. 에이브러험 링컨은 늘 애견 피도를 품에 넣고 다녔고, 버락 오바마는 애견 보와 미식축구를 즐긴다. 조지 W. 부시는 무섭게 생긴 바니와 옥시톡신을 흡족히 교환하는 사이다.세계에서 가장 비싼 개는 머리가 사자같이 생긴 티베트산 마스티프(사자개)인데, 중국에서는 이 개가 부의 상징이었다. 좀 있어 보이려면 이런 개를 몰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최근 된서리를 맞았다. 반부패운동이 확산되면서 사자개는 개집속에 깊이 숨겨졌고, 값도 형편 없이 추락했다. 한 마리에 20억원이나 했으니, 사자견 사육자는 재벌 축에 들었지만, 요즘에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한 개도축업자로부터 “30위안(5천400원)에 한 마리 팔아라”란 소리를 들은 사육업자는 허파가 뒤집어져서 몸져 누웠다는 소식이다.사람과 DNA가 비슷한 견공들. 버려진 개가 배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4

말 둘러대기

“남자는 우산과 거짓말을 항상 갖고 다녀야 한다”란 말이 한때 영국에서 유행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찔끔거리는 영국에서 우산을 상시 지참해야 하는 것 같이, 언제 어디서 난처한 일을 만날지 모르니 `둘러댈 거짓말`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처칠 같은 유명 정치인도 “유능한 정치인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약속이 지키지지 않을 때 적절히 둘러댈 말을 준비하고 있어야 유능한 정치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선거법이 엄격해지고, 정치인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자,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권력을 쥐겠다는 사람도 줄어들었다.미국인들은 어릴때부터 “거짓말 하지마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기 때문에 거짓말을 최악의 악덕이라 생각한다. 미국 대선 당시 “닉슨 후보 진영에서 워트게이트 아파트에 있던 반대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했느냐”란 의회 질문에 닉스 대통령은 “그런 일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FBI간부가 `내부고발`을 함으로써 거짓말이 들통났다. 미국인들은 그의 거짓말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이완구 총리가 3천만원을 받은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 하고 말 둘러대기를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정서인 것 같다. “금방 들통날 일은 왜?” 2012년 대선때 관여하지 않았다 했지만 찬조연설하는 유세장면 사진이 나왔고, 충청포럼에 전혀 아는 사람이 없다 했지만 성완종 회장, 반기문 고문이 있는 충청권 VIP 모임에 아는 사람이 없다니…. 성 전 회장과는 19대 국회때 본게 전부라 했지만 최근 23번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이쯤되면 `거짓말 중독증` 수준이다.그의 고향은 충남 청양군 비봉면 양사2리이다. 맵기로 유명한 청양고추의 고장에서 태어났는데 말은 왜 그래 맵지 못한가. 그래도 고향의 일부 친지들은 “여주 이씨는 본디 강직한 성품이다. 총리께서 그럴리 없다”며 끝까지 믿어보려 한다. 그는 JP·반기문과 함께 `충청도의 희망`인데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면…./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3

효소왕과 뇌물죄

신라 32대 효소왕때 일이다. 통일신라는 안정돼가고, 백성들도 평화를 원했다. 화랑도는 국군에 편입되고, 사조직 형태로 조금 남아 있었는데 당시`죽지랑`의 무리 중`득오곡`이라는 화랑이 한 열흘 결근을 했다. 알아보니 부산성(건천읍 오봉산 산성) 수비대장 `익선`이 징집해갔다는 것이다. 죽지랑은 떡과 술을 마련해서 그를 면회갔고, 익선에게 “득오에게 휴가를 좀 주게”하며 간청했으나, 익선은 완강히 거절했다. 그때 밀양지역에서 세금을 거두어 돌아오던`간진`이 죽지랑의 부하사랑에 감복하고 익선의 고집불통이 미워서“조(租) 30 섬을 주겠으니 휴가를 주시오”라고 했으나 역시 거절하므로, 말안장을 얹어주니 그제서야 허락했다. 아무리 화랑이 힘 없는 시절이지만 김유신 장군 휘하에서 싸웠고, 진덕여왕,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4대에 걸쳐 재상을 지낸 죽지랑인데 일개 부대장이 뇌물을 받고 부탁을 들어주다니…. 이 일은 곧 궁궐에 알려졌다.체포조가 들이닥쳤을 때 익선은 도망가고 그 맏아들을 잡아 더러움을 씻긴다며 연못에 빠뜨렸는데 그 때는 한겨울이라 얼어죽었다. 효소왕의 징벌은 혹독했다.“익선이 모량 출신이므로, 모량사람은 관직에서 쫓아내고, 승복을 입지 못하며, 중이 된 자라도 절에 못 들어간다”당시에는 중이 귀족이었는데, 원측법사는 고승이었으나 모량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직을 주지 않았다.모량부는 22대 지증왕의 처갓곳이다. 지증왕의 음경이 너무 크서 배필을 얻기 어려웠는데, 요행히 모량부 상공(相公)의 딸이 거물급이라 무사히 혼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은 신라 초기 왕족·귀족들의 분묘가 수십 기 있는 성지이다. 그런데도 효소왕은 그 마을을`독직사건 뇌물죄`를 물어 가혹하게 처벌했다.뇌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아무 조건 없이….”라고 말하지만,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인데, 어떻게 아무 조건이 없단 말인가. `효소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한국에서 공직에 나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번은 치러야 할`홍역`이기를…./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2

상대별곡(霜臺別曲)

고려말에 벼슬길에 올랐다가, 친원파·친명파 갈등 속에서 한때 유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세종대왕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대사헌을 맡겼던 양촌 권근. 그가 지은 `상대별곡`은 사헌부의 위세를 잘 보여준다. 검찰과 감사원을 겸하고, 언론기능까지 있어서, 왕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사정 없이 탄핵했던 사헌부. 그래서 서리상(霜)자를 쓰서 상대(霜臺)라 불렀다. 비록 왕족이라도 비리가 드러나면, 그 죄목을 판자에 써서 가시더미와 함께 그 집 대문앞에 세워놓았다. 우두머리 대사헌이 부임하는 날에는 모든 관원들이 도열해서 예로 맞이하게 돼 있는데, 흠결이 있는 자를 왕이 총애해서 낙하산 임명을 했다면, 취임하는 날 관원들은 도열해 맞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코를 쥐고 돌아가는데, 그러면 왕이 직접 사헌부에 와서 통사정을 할 정도였다. 탄핵당한 왕족을 좀 봐달라고 왕이 대사헌을 은밀히 불러 당부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사헌은 “그렇게 하면 관원들이 소신을 탄핵할 것입니다”라며 거절한다.이런 서릿발 같은 기관이라, 사헌부 관리들의 몸가짐은 어느 관원보다 엄했다. 의관은 늘 추레하고, 얼굴은 영양실조로 파리했지만, 그 기상은 어느 누구보다 당당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사는 청요직(淸要職)이라 불렸고, 이런 기관에 등용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다. 그만큼 출세길도 빨랐으며, 정승 판서에 오르려면 적어도 청요직을 거치는 것이 `필수 엘리트 코스`였다.`성완종 리스트`가 정·관계의 핵폭탄이 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유병언의 돈 안 먹은 자 있냐”란 소리가 나오더니 올 4월에는 “성완종 돈 안 받은 자 있냐”란 말이 들린다. 힘깨나 쓰는 자 치고 그의 `밥` 안 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정경유착의 귀재`였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두번씩이나 특별사면을 받았으니, `로비 일기`가 썩은 곳을 다 들춰낼 것이다. 검찰이 이번에 `사헌부정신`을 제대로 발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1

지록위마(指鹿爲馬)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나라가 망조들기 시작했다. 황제가 객지에서 중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자, 국경을 지키는 장남 부소(扶蘇)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군권은 부장 몽념에게 맡기고 함양으로 돌아와 내 장례를 치르라”란 내용이었다. 상주(喪主)를 맡긴다는 것은 후계자란 뜻이다. 유언장을 쓴 후 시황제는 곧바로 숨을 거뒀다. 황제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환관 조고(趙高)와 왕자 호해(胡亥)와 승상 이사(李斯), 그리고 환관 두어 명 뿐이었다. 조고는 야심이 발동했다. 황제의 편지를 위조해서 “부소와 몽념은 자결하라”란 편지를 전방에 보냈다. 부소는 자결했으나, 몽념은 거부하다가 반역죄로 처형됐다. 조고는 호해를 후계자로 세웠는데, 그는 멍청한 허수아비였으니, 조고는 자신이 황제가 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가 걱정이었다. 어느날 조회때 그는 사슴을 몰고와서 “이 말을 폐하께 드리려 합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그건 말이 아니오”라고 하자, 조고는 신하들을 돌아보며 여부를 물었다. 조고의 말에 부화뇌동해서 “말입니다”라고 한 사람은 살려주고, 사슴이라고 바로 대답한 사람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 후 조고 자신도 황제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암살당했으며, 진나라도 전국에서 일어난 반란군에 의해 멸망했다. 그래서 `지록위마`란 말은 “거짓이 참을 압도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면 망한다”란 뜻으로 널리 인용된다.이완구 총리가 단단히 뿔났다. 일본이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땅”란 내용을 수록토록 하자, 총리는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하지 말라”일갈하더니 이틀 후에는 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두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했다.일본교과서에 “4~6세기 아마토정부는 가야에 관서를 두고 신라 백제 등을 지배했다”고 적힌 것을 총리가 통박한 것.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역사학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지방방송`인데, 버젓이 교과서에 실었다. 일본이 이렇게 `지록위마`하다가 나라 망치는 것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