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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4일 오전에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장병 7~8명이 통상적인 수색작전을 벌이던 중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다리에 파편이 박히거나 일부가 절단되었단다.바로 하루전인 3일에는 인천의 한 의무경찰이 훈련도중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3박4일간 진행되는 하계야영훈련 중이었는데, 훈련의 일환으로 축구 경기를 했단다. 그날 인천지방의 기온은 30.3℃였단다.이번에는 작전과 훈련 중에 사고가 터졌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군부대 내의 사고는 더 애잔하고 비통하다. 우리가 굳이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그렇다. 또 하나 그 비통함이 큰 이유는 국가와 민족 앞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다않고 수행하던 중이었다는 점이다.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요리조리 군복무를 기피한 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분명 애국자이다. 그러나 애국자라는 이름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병역 기피자들이 일간지에 잠시잠깐 오르내리고는 곧 사라져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 것에 비하면 이들의 희생은 `의무`라는 이름에 묻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이 또한 우리를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부분) 이 동시 한편이 단순히 반어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평화와 애국을 위한 인간의 행동이 반(反)자연적인 욕망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애족자 없이 꽃과 연인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지개인가./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8-06

우울한 계절 그리고 그 사람들

열대야 찜통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 폭염경보 속, 건설 현장과 논밭에서 열사병 사망자가 벌써 5명이나 발생했다. 와중에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나왔다. 중부권 등에서는 제법 많은 비가 쏟아졌으나 대구에는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장마가 끝났단 말인가. 푹푹 찌는 폭염의 낮과 밤이 더없이 우울해진다.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사 5명이 지난 2년여 동안, 여학생 20여 명에게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을 일삼다가 적발되었다. 교사들 중에는 `성고민 상담교사`는 물론 교장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교사도 피해 학생들 중에 끼어 있었다.서울 올림픽 때 이야기다. 탁구 결승전에서 우리 선수끼리 맞닥뜨렸다. 선배는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후배는 달랐다. 괴성을 질러대며 마치 외국 선수와 경기라도 하는 듯한 양태를 보였다. 결국 승리를 쟁취한 후배가 시뻘게진 얼굴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이 된 사람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의 대선 후보 경선에 불복하며 탈당을 했고 당적 변경만도 열세 차례나 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21C 대한민국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힘든 시절이다. 그럼에도 딴 나라 사람들처럼 행세하는 곳이 있다. 30개의 공기업들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그들은 작년 총부채가 430조원에 이르는데도 지난 3년간 연평균 직원은 1천400만원, 기관장은 8천500만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나눠가졌다고 한다.우르릉, 쾅쾅! 실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하늘이 검게 변하는가 했더니 금세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햇살 사이로 약해진 빗줄기는 땅바닥만 적시고 이내 사라졌다. 그래, 장맛비가 아니어도 좋다. 국회의원 숫자가 200명으로 대폭 줄었다는 희망 섞인 희소식처럼, 잠시라도 찜통더위를 거둬가고 말끔히 산하를 씻어 내는 거센 장대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간절해진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8-05

가로등 만들기

무척 무더운 날이다. 폭염경보, 폭염특보, 폭염주의보라는 문구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참 덥네`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경보, 주의보라는 말에 더 움추러드는 기분이다. 더위를 피한다고 몸부림치다가 아이들과 계곡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역시 더위는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미 계곡은 더위에 지친 많은 분들이 모여 계셨다. 부대끼다 보면 없던 일도 생기나보다. 폭염은 갈등과 충돌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윤리를 배우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혼자살 수 없는 동물이고 공동체는 이미 우리 인간 삶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말에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기에 윤리 또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왜 나만 배려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도 자주 외치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구에 쉽게 동의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윤리를 지키면 손해일 뿐이며, 최소한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나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가로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우리 집 골목이 어두워 가로등을 건설하고 싶다면 첫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내 이웃들이 돈을 내고 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돈을 내고 남들은 돈을 내지 않으며, 세 번째 방법은 내가 내지 않고 남들 모두가 돈을 내며, 네 번째는 나도 내지 않고 남들도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세 번째 방법을 가장 선호할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내지 않지만 가로등은 만들어지니 말이다. 이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같은 정도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남들도 모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네 번째 방법이 선택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첫째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고 함께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공동운명체인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8-04

무섬마을을 지나며

한 걸음 빨랐나 보다. 정선을 출발할 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빗속을 헤쳐 나와야 했다. 긴 터널을 지나자 길바닥이 보송하니 소나기구름이 미처 소백산 자락을 넘지 못하나 보다 짐작했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반쯤 건널 때 내달려온 굵은 빗줄기를 만났다. 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영주는 여러 번 다녀갔지만 무섬마을은 처음이다. 낙동강 지류가 산에 막혀 떠 있는 섬,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고택들의 오래된 지붕이 가지런한 마을, 외나무다리가 350년 시간을 간직한 채 휘돌아나가는 물 위에 떠있다.책보 메고 건너던 아이가 새신랑이 되어 장가를 가면서도, 세상 떠나는 날은 상여를 타고도 건넜다는 다리.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받쳐놓은 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쩌면 더 쉽게 사랑하게도 될 것 같다. 마주 오다 뒷걸음질 치는 아이를 가볍게 안으며 비켜 건넜다. 오늘 같은 날이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바닥으로 샌들 신은 발을 사뿐히 내려서서 비켜줄 수도 있겠다.점심은 미리 검색해둔 `무섬 골동반`을 먹었다. 향토음식 사업장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댓돌 아래 가지런히 정돈된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마치 장난감 같다. 멋 부리지 않은 툇마루가 소박하고 정갈하다. 그 위로 소나기에 젖은 발을 덥석 올리지 못하는 길손에게 잘 마른 수건을 내밀 때 벌써 음식 맛을 예상했던 것 같다. 다른 자리로 음식을 나르면서도, 먹고 있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높은 문지방을 넘어 마루를 돌아서 가는 배려가 느껴진다. 옆자리 손님이 먹고 간 자리도 소리하나 없이 어느새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비오는 마당을 잠시 내려다보았다.마을 어귀에 정자가 있다. 비를 긋는 것도 좋지만 몇 시간 째 혼자서 운전하는 동행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주었으면 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다. 외나무다리에서 노는 손자들을 기다리는 노부부가 쉬는 한편에서 오목을 두었다. 차창 가득 소나기에 후드득 떨어져 누운 회화나무 꽃잎을 쓸어내고 출발했다. 두고 온 마음 한 자락은, 십리를 돌아나가는 푸른 강물 위에서 반짝이며 흐를 것이다./윤은현(수필가)

2015-08-03

더불어 사는 삶

최근 한적한 한 시골 마을로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하였다. 건축 완공 후 인터넷 설치를 하였는데 설치비용문제로 어려운 일을 만나 설치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케이블 인터넷을 무사히 설치하였다. 이제 이곳 산촌 마을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망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현재 모든 영역에서 급속히 네트워킹 되어 가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개인의 탁월함이 사회생활의 성공 요소로 꼽혔지만 지금은 대인관계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5.5명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좁아진 것이다.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인간관계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별히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항상 우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네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하고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고 너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공동체가 함께 가기 위하여 또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권층이 그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에 가면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친 동문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 학교의 자랑이요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특권층은 많은 것을 누리기만 한 것 같으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먼저 달려가 목숨을 던져서 책임을 다하였다.최근 귀농 귀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들의 지원과 본인들의 노력도 중요하고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문화적인 차이와 그로 인한 삶의 불편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나는 타인과 사귐으로 존재할 뿐이다`는 실존주의 문구가 귀농 귀촌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빛나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곽규진(목사)

2015-07-31

집밥

마이카 시대가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 중반 무렵, 여성운전자들도 늘어났다. 이때 여성운전자들의 서툰 운전을 “집에서 밥이나 하지, 여자가 운전은 무슨~”이라며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이 말에는 밥은 여자가 한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밥은 집에서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 여자만 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점심으로, 저녁은 `편의점식`김밥으로 때운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또 동네 골목까지 파고든 식당은 외식을 일상식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외식의 번창이 `집밥`을 불러냈다. 새로운 어휘가 생기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새 물질이 생겼거나, 아니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후이다. `집밥의 결핍`으로 `집밥`이 대세다. 텔레비전에서는 요리 레시피가 스토리텔링화 과정을 거쳐 버라이어티 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먹방`과 `cook방`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결핍 이외에 또 다른 것들이 덧붙어 방송을 흥행시키고 있다. 즉 재미와 가벼움, 그리고 찰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요즘 `먹방 cook방`은 가벼운 우리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선된 재료의 소개와 조리방법을 순서대로 친절하게 설명하던 옛날 그 요리프로그램은 너무나 진지하다.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은 외면한다. 어떤 설명도 이제는 재미와 이야기거리를 가미해야 듣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이처럼 재미를 찾고 한편으로는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 가벼움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진득한 그 무엇보다는 순간적인 반짝임을 찾고 있다. 요즘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순간적으로 캡처(cap ture)한다. 그리고 잠시뒤 곧바로 삭제한다. 순발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여기에 창의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대박이다.`집밥` 프로그램은 진지함을 싫어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와 재미있게 일을 처리하는 새로운 문화를 반영한다. 그 존재의 가벼움은 스마트시대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고민하는 이성보다는 즐기는 감성, 진득함보다는 빠름의 생활 태도가 그것이다. 이제 이 스마트한 삶에 예리함을 추가할 때이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30

네 개의 기둥, 삶을 관류하다

칠월이 가고 있다. 을미(乙未) 새해의 시작이 바로 어제 같은데 진즉에 반환점을 돌아서더니 바로 코앞이 팔월이다. 숨 가쁘다. 삶의 속도는 진정 나이에 비례하는가.“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프랑스 시인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라는 시를 웅얼거리며 나를 돌아본다.해마다 연말이면 각 기관 또는 단체마다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데 초점을 두기도 하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염원을 담기도 한다. 나도 2008년부터 나름대로 혼자만의 사자성어를 정하여 실천해 오고 있는 중이다.2008년은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정했다. 그럴듯한 문학상이라도 한번 타 보자는 의도에서였다. 2009년도에는 다시 도전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로, 2010년도에는 초연함을 의미하는 목계양도(木鷄養到)로, 2011년도에는 술 마시는 양을 알맞게 줄이고 늘 떳떳한 마음을 지닌다는 절음(節飮)과 항심(恒心)으로 이어졌다.2012년도의 화두는 `二十年, 그 새로운 始原`이다. 정년을 마무리하고 줄잡아 20년쯤을 제2의 인생으로 보고 그 기틀을 닦는 해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도에는 `하나를 덜어내고 다시 하나를 채워 넣는다`로, 2014년도에는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로, 2015년도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불진에로 정했다.극히 간략했지만 더없이 강렬했던 세기의 연설을 떠올려 본다. 2차 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의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다. 그는 중간중간 특유의 침묵을 베이스 삼아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라는 세 문장으로 연설을 마쳤다.다시 오스탕스 블루의 `사막`이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비워 내고 무엇을 채워 넣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에게 언성 높이지 않기도, 불진에도 아직은 꿈결처럼 아득하고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떤가. 의도만은 순수하고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9

불쾌지수

오늘도 불쾌지수가 80이 넘는다고 한다. 이번 주 며칠 동안 계속 일기예보에서 불쾌지수가 나오고 있다. 80이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불쾌지수는 기상청에서 매년 6~9월 일 8회 생산하여 제공되는데 날씨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조합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덥고 습한 날이 많은 요즘 어쩌면 짜증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특히 대구에 사는 사람으로 더위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자주 부대끼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나의 감정을 폭발해 나의 기분을 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이렇게 한 뒤에 생각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이다.짜증내는 그 순간 내 감정은 풀릴 수 있겠지만 그 짜증을 묵묵히 받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 후회가 바로 든다. 특히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내 맘대로 짜증을 낼 때도 그렇다. 비록 내 잘못이 아니라도 그 짜증을 받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은 어떨까?그럼에도 참 쉽지 않은 것은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방 기분을 해칠 것을 알지만 자신의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좀더 쉽게 나의 감정을 풀려고 할 수 있다.그 사람의 역사와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빠, 엄마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란 것을.어느 곳에서는 불쾌지수가 80 이상일 경우에는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단다. 요즘은 효율성의 잣대를 아무데나 갖다 대지만 일의 능률을 위해 불쾌지수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우리네 많은 곳에서는 이런 호강도 누리기 쉽지 않다.그렇다면 내 맘을 고쳐먹는 수밖에.불쾌지수는 모를 때보다 알 때 사람들은 더 짜증을 낸다고 한다. 땀 흘리는 것도 모르는 정도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때 열심히 하고 잠시의 휴식을 누리는 수밖에.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며 서 있는 큰 나무를 보며 부끄러워진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28

S씨의 여름 저녁

정신보건센터의 S씨는 모처럼 안정된 표정을 보였다. 작년 가을부터 한참씩 안 보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있었노라 했다. 얼굴이 부어있거나 체중이 갑자기 늘기도 하고, 대답도 잘 하지 않아 대화가 힘들었다. 우울증으로 정신보건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다. 립스틱 색깔이 짙은 50대 중반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이다. 식당에서 며칠 일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조증이 염려되긴 했지만, 즐겁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것은 다행이었다. 우울한 기간이 길어지고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일 년여 사이 눈에 띄게 쇠락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랬던 그가 오늘은 단정한 매무새에 모처럼 화장도 한 얼굴이다. 먼저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대답을 해주는 것이 참 고마울 정도다. 여름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멍석 깔고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었어요. 큰 오빠가 녹음기 갖다 놓고 아버지부터 쭈욱 차례대로 노래 부르게 해서 녹음하고 다시 들었어요.”특별히 우울했던 운동회 날의 기억도 꺼낸다. 모두들 맛있는 도시락을 펴놓고 가족들과 함께 먹는데, 한 가지 반찬뿐인 시커먼 도시락을 혼자 먹는 일이 창피해서 울었다고. 늦게 들어온 엄마는 운동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셨다고.현재까지 연구된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원인의 세 가지가 있다. 스트레스만으로 주요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었던 기억을 오래 가지고 있거나, 우울한 기분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덮는 것은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쓸쓸했던 운동회 날의 어린 S씨를 충분히 이해하고 토닥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혹은 수많은 그런 날의 기분을 혼자서 억누르지 않고 표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오래전 여름 저녁, 식구들이 녹음기 앞에서 불렀던 노래 제목까지 이야기하는 S씨는 오늘 참 편안한 얼굴이었다./윤은현(수필가)

2015-07-27

초점

사진을 찍다보면 흐릿하게 나올 때가 있다. 초점이 안 맞아서 생긴 경우다. 초점을 맞추기는 좋은 사진을 얻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초점을 맞추는 일은 삶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한 생애에는 두가지 위대한 날이 있다. 태어날 날과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는 날이다. 삶의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초점 맞추기이다. 인생에서 초점은 사명감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또 다른 나`이고 행복의 근원이다.최근 갤럽은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행복한 나라`순위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118위인 하위권에 머물렀다.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계층에서 과거보다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전체가 총체적인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졌는가? 많은 사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이 세대에 대표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불확실성의 증가로 꼽고 있다. 자신들의 삶과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보니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우리 사회에 깊은 불행감을 심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엄청난 사건들을 경험했다.매번 `기상관측 이후 최대`라는 수식어를 갈아치우는 이상 기후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집단적 충격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건, 최근에 메르스 사건 등 갖가지 위기의 연속이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설파했던 `위험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현대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든든한 안전장치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일생을 몰두할 수 있는 사명감을 찾는 일,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근원적 비결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행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삶의 초점 맞추기로 사명감과 행복의 선순환의 구조로 살기를 희망한다./곽규진(목사)

2015-07-24

옥고를 기다리며

어쩌다보니 몇 해 전부터 아동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래서 기고 혹은 투고된 원고교정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많은 오탈자가 있는 원고를 읽으면 그 작가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한다. `뭔 글을 이렇게 써서 보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전화라도 한 번 걸어볼까`하는 마음을 먹는다. 혹시 첨부 파일을 잘못 보낸 건 아닌지 싶어서. 대개의 경우 초고 파일과 최종본 파일을 잘 관리하지만, 몇 번 수정과정을 거치다보면 이 파일이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잘못이긴 하지만. 학위를 금방 받았을 때 모 대학교에 근무하던 선배가 `00논총`에 글을 하나 실어주겠다면서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기쁜 마음에 앞뒤가릴 것 없이 급하게 메일로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한 참 뒤에 그 선배가 내게 원고 출력본을 내밀며 “김 선생 원고는 이번에 뺐는데….”라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면서 다시 이어가는 선배의 말은 “교정을 좀 보지 그랬어.”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면서 선배가 내미는 출력본 원고를 받았다. 아뿔싸, 파일을 잘못 보냈음을 그제사 알았다. 초고파일이었다. 학위를 받은 직후 비록 유명학술지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나오는 논총에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글이 실린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모양이다.순간 내 불찰을 탓하기 보다는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뺄 것이 아니라 전화라도 한 번 하시지.` 문제는 이후이다. 당시 그 논총을 책임지고 편집했던 선배의 동료 교수는 내가 글을 지독히도 못 쓰는 인물로 낙인찍지나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지금도.가끔 선배와 함께 그 교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는 사이지만, 여태 나는 내 실수를 변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데 굳이 내가 그때 그 원고는 초고라서 교정이 안된 상태로 보낸 것이라며 변명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차후 내가 쓴 몇 편의 논문을 그 교수에게 전해주었지만, 처음 각인된 나의 글쓰기 능력은 `개판`이라는 생각을 가질게 뻔하다는 생각에 아직도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든다.오늘, 가을호 원고청탁을 마쳤다. 작가들의 잘 교정된 옥고를 기다린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23

미안하고 감사한 이유

몇 년 전 내가 다녀온 북경은 소위 `럭셔리`한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소매치기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특히 대한민국 여권이 거금으로 거래되니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잡상인을 볼 수 있었고, 구걸을 거절당한 여인은 아이를 들이밀어 매달리게 했다. 윗옷을 훌렁훌렁 벗은 남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데 그야말로 천연 가죽점퍼라 할 만 했다. 어른들은 낡은 점퍼, 아이들은 새 점퍼.왕후징 거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꼬지냄새가 심했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것들을 찾아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그 날이 중국 여행의 첫날 저녁이었는데 중국에서의 대부분 식사시간마다 그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미국계 대형마트만 가도 지름이 7~80센티는 될 것 같은 피자가 흔하다. 수도처럼 생긴 꼭지를 돌리면 무진장 제공되는 양파며 피클, 무한정 리필 되는 콜라에 공중 화장실마다 손 닦는 종이 타월까지 넘쳐난다. 이렇게 함부로 사용하고 막 버리는 것은, 굶고 있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도 환경을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중국만 보아도 너무한 일이었다.한국식 노래방, 한국식 다방 커피 등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하는 백두산 아래 숙소 상황도 불편했다. TV에서는 우리나라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왜 그리 먼 곳의 이야기로 들리던지. 음식도 여전했다. 웬만하면 잘 먹는 작은 아이도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식당 바로 앞 복도에서는 한국산 노란색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아 한 잔에 우리 돈 천 원에 팔고 있었다.어젯밤 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중국 과일을, 커피 값으로 지불되었을 천 원과 함께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나왔다. 내가 가방 챙기는 동안 객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팔다리가 가느다란 호텔 종업원과는 우리말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먹는 아침,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려 했지만 나는 당당히 말했다.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먹어!” 그 생각을 하면 오래오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다./윤은현(수필가)

2015-07-22

극기(克己)가 평천하(平天下)다

대연(大衍)학당에서 주역(周易) 강의를 듣는 중이다.“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인 지금 인성 또한 거칠고 모질어졌습니다.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으로 바뀌는 21C의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녕 극기(克己)입니다.” 강사의 말이 석화(石火)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두려움마저 일어난다. 요즘 도로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끼어들기 보복 운전을 보며 솟구치는 감정이다. 고속도로에서 급정거로 추돌 사고를 유발하여 사상자를 내는가 하면, 17톤 대형 트럭으로 승용차를 가로막아 작정하고 사망 사고를 촉발하더니, 급기야 사람을 보닛에 매단 채 질주하는 운전자까지 나타났다.최소한의 도리와 상식마저 내팽개쳤다. 지난해 서울에서 담배를 피우는 10대 학생들에게 충고하다가 50대 가장이 맞아 죽은데 이어, 얼마 전에는 전주에서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60대 후반 노인을 마치 축구공처럼 두들겨 팬 10대 청소년이 등장했다.막말의 진화는 촌철살인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을 향한, 특히 국가 원수를 겨냥한 상말이 가히 점입가경의 수준이다. 지난 대선 때 여성 후보에게 “그년”을 “그녀는”의 줄임말이라며 어느 국회의원이 국어 실력을 뽐내더니, 지난달에는 어느 단체의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마약을 했는지, 보톡스를 했는지”청와대를 뒤져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말을 했다.말세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세는 불교의 삼시(三時)와 기독교의 재림에서 나온 말로 ― 공자와 도척이 살던 이천오백여 년 전에도 말세라는 말을 했다는데 ― 수치(羞恥)와 절제를 상실한 현세가 진정 말세라는 암울한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극기복례(克己禮)라는 말이 나온다.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을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한 방울의 물로 사막을 모두 적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물이 없으면 사막을 다 적실 수 없다. 이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극기를 다하여 평천하(平天下)를 만들어 가야할 때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20

신념교육

영국의 런던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가르쳤고, 학술원 회장을 지냈던 찰스 핸디는 그의 책 `헝그리 정신(The hungry sprit)`에서 “오늘날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정부가 아니라 믿음이다”라고 했다. 곧 믿음 있는 사람이 앞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갖는 것이야 말로 그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덕목이 있다. 먼저 결단력이다. 또 자기 일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하는 모습도 있다. 또 믿음을 가진 사람은 추진력이 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꿈과 비전이 있다. 결단력이나 헌신, 인내, 추진력, 꿈, 사실 이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오늘날 교육의 과제가 있다면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 좋은 일에 헌신하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치교육과 신념교육을 힘써야 한다. 지식위주의 교육은 원래의 교육 목표에서 우선 순위가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덕·체 교육은 원래 존 로크에게서는 체·덕·지 순서였다.존 로크는 건강 교육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위기 상황 대처능력을 키우고 창의성 교육,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 교육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지식교육을 해야한다고 했다. 오늘날 지식주입교육은 청소년들을 허약하게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학과 점수로 비교되기 때문에 모두가 불행하다.최근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에 대한 과외가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성도 또 다른 교과목이 되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인성교육도 학원에서 과외 받아야 할 또 하나의 교과목이 되는 것이다. 정보를 많이 축적하거나 기술을 가지는 것 만을 목표로 해서는 실현 할 수 없다.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태도를 갖게 하는 교육이다. 바른 신념을 가진 믿음직한 사람들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7

도찐개찐

한 중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앞머리를 빗어 내리는 아이, 교복 치마를 당겨 올리는 아이, 저마다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하교하는 여학생들의 입술에는 진홍빛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무릎 위로 쑥 올라간 치마는 허벅지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상의는 팔도 제대로 못 흔들 정도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기말고사가 끝난 교문 앞 풍경이다.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복학했던 90년대 초, 나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렌지족`은 1990년대 초 부자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생활을 누린 20대 청년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해외 명품을 소비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유흥을 즐겼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당시 막 수입되기 시작한 과일 오렌지에 빗대어 그들의 과소비행태를 비꼰 것이다. 그들의 소비를 따라가지는 못하면서 흉내를 낸 젊은이들은 따로 `낑깡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90년대 초반 우리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은어였다.그 무렵 마광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자유문학사), 에세이집`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자유문학사)에 이어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서울문화사)를 출간하여 급기야 예술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법적 판단은 그를 구속시키고, 소설은 금서로 지정됐다. 아마 `이념의 시대`에서 `향유의 시대`로 가는 진통이었나 보다.수많은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을 한 몸에 받던 `야타족`들의 젊음의 행렬은 오늘날`홍대입구`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오렌지족`세대가 벌써 마흔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 교문앞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학생들은 이들의 자녀 벌 되는 아이들이다. 딸아이의 치마 길이를 걱정하는 중년의 어머니들, 그들 역시 젊은 한 때는 치마길이를 짧게 걷어 올리는 반란을 일으켰던 장본인들이었다. 도찐개찐이다. 아이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탓할 이유도 없다. 세월 따라서 생산양식이 변하고,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고, 생각도 달라졌다. 변화와 보수는 이렇게 꼬리를 물고 변증법적 지양을 거듭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16

나르키소스의 오만

누구의 승리였을까.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앙다문 원내대표의 입술은 비장미가 넘쳤고,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결의에 찬 대목에서는 장엄미마저 비쳤다. 그래서였을까. 여론 조사에 의하면 그는 단숨에 차기 여권 대선 주자 1위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의 동구, 그의 지역구에서 그에 대한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다.언론 등의 추세를 미루어 보면 짐작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대다수 신문 사설이나 칼럼 따위에 그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글들이 줄곧 다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흐름이 그를 13일 동안 꿋꿋하고 의연하게 지켜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서너 해 전 일이다. 남양주소방서에서 녹화된 경기도지사와 근무자의 음성이 전파를 탔다. 도지사는 아홉 차례 신분을 밝혔으나 근무자는 시종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통화는 이어지지 못했고 경기도소방본부에서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는 근무자의 전화 응대를 문제 삼아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도지사의 권위 의식을 욕하는 글이 도배를 하고 도청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 급기야 도지사는 인사 조치를 취소시키고 남양주소방서를 방문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데 있었다. 도지사가 신분을 밝혔으면 그 소방관도 당연히 신분을 밝혀야 했다. 그게 의무다. 당시 나는 현직 소방관이었다.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이다. 그는 동성과 이성은 물론 님프들에게 구애를 받았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 목이 말라 샘을 찾아간 나르키소스는 물속만 들여다보다가 탈진하여 죽었다. 실연의 고통으로 메아리만 남게 된 에코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빌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만든 결과였다.통치와 정치가 같을 수 없다. 그는 헌법 운운하기 이전에 국정의 파트너로서, 대통령에 대한 예도(禮度)로서 본분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는 논어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더 새겨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眞易 전병덕(수필가)

2015-07-15

진선미

며칠 전 미스코리아 선발이 있었다. 예전에는 TV 공중파에 중계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지만 오늘날엔 그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이제 한국의 미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져서 일까? 아니면 이제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일까? 어쩌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거세져서 일지도 모른다.이런 많은 논란에도 미스코리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왜 미스코리아를 진선미로 나누어 뽑을까? 사람들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데 왜 1, 2, 3등을 진선미로 뽑을까? 미스코리아라면 당연히 `미`가 1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선미에 위계가 있고 이를 미스코리아에 적용한 것일까?철학에서 뭘 배우는지 종종 사람들이 묻고 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미스코리아에서 무엇을 뽑는지 물어본다. 진선미라고 대답하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아주 예전엔 진선미는 하나였다. 즉 참된 것이 좋은 것(선)이며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말하듯 서양 합리주의가 발전하면서 진선미는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합리화과정을 그는 인지적, 미학적, 도덕적 영역들을 서로 분리시키는 전문가 문화가 유럽에서 출현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 구성요소들은 각기 진리문제, 취향문제, 선의 문제로 전문화된다. 그래서 우리가 전문가에게 많은 권위를 주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이 세분화된 영역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점점 세분화되고 깊어짐으로써 그들의 전문적 영역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말로 되어 갔다. 서양에서는 이런 과정을 합리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한 분야에서만 깊이 아는 전문가는 외눈박이일 수밖에 없다. 옛날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을 보고 헛똑똑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철학이 철학자만의 어려운 이야기가 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요즘 학문에서는 융합과 통섭이 화두이다. 통섭은 여러 사물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어쩌면 학문뿐만 아니라 사람도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적 인격이 더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이상형(철학박사)

2015-07-14

아, 대한민국!

그랜드캐니언은 대단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주가 만들어낸 작품을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보았다. 콜로라도 강줄기를 마치 미니어처 속의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만든 미국인의 노력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 잇츠 그랜드! 너무나 대단해서 부르던 그대로가 지명이 되어버렸다는데 가히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게는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이 있었다. 경비행기에서 헤드폰을 쓰면 나오는 5개 국어 안내 방송에 한국어가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상혼이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기까지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받아들이니 로키산맥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만으로 흐른다는 콜로라도 강의 길이와 후버댐에 관한 설명도 느긋하게 들렸다. 그뿐 아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콩나물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해발 4천미터가 넘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를 갈아타면서 올랐다. 스위스 농가에서 방목하는 소들이 우리나라 워낭의 열 배는 돼 보이게 큰 목걸이를 걸고는, 마치 바위덩이처럼 앉아서 자고 있었다.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그들이 뒤척일 때마다 떨거덩거리는 워낭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것 같다. 한여름의 복장으로 출발해서는 만년설 속에 내려야 했으니,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어도 콧물이 흐를 듯 추웠다. 그곳에서도 매력적인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매운 냄새만으로도 코가 뻥 뚫리는 한국산 빨간 컵라면이 꽤 비싼 가격의 유로로 팔리고 있었다. 내려와서는 석회가 많이 섞여, 만년설 녹은 뿌연 물빛보다 더 짙은 곰탕과 김치며 고추장 비빔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며칠 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모처럼 두부까지 반듯반듯 정성들여 썰어 넣었다. “먹어봐, 그립지 않았어? 엄마표 된장찌개!” 아이는 말했다. “웃기지 마세요, 아침마다 `장모님 해장국` 먹었거든요”.오, 필승 코리아! 우리의 힘, 세계가 좁을 지경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는 착취당한 우리 조상들의 피와 한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윤은현(수필가)

2015-07-13

미니수박

충북농업기술원이 소비자 기호에 맞는 2kg 이하 미니수박의 재배를 시험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애플수박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문경, 음성, 논산 등 일부지역 농가에서 도입하여 재배하고 있으나 마땅한 지침서가 없어 일반수박을 기준으로 재배하면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어왔기 때문. 미니수박은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앙증맞을 뿐 아니라 쓰레기 발생량이 적어 대다수의 소비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트에서 종종 속이 훤히 보이는 수박 반 통을 본 적 있지만, 미니수박을 이제 마트에서 구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출아하면 1~2인 가족에게는 기존의 대형수박에 비해 수요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큰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두고 대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한 조각씩 나누어 먹던 풍경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점점 사라질 것이다.미니수박의 등장은 과학기술이 만든 농업분야의 발전이지만 사회상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마트에는 오래전부터 개인이 가볍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등장하였고 미니수박도 그와 유사하게 한 두사람이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소포장 제품인 셈이다.원래 가족이라 하면 부모와 형제들이 최소한 5인은 기본수였는데, 최근에는 3인 가족, 2인 가족, 심지어 혼자 사는 가정도 많다. 그래서 자녀가 셋인 5인 가정은 다복가정이라 하여 복지 혜택도 주고 있다. 농업인구도 점점 줄어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로 핵가족시대를 지나 국가의 장래가 인구감소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에 처한 농업과 현재의 가정형태가 미니수박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영어의 가족이라는 단어 `family`는 그 첫 스펠을 따라 아버지(father), 그리고(and) 어머니(mother) 나(I) 이 세 사람이 사랑하는(love you) 형태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너무 인위적인 해석일 수 있으나 서구의 개인주의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우리의 옛말 `식구(食口)`라는 말은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인 가족형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미니수박을 사 먹는 시대, 대가족이 큰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던 시절이 그립다./곽규진(목사)

2015-07-10

한국식 이력(履歷)

영화 `부러진 화살`이 연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밤 9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 앞에서 한 남성이 퇴근 중이던 박영수 변호사(63)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러 목 부위에 12㎝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했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났다고 보고 이른바 보복의 흉기를 휘둘렀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은 하나같이 `변호사`인 박영수 피해자를 `전 고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변호사`보다 `고검장`이 더 나은 모양이다. 김승희의 시 `한국식 죽음`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김금동 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 씨(오성물산 상무 이사) 빙부상 - 김금연 씨(세화 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 씨(삼성 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 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 `한국식 죽음`전문시의 형식이 낯설지만 어렵지 않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속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부고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명복이나 상주에 대한 위로는 없다. 오직 상주의 사회적 레테르가 중요할 뿐이다.공교롭게도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영수`이다. 시적 상황은 박영수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의 처가는 시쳇말로 빵빵하다. 처남들이 검사장, 병원장, 신문사 차장 등이다. 동서들도 잘 나가는 자리에 있다. 대학교수, 사업가 등이다. 그의 부인 김금연씨도 가정과 교수이다. 그런데 처제들은 별 볼일 없는 모양이다. 이름 석 자 없는 것을 보니.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는 부고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 오직 중요한 것은 상주든 망자든 사회적 영향력이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런 세상을 살았다.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는 이유를 알겠느냐?/김종헌(아동문학가)

201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