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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라금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금관이 발견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 9월의 일이다. 경주 노서리에 있던 어느 주막집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분에서 금관 등이 쏟아졌다. 구슬 종류만 3만 개가 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관뿐 아니라 금제 장식구 등도 무더기로 발굴됐다. 이름도 없이 내던져진 이 고분은 이후 금관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당시 이 고분은 훼손도 많았다. 전문가에 의한 발굴이 아니라 고분의 구조나 유물의 출토상황 등도 정밀하게 진단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분에서 금관이 나오면서 금관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신라시대 고분 발굴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신라시대 고분에서 공식적으로 발굴된 금관은 모두 5개다. 국가가 압수한 도굴된 금관 1점을 포함하면 우리나라는 모두 6점의 금관을 보유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고대금관 13개의 절반 가량이 신라금관이다. 신라금관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경주 고분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금관은 1천500년의 긴 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금빛 찬란함을 뽐내고 있다. 뛰어난 세공기술과 화려한 장식으로 외국인까지도 그 수려함에 감탄한다.그렇지만 신라금관에 얽힌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아직도 많이 풀리지 않고 있다. 금관을 실제로 사용했는지 혹은 장례 의식용으로 만들었는지조차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 금관 형태가 뜻하는 상징성도 학설이 구구하다. 금관의 기원을 두고 북방설과 고유설이 맞서고 있다. 5∼6세기에 만들어졌던 금관이 어느 시점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경주 대릉원 금령총이 94년만에 재발굴에 들어간다고 한다. 금령총은 금관총보다 늦은 1924년에 발굴을 했으나 역시 일제 강점기 때여서 종합적이면서 정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발굴된 금관은 금제방울이 달려있다 하여 금령총 금관이라 한다. 다른 금관에 비해 크기가 가장 작아 왕자의 무덤일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 사업으로 이곳 유적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 파악이 있을 것이라 했다. 신비에 싸인 신라의 비밀이 얼마나 더 풀릴까 궁금하다./우정구 (객원논설위원)

2018-09-10

사회복지의 날

세계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천 달러로 31위를 유지했다. 한 나라의 경제활동 능력을 가리키는 GDP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상위권 경제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GDP가 한 국가의 경제활동을 살펴보는 지표로는 유익한 자료이나 GDP만으로 그 국가 국민이 행복하다고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는 나라별 GDP와 사회지수, 기대수명, 부패지수, 자유 등 각 항목을 종합해 평가한 수치다. 2018년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한국은 57위를 마크했다.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으며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등이 그 뒤를 이었다.행복에 대한 가치 개념은 천차만별이다. 한때 아시아 국가 중 부탄이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으나 유엔 자료에 의한 평가에선 97위로 나타났다. 부탄 자국민에게 적용되는 기준만으로 상대국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자국민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는데 굳이 다른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이유도 없다.사람이 느끼는 삶의 질을 포괄적 상황을 고려해 측정한 행복지수는 국가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개인별 편차도 크다. 경제적 만족도와 미래에 대한 희망, 직업유무, 자부심, 희망, 사랑 등 개인감정에 따라 행복의 무게도 제각각이다. 행복을 객관적으로 계량화한다는 것은 이만큼 어렵다.그러나 유엔 발표에 따르면 복지 선진국이 대체로 행복지수도 높다. 국가의 복지정책 수준이 국민의 행복지수에 비례한다는 해석이다. 우리나라도 복지 분야 예산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우리사회의 어둡고 힘든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에겐 희망으로 다가가는 정책이다.7일은 제19회 사회복지의 날이다. 국민의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복지사업 종사자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선 우리에게 사회복지에 대한 참 의미를 새겨보는 날이기도 하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07

생활 SOC

사회간접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은 항만·도로·철도·전기·가스, 공중보건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 등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데 직접 사용되지는 않지만 생산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기반시설을 말한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규모가 크고, 투입된 자본의 회수에 오랜 기일이 소요되며, 그 효과가 사회 전반에 미친다. 따라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개인이나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다.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때 루즈벨트 대통령이 제창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후버 댐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해 실업자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 최초의 국가주도 SOC투자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경부고속도로를 시발로 항만과 공항 건설 등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왔다.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4대강사업과 같은 대규모 SOC 투자는 않겠다며 SOC 예산을 줄여왔다. 그러나 최근 고용지표 악화와 함께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있다는 통계까지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서울의 한 도서관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생활형 SOC’를 강조했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기반 시설을 과거 대규모 토목 SOC와 차별화하여‘생활 SOC’라 부르기로 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었다.과거에는 주로 도로와 철도, 공항, 항만에 투자해 이를 기반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발전시켰으나 상대적으로 우리 일상에 필요한 생활 기반 시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경로당이나 어린이집, 보건소, 도서관, 체육관 등의 시설을‘생활 SOC’란 이름으로 크게 확충하겠다는 얘기다.문 대통령은 이날 160개의 주민 체육센터의 설치와 모든 시군구에 도서관 설치를 언급했다. 이로 인해 전국에 243개의 작은 도서관이 생기고 50여개의 도서관은 리모델링이 추진된다. 어린이 돌봄센터 역시 200곳 추가 설치되고, 지역 공공의료기관 41곳은 그 기능이 보강된다.보수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나온 현 정부의 생활SOC 사업이 찌들어가는 우리 경제에 마중물이 돼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9-06

나잇값

키덜트(Ki-Dult)라는 이색 용어가 있다. 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adult가 합쳐진 합성어다.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한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다. 20, 30대 성인 계층이 유년시절 즐겨 놀았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등에 향수를 느껴 그런 것들을 다시 찾아 즐기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키덜트 문화라는 이름으로 시장도 엄청 커졌다고 한다.자칫하면 정신적 퇴행으로 비칠 행동이 지금은 당당한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문명 뿐아니라 생각과 인식의 개념도 급변하는 세상이다. 옛 어른이 보았으면 “나잇값 못 한다”고 혀를 끌끌 찰 일이다.나잇값이란 나이에 걸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나잇값을 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어른이 향수를 쫓아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에 흠뻑 빠져 놀아도 나잇값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돼 버린 세상이다.공자는 15살에 학문에 뜻을 세워 70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40살(不惑)이 돼서야 세상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었고, 50살(知天命)에 가서는 분수를 알겠더라 했다. 60살(耳順)에는 관용이 생기고 70살에는 종심(從心)을 한 것이라 했다.공자의 가르침대로 모두가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수록 세상의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집안 대소사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하는 지혜를 보였다. 나이가 들어도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것이 바로 나잇값이다.어른이 돼도 나잇값을 못하면 철없다는 소리만 듣는다.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힘이 부족한 어른이라는 뜻이다. 국회가 3일부터 100일간의 정기국회 일정에 들어갔다. 여야 대치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곳곳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민생문제를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번 회기만큼은 나잇값 제대로 하는 국회였으면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05

‘오락가락’ 임대주택정책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 ‘임대등록 활성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취득세·재산세 감면 △임대소득 과세 완화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등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대신, 등록 임대주택은 임대료 인상률이 연 5% 이내로 제한되고, 최대 8년간 의무임대가 적용돼 세입자를 함부로 내쫓을 수 없게 했다.그랬던 장관이 8개월만에 정책을 180도 바꾼 것이다. 정부가 현재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으로 꼽는 종부세 합산배제·양도세 중과 배제 혜택은 서울·수도권 기준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에만 제공된다. 서울 강남권의 경우 상당수 공시가격이 6억원을 초과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요지의 고가 아파트에서 임대사업 등록이 늘고 있는 것은 전용 85㎡ 이하 주택이라면 공시가격이 6억원을 넘어도 양도소득세는 절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신규 등록된 임대주택 사업자는 총 8만539명으로, 이미 작년 한 해 신규 등록한 임대사업자 수(5만7천993명)를 넘어섰다. 과거에도 세제혜택이 있었는데도 임대등록이 저조하다가 올해 들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전산망 통합 등으로 정부 감시를 피해 임대소득을 얻기 어려워진 다주택자들이 절세를 위해 임대등록이라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어쨌든 임대시장을 준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임대 주거권을 강화하자던 장관이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정부의 신뢰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짓이다. 임대사업자는 전월세 공급을 확대해 임대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순기능이 있는데, 세제혜택을 과도하게 축소할 경우 전월세 물량 감소로 임대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임대사업자 대출을 최대한 축소하고, 6억원 초과 임대등록자에게 부여하는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점진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9-04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이상형 사회복지를 말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을 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내세운 사회복지 정책의 슬로건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준다는 뜻이다. 영국의 학자 베버리지가 주창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나오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혼란했던 사회를 다시 재건하는데 적합한 이론으로 당시 영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베버리지 보고서에는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은 정액 보험료를 부담한다”와 “재정은 피보험자와 고용주, 국가 3자가 공동 부담한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민연금제와 비슷한 취지의 정책 내용을 담았다. 유럽 국가들이 일찍 국민연금제 등이 발달하고 복지 선진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를 본 따 ‘태내에서 천국까지’라는 말로 국민 복지를 찬양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나라를 복지 국가라 부른다. 국민의 생활을 얼마나 높게 또는 질 좋은 보장을 해주느냐에 따라 복지 선진국 여부를 따진다.유럽의 핀란드는 복지 선진국이다. 국민이 어떤 병으로 아프더라도 의료비 걱정이 별로 없는 나라다. 학비도 자신이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원까지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한다. 반면에 국민은 다른 나라보다 많은 세금을 낸다. 공동분담에 의한 사회복지 실현이라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다.우리나라도 내년도 예산을 사상 최대치인 470조5천억원 규모로 편성하면서 복지 비중을 35%로 잡았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국민 삶의 질 개선 등에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많은 복지예산 투입에도 국민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행복지수는 그렇지 못한 것같다. 특히 최근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이 떨어지고 연금료 인상 불가피성 등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많다. 1988년 첫 시행 후 전 국민연금시대를 열었으나 노후의 안정을 담보할 국민연금 자금 운용에 대한 확실한 좌표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민연금 운용 방식에서부터 국민의 신뢰를 찾는 것이 급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9-03

산아제한의 추억

인위적으로 출산을 억제하는 산아제한(産兒制限)의 출발점은 영국의 인구학자 멜더스의 ‘인구론’이 이론적 배경이다. 멜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필연적으로 기근과 빈곤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세계는 과잉인구에 대한 대책으로 산아제한이라는 인위적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우리나라도 1960년대 이후 한동안 정부차원에서 산아제한 운동을 벌였다.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홍보 포스터가 전국 곳곳에 붙었던 시절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정관수술 받고 훈련을 면제받았던 코미디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지금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한 여자가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작년 기준 1.05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국으로 손꼽힌다. 2001년 이후 줄곧 초저출산국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로 인한 사회문제도 도처에서 발생한다. 급속한 고령사회 진입으로 일할 사람보다 부양해야 할 사람이 많아지는 등 국가의 생산동력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방의 소도시들이 소멸위기에 처하고, 대학들은 정원을 못 채워 폐쇄 위기에 몰리고 있다.지금 전 세계는 인구감소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선진국일수록 더 심각하다. 전 세계 국가의 절반이 현재의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임여성의 출산율이 2명 이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산아제한은 인구증가 억제책에서 비롯됐으나 지금은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권익향상 운동 차원으로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이름도 산아제한보다 가족계획으로 불리고 있다.세계 최다의 인구 보유국인 중국이 산아제한 정책을 철폐한다는 소식이다. 중국정부는 인구 억제를 위해 1979년 ‘한 자녀 정책’을 시행했으나 고령화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경제둔화가 우려되자 2016년부터는 ‘두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다. 유엔은 중국이 7년 내 인구 1위 자리를 인도에 내줄 것이라 예측했다. 중국이 저출산 문제로 고민할 지 그 누가 짐작했을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31

슈퍼예산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대폭 확대해 470조5천억원의 초(超)슈퍼예산을 편성했다. 일자리 예산을 올해보다 22% 늘려 23조5천억원을 투입한다. 복지·보건·노동 예산과 혁신성장 연구개발 예산 역시 사상 최대 규모다. 내년 예산증가율은 9.7%로, 경제성장률 전망치 4.4%의 2배를 넘고, 재정수입 증가율 전망치인 7.6%보다도 훨씬 높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만에 최대 증가율이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까지 재정지출을 연평균 7.3% 늘린다는 방침이다. 2020년 예산은 500조원을 훌쩍 넘게 된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일자리 확대 등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초슈퍼예산 편성소식이 알려지자 당장 재정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재정수입이 지출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이대로라면 2020년부터 지출이 수입을 앞지르고, 적자폭이 계속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세수증가가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 기댄 세수호황은 길어야 내년까지라는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주력산업 대부분이 하향추세여서 세수 기반은 갈수록 약화될 전망이다. 재정적자가 이어지면 국가채무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올해 708조2천억원인 국가채무는 2022년 900조원에 육박하고, 국내총생산(GDP)에서의 비중도 41.6%로 늘어난다. 더구나 지속적인 팽창예산은 필연적으로 재정을 악화시킨다. 특히 급속히 증가하는 복지예산이 문제다.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예산은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이다. 2022년까지 17만4천명 늘리겠다는 공무원 인건비도 큰 부담이다.나라 곳간인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려면 경제활성화로 세수기반을 확충하는 길밖에 없다. 더구나 국민혈세로 조성되는 재정은 경기부양에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지속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주도할 카드로 써서는 안된다. 민간기업의 생산적 투자가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슈퍼예산 편성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그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30

아파트 값 폭등

얼마 전 천정부지 치솟는 홍콩의 집값에 맥도날드 매장에서 밤을 보내는 이른바 ‘맥난민’이 급증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홍콩 언론은 홍콩 내 110개 맥도날드 매장에서 최소 3개월 동안 밤을 보낸 홍콩인이 334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맥난민 53명을 심층 인터뷰해 보니, 응답자의 57%가 취업자였고, 71%가 세입자이거나 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들은 왜 맥도날드 매장에서 밤을 보내야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으로 밝혀졌다고 한다.홍콩의 중상층 거주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평(3.3㎡)당 1억 원을 넘어설 정도로 값이 치솟아 비싼 임차료를 내고도 많은 주민이 창문이 없는 열악한 환경의 좁은 방에서 더운 여름을 보내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는 것. 한 맥난민은 “사는 아파트 방에 창문이 전혀 없는 데다 주인이 터무니없이 비싼 에어컨 사용료를 요구해 시원하고 안락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여름 밤을 보낸다”고 말했다.서울의 아파트 값이 평(3.3㎡)당 1억 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잠잠하던 서울의 아파트 값은 박원순 시장의 용산, 여의도 개발계획 발표로 불붙기 시작해 지금은 집값 상승 열풍이 서울 전역과 수도권까지 확산될 추세다. 평(3.3㎡)당 1억 원짜리 아파트가 남의 나라 일인양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됐다. “서울 집값이 미쳤다”는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법하다.우리나라 총 주택 수의 60%가 아파트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단독주택이 15.7%, 다세대 주택이 12% 정도다. 아파트의 편리성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맞아떨어지면서 아파트가 우리 시대 대표 주거문화가 됐다.그러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지나치게 치솟으면서 아파트 가격 편차가 또 다른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극명한 차이점이 바로 주택소유 여부다.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조차 기피해야 하는 젊은이한테는 ‘집값 폭등’은 나쁜 뉴스다.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박탈된 기분이다.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9

풍선효과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억제하면 다른 현상이나 문제가 새로이 불거져 나오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오는 모습에 빗댄 표현이다.‘풍선효과’라는 말은 주로 남미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마약 생산 및 유통을 근절하려는 미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마약 제조 및 밀매, 돈 세탁 등의 거점이 상대적으로 단속이 약한 지역으로 그때그때 옮겨 다니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데서 많이 쓰였다.요즘엔 경제정책 분야에서도 풍선효과란 표현이 자주 쓰인다. 특히 정부가 시장의 과열 양상, 불평등 고용계약 등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 타개를 위해서 법, 시행령, 행정지도 등 공권력을 동원하더라도 인위적인 정책만으로는 시장에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근본적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비판적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문제되는 시장의 일부를 규제하게 되면, 규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곳으로 시장 수요와 공급이 이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것은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행된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는 노동시장의 수급 불일치를 가져와 특히 사회초년생같은 저임 근로자의 실업을 늘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임금을 감수하더라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가 존재하고 생산을 위해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최저임금제의 취지가 무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암시장(black market)에서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수준의 고용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규제를 강화하면 투기수요가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부동산시장의 반응도 풍선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주 비근한 사례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을 들 수 있다. 정부가 특정 지역의 부동산 과열 양상을 억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 투기수요가 이전돼 다른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이처럼 우리 사회나 경제에 만연한 풍선효과가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는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직도 참으라고만 한다. 풍선효과는 허구가 아니라 우리 이웃에 닥친 참담한 현실이란 점을 왜 모르나.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28

기상이변

우리나라 역대급 태풍으로는 4개의 태풍을 손꼽는다. 1959년의 사라호 태풍과 셀마(1987년),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등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한 열대 저기압 중에서 중심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으로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현상을 말한다. 발생지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윌리윌리 등으로 불린다.역대급 태풍이란 태풍이 지나가면서 남긴 피해 규모 등을 따져보고 그 위력을 평가한 결과다.추석 날 새벽 남해안에 도착한 사라호는 통영, 영천, 대구 등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 피해를 낸 태풍이다. 6·25 전쟁 후 열악한 경제상황에 놓였던 우리에겐 태풍 사라호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849명의 인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수해로 인한 이재민만 37만여 명에 이르렀다. 강물이 역류해 남부지방 전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가옥, 농경지 침수는 물론 교량붕괴, 도로유실, 선박파괴 등 엄청난 피해로 즐거워야 할 추석날이 되레 초상집처럼 됐다.태풍 셀마 때도 사망 실종자가 340명에 달했다. 역대급 태풍은 대개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동반한다.2013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하이옌은 미국 태풍관측소 관측 이래 가장 빠른 풍속을 지닌 태풍으로 기록됐다. 이 태풍으로 필리핀은 7천여 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하고, 28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해마다 수십 개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태풍 사라호와 같은 슈퍼급 태풍이 최근 10년 사이에는 없었다. 그러나 올 들어서부터 태풍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슈퍼 태풍의 습격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루 이틀사이 1천㎜의 물 폭탄을 쏟아낼 수 있는 위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동 속도도 느려진다고 한다. 이동 속도가 두 배 정도 느려지면 그만큼 내륙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피해도 커진다.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만들어 낸 기상이변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전례없이 길었던 올 여름 폭염도 지구온난화의 후유증이다. 폭염과 슈퍼급 태풍, 올 겨울 최악의 혹한까지 기다린다. 기후 재앙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7

“네 탓이오”

김수환 추기경이 사회운동으로 시작한 “내 탓이오” 캠페인이 벌써 30년 전쯤 일이 됐다.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적 행동으로 우리 사회가 분열과 다툼으로 각박해지는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벌인 이 운동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사회 계몽운동으로 영역을 넓혔다. 각자의 목소리는 커지면서도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정작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사회의 풍조를 정확히 꼬집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반향도 컸다.사람이란 이기적 사고의 동물이다. 남보다는 자기 생각에 몰입하게 마련이라 책임보다 변명에 급급하는 속성이 있다. 선현들이 겸손을 미덕으로 가르쳐 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하심(下心)이라 부른다.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나 자신을 낮추어야 비로소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다른 철학자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라 했다.“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명언이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우리나라 속담에도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 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잘되면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실패하면 남한테서 이유를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 한계라지만 남 탓하는 모습이 어쩐지 품위는 없는 것같다. 남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나 행동이야말로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품격있는 바른 생활태도다. 옛말에도 군자는 겸손함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제 능력이나 솜씨가 부족함을 모르고 다른 핑계로 변명을 해댈 때 “선무당이 마당 기운다 한다”고 우리는 꼬집는다. 남 탓하는 문화, 이제 고쳐져야 할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다.정치인이면 남 탓보다는 책임 있는 행동의 결기 정도는 보여줘야 믿음이 갈 것이다. 작금의 ‘고용 쇼크’ 소동을 두고 전 정권의 탓으로 말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우리는 통 큰 정치가 기대 난망이란 생각에 잠시 빠지게 된다. 남 탓보다 내 탓으로 돌리는 속 깊은 지도자는 없는지 안타깝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4

공정위 전속고발제

전속고발제는 가격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불법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제 문제에 대해 과도한 형사처벌을 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우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동안 공정위가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해왔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 주장이 제기돼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최근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 중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성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경성 담합은 △판매가격 공동인상 △공급량 제한이나 축소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소비자의 이익을 크게 해치고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이른다.공정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고발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앞으로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중대 담합 행위에 대한 감시망이 더욱 강화되는 셈이다. 앞으로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사건에 한해 검찰에서 우선 수사하고, 그 외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게 된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가 곧장 담합 적발 강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대 담합 사건의 대부분은 내부자의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통해 수사가 시작되는데,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서 리니언시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지적 때문이다.리니언시는 담합 행위를 스스로 신고한 기업에게 처벌을 면제하거나 경감해주는 제도인데, 전속고발권 폐지로 공정위와 검찰이 각자 조사에 나설 경우 공정위에서 자진신고 혜택을 받은 신고자가 검찰에서는 처벌받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문제다.공정위와 법무부가 이같은 세부 사항을 협의할 실무협의체를 운영키로 했다니 운영의 묘를 잘 살려야겠다. 무소불위의 ‘경제검찰’로 불리던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로 체질개선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23

백수(白手) 양산시대

오래 사는 세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99세를 의미하는 백수(白壽)가 아니고 맨손이란 뜻의 백수(白手)다. 보통 맨손 맨주먹을 이야기할 때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나 직업이 없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맨손의 백수라 부른다.나이가 차 정년에 도달하면 누구나 백수의 생활로 돌아간다. 과거보다 건강하고 오래 사는 세상이 되면서 요즘은 놀고먹는 사람이 천지다. 노인인구의 증가가 가져온 새로운 사회 변화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그들의 생활도 비교적 윤택해졌고, 많은 사람이 개인별 편차는 있지만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으로 노후생활을 영위한다.“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도 정년으로 인한 은퇴 인구의 급증이 만들어 낸 신조어다. 은퇴자는 퇴직하고 나서도 출근할 때처럼 잘 지내고 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퇴직 후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주려는 배려의 뜻으로도 주고받는 말이다.때가 되면 누구나 백수로 돌아가야 하지만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백수가 된다면 누가 봐도 딱한 노릇이다. 당사자의 답답한 심정이야 물론이거니와 백수가 된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때가 되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일을 해야 사람의 도리도 하는 법이다.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백수가 급증하는 모양이다.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가 지난 상반기 중 월평균 14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을 아예 포기한 구직자 수가 50만 명을 넘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30,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현상은 매우 충격적 일이라 할 수 있다.직장이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득원이다. 가정의 행복은 가장(家長)의 안정된 소득에서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장은 개인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 근간이 되는 가정을 지키기는 파수꾼 역할도 한다.옛 말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 하여 “사람은 제 먹을 것을 타고 난다”고 하였다. 백수가 양산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2

남북 이산가족상봉

한반도의 남북 분단은 1천만 명 이산가족에게 천형에 가까운 고통을 안겨줬다. 남북 적십자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으나 실행되지 못하다가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가족을 만났다. 이후 2차 방문단에 대한 협의가 진행됐으나 상봉 성사로 이어지지 못했다.그러다 10여년이 흐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돼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됐다. 그리고 2000년 8월 드디어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됐다. 이후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남쪽 주요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당시 남과 북쪽 가족 226명의 상봉이 성사됐다. 이후 2010년 제18차 방문상봉 1차 행사 때는 북측의 상봉 신청자 97명과 남측 가족 436명 등 총 533명의 이산가족이 재회했고, 제18차 방문상봉 2차 행사 때는 남측의 상봉 신청자 96명이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났다. 2007년 11월 제7차 화상상봉 행사에는 남과 북에서 500여 명이 참가해 광전용망으로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났다.그러나 2010년 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한 두 차례 대면상봉이 이어졌지만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이같이 애타는 이산가족들의 염원에 부응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27 판문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으며, 이 합의에 따라 2018년 20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아무런 죄없이 가족과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들의 한과 설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21

미 언론의 사설(社說) 연대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이 언론의 기능은 때로는 칼보다 무섭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며 미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신문을 선택할 상황이라면 주저없이 정부없는 신문을 선택할 것”이라 했다. 우리 사회의 언론 기능을 강조한 말로 유명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국제 언론인 인권 보호단체이자 언론 감시단체다. 1985년 프랑스의 한 라디오 기자에 의해 조직된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언론인 구금과 살해된 저널리스트 지원을 위한 단체다. 2002년부터는 특파원, 저널리스트, 인권운동가 등이 참여해 국가별 언론자유 정도를 평가한 세계 언론자유지수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언론자유지수 평가에서 올해 43위에 랭크됐다. 지난해 63위에서 20단계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자유 수준이 아직은 만족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데서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조사대상국 180개국 가운데 180위를 유지, 최악의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됐다.언론의 자유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가치인 동시에 자유 민주주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다. 그렇지만 언론의 자유만큼 언론의 윤리와 책임도 우리 사회가 감시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우리 헌법에도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 국민 사생활과 자유가 침해받지 않아야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언론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할 때 가장 힘들다. 서로 존중돼야 할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미국의 300여 언론사가 같은 날 동시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하는 사설을 써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언론사의 사설연대는 세계 언론사를 통 털어서도 드문 일이다. 취임 후 대놓고 언론을 공격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언론사의 연대 경고다.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민주주의가 치명적 위험에 빠진 것”이라 평가했다. 언론은 사회 공기(公器)다. 언론의 정당한 비판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0

‘귀신 잡는 해병대’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창설됐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이 정식 발족한 이후 상륙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해지자 창설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초대 사령관은 신현준 장군으로, 해군에서 편입한 장교 26명과 부사관 54명, 병사 300명 등 380명의 대원으로 출발한 부대다.해병대에는 특별하게 붙여진 이름이 많다. ‘귀신 잡는 해병대’는 6·25 전쟁에서 얻어진 애칭이다. 미국의 한 여성 종군기자가 한국군 최초의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해병대의 놀라운 전투력을 칭송하며 붙인 이름이다. 당시 통영상륙작전은 해병대 1개 대대 병력이 북한군 사단 군사에 맞서 기지를 탈환한 전투다. 낙동강 남동쪽 방어선을 지킨 혁혁한 공로를 세운 전투였다.군 창설 불과 1년여만에 6.25 전쟁을 맞이한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란 별칭을 필두로 수도탈환 작전에서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상승불패’‘무적해병’의 호칭도 얻는다.이후에도 해병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구호들은 꾸준하게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다. 해병대 하면 누구나 이 구호를 먼저 떠 올릴만큼 잘 알려진 구호다. 이 구호의 유래는 미국 해병대 슬로건에서 나왔다. ‘Once marine, Always marine’으로 그 뜻은 해병대의 모든 구성원은 언제 어디서든 해병대의 명예를 견지하자는 것이다. 해병대 대원이면 누구나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구호이자 누가 봐도 해병대의 기상을 느끼게 할 참신한 슬로건이다.그 밖에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호 등 해병대는 많은 구호를 생산하며 전국 최고의 결집력을 자랑하는 조직이 됐다.지난달 17일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장병들의 유족이 시민 조의금 5천만 원을 해병대 장병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해 또한번 세상의 이목을 모았다. 하루아침에 자식과 남편을 잃은 슬픔에도 의연함을 지킨 그들의 마음에서 다시한번 해병대 정신을 떠올린다. 내 이익에만 집착하는 각박한 요즘 세태에 큰 울림을 남겼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7

‘맘마미아’가 선물하는 작은 위로

지난주 개봉한 영화 ‘맘마미아 2’는 “고뇌하는 햄릿에서 멈추지 말고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삶을 살아보라”고 관객들을 추동한다. 그 메시지의 일관성은 10년 전 상영된 1편과 동일하다.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에 1970년대 세계적 인기를 누린 스웨덴 밴드 ‘아바(ABBA)’의 노래까지 얹은 흥미로운 영화. 1999년 4월 초연된 캐서린 존슨의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맘마미아’ 시리즈 2편의 각본과 감독은 올 파커가 맡았다.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셰어, 메릴 스트립, 앤디 가르시아, 콜린 퍼스의 중후한 연기에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제임스의 깜찍함까지 만날 수 있는 ‘맘마미아 2’의 스토리는 간명하다.1979년 한 영국 여성이 프랑스 파리와 그리스 칼로카이리 섬을 여행하며 몇 주 사이에 세 명의 남성과 정열적인 밤을 보낸다. 그 결과 아버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아기가 생긴다. 여성은 그 아이를 버리지 않고,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그 섬에 머물다 죽는다.성인이 된 딸은 엄마의 1주기를 맞아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세 명의 남성에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파티를 열 것”이라는 소식을 알린다. 성공한 중년이 된 셋은 만사 젖혀두고 자신들 청춘의 추억이 묻어있는 칼로카이리 섬을 찾는데….‘맘마미아’ 시리즈에선 생의 고뇌나 고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년 넘게 혼자 아이를 키우며 낯선 곳에서 살았을 여성의 삶이 마냥 행복했을 수는 없었을 것임에도. 하지만, 2시간 남짓의 영화에서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영화는 삶이 주는 아픔이 아닌 ‘아름답게 누려야할 생’에 포커스를 맞췄다.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청년들의 취업난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까지. 최근 한국 상황은 아름답다기보단 고통스럽다. ‘맘마미아 2’는 그런 녹록지 않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위로’한다. “왜 고민만 하며 살 것인가? 비관하건 낙관하건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고,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게 된다”며./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6

1971년 돼지띠의 빛과 그림자

주민등록인구와 행정구역, 지자체 예산 규모 등을 정리한 ‘2018 행정안전통계연보’가 최근 발간됐다. 이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인구는 5천177만8천544명. 이 가운데 1971년 태어난 돼지띠 남녀가 가장 많다고 한다. 1971년 태어난 한국인은 102만4천773명. 이중 사망 또는 실종된 7.9%를 제외한 94만4천179명이 올해 만 47세를 맞았다. 이른바 ‘58 개띠’로 불리는 1958년생 ‘제1차 베이비붐 세대’ 이후 ‘제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71 돼지’들이 숫자 면에서 한국 사회의 중추가 된 것이다.통계가 발표된 후 신문과 SNS 등엔 그 시대를 기억하거나 살아온 언론인과 예술가, 회사원과 공무원 등의 추억담이 넘쳐난다.“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교실은 항상 60~70명의 학생들로 북적였고, 이를 다 수용하지 못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한 학년이 15개 반쯤 됐기에 수학여행이라도 갈라치면 10량이 넘는 기차를 통째 대절하는 장관이 펼쳐졌다.”“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도 밤 10시까지 교실에 남아 졸린 눈을 부비며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외워야 했다.”과장이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 1971년생 돼지띠가 대학 입시를 본 1990년도 학력고사 경쟁률은 4.57대1. 역사상 가장 높았다. 많은 또래들 속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취업 운’ 또한 좋지 못했다. ‘71 돼지’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와 직장을 구할 시기인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것.여러 고통과 수난 속을 살았지만 1971년생 돼지띠들의 삶 전체가 마냥 어두웠던 것만은 아니다.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친구에게 선뜻 내어주는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아웅다웅하는 가운데서 어떤 경쟁도 우정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갔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일찍 철들 듯.세상 모든 물건에는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 ‘71 돼지’들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무한경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그들의 우정은 보석처럼 빛났을 터. /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4

뚱뚱해지는 나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한 것은 2014년도다. 인구 기준으로 중국은 8천960만 명이 비만으로 조사돼 그동안 8천780만 명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미국을 앞섰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중국인 식생활의 서구화가 불과 40여 년만에 중국을 세계 최고 비만국가로 탈바꿈하게 했다.우리나라도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식량을 지원받아야 할 만큼 식량난에 쪼들린 국가였다. 비만은 부자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배 나온 사장님이 부러웠던 때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듯 국민의 비만을 걱정해야 할 나라로 바뀌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가 2030년에 가서는 현재의 2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 경고했다. 2015년 기준 5.3%의 고도 비만율이 2030년에는 9.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은 이젠 질병으로 분류돼야 할 정도로 사회경제적 손실도 작지 않은 사회문제다.정부가 지난달 24일 국민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6년 현재 34.8%인 국민 비만율을 2022년까지 현행대로 유지시키며, 이를 위해 영양, 운동, 비만치료, 인식개선 등의 다각적 사회적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그 방법의 일환으로 정부가 밝힌 먹방 규제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먹방과 같은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TV,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는 2019년까지 가이드 라인을 개발하겠다”고 했던 것이 불씨가 된 것.야당에서는 먹방 규제는 “국민을 어리석은 백성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국가주의 문화’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사회 일각에서도 정부의 먹방 규제 발상에 반발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어쨌거나 자꾸 뚱뚱해지는 국민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든 개인이 관리하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비만에 대한 대책은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 먹방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의 성찰이 먼저 있고 비만 대책에 나서는 것이 순서일 것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