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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프라이카우프(Freikauf)

오는 4·27일 남북정상회담 의제중 하나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하는 방안을 청와대가 검토하면서 지난 해 4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에 등장했던 ‘프라이카우프(Freikauf)’가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용어는 독일어로 ‘자유를 산다’는 뜻이다. 통일전 서독이 동독에 있던 정치범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현금과 현물을 제공했던 전략을 말한다.독일의 프라이카우프는 1963년 시작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26년간 진행됐다. 서독은 3만3천755명의 정치범과 25만명에 달하는 그들의 가족 송환대가로 동독에 34억6천400만 마르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환율로 4조원이 넘는 돈이다. 그러나 동·서독 정부 차원이 아닌 교회 등 민간이 주도했고, 서독 언론도 사업과정에 대해 철저한 비밀에 부치는데 동의한 상태로 진행됐다.일명 ‘한반도 프라이카우프’가 실현될 수 있을 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실향민 가족 출신인 문 대통령은 6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상봉신청자) 전원의 상봉을 추진한다는 것이 자신의 대선공약이었다. 그래서 취임 이후 줄곧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해왔다. 지난 해 7월 ‘베를린 선언’에서 고향 방문단 형식의 상봉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거절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0월 20차 행사를 끝으로 3년간 중단됐다. 현재 등록된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여명으로 이중 생존자는 6만명이 되지 않는다. 생존자중 64.5%는 80세이상의 고령자들이다.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한반도 프라이카우프’란 표현은 사라졌다. 대신 “국군포로·남북자 문제는 송환을 포함해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추상적 표현으로 바뀌었다.아마 문 대통령 취임후에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퍼주기 논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분단으로 빚어진 민족의 비원인 ‘이산가족 상봉’이 어떤 방식으로든 하루속히 이뤄지길 기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12

어버이날 휴일 논란

중국에서는 늙은 까마귀가 제 구실을 못하면 자식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가 제 어미에게 먹인다고 하여 까마귀를 자오(慈烏) 혹은 반포조(反哺鳥)라 불렀다. 어버이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반포지효(反哺之孝)라 부르는 것은 이 말에서 유래했다. 까마귀라는 하찮은 미물조차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데, 사람의 도리로서 효(孝)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뜻이다.부모에 대한 효심은 동서고금에서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유교사상에 들면 더욱 그렇다. 부모에 대한 효는 도덕적 규범의 기초이다. 살아생전에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물론이요, 돌아가서도 부모의 편안함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제사는 효 사상에서 출발한 조상에 대한 도덕적 예의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해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미덕을 기리는 날로 삼아왔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아버지 날’이 없다는 여론이 일자 1973년부터는 5월 8일을 어머니 아버지를 포함한 ‘어버이 날’로 명칭 변경하고 법정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어버이 날’의 공휴일 지정에 대해 네티즌 간 찬반 논쟁이 뜨겁다는 소식이다.공휴일 지정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나오면서 찬성여론과 더불어 반대여론도 만만찮음을 짐작케 한다. 아직은 이렇다 할 정부의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 찬반논란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괜히 자식에게 짐이 되는 듯 한 기분이라 생각에 찬반논쟁 자체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사회적 갈등보다 ‘어버이 날’의 참의미를 기리는 날이었으면 더 났지 않을까 싶다.“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 선현들의 말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를 자주 찾아 뵙지 못해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좋은 미풍양속 잊지 않는 우리의 전통을 살리는데 논쟁의 중심이 있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11

유령주

삼성증권이 지난 6일 우리사주 배당금을 주당 1천원 대신 자사주 1천주로 잘못 지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삼성증권의 전체 발행주식이 8천930만주이고, 이 발행주식을 훨씬 많은 주식이 전산상으로 발행됐고,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 중 16명이 501만2천주(시가 2천억원 상당)를 팔아치우는 사상 초유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잘못 입고된 유령주식 28억주의 환산가액은 무려 112조원에 달한다. 이번 사고로 자신의 주식이 아닌 유령주식을 배당받은 삼성증권 직원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도덕적 해이를 보여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유령주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거나 신주를 발행할 때 발기인 또는 이사가 주식을 인수하거나 주식을 납입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처럼 가장하여 발행한 주식을 말한다. 상법에서는 유령주의 발행 및 거래를 막기 위해 주식 인수인으로 하여금 금전출자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납입금 보관에 관한 여러 조항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회사를 설립할 때, 주식 인수인은 발기인이 지정하는 날까지 인수가액의 전액을 납입해야 한다(상법 305조 1항)거나 이를 어길 때 발기인은 강제집행뿐 아니라 실권절차도 취할 수 있다(307조)는 조항이 그것이다. 또 신주를 발행할 때, 주식 인수인은 주식 청약서에 적힌 납입기일까지 인수가액의 전액을 납입해야 하고(421조), 이를 어길 때에는 실권한다(423조)고 규정돼 있다.금융당국은 이번 삼성증권의 소위 ‘유령주식’거래 사태를 계기로 다른 증권사들도 유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증권계좌 관리실태를 전면 점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반장으로 ‘매매제도 개선반’을 구성해 주식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고, 확인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빌려와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돼 있으며, 주식 없이 매도가 먼저 이뤄지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이같은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해서는 증권사에서 매도하려는 주식이 확보돼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로 하는 방향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10

신문산업의 분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에 발행된 한성순보를 꼽는다. 그러나 한성순보는 정부가 발간한 신문이었고, 한문만으로 기사를 작성해 일반 대중화에 이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정부 발행의 한성순보를 일각에서는 관보적 성격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근대 신문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은 독립신문이다. 1896년 4월 7일 창간됐다. 서재필과 개혁파가 합작하여 창간한 이 신문은 순수 한글로 만들어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가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신문으로서 높은 가치 평가를 받는다.처음에는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돼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영문판만 별도로 발행했다. 격일간지로 출발하여 일간지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신문 역사에 여러 신문이 창간되는 계기를 만든 신문이여서 역사적 의미도 있다. 초창기 이 신문의 크기는 가로 22㎝, 세로 33㎝의 타블로이드판이며, 모두 4면을 발행하였다.특히 초창기 독립신문은 만민평등과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당파를 초월한 엄정 중립의 보도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개방정책이 막 시작될 무렵이어서 신문이 국민계몽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부정책을 국민에게 해설하고 전달하였으며, 국민의식과 사상 변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주말인 지난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일에 맞춰 1957년 한국신문협회는 이 날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졌다. 올해도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공동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62회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신문협회는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 공공재”며 “신문의 공익성은 어느 매체도 대신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문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신문의 위기가 신문 본질의 기능적 위기로 이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신문 산업의 분발이 있어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08

워라밸

워라밸은 Work and Life Balance의 준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용어다. 처음에는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으로 통용됐으나 요즘에 와서는 남녀 불문하고 사용된다. 휴식이 있는 삶으로 풀이하면 적당하다. 요즘 젊은이한테는 최고의 가치다.2016년 OECD 고용동향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1년 평균 근로시간은 2천69시간으로 세계 2위다. OECD 평균 1천763시간에 비하면 306시간이 많고, 가장 일하는 시간이 적은 독일에 비하면 706시간이 많다. 706시간은 거의 한 달과 맞먹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이 많은 시간 일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통계다.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 문턱에 도달하지 못해 근무를 많이 해야 될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나 단순 비교로 보면 일 많이 하는 나라는 분명하다.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한다. 얼마 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혼인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인구 1천명 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혼인율이 5.2건으로 통계청 통계 작성이후 최저다. 지난해 혼인건수가 전년보다 1만7천200건이나 감소했다. 마이너스 6%지만 젊은이의 혼인 기피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은 인구감소의 문제부터 결혼 적령기 청년이 받는 정신적 고통 등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떨어뜨릴 수 있을 요소로서 충분하다. 직장을 못 구한 미혼의 젊은이한테 워라밸은 어쩌면 다소 호사스런 용어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직장이라도 먼저 구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통계청은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로 청년실업 문제 외에 집값 상승과 같은 경제적 요인도 다수 있다고 했다. 결혼은 독립된 생계를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경제적 이유는 당연하다.최근 KB은행이 발표한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억원을 돌파했다. 2008년 통계 작성 후 최고가다. 신혼을 꿈꾸는 젊은이가 서울에서 가정을 출발한다고 했을 때 월급으로 내 집 마련은 절대 불가능하다. `집값 충격` 청년들은 뭐라고 대답할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06

86세대 정치인

80학번·60년대생 정치인을 가리키는 `86세대 정치인`이 우리 정치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86세대란 말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386세대`에서 비롯된 용어다.`386`세 숫자에는 각각 뜻이 들어 있어,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즉,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2018년이니 30대를 뜻하는 3을 떼고, `86세대`로 불리는 것이다.30년 전 `민주화 주역`이던 86세대들 가운데 안희정이 첫 대선주자란 신분으로 우리 사회의 리더 그룹에 올라선 것은 일대사건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막을 내리고 각종 권력 지형과 이념 지형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킨 셈이다. 그랬던 그였기에 그의 몰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86세대 선두주자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2인자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복심`으로 불리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남지사 선거 출마로 사실상 차기 대선주자의 길을 걷게 됐다.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인 최재성 의원 역시 대표적인 86세대 정치인이다.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그 역시 전대협 간부 시절 두 번 투옥돼 94년 늦깎이 졸업을 한 후 정치의 꿈을 키워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 3선의원을 지냈다. 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냈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권 도전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같은 86세대 정치인들로 활기찬 움직임을 보이는 데 비해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한 자유한국당에서는 눈에 띄는 86세대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다.새로운 인물이 새 시대를 이끌어 가련만 참신한 86세대 정치인의 육성·발굴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05

직업도 흥망성쇠가 있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선택하게 되지만 직업의 선택에 따라 사람마다 얻는 결과는 서로 다르다. 직업을 통해 얻는 수입에서도 편차가 많이 나지만 자신의 적성 정도에 따라서도 개인별 만족도가 큰 격차가 생긴다.학부모가 자녀의 진학에 성공시켜 놓고도 진로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은 뼈있는 인생교훈이다. 진학과 진로를 결정할 때 인생이란 긴 세월을 내다보고 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과학이 발달하고 경제성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무한히 넓어졌다. 이 세상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직업을 손꼽으라 하면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해야 할지 모른다. 직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기도 오락가락했다. 어떤 직업은 한 시대 반짝하고 영원히 사라지기도 했던 것이다.1950년대 우리나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난 뒤끝이라 군인이 최고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1960년대 들면서 택시운전사와 버스 안내양 등이 새로운 인기 직종으로 부상했으며, 특히 버스안내양은 9급 공무원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 부러움의 직종이었다고 한다.1970년대는 무역업 종사자가, 1980년대는 증권 금융인과 프로그래머 등이 인기직종으로 등장했다.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0년대는 경영컨설턴트 등이 인기직종으로 나타났다. 공무원과 교사가 인기직종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0년대는 IT 전문가, 헬스매니저, 공인회계사 등 다양한 직군들이 새로운 인기직종으로 등장한다. 그 당시 시대상황을 인기직종이 대변한 셈이다.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시대에 생존직업 1위에 연예인, 사라질 직업 1위에는 번역가라고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생존직종으로 남고 대부분의 영역은 퇴출 직종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이 일할 영역이 얼마나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04

텐궁 1호의 추락

중국의 우주정거장인 텐궁 1호가 통제력을 벗어난 채 추락했다. 지난 2011년 9월 발사된 텐궁 1호는 무게 8.5t, 길이 10.5m, 지름 3.4m에 이르는 거대구조물로서 2년전부터 중국의 통제력을 벗어나기 시작해 2일 오전 중 한반도 상공을 지나 남태평양 해상에 추락했다.우주정거장의 추락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79년 7월 미국의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이, 1991년에는 당시 소련(현 러시아)의 살루트 7호가, 2001년에는 러시아 미르호가 지구로 떨어진 바 있다.우주정거장은 사람이 우주공간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구에서부터 사람이나 기자재를 우주왕복선으로 우주정거장까지 옮긴 뒤 다시 정비해 우주항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우주 진출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러시아의 살류트(Salyut)로서 1971년 4월에 발사돼 궤도를 돌고 있는 소유스 10호와 결합해 무게 26t, 길이 23m의 우주정거장을 이뤘다. 총 22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1천600회의 각종 실험과 관찰을 해 인간이 장기적으로 우주공간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의 최초 우주정거장은 스카이랩(Skylab)으로서 1973년 5월에 발사됐다. 스카이랩은 무중량상태에서 인간활동에 대한 실험과 지구와 우주관측 등의 임무를 수행한 후 1980년 7월 지구 대기권에 돌입돼 분해된 후 인도양으로 가라앉았다. 1986년 2월에 발사된 2세대 우주정거장인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미르(Mir)는 모두 6개의 접속장치를 가지고 있고 3개의 모듈로 구성돼 있는 총 길이 13m에 지름 4.2m, 총무게 21t의 대형 우주정거장이다. 유리 로마넨코가 326일간을 체류하는 기록을 세움으로써 인간이 우주공간에서 영구히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주정거장에서는 지구중력의 약 100만분의 1인 마이크로 중력(거의 무중량상태)을 가지며 이러한 무중량상태를 이용, 지구상에서는 지구중력 때문에 불가능한 순도 100%의 결정체를 만들 수 있으며 새로운 재료의 합성이나 신의약품 제조에 활용된다. 우리에게 아직도 너무 멀게 느껴지는 우주시대의 얘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4-03

할매할배의 날

경북도가 4년 전 제정한 `할매할배의 날`은 제정 취지에 비해 활성화가 안 돼 아쉬움이 큰 사업이다. 물론 취지가 좋다고 성과가 반드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활성화가 됐으면 하는 사업으로 본다면 `할매할배의 날` 만한 것도 잘 없다. 도로를 내주거나 주민의 숙원을 풀어가는 예산투입 사업은 아니지만 가정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정신문화 운동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는 의미다.당면한 노인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으로도 `할매할배의 날` 지정은 매우 바람직하다. 경로사상을 고취할 수 있을뿐 아니라 가정의 공동체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노인세대와 손자세대간 소통은 외로워지기 십상인 노인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고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도 좋은 결과를 준다. 예로부터 내려온 격대교육(隔代敎育)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맡아 생활을 같이하며 교육시켜 온 것이 우리의 관습적 교육 형태였다. 이를 우리는 무릎교육이라고도 부른다.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무릎에 앉아 생활 예법을 배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지금 우리사회는 급격한 노령화로 노인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노인부양 문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49.6%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두명 중 한명이 빈곤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반면에 연금소득 대체율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인세대가 가질 희망이라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식과의 가족공동체적 관계가 끈끈히 유지될 수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할 것이다.`할매할배의 날`은 위기에 선 우리의 노인에게 큰 기쁨이 될 유익한 수단이다. 경북도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을 `할매할배의 날`로 정하고 온 가족이 노부모를 찾아보도록 권장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서 만이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는 인정이 솟구치면 좋겠다는 뜻이다. 봄날을 맞아 가족동반 외출 시간이 많아졌다. 할매할배를 찾아보는 넉넉한 마음의 시간도 가져보자./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4-02

불평등 사회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그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 제도에 있다”고 했다. 사유권을 두고 부자의 횡령과 빈자에 대한 약탈이 시작되는 등 무서운 전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사회가 부의 축재와 성공을 위한 경쟁적 구도로 치닫는 것이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서울대학교 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은 우리사회의 불평등 원인으로 `상속증여`(3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부의 축재로 성공한 부모들로부터 물러 받은 재산이 불평등을 초래하는 큰 이유로 본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정책`이다. 정부정책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교육기회 격차`다. 이 역시 가진 자가 유리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답변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 개인의 노력을 통한 성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70%이상이 `보통이하`로 답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체로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2000년대 들면서 우리사회에는 불평등을 의미하는 신조어가 많이 탄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갑질`이다. 갑을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대리점 점주에게 우유를 강매한 `남양유업 사태`나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등에서 많이 쓰였다. `금수저와 흙수저`도 불평등을 풍자한 용어다. 수저계급론이라 부른다.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부가 사회적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 표현이다.`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돈이 사람의 형량까지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풍자한 말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 말에 국민의 80%가 동의한다고 응답해 모두를 놀라게도 했다. `빈익빈 부익부`도 가진 자의 부의 세습을 통한 불평등을 꼬집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어느 정도의 필요 수단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최근 한국건강 형평성학회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소득상위 20%가 하위 20%보다 기대수명이 6.5년이 더 긴 것으로 조사됐다. 유전무병 무전유병(有錢無病 無錢有病)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30

위수령 보도 논쟁

촛불시위 당시 정부가 위수령(衛戍令)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을 빚고 있다. 위수령은 긴급사태라고 판단할 경우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이나 국회 동의 없이도 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이다. 논란의 요지는 JTBC가 지난 20일 박근혜 탄핵촉구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가 위수령을 검토했다고 보도하자 SBS에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의 요청에 의해 국방부가 위수령을 검토한 것인 데, 핵심전제를 빠트리고 보도했다고 반박했고, 이를 다시 JTBC가 재반박한 끝에 언론중재위원회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다.위수령의 기원은 1965년 4월 한일협정 및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의 반대데모가 폭발, 4월 17일에는 데모사태가 폭동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고, 8월 26일 경찰병력으로 치안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서울특별시장 윤치영의 요청으로 서울 일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 고려대와 연세대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정치교수라는 이름으로 일부 교수가 학원에서 추방됐다. 이 사태를 계기로 위수령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970년 대통령령 제4949호로 본문 22개조와 부칙으로 된 위수령이 제정됐다. 위수사령관은 치안유지에 관한 조치에 관해 시장·군수·경찰서장과 협의해야 하며, 병력 출동은 육군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나 사태가 위급한 경우 사후승인도 가능하도록 했다. 병기는 자위상의 필요, 진압·방위 등의 필요가 있을 때에 사용하며, 사용했을 때는 즉시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 법에 따른 최초의 위수령은 1971년 10월 15일 각 대학에서 반정부시위가 격화됐을 때 서울 일원에 발동,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비롯한 10개 대학에 휴업령이 내려지고 무장군인이 진주했다. 군사독재정부의 자의적 권한집행을 상징하는 위수령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을 대통령령으로 유보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이 전근대적인 위수령 규정이 아직도 대통령령에 남아있다는 사실만 해도 관련 책임자들의 무신경과 직무태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3-29

총기의 나라 美國

서부극은 미국 영화가 자랑하는 대표적 장르다. 미국의 서부지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서부개척 시대의 이야기가 배경이 된 영화다. 다른 나라에는 볼 수 없다. E.S 포터 감독의 `대열차 강도`(1903년)가 효시다. 이후 미국에는 수많은 서부영화가 제작됐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화다. 꽤 인기도 끌었다. 게리 쿠퍼, 존 웨인, 헨리 폰다 등 유명한 서부극의 주인공은 우리의 기성세대한테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들이다. 서부극의 기본 구성은 남성적이면서 개척자 정신을 가진 주인공의 맹활약에 있다. 서부지역 개척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애와 권선징악적 요소를 감안한 스토리가 주제로 다뤄진다. 영화로서 매력은 총격 장면이다. 악당과 벌이는 결투 장면이 항상 클라이맥스로 처리된다. 미국의 서부극을 본 따 이탈리아에서도 서부극을 만들었으나 서부개척의 내용은 없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황야의 무법자`가 대표적인 영화다.미국의 총기문화는 서부극에서처럼 서부 개척시대의 자기 방어적 수단으로 시작했다. 미 대륙에 발을 디딘 정착 주민들에게 총은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야생동물이나 인디언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으며, 사냥을 통해 부족한 육류원을 조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미국은 총기소지 권리를 헌법이 인정하는 나라다. 미국에서 합법적인 면허를 가진 총기 취급상이 약 15만 명에 달한다. 서점이나 학교 수보다 오히려 많다. 미국 가정의 3분의 2가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 20초에 1명이 총기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다고 하니 미국은 세계 최고의 총기 보유국가이자 총기 재난국가다.그러면서 총기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생활과 밀착한 총기문화 때문이다. 미 국민 대다수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최종적 수단으로 여전히 총기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지난 주말 미 전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 총기반대 시위가 있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경한 분위기라 전미총기협회를 긴장케 했다고 한다. 미국의 총기딜레마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 궁금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28

선거의 비례성 원칙

선거에는 소위 4원칙이 있다.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이 4원칙 외에 선거와 관련한 원칙 가운데 `선거의 비례성 원칙`이란 말이 있다. 이는 투표자의 의사가 국회의원 의석비율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리킨다. 이는 사실 주권재민이란 민주국가의 기본원칙에 해당하지만 선거구제에 따라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방식 역시 선거의 비례성 원칙에 다소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과다한 사표를 발생시키고, 정당득표와 의석비율의 불일치로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의 경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합산득표율은 65% 정도였지만, 두 당의 의석 점유율은 80%가 넘었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합산득표율은 28% 정도였지만 두 당의 의석 점유율은 15%가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대표제가 결합된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가 소수 정당에 불리하다는 결과를 드러내 보여준 결과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되어야 한다`는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에 따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얻는 쪽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만든 셈이다. 선거 비례성 원칙은 소수정당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이 대통령 개헌안에 호응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표를 받은 만큼 의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치 않다. 세계 각국에서 실시하는 선거제도는 굉장히 다양하며 표의 비례성을 실현하는 방안 역시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핵심은 정당 지지도를 넘어서는 거대 양당의 과대 대표를 억제하고 양당이 포괄하지 못하는 제3·제4 세력에게 지지율에 부합하는 정당한 대표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선거 비례성의 원칙이 최대한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혁문제는 시급하지만 다양한 대안을 고려하고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할 과제라는 게 정치권의 일관된 목소리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3-27

솔로의 시대

1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싱글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의미로만 사용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싱글은 미혼뿐 아니다. 비혼, 돌싱, 싱글 맘, 싱글 대디 등 많은 상황을 포함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관념으로 바뀌어 간다. 하나의 트렌드적 현상이다. 우리나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가 내년에는 부부와 자녀가 같이 사는 가구 수를 앞지를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우리 사회의 가파른 노령화가 한 몫을 했지만 젊은 층의 비혼(非婚)도 1인 가구 증가의 주요 이유로 분석된다.홀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솔로사회란 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솔로사회를 상징하는 혼밥, 혼술 등의 외식 트렌드도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업계서는 이 같은 트렌드를 쫓아 각종 상품개발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가전업계는 소형 냉장고나 세탁기, 미니 밥솥, 미니 가습기 등을 내놓고 있다. 혼밥 및 혼술족을 위한 편의점의 증가도 눈에 띄는 변화다. 김밥, 떡볶이, 햄버거 등 간편식의 매출도 점차 늘어난다.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가 1974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건수는 26만4천500건으로 전년보다 1만7천200건이나 줄어들었다. 2012년 이후 6년 연속 감소한 것이다. 남녀 평균 초혼 나이도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남자는 32.9세, 여자는 30.2세로 10년 전 보다는 남자 1.8세, 여자 2.2세가 증가했다. 만혼시대로 접어드는 양상이다.이 상태로 가면 출산율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게 뻔해 국가적으로도 적잖은 부담이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솔로의 시대에 정부는 어떤 정책과 철학을 구상하는지 궁금하다.청년실업 해소와 같은 대책은 오히려 단기적 처방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하는 사회적 관심과 정책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우정구(객원 논설위원)

2018-03-26

안동의 문화가치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처하는 데는 몇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다. 먼저 유교문화의 최대 보존지란 점이다. 예절과 학문이 왕성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의 전통이 살아 남아있는 도시다. 그리고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 속에 선비정신이 잘 이어져 오는 것도 정신문화 도시로서 특징을 자랑한다. 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최초 발상지이자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안동은 시대정신이 그때 그때마다 살아왔던 고장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당 시대의 정신을 앞장서 실현한 고장임을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정신문화의 본향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전통이 살아 숨 쉰다고 믿는 도시다. 그래서 한국 안에서도 가장 한국적 도시로 손꼽히는 고장이다.우리나라 최초로 지역학인 안동학(安東學)이 출발을 했고, 연구 성과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안동이 지닌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 덕분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을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안동을 방문했던 것도 이러한 풍부한 한국적 콘텐츠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유홍준 박사는 그의 책에서 “안동의 문화권에는 유교, 불교, 민속 등 전통적 삶의 형식이 모두 잘 보존돼 있다”는 말로 이곳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유네스코는 1972년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인간의 부주의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유산협약을 만들었다. 유산의 성격에 따라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 기록유산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2010년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안동지방의 문화적 가치가 국제적으로 처음 인정받는 계기였다. 2015년에는 국학진흥원이 보관 중인 조선시대 유교책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았다. 지금 이곳은 `하회탈춤`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준비 중이다. 만약 이것이 성사된다면 안동은 명실상부한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의 보고가 된다. 안동의 문화가치라 할 만하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23

태움문화

대형병원의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태움 문화`로 인한 비극적 사건이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주로 대형 병원의 간호사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의미한다. 명목은 교육이지만 실상은 과도한 인격 모독인 경우가 많아서 간호사 이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란 직업의 특성상 조금의 잘못도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 간의 위계질서와 엄격한 교육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력이나 욕설, 인격 모독 등이 가해지면서 `태움 문화`라는 고질적 병폐를 낳았다는 지적이다.태움문화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제도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태움·성희롱 등 인권 침해 행위를 하면 면허정지 등 제재를 하도록 하고, 태움 문화의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간호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2022년까지 10만명의 신규 간호사를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확정했다. 대책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교육에 가이드라인이 생긴다. 신입 간호사 교육 전담자를 두되 교육 기간에는 환자를 돌보지 않는다. 또 신규 간호사가 업무를 충분히 익힌 뒤 실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3개월 이상 교육을 받게 유도할 계획이다. 또 `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2년까지 신규 간호사 10만명을 추가로 양성하기로 했다. 국내 인구 1천명 당 의료기관 활동 간호사 수는 3.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5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기관 내 인권침해 대응체계도 처음으로 마련된다. 간호협회 내에 `간호사 인권센터`를 두고 성희롱 등 인권침해 신고를 받고,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권위주의와 위계 문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직장내 괴롭힘 또는 왕따문화의 일종인 태움문화가 쉽게 사라지기는 어렵다. 긴 호흡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을 수 있는 꾸준한 노력이 후진적 태움문화를 뿌리뽑는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3-22

맹모와 사교육

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을 나무랄 수는 없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 본질적 시각에서 보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교육적 관심이다. 맹자 어머니의 교육적 가르침에서 따온 `맹모단기(孟母斷機)`란 말이 있다. 맹자가 고향을 떠나 공부를 하던 어느 날 기별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던 맹자의 어머니는 반가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들에게 물었다. “공부가 어느 정도 됐느냐”. 맹자는 대답했다. “아직 미치지 못 하였습니다”. 이 때 맹자의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실을 끊고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지금 짜고 있는 베의 실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고 꾸짖었다. 이 말에서 유래해 `단기지교(斷機之敎)`라는 말이 생겨났다. 맹자 어머니의 교육열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작년 사교육비가 또다시 늘어났다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작년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무려 18조6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3.1%가 증가했다. 사교육 참여율(70.5%), 참여 시간(6.1시간)도 늘어났다.원래 사교육은 공교육에 배치되는 개념으로 1960년대 초반 무렵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경쟁에서 보충교육 형태로 보편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지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또 고액 과외의 등장으로 입시경쟁의 불공정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부족한 공부를 따라 잡아주거나 아이에 따라 재능을 키워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최근 베트남 젊은 부모의 교육열이 한국을 뺨친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종전 후 태어난 세대가 사회의 주축으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나라 80년대와 비슷한 양상이라 한다.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교육적 열의는 어쩌면 당연하다. 다만 이런 사회적 욕구를 채워줄 공교육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21

예술단 방북공연

남북 화해무드가 본격화하면서 우리 예술단의 북한공연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 20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한 예술단 평양공연과 관련 실무접촉을 열게 됨에 따라 남한예술단 구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측 실무접촉 대표단은 예술단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작곡가 윤상을 포함해 통일부 박형일 국장,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박진원 선임행정관으로 구성됐다. 북측은 실무접촉 대표단으로 삼지연관현악단 현송월 단장과 김순호 행정부단장, 안정호 무대감독 등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남측 예술단의 북한 공연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지난달 9일 강릉아트센터와 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진행된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방남 공연에 화답하는 형식이다.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이 실현되면 2002년 9월 KBS 교향악단의 공연 이후 16년 만에 열리게 된 셈이다.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측 예술가들은 북한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펼쳤다. 1999년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는 패티김·태진아·설운도 등 중장년 가수 외에 1세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와 핑클이 출연했다. 2002년 9월 평양에서는 KBS교향악단이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연합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무대에 올랐고 같은 달에 평양에서 이미자·윤도현밴드 등이 공연했다. 2003년 평양 모란봉 야외무대에서 열린 `평양노래자랑`은 코미디언 송해와 북한 여성방송원 전성희가 공동으로 진행, 남북이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2005년에는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조용필콘서트가, 2006년에는 금강산에서 윤이상평화재단 주최로 열린 남북 음악인들이 합동으로 참여한 `윤이상 기념음악회`가 열린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 등에서 비핵화를 둘러싼 합의나 협상이 급진전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않다면 정서적인 교감을 앞세우는 문화예술교류를 하는 것이 남북 긴장완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평화든, 통일이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묵묵한 우보로 뚜벅뚜벅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3-20

수달의 도시

수달은 족제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더 크다. 몸길이가 65~75㎝ 정도이며 꼬리 길이가 몸길이의 3분의 2정도 차지한다. 야행성이며 물가에 서식굴을 가지고 있다. 육식성이다. 주로 어류를 섭식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조류, 포유류, 양서류까지도 먹는다. 하천 생태계의 최상의 포식자이며 핵심종 역할을 한다고 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유라시아, 아프리카, 북미 등 13종의 수달이 있다. 한국에 서식하는 수달은 유라시아종이다. 과거에는 한국에서도 수달을 전국에서 볼 수 있었으나 모피용(毛皮用)으로 남획되고 하천이 황폐화되면서 그 수가 확 줄었다.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 330호로 지정되고, 2012년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수달은 해당지역 수환경의 건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수환경의 지표종이라 보고한다. 수달의 서식은 그 지역 생태환경의 바로미터인 셈이다.대구에서는 2005년 1월 4마리의 수달이 신천에서 처음 발견됐다.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이후 대구시와 환경단체의 보호를 받은 수달은 다음해 11월 조사에서 최소 16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시 주최로 민간 야생동물단체가 오랜 시간 연구해 보고한 내용이다. 개체 수 증가와 함께 서식지도 금호강을 지나 신천을 거쳐 가창댐으로 이어지는 전 지역을 이용한다고 보고했다. 작년 8월 수성못에서도 수달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수달의 서식 영역이 그만큼 넓어진 것으로 해석된다.올 들어 대구시 북구 팔거천에서도 수달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구시가 매우 고무되고 있다. 신천에 이어 팔거천에서도 수달 서식이 확인되면서 친환경도시 대구를 알리는 데 수달을 적극 활용한다는 생각이다. `수달도시 대구`를 관광 상품으로 연계하는 방법도 모색키로 했다.작년 12월 수달 이모티콘을 자체 제작해 배포한 대구시는 최근에는 이모티콘의 저작권과 상품권 특허를 신청했다. 이제 수달이 청정도시 대구를 알리는 홍보대사가 됐다. 반갑다 수달./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19

`리틀 블랙 드레스`

패션이란 유행, 풍조, 양식 등의 개념을 담고 있다. 주로 의복이 중심이 되는 유행을 의미하나 요즘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패션은 논리적이지 않다. 감성적이고 기발하다. 사소한 일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 그래서 패션은 파격적일 때가 많다.오늘날에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과거 우리 선조가 옷을 통해 신분과 계급을 구별했다면 지금은 옷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이미지를 표현한다.`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는 짧은 기장의 이브닝 가운이나 칵테일 드레스의 일종이다. 심플하고 우아한 디자인이 다른 패션 아이템과는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편안한 자리든 격식적인 자리든 활용하기가 쉽다. 패션 전문가들은 1926년 샤넬의 작품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으나 상징적 의미로 본격 알려진 것은 오드리 햅번이 등장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에서다. 가련하면서 심플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그녀에게 검정색 드레스는 절묘한 결합이었다.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이 옷은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특히 블랙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받쳐준 진주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업스타일 헤어, 버그아이 선글라스는 기막힌 조화로 그녀를 불멸의 영화배우로 기억하게 한다.지금도 리틀 블랙 드레스는 패션용어로 자리를 잡았고 패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자 기본공식으로 통한다.오드리 햅번이 입고 출연한 검정색 드레스를 디자인한 이는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다. 그가 9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지방시는 생전에 블랙 드레스를 세 번 카피했다고 한다. 첫 번째 것은 마드리드 의상 박물관에 있고, 다음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92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마지막 하나는 지방시 패션하우스에 보관돼 있다.의상 디자이너 한 사람이 남긴 문화적 흔적에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움을 느낀다. 이것이 문화적 가치이자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다.우리에게도 언젠가 이런 문화적 힘을 가진 디자이너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실감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