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부적절한 행동은 지금까지 논란이 된 `갑질`의 완결편이었다. 이젠 성추문 본질은 물론이고 귀국 과정을 둘러싼 진실 공방까지 벌어져 호사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 요구까지 나오면서 국격 논란으로 확산되니 청와대로서는 방미 성과 자랑은커녕 사태 수습이 발등의 불이 됐다. 갑의 도를 넘는 불법적 횡포는 을의 대응에 따라서는 이렇게 한 방에 추락할 수도 있음을 실증한 셈이다.남자접대부, 이른바 호스트바가 처음 생겨난 것은 여성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식 접대문화에서 언제나 을로서 남자 손님의 비위만 맞추던 여성들이 이른바 고객으로 신분 상승한 것이다.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강요당했던 여성 고객이 갑으로서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이 호스트바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 호스트바의 고객이 이젠 가정주부나 여대생 등 나이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인 을을 갑으로 만들어 주는 곳, 그것이 남자 접대부가 등장한 배경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을은 갑이 되고 싶어 한다.갑의 횡포를 막는 방안의 하나로 계약서상의 표현에서 갑과 을을 바꿔 쓰는 안이 나오고 있다. 아예 갑이나 을 대신 구매자와 공급자 등 실명제로 표기하는 계약서가 등장할 태세다. 갑과 을은 단지 계약서상의 관계를 대신할 뿐이다. 갑과 을로 표현되는 거래 당사자는 계약에 따른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의무를 위반하면 물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것이 언제나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대 일의 평등한 조건은 더욱 아니다.갑과 을을 바꿔 쓴다고 갑과 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바람직하기는 `기브 앤 테이크`의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는 관계이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한 쪽은 칼잡이를, 다른 한 쪽은 칼날을 잡게 되는 것이 갑과 을의 관계다. 칼자루를 잡은 쪽에서는 그러다보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틈만 나면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 하고 여기서 을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중국 북경에서 중국 상인들이 개성상인이 가져온 인삼을 사지 않겠다고 담합했다. 천리길 국경을 넘어 힘들게 가져온 인삼을 도로 가져갈 리는 없을 테고 결국에는 손을 들고 헐값에 내놓을 것이라 계산에서였다. 갑의 횡포였다. 뒤통수를 맞은 개성상인들이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인삼 뭉치를 객사 마당에 쌓아놓고 `헐값에 넘길 바에야 차라리 모두 불태워 버리겠다`며 불을 질렀다. 중국 상인들이 혼비백산, 담합을 풀었다는 얘기다. 개성상인들은 두 손 든 중국 상인들로부터 인삼 값을 예년의 두 배로 쳐서 받아냈다. 을이라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사례다.비즈니스석 승객의 여승무원에 대한 갑의 횡포 파문은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에 대한 욕설 파문으로 세상 모든 영역에서 반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양유업이 악덕기업으로 매도되면서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임직원이 공개 사과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성난 민심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즈니스석의 갑도, 유통업체의 갑도, 심지어 해외 순방 외교에서의 갑도 도 넘는 횡포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세상의 모든 을은 갑이 되고 싶다. 아니, 적어도 갑의 횡포를 깨뜨리고 싶다. 다행히 사회적 흐름이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과 사회적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을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남양유업의 경우처럼 을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또는 인삼을 불사른 개성상인처럼 피해를 각오하고 상황을 깨뜨리려는 각오와 실천이 필요하다. 아니면 워싱턴 대사관의 인턴 여대생처럼 또는 비행기 여승무원처럼 사실을 공개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용기가 그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갑과 을의 지배 피지배 구조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3-05-13
▲ 이경우 편집국장산골마을 청송의 한 초등학교에서 주차장을 만들어놓고는 학교 통학버스로 주차장 입구를 꽉 막아버렸다. 학교 통학차량과 교직원만 이용토록 하기 위해서란다. 특히 야간에는 통학버스 4대만이 덩그러니 주차장을 지키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주차장 이용을 막아 교육기관답지 않은 용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서울 도심 한복판 롯데호텔에서는 입구에 주차한 60대 제빵사 회장이 간 크게도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렸다나 어쨌다나.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그는 사과하고는 빵 공장 문을 닫아 버렸다. 졸지에 종업원들만 실직자가 돼 버렸다.차만 세워두면 주차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주차 문제는 이제 모든 장소 입지 조건의 첫 번째가 됐다. 사무실 근처 도심의 이면도로는 주차된 차량들로 아슬아슬하게 통행해야 한다. 인근 주차장은 텅 비어 둔 채. 어쩌다 교통량에 비해 넓은 도로가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주차장이 돼 있다. 밤이면 대형 트럭에서부터 버스, 승용차 등으로 도로가 졸지에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다. 자기 집 앞에 쓰레기통이나 벽돌 등으로 다른 차를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더이상 별나지 않다.포항 산불 이후 백화점 인근 대로변에 커다랗게 현수막이 내걸렸다. 백화점 고객들의 불법 주정차로 소방차 진입이 막혀 진화가 늦어졌으니 백화점이 피해를 보상하라는 주민들의 주장이다. 마침 이 골목에는 초등학교도 있는데 학생들의 등하교때면 차량과 학생들이 뒤엉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어르신 교통봉사대들이 학생들의 등하교 지도를 하고 있지만 차량들이 어디 눈이나 깜짝하나.깊은 밤, 요란한 자동차 경보음이 신경을 거스른다. 누군가가 주차하다가 도난 경보장치를 해 둔 남의 차를 접촉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수백명이 함께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차량에 경보장치까지 달아놓고 차는 통행에 지장을 주건 말건 통행로에 버젓이 주차해놓는 강심장을 보면 어느 나라 운전면허인지 궁금해진다.소위 선진국은 주차 문제부터 다르다. 이웃 일본만 해도 그렇다.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지역을 가 봐도 차량은 어김없이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기차를 타고 농촌 지역을 지나면서 드넓은 벌판에 드문드문 농가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그곳에는 반드시 차고가 있고 차들은 어김없이 차고에 주차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도심은 물론 차를 함부로 세울 수 없다. 주차장이 없으면 차를 갖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승용차에서부터 버스나 대형 화물차까지도 어김없이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도심 공연장이나 쇼핑센터, 음식점 같은 곳에는 반드시 주차장이 있었고 모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유럽이나 홍콩만 하더라도 불법 주차는 꿈도 못 꾼다. 잠시라도 불법 정차할라치면 엄청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주차장에서만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차량이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정차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도록 제도화 돼 있다. 호텔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차 빼라 한다고 뺨을 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왜 유료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도로는 차가 다니기에 불편하도록 불법 주차가 판을 치나?우리도 모든 차량은 차고지를 의무화하면 어떨까. 지금 영업용 버스나 택시 트럭들도 차고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도로를 주차장 쯤으로 쓰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 도로 불법 주차에 범칙금을 왕창 매기면 어떨까. 예전에 차고가 없으면 차를 살 수 없도록 차고지증명제를 시행하려다 그만 둔 것으로 기억한다.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한다면 자동차 메이커에서 반대를 할까? 집 없는 사람들이 반대를 할까?이젠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무료 주차장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차고 없는 불편 또한 집 없는 설움 못지않다. 더 많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차는 주차장에 세우는 것을 생활화할 일이다. 이런 것도 법으로 규제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선진국은 없다.
2013-05-06
▲ 이경우 편집국장대통령과 악수할 때, 손을 가볍게 내밀어라. 힘주어 잡지 마라. 그냥 악수하는 시늉만 하라는 거다. 처음으로 대통령과 악수했을 때의 경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유권자들과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니 대통령의 손을 꼭 잡지 말라고 다그치던 수행원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만난 그 기쁨과 감격을 간직하려는 국민의 간절함을 4천만명중의 한 명으로 치부하고 건성으로 대하려는 대통령도 야속했다. 그런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대했다는 인사가 나타나 세계 매스컴의 비난을 사고 있다.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 겸 에너지 벤처기업 테라파워 회장이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한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세계 각국 정상이나 국제기구 수장을 만날 때도 더러 그런 식으로 인사를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우리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대한 것은 국제적 비난을 사고도 남을 만하다.우리나라가 괜히 동방예의지국인가. 유별 예의를 따진다. 예의에서는 경력이나 능력보다 앞서는 것이 나이다. 우리는 특히 상대가 서비스업 종사자일 경우 나이가 적으면 하대하고 본다. 경로당에 가서도 나이가 적으면 담배 심부름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문화다.이번엔 비행기안을 경로당이나 회사 중역 사무실로 착각한 인사가 나타났다. 포스코에너지의 상무가 미국 로스엔젤리스로 가는 국적기에서 기내식을 트집 잡아 여승무원을 폭행했다고 인터넷이 들끓었다. 그의 신사답지 못한 행동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사표를 냈고 또 처리됐다. 정준양 그룹 총수가 사과까지 했다.그는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기내 서비스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비지니스석이었고 인천공항에서 LA까지는 14시간 정도 걸리는 피곤하고 먼 항로다. 비행기라는 특정 공간에서 10여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을 당사자의 해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승무원 보고만으로 여론재판 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이 고작 한 끼 라면 때문에 사직이라니, 행위 치고는 너무 심한 대가 아닌가 동정심도 생긴다.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승무원의 서비스에 불만을 가졌고 단단히 화가 나 있었던 듯하다. 빈 자리가 있었고 그는 멋대로 움직이는 대신 승무원에게 옮겨도 되느냐고 정중히 물었는데 승무원의 반응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일반석의 갑절이나 되는 요금을 물고 특별대우받는 비지니스석을 담당하는 승무원의 업무 처리도 문제지만 이렇게 근무 중 습득한 개인 신상을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항공사 처사도 불만스럽다.어쨌든 그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여승무원을 사무실 비서(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쯤으로 보았던 것일까.이웃에 작은 애완견을 길러온 집에서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강아지로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처음 아들이 어렸을 때는 몰랐었는데 아들이 차츰 자라면서 터줏대감 강아지와 서열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강아지는 점점 자라나는 이 아들에게만은 절대 자신의 지위를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인은 귀띔했다.아래 위 서열을 분명히 하는 개로서는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드는 아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절대 대드는 법이 없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만만한 상대가 도전한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용납하지 않는 것이 개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욕이 나온 듯하다.
2013-04-29
▲ 이경우 편집국장대학에 조직폭력배가 침투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폭력배들이 김천과 구미지역의 대학 총학생회를 접수하고 교비를 횡령하는 것은 물론 영세업소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양아치같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폭력배라고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폭력이 대물림되도록 대학 당국은 몰랐다는 것인가? 이런 범죄행위가 주변의 적극적 협조는 아니더라도 방조 또는 묵인한 탓은 아닌지 꼼꼼히 들여다볼 일이다.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 이자성은 기업이 되어버린 범죄조직 골드문에 위장 잠입한다. 목숨을 건 그의 조직 침투는 사실 경찰에서 범죄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만든 작전이었고 그는 용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조직에서 보스의 죽음으로 벌어진 피의 후계자 다툼에서 내부의 적들을 물리치고 보스의 자리를 차지한다. 영화에서는 범죄 조직에 침투한 경찰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영화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이자성처럼 위험한 조직에 위장 잠입한 기자가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대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북한 잠입 취재에 성공한 영국 BBC 방송의 존 스위니 기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런던 정경대 강사인 부인의 협조로 이 대학 역사학 전공의 박사과정 학생인 것처럼 위장하고 학생 단체관광단에 포함돼 북한에 잠입한 것이다.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와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 위험하고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기자가 있었다. 스위니도 “차우세스쿠의 루마니아, 후세인의 이라크, 카다피의 리비아 등도 가 봤지만 북한은 가장 무서운 독재국가였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그러나 그의 잠행은 무모했다. 종군기자는 전쟁의 참혹함과 전선의 현황을 후방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스위니는 북한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잠행했다. 그런데 그의 잠행은 런던정경대 학생들의 단체중 한 사람으로 참가한 것이었고 그의 신분이 발각됐더라면 학생들의 신변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대학 측은 그의 잠행 자체가 학생들을 속인 신분 위장이었으며 자칫 학생들을 위기에 빠뜨릴 뻔했다며 그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잠행이 언론의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지는 나라마다 언론사마다 규정이 있으니 따지고 싶지 않다.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나쁜 점, 곤란한 점만 파헤쳐 공개하는 질 나쁜 족속들만은 아니라는 얘기다.기자라고 하면 흔히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전황을 보도하는 종군기자나 장대비가 퍼붓는 악천후 속에서 지상의 모든 것들이 씻겨가는 현장을 리포트하는 TV기자를 상상하기 쉽다. 물론 그들도 기자다. 뉴스의 인물을 찾아 며칠씩 대기하며 답변을 얻어내려는 기자도 있고 재난 현장에서 숨넘어가는 피해자에게 사고 순간을 물어보는 악역을 담당하는 것도 기자다.세계 최강의 힘을 가진 미국 대통령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도 기자들의 힘이었다. 비록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처럼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존 스위니처럼 자신의 안위는 젖혀두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있다. 한국에도 있고 우리 지역에도 있다. 다만 그런 세계적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 기자들의 폭로 영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관습`과 `관행`, 그리고 `비밀`들을 하나 둘 양지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신분을 속이고 다른 조직이나 국가에 침투하는 것은 본인에게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기도 하다. 신분을 위장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국가는 이미 병든 국가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안에서도 그런 신분 위장이 횡행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2013-04-22
▲ 이경우 편집국장TV에서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TV속 농촌은 일용이와 응삼이가 등장하는 김회장님 동네다. 기웅아재와 단비가 주말이면 경북지역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그렇고 늙은 뽀빠이가 일요일 아침마다 전국의 농촌을 찾아 어르신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이들이 찾아가서 연출하는 TV 프로에 등장하는 농촌은 낭만을 넘어 다분히 신파적이다. 반세기 전 배곯던 옛날로 되돌아가면 며느리를 학대하고 일만 시키는 가난한 시어머니가 있고 노름판과 술판을 전전하는 사내가 남편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고생담이 이어지고 그 모진 세월 속에 훌륭하게 키워낸 자식들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해피엔딩이다.그런 프로들이 직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에게 향수를 자극하거나 적어도 인생 2막을 농촌에서 시작하게 만드는 데 일정부분 기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귀농 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 한 해 전국적으로 도시에서 농촌 지역으로 귀농 귀촌한 사람은 2만7천가구 4만7천명. 40,50대가 60% 이상을 차지하면서 늙어가는 농촌에 약간의 새바람이 되기도 한다. 이중 귀농만도 1만1천여 가구의 1만9천657명이란다.지방자치단체들마다 온갖 혜택과 지원 방안을 만들어 도시인들의 귀농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경북은 귀농 1번지라고 선전해댄다. 지난해만도 전국 귀농인구의 18.5%인 2천80가구 3천596명이 경북도로 와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늙어가는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귀농 행렬은 진행형이다. 귀농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힐링은 바로 농촌에서, 인생 2막은 농촌에서, 여유로운 인간다운 삶은 농촌에서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듯 보인다.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귀농에 성공한 50대 참외재배 농민의 체험담을 들었다. 귀농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몇 번 TV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그럴 때마다 나가서 귀농은 그냥 낭만이 아니라고 말해도 방송국에서는 “제발 좀 좋은 이야기, 폼 나는 이야기만 해 달라”고 하더란다. 그러나 농촌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해 뜨기 전부터 들판에 나가 해가 빠진 이후까지 뼈 빠지게 일해도 그 수확은 도시의 수고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한 번 실패하면 그 피해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몸으로 느껴야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능력에 맞춰서 하고, 그리고 한껏 농땡이도 부려가면서 하루를 즐기고 잠자리에 든다고? 그런 농촌은 없단다. 그의 손은 더 이상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아니었다. 머리에 수건을 겹겹이 두른 그의 아내의 구릿빛 건강한 얼굴은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영락없는 결혼이주 여성으로 오인했을 뻔했다. 그만큼 몸으로 고생해서 오늘을 일구었다고 그는 말한다.전원생활은 낭만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귀농 사이트와 블로그가 지천이고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TV에서 지천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또 우리 주위에서 그보다 더 많이,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귀농에서 실패한 사례이기도 하다.환상만 갖고 농촌을 찾았다간 실망만 하고 되돌아온다. 더러는 1년을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4,5년을 살다가도 도회지로 되돌아오는 사례도 있다고 귀농교육 관련 공무원은 설명한다. 귀농이 되든 귀촌이 되든 농촌과 그 현실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TV 속의 낭만과 환상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귀농 열풍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결정,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가봐야 안다`는 선배들의 경험담에 귀 기울일 일이다. 귀농, 낭만이 전부는 아니다.
2013-04-15
▲ 이경우 편집국장자주 찾는 회사 근처 작은 식당의 입구 문틀위에 빨간 부적이 붙어 있다. 재물과 보화와 사업운과 세간 출세운을 불러 들인다는 내용이다. 부적 한 장으로 그런 운을 기대하는 식당 주인의 소박한 꿈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부적 한 장으로 식당뿐아니라 식당을 드나드는 고객들 모두에게 그런 운이 따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우리 정치에서 보는 수많은 슬로건처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을 구체화한 슬로건이다. 그 슬로건이 어려우면 `거시기`가 된다. 5.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허리띠 졸라매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슬로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슬로건을 통한 이념적 결속을 가져온 천재였다. 재건으로 시작해서 건설, 자립, 증산, 민족중흥, 새마을 운동 그리고는 유신까지.어느 대통령인들 그런 슬로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신한국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불신과 만연한 부정부패를 한국병으로 규정하고 공명선거로 이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으로써 자주 평화 민주의 삼대원칙아래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무대에 우뚝서는 한민족공동체로 신한국을 창조하자고 강조했다. 임기 내내 세계화를 부르짖은 김 대통령 정권당시 공무원들은 세계화에 맞추느라 호들갑을 떨었다.실용정부를 표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슬로건은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경제살리기였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른바 MB노믹스라 부르는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워 7% 성장과 4만불 소득, 세계 7위의 경제를 이룩하자”며 `줄푸세 타고 747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경제가 구호만으로 살아지지는 않았음이 그의 임기 내내 실패한 경제 정책이 증명했다.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표인 창조경제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했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위해 경제를 부흥시키고 거기에 창조경제를 등장시켰다.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 창조경제라 설명했다.그때만 해도 창조경제는 그냥 과학기술과 IT산업이 기존 산업과 융합하는 정도로 이해됐다. 그것이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불거진 것이다. 여당 의원들로부터 매도를 당하면서 일이 불거졌다. 창조경제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박 대통령은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지금 대한민국은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에 매몰돼 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자치단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은 기관들대로 창조경제를 업무에 접목시키는 묘안을 짜내느라 궁리다. 대구시는 발 빠르게 `창조사과`를 대구 대표 아이덴티티로 결정했다. 알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쩌면 말 장난 같은 창조경제. 지금까지 기업들이 해 온 것을 이름만 바꿔 창조경제라고 분칠했다는 폭언도 들린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슬로건에 매몰돼 있었다. 정치적 슬로건을 대표적인 것만 들어봐도 이렇다. 정권 담당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지금 국민들은 더 이상 20세기식 슬로건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고 자신들의 처지와 현실을 짚어보기도 하고 뒤에 이어질 결과를 예측해서 뛰어든다는 것이다.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이 이 시대의 부적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20세기 새마을운동을 벌일 때처럼 국민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단결해서 국가의 부를 만들어낼까. 어쨌건 창조경제가 주저앉은 우리 경제를 벌떡 일으켜 세우고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2013-04-08
이경우 편집국장수십 년만에 만난 어릴적 고향 친구가 건네준 명함에는 이학박사 XXX라고 뚜렷이 박혀 있었다. 그가 한의약계통에 종사한다고 들었는데 느닷없는 박사라서 그의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구태여 박사 학위를 고집하는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사람을 상대로 신뢰를 줘야 하는 그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배우 김혜수씨와 방송인 김미화씨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을 놓고 세간의 뒷담화가 무성하다. 김혜수씨는 2001년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의 `연기자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관한 연구`에 대해 표절을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미화씨는 2011년 같은 대학원의 석사논문 `연예인의 평판이 방송 연출자의 진행자 선정에 미치는 영향`의 표절 논란에 대해 “심각성을 간과했다”면서도 “트집잡기 위한 것”이라 항변했다. 이성한 경찰청장 후보자가 자신의 경찰학박사 학위 논문 표절에 대해 “사려깊지 못했다”며 사과했다.경찰청장이나 연예인의 논문 표절은 그들의 학위가 그들의 직무 수행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만큼 학자들의 논문 표절만큼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논문이 이론적 구축이나 학문적 성과를 증명하는 논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학위의 목적이 학문 자체보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되거나 신분 세탁용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석·박사 학위라는 것이 으레 그러려니 여겨온 우리 풍토다.우리 사회에 학위 검증 열풍을 몰고 온 사람은 노무현 정권 말기의 신정아씨였다. 젊고 매력적인 그는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로 한순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스스로의 파멸뿐아니라 우리 사회에 가짜 학력에 대한 검증 선풍을 몰고 왔다. 당시 정치계와 관계 종교계 등에서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가짜 학력과 학위논문 표절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대졸자가 전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학사 학위로 평균 수준을 웃도는 상위 그룹에 들었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다. 20세기 말, 국민 누구나 의무교육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대가 왔고 고졸자는 기회가 되면 누구나 대학 문을 두드렸다. 대학도 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 대학이 없는 시골 중소도시가 없을 지경이 돼버렸다. 드디어는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학식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런 풍토를 틈타 등장한 것이 대학들의 이른바 특수대학원 열풍이다. 여기엔 정부의 대학원 증원 정책도 편을 들었다. 그냥 학사 학위만으로는 상위 그룹에 포함될 수 없다는 무언의 사회적 합의가 대학원 간판이고 석사 박사 학위를 권했다.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과는 거꾸로 가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과는 차별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기능 중 하나가 석박사 학위이다.우리 사회에는 유무형의 각종 차별이 엄존한다. 남녀간 성차별에서부터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넘어 다른 나라와 우리를 구분할 정도의 나이차별도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이 학력 차별이다. 이것 때문에 대학들이 많은 사람들의 허영과 사욕을 채워주면서 반대 급부를 챙기는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는 고급 사기에서 학위 논문을 표절하는 부도덕한 지식 절도 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연예인이라고 석사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연예인의 학구열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지적 욕구를 폄하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학위를 통한 사회적 성취와 개인적 성공을 잡으려는 그들의 의지에 존경심을 보낸다. 문제라면 그들에게 석사 학위를 부추기고 표절 논문에도 학위를 준 대학이 징계를 받아야 할 일 아닌가.그건 그렇고 김혜수씨처럼 매력있고 예쁜 여배우라면 구태여 석사 아니라도 괜찮을 텐데.
2013-04-01
▲ 이경우 편집국장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결국 물러났다. 38일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유임시키는 선에서 물러섰다. 그러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무너뜨렸다. 정치철학을 달리하는 이명박 정부 각료와는 함께 일 할 수 없다며 이용걸 차관을 국무회의에 출석시켰던 박 대통령이었다. 이쯤되면 박 대통령도 스스로의 인사스타일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야당의 충고를 반영해야 한다. 벌써 6번째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두 아들의 병역비리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명 닷새만에 사퇴한 데 이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그리고 성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김학의 법무부차관 후보자,여기에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까지. 하나같이 임명 전 검증 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때문이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물러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격을 놓고 야당뿐 아니라 막판에는 여당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그런 위인을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야당의 의지가 세를 얻어가면서 김 후보자를 장관으로 앉혀야 하겠다는 청와대의 부담도 커졌다. 무기 로비 등 30가지도 넘는 의혹으로 청문회 결과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진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당시 부인한 주식 보유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그 주식은 복역중인 전 정권의 실세가 개입돼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KMDC 주식이었다.그런데 38일이나 버틴 데 비하면 “본인으로 인하여 국정운영에 부담을 줘서 심적 부담이 컸다”는 사퇴 명분이 우습다. 또 “정치적 논쟁으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국가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대통령 인식도 국민의 정서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국정 아닌 개인적 명분으로 버텨왔다는 말인가. 아직도 김 후보자에 대한 자질 시비가 정치적 논쟁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여당에서도 그렇게 청와대 눈치만 보고 바른 소리 하는 국회의원이 없어 국정운영이 지리멸렬해졌다는 언론 지적에는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박 대통령은 후보 당시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장담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어느 정권에도 없는 지연 출발을 하고 있다. 정부 조직법이 그렇고 장관 임명이 그렇다. 이래서는 수많은 공약들을 과연 임기 내 해결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의심한다.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실천에 옮길 각료들이 최전방에 자리를 굳혀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측근들을 곁에 두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을 차지하고 있으면 개혁은커녕 대통령의 자리마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고들 그런다.지금 국민들은 피곤하다. 이제 더 이상 잘 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잘 하길 바랄 뿐이다. 정치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는 쌓일 대로 쌓였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대통령도, 경제 전문가라던 대통령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고 국민들은 평가한다. 정말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면 먼저 국민들에게 인사로 신뢰를 심어 줄 일이다.이제 겨우 대통령 취임 한 달. 어제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 8명의 차관급을 임명했다. 앞으로도 대통령은 수많은 자리들을 결정해야 하고 여러가지 정책과 가치 판단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대통령의 중심이 분명히 서야 국민들의 혼돈이 가셔질 것이다. 존경과 믿음을 주는 측근들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국민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2013-03-25
이경우 편집국장지금 포항은 도시 전체가 우울하다. 포항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포스코의 경기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했던 도시로서의 영광은 잠시였고 대통령 임기 가 끝나면서 승자의 저주 후유증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실세였던 형님을 비롯, 주변 인물들이 영어의 신세로 전락했다. 더구나 그 형님의 지역구 후임자가 상처투성이로 국회에 입성하더니 아예 식물 국회의원이 돼 버렸다. 지역 입장을 대변할 대표조차 유명무실해졌다. 지금 포항의 무기력증은 바로 정치력 부재에서 출발한다.최근 포항에는 큰 산불이 났다. 불이 나자 박승호 포항시장은 물론 이병석 국회부의장까지 급히 현장으로 나와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복구와 지원책을 짜내느라 지혜를 모았다. 그런데 난리통 어디에도 김형태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 김 의원은 서울에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해서 “결정적 하자가 없는 것 같다. 의혹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찬성해주는 것이 맞다”고 해서 누리꾼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것이다.산불 뿐만이 아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며 정부 차원의 행사까지 벌일 때도 김 의원은 지역구 의원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각급학교 동창회에서부터 송년모임이나 신년교례회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금의야행도 이런 금의야행은 없다. 지역 국회의원을 두고도 없는 듯 지내야 하는 포항 시민들의 속은 얼마나 상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눈총받는 포항시민의 자존심은 또 얼마나 무너져 내렸던가.김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동생 부인 성추행 물의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자신의 항변처럼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그것도 압도적 표차로 당선을 꿰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인 시절부터 선거법 위반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고달픈 의원 생활이 시작됐다.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동료 국회의원들이 사퇴 결의안을 내기에 이르렀다.경찰은 선거기간 이전부터 여론조사를 가장한 전화홍보 등을 들어 국회의원 당선 보름만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김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그래도 영장은 기각됐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4개월 동안 수사 끝에 지난 해 8월말에야 김 의원을 선거법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진작 기소했더라면 지난해 12월 대선과 동시에 국회의원 재선거가 실시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만큼 의원 생활을 연장시켜준 셈이다.김 의원은 최근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내 무죄를 아직도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항에서 4월 재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자신의 거취는 대법원 판결 전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대법원이 3월중 선고를 예고하지 않았으니 이 말은 사실이 됐다.그러나, 그러나 김 의원이 버텨봤자 고작 1달이다. 늦어도 4월 중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김 의원의 불명예 퇴진이 거의 확실시된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법원 판결 추세나 지금까지의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 및 공판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 불명예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김 의원의 집념이 존경스럽다. 그렇다면 다른 모습으로 그 이름을 지켜낼 수는 없을까.김 의원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인이자 전 언론인으로서 본인의 명예를 지키고 지역민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마지막 선택이 있긴 하다. 기회는 많지 않다. 이것이 김 의원에 대한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를 뽑아준 지역민에게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다. 4월 재선거를 할 것인가. 10월까지 국회의원 없는 지역구가 될 것인가. 벌은 한 번 쏘고 죽는다. 김 의원의 장렬한 모습을 보고 싶다. 김 의원의 결단을 기대한다.
2013-03-18
▲ 이경우 편집국장“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 조직 개편안 논란과 혼란 상황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주 국회에서 가진 사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꿈?`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고귀한 분의 자기 희생이자 봉사를 스스로 내팽개친 꼴이다. 그럴까. 장관이라는 자리, 명예와 부(엄청난 연봉과 또 경제적 이득 및 이권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 권력까지 갖는 자리다. 그것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자리가 아니다.김 전 후보자의 능력은 알려진 것만으로도 탁월한 것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 미국 중앙정보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그리고 재산이 1조원대에 이를 정도로 그는 능력을 검증받았고 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장관이 되면 본인에게는 헌신이 되고 국민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미래 성장 동력과 창조 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온 분이라며 안타깝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국민들이 그를 내쳤다는 것 아닌가. 그의 사퇴는 개인에게는 꿈의 좌절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손해가 된다는 말씀이다. 박 대통령도 신념이자 국정철학을 실천할 책임자로 미래부의 신설을 구상했고 그 선장으로 삼을 셈이었다. 그런데 그 선장이 배가 출범도 하기 전에 배에서 내려 버린 것이다. 그의 사퇴를 보면서, 언론이 제기했던 수많은 의혹을 되씹어 보면서 은근히 심사가 뒤틀린다. 사퇴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공적 업무능력과 프라이버시는 다르다지만 찜찜한 기분은 도대체 뭘까.국가에 헌신하겠다는 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다. 그렇다. 선거때만 되면 나오는 소리.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고향의 발전을 위해 한 몸 던지려고 한다는 이야기의 데쟈뷰다. 비록 그 선출직이 장관만큼 높지도, 장관의 권력을 갖지도 않지만 선거권을 가진 일반 국민에게는 엄청 대단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선거때의 굴신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어느 사이 뻣뻣이 목줄기에 풀을 먹인 선량들을 보노라면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지방자치단체장이 일요일도 반납하고 지역 순시에 나섰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동정으로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단체장의 업무는 그야말로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두가 공무가 되는 느낌이다. 현장 순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어느 단체장은 휴일이면 가끔 자신의 학교 동창생과 각종 모임 동료들을 지역으로 불러들여 문화행사나 축제 등을 관람하고 역사 현장을 소개한다. 식사 대접에다 특산물을 한 아름씩 안겨주기도 한다. 본인이야 단체장이 휴일을 반납하고 자기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객 유치와 지역특산물 세일즈에 나섰다지만 직원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누구에게는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는 노역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휴식이나 놀이가 되기도 한다. 그 불평등을 불평할 수 없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놀면서, 자랑하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 거드름을 위해 힘든 선거 과정을 겪었다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지난 주말 포항에서는 큰 산불이 났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는 물론, 시민들이 느낀 공포심은 평온한 봄날을 전쟁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었다. 이날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박승호 포항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공직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산불 진화에 나섰다. 그들의 노고를 알지만 누구도 그들이 헌신했다고 하지는 않는다.그러니 함부로 헌신이라고 쓰지 말라. 청문회에 서는 잘난 당신들의 헌신이 국민들을 얕잡아 보는 거들먹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
2013-03-11
▲ 이경우 편집국장초등학교 즈음엔가 이순신 장군의 위국충정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시조를 배울 때다.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에서 `일성호가`는 무슨 뜻이며 `애를 끊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만으로, 또는 한자 뜻풀이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시조를 배울 때는 그러질 못했다. 한 줄기 슬픈 피리소리쯤으로 해석되는 `일성호가`의 의미는커녕 분위기를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 기도를 유지하라. 군 훈련소에서 응급처치를 배우면서 기도를 유지하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기도는 손바닥을 모으고 간절히 바라는 기도에서 단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기도 유지라는 것이 음식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해서 숨을 막지 않도록, 또는 코피가 흘러 코를 막아 숨을 막지 못하도록 고개를 옆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왜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라는 쉬운 말을 그렇게 어렵게 했을까. 교관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우리는 공부에서도 너무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수학이라고 하면 왠지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수치(數痴) 수준은 아니라도 방정식이라면 괜히 주눅이 들고 뒷머리가 당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진작 이런 교육 방법이 왜 도입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진다. 학창시절에는 그런 골치아픈 수학을 왜 만들었을까 따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파스칼은 지독한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수학으로 고통을 이겨냈다지만 보통 사람들은 집중력을 기르기보다 오히려 두통을 경험하는 것이 수학이다.스토리텔링.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차차 대상을 확대해가며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도록 수학에 이야기를 입힌다는 거다. 우리 나라 학생들이 수학이나 과학 올림피아드 같은 국제경시대회에 나가서는 세계 상위권을 휩쓸지만 정작 수학 성적에서는 하위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교육학자들은 그 이유를 창의력에서 찾는다. 그래서 교육 방법을 공식 외우고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방식에서 스토리텔링을 입힌 창의력 발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창의력이 국민 행복과 연결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20번이나 반복했던 행복이 아이들의 수학 교육 방법을 바꾸는 데서도 찾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왜 그럴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책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생각의 힘을 키워 공식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며 이것이 수학을 스토리텔링으로 바꾸는 이유라는 거다.생각의 힘,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비천한 현실을 욕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살면 그 비천함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고 제임스 앨런은 `위대한 생각의 힘`에서 갈파했다. 비록 현실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고 생각을 키우며 바른 자세로 살아간다면 어느 날 자신이 현실과는 맞지 않게 부쩍 자라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방법을 바꾸는 것. 이제는 성공이 아닌 행복이다. 공부도 성적 지상주의에서 이해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왜 공부에 목숨을 걸고 공부로 성공해야 하는가? 결론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번 수학 스토리텔링이 그 행복을 찾아가는 여러가지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수학에 스토리텔링을 입히고 그런 교육을 통해 공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면 장차 인생에서도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첫 단추가 이번 수학 교육 바꾸기에서부터 기대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내가 너무 `오바`했나. 어쨌든 새내기 학부모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기대가 큰 교육 방법의 변화다.
2013-03-04
▲ 이경우 편집국장1천824일 남았다. 오늘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남은 날수다. 취임식날 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마뜩찮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삼가하고 자신에게 엄격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받는 성공한 대통령을 담보하는 부적으로 삼기를 바라는 뜻에서 충언으로 박근혜 대통령님의 취임을 축하드린다.오늘같이 기쁜 날. 어찌 새 내각이 대통령 취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지난 정권의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선거에서 진 야당이 용심을 부린다고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 패배자를 보듬는 승자의 여유를 볼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승부에서 졌고 그래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야당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빼앗겠다는 승자의 오만이 조직개편의 실패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의 집권 구상을 존중해주지 않는 야당을 탓하기엔 여당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가 꽉 막힌 불통정권을 미리 내다보는 듯해서 국민은 불안하다.주역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간 항룡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하게 된다`(亢龍有悔)고 했다. 공자도 항룡은 너무 높아져서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렇게 겸손함이 없으면 끝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된다는 참언처럼 들린다. 끝까지 올라간 용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취임식 날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는 불경을 용서하시라.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라. 산에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위험하다. 많은 등산 사고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이 발생한다고 산꾼들은 말한다. 오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그 신난했던 날들을 되짚어 보라. 권력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수많은 도전과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등뒤로는 온갖 모함과 이간질, 배반, 음모, 테러까지 극복해왔다. 오늘의 영예는 결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강을 건넜으니 배는 필요없어졌다. 토끼를 잡았으니 사냥개는 삶아도 된다. 과연 그런가. 산에서 내려가지 않을 방도가 있나.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산에 머무는 동안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적당히 즐겼으면 내려가야 한다. 내 앞에 올라왔다가 내려간 사람들처럼. 위험하지 않게 하산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정상에서 머무는 시간, 올라오면서 준비하고 기대했던 수많은 작업들을 하나 둘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초심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주위의 바른 소리를 귀담아 듣는 열린 자세야말로 중요하다. 싫은 소리, 쓴 소리라도 그것이 소통의 첫 단추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선거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재론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국민들은 참여정부가 임기 초반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 권력기관이나 재벌개혁이 힘 있게 추진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초반 광우병 촛불 집회로 개혁 동력을 잃었던 경험을 지켜보았다. 박 대통령은 이런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당선인 시절 인수위 토론회에서 “파급력이 큰 공약들을 뽑아 초반에 사활을 걸고 집중적으로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추진 의지가 강하더라도 국민의 협조가 없으면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어떤 역학자는 청와대의 터가 여성에게 더 맞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곳에 들어갔다가 성한 몸으로 나온 사람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라갈 데까지 다 올라가서 이제 내려오는 길만 남은 박 대통령에게 그 징크스를 깨고 5년 뒤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나오는 대통령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2013-02-25
▲ 이경우 편집국장`7번방의 선물` 감독 이환경이 한 방송과 인터뷰하는 걸 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렇다. 예승이 역을 뽑는 오디션에서는 갈소원의 점수가 꼴찌였다. 그런데 감독은 이 꼴찌를 선택했다는 것 아닌가. 그의 천진함 때문이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 `아이다움`이 예승 역으로 선택된 배경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잘 한다길래 시켜봤더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렇다. 어린이란 저런 것이다.” 이 감독의 설명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실제 상황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감독은 갈소원 어린이에게서 확인한 것이다. 뻔한 이야기. 여섯 살 예승이가 흉악범들과 함께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신파다. 이 영화에서 바보 용구는 오로지 딸 예승이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둘의 천생 궁합에는 예승이의 천연덕스러움이 밑천이다. 그 예승이의 연기는 쥐어짜내고 만들어진 연기가 아닌, 그의 몸에서 나온 연기라는 것이다. 세일러 문 가방이 소원인 여섯 살 예승이의 해맑은 미소, 이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미국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말썽꾸러기 케빈 역을 맡은 맥컬리 컬킨의 닳아빠진 영악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지상파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정글의 법칙`은 인기 개그맨이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생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안방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 속에 개그맨의 힘든 연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아찔한 절벽 타기며 온갖 장애물을 헤쳐가는 정글 탐험이 진실이라면 그를 촬영하는 카메라 기사는 또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앞에서 또 뒤에서, 때로는 멀리서 그의 행동을 손발과 얼굴 표정까지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 안방에 전달하느라 생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극본없이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시청자에게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스릴과 조마조마함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이겠지만 어느 정도 연출이 뒷받침되고 편집됐을 것이다. 시청자에게 눈요기를 시켜주고 웃음과 여가선용의 기회를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걸 굳이 연출이 아니고 편집이 아니라고 우기는데서 시청자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24살 청년 박종우가 동료들보다 6달 늦게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여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은 기쁨을 `독도는 우리 땅` 깜짝 퍼포먼스로 날려버린 그다. 당시는 독도 문제로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었고 (비록 관중이 건네 준 피켙이었지만)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는 우리 국민들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댓가는 쓰라렸다. 대표팀이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 때 박종우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을 것이다. 박종우는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IOC는 뒤늦게나마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사전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며 박종우의 진심을 믿어준 것이다. 그 진정성을 알리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진정성이란 그런 것이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또 화가 날 때는 욕도 하고. 그것이 사람의 얼굴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다. 세련되지 못한,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순박한 우리의 얼굴들. 그런 맨얼굴들을 만나고 싶다. 공자님께서도 3천년 전에 이미 갈파하셨다.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박근혜 정부가 정상 출범할지 아슬아슬하다.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장관 후보마다 흠결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잘난 아비를 둔 자식들은 다 군대 가지 않았다. 날 때부터 평생 먹고도 남을 부동산을 안고 태어났다. 그 진실을 국민들은 알고 싶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 푼돈같은 증여세를 뒤늦게 내면서라도 장관을 해야 하겠다는 그 얼굴. 버티다 결국 사표 낸 헌법재판소장 후보. 청문회에서는 생얼을 보고 싶다. 화장발 없는 민낯을 보고 싶다.
2013-02-18
▲ 이경우 편집국장청문회에 불려갈 기회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필부지만 남 평가하는 데는 이골이 난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이다. 예전 같으면 “자신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선거에 출마해보라”는 항담이 있다. 요즘 같으면 “세상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청문회에 서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물론 청문회에 설 정도의 깜냥이 되어야겠지만.경북 어느 지방의 실제 상황이다.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행세하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아무도 그의 능력이나 인격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지방의 준공무원격인 조합의 말단 간부였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뒤 자신의 우산 아래에서 자란 2세도 지역사회에서 업을 영위하게 됐다. 그의 아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예우`해 주는데 고무돼 스스로도 자신의 신분을 격에 맞지 않게 올려놓았다.그러자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아버지가 정말 존경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좁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아버지와 아들을 돌아가며 흉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 설 이유도 없으니 그들의 흉은 언제쯤 드러나게 될까.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결국 사퇴했다. 자고 나면 새 의혹이 나오는 판이니 평생 올곧게 판사직을 살아 왔다는 본인에게도 너무나 야속한 검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가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장으로 등판했을 때 언론도 야당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어릴 때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연소 판사에서 대법관이 되고 헌법재판소장이 되고 다시 인수위원장이 되기까지는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그런데 국민들의 김용준 인수위원장에 대한 경외감이 의혹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아주 “제대로 한 번 까밝혀 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두 아들의 병역 의혹에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99% 국민에게는 의혹이 아닌 특혜이자 법을 이용한 비리로 각인됐다. 어떻게 판사 신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그런 사람이 총리에 적합하다는 말인지, 국민들 눈에는 가당찮다. 뒤늦게 제출한 해명서도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어떤 필살기를 믿고 버티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마찬가지다. 고위 공직자로서 엄청난 국록을 받으면서도 특정업무경비라는 돈을 챙겼다. 1년에 1억원씩이나 저축이 늘어나고, 시집간 딸들이 생활비를 (마누라가 현금을 좋아해서) `현금으로` 보냈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공금유용에다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부도덕한 처신으로 청문회를 통해 `양파남`이란 별명까지 얻고도 반성할 줄 모르니 지금까지 예우에 대한 배신이다.몰랐을 것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까지 가진 사람이 평생을 누리고도 더 욕심을 부리려 든다는 기득권에 대한 세상의 눈총을 말이다. 개인 이익을 국가 이익으로 치부하면서도 자신이 한 행위는 지위 높은 사람들의 업무수행과 품위 유지를 위한 관행이지 결코 사욕이나 비리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보고 있다. 다 알고 있다.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아무도 그 허물을 탓할 수도 없었고 지적해 주지도 않는다. 때로는 지나친 것이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자리씩 올라가며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하게 평가하고 덕택에 평생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세상 민심은 판단한다. 아무튼 더 이상 자신을 욕보이지 않고 사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밀실 추천 인사가 말썽인가. 지난 시절엔 그런 정도는 관행인데 청문회라는 검증이 너무 지나쳤는가. 박근혜 당선인의 불만처럼 청문회가 신상털기여서인가. 차라리 법률적 공소시효도 지났고 죄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발뺌이라도 하는 뻔뻔한 후보자를 만나고 싶다.
2013-02-04
▲ 이경우 편집국장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즈음의 얘기다. 홍콩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는 홍콩의 여러 관광지들을 주마간산식으로 이동하고는 우리 일행을 면세점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화장품이며 핸드백이며 양주에다 악세서리까지, 세계 유명 브랜드의 소위 명품들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는데다 가격 또한 시중보다 싸다지 않는가. 모두가 쳐다보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눈 호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 해 경주에서 중국의 경제인과 언론인들을 초청해 한중경제포럼을 열었을 때였다. 참석한 경제인은 물론이고 취재 온 기자들조차 경주에 면세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경주에 면세점이 없고 가까운 면세점이라야 70km 쯤 떨어진 부산에 있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면세점에 쇼핑하러 갈 수 있도록 일정을 단축하거나 줄여 달라고 주최 측에 집단 민원을 넣었다.경주에 들어서려던 면세점이 사업자의 포기로 공중에 떠 버렸다. 보문단지 내 현대호텔에 면세점을 내겠다던 서희건설은 경주 시내쪽에 면세점이 들어서야 한다는 경주시내 상인들의 압력과 사업성 등을 들어 사업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서희건설의 면세점 포기는 이웃 포항에도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철강공단을 중심으로 해양 산업도시라 불리는 포항은 독자적으로 면세점을 유치하기엔 2% 부족하다. 마침 경주 보문단지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그 영향으로 포항도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하는 또 하나의 카드를 잡게 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인구 53만명의 포항은 지금 동빈항 물길을 뚫는 포항운하 역사를 한창 추진중이다. 이 물길이 뚫리고 포항운하에 유람선이 떠다니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여기에 철강공단은 훌륭한 산업관광자원이 될 것이고 이를 활용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꿈이 아니다. 그러면 경주와 포항이 관광이라는 또 하나의 연대로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밑그림을 그리는데 면세점이 하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경주시와 포항시의 전향적인 자세가 절실하다.포항과 경주는 반도 동쪽 끝에 위치한 지리적 이웃으로 그 역사적 정서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외부인의 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에는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경쟁 심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경주 내에서조차 시내 상가와 보문단지 상가간 경쟁이 면세점 발목을 잡은 혐의도 짙다.고물 철도역을 기차마을로 바꾸어 일약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된 전남 곡성군은 섬진강변 가정 관광단지에 곡성 천문대를 세웠다. 그런데 그 천문대가 곡성군이 아닌 이웃 구례군에 위치해 있다. 이런 이웃마을의 화합과 정이 전국의 관광객들을 그러모으면서 시골마을을 활기찬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이다.경주가 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열고 국제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경주의 관광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중심으로 한 관광 인프라를 포항의 중공업 중심 산업 인프라와 상생관계를 맺어 양 도시가 서로 윈윈할 수 있어야 한다. 경주를 찾는 많은 해외 관광객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관광에서 차원을 높여 포항의 산업 관광까지 겸하게 되면 관광의 질 향상은 물론 관광산업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관광객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관광하고 동해안 드라이브를 하며 동해의 풍광과 산업도시의 장중한 현장을 체험할 수도 있다. 단순한 평면 관광에서 벗어나 체험관광과 산업관광을, 거기다가 면세점이 주는 쇼핑의 즐거움까지 더한다면 경주와 포항은 관광과 산업으로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은 어느 하나만을 보고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면세점도 경주와 동해안권 관광 인프라의 하나여야 한다.
2013-01-28
▲ 이경우 편집국장노인들은 고단하다. 자살하는 노인들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4배나 많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의 삶도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 이미 상당수 농어촌 지역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인구 10만명당 노인 자살은 2001년 14.4명에서 10년만인 2011년 31.7명으로 2배도 더 높아졌다.더욱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일하는 노인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가장 늦게까지 일해야 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 노인들이 일자리에 내몰린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복지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 때 우리사회의 주축이었던 지금의 노인들, 오늘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온 몸으로 일구어낸 주인공들. 그들의 스산한 노년은 길거리에 팽개쳐져 있다. 노인들이 나이 들어서도 일해야 하는 현실은 노인에게 노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짐을 맡겨 둔 때문이다.OECD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내놓은 고령화와 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인구대비 고령자(65~69세) 취업률이 41%로 OECD 32개국의 평균 18.5%보다 2배나 높았다. 아이슬란드(46.7%)에 이어 세계2위다. 일본은 36.1%, 미국은 29.9%, 영국 19.6%, 독일 10.1%였다. 한국의 실질 은퇴 연령은 남자가 71.4세, 여자가 69.9세로 조사 대상국중 최고였다.일하는 직장에서 퇴직은 평균 53세로 세계에서 가장 낮으면서도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 시장에 계속 잔류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노후보장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50대부터 재취업을 위한 체계적 훈련과 교육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서울이나 지방 할 것 없이,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의 최대 약자인 많은 노인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30여년을 홀로 살아온 70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가 “장례를 부탁한다”는 유서와 함께 현금 490만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부산에서는 혼자 살던 69세 남자가 숨진 지 6개월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그런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모두 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 이행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9만 여원이던 기초노령연금을 폐지하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의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재원도 문제지만 소득 구간별 차등지급도 문제다. 20만원이면 살 수 있을까.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양말 한 켤레 사 신지 않고, 먹고 싶은 과일 한 번 제대로 사먹지 않고 모아온 10만원. 한 달 꼬박 폐지를 모아봤자 3만원이 고작인 포항 채옥순 할머니(82)는 가진 자의 10억원보다 더 값진 10만원을 선뜻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23살에 남편을 잃고 지금껏 홀로 사는 채 할머니는 정부가 기초수급생활자에게 주는 30만원 덕분에 끼니 굶지 않는 은혜를 이렇게 갚았다. 가진 사람, 배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빈자일등의 실행이다.대구의 김용만 할아버지(88)는 “부모없이 혼자 지내는 아이들을 도와달라”며 자신의 아파트 전세금 1천800만원을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후 기부키로 했다. 북한 함경북도가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9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아왔다. 삼국지 몇 권을 쓰고도 남을 인생을 살아온 그는 폐지를 모아 생활하면서도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 유산을 남겼다.그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는 필요없다. 어차피 돈이 목적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인간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 한 고생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 노후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라. 인간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다.
2013-01-21
책 읽기의 좋은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 덤으로 따라오는 건, 남의 잘 쓴 글을 읽다 보면 어떻게 쓰면 되는지 그 방법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하는 건 글쓰기에도 통용된다. 물론 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별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잘 쓰기 위해선 잘 읽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너무 많은 답이 있어 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읽기`이다. 소설가 이승우 역시 `잘 읽어야 잘 쓴다`고 했다. 그처럼 잘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읽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글 쓰는 법` 등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이미 책 속에서 답을 얻었기 때문에 물을 이유가 없다.반면에 그런 질문을 자주하는 사람들은 읽어야한다는 생각에 앞서, 쓰는 데 관심을 더 쏟는 이들이다. 쓰고 싶다는 다급한 열망이, 읽어야 한다는 차분한 여유를 가려버린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에 대한 답은 죽을 때까지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쓰는 게 먼저 일까, 읽는 게 먼저 일까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잘 된 글 안에 잘 쓰는 법이 있다. 읽기 훈련이 잘 된 이들이 잘 쓸 수밖에 없다.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잘 쓰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쓰는 행위 자체는 인내심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예술에 비해 재능이 덜 따라줘도 극복할 수 있는 게 글쓰기다. 한데, 약간의 재능만 필요한데도 글쓰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왜일까? 약간의 재능만 필요한 대신 아주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책만 늘어 간다면 될 턱이 있나.자문자답해본다. 글 잘 쓰고 싶은가? 깊이, 섬세하게 읽어라. 그런 뒤엔, 엉덩이 붙이고 군말 없이 써라. 단, 글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쓴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김살로메(소설가)
2013-01-14
▲ 이경우편집국장올처럼 눈이 자주, 또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일본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잘못 보낸 연애편지가 내게 올 듯 해 괜히 여러 연하장들을 이리 저리 훑어본다. “잘 지내세요? 나는 잘 지냅니다” 첫사랑처럼 새콤달콤하고 슬프면서도 아련한 그런 추억을 담은 편지. 새해 눈 속을 뚫고 생각도 않던 소식이 불쑥 찾아올 것 같은 그런 새해 아침이다. 비록 답장을 쓰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그런 편지라면 원하지 않은 편지라도 괜찮겠다.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로 전하는 어느 선배의 아들 결혼 소식이다. 명절이면 손자 손녀를 데려와 한바탕 재롱을 피웠다는 친구의 자랑을 부러워하면서 정작 자기 아들은 도무지 결혼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며 속상해 하던 선배였다. 그 소식을 인쇄물이 아닌 문자로 전해 받았다. 축하한다고, 먼저 문자로 답신을 보냈다.연말연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또는 겨울을 축하한다는 연하장과 인사카드, 인사장들이 무차별 날아들고 있다. 그 중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반갑게 받아보는 인사장도 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인사장을 받기도 한다. 참으로 대략난감이다.육필 편지가 사라진 지 오래. 더러는 육필 흉내를 내서 인사장을 보내는 정치인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꾹꾹 눌러 쓴 잉크의 향기가 나진 않는다. 그 내용도 천편일률이다. 그러나 인사장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가 직접 썼든 또는 인쇄한 인사장에 아래 사람을 시켜 주소를 적어 보냈든 그들의 서명에서 적어도 인터넷 메일 이상의 정성을 느끼게 된다.수많은 인쇄물 중 초대장도 그 중 하나다. 어떤 자리일까. 축하 자리라면 그냥 가서 자리를 메워주고 박수를 쳐주고 건배할 때 목청껏 `위하여`를 외쳐주면 되는 것인가. 또는 축의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얼마가 적당한가. 아니, 초대장 주인과의 관계가 내가 시간과 축의금을 부담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할 만큼 친밀한가. 결혼 초대장의 경우 더욱 그런 여러 가지를 따지게 만든다. 원하지 않더라도 보내주는 초대장에 대한 예의는 참으로 처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그 많은 인사장 사이에서 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각종 유인물들이 문제다. 때로는 광고 전단지처럼 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폐지 수거함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각 기관의 메시지를 담은 전단지 사이에는 기업체나 조합,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 사보, 회지 등도 포함돼 있다.인터넷상에서 수신인이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광고나 특정 정보를 일방적으로 대량 내보내는 것이 스팸메일이다. 인터넷의 스팸메일이야 차단하는 방법도 있고 또 휴지통에 쏟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으로 전달돼 오는 초대장이나 인쇄물은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인쇄 매체에 종사하는 필자로서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봉투를 뜯어 그들의 아우성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열어보기는 한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어제 현판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박 당선인의 인수위원 선정으로 좋은 소식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청와대와 정부 각료를 비롯, 새정부 출범과 함께 수많은 자리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찾고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볼 일이다.연말연시. 무차별 날아드는 인사장, 초대장, 소식지들. 남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스팸메일처럼, 뜯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광고 전단지 같은 글이 하나의 공해로까지 치부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스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해본다.
2013-01-07
▲ 이경우 편집국장눈이 내려 도시 전체가 눈 속에 파묻혔다. 도로는 주차장이 됐고 차 속에 갇힌 시민들은 대구시의 준비되지 않은 제설행정을 비난했다. 그런다고 길이 뚫릴 리도 없지만 욕을 퍼부어서라도 가슴 속 분이라도 풀어야겠다는 듯. 그래도 곳곳에서 모범운전사를 비롯한 용감한 시민들이 나서 염화칼슘을 뿌리고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은 성숙한 우리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듯하여 흐믓했다. 우리네 일상사도 언제나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야 도로가 도로로서 제 기능을 하듯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눈 속에서 깨우친다. 혼자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단연 식사 문제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지겠지만 혼자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하는 그 멋쩍고 허허로움이라니. 아침부터 식당을 찾을 수도 없고 보니 혼자 식사하는 싱거움 쯤은 감수해야 하지만 그 뒤처리는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혼자 식사 하더라도 밥솥, 김치통, 찌개냄비 등의 설거지가 예사 문제가 아니다.어쩌다가 바쁜 날은 그냥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내던져 놓기도 한다. 그러고는 밤늦게 들어와서 보면 그 무질서함이 나태함의 증거 같아 스스로도 상이 찌푸려진다. 나쁜 짓을 저질러놓은 어린아이처럼, 무절제한 생활의 단면을 들킨 듯 숨고 싶다. 10분 정도면 가능한 식사를 위해 준비 시간은 훨씬 길고 뒤처리도 만만찮으니 아직 요리의 즐거움을 깨치지 못한 탓일 것이다.사무실에서 음식을 시켜먹는 것을 말리는 편이다. 간편함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길을 가다가도 사무실 문 앞에 신문지로 덮여 있는 빈 그릇들을 볼 때면 내 위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뛰쳐나오겠다고 아우성치는 듯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 그릇에 고춧가루 묻은 짬뽕 국물이라도 남아있거나 김치그릇과 된장 뚝배기가 포개져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깨끗하게 정돈된 집이나 회사의 사무실을 방문할 때면 그 집 주인이나 회사 직원들의 단정한 품위를 넘어 일처리까지 깔끔하게 할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끔하게 정돈된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깨끗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수고를 한 후에야 그런 모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민생예산 통과에 정부 협조를 당부했다. 새로운 대통령으로서 0~5세 무상보육과 대학생 반값등록금 등 선거 기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일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의 마무리 작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무위원이 마지막까지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 내에서 해야 할 일과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할 것을 구분해서 책임 있는 정부로서 역할을 다 해 달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전임 정부 책임자로서 당연하고 적절한 지시였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합과 대탕평을 인사의 원칙으로 천명한데다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낙하산 인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임기말인 이 대통령이 청와대 출신을 전문성과는 관계없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임원이나 감사로 내보내는데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자리를 깨끗이 정리해 달라는 것이다. 쓰레기는 말끔히 처리해야 한다.내일이면 새 해를 맞게 된다. 올해 할 일은 올해 모두 끝내고 새마음으로 새해를 맞도록 하자. 미루어둔 숙제들을 하룻밤 새 말끔히 정리할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비워야 한다. 그리고 새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2012-12-31
▲ 이경우 편집국장“어머니, 좋으시겠네요?”- “무슨 소리냐, 그게?”대통령 선거 개표가 끝나고 당선인이 확정된 날 아침 식탁에 앉으며 하는 아들의 심드렁한 비아냥에 어머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투표에서 각각 지지하는 후보를 찍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닌가.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권유하기는 커녕 심지어 누구를 지지한다고 표시낸 적조차 없다.개표방송이 끝나고 소위 정치 전문가라는 인사들이 TV에 등장해서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표를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보수층의 결집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도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TV 토론에서의 막말이나 젊은 층으로 예측되는 진보진영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투표 독려가 50대 이상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왔다고 결론냈다.전쟁이 끝났다. 그것도 싱겁게. 하긴 51.6%대 48.0%. 108만496표 차이였다. 투표율 75.8%는 최근 20년내 대선과 총선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세력들이 총 결집해서 치른 건곤일척 승부였다. 중앙선관위조차 “밤 11시는 돼야 당선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로 박빙이 예상됐다. 그런 추측에 비춰보면 초반 리드가 끝까지 이어진 싱거운 결말이었다.선거 날짜가 다가올수록 양 진영은 초조해졌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는 마지막 엿새동안 양측은 서로 “굳혔다” 거나 “역전됐다”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그 사이 양측 캠프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도 사실일 것이다. 방송사 출구조사는 전 국민을 TV 앞에 불러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 많은 우려들을 `설`로 만들어 버렸다.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는 여당이나 보수측에 유리하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신이 야당을 지지하거나 진보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면 공연히 트집을 잡힐까봐 실제로는 야당을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여당을 지지한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 허수가 투표 결과에 반영돼 여론조사에서 이기고도 개표하면 뒤집히곤 했던 것이다.그러나 최근엔 이런 현상이 역전된 느낌이다. 실제로는 보수 쪽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그러면 왠지 꼰대 같아 보이거나 수구꼴통으로 찍힐까봐 겉으로는 진보인 척 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표본조사를 하거나 과학적인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투표결과에 반영된 것이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라 생각한다. 식자들은 이를 두고 사회적 소망성 효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로) 투표율 70%가 넘으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떠들고 다녔다. 20, 30대 젊은 층이 투표를 해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그것이 유권자 혁명이라고 선전해댔다. 그러니 투표율 75.8%는 박근혜 후보측을 긴장시켰던 것만은 틀림없다.그러나 비밀 선거가 보장된 마당에 출구조사를 근거로 세대별 득표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50대 유권자 중에는 62.5%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대신 30대 유권자의 66.5%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선거후 출구조사 보도를 의심하는 것은 그래서다. 야권 단일화를 촉구한 원로회의는 젊은이들의 모임인가?선거는 끝났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선동해대던 원로회의를 비롯한 이 땅의 나름 진보세력들은 이제 자신들의 근거가 어디이고, 그 주장이 어디까지 얼마나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지 새삼 되돌아볼 때다. 지역별 지지율을 놓고 특정 지역을 규정짓거나 세대별 투표율로 50,60대를 폄하하는 정치적 행태들도 없어져야 한다. 광주가 젊은이들만의 도시가 아니듯 대구 역시 노인들만의 도시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사회에서 1표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고귀하므로.
20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