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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꼼수, 그리고 욕과 학교폭력

▲ 이경우 편집국장비록 영화지만 너무 현실감 있고 친숙하기까지 하다. 천박하고 야비한 인간관계가 여과 없이 공개되는데 그 수준이 정제되지 못한 날것 그대로다. 남녀의 신체 부위가 거침없이 열거되고 성을 도구로 한 언어폭력과 천박한 표현들이 편집을 거치지 않고 생으로 공개된다. 영화를 재미있다고 한 사람들은 모두 영화 속 주인공의 욕 퍼붓는 장면들에 속 후련해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카타르시스라기보다 배설일 것이다. 요즘 화제의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를 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그냥 토크쇼, 사우나에서 나누는 보통 사람들의 잡담이다. 나름 세상을 안다는 사람들이 정치권, 그것도 집권 세력을 향해 풍자와 야유를 뒤섞어 마구 주먹질해대는 일종의 집단 배설행위다. 거기 출연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전직 국회의원과 기자 등 배울 만큼 배운 인사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잡놈`이라 겸손(?)해 하지만 그마저 일종의 지적 우월감의 다른 표현이다.그들의 방송 주제가 남북회담, 정당, 선거 등 무거운 시사 이슈들인데 비해 어투는 너무나 경박하다. 물론 그들 스스로 밝힌 방송 목표가 `가카와 그 팔들을 열 받게 하는 것`이라지만 편집 없이 생으로 내놓는 방송엔 말 중간에 감탄사나 어조사로 욕이 들어간다. 거의 의식적으로 해대는 그 욕이 `나꼼수`의 인기에 한 몫 한 것임에 틀림없다. 한 문장에 많게는 두세 번씩 접미사로 때로는 감탄사로. 마치 판소리의 애타는 대목에서 고수가 추임새를 넣듯 욕을 해대는 것이다.학교 폭력이 장난이 아니다.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불거진 학교 폭력은 전수조사로 그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인데도 신문 사회면은 온통 학교 폭력기사로 도배를 해야 할 판이다. 중고생 폭력에는 어김없이 욕이 뒤따른다. 지난 해 동급생을 괴롭혀 유서를 남기고 자살케 한 중학생들도 자신들의 대화 녹취록에는 욕설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호칭이며 형용사, 부사 등 욕설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긴 금품을 뜯고 상대를 괴롭히는데 점잖은 말로 통하기야 하겠나마는.포항 어느 중학교에서는 학생이 훈계하는 교사를 교무실에까지 따라와서 “야, 이 XXX아, 네가 선생이면 다냐” 했다는 거다. 물론 선생이라고 다는 아니다. 그러나 선생에게 욕을, 그것도 교무실까지 따라와서 다른 교사들이 보는 데서 욕을 했다고 한다. 교사에게 그런 욕을 해대는 학생이 자기보다 약한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마땅한 응징 수단이 없어 교사가 오히려 학생을 피해 다른 학교로 달아나고 싶다는 경찰 조사다.그래서 말인데, 학교 폭력은 우리 사회의 언어를 순화하는 데서부터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듣기 좋은 말,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어생활을 통해 폭력을 줄여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비록 19금이라 하더라도 욕설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욕설과 폭력이 일상화돼 있다는 증거일수도 있다. 나꼼수 방송에 박수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을 청소년 유해물질로 규정하자 만화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폭력을 미화하거나 범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며 항의했다. 그렇게 치면 웹툰 뿐 아니라 영화나 나꼼수 까지도 모두 폭력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학교 폭력의 원인을 “진짜 유해한 것은 한국 사회 그 자체”라고 한 어느 정당의 논평은 적확하다. 폭력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라는 것이다. 쓰리쿠션으로 따지고 보면 욕이 친숙한 사회는 더욱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책임은 역시 학교 교육에 있다.

2012-02-27

신공항 유치운동은 쇼였다

▲ 이경우 편집국장새누리당이 남부권 신공항 사업을 총선 공약에서 빼기로 했다. 신공항 사업을 새누리당 총선 공약에 넣어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주장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 3월30일. 신공항 입지선정평가위원회는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모두 경제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을 들어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내렸다. 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1년 남은 “내년 선거 때 보자”고 별렀다. 당시 중앙 언론들도 “언제 너희들이 공약보고 찍어줬니? 선거 때 신공항이 공약으로 나오기라도 했나? 작대기만 꽂아두면 당선시켜 주었잖아.” 그러면서 선거 때 지켜보겠다고 했다.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3일 “남부권 신공항 건설 공약과 관련, ”명칭에 있어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비대위 전체회의에서도 “신공항 건설은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이고 그래서 이것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지금까지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신공항을 의미하는 것이지, 무엇을 붙이거나 입지를 말한 것이 아닌데 그 부분을 유념해 달라”고 덧붙였다. 다분히 수도권과 부산 쪽 눈치를 의식한 발언이었다.이에앞서 지난 9일 박 비대위원장은 지역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지난 대선에서) 약속된 것인데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남부권 신공항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분명하게 공약으로 내세우겠다고 약속하진 않았다. 호쾌하게 공약으로 하겠다는 분명한 답을 기대했던 지역민으로서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김범일 대구시장이 지난해 6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백지화 발표 후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토로했다. 심지어는 “시민들이 신공항을 열망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밀양과 가덕도로 양분된 후보지를 단일화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영남권이 한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김관용 경북도지사도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인천과 경쟁하기 위한 허브형 국제공항을 말하는데 지역이기주의로 흐른 면도 있음을 시사했다. 김 지사는 “영남권 5개 지자체가 후보지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쪼개져버린 책임은 영남권 자치단체에 있다”고 실토하고 “이를 반성하지 않으면 재추진하더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고 쓴소리를 했다.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원회는 지난 해 신공항의 백지화가 대구 경북지역과 부산으로 양분된 지역 의견 때문이었음을 인정했다. “신공항 백지화의 빌미를 제공한 지역 갈등이 또다시 빚어지지 않기 위해 밀양을 고집하지 않고 명칭도 `국토 제2 관문공항`으로 양보한다”고 밝혔다. 통렬한 반성에서 내린 결론이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뒤 얻은 지혜라고 보고 싶다.병법에도 있다. 진정으로 얻고 싶으면 포기하라는 것이다. 잡으려면 먼저 놓아주어라. 제갈공명이 맹획을 잡았다가 놓아주었듯. 대구는 그렇게 통 큰 결단을 했다. 진정으로 신공항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포전인옥(抛塼引玉). 벽돌을 포기하고 옥을 얻는 것이다. 밀양도 포기하고 이름도 동남권에서 남부권으로 바꾸겠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오직 신공항만 얻겠다는 결기가 시퍼렇다.부산은 대구의 이런 병법을 부산을 무장해제 시키려는 얕은꾀로 치부하는 모양이다. 어디가 되든 제2의 국제공항을, 신공항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부산은 외면한다. 여기에다 부산 표가 다급해진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부산의 손을 들어주었다.이제는 대구 경북의 결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과연 지난 해 신공항 유치를 염원했던 그 열기가 쇼였던가를 가름하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2012-02-20

출사표, 개인명리를 앞세운 공수표

▲ 이경우 편집국장촉나라 제갈공명은 조조의 위나라를 치기 위해 출진하면서 주군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린다. 힘이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자신을 세 번씩이나 찾아와 국사를 논하던 전 임금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하지만 기자의 한문공부가 일천하고 감성 또한 미숙해서인지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단지 대를 이어 충성하는 제갈공명의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4월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이미 예비후보 등록 이전부터, 그러니까 지난 해 12월 이전부터, 멀리는 지난 4년 동안 부지런히 출마 예정 지역을 드나들며 표를 관리해 온 후보자도 있다. 임기가 3년 가량 남았는데도 이런 저런 말이 필요 없다며 진작 사표를 내고 총선 출마를 선언한 공직자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지역을 드나들며, 어떤 사람은 아예 주소를 옮겨놓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많은 예비후보들이 선거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사장에 뻔질나게 인사나 다니고 사진 박힌 예비후보 명함으로 자기 알리기에 열중한다. 후보 중에는 나중에 정부 투자기관이나 정치권 입김으로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예비후보로 등록해서 “나도 출마했습니다”고 얘기하고 어디 가서 자리나 노리는 그런 후보들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특히 대구 경북 지역의 경우 새누리당 정서가 강해 어떤 지역구에는 새누리당 공천을 희망하는 예비후보가 7, 8명씩 되기도 하고 10명이 넘는 곳도 있다. 그들이 몽땅 출마하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다니다가 다른 정치적 흥정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또는 다른 자리에 옮겨 앉기도 한다.가당찮은 공약을 내걸기도 한다. 국회의원인지, 자치단체장인지, 또는 동네 대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비행장을 옮기겠다는 공약에서부터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거나 일자리를 만들고 학교 폭력을 없애겠다는 공약까지 다양하다. “중앙 부서에서 요직을 맡아 지역을 살릴 길을 안다”거나 “지방의회에서 그동안 수련을 했다. 나만큼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제는 지역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 대표적인 출마의 변이다.하긴 18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5천여개중 임기동안 완료된 것은 1천700여건으로 35% 뿐이었고 3천건이 아직 추진중이며 334건(7%)은 아예 폐기됐다니 그 공수표를 어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비록 지역구에서 당선되지만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 통제 감독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다.특히 지역 민심이 새누리당에 치우쳤던 때문인지 새누리당 일부 예비후보들의 기염은 코미디 수준이다. 너나없이 지역 민심을 들먹이며 목청을 높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적격자라고들 한다. 자신이 몸을 던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사다리 발판이 되겠다는 출사표는 보이지 않는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나서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공명은 주인 유비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지는 싸움인 줄 알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의 출사표 주인공들은 정작 주인인 국민들의 뜻에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명리를 세우고자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 국회에만 보내주면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재주를 펴 보이겠다는 것인데, 믿고 말고는 국민의 몫이다.

2012-02-13

방안의 코끼리, 학교폭력

▲ 이경우 편집국장드디어 대통령께서 나섰다. 학교 폭력이 그냥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다. 사실 학교폭력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중년 남자라면 누구나 학창시절, 변소 뒤 컴컴한 곳에서 담배를 피워물거나 또는 맞짱을 떠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러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돈을 뜯기거나.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방안의 코끼리`였던 학교 폭력이 세상에 드러난 건 최근 대구에서 일어난 중학생 자살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처음 그 학생의 유서를 봤을 때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본 적도 없는 그 학생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그 부모의 심정을 감히 헤아려봤다. 부모님 앞에서 웃으며 거짓말하던 열네 살짜리 웃자란 소년을 생각하면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대통령 앞에서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어른 앞에서, 대통령 앞에서 당돌하다 싶을 만큼 솔직히 학교 폭력에 대해 털어놓는 요즘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바뀐 세상에서 오히려 정도를 더해가는 그 폭력에 몸서리쳐진다. 폭력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일러바쳐 `찌질이`로 낙인찍히면 학교 생활이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최근 몇곳의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섣불리 신고했다가는 더 무서운 제 2의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그걸 제도적으로 막아주지 못하면 학교 폭력은 영원히 퇴출시킬 수 없다. 대통령이 나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막 제대하고 복학해서 남자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갔다. 그런데 그 중학생들의 여자 교생을 대하는 태도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천진한(?) 여대생들은 도무지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생활지도담당 교사는 교생들을 불러놓고 `만만하게 보이지 말 것`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요즘 중학생들은 당신들 교생들이 다니던 시대의 중학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구나. 하긴 소크라테스 시대에도 버릇 없는 젊은 것들 얘기가 있었다지 않던가.범죄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정권 당시 경찰서를 담당할 때였다. 당시 대구중부경찰서 유치장에 잡혀 들어온 까까머리 고교생이 있었다. 대구의 양대 주먹조직 중 하나인 동성로파 행동대원이라 그랬다. 비록 까까머리 미성년이었지만 유치장의 나이 든 성인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조폭 행동대원이라는 녀석이 형사 앞에 앉아 조사받는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저런 아이들이 무슨 폭력배라고 형사들이 잡아왔을까 싶었다. 그러나 형사가 설명해주는 지역 유흥가 상대로 공갈과 폭력을 일삼은 그의 행태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폭력배의 그것이었다.학교 폭력,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섰다. 우선 일선 초중고교 교사들부터 교육자들, 교육학자들, 발달·행동심리학자들, 심지어는 동물 조련사까지 나서서 어린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대책들을 언론을 통해 내놓았다. 백가쟁명식 답안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답이란 애초 있을 수 없었다.이쯤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뭐 이런 것 아닐까. 지금은 더 이상 귀엽다며 남의 아이 고추를 만지는 사람은 없다. 이 얘기가 처음 우리 사회에 회자됐을 때 그건 뉴스였다. 그런 정도로 경찰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고 곤욕을 치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은 남의 아기 고추를 잡고 희롱하는 노인은 없다.학교 폭력도 그렇다. 이젠 더 이상 “아프면서 큰다”거나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고 호도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진한 성적 농담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면 성희롱이 되듯 동기간 친밀의 표시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불편해도 인정해야 한다.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인정했다. “사소한 괴롭힘이라도 폭력이고 범죄”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물론 폭로했을 때 보복을 막아주는 장치도 보장돼야 한다.

2012-02-06

`부러진 화살`은 영화다

▲ 이경우 편집국장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당장 영화 `부러진 화살`의 상영금지 소송을 내야 한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재판부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영화 부러진 화살 제작자와 감독 등을 고소해야 한다. 한 편의 영화로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재판이 희화화되고 판사들이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사실을 근거로 제작됐다고 거듭 밝히면서 사회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해명이 필요했다. 영화가 사실이라면 사법부는 국민앞에 무릎꿇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아니라면 당장 영화의 상영금지 소송이라도 내야 한다. 대법원이 성명서를 냈지만 파장을 생각하면 성명서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다.영화는 2007년 1월 발생한 김명호 성균관대 전 교수의 석궁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적 재미를 에피소드로 곁들여 제작됐다.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김 전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해임무효) 민사소송을 냈으나 잇따라 패소한다. 김 교수는 판결에 항의하며 항소심 판사 집에 석궁을 들고 찾아간다.영화 속 재판은 김 전 교수의 석궁 위협(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사건 형사 재판 항소심이다. 영화는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김 교수의 석궁 위협 사건에 포커스를 맞췄다.영화속 재판에서 김 전 교수와 그의 변호사는 줄기차게 피해자인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장(박홍우 부장판사)을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신청한다. 그리고 석궁이 제대로 발사되었다면 피해자의 상처가 2cm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부러진 화살의 존재 여부를 묻고 있다. 석궁을 제대로 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살이 부러졌고 이를 검찰이 감추었다는 주장에서다. 또 속옷과 양복 조끼에 뭍은 핏자국이 와이셔츠에는 없었는지 감정을 요구한다.영화 속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불편하다 못해 울화통이 치밀었다. 영화 속 재판장은 피고인과 변호인의 증인 채택 요구를 무참히 기각했고 공판검사는 이미 재판 결과를 알고 있는 듯 공판에 무신경하다. 영화 속 법정은 이미 재판 아닌 개판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재판정이, 우리 사회 정의의 보루라 할 사법부가 이렇게 국민을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영화 속 재판이 사실이라면 법원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판이다.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였다. 사실은 이 재판이 이미 9차례의 1심 재판을 거친 항소심이고 1심에서 증인이 채택돼 대질 심문까지 벌였음을 영화 어디에도 암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관객의 흥분도를 높이기 위해서 피고인의 증인 신청을 의도적으로 까뭉개버리는 대중영합주의에 서슴없이 손을 내민다.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데 있고 영화는 끝머리에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당시 변호인은 지방에서 개업중이고 담당 판사는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관객들의 염장을 지른다.법조계에서는 “보통 형사재판 항소심에서는 증인을 잘 채택하지 않는다. 더구나 현직 부장판사가 피해자인 사건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며 영화적 재미를 위해 항소심만 강조했음을 상기시킨다. 말하자면 장편소설의 한 대목만을 영화화한 셈이다.법원으로서는 앞으로 많은 재판 관련 유사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기록을 내놓고 대응할 수도 없어 아예 무시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고보면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의 성명은 영화의 사회적 파장이 무시하기에는 너무 커지고 있는데 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이런 영화 제작 풍토를 만들었고 1%에 대한 99%의 적개심의 표출이 이 영화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기자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2012-01-30

과메기가 있는 겨울바다 축제

▲ 이경우 편집국장적당한 크기의 과메기에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물미역으로 감싼다. 생김 위에 노란 배추 속잎을 얹고 그 위에 과메기를 놓고 쪽파와 마늘 청량고추를 한 쪽 곁들인다. 소주 한 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는 양념한 과메기를 먹는다. 그 쫀득쫀득하고 상큼한 맛.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나며 바다 냄새까지 밀려온다. 비타민과 불포화지방산,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단백질 덩어리로 미용에도 좋다는 과메기다.생선회를 좋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과메기를 맛있게 먹었다. 연말 지인들 모임에 과메기를 내놓았더니 단연 인기였다. 음식 솜씨가 괜찮은 식당이었고 메뉴도 꽤 여러 가지 나왔는데 모두들 과메기맛을 칭찬하며 모두들 과메기를 싸먹느라 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과메기에 자꾸 손이 간다. 이런 것을 포항 사람들은 과메기의 중독성이라고 한다. 옛날 먹어 본 과메기가 아니다.20여 년 전, 포항이 고향인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친구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꾸덕꾸덕 마른 꽁치 껍질을 벗겨냈다. 내장을 빼내고 손질한 뒤 초장에 찍어 자기 입에 넣었다. 그러더니 우리 부부에게도 한 점씩 쑥 내밀었다. 하도 열심이어서 싫은 표정도 못하고 받아먹었지만 비릿한 바닷내음에다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친구가 애써 장만해 건네 준 꽁치를 우리는 죄다 구워 먹었다.과메기란 겨울철 바닷바람에 내다 건 꽁치를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말린 것이다. 경상도 포항을 중심으로 울진 영덕 등 동해안에서 많이 생산되며 구룡포가 특히 유명하다. 겨울철 생선이 귀하던 내륙 지방에서도 과메기가 있었다. 추수가 끝난 뒤 쌓아둔 짚가리에 손질한 청어를 문종이에 싸서 푹 쑤셔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놈을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한 마리씩 꺼내 아궁이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이런 과메기가 한 때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 국회에서 수산식품산업 거점단지 사업비가 50억 원 증액된 것을 놓고 민주당 의원이 과메기 예산 운운하면서 씹어 댄 것이다. 사실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지역구인 목포에 40억 원이 가고 포항엔 10억 원이 배정됐는데도 그렇게 비난을 퍼부어 댄 것이다.옛날 과메기가 아니다. 맛도 일품이지만 유통과 보급체계도 정비됐다. 구룡포 덕장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과메기는 포항 죽도시장 등에서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죽도시장을 비롯한 포항시내에는 전국에서 과메기를 사러 오는 관광객들과 상인들로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항에서 팔려나가는 과메기가 지난 해 억원에 이르렀고 올해도 식당에서도 과메기를 쉽게 맛볼 수 있다. 2만 원 정도면 소주 두 병은 거뜬히 비울 수 있으니 이렇게 착한 가격에 맛있고 싱싱하며 영양도 풍부한 안주가 또 어디 있을까.과메기가 국민식품이 되기까지는 포항시의 노력과 경북매일신문의 공이 결정적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경북매일신문은 서울을 비롯, 해외에서까지 과메기 홍보 행사를 벌여 과메기를 선전하고 있다. 올해도 서울에서 포항 과메기 홍보행사를 벌였는데 과메기 맛에 반한 관광객들로 행사가 대성황을 이루었다.매서운 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 과메기가 제철을 맞았다. 마침 지난 주 포항 북부해수욕장에선 과메기와 문어까지 함께하는 겨울바다 축제가 포항시 주최로 열렸다. 밤이면 시꺼먼 바다 저멀리 수평선에 고기잡이 배들의 집어등만이 깜박거릴 뿐인 황량한 겨울바다가 축제로 후끈 달아올랐다. 해변가에 화톳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며 어깨를 들썩였다.겨울 추위는 물론, 일상의 권태와 스트레스까지 과메기 안주에다 소주 한 잔으로 날려 보내는 겨울 축제였다.

2011-12-26

오냐, 너 잘났다

이경우편집국장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앤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 초랭이가 경을 셀 때마다 고수가 장단을 넣어준다. 관중은 박수를 치며 흥을 더한다. 하회탈놀이에서 선비가 양반과 서로 지체 높음과 학식 깊음을 자랑하는 대목에서다. 선비가 사서삼경을 읽었다니 양반은 갑절이나 되는 팔서육경을 읽었노라 억지를 부린다. 무슨 소리냐니까 초랭이가 나서서 `나도 아는 육경`이라며 읊어 대는 것이다.탈놀이의 재미는 풍자에 있다. 짓눌리고 피폐한 민중들은 잘난 양반을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삶에 찌들린 민초들은 양반들을 꼬집고 조롱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반상의 구분이 엄정했던 시대에 상것들에게 양반은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양반을 평시에 정색해서 욕보일 수는 없으니 놀이 때 탈을 쓰고 풍자하는 것이다.그 탈을 쓰고 노는 직업이 광대다. 이미 고려시대에 탈을 쓰고 노래하는 광대가 등장했다고 고려사는 적고 있다.그러던 광대가 지금은 개그맨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노는 물이 TV라는 공간이다. TV는 출발 당시부터 바보상자로 불리던 곳이다. 일부 프로그램을 교양이나 뉴스로 위장을 하지만 그 뉴스도 `쇼`로 만들고 연성화해서 시청자들을 꼬득이려 달려드니 천생 바보상자이다. 그 바보상자에서 광대들이 노는 것이 코미디다.강용석 국회의원이 개그맨을 고소했다가 또 한번 이름값을 치렀다. 다행히 취소했지만 국회의원을 욕보였다는 죄였다. KBS2TV의 개그콘서트에서 코미디언 최효종이 국회의원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무라도 자존심 조금 상하고 상식 이하로 비굴해지면 될 수 있다는 듯이 아닌 사실을 날조하고 확대 과장했다는 것이다. 마침 성 희롱 발언으로 여성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던 그로서는 “내가 죄가 된다면 국회의원 전체를 능욕한 개그맨도 죄가 될 것”이라 고소한 듯하다. 그러나 고소당한 개그맨의 인기는 오히려 올라갔고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 시청률도 높아만 갔다.풍자는 약자가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 그 약효가 배가된다. 개콘의 재미도 탈놀이처럼 풍자에 재미가 있다. 잘 난 양반을 망가뜨리고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그들에게 짓눌렸던 민초들은 일시적이나마 탈놀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상사 욕을 하면서 업무상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이치라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잘난 국회의원이기에 개콘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국회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분류하든 최상위 그룹에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 조사를 보면 신뢰도가 하위권이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에는 늘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실제는 거꾸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탐하고 그곳에 올라가려고 용을 쓰는지는 지금 정치권을 보면 안다. 그들이 얼마나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또 한 편에서는 그곳에 올라서려고 노력하는지를 보라. 비록 공개석상에서는, 특히 선거 때면 국민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표를 구걸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부족하지 않다. 개그맨들이 그들을 소재로 삼는 것은 그들이 만만해서가 아니다. 부러워서다. 강자이기에 개그의 소재가 되는 것이니 전혀 분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가 남편에게 제대로 해 줄 욕이 없어서 했다는 말이 “오냐, 너 잘났다”라고 했다던가. 그 남편은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있고 남자 구실도 제대로 해서 부인으로서는 `너가 해준 게 뭐 있냐?`고 퍼부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욕을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하나.

2011-12-05

1%에 포함되려는 99%의 노력

이경우편집국장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도 어느덧 1%가 99%를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20대 80 사회가 이젠 1대 99로 재편된 것이다. 20대 80 사회란 부와 소득의 불균형을 표시하는 세계화시대의 어두운 현실이다. 전 세계 인구 중 20%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인 나머지 80%는 사실상 20%에 빌붙어 살아간다는 이론이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빌프레도 파레토가 처음 주장한 이 이론은 전체의 20%가 열심히 일해서 빈둥거리는 나머지 80%를 먹여 살린다는 일개미의 형태에서 시작됐다. 이는 백화점 매출의 80%가 20%의 고객에서 나온다거나 직장에서 필요한 인원은 열심히 일하는 20%라는 등 전방위로 확산됐다. 1997년 피터 마르틴이 쓴 세계화의 덫을 통해 굳혀진 20대 80 사회가 1대 99의 사회로 발전하는 데는 1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로 양극화가 심해진 결과다. 지난 9월 17일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뉴욕 월가에서 발발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그것이다. 시위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동조 세력을 얻으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의 탐욕과 성공에 비해 절대다수인 99%는 절망과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화의 그늘이 폭로된 것이다.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가진 자들의 모럴 헤저드와 도를 넘어선 욕심 앞에 고물가와 고실업률,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 99%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올 수능 응시자는 전국적으로 64만 명. 대구가 3만6천, 경북 2만6천여 명이다. 전국의 200개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이 32만9천 명, 전문대 입학정원은 22만 명이다. 수험생 중 80% 이상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권 4년제 대학 정원은 11만5천 명, 4개 국공립대 정원은 8천 명이다.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면 그 문은 훨씬 좁아진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일자리를 얻는 것은 또 얼마나 좁은 문인가.그래서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는 경쟁률이 50대 1을 넘기 예사고 특정 대학은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1%에 진입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거기서 탈락하면 99%에 편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대학입시는 전쟁이 됐다.대강당을 꽉 메운 대학입시 설명회장을 보면 안다. 어저께 막 수능시험을 치른 입시생도 있지만 퍼머 머리의 여성 학부모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자녀의 대학 입학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냥 대학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졸업하면 취업도 잘 되고 그래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그런 대학을 찾는 것이다. 자신이 얻은 성적을 손해 보지 않고 실력을 110% 인정받는 그런 운이 따르기를 말이다.이런 판에 대학을 스스로 자퇴한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다. 연세대 신방과 4년 장혜영 씨가 “대학을 반드시 졸업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문을 내걸고 자퇴서를 냈다. 지난해 고려대 김예슬씨가 대학을 거부한다며 자퇴했고 최근엔 서울대 유윤종씨도 학력차별 금지를 내세우며 자퇴했다. 이들 명문대생들의 자퇴는 1%가 되기 위해 생의 상당 부분 희생을 당연시하는 같은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될 듯하다.그러면 과연 누가 99%를 1%와 차별 않고 평등하게, 잘 살게 만들 수 있나? 결국 1%가 99%를 위해서 더 노력하고 가진 것을 베풀고 지혜를 발휘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 전체에 신뢰가 쌓이고 상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1%에 편입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입시생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문을 두드리는 수험생들이 1%에 편입되려는 노력에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2011-11-21

착한 서울 사람, 눈치 없는 지방 사람

이경우대구본부장전국을 달궜던 10·26 재보궐선거 결과는 앞으로의 정국에 가공할 파괴력을 예고한다. 국민의 관심은 단연 서울시장 선거에 모아졌다. 야권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까지 결정적인 힘을 보태준 세력은 20~40대 청장년층이란다. 그들의 힘을 모으는 데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는 거다. 서울시민, 참 착하다. 지난 여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퇴임시킨 무상급식 논쟁 당시에는 `나쁜 투표`라며 투표 안하기 운동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콘텐츠 생산자들이 시민들에게 투표 안 하는 것도 권리라거나 의사 표시의 방법이라며 투표 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트윗을 날리고 여론을 몰아갔다. 그런 세력의 제일 앞줄에는 시민사회 단체의 운동가에서부터 소설가, 연예인 등 소위 인기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착한 서울 시민들은 오 시장을 낙마시켰다. 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그랬던 서울시민들이었다. 그들이 이번에는 `투표하기` 위해 인증샷을 날리고 그걸 퍼나르면서 여론을 몰아갔다. 선관위에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를 유도하는 인증샷은 불법이라고 지침을 내리자 이번엔 야유와 비아냥을 섞은 트윗이 잇따라 등장했다. 1%의 콘텐츠 생산자들이 온라인에 올리면 9%의 SNS 이용자들이 그걸 퍼나르고 그러면 90%의 보통시민들은 그 글을 보게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것이 20 ~40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대구에서도 서구청장 선거가 있었고 수성구에선 시의원 선거가 있었다. 경북 칠곡군과 바다 건너 울릉군에서도 군수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 선거에서 SNS가 어떤 영향력을 끼쳤다는 보고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천만 시민이 몰려 사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옆집에서 잔치를 하던 초상을 치르든 상관없고 그래서 내가 모르는, 검증되지 않은 후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서로 속까지 뻔히 아는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정서가 공공연하다. 그래서 SNS보다는 오프라인상에서의 아날로그식 인간관계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 공항에 나타난 것은 1967년이었다. 이 후 1970년대에 가서야 미니스커트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기까지 족히 몇 년이나 걸렸다. 뉴욕이나 파리에서 패션쇼를 하거나 새로운 패션이 등장하면 이것이 해를 넘겨 우리나라에 유행을 가져왔다. 중간에 도쿄를 거쳐 서울에 상륙했고 그리고 지방으로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뉴욕 증시가 이튿날 곧바로 대한민국 증권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 동시에 판매된다.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것은 물론, 동시간대에 눈으로 보고 감동도 함께 하는 것이다.SNS도 그렇게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자들이 많다. 지난 해 6.2 지방선거때 100만 명이었던 SNS 이용자가 올 4·27 재보선때는 250만명을 넘어섰고 이번 선거에서는 400만명이나 됐다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1천만명이 SNS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될 것으로 추산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SNS에 예상하고 대비하느라 분주하다.대구·경북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시군 지역별로는 이미 고령사회로 넘어간 곳도 많다. “노부모님 (투표 하지 못하게) 효도여행 보내드렸다”는 트위터리안이 볼 때는 `무개념 어르신` 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들에게도 내년 선거에서는 SNS의 광풍이 몰아칠까? SNS로 통하는 약아빠진 서울 시민들에 비하면 눈치없고 순진하기만 한 지역민들이다. 이들에게 SNS가 힘을 발휘할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후보가 어떤 사람이냐에 달렸다.

201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