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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케도 알제`의 유효기간

▲ 이경우 편집국장고향은 누구에게나 포근하다. 건곤일척 승부를 앞둔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 박근혜 의원에게 대구는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그 스스로 대구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지난 주 대구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다.서울에서 기자들을 만나면 살얼음판이다. 불편한 질문, 곤란한 질문으로 사납게 헐뜯기도 한다. 그도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웃으려고 하지만 질문이 심각한데 어떻게 웃으면서 답변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여유가 배어 있었다.대구의 최대 현안인 남부권 신공항이 먼저 등장했다. GRDP(지역총생산)가 수년째 내리 꼴찌인 대구. 그런데 하늘 길을 열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박 의원이 꼭 이루어달라고 주문했을 때였다. 경제 문제는 신공항 같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며 문제 핵심을 비켜갔다.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지식기반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배를 건조하더라도 30~40%가 소프트웨어라며 교육이 떠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벌을 파괴하고, 실력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 역대 정권과 많은 교육학자들이 했던 이야기들의 종합편이다.세종시는 그에게 정치적 신뢰성을 보증하는 공인된 사업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이전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하려 했다. 이 때 신뢰를 내세우며 강력 반발,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기까지 박근혜 의원이 중심에 있었다. 그는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며 세종시가 자신이 신뢰의 정치인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대권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간절했다. 청와대가,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처럼,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고향을 찾아 가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래서 청와대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박 전 위원장은 국민 모두가 꾸는 꿈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나라, 그런 국민을 보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종일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또 고민하느라 하루해가 짧다는 것이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박 전 위원장에 대해 각을 세우고 날을 벼리는 데 비하면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나의 길을 가는데도 바쁘다”며, 그것이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한 자신의 길이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이런 꿈이 이루어지려면 정말 (대통령이) 돼야 하는데…” 했다.이 자리에서는 누구도 5·16이나 유신, 정수장학회나 영남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고향이어서일까. 날선 질문보다 그냥 고향을 방문한 유력한 대선주자에게 희망에 찬 메시지를 전달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박 전 위원장의 대선 가도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차차 두고 볼 일이지만.우호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지난 총선 이야기가 나왔다. 배석했던 김태환, 서상기 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대구에서도 절반은 떨어뜨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고 실제 분위기가 험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엔 새누리당을 선택했던 지역민의 표심을 들면서 “박근혜 보고 찍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듣기 싫지는 않은 듯 웃었다. 그러면서 “`안케도 알제`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다른 지역에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며 두 번씩이나 반복했다.차기권력 맞나? 박 의원을 기다리면서 기자들끼리 나눈 얘기다. 대구에서 서울쪽으로 올라갈수록 온도차가 있더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안케도 알제?` 그의 말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유효할까.

2012-07-23

후보 선택과 첫 인상

▲ 이경우 편집국장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첫인상을 이야기한다. 처음 만나서 3초 동안에 만들어지는 첫인상이 전체를 좌우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4초 만에, 또 어떤 학자들은 5초 안에 첫인상이 만들어진다며 첫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한다. 선거에서 후보들이 시간을 쪼개 유권자들과 만나려는 것은 직접 만나고, 손 한 번 잡아보는 것이 첫인상을 만드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12월 대선을 향해 여야 대권 주자들이 저마다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민심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참으로 답답하다. 말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그럴듯 한데 속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지금 집권말기 코너에 몰려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5년 전 국민들이 선택할 때는 그만큼 상대 후보보다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많은 유권자들이 실제 후보를 알아 본 방법은 언론을 통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본 유권자는 그래도 행복할 것이, 직접 후보를 만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선거유세가 사라지면서 군소 집회나 강연회 등을 통해 후보를 만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첫인상이 전부가 아닌데도 말이다.올 봄 4·11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9월 일찌감치 구청장 자리를 사표 낸 후보가 있었다. 서중현 당시 대구 서구청장은 유권자 20만명도 안 되지만 구민들을 모두 만나기 위해서는 법이 정한 사퇴기한인 12월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미리 사표를 냈다고 했다. 구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만나는데도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였다.한 때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손에 붕대를 감고 유권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손 한 번 잡는 것이 후보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하루에 손잡을 수 있는 사람은 2천500만 유권자 중에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전국의 유권자를 일렬로 줄세워놓고 악수 공세를 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첫인상을 중요시하는 이론 중에 초두효과(primary effect)라는 것이 있다.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인상 형성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나중에 들어온 정보들은 첫인상이 만든 기준을 통해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이 첫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성형도 하고 교육도 받고 반복 훈련도 한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대중 앞에 나타나면 대중은 속을 수밖에 없다.한비자는 `삼인성시호`라 했다. 시장바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세 사람이 연이어 그렇게 말하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믿게 된다고 했다.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에게 충신 방총이 했다는 말이다. 조나라에 인질로 가는 태자를 수행하는 방총은 자신이 위나라를 떠나고 나면 자신을 헐뜯는 소문이 나돌게 될 것이라며 제발 믿지 말라고 왕에게 당부한다. 왕은 그러마고 약속했다. 그러나 방총이 떠나자 그를 비방하는 소문이 나돌았고 인질인 태자는 위나라로 돌아왔으나 그는 결국 조나라 한단을 떠나지 못했다.지금 선거에서도 그런 현상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믿으려는 것, 이른바 대중 선동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속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만들어놓고 또 과거지사를 따져보기도 한다. 속지 말자. 선동에 속지 말고 가짜 경력에 속지 말 것이며 거짓 눈웃음에 속지 말 일이다. 이리 살펴보고 저리 따져보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언론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2-07-16

올해 만기 가계부채 100조원 이라는데…

▲ 이경우 편집국장20년 이상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주변에서는 내가 어쩌면 재테크에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느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사실은 나도 재테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살아가면서 하나 둘 늘어난 잡동사니들을 모두 쓸어 담았다가 다시 펼쳐 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게으른 탓일 것이다.배가 아팠다. 집이란 그냥 살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편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들이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도 돈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의 나태와 정보 부족에 룸메이트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서 막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이나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올해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만도 100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120만 가구가 대충 8천만원 꼴이란다.한 때, 부동산 붐이 일어 너도 나도 아파트 청약에 몰려 들 때가 있었다. 같은 평수의 새 아파트가 헌 아파트보다 더 가격이 낮거나 비슷해서 이사를 가면 돈이 남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던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이유 때문에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되레 내리막길을 타니 사단이 생긴 것이다.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주택시장의 위축,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그 부동산이 아파트에 치중해 있음이 작금 대거 등장한 `하우스 푸어`로 인해 더욱 분명해졌다. 60대 이상은 70%이상 대부분의 재산이 부동산이라고 한다.노후준비는 안 돼 있고 가진 것이라고는 평생의 한이었던 내 집 한 채가 전부인 사람들. 그렇지 않더라도 수입은 줄어드는데 집값으로 대출한 은행빚 이자 갚기가 급하고, 그런데 아파트를 팔아서 빚을 갚자니 오히려 집값이 떨어져 그야말로 쫄딱 망하게 생겼다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인구 증가율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5천만 명을 돌파했지만 한시적이라지 않는가. 수년내로 인구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구만 하더라도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전체 가구수의 22%가 1인가구라는 통계다. 그들 중 상당수는 민간 건설회사가 짓는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고 원룸이나 전세방을 찾고 있다. 그런데도 주택 공급은 인구증가율을 추월하고 있다.아파트업자의 아파트 분양 광고가 꾸준히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이런 현실적인 주택 정책과는 상관없이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아파트를 지어서 팔아야 회사가 세금도 내고 이윤을 내서 직원들을 먹여 살릴 것 아닌가.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에게 이 많은 아파트들이 여전히 필요할까. 집값이 올라가고, 그래서 감가상각보다, 은행에 돈을 맡겨놓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가 될 때라야 집을 살 것이다. 그때는 집을 가진 사람이 두 채, 세 채 집을 사서 전세를 놓고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 날 것이다. 여당이 땅에 떨어진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귀가 번쩍 뜨이지 않는 이유다.그래서 12월 대선에서는 모두가 집 걱정 없는, 집을 투기대상으로 삼는 사람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2012-07-09

박근혜 대세론과 침묵의 나선

▲ 이경우 편집국장독선, 오만, 속 좁은 리더십, 소통 부재, 폐쇄적인 의사결정...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다. 한 사람을 평가하면서 원칙과 소신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이런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모든 사물이 갖고 있는 빛과 그늘이라는 양면성으로 비춰볼 때 일면 당연해 보인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두고 하는 평가에서다. 대통령 선거가 5개월 남짓 남았다. 이번 대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의 후보로는 박 전 비대위원장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지금 박 전 대표는 누가 뭐래도 부동의 절대 강자이자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0순위다. 그렇다고 아직 후보가 된 것은 아니다. 그 후보 선정 절차를 놓고 박 전 위원장 측에서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인 듯 당내 후보경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그는 지금 필요없는 문제를 만들기보다 빨리 후보로 확정짓고 본선을 대비하고 싶을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뜻일 거다.언론에 비치는 박 전 위원장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간접화법이다. “전해졌다”거나 측근을 통해 “한 것으로 보인다” 등이다. 다른 여야 대권을 넘보는 예비 대선 후보군의 직접화법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TV나 라디오에서 공개 인터뷰를 하거나 신문과 직접 인터뷰하고 각종 토론회에도 참석해서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은 말이 없다. 참으로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이야기 밖에는 나오는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대권 출마선언 자체도.그는 당내 경쟁 상대인 대권 후보들이 요구하는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역선택이나 조직 동원 등에 대한 문제를 들어 반대했다. 속으로는 5년 전 당시 이명박 후보와의 경선을 생각하면 적반하장이라는 주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선 상대들과 아예 협상조차 않는 태도는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리더십에 의심을 갖게 만든다. 리더십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자들에게 설득해내는 능력이다. 그걸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각오하는 이유는 대세론에 있는 듯하다.지금 박 전 위원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대세론이다. 우리는 15년 전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 어떻게 결판났는지를 보았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경험칙을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들의 짓이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정당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비평이나 작은 소리들도 귀담아 듣는 낮은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선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론 중 노엘레 노만이 주창한 `침묵의 나선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다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침묵하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이른바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소신을 감추고 침묵하게 된다는 이론이다.과거 투표는 투표자 개인의 성향을 거의 알 수 있었다. 비밀투표였지만 투표와 개표 방법이 사실상 개인의 투표성향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침묵의 나선이론이 투표에서도 적용됐을 가능성이 짙다. 지금 일부 정당의 내부 투표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무더기 투표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긴 선거에 돈봉투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 것도 그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데 따른 침묵의 나선의 또다른 결과이다.대세론이 투표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선거가 끝나면 드러날 것이다. 대세론에도 역선택의 덫이 놓여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여론조사가 자주 틀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대세론이 꺾이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요란하다고, 떠든다고 모두가 다 동의한다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소신이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고 이젠 우리 국민도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

2012-07-02

심화되는 양극화속의 20-50클럽

▲ 이경우 편집국장우리나라가 20-50클럽에 가입했다. 국민소득 1인당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데 이어 인구도 드디어 5천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개인은 5천만분의 1로 더욱 왜소해졌다는 다른 의미다. 경제적으로 힘든 서민들이 더욱 많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국민총생산 2만 달러 시대를 그냥 바라만보고 있어야 하는 양극화의 음지는 더욱 두터워진 것이다. 중산층 몰락의 상징처럼 된 하우스 푸어만 보더라도 그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하우스 푸어는 집을 빼고 나면 모든 자산을 처분해도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이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0년 기준 국내 하우스 푸어는 적게는 108만(374만명)에서 많게는 157만가구(549만명)로 추정했다. 8~11%의 국민들이 하우스 푸어인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하우스 푸어`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란 점이다.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가주택 소유자의 48.2%가 `나는 하우스 푸어`라고 응답했다. 이는 2010년의 29.9%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그만큼 하위 빈곤층이 두터워지면서 그들이 상위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의 탐사보도를 번역한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라는 책에서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물론 미국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가 양극화에 있어서 미국과 너무나 닮아 있기에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한국은 미국에 이어 불평등 구조가 가장 심한 국가로 드러났다.미국에서는 하위 계층의 사람들, 가난한 환경에서 출발해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 결과다. 말하자면 계급이 사회적으로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소비패턴, 문화적 관심, 직업 선택과 출세의 기회, 주거생활, 교육과 결혼의 기회에 있어서도 계급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가난하고 힘없는 하층민들에게는 상류 계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문제는 또 있다. 심지어 건강까지도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병은 평등하지만 그 회복은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다는 슬픈 현실이다. 결국 하층계급보다는 중간계급이, 중간계급보다는 상급계급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는 말이다. 이건 통계적으로 증명됐다. 여기서 계급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개코원숭이(비비) 무리의 두목은 다른 수컷들에 비해 병에도 잘 걸리지 않으며 병에 걸리더라도 다른 녀석들보다 빨리 회복된다고 한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 연구진들이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지난 27년간 연구 조사한 결과라니 믿을 만하다. 연구에 따르면 우두머리 원숭이는 일반 원숭이들보다 지위에 따른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지만 대신 스트레스의 부정적 요인들로부터 수컷을 보호해 준다고 결론냈다.계급이 높을수록 병으로부터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다른 것이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들먹이곤 했는데 그게 부자들의 엄살이고 못 가진 자들의 자기 위안임이 드러났다고나 할까.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더구나 교육이나 노력이라는 계급상승의 사다리가 줄어들고 배경이나 연줄이 여전희 힘을 쓰는 우리나라다. 양극화의 그늘이 더욱 짙어지는 사회, 한국이 20-50 클럽에 가입했다는 뉴스가 우울한 이유다.

2012-06-25

우리가 중국을 알아야 하는 이유

▲ 이경우 편집국장중국은 한 때 우리 기업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국내의 노동 운동이 왕성해 지면서 상대적으로 근로자들의 임금도 높아지던 시기였던 것이다. 너도 나도 국내 산업을 접고 봇물 터지듯 중국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어느 사이엔가, 서서히 한두 명씩 되돌아오고 있었다. “중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잘못 봤다”거나 “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중국을 얼마나 아느냐? 동서 500km, 남북 550km로 넓이가 560만 ㎞, 남한의 100배나 된다. 그곳에 13억 인구가 산다. 한족 외에도 55개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나라다. 중국에서 4년 사업을 하고 온 포스코의 한 간부는 말한다. 그곳엔 평생 산 넘어 가 본 적 없는, 인구 4, 5백명 되는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 살다가 늙어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그런가 하면 세계 첨단 기술을 향유하는 층도 우리 국민 숫자보다 많은 나라가 중국이란다. 중국을 안다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다르다.중국은 2009년 당시 독일을 제치고 세계에서 수출 1위 국가로 등극했다. 2010년에는 GDP 5조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다. 외환보유고만도 3조달러로 세계 1위 국가다. 군사적으로 핵무기 (240기) 탄도미사일 유인우주선 젠-20스텔스 전투기 항공모함 등 갖출 만한 것은 다 있다. 정치적으로는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국제적 골칫거리인 북핵 문제도 중국의 협력 없이는 풀기 어렵다.최근 중국은 `역대 장성`의 길이 2만1천196.18km라고 발표했다. 2009년 동쪽 끝을 압록강 하구 단동시 호산장성까지 장성에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에 다시 고구려 발해 영역까지 장성을 확장했다. 당나라와 전쟁을 치른 고구려의 천리장성이 갑자기 중국을 지키는 만리장성으로 둔갑한 사연이다. 자기 나라와 전쟁을 위해 쌓았던 다른 민족의 장성까지도 자기 영토안에 있으니 자기 장성이라고 우기는 중국이다.우리와는 2012 한중수교 20년만에 급격하게 가까워진 사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수교가 130년이지만 고작 20년인 중국이 교역 규모에서 미국을 뛰어 넘은 것은 무엇보다 인접해 있다는 지정학적 사실 때문일 것이다. 역사 이래, 신라 백제 고려도 중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교역을 해왔다. 중국은 우리의 제1교역대상국, 우리는 중국의 제3위 교역대상국이다. 2011년 교역액 2천207억달러로 1992년 수교당시 64억달러 35배로 커졌다. 2015년 3천억달러가 목표다. 수출물량의 24%가 대중국 수출이고 연간 인적교류는 653만 명 넘어섰다. 우리나라 관광객의 반 이상이 중국인이다. 중국 내 한국인 유학생과 한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도 각각 6만명 이상이다.이런 중국과의 FTA는 필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을 더 알고 민간 단위에서부터 중국과 가까워져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교수(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 위원회 위원장)는 `중국의 내일을 묻다` 책에서 “중국은 우리를 더 이상 옛날의 한국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중수교 초기에는 한국이 중국에 필요했지만 현재 상황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 다자간 안보협력체제와 경제공동체 건설하는 일에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정치적으로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떠나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을 알고 더 가까워지려 노력해야 한다. 경북매일이 한중 지역경제포럼을 개최하는 이유다.

2012-06-18

한심한 사내가 부러운 이유

▲ 이경우 편집국장사회학자들 중에는 현대를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광기의 시대`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내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정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는 말이다. 난삽하고 형이상학적인 학술 용어를 들이댈 것도 없다. 통합진보당이 결국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제명했다. 당론과 당명에 따를 의무를 위반했다며 당적을 박탈한 것이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이 이들에게 지금이라도 사퇴하면 당원으로 남을 기회가 있다고 설득했지만 결과는 기대할 바가 없어 보인다. 어쨌든 당내 후보 경선 과정에서의 부정행위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로 진전됐지만 이 사태는 색깔론으로 번지고 있다.색깔론. 그럼 당신은 무슨 색깔이냐? 당장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이 무슨 유신시대냐고. 유신의 딸 아니냐며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분명한 평가를 요구한다. 심지어 김두관 경남도지사 같은 사람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누리는 부와 신분도 대물림 받은 측면이 강하다”고 한 술 더 떴다.그 시절에 여러 차례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감옥을 살기도 했던 이석기 의원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제명 절차를 밟겠다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야당은 후보 경선과정이 문제였지 그들의 과거 종북 사상에 있지 않다고 반발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이 공천해서 당선까지 시켰던 김형태 문대성 의원은 어떡하느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눈을 돌려 세계를 보면 이웃 중국은 만리장성을 기존의 길이보다 2배도 더 늘려 발표했다. 동쪽으로는 옛 고구려와 발해땅까지 연장했다. 총 길이가 물경 2만1천196km. 종전 6천300km로 알려졌던 장성의 길이를 2009년 새로 측량했다며 2천500km 늘어난 8천851km라고 발표했는데 이번에 또 늘린 것이다.더 멀리로는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불러 온 유럽의 재정 위기가 스페인을 거쳐 독일로 확산될 조짐이라는 보도다. 독일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유로존에서 안전지대다. 이는 그리스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스페인의 국채를 대량 보유한 독일로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영향이 없을까. 청와대가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여당도 개원하면 당정협의회를 갖고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지난 주 하늘에서는 금세기 최대의 우주쇼가 펼쳐졌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금성이 해와 지구 사이에 끼이는 일식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쇼를 보려면 적어도 105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었다.그런 세상사와는 상관없이 지난 주 포항에서는 포항항 개항 5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축제가 열려 잠시나마 시민들이 시름을 벗어나게 했다. 형산강 둔치에서, 장기면에서, 또 북부해수욕장 해변에서 달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축제는 초여름 세상사를 잊게 만들었다. 세상 고민 몰라도 즐겁고 신나는 인생이다.러시아 유머가 생각난다. 금슬 좋은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축하연을 벌였다. 주위에서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사이좋게 살았느냐고?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결혼 초부터 부부가 분명하게 업무분장을 했다. 자식들 교육이나 가정 살림, 집안 문제는 아내가 맡고 세계 핵 감축 문제, 아프간 파병 문제, 목성 탐사계획 등 굵직한 이슈들은 내가 맡기로”그렇구나. 남자가 살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면 쌓여가는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의 평화와 일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구나. 유로존의 위기도 상관 않고 종북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채 일상의 쪼잔한 일에나 신경쓰는 범생이처럼 한심한 사내가 부러운 이유다. 포항 축제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2012-06-11

여수엑스포, 그래도 가봐야 하나

▲ 이경우 편집국장지금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 한려수도의 서쪽에서 지구촌 축제, 여수엑스포가 한창이다. 주말인 지난 2일 7만2천여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지난 5월 12일 개장한 이래 22일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단다. 그러나 이런 추세면 석달동안 조직위가 목표로 하는 1천만명은 어림도 없다. 그래도 인기 전시관인 아쿠아리움에 들어가기 위해 서너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보통이었다고 현장 아나운서가 침을 튀겼다. 대단하다. 뙤약볕 아래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인내심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승용차로, 또는 버스로 달려오며 시달린 데 대한 수고를 보상받으려는 심사일 것이다. 그러나 왠지 셈이 맞지 않는 장사 같다.전남 여수 신항 일대 271만㎡에서 총 2조3천886억원을 투자해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펼쳐지는 2012 여수엑스포다. 조직위는 생산효과만도 12조2천300억원에 부가가치 5조7천200억원을 창출하고 7만9천명을 고용하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지난 5월 12일 개장 이래 8월 폐장까지 3달 동안 내국인 744만5천명과 외국인 55만5천명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들이 지출하는 소비만도 1조2천4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중 71%인 8천800억원을 여수를 비롯한 전남에서 쓴다는 것이다.백문불여일견. 우리는 월드컵 축구경기나 올림픽 경기장을 찾으면서, 또는 세계적인 톱스타들의 공연장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실감하는 금언이다. 여수 엑스포 또한 극명하게 이 금언을 증명하는 행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상도 내륙지방에서, 동해안에서 멀리 남해안 여수까지는 줄잡아 4~5시간 거리다. 아무래도 너무 멀다. 다녀 온 사람들의 얘기도 대체로 일치한다. “오가는 데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비하면 너무 건진 게 없어 허망했다”예약제를 없애버렸다. 누구나 줄 서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개장 전부터 엑스포 160년 역사에 처음 시행하는 제도라며 뻥뻥 자랑하던 아쿠아리움 등 8개 전시관의 사전예약제를 고작 16일만에 중지해버린 것이다. 일부 관람객들의 항의 때문이란 것이다. 이 때문에 사전 예약하고 관람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겨우 주제관 하나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줄을 서봐야 안다면 하수 중 하수다. 국민들은 19년 전 대전엑스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그런 퇴행이 어디 있나? 그럼 5시간씩 운전하고 차타고 가서 5시간씩 줄서서, 그것이 세계 엑스포가 관람객에 대한 예의냐?물론 조직위는 전시관 말고도 K팝스타를 비롯한 인기 스타들의 공연과 국제관 등 수많은 볼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수엑스포의 관람객 목표를 정해놓고 성공 여부를 관람객 수치로 가늠하려는 조직위의 자세 어디에도 관람객들에게 편안하고 감동을 주는 엑스포를 만들겠다는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관람객으로 존중받으면서 추억에 남는 엑스포를 즐기고 싶다면 욕심일까.언제까지나 국민을 뙤약볕아래 줄서서 주최 측의 숫자놀음에 머릿수 채워주는 `그들 중 한 명`, 소위 One of them 역할에 만족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내가 여수에서 열리는 엑스포에 배가 아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사람 구경하러 여수까지 갈 수는 없다.개최지인 여수를 중심으로 전남 지역이야 관광 수입도 오르고 무엇보다 엑스포를 통한 엄청난 간접시설들이 들어섰으니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수엑스포가 새로운 해양문화를 창출하고 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녹색 성장과 균형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거대한 목표는 좋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돈과 시간을 투자해가며 그 들러리를 서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억울하다.

2012-06-04

우리도 퇴임 후 존경하는 대통령을 갖고싶다

▲ 이경우 편집국장대선을 6개월여 남겨두고 여야가 본격적인 대선 모드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에서도 민주통합당에서도 잇따라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선거판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급격한 임기 말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레임덕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데는 대선 예비주자들의 지지율 조사를 빙자한 사전 선거운동이 한몫을 하고 있다. 16일 헤럴드경제는 케이엠 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결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7.9%의 지지율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41.3%를 6.8%포인트 앞섰다고 밝혔다. 박 전 위원장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어떤 구도에서도 절대적 강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응답자의 41.6%가 박 전 위원장이 승리하는 것이 정권교체라고 답한 대목이다. 현 이명박 정권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야당이 아닌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정권교체라는 정치권의 이슈 만들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증거다. 새누리당은 이런 흥행을 위해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꾸고 상징 색깔을 보수의 푸른 색에서 진보가 쓰는 빨간색으로 바꿨다. 그리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상돈 중앙대 교수 같은 반 MB 인물들을 비대위원으로 모시기도 했다. 이런 변신으로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변신은 상대적으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물론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주변을 깨끗이 다스림으로써 레임덕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임 덕은 역대 대통령이 다 겪은 것이다. 이건 내가 대통령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한 번쯤 퇴임 후에도 존경하는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전직 대통령을 생각해본다. 퇴임 후 평범한 이웃 할아버지로 살고 싶었던 노 전 대통령은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상고 졸업 학력에 사법고시 출신으로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정치권에 들어선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희망이었다. 그러나 소외되고 못가진 소수를 위한 대변자를 자처했던 그는 그러나 이 시대 기득권층의 집단따돌림에 결국 항복아닌 항복을 했다. 그의 소탈한 성격과 진솔한 말투마저도 오히려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의 화살로 되돌아왔다.어디 노 전 대통령뿐인가. 그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조롱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아들들을 비롯한 주변 실세들의 비리 연루와 이용호 게이트 등 3대 게이트로 야당인 당시 한나라당의 집요한 정치 공세로 이미 임기를 1년3개월 이상 앞두고부터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났을 만큼 심각한 레임덕에 빠진 것이다.그 전에도 그랬다. 서울대 출신의 역대 최다선 국회의원 경력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 깡통 대통령이라고 신문 가십에 등장했다. 재임 초기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인기 절정에 올랐던 김 대통령이었지만 임기말 레임덕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건 권위주의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예 `물`이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돌`이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폄훼는 결국 우리의 정치 풍토를 그렇게 천박하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우리에게 존경하는 대통령을 가질 복이 이렇게도 없다는 말인가.세종대 이남영 교수는 `한국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 분석`이라는 글에서 “레임덕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역주의를 불식시키고 민주적 권위를 창출해야 하며 도덕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임덕 극복이 대통령 개인의 솔선수범과 의지만큼이나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해석하고 싶다. 우리도 퇴임 후 존경하는 대통령을 갖기 위해서는.

2012-05-21

보수표 결집시키는 이정희 진보대표

▲ 이경우 편집국장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이 전원 사퇴하라는 전국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하면서 드러난 진보세력의 추태가 거의 이적행위 수준이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자체 조사결과 부정선거로 나타나자 부실 조사 탓으로 돌리며 일주일 이상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사이 진보세력의 온갖 추태와 속살들이 여과 없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바깥 사람들에게는 좌파 세력의 이념이나 주장보다 섬뜩하기까지 한 그들의 태도가 보수 지지 세력들을 더욱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그 중심에 있는 이정희 대표. 그는 13일 최악의 폭력사태로 끝난 중앙위원회와 관련, “저는 죄인”이라며 “이 상황까지 오게 한 무능력의 죄에 대해 모든 매를 다 맞겠다”고 했다. 그는 전날 열린 중앙위 시작 전 공동대표직을 사퇴했다. 이에앞서 그는 지난 4일에는 무려 19시간이나 철야 마라톤회의를 진행했다. 이 중 15시간동안 사회를 보면서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비례대표 후보 전원 사퇴라는 지도부의 요구를 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해가며 지켜냈다. 이런 이 대표에게 보수 세력들은 물론 진보세력을 지지해 온 일부 인사들도 혀를 내둘렀다.1969년 12월 생. 43세의 중년. 두 아이의 엄마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본 이정희 의원의 모습은 촌스러운 생머리를 여고생처럼 짧게 깎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단호한 이미지다. 똑 부러지는 말투. 진보의 대표주자이자 촉망받는 차세대 여성 리더다. 그의 홈페이지 프로필 중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력고사 인문계 여자 전국수석),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이 적혀있다. 38회 사법시험 합격, 민변 열성 변호사. 6·2 지방선거 한명숙 서울시장후보 공동선대본부장과 10·26 재선거 박원순 서울시장후보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은 경력의 소유자다.지난 1월 포항의 한 수협은 이사를 뽑는 선거를 하면서 투표권자인 대의원들을 합숙시키고 개별적으로 투표 방법을 교육시켜 부정투표를 했다가 몽땅 법의 심판을 받았다. 당시엔 투표권자가 한정돼 있어서 개인별로 투표용지의 표기 방법을 정함으로써 사실상 공개 투표를 한 꼴이 됐던 것이다. 조합 이사를 뽑는 선거였는데도 모두 법정에 서야 했다.거기에 비하면 통합진보당의 이번 사태는 당내 경선이라지만 사실상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였다. 그 경선이 총체적 부정으로 얼룩졌고 그 증거가 내부 조사에서 드러났는데도 거부하는 이정희 대표에게 국민들은 경악한다. 이 대표 스스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다른 사람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인지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자기에게 기분 좋은 말만 듣는 사람이란 말인가.진보 세력이 보수 세력보다 생각이 젊고 그래서 늘 시대의 맨 앞장을 서 왔던 그들이라고 믿었다. 경험이 없더라도 깨끗할 것이고 그러면 미래가 있을 것이고 적어도 우리 정치에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기득권, 당권을 지키기 위한 변명과 행태는 억지와 해괴한 논리와 물리적 강제력에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보내지던 지지층마저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표가 아깝다”거나 “이 꼴을 보려고 찍어준 건 아니다”는 반응이 그것이다.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의심하는 중도 세력에도 반대 명분을 확실히 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 나라는 다시 이데올로기와 색깔 등을 기준으로 이분법적 판단이 들어설 기세다. 진보 세력의 최근 작태는 여기에 분명히 기준을 제시하면서 그들이 증오하고 경멸하는 보수 세력을 오히려 도와 준 셈이 됐다. 이런 손실과 비난 속에서도 통합진보당으로서 지켜야 할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2-05-14

아버지 노릇, 아들 노릇

▲ 이경우 편집국장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혹은 맞는지를. 새벽녘 들어온 아들이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같이 누워본다. 아들을 안아봤다. 그리고 뺨을 비볐다. 잠결인 듯 싶던 아들이 정색을 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더니 침대 밖으로 손살 같이 뛰쳐나갔다. 아빠, 이러지 마세요.옛날, 저들이 어렸을 때이긴 하지만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세상이 갑자기 시곗바늘을 몇 바퀴 더 돌려버린 듯하다. 적어도 신체적 접촉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몸을 더듬는 애정 표시가 그렇게 기분 나빴다면, 요즘 아이들끼리 문제가 되는 동급생 간의 폭력이나 성희롱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가 되고 십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국가적 이슈가 됐다. 그 중요 원인으로 가족 간 소통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많은 청소년들이 고민을 부모님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친구들과 상의하기를 편안해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부모님과의 대화 시간이 없다는 것이 청소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아버지는 자녀들과의 대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사회 통념을 여러 가지 조사와 연구들이 뒷받침해준다.처음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랬다. 아이들이 자랄 때 일부러 대화를 시도해 봤다. 그러면 “아빠, 갑자기 왜 그러세요?”라는 시큰둥한, 때로는 귀찮다는 응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관심사가 다르고 같은 어휘라도 함의가 다르니 부자간 대화에서도 통역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화제의 공통분모가 다르니 내가 싫어하는 일과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 다른 것이다.이번 사건의 발단도 그랬다.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주말이 돼야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나는 주말이 돼야 보는 아들이 반가워 주말 저녁은 되도록 약속도 만들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아들은 주말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밖으로 나가기 일쑤다. 약속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는 밤늦게야 돌아오고, 한 주일에 한 번 보는 가족이지만 이렇게 얼굴 보기도 힘들구나 싶었다. 그래서 잠자는 아들에게 나름 애정 표현을 했던 것이다. 그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동작이 아들의 신경을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야속하기는 마찬가지다.시간이 나면 노모를 찾아간다. 여든이 넘어서도 혼자 끼니를 해결하시는 어머니는 여간 안쓰럽고 죄송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식일 뿐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식사`다. 그리고 그 자식에게 식사를 챙겨 주는 것이 하나의 기쁨으로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머니는 아들과 식사를 같이하거나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아내에게는 불만이다. 젊은 여자도 자기 끼니가 귀찮아서 외식하는 판인데 노인에게 끼니를 맡기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고집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갈 때면 되도록 식사 시간을 피한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그것이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 때문인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최근 며느리를 본 동창생은 그랬다.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올 때면 꼭 회사나 집 밖에 나와서 한다고. 그러자 옆의 다른 동창이 “아들 내외의 평화를 위한다면 되도록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말아야 한다더라”고 거든다. 특히 며느리가 듣는 전화는 내용을 불문하고 하지 말라는 충고다.어저께가 어린이날이고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이라 그랬다. 앞으로는 1인 가정이 대세라는데, 그때는 이런 갈등도 그만큼 줄어들겠지. 가정의 달, 아버지 노릇도 아들 노릇도 힘든 중년 남자의 푸념이 됐다.

2012-05-07

김형태 당선자는 어디있나?

▲ 이경우 편집국장 총선이 끝나자 새로 뽑힌 선량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선거 기간의 겸손과 너그러움을 보상받으려는 듯 당선자들의 행보는 반경도 넓거니와 보폭도 거침없다. 당정협의회에서부터 지역 언론사를 시작으로 선거 때 도와준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나누고 지역 자치단체를 비롯한 각급 기관도 찾아다니며 협조를 다짐한다.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출세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지역민들의 투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대표적인 출세의 잣대다. 공개적으로 자신을 발가벗고 공개재판을 받았기에 그 만신창이 뒤의 영광은 참으로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이 내놓고 출세를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지역민들이 대거 참석하는 각종 행사장이다.대구지역 당선자 12명은 김범일 대구시장이 주최하는 당정협의회에 참석해서 선거 기간 동안의 고단함을 털어냈다. 대구지역 국회의원 당선자 12명이 몽땅 새누리당 일색이라는 비난 아닌 비난 속에 이들이 대구시장과 당정협의회를 갖고 상생을 모색한 것은 지역발전을 위한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에게는 지난 공천 과정에서의 앙금이나 선거 과정에서의 불협화가 모두 당선이라는 가마솥에서 용해된 듯하다. 미래만 있고 그 미래는 무지갯빛이고 합심하면 못할 일이 없어 보인다.경산에서도 그랬다. 어저께 경산시 국회의원 당선자 최경환 국회의원이 6년만에 경산시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회를 갖고 상생을 다짐했다. 경산지역 도의원과 시의원, 그리고 경산시 간부공무원들이 최경환 의원과 당정협의회를 가진 것이다. 문경에서도 단체장과 국회의원의 소속 정당이 달라 매사 앙앙불락하던 모습들이 선거를 통해 불식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 간 정쟁으로 지역발전은 뒷전이고 서로 깎아내리기나 흠집내기로 지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이젠 새누리당 깃발아래 한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언론은 전한다.상주에서 열린 낙동강 자전거길 개통식에서는 현역의 성윤환 의원 대신 김종태 당선자가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어깨를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진이 지역 신문마다 1면을 장식했다. 신문 지면으로 만나는 당선자는 기쁘고 바쁘다.그런데 포항남·울릉 김형태 당선자는 이렇게 기쁜 시기에 어디에 가 있는가. 지난주엔 지역 일간지가 주최한 당선자 대회에 지역에서 새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성추문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김형태 포항남·울릉 당선자의 모습은 보이지 았았다. 포항에서는 주말이면 초중고 동창회와 체육대회가 열리고 언론사가 주최하는 동빈내항길 걷기대회, 내연산 산행대회, 클럽 축구대회 등 각종 대회와 행사들이 개최됐거나 준비되고 있다.이런 행사마다 내빈으로 지역 국회의원이 등장해서 축하도 해주고 또 시상도 해주는 것이 당선자에게도 폼 잡는 일이며 주최측에도 은혜를 갚는 게 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도 지역의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비칠 수 없다면 그 당선자는 국회가 개원하면 과연 행세를 할 수 있을까? 전국 300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지역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고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행여 우리 몫이 작아지지나 않을까, 행여 찍어 준 포항시민들까지 얕잡아 보지나 않을까 포항시민들은 지금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한나라의 유방과 천하를 놓고 겨루던 초나라 항우는 “출세해서 고향에 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탄했다. 그렇다면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도 얼굴을 내놓고 다니지 못한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012-04-30

그동안 장사 잘 했습니다

▲ 이경우 편집국장 “10년을 영업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규정이 바뀌었다며, 그래서 공개입찰 해야 하니 입찰에 응하든지 나가든지 하라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억울하다며 신문사에 진정을 한 어느 임대업자는 건물주를 향해 욕을 퍼부어댔다. 임대업자는 그동안 건물관리인에게 명절 때면 선물을 챙기고 일 있을 때마다 뇌물을 건넸다며 내역을 공개했다. 공기관인 건물관리인으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임대료를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주었다. 그리고 장사도 땅 짚고 헤엄치듯 독점적으로 잘 해 먹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오히려 뇌물을 주었다고 덮어씌우다니. 명절 때 과일 상자며 행사 때 선물을 받긴 했지만 그것이 낱낱이 기록돼 자신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는 데는 창피하기도 하고 괘심하기도 했다.“처음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하필 내가?” IMF이후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을 정리해고 할 때였다. 당시 많은 회사에서 직장인들이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 사실을 통고받는 순간 항의하고 집단 반발하고 투쟁하기도 했다. 회사에 청춘을,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대가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배신감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쪽에선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도 많았고 그런 모습들이 언론에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했다. 항의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억지로 회사에 붙어있겠다고 비는 것은 회사에서 쫓겨 나간다는 불명예보다 더 쪽팔리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 해직자는 “25년을 봉사했다. 크게 돈을 모아둔 돈도 아니고 사놓은 땅도 없지만 사실은 그동안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다. 그러면 오히려 회사에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는 실토는 지금도 이 땅 어디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시나리오다. 그냥 못가진 자, 약한 사람의 가진 자, 힘 있는 사람에 대한 패배주의로 치부하기에는 현실을 외면한 면이 없지 않다.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일본 기업 내쇼날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 이야기.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포 점원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모든 악조건들을 자신을 키우는 자양분으로 만들어 13만명의 종업원을 둔 대기업의 총수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이 세 가지를 자신의 성공 비결이라고 평생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가난`, `허약한 몸`, `못 배운 것`이 마쓰시다의 자수성가 조건이다. 남들이 불평의 조건으로, 또는 약점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을 되레 감사의 조건으로 만들었다. 가난했기에 부지런히 일했고, 몸이 약했기에 건강의 소중함을 알아 몸을 아꼈고, 못 배웠기에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배었다는 것이다.감사할 줄 모르는, 은혜를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것이 생각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중국 고승의 가르침에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져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선인들도 병고로써 약을 삼으라”고 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지난해 연말부터 포스코에서 불기 시작한 감사나눔 운동이라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포스코ICT에서 처음 시작한 이 운동은 포스코 전체를 거쳐 포항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생산 현장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직장 생활에 활력과 윤기를 더해주고 가정에 웃음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감사 나눔 운동이다. 감사는 먼저 나를 기쁘게 만들어준다.감사가 가져다주는 나비효과. 감사야말로 나를 바꾸고 내 주위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의 전형이 되기에 충분하고 훌륭한 원소이다.

2012-04-23

지금 늙은이도 한 때는 젊은이였다

▲ 이경우 편집국장피 끓는 4월이다. 해마다 4월이면 환장하게 핀 꽃보다 교정을 덮는 매캐한 체루 가스의 기억이 더욱 강렬하다. 학창시절, 4월이면 캠퍼스는 온통 꽃동산이 됐지만 눈뜨고 그 꽃을 쳐다볼 여유가 없도록 최루 가스는 지독했다. 체루 가스는 캠퍼스는 물론 인근 동네 전체를 뒤덮었으니 학교 주변은 집값도 다른 곳보다 낮았다는 것 아닌가. 총선거가 끝이 났다. 여야가 12월 대선을 겨냥하고는 양보 없는 기 싸움을 벌였는데 결과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여야는 서로 젊은이들을 투표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4년 전 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1%. 역대 가장 낮았다. 야권과 소위 진보 세력들은 그 이유를 젊은이들이 투표하지 않아서였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보수층만이 투표를 해서 당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번엔 젊은이들을 투표장에 끌어들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투표 독려를 선거운동과 함께 벌여왔다. 20대와 30대가 투표를 해야 투표율이 올라간다는 전제다. 물론 그 젊은이들이 모두 보수 세력인 여당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이고 종북 세력을 포함한 야권 후보에 투표를 할 것이라는 전제다.여기서 나온 것이 “투표율 70%가 넘으면 ...” 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고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짧은 치마를 입고 노래하고 춤을 추겠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뽀글이 파마머리를 하겠다”고 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삭발을 하겠다”고 했고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그런데 그 조건이 투표율 70%였다. 투표율은 1985년 12대 총선 당시 84.9%라는 기록을 세웠고 20년 전인 14대 총선에서도 71.9%를 기록했지만 이후 내리 하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 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1%였다. 어쨌든 그런 선전 덕분인지 이번 19대 총선의 최종투표율이 지난번보다 무려8.2%포인트, 그러니까 실제 17.8% 늘어난 54.3%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진보의 패배였다. 그런데도 야권에서는 이번 총선의 실패가 젊은 층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은근히 떠넘긴다.젊은이들은 모두 야권에 투표한다고? 그럼 호남 지역에는 젊은이들만 살고 영남 지역에는 노인들만 사는 건가? 여당에 투표를 하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의 투표라고?지금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위원장, 이재오 국회의원,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도 모두 6.3세대들이다. 전국의 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맨주먹으로 항의한 혁명이 4.19였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헤게모니를 잡은 군사정권이 1964년 한일 굴욕회담을 시작한다. 대일청구권 협상이 벌어진 이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들이 바로 6.3세대이다. 군사독재와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들의 운동은 정부로부터 빨갱이로 몰렸고 50년이 지나서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다. 지금 70을 넘긴 늙은이들이 당시 젊은 4.19세대였고 6.3세대였다.그 뒤 1970년대 3선 개헌과 유신을 반대한 피 끓는 젊은이들은 지금 벌써 50대가 훌쩍 넘어섰다. 1980년대 군사정권 타도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젊은이들도 지금은 40대가 돼 버렸다. 그렇다. 지금의 늙은이들도 한 때는 모두 피 끓는 젊은이였다.총선이 끝났다. 지금 한미 FTA를 반대하고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세력에는 젊은이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수가 반드시 늙은이들의 전유물일 수만은 없다. 피끓는 4월, 이 4월이 가고 봄날이 가면 내년 봄이 다시 온다. 그동안 젊음은 더욱 성숙해지 것이다.

2012-04-16

불만있다고? 그럼 투표해야지

▲ 이경우 편집국장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4년 전인 지난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고작 46.1%. 역대 최저였다. 대구는 45.1%로 전국 평균보다도 낮았고 그나마 경북은 53.0%였다. 1992년 14대 총선 때만 하더라도 전국 투표율이 71.9%를 기록했다. 그러던 투표율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을 두고 선거관리위원회와 정치권에서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투표율을 떨어뜨린다고 단언한다. 최근 회사의 행사 뒤에 식사를 같이 하는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참석자들은 상공인, 교육계, 사회단체, 의사, 회사원 등 다양했다. 처음엔 학교 급식이 화제로 올랐다. 전면 무상급식이 되어야 한다, 급식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면 재정이 부족해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이 모자란다. 전면 무상급식은 점차 늘려가야 한다. 아니, 그렇다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의 자식들이 오히려 무상급식에서 제외되어서야 되겠나?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화제가 자연스럽게 정치로 비화했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화제를 돌리지 않았으면 분위기가 어색해 질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영국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점잖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정치 얘기는 화제에 올리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만큼 정치적 관심이나 지지는 개인의 성향일수도 있고 지극히 개별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율이 낮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길이 막혀도, 고기가 안 잡혀도, 장사가 안 돼도, 큰 사고가 나거나 날씨가 안 좋아도 정치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네 풍토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정권과 대통령에게 집중된다.정치적 무관심이란 정치를 잘 해서 생길 수도 있고 정치에 실망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의 정치적 무관심이란 정치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이 있으면 정치에 대한 관심을 거부할 수 있는 여유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긴급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없어 현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성향이다.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란 이런 긍정적 관점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히려 투표율이 낮은 것은 정치에 대한 불신, 불만, 정치권력에 대한 나 자신의 무력감과 좌절감으로 인한 사회와 정치로부터의 소외감이다. 여기서 느끼는 소외감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확대된다고 사회학자들은 진단한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에서 생기는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는 자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 반 23명 중 나와 내 친구 단 둘이 반장 후보로 나섰다. 나는 친구를 찍었다. 물론 친구도 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12표를 얻은 친구가 반장에 당선되고 11표를 얻은 나는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친구를 찍지 않고 나에게 투표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후회 아닌 후회를 한다`. 오래전 읽었던 초등학교 반장 선거 글짓기가 생각났다.많은 선거를 해봤고 내가 투표한 후보자가 당선되기도 했고 떨어지기도 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왜 저런 선택을 할까” 불만도 가졌다. 왜 사람들이 저런 선택을 할까? 왜 꼭 당선돼야 할 후보가 떨어졌을까? 그러나 지금은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더 많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내 생각이 다수의 생각과 늘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선거란 절대 선을 찾는 것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수록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투표해야겠다.

2012-04-09

박근혜는 경북에 언제 오는가

▲ 이경우 편집국장선거가 9일 남았다. 여야 지도부는 서로가 이번 선거를 박빙의 승부라며 수도권과 충청도 부산 등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찾아 지지를 호소한다. 그런데 우리 대구 경북 지역은 아주 시큰둥하다. 선거운동원들이 도심 네거리마다 점령하고 어쭙잖은 막춤으로 시민들을 후려치려 할 뿐 유권자들은 영 반응이 시원찮다. 후보자들의 속이 타들어갈지 몰라도 유권자들은 선거가 끝난 듯하다. 사실 별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공천이 늦어지면서 선거판이 제대로 서질 않는 것이다. 거기에다 지난 해 연말부터 국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며 예비후보 등록을 했던 그 많은 후보들은 대부분 뜻을 접었다. “썩어 정권 재창출의 밀알이 되겠다”. “백의종군하겠다”며. 백기투항이다.그나마 끝까지 출마 의지를 관철한 무소속의 면면을 보라.“ 당선되면 새누리당에 입당하겠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권가도에 힘을 보태겠다”. 하나같이 충성경쟁이다.“이기는 사람이 우리 편이다”는 말이 실감 나는 현실이다. 살아 돌아온 놈이 우리 편이다. 누구라도 좋다. 어차피 모두가 새누리당으로 들어오지 못해 안달인데, 누가 된 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갑과 을이 이렇게 분명하게 결판나 버렸다. 누가 되더라도 당의 정권 재창출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데, 이럴 줄 알고 칼자루는 중앙당과 공천권자가 잡았던 것이다.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밤잠을 자지 않더라도 선거구를 돌면서 당 후보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산에는 벌써 몇 번째 갔다. 어제도 부산과 경남지역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런 박 대표가 대구 경북에는 한 번 다녀가고는 종무소속이다. 후보들도 기다리지 않는다. 12월 대선 전초전인데 왜 고향인 대구 경북 지역은 외면할까. 찾아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도대체 색깔이 없다. 모두가 같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같은 결과가 예상되고 보니 다른 지역에서는 경상도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그런다. 그런 소리를 들어도 좋다. 사람만은 바로 알고 뽑자. 정말 그 사람이 우리 지역을 위해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인지. 그의 살아온 과거 행적을 보고 그의 정책을 보고, 그의 미래 비전을 보고, 그리고 의지를 보고, 결단성을 보고, 무엇 때문에 나왔는지 살펴보는 거다. 그들이 우리의 정치 DNA(유전자)를 갖고 있는 대표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어차피 우리 수준이고 정치인은 우리가 선택한 우리의 대표다.그 후보의 공약이 무엇인지, 그 공약은 누구를 위한 공약인지, 그리고 그 공약이 실천 가능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과연 그 후보가 그 공약을 해결해 낼 능력이 있는지와 함께 그가 속한 정당의 정강과 정책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누가 나를,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지 검증해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 선택의 폭이 한정돼 있다. 비례대표에는 20개의 정당이 있지만 등록 후보는 여야, 무소속 등이 고작이다. 그래서 더욱 살펴봐야 한다.30년을 국회의원으로 보낸 7선의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내뱉은 쓴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총선 때마다 아무리 물갈이를 외쳐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이대로는 청운의 꿈을 안고 국회에 와도 그저 그런 의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후보들은 300명 중 한 명이 되고 여야 정당들은 텃밭에서 공천 전횡을 부리게 된다.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인 후보를 선택했으니까. 이건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런 사람을 찍어주고 당선시켜 주었으니까.

2012-04-02

야권연대와 무소속 연대의 차이

이경우 편집국장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가 결국은 서울 관악 을 국회의원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야권연대는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대표는 야권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조작했다는 비난에 재경선을 고집했었다. 이 대표가 등록을 포기하기까지 야권의 원로들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숨가쁘게 움직였고 이 대표의 포기를 이끌어냈다. 이 대표의 노선이나 정치 철학을 떠나 야권 연대를 위한 출마 포기는 정치 도의적으로 당연하면서도 자기를 버리는 큰 결단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4.11 총선에서의 야권 연대 협상을 지켜보면서 선거에서의 연대란 결국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동 전략이라는 데 도달하게 된다. 이 대표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훈수를 수용한 데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대구의 12개 선거구 중 9개 선거구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된 것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장한 결정으로 보인다.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대구시민의 심판은 물론 그런 협상과는 별개일 것이지만 주목받기에 충분하다.이는 논어에서 말하는 `화이부동`이라 할 수 있겠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니 동질성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의리를 배신하지 않고도 진심으로 어울리니 과히 군자의 어울림이라 할 만하다.선거에서의 단일화와는 다르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협상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연걸이 주연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의 모티브가 됐던 자객 형가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진나라 장수였던 번어기는 모반에 실패하고 연나라로 도망간다. 처자식은 도륙당하고 자신의 목에는 천금이 포상으로 붙여진다. 연나라 태자 단은 어린 시절 진시황이 왕이 되기 전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던 친구사이였다. 그런데 진나라 왕이 된 시황제가 자신과 연나라를 업신여기고 짓밟으려 하자 진시황을 없애려 한다. 태자 단의 친구 전광은 단의 목적달성에 맞춤형 칼잡이 형가를 소개해 준다.검술과 독서로 단련하고 호걸들과 사귐을 좋아하는 협객 형가는 진시황에게 접근하려면 연나라 땅 지도와 번어기의 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자는 지도를 줄 수는 있어도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번어기의 목은 차마 내어놓으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번어기에게 형가가 시황제를 없앨 궁리를 설명하자 번어기는 선뜻 목을 내놓는다. “이를 갈고 밤잠을 설쳐가며 기대하던 일을 마침내 이루어 낼 임자를 만났다”며, 자기의 원수를 갚아 달라며 칼로 자신의 목을 친 것이다. 전광도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을 보냈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살한다.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 야권 연대가 속속 단일화로 성사되는 모습과 달리 무소속은 선거구 간 연대만 논의될 뿐 선거구 내 단일화는 시도조차 되지 않는 것을 본다. 야권 연대와 무소속 연대는 그 목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의 김문오 달성군수 후보가 선거의 여왕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에서 그가 지원하는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는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무소속 후보들의 공동 목표가 있었고 그를 달성하기 위한 후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 출마한 무소속 후보들의 선거구 내 단일화 협상이 안 되는 것은 상대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출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동이불화`라 할 만하다. 절박함, 내가 죽어서 목표를 이루겠다는 절박함이 없으면 연대는 있어도 단일화는 없다.

2012-03-26

공천, 이게 끝이 아닙니다

▲ 이경우 편집국장일부다처제의 세계인 원숭이 무리는 새 수컷이 헤게모니를 잡으면 옛 두목의 새끼들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임신한 암컷들은 대장이 바뀌면 자발적으로 유산해서 `영아살해`를 막고 있다고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최근 밝혔다. 에티오피아의 야생 겔라다개코원숭이 21개 집단의 암컷 110마리를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라 한다. 임신한 원숭이 10마리 중 8마리는 대장이 바뀐 지 2주 이내에 유산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새 수컷이 등장한 바로 그 날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을 했다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정당들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텃밭이라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공천을 거머쥔 예비후보들이 팔부능선을 넘어선 듯 느긋하다. 그런가하면 낙천한 후보들도 반발 수위를 낮춰가더니 대부분 수긍해가는 분위기다. 아쉽기도 하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듯 후보에 따라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던 기류가 시간이 지날수록 숙지고 있는 것이다.부산에서는 한 때 미래권력인 친박근혜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국회의원이 탈당하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발표해 새누리당 내 친이계를 비롯한 낙천자들의 탈당 도미노에 제동을 걸었다. 그가 공천에 불만을 품고 탈당해서 다른 당으로 말을 갈아타거나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단했다면 많은 공천 낙천자들의 행보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과 동지를 떠나면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도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4선 의원인 그가 “우파 분열의 핵이 돼서는 안 되므로 백의종군하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음으로서 새누리당은 그에게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그가 비례대표 의원 상위순번에 배치되거나 총선에서 부산지역 선대본부장을 맡는 등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어떻게 쓰이더라도 그의 말처럼 네 번씩이나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으로서 통 큰 결단을 내리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은 새누리당내 공천 탈락 의원들의 탈당을 막아냈다. 4선인 대구의 박종근 의원을 비롯, 의성의 정해걸 의원과 3선인 안동의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도 당의 결정을 받아들여 불출마를 선언했다. 우파를 분열시켜 좌파 정권의 집권을 도와줄 수 없다는, 우파 정권재창출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이다. 죽어서 사는 길을 택했다고 보고 싶다.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은 처음에는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거나 특정인을 위한 `밀실공천` 또는 `기획공천`이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눈비를 맞아가며 당을 지켜온 지금까지의 충성은 간 곳 없다며 분해한다. 현역 의원들의 반발은 그렇더라도 아예 배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한 예비후보들의 아쉬움은 더 크다.“날개도 펴 보지 못하고 여기서 끝내려니 너무 아쉽다. 지역을 위한 청사진을 갖고 내려왔는데, 이렇게 끝나게 돼 안타깝다” 새누리당 포항지역 한 예비후보의 한탄이다. 그는 예비후보 두 달 동안 하루 네 시간씩 자면서 강행군을 했다고 털어놨다. 선거 운동으로 체중이 빠졌다고 했다. 중앙에서 나름대로 고향을 위해 노력했는데 막상 지역민을 대하고 보니 “`그것을 내가 했다`고 내놓기가 쑥스럽더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억울하지만 당의 결정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이 모든 것을 단 돈 xx원에 모십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여기에다가 모든 가정에서 한 세트씩 장만해서 편리하게 사용하시라고 △△를 하나 더 드립니다.” TV 홈쇼핑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 공천, 이게 정말 끝이 아니다.

2012-03-19

너희가 국회의원 해봤어?

▲ 이경우 편집국장지방장관인 도지사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나름 도지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밟아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공항 게이트에서 대기하다 비행기 탑승 트랩을 밟을 때까지 도지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었던 나로서는 1등석에 탄 도지사를 볼 수도 없었다. 긴 여행 중 도지사가 찾아와서 음료수를 권할 때까지 도지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서 입국 수속을 마칠 때까지 도지사는 볼 수 없었다. 이미 트랩에 상대국 접객원들이 나와서 모셨기 때문이었다. 1등석의 도지사와 이코노미석의 나는 비행기 출입문도 달랐다. 국회의원에게 장관급의 예우를 해주는 특권 중에는 공항 귀빈실 이용이 있다. 일반인들과 달리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대신해준다. 별도 게이트를 통과하며 귀빈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해외 여행을 가 본 사람은 안다. 공항 출국장에서 준비하는 지루함이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한지를. 또 이코노미석에 앉아 장거리 비행을 한 뒤 다시 입국장을 빠져 나오느라 긴 줄을 서서 기다려본 사람이면 안다. 국제공항 출입 절차가 얼마나 귀찮고 까다롭고 성가신지를.지역 신문기자에게도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고관들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편이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의 거들먹거림(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보였다)을 곁에서 보아왔다. 한번은 지역 중소업체 사장이 내가 출입하는 기관의 장을 만나게 해 달라며 내가 아는 사람을 연결해서 부탁해 왔다. 그는 나에게 “만나게만 해 주면 된다. 그 다음은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그랬다. 많은 청탁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그들의 특권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새누리당이 스스로 불체포특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안을 논의한 것만으로도 그들의 특권이 얼마나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지를 증명해준다. 후보들도 특권을 철폐하겠다고 들고 나오는 판이다.권위주의시대 전국구 국회의원의 일화다. 그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10억원인가를 공천헌금으로 내고 한번 더 국회의원을 하느냐 마느냐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였다. 젊은 한 지지자가 말했다. “아니 영감님, 10억원 씩이나 내고 국회의원을 하시려 합니까?” 그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너희가 국회의원 해봤어?” 당시로서는 정치후원금이 관례화돼 있었을 테고 지금 같으면 검찰청과 교도소를 열 번도 더 들락거렸을 비리도 버젓이 횡행했던 때의 얘기다.국회의원의 특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외하고라도 임기 4년 동안 세비만도 각종 수당과 활동비까지 합하면 연 1억3천만원이나 된다. 여기에다 개인적으로 채용하는 4급 등 6명의 보좌진을 두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그들은 개인 비서 겸 선거 때면 운동원이 되는데 주로 측근들을 쓰기도 한다. 물론 나라에서 주는 그들의 급여만도 연간 2억7천500만원이다. 그들의 움직임 자체가 국가 기관의 공무이다보니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 우편료, 철도와 비행기, 선박 무료 이용 등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니 특혜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번거롭다. 공식적인 정치후원금만도 평균 1억원을 훌쩍 넘는다. 퇴임 후에는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65세가 넘으면 월 120만원의 연금을 품위 유지 명목으로 받게 된다.200가지가 넘는 그들의 특권. 그래서 배지를 떼고 나면 금단현상이 온다는 그 권력의 맛을 찾아 부나비가 불에 뛰어들듯 선거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 숫자를 또 늘렸다는 것 아닌가? 보통 국민의 손가락질쯤은 자신 있다는 그들의 오만함을 심판할 때가 왔다.

2012-03-12

모바일로 소통하는 세상이 우울한 이유

▲ 이경우 편집국장“왜 전화해놓고는 안 받아?” 뜬금없는 아내의 성화에 기가 찼다.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아무리 사실대로 얘기해도 변명이 될 뿐, 뭘 감추느냐고 몰아대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은 다소 나아졌지만 스마트폰으로 처음 바꾸고 난 뒤의 일이다. 전화를 걸지 않았는데도 그 섬세한 터치폰은 언제 무엇을 눌렀는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누라한테 전화가 걸렸고 난 그런 사실도 모른 체 그냥 호주머니에 폰을 집어넣고 다녔던 것이다. 올해 초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때문에 170년 역사의 뉴욕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중단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 뉴욕필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 마지막 부분을 연주할 때 에이버리피셔홀 맨 앞줄에서 아이폰 벨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벨소리는 실로폰의 일종인 마림바 소리로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벨소리를 꺼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도 한 참 뒤에야 벨소리를 껐다.벨소리의 주인공은 20년 동안 뉴욕필을 후원해 온 60대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공연 전날 휴대전화를 아이폰으로 바꾸었고 매뉴얼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그는 폰을 진동 모드로 바꿨지만 알람은 작동됐고 그는 자신이 벨소리의 장본인인줄 몰랐다고 한다.그 스마트폰이 우리 선거판을 뒤흔들려 하고 있다. 지난해 10·26 보궐선거에서 맛을 보여 주긴 했다. 그러나 지역 사정은 다르다. 노인들이 점령해버린 농촌 지역의 특성상 아직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만이 유일한 이용법인 많은 노인들에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효용을 논하기에는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다.민주통합당에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시작된 국민 경선은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절차에서부터 말썽이다. 선거인단 신청을 서면이나 직접이 아니라 모바일과 인터넷, 또는 콜센터 등 세 가지 방법으로만 받으면서 불거졌다. 전화는 폭주했고 콜센터 연결이 잘 되지 않는 틈을 노려 아르바이트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조직에서 미리 확보한 노인들의 연락처를 이용해 접근, 인터넷으로 대신 등록시켜 주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비밀과 직접이라는 선거의 기본이 흔들리는 순간이기도 하다.사실 노인들은 모바일 투표의 방법을 습득하는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가 동원돼 병원 환자신상이나 거래 고객 명단이 팔려나가고 대리 등록하는 방법으로 불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당내 경선에서뿐 아니라 이번 총선에서 모바일 투표제를 도입하려 부단히 시도했다. 심지어 선거구획정에서 모바일 투표와 연계시키려고도 했다. 새누리당 정치개혁특위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민주당의 경선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모바일 투표를 입법화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모바일 투표는 투표부정이 가능하고 또 접근하지 못하는 농어촌 고령자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뿐이다.그러나 추세는 모바일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비록 휴대폰의 효용이 받기 전용에 그치는 사용자가 더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SK텔레콤을 비롯한 세계 1천400여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가 열렸다. 여기에는 자동차와 통신의 결합에서부터 금융, 원격진료 등 모바일 기술의 확장에 따른 미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우리가 따라 가든 말든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지금 세상은 모바일 혁명으로 가고 있다. 솔직히 모바일 같은 첨단기기의 변화 속도를 따라 가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힘이 든다. 그것이 우울하다.

201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