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송림테마거리에서

양태순 수필가 입구에 녹색으로 된 숫자 ‘1’위에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삶이 일등이라는 의미인지 조깅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원제 ‘세계로 미래로’). 왼쪽에는 방문자를 흐뭇한 미소로 반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가 족두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오른쪽에는 송도 송림테마거리 지도와 주요시설, 이용수칙이 있다.거리 탐색을 나선 탐정마냥 꼼꼼히 살핀다. 거리에는 조형물이 여럿이다. 대부분은 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여름’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가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었고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 본 곳에는 달팽이가 있다. 손바닥에 올려둔 달팽이의 더듬이가 생생하다. 관찰하고 있는지 심심해서 같이 놀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그 밖에 날아오르는 풍선, 사랑 등의 조형물이 있어 동심을 자극하고 굳어가는 어른들의 감성에 부드러운 터치를 가하기도 한다. 또한 시원한 물이 개울을 굽이지며 흐르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분수와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살린 것은 야경을 고려한 배치가 아닐까 싶다.숲으로 눈을 돌린다. 싱그럽게 품어주는 초록의 잎들이 내 눈을 맑게 한다. 나무 아래로 산책로가 있고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많다. 천천히 걷는 길 주위에 공중걷기, 등·허리 지압운동, 양팔줄당기기 등의 운동기구들이 많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도 숲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수다 삼매경이 한창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강의 척도로 허리인치 기준을 적어놓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거리에 치매에 관한 표지판이 많아 새로웠다. 표지판에 3권 즐길 것이라 해놓고 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생선과 채소 골고루 먹기, 부지런히 읽고 쓰기라 적혀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반가운 발견이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니 일석이조다. 또 치매예방운동법, 치매예방다짐길, 추억회상길이 있다.나는 치매예방다짐길을 신발 벗고 천천히 걸었다. 삐죽한 돌이 빼곡하게 있는 길이 있고 징검돌 모양, 철길 모양으로 된 곳도 있어 발바닥 자극이 되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바닥이 화끈거릴 즈음 넓적한 돌이 기다리고 조금 더 걸으면 꽃인 듯 공룡 발자국 같은 돌이 예쁘게 수놓아져 있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새소리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높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낮게 깔려 울리는 소리는 편안함을 준다.벽화마을에 들어섰다. 늘 먼데 있는 벽화거리를 찾아다닌 내가 부끄럽다. 어느 곳 벽화나 공통점은 그 시절의 건물과 생활모습을 담아낸다. 이곳 벽화도 웃음이 많고 수박 한 쪽을 나누어 먹던 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수수한 이웃들을 표현했다. 바다가 곁에 있으니 고래와 모래사장, 수영하는 모습이 태반이다.그 골목길에서 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을 만났다. 연도 별 송도 해수욕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걸어둔 것이다. 1975년 송도해수욕장 사진 앞에서 내 모습을 찾느라 눈이 빠질 뻔 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처음 구경하는 해수욕장에 마냥 신이 났던 그 날이 생각났다.초등학생 때였다. 언니와 함께 찾은 해수욕장은 말문이 막혔다. 모래사장에는 사람들이 복닥거렸고 한눈을 팔면 길을 잃고 사람을 잃었다. 검은색 튜브를 빌려 수영복 대신 러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신나게 물놀이 하다 나올 때면 비 맞은 생쥐꼴이었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물속을 들락거렸다. 솔숲 그늘을 놓쳐서 볕 아래서 흰밥과 수박을 먹었지만 세상 행복한 날이었다.송림테마거리에서 어린 나를 만났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분수 앞에서 팔짝팔짝 뛰고 해수욕장에서 나만의 즐거움에 빠졌던 그 때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그 모습을 되새기는 시간은 아련을 넘어 아릿하다. 순간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즐겼던 날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창고 한 귀퉁이에서 낡아가는 일기장의 내용을 되살리는 날이었다.

2021-07-28

칠포 암각화

정미영 수필가 간절히 기도하며 염원을 새기는 이의 마음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가늠하고 또 가늠하면서 암각화를 찾아 집을 나선다. 포항에는 암각화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데, 그 중 칠포 암각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1985년에 처음 발견된 암각화는 기계면 인비리에 있다. 기북면 초입에 늘어선 고인돌 중 하나에서 확인되었는데, 고인돌 덮개돌의 남면에 석검과 화살촉 모양을 새긴 것이 세 점 나왔다고 한다.내가 오늘 찾아간 것은 1989년에 발견된 곤륜산 중턱 모래암석에 새겨진 암각화다. 그림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석검 손잡이 모양의 검파형 암각화를 중심으로 장구 모양, 실패 모양, 알구멍, 돌화살촉 등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 새겨진 물상들을 살펴보는데 낯선 방문객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바위 품에 있던 그림들이 기지개를 켠다.암각화는 오랜 세월 탓에 마모되었다. 하지만 존재 가치와 의미는 전혀 퇴색하지 않았기에, 내 경외감의 농도는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자연이 만든 대상물 가운데 바위는 유독 변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예로부터 특별하게 생각되어 왔다.사람의 불안정성과 왜소함을 바위의 영속성과 견고함에 비교했던 탓일까? 선사시대 사람들은 다산과 풍성한 사냥을 기원하는 마음을 바위에 새기는 각수(刻手)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의 마음을 담아내느라 햇빛과 달빛 아래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을 바위새김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그들은 바위에 곱돌로 그리고, 나중에는 참돌 새김칼로 새겼을 것이다. 부족사람들의 바람을 바위에 새기는 동시에 후손인 우리들에게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기원의 마음이 깊었던 탓에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칠포 암각화는 소멸되지 않고 가부좌를 털고 앉아 조용히 묵언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히 염원하고 신념을 새기는 조상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아 내 가슴이 먹먹하다.할아버지도 새김이였다. 그들은 바위에 새겼지만, 할아버지는 옹기에 문양을 새겼다. 가마 앞에서 노심초사하던 할아버지의 어깨와 등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흙을 빚어 말린 물그릇에 건아작업을 거쳐 바짝 말린 다음, 가마에 넣어 구워내기를 반복하는 열정에는 존경심이 일었다.옹기를 만들 때 문양은 동물문과 화초문을 새겼다. 할아버지는 옹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장수, 다산, 부를 기원했다. 옹기에 새와 나비를 그리고 연꽃과 모란을 그릴 때 할아버지의 손등에서는 푸른 힘줄이 튀어 올랐다. 조각칼을 잡은 손은 떨리면 안 된다.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는 모습에서 작품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여러 형상을 표현하는 문양마다 할아버지의 눈물과 땀이 젖어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마음이 내 가슴에 무수한 언어로 전해졌다.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때문이다.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을 새겼던 선사시대 조상들의 정신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후손들에게 전해졌기에, 우리의 새김 기술은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수준이 되었다.칠포 암각화는 예술혼이 깃든 문화재다. 바위새김이들은 온갖 시련과 고난이 찾아와도 암각화에 기원의 말을 새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간절한 염원의 말은 소멸되지 않고, 암각화라는 예술을 피어 올렸다. 문화재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민족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나 또한 바위에 새겨진 조상의 숨결과 아포리즘을 온몸으로 느끼며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어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간절히 염원하고 신념을 새기는 이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전해지리라.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니 조상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중한 그들의 염원을 바위 품에서 내 가슴으로 옮겨와 곰비임비 쟁여본다.

2021-07-21

적이 보이지 않는 전쟁

배문경수필가 전화벨이 한여름 매미가 한꺼번에 울어대듯 울린다. SNS로 노쇼(no show)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전화다. 한 사람 분량의 백신을 올렸다가 병원 업무가 20분간 마비되었다. 노쇼 예비명단을 A4용지 열장 가까이 갖고 있다. 외국으로 나갈 학생이나 무역업무가 관계된 사람들은 백신이 시급하다. 오죽하면 백신을 맞을 수만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오겠다고 통사정을 할까. 서울에서 경주까지 KTX를 타고 온 예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유분이 많지 않다.근래엔 코로나예방주사로 병원이 예외 없이 붐빈다. 환자의 치료와 간호, 간병하는 일 속에 예방접종도 포함되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업무 속에는 환자와 의료진, 막 접종을 마친 사람과 대기자들로 병원 안은 종일 북새통이다. 특히 원무과 업무가 마비되었기에 노쇼 등록을 자제해 달라는 얘기가 나왔다. 나름의 어려움 속에서도 백신 접종행렬은 계속 진행된다.몇 달 전, 병원에 코로나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입원했다. 그는 열없이 복통증세를 보였다. 그 환자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겹치거나 스치는 모든 사람이 감염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한 사람에 의해 전파된 조직도를 보면 거대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병원의 직원들과 입원한 환자들이 대상이었다. 확진자는 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남은 환자와 직원이 함께 병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대 퇴원하지 않겠다는 소수의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함께 병동에 2주간을 고립된 채 근무했다.최소의 인원으로 2교대 근무가 이루어졌다. 환자와 의료진이 외부와 단절된 채 일방적인 통로로 음식물과 필요물품이 전달되었고 밖으로는 배출이 되지 않는 감염차단 시스템이었다. 그들 모두가 일회 용기에 담긴 부족한 식사를 했다. 그래서 2주라는 시간 탓에 미혼의 남자 간호사가 주를 이루었다. 마스크에 페이스 쉴더, 그리고 가운에 장갑까지 중무장하고 주사를 주고 회진을 돌았다. 매주 검사를 통해 음성양성을 판가름했고, 2주를 손꼽아 기다리는 도중 릴레이처럼 한 명씩 양성이 나왔다.2주를 넘기자 의료진의 체력이 소진되어 음성이 나온 직원은 집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그러면 대기하던 2차 의료인이 투입되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은 모두를 지치게 했다. 격리병동의 환자들 사이에 전염과 전염이 거듭되면서 해제까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걸렸다. 이제는 백신이 도입되고 국민에게 접종하면 끝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공포로 어둡던 암흑기 유럽의 도시를 보는 기분이었다.초기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속출했을 때에 비하면 많이 안정세다. 하지만 다시 델타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빨간 비상등이 켜졌다. 2020년 2월부터 우리는 브레이크 등을 켠 채 서서 파란 등에 불이 와 주길 기다리고 있다. 간혹 짧게 앞으로 나아가던 차들은 다시 멈춤을 반복하고 있다. 좀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이 거대한 붉은 신호등 앞에서 좌절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하지만 한 달 두 달 갈수록 백신의 위력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러한 희망이 없다면 누구도 불편을 감내하지 못할 일이다.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자.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를 보낼 때다. 익숙해지고 있는 마스크로 들숨과 날숨을 쉬며 그래도 매일 답답한 일상을 잘 견뎌낸다. 이제 곧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폐활량을 극대화시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뎌야 할 것이다.노쇼의 발생분이 100% 접종으로 이어진다. 칠월(七月)의 아름다움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갖자.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불안과 공포에서 전염병을 이겨나가는 모습처럼 우리도 삶의 역사를 계속 쓸 것이다. 백신을 2차 접종하면 60~88%까지 예방효과가 있다고 한다. 덧붙여 ‘결혼 여름’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가져와 본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을’ 상상하며 오늘은 환하게 웃어보자.

2021-07-14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다

양태순수필가 이삿날을 잡았다. 날은 자꾸 가는데 마음만 분주할 뿐 몸이 선뜻 움직이질 않는다. 창고를 열어보고 방마다 기웃거린다. 자리를 차지한 물건을 보고 엄두가 안 나서 다음으로 미룬다.창 너머 펼쳐진 바다를 본다.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점점이 하얀 돛이 남실댄다. 푸른 바다와 흰 돛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를 먼 나라의 호수로 데려간다. 햇살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백조가 솔솔바람이 수면을 미끄러지며 만든 물결을 타는 모습이 숨 막히도록 고요하다. 곧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고대하며 지켜본다.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마른다. 마른 침을 넘기며 제발, 제발 하는데 소음이 귀를 때린다. 환상을 깨트리는 제트스키의 우렁찬 출발 소리다.나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고 있다. 이집을 첫눈에 반한 이유가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구름의 변화무쌍함을 잘 담아내는 바다다. 때로는 바다가 파랗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검푸른 날이 있고 너무 반짝여서 투명하게 보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파랗고 파래서 손톱에 물이들것 같은 날도 있었다. 오늘같이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는 날도 있다. 멀리서 작은 물결이 물기둥을 밀어 올려 하얗게 해안으로 달려와 모래를 데려가는 날이면 나도 따라가고 싶어 들썩이기도 했다. 그 어떤 모습도 다 좋았다.집을 떠나려니 미련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사 와서 이십 년 넘도록 살았다. 해와 달을 넘기며 나쁜 일도 있었지만 기쁜 날이 더 많았다. 십 년 동안 이삿날을 기념하며 작은 파티를 했고 불빛축제에 넋을 놓았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슈웅’ 올라가 펑펑 터지며 바닥을 향해 뿌려지는 형형색색 빛의 아름다움에 와, 와 감탄사를 나누었던 시간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같이 한 집, 언제나 가족과 단란했던 순간들로 남아 있을 집이다.마음을 다잡아 안방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을 꺼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분류했다. 옷을 들고 달막거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몇 무더기 쌓이며 끝이 났다. 다음은 서랍 속 물건들을 꺼냈다. 옷보다는 수월하게 정리되고 있었는데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앞에서 손이 멈췄다. 결혼식과 아이들 유치원 재롱잔치를 녹화한 것이었다. 이것이 여기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말랑해졌다.하던 것 버려두고 비디오를 돌렸다. 화면에 나온 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원복치마가 살짝 들려서 속옷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짧은 동요를 연주하는 내내 리듬을 타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기계음을 낸다. 저 때부터 저랬구나, 잘 웃지 않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했구나. 지금껏 변하지 않은 딸에게 미안했다. 나는 크면서 변할 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끌어당겼다. 조금만 연습하면 나아지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어설픈 엄마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남은 것은 나중에 보려고 주섬주섬 상자에 담았다.마음이 무거워 몸을 일으켰다. 커피를 마시며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다른 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봉투에 쓰레기가 된 물건들을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내리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며칠 동안 창고와 아이들 방, 부엌을 정리하는데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한두 번 손이 가고 다시 찾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모아둔 본품에 딸려온 사은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쓰레기로 전락한 물건들이 꼭 필요했을까? 저 많은 쓰레기가 마음속에 고여 있는 욕심의 크기인가 싶었다. 민낯을 보인 내 모습이 부끄러워 손부채질을 했다.요즘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아마도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것, 기본적인 것이 단출할수록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것저것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품을 키우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알아버려서다. 나는 이삿짐을 싸면서 버려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했다.바다는 데리고 가야겠다. 이 집에서 엮었던 우리만의 이야기도 겹겹이 싸매서 마음 창고에 담아가기로 한다. 대신 허황되고 헛된 욕심은 버리는 물건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보낸다. 이사한 집에서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

2021-07-07

호미곶(虎尾串)등대

정미영 수필가 비 개인 해수면은 평온하다. 비바람과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그 많던 빗방울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물의 윤회 속에서 어쩌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바닷물로 거듭 되풀이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빗물에 사라진 길의 경계를 더듬어 걷다가 등대박물관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젖어 있는 등대를 만난다. 호미곶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등대로 1908년에 신설 점등되었다. 등탑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조적된 팔각형으로, 18세기 중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다.포항에 살면서 자주 찾아가는 것이 등대다.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고, 등대는 내게 삶이라는 고해에서 희망의 해원을 향해 불빛을 비추는 이상향의 손짓으로 각인되는 연유 때문이다. 20년 전, 등탑 내부의 108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표상하는 오얏꽃 문양(李花紋)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역사 속의 한 시절을 가늠하자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아릿한 것이 올라왔다.등대는 배들을 안전하게 항구로 안내하는 구원자다. 등대의 불빛은 선박들에게 희망의 빛이요, 구원의 빛으로, 12초마다 한 번씩 40㎞까지 뻗어나간다. 호미곶 등대도 114년이나 된 오랜 세월 동안 칠흑 속에서 등명기를 깜박였다. 어선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부지런히 빛으로 타전(打電)을 부치면, 그 뿜어지는 불빛을 보고 멀리 고기잡이를 떠났던 배가 항구로 줄지어 돌아왔다. 가족을 위해 바다와 사투를 벌이고 돌아오는 피로한 어부들을 위로하듯 불빛은 포근하고 따스했다.등대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오른다. 예전에 아버님을 모시고 등대에 불이 켜지는 풍경을 자주 감상했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님의 삶에는 무시로 태풍이 불었다고 들었다. 세상 바람은 모두 몰려와 아버님의 삶 속을 흔들고 다녔다. 큰집 형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부탁한 조카 다섯과 당신의 자식 넷까지 건사하느라 생활에는 늘 짙은 해무가 끼였다.산골짜기의 급류도 종착지인 바다에 다다르면 잔잔한 법이다. 그러나 아버님의 시련은 끝이 없었다. 이제껏 굴곡진 생활을 견뎠으니 남은 생은 완만하고 순탄하게 흐를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한동안 편찮으셨던 아버님이 병원 검사를 받은 결과, 담낭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님은 마치 오래되어 기능을 멈춰 버린 등대처럼 보였다.아버님은 한 때, 가족들의 든든한 등대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아버님이 계셨기에, 자식들은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이라는 바다를 누볐다. 잦은 포말을 만들며 바다가 울어도, 마음이 온통 슬픔으로 쟁여 있어도, 어부들은 바다로 나간다. 그들이 갯내음 비릿하게 풍기는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까닭은 등대가 집으로 오는 길을 변함없이 비춰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등대가 직접 고기를 잡아 만선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부들의 마음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처럼.등대를 바라보며, 문득 내 삶의 언저리를 돌아본다. 나는 등대처럼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주위 사람들이 때때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맬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는지, 궁금하다. 살면서 문득문득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등대가 되어도 좋을 성 싶다. 그러면 삶의 무게가 버거워 쓰러질 것 같은 사람도, 등대로부터 위안을 얻어 세상을 향해 힘차게 항해할 수 있으리라.아버님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달빛에 부서진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어우렁더우렁 달빛 윤슬을 잡으려고 바닷물에 손을 담근다. 해조음과 어우러진 손이 일정한 가락을 타고 중모리장단에서 휘모리장단으로 급물살을 타니, 내 가슴에서 눈이 시리도록 검푸르고도 깊은 그리움이 연신 토해진다.고요히 흐르던 호미곶등대 불빛 하나가 방향을 틀어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내 가슴에 아버님의 화신인양 등대 불빛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2021-06-30

소리와 소리 사이

배문경수필가 열어둔 창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으면 잠마저 촉촉해진다. 우물 속을 바라볼 때처럼 아득하고 깊다. 세상을 찬찬히 적시다 내게 다가와 손길을 서서히 뻗어 쓰다듬듯이 낭창하게 마음속으로 어둠에 섞인 비를 뿌린다. 어느 유년의 한때 미루나무가 제 그림자를 뻗어내던 가로수의 그림자를 밟고 걸었던 시간과 오버랩 된다.바야흐로 번성의 계절이다. 덩달아 봄꽃 사라진 자리로 소소하게 금계국이 피고 석류꽃이 피어난다. 무논에 모내기 끝낸 자리로 자욱하게 개구리소리 요란하다. 온몸으로 울어대는 개구리의 떼창에 여름 더위가 깊어간다. 밤새 저 왁자한 개구리 소리는 언젠가 들렸던 화개장터의 요란한 정오 같다. 산 것들의 생식이 빚어내는 절묘한 절규다. 가야금을 서서히 켜다 자진모리로 달려가며 숨이 멎을 듯이 극으로 치닫는 소리 같다.개구리 소리가 사라지는 아슴푸레한 새벽, 먼 산에서부터 뻐꾸기 소리가 낭창하게 들린다. 나무와 나무를 오가는 새소리가 밤을 걷어낸다. 상쾌하고 발랄한 아침, 신선한 바람의 전령사처럼 금세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농약 등으로 새소리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환희로 아침을 맞을 것인가를 묻는다. 나 또한 한겨울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한 새들이 푸른 하늘을 나는 소리에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낀다.분황사에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절문을 열면 한꺼번에 밀려드는 새소리는 아득하다. 천국이 있다면 천당이 있다면 필히 이렇게 아름다운 새소리가 있을 것이리라. 초록의 잎사귀가 하늘을 덮은 절집마당에 하늘과 땅이 온통 새소리로 인해 기쁨과 가득 찬 환희를 맛본다.여름이 깊어갈 즈음, 고목의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듣는다. 이미 개구리가 짝짓기를 끝내고 소리 없이 떠난 뒤이다. 자지러지도록 매앰맴 소리에 하늘이 쩍 갈라질 듯하다. 절창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칠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침침하고 캄캄한 땅속에서 견뎌냈으니, 어찌 작렬하지 않을까. 애벌레인 굼벵이가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매미가 되는 모습은 불교에서는 해탈이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기 때문에 재생이라고 한다.“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이정선은 평시조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삶을 노래했다. 하지만 소음의 주범인 말매미는 플라타너스라 불리는 양버즘나무와 벚나무를 좋아하는데, 이 나무를 가로수와 정원수로 도로와 아파트 등에 많이 심으면서 번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10마리 수컷 말매미를 대상으로 소리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 사람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름 소리에서 소음으로 전락한 매미 소리는 안타깝다.죽은 매미가 길가에서 발견되면 어느새 창 근처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 초입을 알린다.풀벌레 소리가 벼가 익는 소리처럼 익어갈 즈음 방안에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뒹구는 나를 달래던 소리가 있었다.“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엄마는 배 위를 슬슬 쓰다듬으며 문지르며 자신의 손이 화타의 손인 양 아픈 배가 낫는다고 했다. 어느새 잠든 내가 깼을 때는 어둠이 대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태어날 때, 삼신할미의 손에 궁둥짝을 철썩 맞고서야 첫울음으로 자타(自他)가 세상에 자신을 알린다. 잘살든 못살든 한 생애를 끝낸 자리에 울음보로 예(禮)를 다하니 시작과 끝이 결국 소리의 한 생애가 아니던가.지금, 뭇소리 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내게 온 개구리 소리가 흐뭇하기만 하다.

2021-06-23

자연의 시간표

양태순수필가 소록소록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숲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숲일지라도 어느 것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식물이 자랐을 높이를 눈대중으로 짐작하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숲은 고요히 키를 키우고 품을 넓힌 탓에 어느 순간에 나무가, 꽃이, 풀이 자랐음이 확 다가온다.사람들이 숲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쉬고 싶어서 오거나 맑은 공기 마시고 건강해지려고 오고, 추억을 쌓기 위해서도 찾는다. 숲을 걸으며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흙탕물이 아니라 밑바닥에 고인 앙금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숲이 주는 푸르름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잡다한 생각들의 뿌리가 오롯이 자신을 향한 채 촉각을 세우는 순간이다.형제들과 제주도 비자림을 찾았다. 먼저 새소리가 반기고 이어 습하고 눅눅한 흙냄새, 뒤를 이어 상큼한 나무 향기가 반겼다. 가슴을 활짝 열고 저 밑바닥까지 숨을 들였다. 잠시 눈을 감고 몸속을 흐르는 기운을 느껴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설렘에 세포들의 기지개가 팽팽했다.안내판에 송이길이 있다. 송이, 송이가 뭘까? 무엇이든 궁금하면 찾아보는 네이버 검색기능을 사용했다. 화산 폭발 시 점토가 고열에 탄 화산석인 돌숯이라고 나왔다. 그냥 흙길 같은데 어디에 송이가 있다는 것인지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발바닥이 우레탄을 밟은 듯 푹신하고 약간 꿀렁거리는 듯했다. 맨발로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 새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눈을 들어 새를 찾아보니 포르르 날아다니는 모양새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눈 가는 곳마다 넓게 펼쳐진 융단에 오월의 싱그러운 색이 물을 들여 놓았다. 좋다, 참 좋다는 감탄사 외에 달리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숲을 찾아온 햇살은 인심이 후한가 보다. 잎과 잎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로 숲에서 숨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고루 빛을 나누어 주었다. 얼개미에 내린 가루처럼 보드라운 기운이 지나간 자리에는 잎들이 반짝이며 짙어가고 바람이 흔드는 소리는 더욱 맑아졌다. 천 년의 비자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숲을 채운 종이 가지가지였다. 나무와 식물에 무지한 나로서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몇 개 없었고 일일이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소리는 단절되어 숲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세울 수 있었다. 서로의 이파리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속삭임과 몸과 몸이 꼬여서 바람이 스며드는 소리, 낮은 키끼리 맞춰보는 화음이 시시각각으로 고막을 적셨다. 그것은 서늘한 청량함으로 마음에 쌓였다.숲에서 만난 비자나무는 생명력이 으뜸이었다. 나무가 부러진 채 누웠는데도 가지에 잎이 달렸다. 금년에 새로 돋은 연한 잎들이 팔랑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끈질기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벼락 맞은 나무란 표지석을 읽고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둘러보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숲길을 걷는 동안 제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들에게 장하다고 박수를 보냈다.숲에서 자라는 것은 다름을 곁눈질하지 않는다. 산 너머에서 자라는 동종의 터전을 기웃거리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웃 종들에게 질투도 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물을 먹고 빛이 부족하면 고개를 약간 틀 뿐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야무지게 하고 자연에 맞서지 않고 꿋꿋하게 내면의 힘을 키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시간표대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깊어간다.자연의 시간표는 순리다. 비자림은 거슬러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욕심을 돌아보게 만든다. 계절을 무시하는 하우스 안의 나물과 과일들이 식탁으로 배달되는 현재를 아무런 저항이 없이 받아들여도 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하여 쓸데없는 일이란 이름으로 묶인 일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작업이 옳은 것인지 물어본다.천 년의 시간을 견뎌 온 숲, 비자림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물어본다. 스스로 풀어야 할 질문지를 받아든 손이 떨린다.

2021-06-16

학도의용군을 가슴에 품다

정미영 수필가 이른 아침, 집 옆의 산책로를 따라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여기 탑산에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을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전보다 자주 찾아간다. 오늘도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전승기념관에 들렀다 올 요량으로 길을 나선다.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에 학도의용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복 입은 어린 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찌 되었을까?기념관 사무실에 가면 학도의용군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1979년 8월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해 왔다고 한다. 1950년 그 날로부터 71년이 지났다. 전쟁 때 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80대 노인이다.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포항여중 전투뿐만 아니라 장사 상륙작전, 독석리 해상철수작전, 천마산 96고지 전투, 형산강 전투, 기계 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에도 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25 전쟁 당시 국내 학생 5만여 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 중 7천여 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8월 9일부터 44일 간에 걸쳐 일어났던 낙동강 전투, 그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기념관을 나와 포항지구 전적비를 향한다. 솔숲을 떠도는 눈부신 햇살이 내 등에 업혀 같이 동행한다. 나라를 위해 군복도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들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 의연하게 호국(護國)에 가치를 두고 혼신을 다한 그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전적비 옆에 있는 이우근 학생의 편지를 새긴 돌비 앞에 선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학도의용군에 자원했다가 전투가 잠시 멈춘 틈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꼭 돌아가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바람이 되어 이곳을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어린 영혼을 가슴에 묻은 의용군들 어머니의 가슴은 한이 맺혀 어찌 살아갔을까?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다시 생기지 말기를.6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한참을 묵념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면서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죽은 영혼들을 보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한숨과 눈물을 받아준 탓인지,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충혼탑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의 방문으로 학도의용군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숙하게 해본다. 새끼손가락 걸듯 충혼탑을 쓰다듬으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의 말도 덧붙인다.학도의용군들을 가슴에 품는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친다.

2021-06-09

글꽃

배문경수필가 카톡이 날아왔다. 열어보니 어머니가 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올려놓으셨다. 띄어쓰기는 없고 연이어 붙인 낱말들이 긴 연의 꼬리처럼 느껴진다.작년 초 어머니는 글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다. 연세가 여든 가까운데, 괜한 고생을 하신다 싶었다. 가까운 곳에 한글 가르치는 장소가 있다는 현수막을 보셨던 모양이다. 흔쾌히 문해학교에 등록하신 후 배우러 다니셨다. 어머니는 보고 읽는 것은 되지만 글자는 발음대로 쓰셨다. 글자 하나하나가 삐뚤빼뚤하게 늘어졌다. 두 글자가 써진 단어를 쓰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셨다. 아이들 한글 깨치기와 비슷했지만 열의는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작은 상을 방에다 가져다 놓고 집중해서 연습하곤 하셨다. 코로나로 인해 쉬는 날이 많아 집에서 교재로 연습했다. 더러는 단톡에 단어를 올렸는데, 문장은 아니고 단어나열에 그쳤다. ‘희설타우유올리기름’ 아이가 쓴 글 같았지만 연이어 쓴 글자가 재밌었다.언젠가 컨벤션센터행사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작품이 전시된 것을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고 그 옆에 짧은 단상을 적었다. 노인들의 시화작품 전시였다. 글을 배우니 너무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는데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쓰고 그릴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뭉클했다.어머니 세대가 그랬다. 고통스러운 일제의 지배가 끝나나 싶으니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졌다.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죽지 못해 살아온 세대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공부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게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노동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세대다. 이제 자신을 위해 글씨를 배우고 그림을 그려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한다는 것은 말년의 행복이다.우리 삶에서 성공과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교육 부족이라고 했다. 특히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은 앎에서 고립된다는 뜻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14%가 문맹이고 문맹의 2/3 가 여성이다. 전 세계 국가의 39%만이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배우려 해도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다.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란 책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한나와 마이클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고, 나이 차이에도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후 마이클은 문맹인 한나에게 ‘오딧세이’와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를 읽어준다. 한나는 자신이 글자를 모른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글자를 몰라도 되는 직업을 선택하며 마이클을 떠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책임자로 일을 한다. 이 일로 감옥에 투옥되고 법정에서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면서 무기징역을 받는다. 글자를 모른다고 실토했다면 4년의 구금으로 끝날 일인데.이후 다시 만난 마이클이 책을 읽은 테이프를 감옥으로 보내자 발음과 글자를 보면서 한나는 글을 깨쳐간다. 글자를 익힌 그녀는 마이클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보낸다.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하지만 한나는 쌓인 책을 밟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문맹이 주는 비극은 관객의 심금을 오래도록 울렸다.단어와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이 된다. 문장과 문장이 하나의 그림이 되고 의미가 된다. 글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기호이다. 글은 쓰고 읽는다는 수준을 넘어 문학적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 영어를 모른다면, 한국에서 한글을 모르면 살아가기 힘든 것과 같다. 자신의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다 답답한 일이 있을까.근무를 마치고 어머니가 써서 보낸 글자대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다. 물건을 담을 때마다 어머니가 쓴 단어 하나하나가 띄워 쓰기 된다. 음식에 흰 설탕을 솔솔 뿌리는 어머니의 손길과 우유를 따라 마실 아이들과 올리브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는 계란프라이와 볶음밥이 만들어질 것이다.어머니가 보낸 글자가 맛난 글자로 거듭난다. 표현은 서툴지만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꽃이 핀다.

2021-06-02

언제나 이곳

양태순수필가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바다는 신선한 놀이터였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여기가 좋았다. 친구들과 몰려와 파도에 발을 적시며 깔깔거렸던 시간이 셀 수도 없다. 바다란 이름으로 내주는 장소에서 실컷 걸으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물처럼 이어져 왔다.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친구가 살았던 단층 주택은 허물어져 새 건물이 솟았고, 자주 오르내렸던 야트막한 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쪽저쪽 모두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장소를 찾으려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것도 확실히 여기였다가 아닌 이 어디쯤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걷는 내내 과거를 더듬었다. 아련하게 그때의 바다가 그립기는 하지만 시끌벅적하게 바뀐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이곳에서 철의 정원이란 주제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축제가 열렸다. 관람객이 십만여 명이 넘었다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아직 전시되었던 작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의 덧붙인 설명을 읽었다. 예술가들의 고뇌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넘어 존경을 보냈다. 스틸은 딱딱하여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내 걸음을 오래 붙잡아둔 작품이 몇 있었다. 둥근 원 안에 꽃잎이 날아가는 듯,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표현한 ‘공(空)’이었다. 몸 안에 갇힌 욕심을 비운다는 의미였다.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푸른 숲의 거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투명한 거인의 몸을 통과하는 햇살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느껴졌다. 또 한자 나무목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담은 ‘식물적 사유’였다. 나는 ‘식물적 사유’ 앞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서성였다. 식물적이란 말이 마음을 툭 쳤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구부리기 어려운 소재로 유연한 사고를 말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식물적 사유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두루 듣고 마음을 열어 모나지 않는 생각, 나와 남을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키우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해서 찔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러 왔다. 말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앞뒤 돌아보며 각도를 달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저 멀리 해안선을 끼고 둥그런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달려온 파도가 해안에 입 맞추며 하얗게 부서진다. 좀 전에 본 ‘푸른 숲의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와 파란 바다를 몸 안에 들이는 듯하다. 담담한 몸짓에 햇살이 지나가며 투명한 꽃송이가 피었다 스러지는 찰나의 광경이 눈에 담긴다.나만의 신화적인 이야기 하나쯤 품고 싶은 날이다. 푸른 바다가 어둠으로 물드는 밤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맑은 트럼펫을 불어준다. 차르륵 차르륵 고운 모래 쓸려가는 반주에 맞춰 갈매기 감춰둔 춤 솜씨 너울너울 펼치다가 웃으며 잠이 든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바다를 찾는 부지런한 이들이 갈매기 낯선 모습을 보며 소소한 근심을 웃음으로 털어버리는 해변을 꿈꾼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깃털이 자라는 것 같다.바다는 바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어 더욱 좋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타래진 마음을 물결에 풀어내었다. 삼십 년 전에 철없던 소녀를 위로해주었던 그 바다, 오늘은 중년이 된 나를 나무란다. 책망을 들으면서도 포근한 이곳은 언제나 내가 달려올 곳이다.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2021-05-26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태순수필가자리돔은 대방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인다. 방어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살아 있는 자리돔의 배에 꽂아 물속에 넣으면 자리돔은 해류를 타고 활발히 움직인다. 방어를 잡기 위한 눈속임이다. 어부들은 그것으로 방어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유인책으로 잡아놓은 자리돔을 양동이에 담아 바다에 흩뿌린다. 그러면 식탐이 많은 방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자리돔을 쫓아 죽을 자리로 들어온다.물고기는 작을수록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인 듯싶다. 바다에는 덩치가 크거나 사납게 생겨서 먹는 양이 무시무시한 물고기들이 많다. 일대일로 만나면 백전백패니 여럿이 힘을 합하면 생존율이 높아질 것을 알고 있는 행동이다. 이동하면서 죽임을 당한 물고기는 미끼가 된 상황이다. 누구라고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택되어졌고 동료를 살린 셈이다.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몸을 살찌운 행동이다. 사람살이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발버둥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 누군가는 자신의 결을 지운다. 누구보다 여리지만 따스한 마음을 품은 이가 그리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을 받아들였다.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대가를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용했다.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가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한다.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었다. 스스로 미끼같은 존재가 되어 외풍을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십대에 가정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보다 어린 나이에 부엌살림을 도맡았다. 위아래로 두 살 터울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혼자 동분서주하며 묵묵히 불어오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덕분에 다른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나였다.전래동화에 ‘은혜 갚은 까마귀’가 있다. 그 동화를 읽을 적에는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하지 싶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진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인 것이든, 마음적인 것이든 받은 것을 갚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또한 갚음은 받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삶의 깊은 이치가 숨어있는 듯하다. 나는 받은 만큼 갚음을 하지 못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미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해야할 무게인 미끼, 내가 속한 가정의 구성원을 잘 먹이기 위해 나름의 물살을 가르며 위험 요소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더러는 황금을 건 미끼를 덜컥 물어서 곤두박질 끝에 벗어나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린 탓도 있다.삶은 계산기를 두드려 답이 나오는 숫자놀음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미지수가 등장하고 미지수를 풀이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직선으로 답을 구하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 많은 변수를 만나 돌고 돌아가느라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누구를 위해 내가 살았다는 말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방어의 미끼가 될 운명이라 생각지 않은 자리돔이다.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먹이 사냥을 하고 해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비늘을 세웠다 눕혔다 해가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중에 미끼가 되어 방어를 살찌게 하고 살찐 방어는 사람이 먹는 것이다. 자리돔이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 내가 동료 대신 방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에 의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잡아먹힌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아마 방어를 먹으며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사람을 만날 때면 번드레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한 마음을 잘 전하고 있는지는 먼 후일에나 들이대보는 소소한 잣대일 뿐이다.모든 생물들의 삶은 종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 미끼가 되기도 하고 미끼를 먹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순환한다. 그 속에서 받아든 날들을 낱장으로 깁는 치열한 작업의 중심에 내가 있다. /양태순(수필가)

2021-05-23

윤장대

정미영수필가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각탱화다.법당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얼굴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렸다. 다소곳이 걷는 모습은 근엄했다. 향을 피우고 꾸밈도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고 거듭 절을 했다. 할머니의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기운이 솟는 것일까? 오직 부처와 일체가 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절을 했다.길고 정성스런 절이 끝나면, 불단 양 옆에 놓인 윤장대를 돌렸다.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을 윤장대라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자엄스님이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들에게도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 소원성취 하도록 안치했다. 경전을 몰라도 책장을 한 번 돌리면 일만 번의 다라니경을 읽은 공덕을 쌓게 된다.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훼손을 우려하여 요즘은 음력 3월 3일과 음력 9월 9일에만 돌릴 수 있다.할머니가 용문사를 찾아온 이유는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였다. 경전을 읽지 않고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고, 죄와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니, 각별하게 와 닿았다.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의지해 살았다. 그런데 육남매 중 세 명의 자식을 앞세웠다. 할머니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자식들이 단명했다며 통곡했다. 자식들의 죽음은 숨기고, 가리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존재한다면 후회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텐데. 할머니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마주대할 용기를 잃어갔다. 그래서인지 점점 타인 만나기를 꺼려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좋으련만. 할머니에게 이어지는 모든 관계의 줄 위에서 허둥대며 바투 다가서지 못했다.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식들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을 가슴으로 삭이니 몸져눕는 날이 늘었다. 할머니의 조그만 등에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업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더욱 윤장대를 의지해 돌렸다.그러면 어느새 가슴 속에 서린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셨다. 원망하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생활의 모든 번뇌와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단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 의심하는 마음 없이 온몸으로 윤장대를 믿고 받아들였다.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마모된 손잡이에는 할머니의 애절한 손길이 스며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빌었다. 할아버지와 세 아들이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했다.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다.대장전 가득 향내가 자욱하다. 소신공양하는 향을 보니 숙연해지며, 자손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경내를 떠돌던 기원의 말들이 내 두 눈에 닿아 눈물방울로 맺혀 흘렀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웅숭깊은 마음 탓에 내 가슴마저 촉촉하게 젖어든다.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윤장대를 돌린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손잡이에 옹이처럼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다. 품새를 찬찬히 훑어보며 눈에 담고 있는데, 바람결에 목탁 소리가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부처님의 설법인 해조음이 들리는 듯해 두 눈 감고 합장한다.

2021-05-19

압화를 풀다

배문경수필가얼마전, 유튜브로 수건춤을 보았다. 백년욱은 진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춤은 거미가 집을 짓듯이 조용했다. 다시 무겁게, 큰 획을 긋듯이 춤추며 수건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하얀 수건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보여주는 춤사위에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도심의 골목 공사현장 구석에 일꾼이 쓰다 만 수건이 땀으로 찌든 채 버려졌다. 수건 가장자리에는 모 초등학교 동기회,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올은 낡아 납작해지고 새겨진 글자도 흐릿해진 채 바닥에 나뒹군다.공사현장 옆, 식당 주변에는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고운 빛깔 그대로 꽃은 두 번 산다. 꽃은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므로 더욱 가벼워진 무게로 연옥을 지난 것일까. 나비의 날개마냥 납작해진 꽃잎이 책갈피에서 잠잔다. 두툼한 주인아저씨의 손에서는 핀셋이 가볍게 춤을 추듯 움직인다.압화, 저 무게 없는 꽃이며 잎들이 사람이 되고 해와 달이 되어 소슬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되었다. 압화에는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고 한 생을 살아온 이야기꽃이 술술 풀린다.나무에 핀 꽃이 누르미가 되어 빚어낸 장면, 장면은 이야기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있고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를 하는 처녀들의 고운 치맛자락이 휘날린다. 꽃잎이 사람의 얼굴이 되고 줄기는 나무가 되어 꽃은 꽃으로 다시 환생한다. 꽃이 만개했을 때, 따온 꽃들은 티슈페이퍼를 깔고 덮고 두꺼운 책 속에서 한동안 잠을 잔다. 아저씨의 젖은 수건에서도 꽃향기가 묻어났다.향기 나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쪽진 머리를 하신 어머니는 여름 긴 장마를 걱정스러워했다. 가족들이 쓰고 내놓는 수건을 빨지 못하면 쉰내가 났다. 하루 이틀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면 세탁기도 없던 시절 각자가 수건을 쓰고 빨아서 간수해도 냄새는 떠나지 않았다. 잠시 잠깐 말간 하늘이 보이면 장대를 세워 시원스레 수건을 말렸다. 바람에 수건은 춤을 추었다.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마당 가득 들어차는 계절, 밭일 논일에 치쳐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목은 땟물에 젖어있었다. 아버지는 등목을 시원하게 하시곤 흘러내리는 물을 닦으셨다. 머릿수건을 벗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던 어머니는 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어스름한 저녁에 밥상을 물리면 곧이어 밤이 깊었다. 일을 끝낸 깊은 밤에서야 진주 빛이 담겼던 당목수건을 풀었다. 어머니는 더워도 추워도 먼지가 많은 일을 할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항시 쪽진 머리를 감쌌다. 오랫동안 쪽머리에 비녀를 꼽고 사신 분이었다. 기름을 묻혀 참빗으로 곱게 빗으면 윤기가 났다. 수건은 농사지을 때나 집안일이거나 어린 나의 콧물을 닦아주거나 잔칫집 떡도 담겼다. 어머니의 머릿내와 눈물이 섞여 원숙한 모란꽃 향기가 났다.어머니와 첫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수건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세수하면서 나의 임무는 사회와의 깊은 호흡을 맞추었다. 씻고 나서야 시작이 되는 사회와 인간관계. 그것이 엇박자가 되면 밀려서 저만치에서 홀로 훌쩍이면 패자의 수건처럼 구겨졌다. 다시 힘을 얻어 세상과 맞장 뜰 때는 바람에 펄럭이는 힘찬 수건 같았다. 수건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인쇄처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았다.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행사, 축하할 일들은 또한 지켜야할 사회덕목 중에 하나다. 두툼하거나 얇은 수건에 따라 경제사정을 읽기도 하고 수를 놓았는지 쿡 찍은 인쇄물인지에 따라 성향을 파악한다. 한 가족이 된 수건에서는 일상이 담겨있다. 일상이란 꽃 한 송이가 핀 수건을 세탁한다.수건에는 삶의 모양을 닮은 꽃이 박혔다. 피어나지 못하고 바로 압화가 된 꽃송이 서너 개가 보인다. 어머니의 탄식이나 아버지의 땀 냄새, 막 학교를 들어가 뛰어다니던 나의 눈물과 콧물,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어지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추억의 장면들이 수건 속에 있다.수건을 씻어 장대를 세운 빨랫줄에 넌다. 눌려있던 꽃들이 바람결에 선명해지며 돋아난다. 마지막 한 방울의 꽃향기 폴폴 콧등을 간질인다.

2021-05-12

봄편지

양태순수필가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나는 얼굴, 내 아버지였다.철이 들기 전, 아버지는 다른 세계로 떠났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는 핏줄 말고는 너무 미미했다. 그래서 떠나보낸 슬픔이 깊은 줄도 몰랐다. 늘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허전함에 문득문득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에 눈이 갔다. 그것이 다였다.기억 속 아버지는 남 같은 아버지였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지만 직접 소통이 없었다.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말이 전달되고 답이 돌아왔다. 내 잘못을 나무라는 일조차 어머니의 입을 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밖에서 놀다 집에 왔을 때 방에 아버지만 있으면 들어가기 어색해 도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어렵기만 한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은 밥 잡수세요와 다녀오셨어요, 정도였다.딱 하루,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중학생이었고 추석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한방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중개인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마음속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던 듯싶다. 소재가 바닥 날 때쯤 윗방에서 어머니가 장에서 사온 추석빔을 입어 보라고 불렀다. 얼마나 반갑던지 냉큼 일어섰다.중학생이었던 그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안 된다. 아버지와 나는 무릎걸음 세 번만큼 떨어져 앉았고, 나를 향해 맘껏 드러내지 않은 잔잔한 표정이며 내가 일어섰을 때 차마 잡지 못하는 아쉬운 눈빛은 생생하다. 그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으나 제법 길었던 시간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깜깜할 뿐이다. 잿더미를 헤집듯이 아버지의 갈피를 뒤적이고 뒤적여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살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는 날은 기일이나 어버이날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만났던 시간에는 추억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건지겠다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미해진 여줄가리를 촘촘히 엮었다. 가장 큰 소득은 서로를 오롯이 보았던 그 밤이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되살려놓은 장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란 이름으로 뜨거워졌다.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때로는 한 모금 물이 간절한 식물처럼 애가 타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는 새날이 있어서 힘을 내 하루하루를 이어 일생을 이룬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길 위에서 나름대로 부딪히고 견뎌오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내세울 것도 없고 빛나지도 않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니 소중하게 여긴다.지나온 굽이의 어느 날에는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은 오십을 넘기면서 종착역에 닿아 멈추었다. 나는 어렸고 사는 동안 살가운 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키웠던 애정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진 수십 년을 곱씹는 동안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와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작은 추억의 부스러기로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차지한 내 마음자리는 늘 축축하고 아리다.철쭉이 한창인 공원에서 낯선 부녀로 인해 아버지를 만난 날이다. 언젠가 마주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본다.“많은 날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숨을 삼켰다.“그날 밤의 눈빛을 이제는 놓을래요. 그러나 내 아버지였음은 잊지 않을게요” 소리맴이 길다. 내 안에 갇혀있던 울새를 날려 보낸다.

2021-05-05

인연을 짓다

정미영수필가벚나무 꽃자리마다 초록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나는 도서관을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책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수필을 쓰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수필 속 청신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독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임계점이다.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분자분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책에 몰입하게 된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창조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책에서 얻은 순도 높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데에는 독서 모임이 제격이다. 나는 포항시립도서관에서 인문학 독서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덕분에 회원 분들과 어우렁더우렁 ‘책수다’를 떨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행복해질 거야.’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문장을 빌려 독서회를 기다리는 내 설레는 마음을 표현해 본다. 우리는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문장과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책 향기를 맡으며 우리들 내면이 성숙해지기를 바랄 때도 있다.책은 타인과 소통하는 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내 생활을 잠시 멈추고, 문을 활짝 열어 내 주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뜻에서 독서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미 타인과 소통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며 고단한 등을 토닥여 주고는 함께 눈물 흘릴 때가 있다. 삶의 깔딱고개를 넘어오느라 숨이 찬 것을 잠시 내려놓기도 하고, 자녀와의 부대낌 속에서 겪는 속상함을 이야기하면서 치유 받기도 한다. 시나브로 우리는 책을 통해 기꺼이 동반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나는 독서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회원 한 분이 내게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은 속상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심리 책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위로를 받았다며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독서회는 꿈 씨앗이 영글어 가는 곳이다. 좋은 책은 꿈을 잃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되돌려 주거나, 혹은 꿈을 잃어버린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자신만의 꿈 씨앗을 싹 틔우고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회원 분들은 품이 넉넉한 탓에 누구라도 환영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 찾아왔든,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든, 항상 밝게 ‘손 내밈’을 한다. 독서회는 왜 질리지도 않고, 계속 참여하고 싶고, 옆에 영원토록 붙잡고 싶은 것일까. 우리 회원 분들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언어를 책 속에서 찾아내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곡진하게 기원해본다.나는 지금, 독서회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짓고 있다.

2021-04-28

상상의 절을 짓다

배문경수필가창밖으로 황룡사지(皇龍寺址)가 보인다. 드넓은 터에 청보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커피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너른 들판과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하늘이 높게 보인다. 그 아래 80여m 높이의 탑과 불국사의 여덟 배 크기의 절이 있었다니 그 크기를 상상하기 힘들다.들어서는 길은 보도블록을 깔아두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라고 네 개를 깔고 중간은 비워두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인지, 자전거라도 지나다니라는 길인지 길게 뻗어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만들어진 구층 목탑과 사대(四代)의 왕을 거치며 완공된 황룡사는 지금 주춧돌과 초석만이 남아 그 규모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보리밭 중간쯤에 있는 당간지주가 긴 세월을 덩그러니 지킨다.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당간지주 구멍을 지나 세월에 닳은 풍탁소리 들려주는 듯 아련하다. 둔덕으로 오르자 금동 장륙존상이 있던 돌 좌대가 남아있다. 부처님의 실제 크기인 5m 정도로 만든 부처상이 세워졌던 곳이다. 화성 솔거(率居)의 금당벽화가 이곳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먼 이야기 속, 그가 그린 노송에 새들이 날아와 앉다가 부딪혀 어질어질했다지. 자장과 원효가 강설했을 강당도 이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자장이 보살계본을 강설하자 일주일간 감로운무(甘露雲霧)가 내렸다고 전한다.몇 년 전, 이 자리에서 환한 세상을 본 적이 있다. 한창 자란 풀에 발길이 얽히고 사위는 어둑했다.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달빛은 교교했다. 친구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이곳에 한 번씩 온다며 나를 꼬드겼다. 보름달 보며 울부짖는 여우냐며 놀렸지만 걸어 들어서는 길이 달빛을 받아 온통 하얗게 빛났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찬란한 역사의 신라 사람이 된 묘한 느낌이었다. 탑돌이를 하던 선덕과 지귀를 떠올리고 여러 왕을 모신 미실이 떠올랐다. 큰 돌에 앉아 달빛을 받으며 삶의 고달픔이며 모래알 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점점이 피어오르던 시간의 무게가 어둠살을 키웠고 둥근 달만 두고 그림자를 지우며 우리도 일어섰다.황룡사 9층 목탑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문화사학자 유홍준은 우리의 기술과 나무로는 황룡사 9층탑을 재현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금 십분의 일로 축소한 탑조차 몇 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홀로그램 같은 기술로 허공에 빛을 쏘아 탑을 만들면 어떨지 제안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고증으로 원래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겠다.빈터를 걷는다. 신라의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와 절이 된 황룡사를 생각한다. 신라의 중심이었을 이곳에서 빛났던 탑을 고려의 김극기가 노래했다. “층층다리는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하고 수많은 산과 물이 한 눈에 트이네. 돌아보니 동쪽 도읍의 많은 집들이 벌집과 개미구멍처럼 아련히 보이네”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27층 건물 크기의 탑 꼭대기에 올라 손을 뻗으면 별과 달에 닿지 않았을까. 왕이 살던 반월성과 왕자가 살던 동궁과 월지에서 바라보면 탑은 십자성처럼 빛나며 신라를 지켜준다고 흐뭇했으리라. 성덕대왕신종보다 네 배나 무거웠다는 종소리가 신라를 덮고 더 넓게 중국에까지 울려 퍼지지는 않았을까.우리에겐 상상의 힘이 있다. 기도라는 것도 상상으로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리고 여백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편다면 그 공간은 새가 날아가리라는 무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황룡사지를 거닐며 저마다의 상상으로 자신만의 절을 짓는다면 그 또한 허물어진 내 마음 속의 절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탑곡 마애불상군의 구층탑이 음각으로 새겨진 것을 보고 나는 ‘절없는 절’이라는 글을 썼다. 바위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탑과 절이지만 상상의 탑과 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은 마음속의 그리움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것을 정을 두드려 새기면 석가탑이나 다보탑처럼 탑이 되고 남산의 마애불상이 된다. 붓을 들고 채색을 한다면 그것은 탱화가 되고 단청이 된다.황룡사지는 어느 때보다 무한한 상상이 빚어낸 탑으로 빛나고 있다.

2021-04-21

살아있는 모자이크

강길수수필가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살아있는 모자이크다. 한데, 만드는 이가 안 보인다. 나풀나풀 하늘에서 흰 나비 날개들이 내려올 뿐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업을 하나 보다. 삼월 말, 수난(受難)주간 마지막 날 성당 가는 보도(步道) 위다.다른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벽돌 담장 위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장미 아가씨의 새순은, 어느새 길이가 한 뼘은 되어 보인다. 잎 사이에 꽃망울도 품었다.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기후 변화로 많이 앞당겨진 봄…. 봄은 내게 언제나 불쑥 나타났었다. 올해도 그랬다. 무심히 걷던 보도 위에서, 갑자기 ‘살아있는 모자이크’로 다가온 것이다.새봄맞이 자연 모자이크대회가 열린 걸까. 보도에도, 잔디밭에도, 차 위에도, 아스팔트 노면에도 모자이크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재료는 엷은 분홍빛 살짝 머금은 흰 나비 날개뿐이다. 붙일 벽, 유리창, 천장, 그림판도 없이 어떤 거장(巨匠)이 바닥마다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탄성이 나온다. 보도블록에 갓 생긴 모자이크를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모자이크는 무늬나 그림을 나타낼 텐데, 우둔한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나스카의 지상 그림처럼 비행기라도 타고 높이 올라가야 볼 수 있을까.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줄기 실바람이 만발한 벚꽃 가지를 간질인다. 웃음 참던 꽃잎이 못 참고, 꽃을 떠나 나비 날개가 되어 날아오른다. 팔랑팔랑 날던 날개가 살며시 내려온다. 묵주반지 낀 내 손등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바람에 다시 떠난다. 전할 말이라도 있을까. 그 순간 손등이 느낀 실낱처럼 서늘하고 아린 감촉이 그 봄, 어머님의 손 허물에서 느꼈던 촉감을 닮았다. ‘그랬어. 그해 봄 이 무렵, 어머니는 아프신 몸으로 우리 집에 오시어 몇 주 머무셨지.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었을 뿐이었어.’“야야, 너희 아버지 가실 때 손이 벗겨지더니, 나도 그렇구나….”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 갈 길을 미리 아신 듯, 고통 속에 담담하게 말씀하는 어머니 앞에서 할 말을 잊었었다. 우리 동기들을 낳아 기르느라 밥하고, 빨래하고, 길쌈하고, 밭매고, 땔나무까지 하신 어머니. 자식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소나무 껍데기같이 투박해지셨던 손. 그 손이 허물을 벗으며 아기 손처럼 해말갛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허물을 받아 가만히 감싸 쥘 뿐이었다. 떨리던 손바닥에 파고든, 말 못할 촉감이 아직도 손에 고스란히 남았다.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로 손에 박힌 것일까. 어머니는 초파일 다음날, 아주 우리 곁을 떠나셨다.저 바닥 위에, 살아있는 벚꽃잎을 재료로 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을까. 보나 마나 푸른 별 지구 곧, 땅과 바람이리라. 실바람이 벚꽃을 간질이면 벚나무는 꽃잎을 내준다. 꽃잎이 나비처럼 난다. 땅은 꽃잎을 끌어안으며 무늬와 그림을 만든다. 땅과 바람의 의기투합이, 곧 명 다할 꽃잎에다 새 생명을 부여한다. 살아있는 모자이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꽃잎이 말라 사라져도, 지구 중력이 만든 모자이크는 땅에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마치 내 손에 남은 어머니의 손 허물 감촉이, 따사하고 아린 모자이크가 되어 머물고 있듯이.모자이크는 재료들이 간격을 두고 각각 머물게 만든다. 따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존재가 모자이크다. 재료 각각은 뜻을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지만, 전체는 만든 이의 뜻을 드러낸다. 사람 삶도 모자이크다. 따로 태어났어도, 공동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 삶을 살면서 공동체 생활도 한다. 생각해보면 원자에서부터 태양계, 우주에 이르기까지 개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다. 그러기에 나와 너, 우리, 나라, 지구촌, 우주도 하나의 모자이크다.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족히 오리(五里)는 될 성당 가는 보도와 그 주위엔, 기회를 놓칠세라 끊임없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코로나 19’의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의 힘 드는 상황이지만 그 또한 모자이크이니, 모두가 잘 이겨내어 승리의 모자이크를 만들어야 하리…….

2021-04-14

민들레

정미영수필가민들레는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사물은 사연이 담기는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런 연유로 해마다 나의 봄은 민들레가 필 무렵 시작된다. 민들레를 보아야 마음에서 진정한 봄을 받아들인다.돌아가신 할머니는 봄날 입맛이 없을 때 뒷산을 찾았다. 민들레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민들레를 캐고 난 뒤, 집에 돌아와 민들레밥과 민들레된장국을 상 위에 정성스럽게 올렸다. 된장국을 숟가락 가득 입안에 떠 넣으면 민들레 특유의 은은한 향이 온몸 가득 퍼졌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봄비 그친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양지바른 산기슭과 밭둑 언저리에 피어난 민들레를 캐기 위해 어린 나를 앞장 세웠다. 할머니는 호미로, 나는 숟가락으로, 줄기를 조심스레 잡은 뒤 뿌리를 캐서 흙 털기를 반복했다. 칡 바구니 가득 민들레를 캐고 나면 민들레 내음이 손가락 사이에 뱄다.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서 둥글게 말고 있던 등을 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는 붙박이처럼 제자리에서 민들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할머니는 민들레처럼 살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가 좋다면서. 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싹이 잘 트고 잘 자란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도, 먼지가 겹겹이 쌓이는 길바닥에도, 무심한 사람들에게 밟혀도 죽지 않는다. 씨앗들은 멀리까지 날아가 부지런하고 야무지게 살아간다.할머니 역시 강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육 남매를 키웠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깊은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자식들을 위해 삭여야 할 때가 있었다. 삶이 주는 무게가 무거워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기에, 생활의 역경을 이겨나갔다.할머니는 생활에 대한 막막함의 농도가 짙어질 때면 가끔 나를 붙잡고 말했다.“영아, 할매는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고 싶데이.”민들레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자 꿈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말투에는 삶의 고단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민들레는 봄이 멀어질 무렵이면 바람에 몸을 싣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는 낯선 땅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곳에서 싹을 틔운다. 할머니는 살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가두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때마다 민들레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진정한 삶은 남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리라.세월은 할머니의 바람을 앗아갔다. 할머니 몸 군데군데 민들레 갓털처럼 버짐이 번졌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중에 치매 증상이 생겼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자유롭게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는 갇힌 공간에 모셨다.할머니가 하루빨리 호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민들레의 재생력을 빌려서라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져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민들레는 뿌리를 열 토막으로 잘라 땅바닥에 던져두면 열 포기의 민들레가 돋아난다. 잘라진 민들레 뿌리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그러나 내 바람은 끝끝내 부질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 저 멀리 하늘로 떠나셨다.나는 올해도 민들레꽃과 함께 봄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할머니의 품이 민들레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민들레는 할머니에 대한 내 슬픔의 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또한 담고 있다.아파트 화단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들레 향기를 닮은 추억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민들레가 할머니로 변신하여 자유가 되고 희망이 되어 바람결에 변주된다. 손을 뻗어 가만히 꽃잎을 쓰다듬으니, 봄과 이어진 연결 고리 하나가 내 손으로 건너온다.

2021-04-07

떡 만드는 여자

배문경수필가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

2021-03-31

또다시 온 삼월

강길수수필가세레나.또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작년 삼월은 정월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에 정신이 홀려버렸었지요. 그 때문에 봄 편지 한 장 못 쓰고 지나갔었습니다. 세레나도 그랬다고요. 아마도 지구촌 모든 이가 그리 살았을 터입니다.올 삼월에도 자연은 솟아나는 연록 새싹들의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살구, 복숭아, 벚나무가 잇달아 사랑을 꽃피웁니다. 저 낮은 곳에는 하얀 별꽃과 파란 까치꽃들이 앙증스레 봄을 뽐내고 있고요. 한데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의 공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을까요.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병원체(病原體)…. 사람들이 어찌 피하며 살라고, 하늘은 이런 존재들의 생성을 허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지구란 행성은 생명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도장(道場)으로 설계된 곳일까요.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특성을 다 가졌다는 묘한 존재 바이러스. 숙주의 생체 안에 들어가야만 증식하며 살 수 있는 이상한 병원체 바이러스. 21세기 과학 문명의 사회에서 왜 코로나바이러스 퇴치가 쉽지 않을까요.세레나.사람들은 코로나19가, 오고 있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더 앞당겼다고 말합니다. 이 흐름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인간은 폴리스(polis)적인 동물이다’란 정의를 무산시키는 것일까요. 후에 세네카에 의해서 ‘사회적인 동물’로 번역되었다지만, 그 의미는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로 보아도 될 테지요. 얼핏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무너졌다 볼 수는 있겠으나, 우리가 누리는 컴퓨터, 휴대폰 등 정보 소통 도구들을 생각한다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소통 방법만 달라졌지, 공동체로 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바이러스가 생체에 기생하듯, 생명도 자연에 기대어 삽니다. 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붙어살듯 인간은 자연에 기댈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참가해야 삽니다. 올 삼월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표되는 ‘언택트 시대’란 명제가 제 앞에 턱 버티고 서 있습니다. 산골 농가에서 태어나 자라며, 사람에게는 친 생태계의 본능이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농사는 완벽한 자연 순환형 농법이었으니까요. 한데 왜, 그 인간이 이룩한 물질문명 사회가 오늘날 기후변화, 생물 종의 감소, 사스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 발생, 전염과 같은 자연의 역습을 받는 처지가 되었을까요.컨택드(contact) 시대의 개인이 흙 입자라면, 언택트 시대의 개인은 모래 알갱이라 볼 수 있겠지요. 흙과 모래의 결속력을 따진다면 당연히 흙이 강합니다. 그러나 모래가 시멘트와 물을 만나면 콘크리트가 되어, 그 단단함은 구운 흙벽돌과도 견줄만할 것입니다. 어쩌면 언택트 시대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론 매체와 컴퓨터, 휴대폰 등 사회의 소통 도구와 방법들을 물과 시멘트의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인간이 지혜를 모은다면 말입니다.세레나.보도 가에 때 이른 작은 해님들이 삼월을 밝힙니다. 해님들은 머지않아 하얀 갓털 송이로 변신하여 봄바람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윽고 명지바람 남실남실 불어오면 갓털은 씨방을 모시고 날아, 새 땅에 새 민들레로 태어날 테지요. 기후변화에 곧바로 대응하는 민들레가 거룩해 보입니다. 식물이 생태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코로나 19로 얼룩진 두 번째 삼월을 하릴없이 삽니다. 웬일인지 올핸 새싹에 눈길이 더 갑니다. 철 이른 새싹은, 식물이 살기 위해 우리가 모르는 소통과 결정으로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대처한 결과가 아닐까요. 정부가 강제한 ‘거리 두기’, ‘비대면’, ‘백신 접종’ 부작용 등이 사람을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언택트 시대로 가는 훈련이라 여기며 새싹처럼 대처하려 합니다.또다시 온 삼월, 연록 새싹들의 생명 찬가가 온 누리에 메아리칩니다.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