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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길에서 숨다

김순희 수필가아버지는 길에서 가셨다. 일하던 곳이 길이었고, 쉬는 곳 또한 길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곳에서 또 다른 길로 가버렸다. 아버지는 청소부였다. 이른 새벽 청소차를 뒤따르며 길을 쓸었다. 손톱과 손가락의 경계가 선명해서, 길 위에 선 아버지와 보행도로를 걷는 사람들을 구분지었다.‘아버지’ 하고 몇 번이나 불렀던가? 지금 생각해보아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집에서도 멀찍이 앉았고, 눈 한 번 제대로 맞춰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와 얘기하는 사람은 막내동생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어린 막내에게는 무동과 말이 되는 놀이터였다. 점방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돈주머니였고, 흙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엄마의 꾸중, 잔소리로부터 숨을 곳이었다. 그것도 막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였다.다음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두 분의 대화는 독특했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눈만 마주치면 다투었다. 귓바퀴에 먼지가 가득하니 씻어라, 남들이 내 욕한다며 엄마가 내뱉으면 아침부터 잔소리라며 눈을 부라렸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지 말라하면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며 더 소리를 냈다. 싸울 때만 쿵짝이 맞을 뿐 사이가 좋은 적은 없었다. 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짐을 했다. 결혼하지 말아야지, 만약에 하더라도 부부싸움은 하지 않아야지,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절대로.길에서 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나는 얼른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아버지도 못된 딸이 피하는 걸 아는지 불러 세운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내가 하던 거짓말이 들통날까 겁이 났다. 멀리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꼭꼭 숨어있었다.그날은 숨을 수가 없었다. 집이 싫었던 나는 교회에서 늦게까지 청년부 일을 도맡곤 했다. 늦은 밤 같은 부서 후배가 나를 집까지 바래준다고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우리 집이 가까워진다는 걸 밤공기에 묻어나는 아카시아 향기로 알 수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로도 느껴졌다.저만치에 짐자전거 한 대가 휘청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빈자전거를 끌고 가기에도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이었다. 자전거 뒤에 종이상자며 고철덩이가 잔뜩 실려 있어서 헉헉 소리만 들려 올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옆에 걷던 후배가 뛰어 가더니 뒤에서 힘껏 밀었다. 나에게도 손짓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멀리서도 한 눈에 자전거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울음에 내 심장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어둠이 나를 숨겨주길 바랐다.아버지는 날 좋은 봄에 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쫓아온 할머니의 통곡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방바닥을 내리치며 우시다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며 며느리에게 욕을 해댔다. 할아버지는 마른 헛기침으로 시끄럽다며 역정을 내는 걸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초상을 치러야 하니 아픈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겼다. 모유를 먹이던 터라 삼우까지 지내려면 젖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약국에 가서 젖 삭히는 약을 샀다. 하지만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매일 줄줄 흐르던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모들이 옆에서 아기가 입을 대지 않으면 젖이 잘 마른다고 거들었다. 그런 줄 알았다.둘째를 낳아 기르며 두 돌이 다 될 때까지 젖을 물렸다. 젖을 떼려고 삭히는 약을 지어먹었다.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엿질금을 앉혀 먹어도 보았다. 가슴이 아파 얼린 양배추로 열을 식히며 선잠을 잤다. 보름 정도가 지날 때까지 젖이 자꾸만 불어서 물 한모금도 아껴 마셨다. 아버지 가실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아무런 통증도 없이 삭아진 젖멍울이었다. 멍울이 사그라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길이 떠오른다. 기우뚱거리는 자전거가 보인다. 한 번도 아버지 곁에 선 적이 없었던 소녀가 가로등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것이 보인다.

2019-05-15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

강길수 수필가생이별을 당했다. 세상에, 바람에게 생이별을 당하다니 어처구니 없다. 사월 말에 불어닥친 살바람이 기습적 일격을 가할 줄이야. 흐드러지게 핀 이팝꽃을 시샘하는 심보인지, 꽃샘추위 몰고 온 살바람은 정든 벗을 낚아채 가버렸다. 있는 듯, 없는 듯 목을 감싸 안아 언제나 따사하게 하던 벗이었다. 벗을 만난 뒤로는 덕분에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았다. 흠뻑 든 정에 가슴이 먹먹하다. 세상의 어떤 헤어짐도 서운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생이별이기에 더욱 마음이 싸하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허전했다. 저절로 목에 손이 올라갔다. 있어야 할 벗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한 몸으로 잘도 지냈는데, 이런 일이 닥치다니! 간혹 목에서 이탈하려 할 때는, 곧 알아채고 다시 바르게 하거나 주머니에 넣곤 했었다. 한데, 오늘은 느슨해지는 목과 벗의 틈을 왜 감촉하지 못했을까. 피부의 촉감 세포가 무뎌졌었나. 맞다. 그놈의 센 꽃샘 살바람 때문이다. 퇴근길 내내 거의 태풍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몸 웅크리고 옷깃여며, 종종걸음에 바빴었다. 그러니 태풍 같던 살바람의 위력이, 목의 감촉 안테나도 앗아가 버린 거다.이튿날 아침. 추적추적 부슬비 오는 날씨가 꼭 마음 같다. 잃었던 벗을 찾아 나선다. 마음 한쪽에 ‘어차피 떠났는데, 뭐 하러 빗속에 나가느냐’는 만류의 여울이 일었다. 곧바로 오래 길들여진 정의 너울이, 여울을 삼키고 온 마음에 파문(波紋)되어 밀려왔다. 우산을 쓴다. 어제 퇴근길을 역순으로, 벗이 떨어지거나 걸릴만한 이곳저곳 살피며 걷는다. 봄비 속에 자태 뽐내는 이팝꽃은 벗이 간 곳을 알까. 바람 모일만한 구석진 곳, 가로 가 화단의 화초나무 사이나 가지, 자동차 밑, 축대의 외진 곳 등 바람 방향을 고려해 다 찾는다. 사무실까지 가도 벗은 안 보였다. 책상과 근무복 주머니에도 없다. 실망이다. 아깝다.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아내가 겨울에 목도리를 하면, 감기도 덜 걸리고 좋다면서 권했다. 나는 그때마다, 거추장스럽고 찝찝해서 못한다고 버텼다. 어느 날, 얇은 화학섬유로 만든 스카프를 내밀며, 일단 한 번 목에 해 보라고 강권 하다시피했다. 보니까 정말 얇고, 큰 손수건 만하며, 색깔도 엷은 남색계통에다 둥근 무늬를 기반으로 도안한 것이어서 싫지 않았다. 목에 두르니 착용감도 좋았다. 아내의 성의를 보아서 며칠 해보기로 했다. 아내는 전에 성당 행사 때 받은 귀한 것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하고 다니란 말도 잊지 않았다.겨울은 물론 다른 계절에도 쌀쌀하거나, 감기기가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목에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다만, 풀리지 않게 묶지는 않았다. 매듭이 이물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카프 대각선 모서리를 양손가락으로 잡고 당기면, 접어져 긴 삼각형 꼴이 된다. 가운데 넓은 부분을 목 앞으로 하고, 양손 쥔 부분을 목 뒤로 하여 위, 아래를 한번 뒤집어 당겨 목과 밀착 정도를 맞추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스카프는 절친한 벗이 되어갔다. 없는 듯 있어 부담 없고, 필요할 때 꼭 거기에 있는 존재, 바로 둘도 없는 벗으로 변한 것이다. 섭섭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런 생각이 났다. ‘오늘 봄비 속에 잃은 벗을 찾는 일을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禮)로 삼자!’고…. 사람이나 절대자에게만 예를 바치라는 법은 없으니까. 또 정든 벗 잃었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옳다는 마음 추임새도 생겼다. 큰 나무나 바위 같은 자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했던 선인들의 토테미즘도, 미신으로만 터부시할 일은 아니리라. 어떤 존재가 뜻을 갖기 위해서는, 뜻을 부여할 수 있는 의식(意識)의 소유자가 그 존재에게 뜻을 부여할 때만 생겨나는 법일 테니까 말이다. 돌아올 때 벗을 한 번 더 찾아보는 행동이, 마치 예에서 올리는 행위기도로 여겨졌다. 결국 벗, 스카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기도가 우러났다.“벗, 스카프야! 부디 어느 아리따운 소녀의 새 벗으로 부활하여, 더 아름다운 또 한생을 살려무나!”

2019-05-08

꽃눈 솎기

송귀연수필가봄의 잉여를 솎아낸다.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새순들이 해바라기하듯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장갑 낀 손에 지긋이 힘을 준다.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여린 생명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위로 향한 꽃눈들은 햇볕에 과다 노출되어 제대로 된 결실이 어렵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채 피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애처롭다. 하지만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다.귀농은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진 남편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엔 작은 텃밭을 꿈꾸었지만 뜻하지 않게 지인으로부터 과수원을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과수원 모퉁이에 작은 컨테이너를 앉히고 집에서 자동차로 사십 여분의 거리를 오가길 몇 달간 반복하였다. 결국 일손이 자주가야 하는 과수의 특성상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서둘러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있던 몸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 나는가 하면 갑자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했다. 도회생활에 대한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꽃눈솎기는 꽃이 필 때 영양분 소모를 줄이는 한편, 초기생육을 좋게 하여 결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욕심을 내어 필요이상의 꽃눈을 놔두면 전체적으로 나무는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꽃눈 한 개 솎아낼 때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대신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꽃눈솎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금을 추출할 때 연금술사들은 여러 차례 불순물을 버리고 걸러내는 제련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가치가 낮아져버린다. 도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채취한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은 걸러서 버리고 가라앉은 깨끗한 흙을 분리 숙성시킨다. 숙성된 흙을 물과 반죽하는데 꼬막밀기로 흙속의 공기를 제거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과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전부인 쓸쓸하고 황량한 그림을 그렸다. 여백이 더 많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꽉 차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남편과 나의 관계도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쳤다. 성격이 급한 남편과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내가 흰머리 희끗한 세월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서로 자신의 것은 내려놓지 않고 상대가 변하기를 고집했었다. 멀리 한곳을 보지 못한 채 마주보며 서로의 단점을 먼저 헤집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편안한 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출세며 아이들의 성공이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맸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는 하루하루다. 창가에 날아와 아침을 깨우는 새 소리며 뒤란을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며 맞은 편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의 뒷모습은 도회생활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았다.다시 꽃눈솎기를 계속한다. 도톰한 꽃눈들이 발아래 눕는다. 남아있는 것들은 버려지는 것들로 인하여 소중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남아있는 것들로 인하여 아름답다. 꽃눈 하나씩 솎을 때마다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도 함께 솎아낸다. 욕심과 집착과 원망과 두려움들. 삶을 완성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일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다. 내 몸의 가지에도 푸른 수액이 듣는다.

2019-05-01

꽃나무에 이름표를 달며

김순희 수필가벚꽃이 진 영일대둘레길에 또 다른 분홍빛이 꽃불을 켰다. 아, 이 꽃 이름이 뭐였지? 누가 알려줬는데 지난해 휴대폰으로 검색도 했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무와 꽃 이름을 잘 아는 태명씨에게 전화를 걸어 둘레길에 터널을 이루고 피어있는 꽃나무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꽃아그배나무’라고 금방 알려주었다.왜 이렇게 안 외워질까? 뇌세포가 쪼그라들었나, 만날 듣고도 자꾸 까먹는다. 이름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관심 부족이란 걸 느낀다. 꽃아그배나무가 내게 많이 사랑스럽지 않았나보다.나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보는 그렇게 삼사 년 된 지인이 있다. 서로 친구란 말을 하는 사이다. 이번 봄이 시작 될 무렵, 그 분이 내 이름을 쓸 일이 있었다. ‘김순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에 다는 이름표에 써서 주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 모르게 살며시 네임펜을 들고 글자 ‘이’에 ㅗ을 씌우고 ㅡ를 받쳐 ‘희’로 만들어 주었다. 자세히 안보면 덧칠이 안 보인다. 몇 주가 지나도 이름표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것을 보니 그분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내가 그 사람에게 꽃아그배나무인 것이다. 꽃의 색깔을 알고 어디서 많이 피는지도 알지만 정작 이름은 모른다. 친구라는 이름표가 무색해져버렸다. 슬며시 그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친구에서 그냥 아는 사람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시댁에 다니러 갔다. 아버님이 홀로 가꾸어 놓은 뜰로 나가 두릅순과 엄나무순을 따와 전을 부쳤다. 나물 반찬으로 남편과 셋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두릅순이 한창이라 따고 돌아서면 금세 다른 가지에 새순이 돋는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계실 때는 장에 내다 팔아 돈을 샀는데 그 돈 써 보지도 못하고 갔다며 쓸데없는 일만 했다며 농을 하셨다.두릅이 가득한 바구니를 보니 두릅에 대해 몰랐던 그날이 떠올랐다. 나무백일홍이 붉게 피는 걸 구경하러 ‘초곡리 칠인정’에 가다가 둑방에 노랗게 키를 세운 꽃이 눈에 띄었다. 같이 간 일행에게 이름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며칠 뒤 시댁에 갔더니 텃밭 울타리에 온통 노란 어제 그 꽃이 둘러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 자리는 봄마다 내가 두릅을 땄던 그 자리였다.먹고 싶은 순을 달고 있을 때만 가까이 할 뿐 두릅의 여름과 가을의 모습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잎이 크고 꽃이 벙싯벙싯해서 겨울과 봄의 뼈대만 세운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노란꽃술 가득 꿀이 가득해 꿀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늦가을이 되면 까만 씨를 맺기 위해 여름내 벌을 불러들였다.두릅의 사계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풀도 생각이 깊어지면 나이테를 품을 수 있을까, 두릅은 풀에서 진화해 나무가 된 것 같다. 나무는 쳐다보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아버님 뜰에 두릅은 그러기엔 키가 자그마해서 나무의 특징인 듬직한 둥치가 없다. 땅에서 바로 가지가 솟아나와 끝에 연두빛 불을 켠다. 그 모습은 아직 풀의 특징과 더 닮았다.치커리는 잎만 따다 싫증이 나서 두었더니 꽃대를 쑤욱 올렸다. 맑은 하늘빛 꽃이 어찌나 고운지 사진을 찍어 만나는 이마다 보여줘도 치커리꽃을 처음 본다고 했다. 텃밭에서 몸을 낮추면 생강꽃, 당근꽃, 완두콩꽃, 꽃이 목적이 아닌 풀들의 전성기가 보였다.사람에게 부대껴 사람멀미를 할 때마다 꽃구경을 다녔다. 자주 꽃을 보다보니 멀미가 없을 때에도 꽃을 찾아나서 꽃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관심을 갖다보니 꽃이 남긴 이야기와 사람이 남긴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들꽃이라고 부르던 아이들이 주름꽃, 개구리자리, 좁쌀냉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이름을 알고 나니 더 어여뻐 보였다. 꽃들의 이름표를 가슴에 새기고, 사진으로 일기로 기록하다보니 사계절이 지났다. 멀미도 사라졌다. 꽃의 다른 이름은 위로였다.

2019-04-24

사월의 기도

강길수 수필가마음이 옴찔해졌다. 걷는 도로가 콘크리트 틈새에 시선이 저절로 머문 때문이다. 부슬부슬 단비 오는 사월 초순 한낮이다. 어제 이맘때는 저곳에서 황금빛 해님 셋이 활짝 웃으며 오가는 이를 반겼는데, 오늘은 웬일로 그 해님들이 기도 손으로 변신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큰길 가로수 밑 잔디 새싹 사이에도, 같은 종의 쪼그만 기도 손이 여럿이다. 잔디 잎에 숨어있어, 잘 살펴야 보인다.‘황금빛 해님들이 사월의 기도를 바치다니! 사람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구나.’그랬다. 도시에 살면서도 여기저기서 숱하게 보는 꽃이기에 늘 무심히 다녔었다. 한데, 그 꽃이 긴 밤 동안 올린 기도도 모자라 비 내리는 낮에 기도 손이 되어, 간절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이월부터 십이월까지 끊이지 않고, 이 도시에서 저 꽃들은 만났었다. 물론 사월에 가장 많이 피었지만,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피고 지며, 씨앗 맺는 모습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도 많았다.기도는 사람만이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바닷가나 강둑, 시냇가 방천이나 논밭 둑, 산자락이나 산 오솔길 옆, 도시 가로수 밑이나 심지어 콘크리트 틈에서까지 억세게 살아내는 여러해살이 풀 민들레…. 그 민들레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살든 일구월심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체 민들레꽃은 무슨 기도를 바치기에, 하늘 향한 기도 손이 저리도 애절할까. 빗물 스며들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옹골차게 오므린 기도 손이, 다부지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민들레는 일생을 기도하며 산다. 새싹 틀 때부터 잎은 하늘 향해 손 벌리고 기도한다. 꽃이 피면 낮엔 고개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 벌린 기도를 한다. 밤엔 아예 꽃이 기도 손으로 변한다. 꽃 지고 씨앗 여무는 기간은 밤낮없이 손 모아 기도한다. 지난 이월, 놀라며 만났던 민들레꽃 한 송이와 관모(冠毛) 송이 하나. 그땐 기후변화란 시대 징표만 보았지, 민들레의 삶 전체에 스민 기도는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환경오염 카르마도 못 본체 살고 있으니, 저 민들레가 대신하여 기도하며 사는구나 싶다. 다가올 미증유의 시대를 대비하여, 철 가리지 않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자손을 퍼뜨리는 메시지가 오늘에야 마음에 와 닿았다. 학창 시절 제 발로 친구와 성당에 찾아가 영세하고, 기도생활을 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내 기도는 거의 형식적이거나 이기적, 의무적으로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성(理性) 있는 인간이라면, 민들레처럼 시대 징표를 읽고 대처하는 진정한 기도와, 그에 걸맞게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마땅할 터다. 이를테면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물 한 방울, 휴지 한 장 아껴 쓰며, 세제 한 방울이라도 덜 쓰고, 밥알 하나 소중하게 남김없이 먹는 그런 삶을 꾸려왔어야 했다. 그런데도 늘 타성에 젖어, 기도와 무관하게 적당히 세상살이에 타협하면서 살아왔다. 오늘, 삶이 곧 기도인 민들레 앞에서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누가 감히, 식물을 하찮게 여기고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지구 생태계 생명들 중에 어느 종이 가장 이타적으로 살고 있는가. 바로 식물이다. 미생물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 삶의 기반을 식물에 두고 살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민들레만 하더라도 뿌리에서 잎, 꽃까지 식용이나 약용, 술과 마시는 차의 재료로 쓰이며 자기를 온전히 사람에게 바치고 있지 않은가. 혹자는 독초도 있고,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 고등생물들에 해로운 식물도 있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식물들도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다만 인간이 아직 모를 뿐일 테니까.비록 늦었더라도, 민들레 따라 사월의 기도를 올리자. 기도가 삶으로 이어져,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와 열정을 닦자. 민들레꽃 관모가 바람 타고 높이 날아 번성하듯, 나도 희망의 관모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자.

2019-04-17

보라고 봄이구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봄이 쳐들어오는구나 혁명처럼 목련이 피고 목련이 후두둑 지고 동백과 개나리 진달래 잇달아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수수꽃다리…. 차례를 기다리고 눈부신 봄볕에 부드럽고 은밀한 봄바람에 천지가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구나 아아, 봄이 불가항력으로 진주해 와서 구악과 폐습을 무찌르는구나 천지는 시시각각 혁명이로구나 그래서 언제까지 늙지를 않는구나. 모든 감았던 눈까풀이 열리고 눈부시게 눈부시게 보는구나 나무 줄기마다 수액이 흐르는 소리 보리밭 푸른 갈기를 흔들며 달려가는 바람 높이 떠 지저귀는 종달새 밭 어귀 샛노란 배추꽃 유채꽃 노랑나비 흰나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사십 년 전 봄이 온갖 그리움과 설렘과 아픔과 회한으로 물밀어 오는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한 줌 잿가루가 되기 전에 밝게 눈부시게 보라고 봄이구나 인생이여 천지여 무얼 감추고 숨기겠느냐 명명백백 백일하에 드러나는구나 껍질을 벗고 알을 깨고 나오는구나 생명의 신비의 비밀들이 낱낱이 열리는구나 부화하는 길이여 보라고, 봄이구나” - 拙詩 ‘보라고 봄이구나’다시 4월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인도 있었지만 잔인한 것은 4월이 아니라 사람일 뿐입니다. 눈부시게 꽃들이 피고 연초록 광휘의 새잎이 돋는 4월은 가장 찬란한 달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누구나 보라고 다투어 꽃들이 피고 가지마다 새 움이 돋습니다.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세상에 낮고 천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골목길 담장 밑에도 피고, 오폐수가 흐르는 시궁창 가에도 피고,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의 틈에서도 핍니다. 자신의 처지가 바닥이라고, 사는 일이 고달프고 치욕이라고, 비관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그래도 생명이란 은총이라고 민들레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거창한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고 양지꽃이 핍니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기죽고 초라해질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의기소침해서 어둡고 우울한 사람들은 보라고 봄볕에 반짝이며 양지꽃이 핍니다. 작다고 사소한 것이 아니며 흔하다고 천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봄볕 하나면 족하다고 무덤가나 봄 언덕에 양지꽃이 피어서 세상 한 귀퉁이를 환하게 밝힙니다. 양지꽃 이웃에 제비꽃도 핍니다. 오랑캐꽃, 앉은뱅이꽃, 병아리꽃, 장수꽃, 반지꽃, 여러 이름으로 불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생긴 모습대로 핍니다. 키가 작다고 비관하지 않고 누구를 닮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보라색이면 보라색인 대로 하얀색이면 또 그런대로 염색을 하거나 성형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웃인 양지꽃과 많이 달라도 서로 다투거나 배타적인 감정 따위 가지지를 않습니다.봄꽃 중에 상당수는 장다리꽃이지요. 무 배추로 담근 김치는 날마다 먹으면서도 무와 배추의 장다리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봄에 심은 무 배추를 그대로 두면 장다리가 나와서 꽃이 피지요. 그 씨를 받아서 다시 심으면 가을의 김장거리 무와 배추가 되고요, 사람들은 무 배추를 채소로만 생각하지만 정작은 장다리꽃이이야말로 본연의 모습입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밭머리에 노랗게 핀 장다리꽃이 가장 배추다운 모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성이나 감투에 가려진 것이 사람의 참모습이 아니란 것도 잊고 살지요. 부와 권세와 명예를 쫓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보라고 장다리꽃이 핍니다.모든 나쁘고 아픈 기억과 상처들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라고, 겨우내 삭막하고 앙상했던 산과 들을 온통 신록이 뒤덮고 있습니다.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일제히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신생의 함성에 귀막고 눈 감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온갖 꽃과 신록이 형형색색 광휘를 내뿜는 생명의 축제를 한사코 외면하고 비탄과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눈 있는 자들은 보라고 다시 봄입니다.

2019-04-10

당달봉사

김순희수필가‘진달래는 바빠서 꽃부터 대뜸 피운다. 재거나 뜸들이지 않고 결론부터 말한다. 가지 끝에 여러 송이 분홍빛을 켜고 봄은 이래요 한다.’ 친구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다. 어느 사진작가가 한 말이라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고 했다. 봄꽃은 꽃을 먼저 피운다.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까지 회색빛 가지에 푸른 물이 들기도 전에 꽃잎을 장식한다. 성질 급한 나와 닮았다.그런데 며칠 전 아침신문에서 개나리나 진달래도 잎이 난 다음에 꽃을 피운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로 가지가 자라서 잎이 난 뒤에 꽃눈이 맺힌다. 그런데 막상 꽃을 피울 때가 되면 겨울이 닥친다. 꽃눈은 눈 속에서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비로소 꽃이 된다. 그 꽃이 지고나면 나무는 겨울을 나려고 떨구었던 푸른 잎을 다시 만들어 입는다.성질이 급해서가 아니고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란다.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한다. 할 수 없이 꽃피는 시간이라도 달리해야 다른 식물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꽃을 먼저 피웠건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결혼을 코앞에 둔 봄이었다. 남편이 나를 내려 주려고 우리 집 앞에 주차를 했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시간인데도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서 두런거렸다. 그러다 앞에 세워진 차를 보며 내가 물었다. “우리 집 근처에 인천시장님이 사나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남편이 자세히 말해보라기에 앞 차를 가리키며 얼마 전부터 근처에 세워져 있는데 ‘인천시장 1234’라고 써 있지않냐며 얼굴에 물음표를 그려보였다.남편은 한참을 웃고 나서야 설명해주었다. 그건 임시번호판이었다. 차가 출고된 공장이 인천에 있어서 인천시장이라 적는다고 했다. 울산시장과 창원시장 차는 못 봤냐며 껄껄댔다. 그때까지 우리 집엔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 임시번호판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초등학교 시절 O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었다. 그림을 공부하는 존시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한 채 폐렴으로 죽어 간다. 창밖에 보이는 담쟁이 잎을 세면서 그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마지막 잎이 떨어지던 날 밤, 이웃에 사는 베어만이 비바람을 견디며 인생의 역작을 벽에 남겼다. 그 그림을 담쟁이 잎으로 본 존시는 용기를 얻고 살아난다. 사람의 목숨과 담쟁이가 잎을 떨구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병에 못 이겨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존시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의미를 부여했다.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비가 오면 벽에 그린 그림이 지워질 텐데 어떻게 담쟁이 잎이 밤새 그대로 있었을까? 시골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때까지 물감이라고는 수채화 물감 밖에 몰랐다. 물을 타서 쓰는 수채화물감으로는 비바람을 견디는 잎을 그려 낼 수 없었다. 글쓴이가 뭔가 착각을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장님이나 다름없다.지금 나는 당달봉사를 면해보려고 신문을 본다. 더 깊이 알고자 책을 읽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러 강의를 찾아다닌다. 고전문학읽기를 몇 년째 참여하고, 지난해부터는 보드게임 동아리에 들었다. 그 흔한 블루마블 게임조차 구경도 못해 본 내가 한참 어린 회원들 사이에서 게임의 룰을 익히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도형으로 심리 알아보기는 올 봄에 새로 시작한 공부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S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타고난 기질을 알게 된다. 봄 내내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다.문제는 오늘 하나를 머리에 저장하면 어제 배운 두 가지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금세 저버리는 봄꽃처럼.

2019-04-03

율산리 別曲-감자심기

송귀연 수필가바야흐로 봄이다. 이맘때면, 언 땅이 녹고 동면 들었던 벌레가 기어 나오며, 물고기들이 얼음장 밑을 돌아다닌다. 남편은 묵혀두었던 관리기를 꺼내 엔진이 부식되었거나 고장 난 곳이 있는지부터 점검했다.우수가 지나면 밭갈이가 시작된다. 울퉁불퉁 했던 땅이 순식간에 갈아엎어지면서 부드러운 평면이 펼쳐진다. 기계가 해내는 작업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유박비료와 퇴비를 듬뿍 뿌리고 다시 한 번 갈아엎은 뒤 고랑을 만든다. 땅이 가르마처럼 정갈하게 양쪽으로 갈라진다. 다음은 비닐 씌우기이다. 작업순서가 바뀔 때마다 부속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관리기가 척척 알아서 해준다.감자심기는 대체로 3월 중하순경 시작하지만 우린 3월초에 심기로 했다. 대신 냉해를 대비해 이중 비닐멀칭을 할 예정이다. 이 방법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지만 북쪽지방에서 고추재배 때 하는 방법을 응용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확이 앞당겨진다. 감자를 일찍 캔 뒤 곧바로 고구마를 심을 계획이다. 늦어지면 심이 생겨 맛이 떨어지게 된다.올해는 수미감자, 홍감자, 자주감자 등으로 골고루 섞었다. 웰빙, 다이어트 등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엔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의 감자를 찾기 때문이다. 사과농사 뿐 아니라 밭작물도 재배하기에 잠시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때때로 고달프다 푸념도 늘어놓지만 이는 잠시 뿐이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일에 매진하다보면 그 가치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고진감래의 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농사이다.일 년 농사의 계획은 영농일지를 기록한 후 이를 활용한다. 지난해 이맘 땐 뭘 했는지, 어떤 병충해엔 무슨 방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일일이 정리해놓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정약용은 가난을 딛고 성실하게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노래한 ‘보리타작’이라는 농부가를 지었다. 그의 둘째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지어 농가에서 각 달마다 해야 할 농사일과 세시풍속, 예의범절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이는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을 평민들의 현실에서 찾고자 한 당시 지식인들의 경향을 엿보게 하는 자료들이다.도연명의 ‘도화원’ 같은 이상향을 이곳 전원에서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음이 멀리 있으면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그 곳은 산중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나는 사람에 섞여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지난날 사소한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에선 다툴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다. 전원생활은 늘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화롭다. 과수나 채소들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을 거스르거나 시간을 역행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욕심을 버리게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해하며 유유자적하게 된다. 차가운 시멘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아이들은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쿵쿵 뛰기도 하고 두 팔 벌리고 비행기놀이도 한다. 번개파워맨 옷을 걸친 손자가 이얍!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다. 남편 역시 산기슭에 쓰러진 잡나무들을 끙끙거리며 실어 나르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전기톱으로 길이를 알맞게 자르고, 다시 정과 도끼로 쪼개어 장작을 만든다. 도끼질 하는 자세가 익숙한 자연인 같다.남편이 모종삽으로 구덩이를 파면 감자의 씨눈이 위로 향하도록 해 얼른 집어넣었다. 그리곤 흙을 이랑보다 도탑게 덮었다. 그런 후, 이중멀칭을 위해 비닐을 덧씌웠다. 잡초와 햇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편으로 가장자리는 검정, 가운데는 흰색인 비닐을 사용했다. 양쪽 끝에 둥근 모양의 철사를 40㎝ 정도의 간격으로 박은 다음, 바람에 잘 견디도록 흙으로 덮고 나자 작업이 끝났다. 포근한 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잘 발아하여 제대로 싹이 트기를 빌면서 뻐근해진 허릴 편다.

2019-03-28

다시 온 삼월

강길수 수필가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삼월은 설렘입니다. 유년시절 삼월이 연록새싹으로 찾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산골 우리 둥지 앞 양지바른 밭두렁입니다. 얼어 죽은 풀잎뿐인 두렁을 삼월 명지바람이 간지럽히면, 해님이 질세라 따사한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어느새 새싹이 옹기종기 땅을 비집거나, 마른 풀잎을 들추거나 혹은, 돌 틈새로 솟아오르지 뭡니까. 올망졸망 해님을 찬미하는 연록새싹들에, 어린 마음은 무턱대고 설렜습니다. 새싹들의 그 무엇이, 그토록 유년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새 생명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풀들의 새싹이기 때문일까요. 갓 부화된 병아리라든가 갓 낳은 강아지와 송아지 같은 가축들과 함께 자랐지만, 그들은 귀엽거나 놀랍기는 해도 마음 설레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풀, 나무 등 녹색식물이 동물이나 미생물, 무생물보다 더 밀접한 무엇이 숨은 걸까요.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런데, 나만 그랬을까요. 올 삼월도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한데, 올 삼월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아니 언제부턴가 삼월은, 내게 시나브로 멀어지듯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며 오는 삼월이, 무슨 메시지를 건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유년의 설렘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피부에 다가오는 삼월은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어쩌면 삼월이 이월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세레나. 지난 이월 말일 이틀전날, 퇴근길이었습니다. 양지바른 블록담장아래 민들레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지요. 그 옆엔 민들레관모송이 하나가 솜털과자로 한껏 부풀어 올라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월동했을까요. 근처에 월동한 장미나뭇잎도 보였습니다. 지난 겨우내 살아 버티는 쑥, 씀바귀, 냉이, 클로버,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들을 학교운동장 한편에 조성한 녹지 곁을 오가며 지켜보았습니다.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유년의 삼월은 긴 겨울잠을 막 깬 자연의 징표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달이었다는 것입니다. 갓 돋아나는 새싹이나, 눈 녹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 버들강아지, 따사한 산비탈의 참꽃봉오리와 같은 존재들 말입니다. 그들과 친하다 보니, 저절로 가슴속에 설렘도 싹튼 게 아닐까요. 자연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은 어린 마음이, 주어지는 자연의 징표들과 나름대로 소통하게 된 듯합니다. 산골동네에 대대로 이어지는 삶의 현장은, 필연적으로 식물을 주로 쓰며 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테지요. 식물을 의, 식, 주에 이용하며 사는 방식들은 자연히 도제제도(徒弟制度)가 되어 대물림하고, 내 유년도 그 마당의 구성원으로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여, 중학교 때부터 도시에 살면서도 주위의 식물들을 자주 바라보며 살았지요.세레나. 올 삼월 한반도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시작했습니다. 불쑥불쑥 미세먼지 없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의 공업화 전까지는 미세먼지로 휘달려 본 기억이 없습니다. 황사를 가끔 겪은 일은 있어도, 이렇게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에 당하지는 않았어요. 과학적으로 충분한 검정 없이 전자파, 하천수질, 광우병 같은 사안들로 온 나라를 어지럽히던 시민단체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기에 미세먼지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까요. 중국에 미세먼지문제를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은 분통 터집니다.삼월에 새싹을 내던 식물들이 월동하거나 이월에 싹틔우는 기후변화와, 삼월의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이란 시대징표들 앞에서 우리는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는 삼월의 설렘은, 정녕 부활할 수 없는 걸까요. 조국을, 겨레를, 삼천리금수강산을 마다하고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요.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징표도, 미세먼지징표도 인간이 저지른 카르마이지 싶습니다. 지구어머니의 건강을 조금도 배려않고, 물욕에만 눈 먼 인간의 자업자득 말입니다. 제발 푸른 지구행성을 함께 지켜내어 삼월의 설렘을 간절히 되찾고 싶은, 다시 온 올 삼월입니다.

2019-03-21

산책은 산 책이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산책을 하려고 날마다 들로 나간다. 마을 주변에 너른 들이 있어 발길 가는 데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오는 산책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양 팔을 크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효과가 크다고 하지만, 별다른 목적이 없이 이것저것 해찰을 하며 느릿느릿 걷는 게 나의 산책이다.산책은 말마따나 살아있는 책이다. 달마다 철마다 새로이 출간되는 계간지나 월간지다. 하루하루 촘촘히 들어있는 건 월간지이고 가끔씩 듬성듬성 읽는 사람에겐 계간지이다. 나는 거의 매일 빼먹지 않는 월간지 구독자다.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지는 것처럼 어쩌다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은 마음이 헛헛하다. 하루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경구를 실감하게 된다.산책은 어렵지 않다. 삼척동자도 까막눈도 읽을 수 있고 백세 노인도 걸을 수만 있으면 읽을 수 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은 휠체어로도 읽기도 한다. 요즘은 전동 휠체어까지 나와서 더 편리해졌다. 산책은 난해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똑 같이 읽히는 건 아니다. 아무것도 감추거나 속이지 않지만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내용이 다르다. 주마간산 건성으로 읽는 사람도 있고 자세히 정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바쁘고 급한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눈과 마음을 열어놓은 사람에게는 무궁무진 읽을거리가 많다.산책은 어느 경전보다도 생생한 생명의 말씀이다. 과장이나 왜곡이나 허위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병이 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말씀이고, 지치고 좌절하는 사람에겐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말씀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는 베토벤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거르지 않은 산책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절망을 이겨내었고, 철학자 칸트도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으로 위대한 사유체계를 이루었다.지난 겨울에는 겨울마다 새로 연재하는 청둥오리와 겨울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산책이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먼 하늘을 날아와 얼어붙은 들판에서 겨울을 나는 청둥오리는 걸핏하면 죽네 사네 엄살을 부리는 인간들에 비해 얼마나 씩씩하고 꿋꿋한가. 겨울보리의 어처구니없는 막무가내는 또 어떤가. 남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는 늦가을에 막무가내로 싹을 틔우고, 발가벗은 어린아이 같은 여린 싹으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오소소 소름이 돋는 전율이요 충격이었다.새로 나온 3월호 오늘의 페이지에는 연못가 버드나무가 눈길을 끈다. 앙상한 가지에 언제부턴가 보일 듯 말 듯 봄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연둣빛이 짙어졌다. 누군가가 날마다 묽은 연두색 물감을 조금씩 덧칠하는 모양이다. 마치 한 폭의 담채색 동양화를 보는 듯 가슴 설레는 이른 봄의 정경이다.봄까치꽃과 광대나물도 한층 생기를 띠었다. 보통은 한해살이풀로 알려져 있지만 상당수는 죽지 않고 월동을 한다. 그 냥 죽은 듯이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주실 같은 겨울 햇살을 붙잡고 꽃을 피우기도 하는 걸 보면 그 맹목의 생명력에 아연하고 숙연해진다. 한갓 보잘것없는 풀꽃까지도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일에 도무지 핑계나 엄살이 없다는 걸 시리게 읽는다.거대한 딱정벌레 같은 트랙터가 봄갈이를 하고 있다. 겨우내 묵혔던 벼논을 갈아서 햇볕과 공기를 쐬어 주면 굳어 있던 땅이 부드럽고 싱싱해진다. 완고하고 거칠어진 사람의 마음밭도 수시로 반성과 성찰의 쟁기로 갈아주어야 이해와 포용의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제가 경칩이었다. 옛날에 소가 끌던 쟁기와는 달리 트랙터의 쟁기질은 사납기 그지없다. 땅속에서 동면하던 개구리들이 저 무지막지한 횡포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들판의 살아있는 읽을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다.

2019-03-14

나는 숲(林)으로 간다

김순희수필가영양군은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해발 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은 분지이며 일월산을 품고 있어 산이 높고 물이 맑다. 감천, 석보 등 고인돌과 고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에 흡수된 뒤에는 읍호를 고은(古隱)이라 하였다가 말기에 영양(英陽)이라 하였다.일월산 자락 한쪽 끝에 자리한 두들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굽은 길이다. 들고나기 힘든 곳이라 육지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굽은 길을 조금 펴기 위해 뚫은 청기터널을 지나자 골뱅이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골뱅이처럼 구불거려서일까 골뱅이가 많이 나서일까 마음으로 짚다보니 두둘길에 접어들었다.두들이란 언덕 위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영양의 마을 이름답다. 가로등마다 붉은 고추와 귀여운 벌이 심벌로 매달려 여기가 그 유명한 ‘영양고추’의 고장이라고 외치고 있다.겨울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동네에 인적이 드물었다. 우편집배원이 작은 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고택의 주인을 부른다.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 근처 비닐하우스로 오른다. 우리도 따라 가니 배달을 끝내고 내려오며 비닐하우스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가보라 했다. 그 곳에는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고추 꼭지를 따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모두 낼모레 80이라며 웃는다. 이 마을에서 젊은 축이라며 아직 일을 해서 용돈 버는 것을 자랑하셨다. 혼자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 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영양의 林으로 갔다.장계향이 이시명과 함께 영양에 터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마을 둘레에 도토리나무를 심은 일이었다. 영양은 깊은 골짜기라 논보다는 두들이 대부분이다. 도토리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두들에서 들을 내려다보며 풍년이면 열매를 적게 열고 흉년이 들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아마도 곤궁한 이들의 생계를 걱정하여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장계향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해에는 마을 앞에 큰 솥을 걸어두고 도토리 죽을 쒀서 굶는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오늘날에도 영양이라는 숲의 중심에는 장계향이라는 큰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83세까지 장수하며 73세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최초 한글 조리서를 완성했다. 그가 심은 나무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 기억하고 있다. 도토리가 익어서 떨어지는 가을이면 동네 노인들에게 도토리 수확을 맡겨 수매를 해 음식디미방 프로그램에 사용한다. 다른 곳의 음식 차림과 큰 차이점이 소부상과 정부인상의 전채 요리로 도토리죽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장계향의 뜻과 향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보기 좋았다.소소음(蕭蕭吟)-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장계향이 13살에 썼다는 시처럼 영양을 찾아간 날에도 소록소록 비가 내렸다.비를 머금은 도토리나무 아래에 섰다. 나무 아래에 드는 것이 쉴 휴(休)이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이라 했다. 김밥과 킨 사이다 한 병만 들고 큰 나무 아래로 간 소풍날은 어찌나 즐거운지 날이 빨리 저물었다. 골 깊은 두들마을의 저녁도 빨리 찾아왔다.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은 이웃과 함께 가는 소풍이라는 것을 영양의 숲이 알려주었다.

2019-03-07

삼세번 째 이주

강길수수필가입춘 지나고 세 번째 날이다. 산 너머 남촌의 꽃바람이 그리운 마음을 하늘도 아는 지, 따사한 날이다. 삼년 째 벼르던 주인공을 이주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설날, 고향에 다녀온 노곤(路困)이 다 가시지는 않았으나, 오전까지 쉬었으니 됐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주인공을 치우자는 아내의 주장에, 날씨를 구실삼아 미적거리며 내심 이주시키지 않으려 했었다. 그만한 연유가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필요한 도구를 챙겨들고 나서며, 아내에게 함께 가지고 했다. 피곤한지 내키지 않아 한다. 힘들어도, 마음먹은 김에 해야 한다고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파트 뒤 자그마한 텃밭이다. 지난 여름 강풍에 비스듬히 쓰러진 주인공을 바로 세우려, 아내가 담장너머 큰 향나무에 매단 끈을 풀었다. 가지 끝엔 아직도 주인공의 분신 몇 개가, 빨간 자태를 뽐내며 까치밥으로 제 몸을 내놓고 있다.주인공을 마주한다. 자신을 이주시키려는 내 속을 알 텐데도, 반갑게 맞는 것만 같다. 수십 년 된 옆 향나무만큼이나 키가 커지고, 밑동은 내 팔뚝만하다. 지난해는 앙증스런 토종대추가 많이도 열렸었다. 속말로 인사한다.“우리 주인공아, 잘 있었니? 미안하다! 나와 연 맺어 숱한 고생만 하고, 생사기로도 세 번씩이나 넘긴 너다. 오늘, 네 몸을 동강내어 세 번째로 이주시키려 한단다. 슬프고 아프더라도, 이해하고 참으며 받아주기 바란다. 그래야 네가 살고 또, 우리 차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톱으로 주인공의 몸, 첫가지 위를 자른다. 단단한 나무라 톱질이 더디다. 젊은 향내가 퍼진다. 한참 후, 줄기는 두 동강이 났다. 윗부분의 잔가지와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묶는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도 나왔다. 나머지 잔가지 정리를 그녀에게 맡기고,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다. 뿌리가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이주 때 보다 훨씬 큰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내가 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핑 돌았다. 자태가 가부좌 한 사람의 아랫도리 같기도 하다.처음 만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 번째 직장의 어느 여름날, 화단 가장자리 콘크리트의 틈새에서 방긋방긋 웃는 연록아가를 만났다. 갓 돋아난 주인공, 토종대추나무새싹이다. 이태쯤 지났을까. 연록아가는 몸이 제법 굵어지고, 무릎위로 오를 만큼 자라나 새싹어린이가 되었다. 그냥 둘 수 없어, 집에 데려다 관상용으로 키우자고 결정했다. 그해 늦가을, 큰 플라스틱 화분에 새싹어린이를 첫 이주시켰다. 거처는 집 베란다다. 주인공에게는 고생 끝, 내게는 즐거움 시작이라 믿었다.다른 대추나무보다 일찍 잎 나고, 꽃 피고, 열매 맺었다. 줄기 수도 늘었다. 몇 해 지나자, 베란다에서 감당할 수 없이 커져 새싹소년이 되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내 반대를 무릅쓰고, 틈을 타 화분을 베란다 밑 코크리트 바닥으로 옮겼다. 나는 물주기 담당을 자청했다. 하지만 다음 두 여름동안 물주는 일을 게을리 해, 새싹소년은 세 번씩이나 생잎이 말라죽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마음이 억새 잎에 베인 듯 아팠다. 물을 주자, 죽은 줄 알았던 새싹소년은 그때마다 눈부시게 되살아나 짜릿한 기쁨을 선물했다. 몸을 살리려 제 생명을 바친 푸른 잎들은,‘내가 죽어야 다른 이를 살린다!’는 근본메시지를 가슴에 아로새겨주었다. 언제부턴가, 몸이 튼튼해지며 청년이 되어갔다. 살펴보니 뿌리가 화분의 물 빠지는 구멍을 빠져나와, 콘크리트 틈새를 파고들어 땅에 깊이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일로, 주인공을 아파트 뒤 작은 밭으로 두 번째 이주를 시켰다. 그때 드러난 뿌리는, 화분을 몇 바퀴씩 휘돌아 똬리가 되어있었다. 삶의 처절함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있나보다.춘분 뒤 삼세번 째 날, 주인공 이주를 근교 양지바른 우리 밭두렁에 잘 마쳤다. 따져보니, 주인공의 삶이 공교롭게도 겨레를 닮아 삼세번과 연이 깊다. 부디 삼세번 째 이주로, 우리 주인공, 대추나무새싹청년이 영주(永住)하고 번성하기 빈다. 우리 집이 삼세번 째 이사로, 내 집을 마련했던 것처럼….

2019-02-21

봄소식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입춘 날 들에 나가/ 봄까치꽃 핀 걸 본다// 몸 낮추고 눈 맑아야/ 겨우 찾아 보이는 꽃// 그 곁에 쪼그려 앉아/ 봄소식을 듣는다” - 拙詩 ‘봄소식’입춘이 지났지만 들녘은 아직 겨울입니다. 지난 여름의 무성한 초록과 가을의 황금물결은 다 어디로 갔는지 메마르고 삭막한 무채색의 풍경입니다. 그 풍경 속으로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하기에는 산속 오솔길도 좋지만 사방이 탁 트인 들길이 더 좋습니다. 경정리로 곧게 뻗은 들길은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걷다보면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것보다도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아마도 흐르는 물에 몸을 맞기고 떠내려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논둑길 양지쪽에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하는 풀빛이 있습니다. 풀들은 대개 씨앗을 남기고 죽거나 뿌리만 살아서 월동을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만 되어도 산 채로 겨울을 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견 황량한 겨울 들판에도 귀 기울이면 인동하는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둑길 밑 검불 사이로 적갈색이 된 풀잎이 보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다가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놀랍게도 봄까치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직은 한파가 더 닥칠지도 모르고, 벌 나비가 날기에도 한참이나 이른 계절인데 왜 하마 꽃을 피운 걸까요. 세상에 무의미한 존재나 현상이란 없을진대, 얼핏 보아서는 무모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이 봄까치꽃도 분명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테지요.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넘어 증오와 적개심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돌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은 상당히 풍족한 나라입니다.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깝지요. 세계 십위권의 경제대국답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행복지수는 낮고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과분한 욕심을 분모로 놓는 한 물질적 소득이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사람들이 비관하거나 좌절하는 이유 중 대부분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가 남들에 비해서 열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생존의 문제가 걸린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열등감이기 때문이지요. 나보다 잘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구태여 비교를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겨울 들판에 피어있는 봄까치꽃이 매화나 동백에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의식주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 나라에 산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의식주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생태계의 법칙이니까요.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도 쉽사리 먹잇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공평한 섭리입니다. 남보다 가진 것이 적다는 것은 결코 기죽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의 탐욕이 자신과 지구생태계를 해치는 일이라는 각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좌절하거나 자괴감을 갖는다는 건 한갓 어리석은 엄살에 불과합니다. 생명은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완성이고 희열이기 때문에, 생명현상 그 자체를 우선하는 명분이나 목적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몸을 낮추고 눈이 맑아야 찾을 수 있는 곳에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 겨울 들판의 봄까치꽃이 전하는, 어떤 경전의 말씀보다도 더 생생한 전율로 다가오는 메시지입니다.

2019-02-14

물루와 시지프

송귀연 수필가물루의 걸음걸이는 도도하고 아름답다. 턱을 약간 쳐들고 ‘S‘ 라인의 몸매를 유지하는 폼은 거의 환상적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키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백조의 호수’의 발레리나다. 식사할 때도 고급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귀부인처럼 우아하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금방 달려드는 일이 없다. 천천히 다가와선 혀로 조금 맛을 본 후 잠시 뜸을 들였다 느긋하게 먹는다.반면 남편이 좋아하는 시지프는 수컷이다. 정확한 혈통을 알 수 없는 호랑이 무늬 빛으로 치장한 녀석이다. 시지프는 우둔하다 못해 미련스럽다. 물루와 시지프가 어떻게 동일한 고양이 과(科)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애교를 떨며 시도 때도 없이 내 곁으로 와서 교태를 부린다. 교양 없이 함부로 날뛰고 걷는 모습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 음식을 주면 게걸스럽게 다먹어치우곤 배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암컷인 물루는 청회색 빛 털이고운 미모의 러시안 블루이다. 물루의 도도함은 훌륭한 혈통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주인인 내가 가까이 가려해도 언제나 거리를 둔다. 마치 속만 태우는 짝사랑 같다. 새침데기이고 깐깐해서 여간해선 정을 주지 않는다. 물루는 조금만 수가 틀려도 발톱을 세우고 나를 할퀸다. 요즘의 내 몸에 난 상처는 모두 물루의 짓이다. 물루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결코 인간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아니 인간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루의 그런 교만이 좋다.물루와 시지프는 작년 여름,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외국으로 나가게 된 딸이 같이 데리고 있던 녀석들을 강제로 떠맡긴 것이다. 그때까지 짐승을 키워보지 않았던 터라 거절했지만 키워보면 정이 들 거라며 막무가내로 두고 간 것이었다. 처음엔 먹이를 챙겨주랴 목욕시키랴 병원에 데려가랴 성가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물루와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성격이 깔끔하여 매사가 반듯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다른 사람과 친화하지 못한다. 그런 탓에 친구도 별로 없고 바깥나들이도 자주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두루뭉술하다.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친구도 많을 뿐 아니라 매사가 낙천적이다. 도대체 남편은 고민이 없는 사람 같이 보인다. 부부싸움을 하려고해도 남편이 먼저 웃고 말아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은 두 녀석이 장난치다 문갑위에 놓인 어항을 건드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방안에 물이 넘쳤고 어항속의 금붕어가 방바닥에 파닥거렸다. 내가 달려갔을 때 물루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두어 발짝 물러나 예의 그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시지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종아리를 파고들었다. 물루는 어항을 깨뜨린 것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또,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던진 걸레를 슬쩍 피하기까지 하면서.심한 독감을 앓은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다보니 비몽사몽,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법 헛소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문득 깨어나니 발치에 물루가 앉아 있었다. 시지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물루가 제 주인이 아프니까 측은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녀석을 껴안아 주려고 가만히 다가갔다. 그러나 물루는 한 발짝 물러서며 포옹을 허용하지 않았다. 얄미운 녀석! 못이기는 척 한번 안겨주면 어때서.오늘도 두 녀석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저희들끼리 재미있게 논다. 어쩌면 세상은 한 가지 색깔로만 살아지진 않을 것이다. 교향악처럼 여러 다양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배려할 때 아름다운 공동체는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물루는 여전히 도도하고 시지프는 우직하다.

2019-01-31

오비

강길수수필가그 많던 낙엽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초겨울까지만 하더라도 보도(步道)를 메우던 낙엽들이 자취를 감췄다. 보도 옆 학교 운동장 가에 플라타너스나무가 하늘 높이 서 있다. 가지에는 마른 잎과 열매가 간간이 붙어있다.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건가. 초겨울까지 푸른 잎을 놓지 않고 버티던 플라타너스나무다. 대한(大寒) 무렵의 한겨울인데도, 가지와 마른 잎은 서로 부둥켜안고 아직도 긴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니.반면, 간선도로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는 완벽한 나신(裸身)으로 변모해 있다. 마른 잎을 한 개라도 달고 있나 싶어, 여러 나무를 유심히 살펴도 단 하나도 없다. 은행나무와 잎 사이의 맺고, 끊음이 저리도 분명한 걸 이제야 알았다. 나무밑동 곁 마른 잔디를, 마른 은행낙엽 몇 잎이 부여잡고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도 나누는 걸까. 지난봄의 약동과 여름의 성숙과 가을의 화려함은 찾아 볼 수 없어도, 마른 낙엽과 잔디가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고도 애달프다.가을이 되자 나뭇잎들은 스스로 고운 색옷 갈아입고 가지를 떠나 은퇴했을 터다. 북녘 된바람에 우수수 쓸려 낮은 곳에 모였을 낙엽들. 미화원이 큰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매립지나 소각시설로 보냈을 것이다. 매립지에 간 낙엽들은 땅 속 깊이 묻혀 시나브로 부패되며 가스와 물, 흙으로 되돌아 갈 길을 걷겠지. 소각시설로 간 낙엽들은 커다란 소각로에 들어가 몸을 불태워 열과 가스와 증기로 변하고, 얼마간의 재를 남기는 길을 갔을 테고. 도시 가로수에서 태어난 나뭇잎들의 한 생은 이런 여정들을 겪어내며 마칠 것이다.직장생활을 하면서 중년기에 접어들자, 주위에서 ‘오비(OB)’란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직장 떠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도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따라 썼다. 그때 글쓰기라도 했었더라면, 오비의 원어를 따져 보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남 따라 막연히 그냥 썼다. 훗날, 원어도 모르고 따라 쓰는 자신이 부끄러워 온라인 사전을 찾아보았다. 영어로 ‘올드 보이(Old Boy)’였다. 직역하면 ‘늙은 소년’이 된다. 하지만, 이 말이 ‘졸업생’이나 ‘퇴직자’를 뜻하는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두 번째 직장에서 설립한 작은 회사에, 사측의 권유로 기술진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무렵, 두 번째 직장의 ‘오비모임’이 결성되었다. 나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새 직장에서는 현직이었지만, 전 직장기준으로 보면 오비였다. 매월 한 번씩 열리는 오비모임을 회원들은 좋아했다. 타 모임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이루어져서다. 이를테면 경쟁심리가 없어 흉허물이 없다든가, 젊음을 함께 바친 직장이었다는 공감대가 펼쳐졌다. 따져 보니 내가 참여하는 오비모임도 퇴직자모임, 동문회, 성당의 봉사직출신모임 등 여러 개다.생각해보면, 활엽수 나뭇잎들은 가을에 모두 오비가 되었지 싶다. 어떤 잎은 붉은 오비, 어느 잎은 노란 오비, 다른 잎은 보랏빛 오비, 여느 잎은 갈색 오비가 되어 직장인 나무를 떠난 것이다.한겨울에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은행나무는, 나무와 잎 사이가 사리 분명하나 정 없어 보인다. 아직도 마른 잎과 열매를 더러 매달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와 잎, 열매 사이는 끈끈하고 긴 이별을 나누어 애석하나 아둔해 보이기도 한다.사람들이 오비가 되는 여정도 활엽수 나뭇잎들과 같지 않을까. 어떤 직장은 퇴직 문제가 은행나무낙엽처럼 말끔히 처리된다. 직장도, 근로자도 합법적 퇴직문제를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직장은 퇴직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고 플라타너스나무 잎처럼 끈끈하게 끌어, 법정싸움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양측의 욕심 때문인가.지금 오비이면서 현직이기도 한 나는, 장차 어느 나무를 닮아가야 할까. 또, 지구촌 생이 끝나는 날엔 어떤 오비가 기다릴까.

2019-01-24

여생의 첫날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오늘은 특별하고 중요한 날이다. 무슨 특별한 행사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다. 집안의 경조사가 있거나 가족의 기념일도 아니고 건강검진의 결과나 복권 추첨을 기다리는 날도 아니다. 하다못해 국경일이나 공휴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이 특별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여생(餘生)의 첫날이기 때문이다.죽을병이라도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면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남은 생의 첫날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한 날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사람들일수록 그 첫날인 오늘이 어찌 사소하거나 예사로울 수 있겠는가.오늘이 내 남은 삶의 첫날이라고 일상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여전히 땀 흘려 일해야 하는 하루임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그 일에 임하는 마음과 자세는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헛된 꿈이나 악하고 추한 마음을 먹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내 여생의 첫날부터 사악한 일이나 나태와 방종으로 허송할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이 첫날인 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일인 것이고, 비록 힘겹고 초라한 육체노동이라 할지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행하고 보람 있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널리 알려진 금언 중에 ‘메멘토 모리’란 말이 있다.‘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이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생각한다면 보다 겸허하고 진실한 삶이 될 거란 교훈이다. 오늘이 자기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는 말도 있다. 그러면 그 하루를 결코 허투루 살지는 못할 거라는 얘기다.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남은 하루라면 어떻게 함부로 허송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도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불의의 사고로 졸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매일 속옷을 갈아입는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죽음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도 삶을 보다 의미 있게 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지만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달력에 있는 어느 날이든 남은 생의 첫날이 아닌 날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별로 괘념치 않고 사는 것 같다. 특별한 의미가 없이 주어지는 수많은 날 중의 하나로만 치부하기 일쑤다. 그래서 타성에 젖어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거나 심지어는 탐욕에 몸을 맡겨 자신과 남을 해치는 일을 자행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마지막 날이라는 것보다는 첫날이라는 게 얼마나 희망적이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미 지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보다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 아, 오늘이 내 남은 생의 첫날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하루가 더없이 종요로워지고 뭔가 새로운 다짐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게 하루를 살고 싶어진다. 첫사랑, 첫 만남, 첫날밤처럼 ‘첫’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말은 뭔가 신선하고 소중하고 설레고 떨리는 느낌을 준다.하루를 맞이하는 처지와 기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를 것이다. 그야말로 꿈인지 생신지 꼬집어볼 정도로 행복과 환희에 벅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차마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과 절망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개미 쳇바퀴 돌 듯 지겹고 따분하게 반복되는 삶도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시한부 인생도 있을 것이다. 그 모두에게 행복하고 희망찬 하루가 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누구든 여생의 첫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생각은 없지 않을까. 내 인생의 모든 하루가 다 개벽의 첫날이다.

2019-01-17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김순희수필가신년회를 했다. 이십여 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기다려진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자고 하지만 바쁘다 보면 건너뛰기도 하고 서너 달 못 나온 친구도 있어서 한 번 시작한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으로 바빴는지 나누다 보니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나를 포함한 네 명 모두 쓴 감투가 여러 개였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 명은 통로 반장을 몇 년째 맡고 있었고 주택에 사는 친구는 다들 맡기 싫어하는 돈 관리와 서기까지 도맡아 고생했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새해에는 절대로 아무 감투도 쓰지 않을 거라고 하며 나처럼 열심히 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하고 되물으니 우리 중에 제일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열심히 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살았는데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인가.몇 해 전까지 나는 계획표 짜는 것을 즐겼다. 12월이면 다이어리를 사서 새해에 하고 싶은 일 10가지, 해야 할 일 10가지를 적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부적인 방법도 써가며 세워둔 계획을 하나씩 클리어 하는 재미로 살았다.일 년에 책 30권 읽기, 한 달에 영화 3편 이상 보기, 한 달에 한 번 이상 여행하기, 매일 5매 이상의 일기 쓰기 등등. 되도록 세세하게 짜야 지키기 쉽다며 12월 한 달 동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서 1년을 계획했다.서른 권의 책 목록을 만들고 독서회 세 개는 기본으로 참여한다. 영화관에 가기 힘들 때는 다운받아서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세 편은 거뜬히 넘겼다. 여행하는 일만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늘 계획과 어긋나기 일쑤였다. 5매 이상 일기 쓰기도 처음에 힘들어서 그렇지 한 달 쯤 지속하니 30분 만에 한 편 완성하게 속도감이 붙었다.계획은 늘 타이트하게 목표치보다 높게 세웠다. 화살을 과녁에 정확하게 맞히려면 과녁 그 너머를 겨냥해서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내 능력 이상을 채우려 애썼다. 가다가 아니 가면 간만큼 이익이라는 말도 있기에, 작심삼일은 개나 줘버리라고 외치며 늘 나를 다그쳤다.열심히 사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옳게 사는 삶이, 계획표에 나를 맞춰 사는 삶이 곧 행복한 인생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낮아진 자존감에 기운도 딸리고 눈도 침침해져와 하루하루가 버거워지던 참이었다. 잦은 몸살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어 서니 체력이 떨어졌는데도 간신히 버티며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인생은 단거리 뛰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멀리 가려면 체력이 필수이다. 나에게 맞는 운동이 무얼까 찾다가 계단 오르기를 하기로 했다. 전국노래자랑의 명MC 송해님도 한다는 운동이다. 체육관에 오가는 시간도 필요없고 별다른 도구도 필요없다. 그러니 비용도 0원이다. 잘 하겠다는 욕심은 접어두고 일주일에 서너 계단을 추가하며 오르다보니 두 달이 지난 지금은 36층을 오르는데 15분이면 가능하다. 물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숨고르기를 한다. 덕분에 허벅지가 살짝 얇아진 것을 느낀다.일 년 만에 성경 일독 하려고 하루 30분 이상 읽던 것도 마음을 바꿨다. 왜 일 년이어야 하나 평생 일 독이면 어떠랴 하니 마음이 가벼워져서 하루 한 장만 읽기로 했다. 1~2분이면 충분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이라 3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다. 평생 한 번 읽자고 한 것이 다음 달이면 완독가능하다.매일 쓰던 일기도 신명나면 쓰고, 영화도 땡길 때 보기로 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독서회도 건너뛰고 보드게임을 배웠다. 반장도 새로 이사 온 집에 슬쩍 넘겼고 지각하면 큰일 날 것처럼 서두르던 모임도 한두 번 빼먹으니 학창시절 엄마 몰래 오락실 갈 때처럼 짜릿했다. 무슨 일이든 내 방식대로 내 리듬에 맞춰 즐거울 만큼만 하기로 했다. 멀리 오래가기 위한 방법이다.

2019-01-10

내부왕국

강길수수필가가로수들이 자신의 내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서 있다. 매서운 북극 높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도 윙윙 소리만 낼뿐, 끄떡도 않는다. 사람들은 방한복에다 귀마개와 마스크까지 끼고 종종걸음인데, 훌훌 벗은 저 나무들은 매서운 칼바람에 어찌 저리도 의연할까. 그 모습이, 조그만 변화에도 안달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지난 늦가을, 이 거리는 나무들이 벗기 경쟁이라도 벌이듯 낙엽이 그득했었다. 붉은 옷, 노랑 옷, 갈색 옷, 모두 벗으며 시나브로 속을 드러내는 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성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만 같았었다. 한줄기 하늬바람에 팔랑팔랑 나비되어 나르던 낙엽들부터, 막 시작되는 북풍에 우두둑 떨어지며 시야를 가리던 낙엽까지 거리는 온통 나무들이 옷 벗는 의식으로 분주했었다.봄에 가지에서 싹터 생명을 뽐내며 자라나, 나무마다 하나의 왕국을 이루어냈던 나뭇잎들. 살아있음의 기쁨을 삭막한 도시에 한껏 선물하며 봄, 여름, 가을 한생을 살았다고 미련없이 가지를 떠나던 낙엽들. 보이는 외부 왕국을 해체하고, 보이지 않던 내부왕국을 보여주는 의식처럼 그 모습이 마음에 다가왔었다.젊은 날, ‘실바 마인드컨트롤’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구체적 내용은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 마음에 남은 것도 있다, ‘사람의 사고(思考)는 두 세계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目]과 같다’는 말이었다. 즉,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또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혹은, 물질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그것이다. 한주간의 강의를 마친 후 수강자들이 수련모임을 만들어 강의 내용을 복습하고 연습하기도 했었지만, 지도자가 없어선지 얼마 후 모임은 흐지부지됐었다.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아마도 지천명 중반기쯤에 강의시간에 들었던 말이 불쑥 마음속에서 되살아 나왔다. ‘사람은 내부왕국을 보며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내부왕국 곧, 자기 마음속을 전 보다 더 잘 살펴보고, 귀를 기울이며, 헤아리고, 행하며 살려고 하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마음이, 내부왕국의 여행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바뀌었다. 관광지에서 대부분 피상적으로 보거나 느끼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도 생각하게 되었다.나아가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더 잘 하며 지내자고 마음먹기도 하였다. 남의 말을 더 잘 들으려 마음 쓰고,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등산이나 산보 땐 길옆 풀과 나무들을 더 유심히 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다. 주위의 작은 것들 이를테면, 보도블록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공원에 사는 도시의 새들, 도로나 담 틈바구니에 사는 풀과 꽃들같은 존재들에 관심을 두는 일 등이었다.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이 송구영신의 시기에, 왜 앙상한 가지들이 마음에 파고들어오고 있을까. 그 것은 필시 내 내부왕국이 저 나무들처럼 튼실하지 못한 때문일 게다. 생의 가을 기를 접하며 내부왕국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모습을 잘 살펴보자던 마음이 풀어진 때문일 터다. 활엽수들은 해마다 한 번씩 내부왕국을 활짝 드러내어놓고 칼바람 단련을 받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느슨하게 올 한해도 살아온 것이리라. 좋은 게 좋다는 적당주의에 매몰된 채, 시간만 축내왔기에 앙상한 가지가 세모에 내 마음을 혼내주려는 게 아니겠는가.비록 세월이 하 수상하더라도, 저 거리의 앙상한 나무처럼 외부왕국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북쪽 칼바람을 의연히 대처하고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내부왕국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그 길을 걸어가는 일이 될 것이므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 우리네 속담은 바로, 사람은 자기 내부왕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2019-01-03

빈부의 양극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가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일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게 마련인데, 자유경쟁을 시켜놓으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맨손으로 경쟁을 해도 그럴진대, 잘나고 강한 자들은 최상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는데 약하고 못난 자들은 맨손으로 경쟁해야 한다면 그것은 애당초 경쟁이랄 것도 없는 일이다. 백 개를 가진 자에게 단 하나 가진 것까지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 자유경쟁의 속성인 것이다.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산주의였다. 모든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면 서로 많이 갖겠다고 경쟁하고 다투는 일이 없어지고 빈부의 차가 없이 평등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왕에 많이 가진 자들이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을 리가 없으니 노동자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가나 지주들을 처단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요구된다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엄청난 피의 숙청이 따랐다. 소련에서만도 공산주의혁명을 거치면서 무려 이천만 명의 숙청이 있었다고 한다.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선택했다. 공산주의이념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 공산주의국가란 실재로 인간들이 실현해 낼 수 있는 바람직한 체제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공산주의체제라기보다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독재군주체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통해서 역동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질서인 것처럼, 공산주의의 몰락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유경쟁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가 될 것이다.이미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버린 인간들은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할 수밖에 없다. 강자들이 가진 과도한 욕망과 약자들의 결핍과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중재하고 해결할 것인가가 자본주의 국가의 우선과제이다. 그것은 분명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지주와 자본가를 농민과 노동자의 적이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혁명은 끔찍한 피바람을 일으키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고 잘난 자들만 날뛰고 설치는 세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강하고 잘난 자는 악하고 약하고 못난 자는 선하다는 이분법적 발상도 백해무익한 억지일 뿐이다.비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연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강한 자의 편이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법칙이요 약육강식의 질서다. 그래서 생태계는 건강성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다만 문명화된 인간사회에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위적인 규범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태계에서는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절대로 필요이상을 소유하는 법이 없는데 비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조절과 제재가 요구되는 것이고 제도와 법규가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법과 제도 이전에 인간의 양식이 건전해야한다. 강하고 잘난 사람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 혼자만 잘 살겠다는 욕심이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되 저도 잘 살고 남에게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동시에 자신의 안위도 보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하고 못난 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무조건 불평불만과 적개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를 해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다. 인간이란 반드시 많이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소박하고 청빈한 가운데 오히려 보다 많은 자유와 평안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8-12-27

고구마

김순희수필가어릴 적 내 고향 할아버지 집엔 방이 많았다. 잠자는 방 이외에 고방도 있고, 쌀이 되기 전의 나락만 보관하는 방, 외양간 옆에 농기구만 보관하는 창고도 있었다. 마루 밑엔 사과궤짝을 넣어두었다. 밖에서 보면 안이 훤히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지하실처럼 사방이 막혀있고 작은 공기창만 뚫어 두고, 마루한쪽을 뚜껑을 만들어서 열고 닫았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사랑채 마루 밑에 넣어 둔 사과 때문에 늦가을부터 겨울동안 그 방 언저리에 가면 국광향기가 번졌다.안방 건너편에 자리한 갓방에 군불을 지피면 그 뒷방까지 구들장이 연결되어 사람이 잠자기엔 서늘하지만 따뜻한 걸 좋아하는 물건들이 들어앉기에 좋았다. 뒷방엔 고구마나 호박같은 추위에 약한 것들을 보관했다. 고구마는 뒷방 윗목에 칸을 질러서 벽과 칸막이 사이에 고구마를 그대로 채워 놓았다. 친구네는 방 아랫목에 수숫대를 엮어 둥글게 세워놓고 거기에 고구마를 채웠다.손을 여러 번 탈수록 상하기 쉬운 게 고구마이다. 그래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에 쭈욱 놔두고 필요한만큼 꺼내서 먹어야 한다. 겨우내 고구마를 꺼내 삶아서 점심 한 끼로, 군불 지피고 난 뒤에 남은 불로 구워낸 달달한 군고구마는 손자들의 군입꺼리였다. 부족한 쌀에 보태기 위해 밥 위에 얹어 먹다보면 그 양이 줄어들어 수숫대나 칸막이 안으로 집안의 아이들이 들어가야 고구마가 손에 잡히는 시기가 온다. 겨울이 깊었다는 걸 고구마 꽝이 알려주었다.어느 날인가 언니와 내 친구 순연이와 미정이랑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우리 집은 건물이 여러 채라 숨을 곳이 많았다. 언니와 나는 아이들이 못 찾도록 뒷방 고구마위로 숨어 들어갔다. 뒷방 문만 열어서는 보이지 않아서 오래도록 술래가 우리를 찾지 못했다.한참을 숨어서 킬킬 거리며 낮은 소리로 소근대는데, 언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했다. 그럼 먼저 나가라니까 들키기 싫었던 언니는 술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칠 때까지 참다 참다가 그만 고구마 더미에 고구마를 닮은 것을 누고 말았다. 고구마 더미에 변을 본 언니가 어른들께 혼이 났는지. 우리가 거길 어찌 빠져 나왔는지 가물거리지만 냄새나는 고구마 더미에서 낄낄거렸던 장면은 선명하다.우리 집 고구마는 물고구마였다. 물 빠짐이 좋은 터에 과수원 농사를 하며 몇 고랑 곁다리로 심은 고구마이니 더 했다. 색깔도 빛바랜 보라색이어서 보라색이라 하기에 듣는 보라색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물이 많은 곳이라 어찌나 잘 자라 크기는 또 어찌나 큰지 토막을 내서 솥에 넣어야 했다. 삶아 놓으면 물컹해서 타박고구마를 좋아하던 나는 영 입맛에 차지 않았다.옆집 순연이네는 고구마도 유난히 붉었다. 가장골(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가장 깊은 골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었다)에 밭이 있었다. 그곳은 흙빛도 붉었다. 그래서인지 고구마 순을 심어 놓으면 물이 베어서인지 진한 자색의 타박 고구마가 열렸다. 우리 할아버지는 왜 고구마를 모래밭인 과수원에 심어서 희멀건 고구마만 만들어 내냐고 철없는 나는 투덜거렸었다.내 투정을 들어줄 할아버지도 우리 밭도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해마다 가을이면 고구마를 사서 먹는다. 양면팬에 대여섯 개 넣고 약한 가스 불에 올려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집안에 할아버지가 아궁이에서 군불 지피며 구워주시던 군고구마의 녹진한 단내가 번진다. 얼른 가스 불을 끄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고구마와 가장 잘 맞는 음식이 약간 신 김치니까 말이다.겨울이면 가끔 고구마로 한 끼를 채운다. 잘 익은 고구마를 집으면 옛 기억이 손으로 전해져 온다. 노란 김이 몰캉하니 입안에 퍼지며 뜨듯한 기운이 온 몸으로 번져간다. 배꼽 밑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2018-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