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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늘과 어머니

이순영수필가마늘을 얻었다. 김장철도 지났고 햇마늘이 날 때도 아닌지라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한손으로 들어도 빈 바구니 같았다. 푸석푸석 먼지가 나는 마늘 한 접을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에다 두고 며칠 밤을 지냈다.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면서 눈에 띌 때마다 근심덩어리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갈무리를 해 두어야만 될 것 같았다. 미루어두면 버려야 할 형편이 될 일은 뻔했다.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어머니는 김장철이 되면 집에서 가꾼 마늘을 틈이 날 때마다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장만하셨다. 깐 마늘을 수북하게 모아 두었다가 김장양념장을 만들 때쯤이면 마당 귀퉁이 감나무 아래에 있는 돌절구에 마늘을 찧으셨다. 지난 초겨울에도 어머니의 마늘 까는 일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 양이 줄어든 것과 방안에 앉아서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통에 마늘을 찧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어머니의 성품은 때로는 온화하셨고, 때로는 매우 강직하셨다. 이런저런 모습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신문지를 활짝 펼치고 마늘을 깔 준비를 했다.두고 보니 이 많은 마늘을 언제 다 손질할까. 긴 한숨이 나왔다. 받아오지 말걸, 식구도 적은데, 곧 햇마늘이 나올 터인데…. 친정에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맡길까. 그러려면 오고가는 시간과 머무는 시간을 합하면 서너 시간은 걸릴 텐데. 그 정도면 내가 혼자서 모두 손질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야, 나는 어머니를 뵙고 오는 즐거움이 있어 좋고, 어머니는 심심해하던 차에 일거리가 생겼다고 반가워하실 지도 모르지….나만의 계산법으로 나에게 돌아올 득과 실을 따지면서도 깐 마늘을 담을 그릇과 껍질을 담을 비닐봉지를 챙겨서 옆에 두었다.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쭈그리고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볼품없이 말라 푸석거리던 껍질 속에서 하얀 마늘이 보석처럼 발라져 나왔다.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며 시작한 일인데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자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왔다. 어깨와 목덜미, 손목이 뻐근해지고 눈도 따가웠다. 온몸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하얀 마늘이 통에 소복하게 모아지는 재미는 쏠쏠했다. 그릇 위에 봉긋하게 솟은 하얀 보석들을 쓰다듬으니 촉촉한 속살이 내 손바닥을 간질였다.한편 비닐봉지 속에는 흙이 묻은 뿌리와 버썩 마른 껍질들이 가득해졌다. 부풀어 오른 봉지를 손등으로 누르자 풀썩 내려앉았다. 붕긋하던 봉지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자, 몇 해 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벽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 계시던 어머니. 마당이며 부엌과 방, 집 안팎 어느 한 곳도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고 윤기가 흐르게 하시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변신은 믿어지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 없이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시고 사람을 보면서도 아무런 표정이 없으셨다. 때로는 한참동안 두 눈을 힘껏 감으시고 입을 꾹 다물고 계시기도 했다.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으시니 마치 그림 같았다.너무나 낯선 어머니였다. 바스라질 것만 같아 어머니를 부둥켜안을 수조차 없었다.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어머니처럼 벽과 천장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만 했다. 그러기를 몇 개월이 흐른 뒤 멈추었던 어머니의 시간은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조금씩, 아주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는 마치 아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천사 같기도 했다.삶을 온전히 바쳐서 우리들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귀로(歸路)로 향하셨지만 나는 어머니께 해 드린 것이 없다. 오늘도 오랜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는 힘든 일을 어머니께 맡기려고 하지 않았던가.네 시간도 더 걸려서 마늘은 모두 갈무리가 되었다. 비록 껍질은 불태워지더라도 알맹이는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마늘이 함유하고 있는 성분을 따져서 무엇 하리. 음식에 향과 맛을 더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그 형태를 잘 드러내지 않는 마늘, 그 품성이 꼭 어머니 같다.

2020-05-20

가정의 달, 오월

윤영대수필가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고 예수가 부활한 성령의 달이라 해도 코로나에 묶여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다. 시인 엘리엇은 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봄비에 깨어난 뿌리의 힘으로 라일락 꽃향기 퍼드러진 앞뜰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는데….나뭇잎은 어린아이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하늘은 가끔 빗줄기를 뿌려 대지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산강변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초하의 들머리에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라는 입하가 있고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소만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5월에는 윤4월도 덤으로 끼어 있어 결실을 응원하는 태양도 천천히 하늘을 돈다.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을 일대로 다시금 코로나19 확산세가 퍼지는 상황을 묵인할 수는 없지만 계절의 여왕이 화려한 옷자락을 펼치며 우리 국민의 침착하고 현명한 방역 태도에 함빡 미소를 보내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욱 촘촘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서로를 돌보며, 나들이에 나서더라도 긴장의 끈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숫자 5는 다섯, 발음으로는 ‘닫고 서다’ 즉 밝은 세상으로 솟아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오월에는 우리들 마음에도 밝고 아름다운 날들을 가꾸어야 하리라.시골집 작은 텃밭에 상추씨도 뿌리고 고추 모종도 심으니 손바닥 만한 채소밭에도 생기가 돈다. 마을 뒷산 기슭의 하얀 아카시아꽃이 꿀벌을 모으고 하얀 꽃들이 쌀밥을 닮았다는 이팝나무 가로수는 5월에 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하얀 수국, 하얀 찔레꽃, 흰 장미…. 온통 하얀 꽃 잔치다. 지난달 알싸한 향기에 한 소쿠리 따서 삶아 먹었던 가죽나무 순과 엄나무 순도 벌써 새로운 가지를 하늘로 뻗어가고 있다.오월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도 있다. 모두가 감사와 사랑의 의미를 담아 선물을 주고받고 봉사와 기부라는 마음의 가치를 더 높이고 싶은 날들이다.어린이날에는 아직도 학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손을 잡고 푸르른 들과 산으로 또 강과 바닷가로 나들이하며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길러 줬을 테다. 점점 핵가족화되는 사회현상에서 옛과 같은 부모님들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니 어버이날이나마 소담스러운 선물 마련하여 찾아뵙고 가족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40여 년을 교직에 몸을 담고 보니 스승의 날에 대한 감회가 깊다. 학생들은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음료수랑 작은 선물도 책상 위에 놓고 갔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라는 희한한 말 속에 선생님에게는 꽃 한 송이도 드리지 않는다는 서글픈 현실에 교사는 오월이면 우울해지고 교단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제간의 사랑은 부모 사랑만큼이나 소중하다. 참된 가르침과 배움이 진정 사랑인 것이다.성년의 날은 셋째 주 월요일. 만 19세가 됨을 축하하며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해주고 그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날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남자에게는 갓을 씌워주고 여자들에게는 비녀를 꽂아주는 관례와 계례 등의 성인식을 치루었지만 요즘은 몇몇 곳에서만 한다니 되돌아볼 일이다.21일 부부의 날은 화목한 가정을 위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둘(2)이 합쳐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어쨌든 사회의 출발은 가정이니 이혼율이 증가하는 요즘 새로운 사회가정교육이 필요하리라 본다.또 있다. 입양의 날, 11일이다. 한 가정이 한 명의 아동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정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나라’를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고도 미혼모를 보는 사회의 인식 탓인지 해외입양 세계 4위- ‘아동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인권후진국 오명을 빨리 벗어야겠다는 것이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또 다른 바람이기도 하다.감사의 달 오월에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잊고 있었던 지인들에게도 보내고 싶다.

2020-05-13

같지만 다른 봄

강길수수필가마스크를 쓰고 철길 숲 산보에 나섰다. 봄을 타는지 몸이 나른해서다. 늘 가던 코스 따라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려 열린 문을 들어섰다. 교사(校舍) 앞 화단에 선 매실나무는 열매가 토실토실 도토리만큼이나 컸다. 옆의 능금나무에는 하얀 꽃잎이 자태를 뽐내며 일부 꽃은 지고 있다. 어느새 봄이 매우 짙어졌다.저만치 떨어진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만 외롭다. 사람이라곤 그 앞으로 쓰레기 정리하는 분 한 명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휴일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운동장을 걷거나, 녹지의 쉴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이 교정(校庭)은 주민들의 운동과 휴식, 소통의 공간이었다. 한데, 지금은 텅 비었다.웬일인지 입구 반대편 출구의 문이 잠겨 있다. 전엔 문이 없던 곳인데 최근 설치되었다. 화급하다면 넘어갈 수 있을 높이의 자바라 차단문이다. 하지만, 평상시는 사람이 해선 안 될 행동이다. 철길 숲에 가려면 할 수 없이 돌아가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은 그냥 학교 구내를 몇 바퀴 돌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한적한 봄 교정을 이것저것 바라보며, 그들과 마음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교사 한 바퀴를 돌고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왼쪽 나무 곁 잔디밭을 굴렁쇠 형으로 동그랗게 파 엎어 잔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잔디 뿌리와 흙이 이랑, 파인 자국은 고랑이 되었다. 클로버의 증식을 막기 위한 조처임을 금방 알아챘다. 클로버는 졸지에 커나갈 자기 땅을 차단당하고 말았다. 이 숨 막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버는 짙은 녹색 봄옷을 바람에 팔랑이며 나비로 춤추고 있다. 둘러보니 잔디밭 다른 쪽에도 그렇게 차단한 곳이 여러 군데다.저 클로버들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작업자가 뽑아내거나, 제초제의 공습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곳은 클로버를 뜯거나 캐낸 흔적도 보인다. 자연의 뜻과 사람의 뜻이 상충하는 현장이다. 자연은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한 땅에 사는데, 사람의 눈과 마음은 그 아울림을 용납할 수 없나보다.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사는 모습도 달리 보면 아름다울 수 있을텐데 말이다.문득 우리나라와 지구촌의 지금 모습도 바로 저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을 막으려 나라 간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고, 국민에게 사회적 격리의 삶을 강제하고 있다. 그 확진자들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격리치료를 받거나, 자택격리를 당하며 산다. 미 감염자도 외출 시 꼭 마스크를 쓰고, 사람 모인 곳 안가기,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등의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 귀여운 우리 두 손자도 꼼짝없이 자기 엄마들과 집에 갇혀서 이 봄을 지낸다.벚꽃이 피었을 때, 세 살짜리 손자 녀석과 그 아빠와 인근 주택단지에 조성된 벚꽃 길을 처음 드라이브 스루를 한 적이 있다. 차창 밖으로, 예전과 같지만 다른 봄이 와락 달려들었다. 이어, 드라이브 스루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는 장면도 처음 겪었다. 주일예배를 자차 안에서 드리는 교회도 있다. 코로나19 감염검사도 워킹 스루 방법으로 한단다. 분명 자연은 같은데. 사람이 다른 봄이다.잔디밭에 만들어진 클로버 차단 이랑과 고랑이, 꼭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 만들어진 전염 차단 망(網)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코로나19란 괴상한 전염병 확산이 정말 박쥐에서 비롯된 자연현상일까. 만에 하나, 사람이 만든 것이 개입되어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우리가 어찌 살아내야 할지 깊은 걱정이 앞선다.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신록에 생명의 오라(aura)가 뿜어 나오고 있다. 첨단과학 시대를 사는 인류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코로나19 격리의 올봄을, 그 불행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방역 당국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좋은 봄날 신록의 교정을 걷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분들이 마냥 고맙다.

2020-05-06

봄, 홀로나기

이순영 수필가홀로 봄을 즐기는 나날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연일 ‘코로나19’라는 얄궂은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도 손소독제가 놓여졌고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은 항균비닐로 덮였다. 수일 전에는 국가에서 정해주는 날 약국 앞에 줄 서서 기다리다가 마스크도 샀다.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 같다. 이럴 때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 그 가운데 독서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적당한 게으름을 부리며 찻잔을 들고 서재에 든다. 그동안 손길을 기다리던 책을 펼치면 금세 책속으로 빠져든다. 책이 나를 기다렸고, 내가 책을 그리워했으니 그 만남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책은 나에게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또한 새로움을 선물한다.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통해 지혜의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문자들과 밀어를 나누다보면 하루가 기차처럼 지나간다.봄이다. 언 땅에서 아기손톱 만 한 새순들이 고개를 내밀고, 나목도 푸른 물 머금어 촉촉할 것이다. 바위 틈사이로 흐르는 개울물도 봄소식 전하느라 종종걸음일 게다. 외출이다. 차를 운전해서 집을 나서자 지척에 매화가 벌써 지고 있다. 개나리, 조팝꽃, 유채꽃, 복사꽃, 벚꽃들이 봄이 왔다고 함성이다. 산천은 넓은 도화지에 연둣빛으로 밑그림을 색칠하느라 한창이다. 눈부신 계절이다. 꽃길을 따라 바다로 향한다. 행복은 이런 것이리라. 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 모두 건강하고 편히 쉴 내 집이 있으니 더 바라면 욕심이겠지. 창문을 열자 바다향이 상쾌하다. 그런데 놀랍다. 이런 광경 처음 본다.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해안 길에 자동차 행렬도 길다. 코로나로 인한 낯선 풍광이다. 불안한 미래와 답답한 마음을 떨치고 바다 같은 일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리라.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서방과 유럽에서도 코로나감염으로 사망자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환자를 보살피는 의료진이 감염되어 사망하기도 하니, 공포의 도가니 같다. 뿐만 아니라 국제 항공기들이 멈추었으며, 도서관과 박물관은 폐쇄되었다. 학교와 광장, 길거리에는 인적이 뜸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전쟁’이 연상된다. 해안 길을 돌아 들녘이 이어지는 길로 달린다.찬란한 봄날,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조문은 받지 않는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하던 동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 준비하랴, 식탁 정리하랴, 옷매무새 가다듬으랴….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일상. 일터에서 만나던 다양한 사람들, 퇴근길에 벗들과 차 마시며 길을 걸으며 웃음꽃 피우곤 했던 평범한 시간들에 감사한다.들녘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씨앗 뿌릴 채비가 한창이다. 배나무를 매만지며 봄맞이 준비를 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배나무도 베어졌고 아버지도 떠나셨지만 그 흔적은 배 밭에 서성인다. 양지 바른 곳,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께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 말 없이 잔디사이에 돋아있는 잡초를 뽑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나의 언행들을 주워 담듯이. 한참을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아버지의 마당이 듬성듬성하다. 원형탈모 앓는 머리 같아 마음이 아리다. 호미를 내려놓고, 크게 숨을 마신다. 산자락 공기가 참 맑다. 무덤가 마른 덤불 속에 돋아나는 쑥이 눈에 띄었다.여린 쑥을 한 움큼 뜯었다. 보드랍다. 향긋하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봄이다. 봄을 한 아름 안고 와 집에 펼쳤다. 봄 동산이 되었다. 쑥국을 끓였다. 숨어있던 연둣빛이 환하다. 빛깔로 향기로 집안이 봄의 궁전이다. 봄을 먹는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허리를 굽힌다. 내 안에 있던 어두움은 사라지고 화사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 ‘침묵의 봄’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침묵의 늪에서도 새싹이 돋아나고 꽃도 피고 열매 맺힌다. 나는 오늘도 나의 놀이터에서 홀로 희망을 찾는다. 꽃만큼 어여쁜 새순들이 지천이다.

2020-04-22

봄은 왔건만

윤영대 수필가춘삼월도 지나고 목련 꽃이 아름답게 피는 4월, 완연한 봄이다. 벌써 일찍 만개한 창포동 뒷산의 진달래는 꽃잎을 접어가고, 효자 영일대, 환호공원 등 시내 곳곳의 벚꽃길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지나는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의 검은 구름이 몰려온 탓이다. 그야말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국내 확진자가 1만 명을 넘고 감염예방수칙도 강화됐다.늘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이 딸꾹거릴 때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알림이 온다. 감염예방을 위해 저녁 시간 밀폐된 장소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오기, 행사와 모임 자제하기, 손씻기와 기침 예절 준수하기 등 창살 없는 감옥이리라. 국민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긴 겨울 동안 따뜻한 봄날을 기다렸던 마음에 어두운 장막을 치게 한다.감염확산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한다. 거리 2m는 코로나 세균의 비말이 미치지 않는 간격이고 거리두기라는 의미는 사람 간 접촉을 줄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적 거리’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씹어 보면 씁쓸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이라는 말 속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역할을 하는 관계, 감정 등의 의미가 있으리라. 이 보이지 않는 거리를 멀리하라고 하니 무관심 아니면 적대적 관계로 오해될 수 있겠다. 오히려 ‘물리적 거리’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어쨌든 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서 인간적 거리는 배려와 양심적 행동을 통해 더 따뜻하게 가까워져야 하리라.치료와 점검, 방역활동 등을 위해 전국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의료인들과 소방대원들의 봉사 정신, 그리고 자가격리,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을 묵묵히 따라주는 국민의 공동체 의식 수준이 바로 이 코로나 사태 극복의 힘이 될 것이라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모양이 태양 표면의 불꽃, 즉 홍염(corona)을 닮아 붙인 이름 같은데 그 타오르는 열기를 이제 모두의 정신적 차분함으로 이겨나가야 한다.아직 개학이 불투명한 학교 교정은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의 합창 속에 재잘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각종 문화시설과 노인학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노년의 즐거운 일상도 낙을 잃었다.시골 장날이 열리지 않으니 봄나물, 채소들도 밭에서 시들어 버렸고, 재래시장과 소규모 식당들이 개점휴업 상태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들도 그 맛을 잃어간다. 졸업식 입학식을 못하게 됐고 결혼식도 축제도 취소되곤 하였으니 아름다운 꽃들도 겨울 내내 가꾸어왔던 향기를 전할 일이 드물다. 사람의 만남과 자연과의 교감이 없으니 허전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야 하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회적 격리로 이제 가족과는 더 밀착된 시간이 많아져서 그동안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족의 의미를 되찾고 근심 걱정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매일 TV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니 눈도 피로하지만, 다행히 SNS의 세계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답답한 마음에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푸른 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날갯짓에 몸은 가벼워지고, 산골에 있는 친구 만나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정겨운 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시외의 벚꽃 터널을 자동차를 타고 그야말로 ‘드라이브 스루’로 훑고 지나가며 서로 격리된 모습을 느끼기도 하고, 마스크를 낀 채 시내 철길공원 숲을 거닐어 보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피하여 지나가지만 그래도 눈빛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좋다. 인간은 서로 보고 웃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맙다.이제 식목일도 지났다. 산과 들, 마을과 집 안뜰에서 숲의 맑은 숨결을 바라며 나무를 심던 즐거움도 빼앗겼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생명의 꽃나무를 심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는 바이러스가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코로나에 빼앗긴 마음의 들에도 봄은 오리라.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이번 봄은 우리 인간들에게 또 많은 가르침을 준다. 입으로는 어렵더라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자.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2020-04-15

별꽃

강길수수필가가로수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무보호대 구멍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는 덩굴풀 앞이다. 땅에 내려앉아 사는 별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다.아직 춘분이 한 달은 남은 날, 늦은 오후. 봄이라기엔 이른 겨울 끝자락이다. 하긴 쑥, 클로버, 장미 같은 식물들이 월동도 하니, 봄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마음속 어떤 힘이, 지나려던 나를 나를 앉히고 만 것이다.고개 드는 덩굴풀이 쪼그만 꽃들을 피워냈다. 꽃잎 한 개가 깨알만 할 정도로 작은 하얀 꽃이다. 사람들은 왜, 몸을 바짝 낮추고 아주 작게 피운 이 꽃을 ‘별꽃’으로 불렀을까. 별꽃은 논밭 둑이나 길가, 빈터 같은 곳에 흔히 사는 두해살이풀의 꽃이다. 학명이 ‘스텔라리아 메디아(Stellaria media)’로서 라틴어로 별의 뜻을 가진 ‘스텔라(Stella)’에서 유래하였단다. 원산지가 유럽이지만, 지금은 세계 도처에 자란다. 낮아서 사람은 물론, 땅 위의 뭇 생명과 더 가까운 꽃이다. 가까이 쳐다본다. 내 눈에도 영락없는 별이다.가로수 둥치 곁 메마른 땅에서 이렇게 일찍 별꽃을 피워낸 풀의 생명력도 별같이 반짝인다. 벌써 줄기 길이가 한 뼘을 넘어 보이는 것도 많다. 별꽃은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핀다. 하얀 꽃잎이 실은 다섯 개지만 눈엔 열 장처럼 보이지. 한 개가 둘로 깊게 갈라져서 그리 보인다. 사람들은 별빛을 다섯 갈래로 그리지. 별꽃의 꽃잎도 다섯 개라는 사실이 우연은 아니라 싶어. 그래서 이름이 별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땅에 붙어사는데도 줄기가 꽃이나 잎에 비해 튼실해 보인다. 낮아 당할 위험이 더 큰 때문일까. 튼튼한 줄기에 이어진 앙증스러운 별꽃이기에 사림과 별의 끈끈한 연을 잘 나타낸다 싶다.어느새 벚꽃이 만발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즐겁지가 않다. ‘코로나19’라는 신종 전염병의 위세에 눌려 지구촌이 숨죽이는 봄을 보내기 때문이다. 유명한 벚꽃 길도 ‘드라이브 스루’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구경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앞으로 우리는, 인류는, 지구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여행이나 다른 이유로 헤어졌던 가족·친지나 지인들을, ‘혹시 코로나 감염이나 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며 언제까지 살아내야 하는 걸까.너도 알듯이 처음엔 ‘우한폐렴’이나 ‘우한코로나’라 했다가, 중국 압력 때문인지 ‘코로나19’라고 부르게 된 신종코로나 전염병…. 어떤 이들이 의심하듯 정말 사람이 만든 생물학 무기가 유출된 것이 ‘코로나19’라면, 유럽 흑사병 창궐같이 유행병에 무방비로 당해야 했던 그 옛날로 지구촌이 되돌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물질문명 추구와 향유가 과연 제 길을 걷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인간의 정치, 경제, 문화, 기술, 종교 등 제 분야의 패권 추구는 무엇일까. 정말 성악설이나 원죄론 같은 이론이 제시하는 인간상이 원래의 인간일까.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땅 위에도 가져다 놓은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사람의 무의식이 땅 곧, 지구도 별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함일까.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며 이른 봄, 아니 겨울 끝자락에 별을 땅 위에 피워낸 별꽃을 다시 찾았다. 작고 약해 보이더라도 실은 강한 별꽃이다. ‘별꽃’이란 이름 자체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지. 춥고 음산한 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은, 산 너머 남촌에서 따사한 바람 불어오는 희망의 봄일 테니까.웬일인지 별꽃에, 하얀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코로나 환자 진단과 치료에 여념 없는 의료진들이 겹쳐 보인다. 처음 입국자 차단을 하지 않은 당국의 방역 실책을 탓하지 않고, 신종 코로나전염의 최전선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는 분들 말이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 희생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그들이 낮은 곳에서 봄을 밝히는 밝은 별꽃이란 생각이 물밀듯 든다. ‘우한폐렴’소식에 선제적으로 코로나진단키트를 밤새워 개발한 기업, 그리고 검사와 진단에 전력투구한 의료재단의 역군들 또한 이 봄을 비추는 하얀 별꽃이란 마음도 밀려온다.

2020-04-08

멧돼지가 안긴 딜레마

강길수 수필가그놈만 아니었더라면, 오늘같이 무더운 날은 집에서 찬 수박이라도 나누며 티브이 보는 게 제격이다. 한데 사는 게 무엇인지 아내도, 나도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긴다. 지난 주말, 텃밭에서 만난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현관을 나설 수밖에 없다.차를 굴다리 밑에 세우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텃밭으로 간다. 많이 궁금했던 고구마 이랑으로 먼저 가 본다. 지난번 왔을 때, 멧돼지가 다 파 해쳐 잎은 마르고 샅샅이 젖혀진 뿌리에는 새알 고구마 하나도 달린 게 없었다. 사람이 팠던 땅을 어찌 아는지, 고구마 줄기나 파뿌리를 심었던 자리는 모두 패여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심어 물까지 주었었다. 새로 심은 고구마를 또 옹골지게 모두 파 뒤집었다. 비록 늦을지라도, 줄기와 잎은 따 먹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심었던 고구마다.너무 무참히 유린당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아래쪽 옥수수 이랑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시 작은 옥수수 한통이라도 화를 면했나 싶어, 자세히 살펴봐도 깡그리 아무것도 없다. 옥수수 알 뿐 아니라, 이삭도 통째 몽땅 먹어 치웠다. 대는 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넘어지고, 뽑히고, 짓이겨져 폭삭 내려앉았다.먹이사슬의 잔인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텃밭의 모습이 내 초심을 흔들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고라니만 출몰했었다. 고라니는 어린 옥수수를 뜯어먹는 데 그쳤었다. 그때만 해도 ‘그래. 우리가 농사 전업도 아니고, 시간 소일거리로 작게 시작한 텃밭 가꾸기이니 노지재배를 고수하자. 삭막하고 각박하게 울타리 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 명색이 환경 분야에 오래 일했지 않은가. 생태계 먹거리는 모든 생명이 나누어 먹으라고 주어지는 것이니까’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뜻에 아내도 암묵적 동의를 했었다.가끔 고향에 가면 동생은 야생동물 특히, 멧돼지의 횡포로 농사짓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한다. 고구마 같은 작물은 한해 농사를 폐농(廢農)하는 농가도 많단다. 피해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나는, 그 걱정을 피상적으로 듣곤 했다. 하여,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공기총이나 올가미, 덫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였다. 반면, 작은 우리 텃밭의 수난현장을 겪는 마음이 착잡하고 헷갈린다. 사람의 입장과 멧돼지의 상반된 입장이 가슴속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논밭에 울타리나 망을 치거나 과도한 농약을 쓰는 등, 자기들만 먹으려 섭리에 도전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들도 살기 위해, 인간에게 응전(應戰)이라도 하여 예전보다 더 깡그리 농작물을 해하는 걸까. 나무만 무성하여, 산야의 먹이 환경이 예전만 못해 야생 먹이가 부족해졌단 말인가. 아니면, 멧돼지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가 늘어났기 때문일까.야생 짐승들로 부터 농작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은, 동물 보호론자나 환경운동 단체들의 행태나 당국의 탁상행정에 분개한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농촌 출신으로 도회에 살며 환경 분야에서 오래 일한 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지구촌 모든 생명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과의 먹을거리 쟁탈 갈등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딜레마다.웰빙 붐과 로하스 운동, 슬로시티 운동 같은 움직임들이 구미(歐美)를 중심으로 있지만, 아직 지구환경 전체의 개선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인간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린란드의 빙하가 삼십 년 만에 거의 다 녹았다는 미국 나사(NASA)의 발표를 뉴스에서 보았다. 북극얼음이 곧 다 녹아, 선박의 북극항로도 열릴 것이란 보도도 있다. 열린 북극항로가 인간과 지구촌에 축복이 될지, 재앙으로 닥칠 것인지는 가히 짐작이 가는 문제다.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생태계의 많은 생명이 하나, 둘 멸종의 길로 가고 있음도 이미 밝혀진 바다. 멧돼지와 야생생물들은 이 미증유의 사태를 본능으로 느끼고, 우리 인간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생태계에 점철된 먹이 갈등 딜레마를 풀어낼, 솔로몬의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인가.

2019-08-25

숨비소리

송귀연 수필가휘-이유! 휘-이유!이랑사이로 가쁜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콩밭 매는 할머니가 굽은 허릴 펴면서 내는 소리다. 이랑 사이로 묻혔다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이 꼭 자맥질하는 해녀 같다. 둥글면서 깊고 애절하면서 먼 소리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 닿았다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 김매기는 끝났다. 나는 준비해간 호야를 앞세우고 할머니와 함께 어둑해진 들길을 걸어 돌아왔다.할머니는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를 치렀다. 원삼족두리 차려입고 초례청 너머로 훔쳐본 신랑이 어찌나 준수하던지 내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조부모 자리끼시중도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무거운 밥상을 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샛문을 드나들었지만 신랑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힘이 불끈 솟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잠수하는 해녀가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길게 내 쉬는 게 숨비소리다. 떼 지어 물질하는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내쉬는 소리가 해변을 가득 메웠다. TV에서 보았던 고래 떼 같았다. 고래는 바다 속을 헤엄치다 숨이 차면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비소리는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이기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들숨과 날숨의 수많은 숨비소리가 있고서야 그날의 수확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물 밖으로 나온다.할머니 삶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고통이 있었다. 술과 노름으로 증조부 때의 가산을 거의 탕진해버린 할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예전의 부(富)를 되찾겠다며 현해탄을 건너갔다. 그때 할머니 나이 사십 대 중반. 하나 뿐인 사위마저 데려간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안의 권유로 작은댁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를 양자로 들였다. 홀로 사는 딸이 어렵게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아들내외 몰래 적잖이 도움을 주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누이까지 돌봐주는 할머니가 못마땅했던 엄마와 자주 다퉜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잠을 뒤척이며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망부석이 된 당신의 마음은 풍파 일어나는 바다 같았지만 겉으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수십 년 째 할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자 주위에서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무슨 소리고?”라며 심하게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다. 가끔씩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의 할머니는 열다섯 살 연지 곤지 찍은 새악시처럼 두 볼이 빨개졌다. 언제나 웃음으로 우리를 다독였지만 그 근심의 바다 속 수심을 나는 알지 못했다.일본에서 인편으로 할아버지 소식이 온다는 전갈이 왔다. 온 집안사람들이 사랑채에 모여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낯선 남자가 검정양복차림에 사각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 끝에서 기다리던 시선들이 일제히 그 사람을 향했다.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흘러들어간 곳은 조총련산하였다. 할아버지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며 할머니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고모는 쓰러졌고 할머니는 긴 침묵 사이로 담뱃대만 땅땅 두드렸다. 밤색 가방 안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안경이며 낡은 옷가지가 몇 벌 들어 있었다.어떤 위로도 태산 같은 할머니의 슬픔을 덜어줄 수 없었다. 둘러 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돈벌어와 호강시켜준다며 옹서간(翁壻間)에 떠난 사람들이 남이 되어 돌아왔다는 둥, 진즉에 재혼을 했어야했다는 둥 안타까워했다. 지켜보던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 날,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홍시 몇 개 품에 안은 채 고모네로 향하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토닥토닥 고샅길 멀리 사라지던 지팡이소리는 할머니의 한숨처럼 오래 여운을 남겼다.정정하던 할머니의 기력은 시나브로 눈에 띄게 쇠잔해졌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탓일까. 할머니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 소리는 심해처럼 깊고 아득했다. 남편 없는 힘든 삶을 견뎌온 당신은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유언을 따라 주검은 한줌 재가 되어 동해바다에 뿌려졌다. 나는 고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칠흑처럼 캄캄한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숨비소리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삶이라는 바다에 자맥질을 시도하지 않을까.방파제엔 흰 파도들이 물이랑을 이루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가끔씩 바닷가에 앉아 쪽빛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발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꼭 바다의 숨비소리 같다. 할머닌 지금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질 만나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정을 나누고 있을까? 갈매기들이 대답처럼 날아오르고 수평선 너머에서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크게 들려온다.휘-이유! 휘-이유!

2019-08-18

향기

김순희 수필가어머님 생신이라 모든 가족들이 모인 몇 해 전 8월이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눈도 뜨지 못하고 여간해선 사람 손에 잡히지 않는 날쌘 고양이가 겨우 기어서 시댁 문 안에 들어왔다.허약해서 어미 고양이가 버린 새끼였다. 남편의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밥알을 몇 개 앞에 놓아주니 얼른 먹어치웠다. 생선살도 주워 먹더니 작은 먹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피곤함을 잊은 듯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조그만 몸으로 온 가족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도 귀여움을 내뿜고 있다.마음이 동한 남편이 며칠만 키우자고 하자, 안 된다 아파트에서 어찌 돌볼 거냐고 자르기도 전에 두 아들이 똥도 치우고 목욕도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예전부터 아이들은 친구들이 애완견을 키우는 것을 부러워했었다. 못이기는 척 일주일만 돌보고 보내자며 집에 데려오는 것을 허락해주었다.상자에 담아 차에 싣고 오면서 우리 집 남자 셋은 고양이 이름 짓기로 들떠있었다. 남편이 나비라고 외치자 둘째는 야옹이 어떠냐 했다. 큰아이는 노란 얼룩무늬라고 치즈라고 하자고 했다. 신호에 걸려 창밖을 보니 꽃가게 이름이 ‘풀향기’였다. 고양이에겐 관심도 없던 내가 무심코 “향기 어때?” 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다고 반겼다. 그렇게 향기는 한여름에 우리 집으로 왔다.나는 무엇을 돌보는 것에 약한 사람이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여느 엄마들이 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도 업어주지 않아서 다 자란 후 포대기를 동서에게 물려줄 때 보니 새것처럼 뻣뻣한 풀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손을 탈까봐 많이 안아주지 않았더니, 잠투정 한 번 하지 않고 컸다.아이들이 순한 탓도 있지만 남편 말에 의하면 계모 같은 엄마가 받아주질 않으니 아이들이 알아서 큰 거라고 했다. 이런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아기 고양이가 가까이 오려하면 발로 슬쩍 밀어냈고, 곁에 오지 못하게 하려고 작은 덩치로는 기어오르지 못하는 높은 소파 위나 침대에만 앉았다.몸에 닿으면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불러서는 데려가라고 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기는 자꾸만 내 옆에 다가왔다. 모두가 학교에 가고 나면 집에는 나와 향기만 남는 일이 많았다. 못 먹어서 뼈만 남은 다리로 소파를 암벽 등반하듯 겨우 기어올라서는 내 무릎에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분명 집을 따로 만들어 주고 폭신한 방석까지 깔아 주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운 내 등에 자기 등을 붙이고 있었다.엄마를 잃고 내게 자꾸만 달라붙는 고양이가 애처롭기 시작했다.외출해서도 혼자 있을 향기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계단을 오르는 내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고 현관 앞에 두발을 모으고 기다리는 것도 기특했다. 고양이의 상징인 도도함을 버리고 다가오는 향기에게 나도 마음을 주기로 했다.사랑하면 보이나니, 고양이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져 향기가 내게 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몇 천 년 전 이집트에서 곡식을 갉아 먹는 설치류 때문에 길을 들이게 된 고양이는, 무역하는 배를 타고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해지던 삼국시대에 들어 왔다.마차에 실려 오는 불경을 쥐들이 갉아먹자 그 속에 고양이를 함께 태워왔다. 불교가 다른 종교를 가진 내게 고양이를 선물해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달이 지나자, 나는 향기의 집사가 되어 있었다. 모임에 가서는 아들 자랑하듯 고양이 이야기가 수다의 주제가 되었고, 귀여운 동물의 눈빛에서도 향기가 보였다. 길가에 핀 노르스름한 꽃을 보아도 향기의 보드라운 가슴털이 떠올랐다. 고양이에 관한 백과사전을 섭렵하며 울음소리와 행동이 조금만 이상해도 조바심을 냈다. 향기가 내게 없던 모성을 일깨워주고 있었다.그렇게 육 개월이 지났다. 덩치도 다 자라 제법 아가씨 고양이티가 났다. 남편과 나는 미뤄오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반려묘로 살아가려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저 조그만 몸에 칼을 대야 한다니 애처로워서 자꾸만 시기를 늦추었다.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은 향기를 데리고 산책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밤이 늦어서 돌아온 남편은 혼자였다. 차마 수술은 못하겠어서 좁은 우리 집보다 넓은 시골집인 시댁이 나을 거라 판단하고 시댁에 데려다 준 것이었다. 주말에 향기를 보러 갔다가 돌아온 날, 어머님이 전화로 한 말씀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우리 차가 떠난 곳을 향기는 한참이나 바라보며 매번 서너 시간 앉았더란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지금은 무지개다리 건너간 향기가 그립다.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만났을 것이다. 향기가 왔던 여름이다.

2019-08-11

실패한 일회성 실험

강길수수필가잿빛 구름에 물방울이 송송 숨었다. 물방울들이 언제 구름을 모아 땅에 장맛비로 내릴지 알 수 없다. 비는 논밭을 일깨우고, 산을 더듬고, 강도 만지고, 바다를 간질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집, 도로와 공원을 씻어 내리리라. 사람들은 비 안 맞을 준비를 하고 나들이를 한다.자전거 뒤에 우산을 싣고 출퇴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렇다. 오늘 출근길도 자전거 페달이 가볍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매일 두던 곳에 세우고, 우산을 내려 사무실에 가지고 올라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창가로 가 하늘을 살폈다. 구름 상태가 점심 먹고 오는 동안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가지고 내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었다.다른 일이 없는 한, 집에서 점심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 돈이 절약될 뿐 아니라, 운동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점심 후 다시 사무실에 갔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두고, 우산을 내리려 끈에 손이 갔다. 그 순간, 장난스러운 생각이 튀어나왔다. ‘누가 가져가지 않을 것이란 사회에 대한 내 믿음을 우산으로 실험해 보자!’는 마음이 불쑥 든 것이다. ‘우산도 새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기실, 우산은 손잡이를 세게 당기면 아랫부분의 대가 쑥 빠져나오는 헌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새것이나 진배없는 아니, 새 우산보다 더 귀한 것이다. 전에 아내가 ‘대가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었는데, 천이 좋고 살이 튼튼해 버리기가 아깝다’고 했던 우산이다.어느 날, 펜치와 드라이버로 고장 난 곳을 누르고 조정하여 당겨도 잘 빠지지 않게 고쳤다. 그 후 우산은 내 전용이 되다시피 했다. 아랫대를 적당한 부위까지 당겨서 쓰면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며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갈 때가 백미다. 대가 빠져 우산이 날아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 신경 모아 걷는 남모르는 스릴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우산을 자전거에 두고 사무실에 올라온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물이 마시고 싶어, 잔에 물을 따라 창가로 가 마시며 자전거를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서 있는 자전거 짐받이에 있던 우산이 없어진 것 같이 보였다. 어찌 보면 있는 것도 같았다. 시력 탓이다. 당장 내려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삼만 불 국민소득의 우리 사회인데, 퇴근 때까지 믿고 두고 보자’란 마음이 그 생각을 주저앉혔다.퇴근 시간이다. 얼른 컴퓨터를 끄고, 문단속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나서며 눈이 저절로 길 건너 자전거를 보았다. 우산이 없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갔다. 앞뒤 두 끈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우산만 쑥 빼 가버렸다. 마른 물티슈 끈이다. 우산 빠진 구멍이 일그러지지도 않고 텅 빈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우산이 따라가기 싫었던 것일까. 아직도 못 떠난 우산의 잔해가 끈을 받치고 있단 말인가. 시나브로 끈을 풀어 다시 조여 매는 내 손가락은,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정든 우산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껏, 자전거나 차량에 싣고 온 물건은 언제나 필요한 곳에 갖다 두면서 살았다. 쓰기 위함이었지만, ‘작은 불찰로 남을 도둑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오늘 즉흥 코미디 같이 해버린 이 실험은, 첫 도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늘 물건을 챙기던 습관과 생각이 옳았다’는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단 한 번의 일회성(一回性) 실험으로 사회를 판단한다는 것은 도리에도, 이치에도 합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통계학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우산 없어진 빈 자전거 짐받이를 처음 보았을 때, 가져간 이가 미운 마음이 든 것도 맞다. 그러나 우산 하나로 사회를 시험해 보려 했던 어설픈 실험자 곧, 원인제공을 했던 내가 더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움도 금방 사라졌다. 정말 우산이 필요한데 살 수 없어서, 남의 것을 뽑아 갔으리라고 이해하는 마음도 뒤따랐다. 나아가, 우산이 그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바람도 생겼다.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다. 낮의 우산 사건을 되돌아본다. 왜 그 순간 충동적인 우산실험이 떠올랐을까. 아마 나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지 싶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상식과 이성(理性)이 마비되어가는 어지러운 사회다. 이리저리 공동체가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가면 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무언가 나를 주무르며 시험하는 느낌도 드는 요즈음이다. 그러니 내 무의식도, 우산실험이란 돌연변이를 투사(投射)한 것이리라.우리 사회는 지금, 한 번도 겪지 않은 일회성 실험을 당하며 사는 게 아닐까.

2019-08-04

모고헌에서 물소리를 듣다

김순희 수필가비는 물의 다른 이름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리를 바꾸며, 이동할 때마다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같은 족속임을 증명한다. 그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도 물이나 비나 매 한가지이다.여름에 들면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을 횡계서원으로 이끌었다. 서원은 옛 모습을 지키고 섰으나 마당의 쑥부쟁이의 큰 키로 보아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성큼 댓돌을 딛고 마루에 앉았다. 그사이 비는 더욱 거세어졌다. 거친 소리를 만들며 비는 물로 모습을 바꾸었다.영천 횡계서원은 숙종 때 정규양이 지은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향나무가 외로이 비를 맞고 섰다. 300년은 족히 넘었을 나무다. 저 나무가 이곳의 역사다. 이제는 힘에 겨운 듯 목발에 팔을 의지하고 있다. 나무 앞에 학처럼 날렵한 정자가 앉아 있다. 집처럼 아늑한 학교이길 바랐던 정규양의 마음이 느껴진다.숙종 때 지어진 것을 영조 때 문인들이 수리한 후 ‘모고헌’이라 고쳐 불렀다. 높은 벼슬길로 오르려하지 않고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뜻을 존경하여 ‘옛사람을 흠모하는 집’이라 고쳐 부른 듯하다.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비탈에 서 있어서 물 가까이 선 누각의 다리가 더 길다. 까치발로 담장에 기대서 서당을 넘겨다보며 글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그래서인지 물가에서 보면 이층 같고, 마당에서 보이는 건물은 단층이라 두 가지 모습을 한 모고헌이다. 앞면 두칸, 옆면 두 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휘어진 곡선이 학이 날개를 펴서 막 날아오르려는 폼새다.신발을 벗고 모고헌 마루에 올랐다. 툇간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집이다. 계곡으로 향해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경치에 눈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게 한다. 그 소리를 만드는 것은 계곡의 모난 돌들과 빗물이다. 자기만의 공법으로 기막힌 음악회를 만든다. 그 소리를 모아서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툇간이 있어서 모고헌의 가치가 높아지는 듯했다.방의 주인은 가끔 문을 닫고, 제자들의 글 외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를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그러다 한 제자의 느닷없는 질문에 선생이 일어선다. 방 윗부분 벽장형식의 책장에 손을 뻗어 눈으로 훑는다. 어느 건물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공간, 이곳이 학문을 논하던 곳이란 것을 보여주는 책장이다. 조그만 방에 한 사람의 제자라도 더 들여 놓기 위해 머리 위로 책장을 올렸던 것 같다. 나도 깨달음을 얻을까하고 손을 내밀어 책장을 쓸어본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여기 서있던 그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오랫동안 마루에 앉아 계곡의 음악회를 듣는다. 방밖은 사방이 툇간으로 둘러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물소리가 잘 들리지 않겠지 했다. 자세히 보니 이런 내 짧은 소견에 일침을 가하듯, 삼면에는 문을 달아 놓아 계곡을 향해 열면 방에서도 물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계곡에 쓸리며 내려오는 물소리를, 글 읽는 소리 들으려 잠시 소에 머무르는 물소리를, 모고헌을 뒤로 하고 내달리는 물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다.물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계곡을 쓸고 오다가 모고헌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춰 진양조 장단으로 서성이며 맴을 돈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취할까 싶을 때 자진모리 걸음으로 소를 빠져나간다. 명인이 연주하는 가야금산조가 계곡에 그득하다.옛 장인이 들려주는 물소리에 내 마음을 꺼내 씻고 싶다. 몸이 힘겹다고 마음에게 신호를 보내도 나는 무시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찾은 곳이 모고헌이다. 남편과 다툼이 있던 날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는 이 곳을 찾았다. 모고헌은 학문만 가르친 곳이 아니었다. 삶에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공간이었다.휴(休)는 나무 옆에 사람 인자를 붙여 만들었다. 사람이 나무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모고헌은 향나무 그늘에 앉아 나도 그늘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쉬는 것이 더 오래 걸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모고헌을 좇아 내 삶에도 휴식을 주어야겠다. 오늘 같이 비가 내려 계곡 가득 물이 들어찰 때, 이곳으로 와 물소리를 길어 올려야겠다.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에 화답하듯 모고헌의 물소리는 쉼 없이 여름을 실어 나르며 가슴 깊은 곳까지 푸르름을 새겨 넣는다.시원한 음각의 물소리가 내 마음을 거풍시켜 준다. 저 계곡이 있어서 모고헌이다.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물소리가 있어, 학문이 있어 모고헌이다. 글 읽는 소리와 물소리가 맥놀이 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림 속에 내가 있다.

2019-07-28

오일장

송귀연 수필가“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엿장수가위소리와 함께 각설이가 빙 둘러선 인파속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발가락이 삐져나온 양말에 빨갛게 볼연지 바른 여장남자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물장수, 포목전, 옹기전이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고 전을 펼쳐놓았다.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파전을 부치는 아주머니,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 각종 채소며 과일들을 좌판에 놓고 쪼그려 앉은 아낙들로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로 흥정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이다.장터골목엔 소머리국밥냄새가 구수하게 피어났다. 술집에선 육자배기 젓가락 장단에 막걸리 잔이 돌고 주모의 노래가 구성졌다. 약장수는 북을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마술도 보여줬다. 야바위꾼들이 주사위놀이와 화투 패를 재빠르게 섞어 팔광, 똥광 찾기 하는 놀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유랑극단에선 회충약이며 오줌발이 세어진다는 약을 팔았다.엄마를 졸라 장 구경을 갔다. 특히 호박엿은 군침이 돌았다. 붙박이처럼 들여다보다 그만 엄마를 놓쳐버렸다.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달려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해는 금세 서산으로 떨어져 어둑해졌다. 두려움이 엄습해 무작정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아랫마을 상여집 앞을 지날 때는 머리가 쭈뼛 섰다. 시커먼 손아귀가 뒷덜미를 덥석 잡아챌 것만 같았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어 사립문을 밀치자 “아이구! 아가 용케 왔데이.” 하는 엄마 목소리를 꿈결처럼 들으며 자지러지듯 품에 안겼다.장날이면 농사일을 접고 엄마는 우아한 여인으로 둔갑했다. 옥색 한복을 차려 입고 나서면 지나던 이가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적이는 골목을 비집고 찬찬하 둘러보며 익숙한 솜씨로 흥정을 하였다. 허드레 작업복을 벗고 변신을 한 엄마는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치켜 올리고 사뿐사뿐 걷는 자태는 마치 한 마리 학 같았다.삼바우라 불리는 떠돌이거지가 있었다. 아저씨는 비오는 날 짚으로 엮은 도롱이를 걸치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얼룩무늬 국방색야상을 입었다. 마을의 잔치나 상가 집이 생기면 어김없이 출몰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으레 맛난 음식들을 내주었다. 걸쭉한 노래며 춤사위로 사람을 불러 모았던 그는 각설이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다. 식당은 덩달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삼바우가 등장함으로써 장날은 비로소 흥이 돋워졌고 장날다워졌다. 엄마는 아버지 걱정으로 안절부절 하였다. 남동생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송아지 한 마리를 몰고 장에 간 아버지는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진 평소 술버릇이 좀 과한 이력이 있었다. 엄마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디를 헤맸는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아버지는 날이 희끄무레 밝아서야 돌아왔다. 다그치는 엄마를 향해 횡설수설하며 나동그라졌다. 엄마는 아버지 생채기를 살피는 대신 주머니를 뒤지고 몸을 더듬었다. “어딨노? 어딨능교 말이다!”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였다. “아이구, 이일을 우짜노!” 풀썩 주저앉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허생원은 떠돌이 장돌뱅이다. 어느 날, 다른 장으로 옮겨가던 중 동이를 만나 함께 가게 된다.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것도 장날을 통해서이다. 신경림의 ‘파장’도 장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날엔 못난 사람들이 서로 얼굴만 봐도 정겨운 장소인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도 시장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사람들의 체온이 물씬 느껴지던 장터는 산업화로 사라지거나 쇠퇴했다. 요즘은 대형마트에 마저 밀려나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잘 포장되고 획일화된 상품, 편리함 때문에 자꾸만 시장을 외면한다. 오일장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잡다한 물건들과 땀 냄새와 악다구니와 신명들을 날것으로 만날 수 있는 오일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각설이는 엿 판돈을 허리에 꽂고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구경꾼들을 즐겁게 한다. 답례처럼 둘러선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흔쾌히 지폐를 꺼낸다. 시래기 한 단과 무, 배추 등을 담은 장바구니가 꽤 무겁다. 각설이타령을 뒤로 하며 오일장을 나선다. 언뜻 골목길 모퉁이를 도롱이 걸친 삼바우 아저씨가 돌아나가고 있다.

2019-07-21

클로버, 다모작 도전장 내밀다

강길수 수필가회색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나무와 풀들을 스캔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만든 녹지(綠地)다. 따가울 여름 햇볕을 향해 풀, 나무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주인공은, 하얀 꽃을 내민 클로버다. 해님에게 잘 보이려 함인가. 한 톨의 햇빛이라도 더 받으려는 몸부림일까.장마철인데도 클로버는 올해 들어 두 번째 꽃피우기를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벌써 네댓 번째인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소나무 아래서 월동한 클로버들은, 이월부터 한두 송이씩 줄곧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지난 봄엔 이상할 정도로 알차고, 다부지고, 통통한 꽃들을 촘촘히 많이도 피워냈었다. 그 모습이 결전을 앞둔 선수들처럼 결연해 보였고, 무명의 선수가 도전장을 내미는 초조함도 깃들어 보였다.지금 피우는 꽃은, 지난봄보다는 약하고 순하여 예전에 보아왔던 그 모습이다. 마음이 찜찜하여 백과사전에 ‘클로버’를 찾아보았다. 개화기가 육, 칠월이란다. 그러니 지금 피는 꽃이 정상(正常)이고, 이월부터 봄까지 피웠던 꽃은 비정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불러온 자연현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클로버의 도전장 안에 서려 있을 것이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이 클로버들과 이웃하며 출퇴근한 지가 벌써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그간, 클로버가 녹지에서 차지한 영역이 어림잡아 열 배도 더 커져 보인다. 처음엔 보도 옆에 보도블록 네댓 장 정도의 넓이로 두세 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녹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미꽃이 계절을 잊고 피어난다든가, 다른 꽃들도 꽃피는 시기를 모르고 피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클로버는 왜 한해에 저토록 여러 번 꽃을 피울까. 자기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라도 느끼는가. 유럽이 원산지인 풀 클로버는 씨앗 번식 외에,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며 개체를 늘리며 살기에 적응력이 강하다. 그런 풀이 꽃을 여러 번 피우는 이유가 뭘까. 다모작(多毛作)에 목숨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하긴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다모작인지도 모른다. 씨앗을 많이 퍼뜨려 놓아야, 그중 일부라도 변화된 세상에 살아남을 게 아닌가.외유내강으로 사는 저 하얀 클로버꽃은,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 클로버가 내미는 ‘다모작 도전장’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살아야 다른 그 무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체제와 이념, 국가와 민족, 종교와 신념 같은 것들이 뭘까. 그것들이 무슨 대수라고 거기에 매달려 아웅다웅하며, 지구촌 모든 생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등한시하고 외면할까.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설파했다.어찌 보면, 생명체 중에 인간이 가장 무디고 멍청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구촌의 유일한 이성적 존재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목숨 걸린 기후변화에는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사니 말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패권과 금력 쟁탈에 빠져, 이성을 마비시킨 존재가 현대인이란 말인가.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이후, ‘리우선언’이나 ‘교도의정서’같은 기후변화를 다룬 국제 협약이 있었으나. 피부에 와닿는 실천 현장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최근 미국 국토 넓이의 땅에 일조(一兆)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를 보았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크라우더연구소 프랑스와 바스탱 박사팀이 주인공이다. 기존 도시나 농경지를 그대로 두고, 어디에 얼마의 숲을 새로 조성 가능한지에 대한 계량화 연구다. 결과, 숲 가꾸기를 통해 지구촌에 삼분의 일 가량의 숲을 늘릴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되면, 산업화 등 인간에 의해 대기에 오염된 삼천억톤에 달하는 탄산가스 중, 이천오십억톤을 늘어난 나무가 흡수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나무나 풀이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공기 중 탄산가스를 흡수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환경의 위험을 인지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구촌은 발 벗고 나서지를 않았다. 이런 여건 하에 숲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계량화하여, 달성 가능한 목표로 제시한 연구가 발표된 일은 고무적이다. 지구온난화와 생태환경의 황폐화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모든 생명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지구온난화로 머지않아 북극 얼음이 다 녹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온난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다. 풀 클로버는 기후변화에 곧바로 도전하여 저렇게 다모작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겨울 끝자락부터 시작된 클로버의 하얀 꽃 다모작 도전장은 어쩌면 인간에게 내민 경고장인지도 모른다. 이 미증유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자업자득이니 꼭 결자해지하라고. 그리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2019-07-14

새참

송귀연 수필가다시마를 씻고 멸치를 다듬는다. 부추나물무침, 애호박볶음, 계란지단, 오이채, 김치, 이렇게 다섯 가지로 고명을 정했다. 맛있게 차려내야지 다짐을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에어컨을 켜놓은 부엌이 한증막처럼 더워 연신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혼자서 허둥대다보니 벌써 오전 새참시간이 코앞이다.장마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부랴부랴 감자수확을 하게 되었다. 과수(果樹) 사이 노는 땅에 심은 감자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막상 급하게 수확을 하려들다 보니 손이 모자랐다. 겨우 세 명 정도 일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농한 우린 둘 다 농사일이 서툴렀다. 체계적 일의 순서를 몰라 우왕좌왕이다. 하늘은 곧 비라도 뿌릴 것처럼 먹장구름을 안고 있다. 밖에서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일꾼들이 주인을 부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옛날 엄마는 일찌감치 아침 설거지를 끝내면서 미리 국수물을 우려내놓고 일터로 향했다. 그러고는 새참 때가 됐다 싶으면 어느새 장만했는지 정갈하게 만든 국수를 차려 내놨다. 호박볶음과 부추나물무침 정도의 고명을 얹어 내놓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여남은 명도 넘는 사람들의 새참을 준비하는 엄마의 몸놀림은 민첩했지만 부산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국수는 코를 빠트리며 요란하기만 했지 결코 그 맛을 비교할 바 못된다.내가 살던 고향에는 들녘을 가로질러 기찻길이 있었다. 대체로 새참 먹을 시간쯤에 기차가 지나갔다. 시계의 알람처럼 산모퉁이 너머에서 기차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어, 배가 출출하네. 새참 먹고 하세”라며 일꾼들을 불렀다. 품앗이 온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미루나무 아래 논둑에 걸터앉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을 쪽에서 엄마가 새참을 이고 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도 새참을 생각할라치면 빠-앙! 하고 기적소리가 들려온다.김홍도의 그림 중에 ‘새참’이라는 풍속화가 있다. 가히 더운 여름이었는지 열 명의 사람들이 윗도리를 벗다시피 하고 모여 있다. 앞섶을 풀어헤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이며, 큰 밥그릇을 든 아이, 삿부채와 술병을 든 사람, 사람들이 밥 먹는 모양을 저만치 떨어져 쳐다보고 있는 개까지 등장한다. 아마도 농사일을 하고 어데 논둑에 앉아 새참을 먹는 모습을 그렸지 않나 싶다. 어릴 적 농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정겹고 낯익은 풍경이다. 새참을 먹기 전엔 항상 고수레를 했다.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올해농사 풍년들게 해달라고 기원을 했다. 고수레는 음식을 먹기 전 첫 숟가락의 음식을 떠서 지신이나 수신, 또는 산신에게 바치던 제의(祭儀)의 습속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수레를 한 음식은 근처의 새와 벌레가 먹게 될 것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인정을 나누었던 그때가 지금보다 풍요로웠다. 새참 땐 모두 논두렁으로 모여 들었다. 푸짐하게 여분을 마련한 새참은 넉넉한 인심을 나누었다. 거나하게 막걸리 한잔 들어가면 광배엄마는 육자배기를 한가락 구성지게 뽑곤 했다. 막걸리가 과해진 만석이 아저씨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한나절 단잠에 빠졌다. 헤벌쭉한 입가에 파리들이 앉았지만 개의치 않았다.요즘은 거의 집에서 새참을 만들지 않는다. 아낙들이 양푼을 이고 걸어가는 대신 철가방을 매단 오토바이들이 쌩쌩 들길을 내달리는 광경을 자주 접하게 된다. 품앗이를 하며 서로 일손을 도우고 둘러앉아 농사정보도 함께 나누는 광경들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새참이 주는 고유의 정서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두 번의 새참을 장만하랴, 감자를 캐랴, 정신없이 하다 보니 감자들은 크고 작은 박스에 잘 갈무리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누우니 팔다리며 허리가 욱신거리고 고단함이 온 몸으로 밀려든다. 다행히 장마는 조금 늦게 온다는 예보다. 마당에선 쓰르라미가 울고 고라니들 짝 찾는 소리가 이 산 저 산에서 들려온다. 낮에 장만했던 형형색색의 고명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르르 감자이랑같은 눈꺼풀이 닫힌다.

2019-07-10

수국, 변심하다

김순희 수필가이윽고 노란색이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침 햇살이 수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꽃은 평생 동안 한 색깔을 고집하는데, 필 때부터 지기까지 수국은 햇살과 숱한 밀어를 주고받으며 색깔을 바꾸었다.삼촌은 수국을 즐겨 그렸다. 거실 벽은 늘 삼촌의 화랑이었고 요즘에는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내가 감탄하자 삼촌은 일 년 전에 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한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화사하게 벙싯거리는 수국이 화면 가득 피어있어서 보는 내가 다 환해지는데 왜 실패작이냐고 물었다. 말 수가 많지 않은 삼촌은 작품의 제목은 ‘변심’이라며 그동안 그림 속에서 일어난 일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수국이 한창인 여름에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 먼저 꽃송이를 그릴 부분에 마스킹 고무액을 칠하는데, 그래야 물감색이 종이에 곱게 먹는다. 그 해 여름이 어찌나 뜨겁던지 잠시 그림을 손에서 놓은 사이에 마스킹 액이 굳었다. 늦어도 한 달 안에 벗겨내야 하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수국의 꽃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했다. 벽에 걸린 지 6개월이 지나자 수국은 살아있는 것처럼 절정의 보랏빛에서 꽃이 질 때처럼 노랗게 변해가더란다. 마치 그림 제목에 맞추려는 듯.쪽지를 수십 개 접어 소복이 뭉쳐놓은듯한 봉오리, 나는 쪽지에 곱게 접힌 비밀을 하나씩 펴 보고 싶어졌다. 거기에는 ‘풀’이 아니라 ‘나무’라고 불리는 이유와 수국의 내력이 꽃들의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것 같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래서 더 궁금한 꽃들만의 정서가 ‘내 속마음을 읽어보라’며 나를 애타게 할지 모른다. 그런 이끌림에 나는 시장에 나가 참하게 보이는 수국 한 그루를 데려왔다.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 먼저 베란다로 나가 안부를 살피게 되고, 밤새 오종종 붙어 자다가 햇빛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한 치씩 커갈 때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식물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땅의 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느라 수국은 아직 풀에 가깝다. 흙의 양분을 한 모금이라도 더 찾으려고 뿌리를 잘게 뻗는다. 발끝에서부터 색을 흠뻑 빨아올려 연둣빛 꽃을 부풀린다. 좁쌀 알갱이 같은 모습으로 입을 앙다문 채 한 달을 버틴다. 연륜을 쌓고 생각이 깊어지면 풀도 나이테를 품을 수 있다고 믿기에 수국은 피어나기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무르익는 것처럼 말이다.창밖에 여름 기운이 완연해지자 수국이 속내를 토해냈다. 연두 알갱이에서 어린 고양이의 귀 같은 꽃잎을 내밀었다. 수줍은듯 하나를 펴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퐁퐁’ 소리가 났다. 네 귀를 다 열었나싶던 날부터 연둣빛 꽃잎 끝이 파리해졌다. 끝에서부터 시작한 푸름이 서서히 스며들어 봉오리 전체에 번졌다. 곧 푸른 꽃불이 인다. 꽃불을 진화하려는 듯 보슬비가 더해지자, 이 때 비로소 수국은 촉촉해지며 진정한 수국이 된다.한 계절 마주하며 수국을 알았다. 수국은 빛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토양이 중성이면 백색 꽃이 피고, 산성이면 청색 꽃이 피고,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이 핀다. 흰 꽃의 수국에 백반을 녹인 물을 뿌려주면 청색으로 변하고, 잿물이나 석회를 뿌려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는 식물학자의 말이지만, 오래도록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수국의 표정과 내면을 이해한다면 실험 결과만으로 그 이유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어느새 나도 나이테가 겹겹이다. 연둣빛 나이 십대에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하지만 갈맷빛 더욱 짙어가는 요즘에는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러 수목원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설익은 나이에는 변심이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자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내고 싶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변심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눈이 무르익는 과정이다.

2019-07-03

혼밥

강길수 수필가“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잠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아내에게 대답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부터 한 주에 두세 번 아침에 혼밥을 해야 된다는 것이 싫은 마음도 인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다.지난달, 웬일인지 아내가 처음으로 시니어클럽에 아침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선발될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했다. 다행히, 걸어서 반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등교시간 횡단보도 안전도우미로 선발되었다. 오랜만에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스스로 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속으로 신이 난 모습이다. 좋은 기운이 향기처럼 퍼져 오는 것만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았다.올봄 작은며느리가 오랜 기간 애쓰고, 기도하고, 기다린 끝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았다. 온 가족에게 내려온 하늘의 은총이기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곧 두 돌을 앞둔 큰며느리가 낳은 개구쟁이 손자까지 두 손주를 두게 되었다. 그러니 아내는 요즈음 더 기뻐 보인다. 자기가 번 돈으로, 손자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가 보다. 아내는 아침형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단다. 반면 나는 학교나 군대, 직장의 사정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사람으로 변모하며 살아왔다. 요즈음은 출근이 늦어 저녁형 사람으로 산다. 인터넷 서핑이나 글 관련 자료들을 찾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늦는 날은 심야 두세 시경에 잘 때도 있다. 그러니 아내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아침밥상을 식탁에 차려놓고 나서며, 아내는 내게 이것저것 어떻게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다. 주방 소리에 새벽마다 선잠을 자므로, 건성으로 대답한다. 습관이 되어 일어나는 시각은 거의 같다. 밥을 푸고, 국을 떠 혼밥을 시작한다. 아내가 추가로 챙겨 먹으라는 내용은 잊거나, 기억나도 개의치 않는다. 혼밥을 마치면 가능한 한 설거지를 하지만, 시간이 늦는 날은 싱크대에 그냥 둔다. 한 주간에 두세 번 혼밥을 하기에, 혼밥족(族)이나 혼밥러(er)라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것도 차려놓은 밥상을 먹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돌아보면, 내 혼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농번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떤 날은 어른들이 다 들에 가고 없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었다. 바로 혼밥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는 자주 혼밥을 하게 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는 자취를 했으니, 친구와 함께 한 기간을 빼면 모두가 혼밥을 한 기간이 된다. 이때는 혼밥뿐 아니라 혼국수, 혼수제비도 한 적이 있다.‘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다. 인간의 혼밥 역사는 원시시대부터라 싶다. 공동체 생활 속에도,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후 모든 세대에 혼밥은 있었을 테니,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데, 왜 근년에 와서 우리 사회는 혼밥, 혼밥족, 혼밥러(er), 프로혼밥러(professional혼밥er) 등 그 파생어들이 유행, 이슈화되며 새 문화 트렌드라고 법석을 떨까. 물론,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언론 특히, 티브이 ‘먹방’의 영향이 커 보인다.약삭빠른 상혼(商魂)은 일본을 벤치마킹하여, 혼밥족을 모으고 나아가 더 양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임은 오랜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란 뜻이다. 따라서 혼밥 문화가 남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자칫 국가사회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은 이런 관점에서 혼밥 문화를 주시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내일 아침도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이, 내 혼밥을 기다릴 것이다.

2019-06-26

홑눈과 겹눈

송귀연수필가대낮인데도 다람쥐쳇바퀴 돌듯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매번 딸네 집을 찾을 때마다 길눈도장 확실히 찍어둬야지 하지만 생각은 그때 뿐, 또 이 모양새다. 홑눈의 길치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잠자리는 겹눈에 육각형처럼 생긴 수만 개의 낱눈이 붙어 있다. 이 낱눈들이 렌즈 역할을 하여 360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어릴 적, 울타리 끝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숨죽이며 다가갔지만 매번 놓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나비의 겹눈은 넓은 범위를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색깔구분이 가능한 겹눈은 어떤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유효하다 하겠다.어릴 적 엄마는 사물에 대한 시계가 단순했던 것 같다. 슈퍼우먼 같은 엄마였지만 한 가지 못마땅한 게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원하는 일이라 해도 당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끝까지 반대했다. 특히 남존여비로 굳어진 교육관은 딸들의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와는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 여파로 아들 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딸들은 평생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집안의 큰일이나 제사 때면 꼼꼼하게 처리하느라 일이 끝날 즈음이면 아예 파김치가 돼 버린다. 쇼핑을 할 때도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대체로 한 가지 디자인에 꽂히기 일쑤이다. 성질이 급한 탓도 있겠지만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옷장엔 판박이처럼 비슷한 옷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어느새 단편적인 엄마를 대물림하고 있었다.원시시대엔 남자는 사냥을, 여자는 집안에서 요리를 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가족의 식량을 구해야 하는 남자는 당연히 시야가 넓어야 했고 고도의 종합적 판단을 필요로 했다. 반면 여자는 집안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시계가 좁아졌다. 자연스럽게 사고가 단편적으로 굳어졌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성적이기보다 오래된 생활환경의 영향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젊은 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했다. 남편과 자식이 남보다 앞서길 바랐으며 부와 명예마저 거머쥐고 싶어 했다. 수천수만 개의 낱눈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의 것들은 가지려하면 저만치 달아났고 나는 또 그걸 허겁지겁 좇아갔다. 욕망의 겹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조선시대 화가인 최북은 사물에 대한 경도(傾倒)를 경계하여 자신의 한쪽 눈을 송곳으로 찔러버렸다. 시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림 한가지만으로 일생을 살고자 했던 때문이었다. 샤갈의 그림은 노후로 갈수록 유아적이 되었고 사물을 단순화시켰다. ‘크게 교묘(巧妙)한 것은 서툰 것과 같다’는 말로 졸미(拙美)를 추구한 추사 역시 한 가지 정신세계에 집중한 인물이다. 이들이 세상의 권력이나 부를 지향하였다면 이와 같은 시대적인물의 탄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복잡했던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 들어와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삶을 산지도 어언 수년째이다. 식료품을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시골생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불편함에 익숙해졌다. 복잡하기만 했던 수많은 낱눈 같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별을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은 천체를 정밀하게 보여준다. 초점을 단순화 또는 집중하는 원리로 먼 곳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홑눈을 가진 거미는 동물처럼 정확한 상을 맺지는 않지만 세밀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훨씬 뛰어나다. 모든 것을 다 보리라는 욕망을 버리고 단 하나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어쩔 수 없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만 매번 왜 그러우?” 핀잔의 목소리가 휴대폰 저쪽에서 들려온다. 어쩌랴! 홑눈의 유전자를 가졌는데. 아파트 단지 위로 키클롭스의 눈 같은 해가 선명하게 떠 있다.

2019-06-19

은혼식

김순희 수필가남편은 길치다. 포항 토박이면서 육거리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일냉면도 못 찾는다. 갈 때마다 헷갈려한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며 내게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길치들이 한 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다. 골목을 가다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면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 가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 되지 하겠지만 길치들은 보고도 해독을 못 해 길을 잘 못 접어들기 일쑤다.반면에 나는 길을 잘 찾는다. 아니 첨부터 잘 찾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길치 남편 옆에서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지간한 길은 혼자서 잘도 다닌다. 새 차를 살 때에 꼭 필요한 사양에 내비게이션은 넣지 않자 세일즈맨도 의아해했다.25년 전, 동네 어귀의 용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억지춘향처럼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 차 한 잔만 마시고 와야지 하며 갔다가 말이 잘 통해 저녁까지 먹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후식으로 칵테일을 마시며, 내 손에 낀 세 개의 링 반지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만나던 남자들이 헤어질 때 하나씩 해 준거라며 웃어주었다. 이 정도면 놀라 자빠졌겠지 했지만 며칠 뒤 애프터 신청이 왔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과 나는 한 가지 일을 두고도 다른 생각을 했었다. 선 보기 싫어 30분 늦게 나갔지만 여자는 원래 조금씩 늦게 오는 것이라 여겼단다.두 번째 만남에 친구를 네 명이나 데리고 나가 바가지를 씌웠다. 정 떨어져 도망가라고 한 일인데 남편은 자신이 맘에 들어 친구까지 소개시켜 준다며 좋았단다. 신명나서 노래방까지 따라와 취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집까지 데려다 줬다.다음 날 더 만날까말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사람 괜찮다며 더 만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 우린 부부가 되었다.영화 ‘그린북’에 글에 대해 문외한이던 운전기사가 시인이 되는 방법이 나온다. 공연 여행을 하며 흑인 피아니스트가 이탈리아 출신 백인 운전자에게 편지를 불러줬다. 그러다 두 달쯤 되니 기사가 혼자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니, 감 잡았다고 했다. 감 잡은 첫 문장은 이랬다. “디어, 여보. 당신은 가끔 집 같아. 노란 불이 켜져 있고 행복한 가족들이 웃고 있는 그런 집말이야.”피아니스트는 감 잡은 거 맞다며 웃었다. 두 달 만에 주먹 쓰는 건달이 시인이 되었다.시인이 되는 방법과 행복한 결혼생활 하는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닮아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다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습관도 식성도 얼굴도 닮아 가는 것이다. 25년 동안 안 맞는 부분은 서로 맞춰가며 익숙해졌다. 살면서 느낀 거지만 모든 게 꼭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달라서 더 편한 것도 있다. 둘 다 카레이서인 것보다 길치남편에 길눈 밝은 아내가 더 궁합이 맞다. 남편은 물김치가 풋내가 나는 걸 좋아해 맛있게 익기 시작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신김치는 내 몫이다. 난 적당히 익어서 채소에 힘이 빠진 김치가 입에 달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나는 목과 날개를 고르고 남은 모든 부위는 남편 차지다. 술을 좋아해 늘 즐기는 남편에게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재미없는 술 상대이기 보다 술값이 덜 들어 좋단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할 일은 없다.은혼식에는 25년 동안의 무사한 결혼을 기념하며 은으로 된 물건을 주고받는다. 만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남편은 올 해가 25주년인 줄 모르고 있다. 좋은 남편으로 가는 길을 거의 다 와서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는 것 같다.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주며 엎드려 절을 받을까 말까 며칠 고민해야겠다.

2019-06-12

오매, 보고 싶어요

강길수 수필가오매!*죄송해요. 오매 하늘나라 가신 지가 올해로 두 번째 강산이 변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오매 생각이 나면 내년이거니 하며 지냈는데, 어떤 일로 조문록을 보다가 올 오월 열 이튿날이 스무 번째 오매 기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얼마나 무심히 살았으면 열 주기는 물론, 스무 주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을까요. 매년 기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도리 다했다고 여겼지요. 뒤돌아보니 결혼 후 오매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뒤에도 제 살기에 매몰되어서 ‘오매!’라고 이름 한번 정답게 불러드리지 않은 걸요. 올봄은 유달리 꽃들이 앞 다투어 핍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고, 아름다운 봄꽃들입니다. 오월엔 이팝꽃, 아카시아꽃, 장미꽃, 찔레꽃, 딸기꽃, 금계국이 흐드러집니다. 더디어 인동덩굴에도 꽃이 핍니다. 금은화(金銀花) 말입니다. 오매 만난 듯 반갑습니다. 가슴에 스며드는 그 향기가 바로, 오매 내음이기 때문이지요. 동네 어귀 둔덕이나 거랑 가 돌 더미에 산딸기나무, 복분자나무, 찔레나무 같은 벗들과 잘도 어우러져 살면서 봄, 여름 내내 꽃향기 온 세상에 선물했었지요. 오매가 물자배기 이고 오시거나, 저녁 찬거리 다래끼에 메고 들어서실 때 나던 땀내가 곧, 금은화 향기였음을 세월 흐른 후에야 저는 알았습니다.오매와 인동은 닮았습니다. 아니, 하나입니다. 겨울철 휘몰아치는 높바람에 얼굴 퍼렇게 얼면서, 추위를 이겨내고야 마는 인동의 모습이 바로 오매의 삶이었으니까요. 낳으신 일곱 분신들 중 셋을 어릴 때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사실만으로도, 오매 가슴은 퍼렇게 얼다 못해 검게 굳어버렸을 테지요. 시부모 일찍 여윈 뒤, 큰동서 먼저 떠나보내고 시동생 셋을 건사하여 분가시켰지요. 남편은 동장 등 바깥일 하느라, 집안일에 겉돌다시피 했잖아요. 그런데도 어려움을 내색한다든가, 동서나 시동생들과 말다툼 한 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매의 한 해가 오롯이 한겨울이었으리라는 걸, 오랜 시간이 제게 가르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오매는 우리 집 숨은 보호자셨습니다.오매!….실로 얼마 만에 불러보는 어머님의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날 우리 동기들은 어머님을 이렇게 불렀었지요. 그땐, 오매가 진짜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온 동네 아이들이 자기 어머님을 그렇게 불렀으니, 어머님들은 이름이 다 같은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불러 봐도, ‘오매!’가 이름보다 더 정겨운 것은 그 때문일까요. ‘그래, 고맙다. 나도 오매가 좋다!’고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역시 오매이십니다. 오매 살아계실 때는, 타향살이 핑계로 한 번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않았습니다.사과나무 적과작업 때 떨어지며 생긴 지병악화로, 저희 집에서 삼주 가량 계셨지요. 그때 당신 뒤처리는 끝까지 스스로 하시려 했습니다. 기력이 핍진하여 그 일을 며느리에게 처음 맡길 때에, 변모하시던 오매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절망과 부끄러움, 고마움과 안도감, 회한 등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복합 미묘한 마음이 그려진 초상화였었지요. ‘자괴감’이란 단어가 뼈 속까지 스미는 순간이었습니다. ‘너희들 탈 없이 살면 된다’는 오매 말씀을 도피처로 삼아, 늘 도망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명색이 글을 쓴다며, 오매에 대해 쓴 것은 몇 편이 고작인걸요. 다른 집은 증손까지 본 이들도 많은데, 오매는 두 손주 장가가는 것도 못 보고 떠나셨습니다.이 불효와 무례를 어찌해야 할까요. 한 가지 위안 삼는 것은, 수녀님을 집에 모셔와 ‘마리아’란 이름으로 비상세례를 받게 해 드린 일입니다. 한 달도 못되어 돌아가실 때, ‘오매! 마리아, 부디 밝은 곳으로 가요. 어쨌든지 밝은 나라로 가세요!…’ 라고 제가 귀에다 속삭여 드렸듯이, 오매는 밝은 빛 가득한 하늘나라에 계신 거지요. 오매 가신 오월의 땅에 봄꽃들이 저리도 아름답고, 금은화 향기 짙으니 말입니다. 앞으론 자주 ‘오매!’ 하고 부를게요. 오매!,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오매=‘어머니’의 방언(경상)

2019-05-29

미주구리를 쓰다

송귀연수필가남편이 좋아하는 밥식혜를 담으려고 미주구리를 사왔다. 미주구리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로 물가자미의 경상도사투리이다. 미주구리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은 그 말이 주는 날 것의 어감 때문일 것이다. 밥식혜는 주로 경북 동해안지방에서 접할 수 있다. 생선과 밥을 적당히 섞어 삭혀서 만드는데 가자미와 오징어, 고둥을 사용하며 그중 최고로 치는 게 미주구리 밥식혜이다.미주구리 밥식혜를 만난 건 어느 식당에서였다. 사실 접시에 담긴 밥식혜의 형태는 먹다 남은 밥처럼 이지러진 밥알이 다른 찬들과 섞여 있는 모습에 영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고춧가루 범벅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매워 진땀까지 흘렀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한 점 먹어보았다. 그 순간 최초의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새콤달콤하면서 알싸한 맛, 적당히 발효되어 쫄깃해진 생선과 아삭거리는 무의 식감은 담백하고 신선했다.어릴 적 아버지는 미주구리 생선회를 즐겨먹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회가 먹고 싶을 때면 유난히 장날을 손꼽았다. 시장가거든 잊지 말고 꼭 사오라며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 회를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키곤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며 미역과 함께 버무린 회를 한 입 가득 먹는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군침이 돌았다. 가자미는 한자로 비목어(比目魚)라 하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서는 첩류라고 했다. 미주구리는 수심 이백 미터 깊이의 모래나 펄로 된 해저에 서식한다. 우리나라 연안전역에서 잡히지만 동해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것일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자미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허약함을 보강하고 기력을 북돋아주는 생선이라고 한다.미주구리 밥식혜는 가을에 담으면 그 맛이 한결 더 난다. 가을엔 육질이 쫀득할 뿐 아니라 제 철인 가을무를 넣으면 단단해서 식혜가 무르지 않고 찰지기 때문이다. 깨끗이 손질한 미주구리를 소금과 엿기름을 뿌려 하루정도 발효시켜 둔다. 잘 발효되었으면 고슬고슬한 밥과 소금에 절인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 엿기름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사나흘 더 묵히면 맛있는 밥 식혜가 된다.미주구리는 가자미보다 기실 품위가 떨어지고 가격도 싸다. 외모로만 천한 취급을 당한다. 저라고 뭐 자존심이 없겠는가? 한번쯤 성골이나 진골인 광어, 도다리, 서대를 꿈꿔 본적은 없겠는가? 그러나 결코 헛된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자리를 일탈한 적이 없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문장(文)이 내용(質)보다 승하면 사치스럽고 질이 문보다 승하면 거칠다는 뜻이다. 미주구리는 질이 문보다 승한 생선이다. 사치스러운 형식보다 내면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친서민적이다.물이라는 접두사는 기준치보다 모자라거나 얕잡아보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물박달나무, 물봉숭아, 물양지꽃처럼 사물과 비교하여 비슷하지만 정통이 아닌 것을 일컫는다. 물질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성공한 사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고, 사람들은 주류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고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소수의 주류가 아니고 다수의 비주류이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일견 힘이 없고 나약해보이지만 그것들이 뭉쳤을 때는 특별함을 뛰어넘는다. 물가자미야말로 갑남을녀이고 장삼이사이며 필부필부가 아닐까. 며칠이 지나자 밥식혜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새하얀 쟁반에 정성스레 퍼 담는다. 식탁주변을 오락가락 하던 남편이 얼른 의자를 당겨 앉는다. 입안으로 한술 밀어 넣기 바쁘게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는 “임금의 수라상이 이만할까?”라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곰삭힌 미주구리 한 점을 집어 들자 동해의 깊고 푸른 파도소리가 쏴아! 하고 밀려온다.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