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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텅 빈 들녘

▲ 강길수수필가텅 빈 들녘이 사람을 오라 한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된바람 기꺼이 품으며 사람을 오라 손짓한다. 아직 회수되지 못한 볏짚두루마리들만이 하얗게 혹은, 푸르게 동그마니 서서 들녘을 지켜보고 있다. 된바람의 냉기가 두루마리를 에워싼다. 저 두루마리마저 떠나고 나면, 들녘은 망망대해보다 더 절박하게 텅 비리라. 두루마리에 갇힌 볏짚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한 생 푸지게 살아 풍년을 이루어 냈으니, 이제 어디로 가 무엇이 된들 대수이랴 할까. 내 분신 쌀이 사람과 동물을 먹여 살리니, 그것으로 족하다 할까. 알곡 벼 다 털리고 몸뚱이마저 사료로 쓰이려 이리 둘둘 말려 세워졌으니, 사람은 참 욕심쟁이라고 원망하며 욕할까. 어차피 사람이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둬들였는데, 케 세라 세라나 부르지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까.하늬바람이 된바람에 밀리어 떠나며, 초겨울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지난 한가을, 푸진 오곡백과 다 멀리하고 하늬바람 떠나간다네.흩날리는 낙엽 지르밟고, 앙상한 가지사이 비집고 떠나간다네….”하늬바람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저 남산 골짜기에 숨을까. 남산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쉴까. 언덕아래 넓은 들판에 퍼질까. 거긴들 된바람이 안 따라 갈까. 그래. 남으로, 남으로 더 가야해. 따사한 마파람이 맞아줄 남쪽나라로 가야 돼. 그 곳까지 설마 된바람이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하늬바람마저 떠나고 나면, 들녘은 바야흐로 자신을 온전히 비우리라. 일찍 벤 벼 포기에 파릇파릇 돋아나, 늦가을 들녘을 생기(生氣)로 비추던 벼 싹도 칼바람의 서슬에 산화(散華)되리라. 월동하는 생물들도 땅 속에서 혹은, 제 집에서 겨울잠에 빠지리라. 들녘은 자신을 텅 비웠기에, 그 비움이 가득 찬 모습으로 화(化)할 것이다. 그리고 하얀 눈을 기다리리라. 이윽고 밤새 눈이 소록소록 들녘을 채우고 나면, 비로소 비움이 가득 찬 새하얀 새아침 들녘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사람이 자연에서 텅 비었기에 오히려, 가득 찬 기막힌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은 행복이다. 사람이 바다가 그리워 찾는다든가, 하늘을 동경하여 쳐다보고, 산봉우리에 즐겨 오르는 모습은 무엇을 말해줄까. 바로 텅 빈 세상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마음을 원래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사람이리라.온 나라가 욕심으로 가득 차 보인다. 나와 너, 내편과 네 편, 내 고장과 네 고장, 젊은이와 늙은이, 근로자와 사용자, 남자와 여자, 또 무엇, 무엇으로 나뉘어 자기편의 욕심만 부리고 있다싶다. 국가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 곧,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통해 나라를 통합해야할 책무가 집권정부에게 주어졌다고 본다. 그런데 침묵해온 서민인 내 눈에 보인 정부여당이 해온 일은, 그들만의 편향된 시각으로 서민이 보는 사회저변의 진짜적폐는 그냥 두었다. 반면, 정치적 반대세력 제거로 보이는 적폐청산과, 안보상 매우 우려스런 남북관계 수립이란 욕심으로 가득 차 보인다. 생활고와 안보불안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절규를 받아들일 마음공간이 없다싶다.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지 몰라,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불안하다. 서민들은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다.아무리 정치가 다수승리원리로 작동된다 해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천부적 지각능력 곧, 직관적 느낌이 있다. 권력층의 행태를 국민들은 알게모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침묵하는 국민들이 어떻게, 무슨 마음으로 사는지 살피고 돌보는 게 바른 정치 즉, 경세제민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여 사람은 특히, 정치인은 겸손할 필요가 있다. 겸손은 바로 텅 빈 들녘과 같은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텅 빈 들녘이다. 텅 빈 들녘엔 무엇이든 심을 수 있듯, 모든 것을 올려놓고 의논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닐까. 텅 빈 초겨울 들녘은 우리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모두가 마음을 비우라고.

2018-12-14

12월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다시 12월이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한다. 무술년 벽두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총이 없던 시절에는 시위를 떠난 화살보다 빠른 것은 없었을 터이니 옛 사람들이 최상급의 속도감을 표현한 말인 셈이다. 삶이 덧없고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은 사람일수록 세월에 대한 감회는 더 절실하게 마련이다.올해 스크랩 해둔 신문을 대강 훑어본다. 매년 이맘때면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의미로 해오는 연례행사다. 중앙지와 지방지와 지방지를 같이 보다보니 사설과 칼럼 등 필요한 기사들만 모아도 한 달이면 적지 않게 쌓인다. 하루 한 편씩 감상평과 함께 실리는 시(詩)를 모아둔 것만도 시집으로 백여 권이 넘는 분량이다. 이사를 할 때도 사과박스로 몇 박스나 되는 신문 스크랩을 신주단지처럼 가지고 왔다. 아마도 다시는 뒤적여 볼 일이 없을텐데 차마 버리지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사회적 활동이 별로 없었던 세월 동안 나는 주로 신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봤다. 시골구석에 묻혀 살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온갖 현상들을 날마다 전해들을 수가 있는 게 신문이었다. 한 가지 사안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과 논리가 있다는 것, 세상을 보는 안목과 균형감각을 기르는 데 신문만큼 유용한 것이 없었다. 자연과 책에서 습득한 정보와 더불어 내 사유와 식견의 바탕이 되어준 것이 신문의 기사였다.인간 사회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사건들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왜곡이나 편견이 없는 인식의 체계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어떤 사건과 현상의 진행과 결말까지를 지켜보는 것으로는 신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 균형감각이다. 어떤 사안이나 사태에 대해서든 편파적이거나 충동적이고 감상적인 대응보다는 원인과 전말을 미루어 헤아려보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질 수가 있게 된 것이다.부문별로 철해놓은 신문 스크랩을 뒤적이며 한 해를 돌아본다. 올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남북문제였다. 지난 2월에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남북 화해 분위기는 두 정상의 판문점 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그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의 트럼프와 유엔은 대북제재를 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오로지 김정은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가 왜 그토록 굴욕과 원성까지를 불사하고 김정은에게 ‘올인’하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김정은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단계에 와서는 당연히 가져야할 의문이다. 트럼프와 유엔의 경제제재에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김정은이 왜 핵은 포기를 못하는 걸까? 핵을 포기하면 모든 제재가 풀리고 경제적 지원이 쏟아져 들어갈 텐데 왜 그걸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친북좌파들은 왜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 걸까?요즘 확증편향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자기의 주장이나 이념을 관철하려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을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좌파 이념의 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노정하고 있는 실상이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정권에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순 없는 일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앎의 근본이라 했거늘 확증편향 무리들은 자신의 무지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파탄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좌로 한껏 기울어졌던 민심이 무게중심을 바로잡아가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018-12-07

사랑하면 보이나니

▲ 김순희 수필가사진을 찍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지금 내가 무엇에 꽂혀있는지 최근의 사진들이 말해준다. 지난 일 년 동안 찍은 것을 보니 오래된 것들이다. 단청이 벗겨진 대웅전의 꽃문살, 오백 년은 거뜬히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의 늦가을, 사진 속에 피사체는 그 곳을 지나간 시간들을 곱씹고 있다. 나를 지나간 시간들이 담긴 사진첩이 책꽂이에 몇 권 끼어 있다. 결혼 전에 찍힌 내 모습이 담긴 앨범은 한 권 뿐이다. 삼촌이 군대에서 휴가 나온 기념으로 찍은 사진 속에 다섯 살의 내가 흑백으로 웃고 있는 것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소풍 간 날 단체 사진 몇 장이 보이다가 바로 졸업식 날로 건너뛴다. 그 사이 칼라가 입혀졌다. 중고등학교도 몇 장뿐이다. 앨범엔 스무 살 넘어서 사진이 대부분이다.휴대폰이 생기면서 사진이 넘쳐난다. 필름 한 롤을 카메라에 넣고 찍을 때는 필름 가격 때문에 한 번 망설이고 인화할 때 또 돈이 드니 셔터를 누르기가 늘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갑게도 디카가 나오면서 그 고민을 필름카메라와 함께 장롱 속에 넣어버렸다.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올해만 해도 몇 개의 앨범을 만들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찍은 많은 사진 중에 골라서 편집을 했다. 며칠 동안 컴퓨터 화면에 매달려서 수백 장의 사진을 추리는 일이 고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인쇄되어 내게 오는 기분이 남달랐다. 아직은 화면보다는 종이가 더 익숙한 세대인지라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있어야 이게 진짜인가 싶다.가만히 보다보니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처음 앨범과 다른 점이 있었다. 예전엔 사진마다 내 경직된 얼굴이 중앙에 떡하니 있었다면 며칠 전 만든 앨범의 절반은 내 모습이 없다. 나머지는 유명한 유적지의 노을과 엽서에 나왔던 경치, 내가 지나온 여정들이 담겨있었다.요즘은 내 모습을 좀처럼 찍지 않는다. 마흔이 넘으면서 내 모습 찍히는 것이 싫다. 살이 쪄서인지 나이 먹은 티가 확 나는 게 사진 속에 여자가 누구인가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얼굴이 찍혔더라도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로 많은 부분을 가려놓았다.사진 찍는 걸 즐기는 나는 소풍을 가면 눈보다 스마트폰에 열심히 담는다. 나무, 길, 바람. 그 속에 있는 내가 가장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내가 거기 있었다는 티는 내야겠기에 그림자로, 때론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늘은 반사경의 나를 사진에 담았다. 그것도 얼굴이 개미만해서 웬만해서는 알아보기 힘들다. 그 것이 나란 것을 나는 안다. 또 같이 간 친구도 알아볼 것이다. 내가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 눈에도 뜨일 것이다.남편과 여행을 하면 나는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찍는 일에 열을 올리는 남편이 있기에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즐기면 된다. 그러다 가끔 “거기 서봐.” 할 때 남편을 향해 웃어주면 된다. 여행에서 돌아와 남편의 카메라에 담긴 나를 보면 대부분 마음에 든다. 다른 누군가가 찍어준 내 모습보다 예쁘다.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시립도서관의 위치와 건물을 알려주는 안내 팸플릿이 있기에 집에 가져왔다. 그것을 넘겨보던 남편이 “당신 여기 나왔네.” 한다. 자세히 보니 대잠도서관 카운터에서 책을 빌리는 사람의 옆모습이 찍혀 있었다. 나였다. 언제 찍힌 것인지 기억에도 없지만 분명 나였다.그 팸플릿을 도서관 사서에게 보여주니 긴가민가 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빽빽이 꽂힌 채로 줄 서 있는 책들이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몇 만 권의 책보다 내게 관심 있는 남편 눈에만 보인 것이다. 초등학교 단체 사진에서도 나를 찾아내는 초능력자이니까 말이다.지인들이 SNS에 올린 내 사진을 마음에 들어해주어서 엽서전을 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진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도 전시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의의를 두었다. 친구들아 놀러와.

2018-11-30

가을노랑나비

▲ 강길수 수필가마르첼리노!늦가을 아침 길. 인도(人道)가 낙엽들의 만남으로 넘쳐난다. 노란 만남, 빨간 만남, 갈색 만남, 보랏빛 만남, 푸르스름한 만남도 있다. 도로 가에 줄지어 사는 가로수들에서 태어나 살던 나뭇잎들. 때가 차자, 홀연히 나무를 떠나 이리저리 흩날리며 가을의 만남 길을 시작하고 있다. 낙엽들을 바라보고 밟기도 하며 걸어가는 내 마음 거울에 수많은 만남이 아롱져 비친다.올 늦가을, 이 거리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낙엽이 압권이다. 예전에 비해 색깔이 너무나 샛노랗고, 수량도 많다. 남쪽하늘에 낮게 뜬 아침 해가 가로수 가지 사이로 비집고 나와 웃고 있다. 따사롭게 볼을 쓰다듬는 햇살이 꼭 어린 날 엄마의 약손이다. 은행나무 가지와 작별한 잎이 가을노랑나비로 보인다. 팔랑팔랑 날아 새로운 곳 찾아 나선다. 어떤 나비는 잔디밭에, 어떤 나비는 보도블록위에, 어떤 나비는 운동장에, 또 어떤 나비는 차들 쌩쌩 다니는 차도에 내려앉는다.마르첼리노.은행나무 가족으로 한생을 마친 가을노랑나비들. 그들은 새 만남의식을 치르려 길을 떠난 게 아닐까. 지난 삶 내력 따라 연노랑, 짙은 노랑, 황록색 등으로 몸 단장한 나비들. 높하늬바람 타고 날아와 새 만남의식을 준비한다. 이제, 나비들은 모든 것을 타자(他者)에 의지할 운명이다. 생명을 반납했기 때문이다. 바람이나 중력 혹은, 사람 손이나 다른 힘에 제 몸을 기꺼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잔디밭에 내려앉은 샛노란 가을나비 하나. 명을 다하고 말라가는 잔디들과 인사하고 어우러지며 지난 한 생을 지워낼 의식을 시작한다. 건물사이를 비집고 여전히 웃고 있는 늦가을 아침 해님이 머리에 손 얹어 축복한다.저 가을노랑나비는 머지않아,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터. 촉촉하게 젖은 날개는 토양 미생물에게 제 몸을 먹이로 바칠 것이다. 미생물은 나비의 몸을 탐하듯 분해하며 먹이와 퇴비 곧, 나무와 잔디의 영양소로 만들 것이다. 봄에 새 잎으로 태어나 여름과 가을을 살면서 열심히 일했던 가을노랑나비. 소임을 마치고 스스로 가지를 떠나 한 생을 마감한다. 가을노랑나비의 새 만남의식은 이렇게 시나브로 완성되는 것이다.마르첼리노.우리에게, 인간에게 아니, 만물에게 만남은 왜 있는 것일까. 헤어졌으므로 만난다는 말인가. 만물이 저마다 존재하고 자연 질서와 우주 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이상,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피할 수도, 따져볼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고 너는 말할 테지. 또, 답도 없을 무익한 생각을 왜 하느냐고 따질 것이고…. 맞아. 네 생각이 현실적이지. 하지만 말이야.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사는 존재인데, 경험적 자연 질서라고 아무 생각이나 느낌도 없이 받아들이며 산다면, 그게 과연 인간일까’ 하는 마음이 떠날 줄을 모르니 어떡하겠나.괜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라던 네 말이, 이 늦가을 아침 흩날리는 가을노랑나비들의 날개짓 따라 함께 피어오른다. 가을바람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든 가을노랑나비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새로운 만남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제 몸이 분해되어 미생물 몸으로, 원소로, 퇴비로, 혹은 새 나무나 잎, 잔디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저 굳셈은 무엇을 말해줄까.마르첼리노!한줄기 센 높하늬바람이 노란 은행나무를 훑고 지나간다. 우수수 가을노랑나비들이 날아오른다. 곁에서 난데없이 ‘우두둑’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본다. 날아오르다 힘 빠진 가을노랑나비들이 세워둔 승용차의 등에 착륙하는 소리다. 저 차는 떠나리라. 하면, 차 등에 올라탄 가을노랑나비들의 운명은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다시 분다. 싸늘한 늦가을 높하늬바람이….

2018-11-23

가을단상(斷想)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감나무는 다른 과실나무에 비해 해거리가 심한 편입니다. 과실을 너무 많이 단 다음 해에는 힘이 부치는지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영 적게 열리는 걸 해거리라 하지요. 그러니까 나무들도 사람처럼 조절이 잘 안 되는 욕심 같은 게 있나 봅니다. 유난히도 감이 많이 열린 해였지요. 어느 하늘 맑은 공일, 산골 우리 집에 학교 선생님 몇 분이 들렀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놀러왔다가 감나무에 감이 하도나 탐스럽고 고와서 와본 거라 했지요. 어머니는 찢어지게 휘늘어진 감나무 가지를 뚝뚝 분질러 선생님들에게 선사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감나무 가지를 하나씩 받아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지요.나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 것을 보고 어른들이 그렇게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 감탄하지 않는 것처럼, 산골소년인 나에게는 해거리 다음 해에 감이 많이 열리는 게 하나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지요.반백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모든 자연이 신기하고 감격스럽습니다. 감나무에 해마다 감이, 밤나무에 밤이 열리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운지요. 지난 가을에 떨어진 씨앗에서 어떻게 코스모스가 다시 싹을 틔우고 자라서 저토록 꽃물결 장관을 이루는 것인지 눈물겹도록 신비롭고 황홀합니다.두메산골 소년시절보다 감성이 더 여리고 풍성해졌다는 얘기가 물론 아니지요. 그때는 그냥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었지요. 그야말로 신토불이(身土不二)로 한몸이었으니 따로 감탄하고 말고가 없었던 거지요. 인생이란 자연에서 부지런히 멀어져 갔다가 나이 들면 수구초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요.# 젊어서는 사람들이 쓴 책을 많이 읽었지만 지천명 이후로는 주로 하느님의 책을 읽습니다. 자연은 왜곡이나 오류가 없는 교과서요 경전이지요.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를 읽고 신록의 함성을 읽습니다. 밤에는 개구리소리를 읽고 낮에는 뻐꾸기소리를 읽지요. 여름날엔 천둥번개와 매미소리, 녹음 우거진 산과 들, 넓고 푸른 바다를 읽습니다. 장마가 장편소설이라면 반짝 지나가는 소나기는 한 편의 콩트지요.이번 가을에도 잠자리와 코스모스를 읽고 억새도 읽습니다. 억새가 얼마나 억세게 사는지, 억새의 노후가 얼마나 허허로운지 다시 한 번 감명 깊게 정독을 합니다. 새로 나온 가을호에도 읽을 거리가 참 많습니다.#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높이 납니다. 아주 까마득한 높이는 아니고 바지랑대 쳐들면 닿을 만큼의 높이입니다. 저만큼의 높이에서 잠자리들이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제 늦가을입니다.잠자리가 곱고 투명한 날개를 갖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가 않습니다. 학배기란 이름의 유충으로 일 년이나 여러 해 동안 물속에 살면서 열 번 이상 탈피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껍질을 찢는 아픔을 여러 번 겪고서야 우화(羽化)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맘때쯤 잠자리들이 나는 것은 먹이활동이나 번식을 위한 비행(飛行)은 아닙니다. 나뭇잎들이 마지막을 단풍으로 불태우듯, 생의 마지막 한 때를 저렇게 유유한 비상(飛翔)으로 장식하는 잠자리들의 군무(群舞)에 눈이 부십니다.# 가을에 취(醉)합니다. 풀꽃에 취하고 단풍에 취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취하려 왔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취하는 계절입니다. 가을 산은 한바탕 풍악(風樂)입니다. 만산홍엽 자진모리로 타오릅니다. 독한 주정(酒精)의 가을볕에 취하지 않은 것은 죽은 것들뿐입니다. “가을볕에 불콰하게 산자락이 취했다// 석양 하늘 지나가던 구름도 취했다// 그 취기 따라가려고 거푸 술잔 기울인다.” -졸시 ‘단풍’

2018-11-16

불국사의 밤

▲ 김순희수필가이 비밀을 비밀로 남겨둘까 망설였다. 좋은 것은 좋은 이에게만은 알려주는 게 맞지 싶어 밤마실을 나갔다. 동행하자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갈 곳이 어딘지 묻지도 않고 얼른 따라 나선다. 밤기운이 쌀쌀하니 두툼한 외투 하나 더 준비하라는 내 말에 친구는 곰돌이가 되어 차에 올라탄다.그 곳에 문 닫기 전 도착해야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유강터널을 지나 천북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목적지가 어디냐 묻는다. 불국사! 가 본 곳이지만 나와 함께 간다니 더 좋다고 웃는다. 기분을 맞출 줄 아는 친구다. 동절기라 다섯 시 반이 지나면 입장불가이지만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든지 오래 구경해도 된다. 불국사 밤나들이는 처음이라 설렌다는 친구, 하지만 몇 번째인 나도 설레긴 마찬가지였다.이 시간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왁자하던 무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썰물이 되어 빠져나갔다. 그나마 먼저 와 있던 외국인 단체 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눈과 귀가 바쁘다.우리가 경내에 들어서니 범영루 처마 끝에 해가 걸렸다. 노을빛에 친구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었다. 환할 때만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에 오니 자기가 알던 그 불국사와 또 다른 모습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을 찰칵. 다보탑과 석가탑은 매일 보는 해거름일 텐데도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뒷걸음치는 해를 아쉬워했다.해가 산을 넘어가도 아직 어둠이 내려앉으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그동안 극락전과 무설전을 돌아본다. 구경꾼들이 사라진 절에는 우리 발자국 소리 뿐이다. 마사토가 내 신발에 사박사박 밀려나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고요할 때나 들을 수 있어서 더 그렇다.무설전 뒤 언덕에 위치한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보폭이 높아서 기다시피 올라야 한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다. 계단 중간쯤 오르는 친구를 불러 세워 또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밑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은 극락전 마당에 달린 오색등이 문 사이로 살짝만 드러나서 색의 조화가 남다르다. 비로전에 비로자나불까지 찾아보니 어스름이 내렸다.돌아와 대웅전 앞 돌계단에 앉아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회랑에 매달린 등의 이름표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수런거린다. 고양이 한 마리 발소리도 없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콩새도 겁 없이 마당에 내려와 먹이를 쪼아 댄다. 토함산을 지나는 바람이 소나무를 비벼 가지에 쏴아~파도를 일으킨다. 때 맞춰 보살님이 기다란 막대를 들고서 건물 모서리마다 등을 켠다. 연꽃모양의 등이 어둠을 재촉했다. 꽃문살 사이로 불빛이 붉게 또 노랗게 새어 나오는 대웅전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다렸다. 하늘의 색이 기와와 같아 질 때를.이제부터 소리를 볼 시간이다. 스님들이 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한 분이 먼저 회랑 난간에 손목시계를 매놓고 시간을 보고 한 분이 북채를 잡은 채 준비 중이다. 두둥~오늘은 6시 20분에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7시였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다. 다섯 분의 스님이 1분씩 돌아가며 북을 친다. 10분 동안 어둠속을 달려가는 북소리를 보았다. 그 뒤를 이어 종이 울렸다. 서른세 번 불국의 밤을 가른다. 종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목어가 단아하게 몸을 떤다. 때 맞춰 운판이 쨍한 소리로 화답한다. 하루 세 번 열리는 불국사의 음악회다.넋을 놓고 보던 친구의 손을 끌어 다시 대웅전 앞에 섰다. 불상 앞에 놓인 작은 종이 울리고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목탁소리와 스님의 불경소리가 마당을 나와 토함산을 기어오른다. 어둠이 짙을수록 대웅전의 꽃문살이 가을단풍보다 곱게 물들었다.친구와 나도 붉게 물들었다. 친구야, 불국사의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는 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대이.

2018-11-09

또 하나의 집

▲ 강길수 수필가손주 녀석의 행동이 갑자기 이상하다. 태어난 지 열다섯 달 된 유아다. 큰방에서 한잠 자고나서 이것저것 분탕 치며 잘 놀았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묵주를 두 개씩이나 목에 스스로 걸었다 벗었다 하며 논다든가, 제 용품이 들어있어 제법 무거운 작은 아기배낭을 등에 메고 안방, 마루, 건넌방, 주방을 종횡무진 오가며 신난다든가,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다 집어 난장판을 만들며 잘도 놀았다.한데 해질 무렵이 되자 별안간 한손에 차키를 들고, 다른 손으로 제 아빠 가방을 끌며 “아빠, 아빠 ~~” 라고 말하며 아빠에게 가져가는 게 아닌가. 또, 벗어놓은 아빠의 옷도 끌어다 주며 역시 급한 목소리로 “아빠, 아빠 ~~” 하며 무언가 보챈다. 나는 휴대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녀석이 아빠 옷을 가져다 아빠 손에 쥐어 주었는데 아빠가 바닥에 놓자, 기어코 녀석은 다시 끌어다 아빠 손에 쥐어주었다. 아빠는 의아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웃으며 “현민이가 집에 가잔다!….”하고 저절로 말했다. 그리고 ‘저 어린 것이 어찌 제 집에 가자할까?’라고 의문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다니러 온 둘째아들 부부에게 낮에 찍은 조카 동영상을 보여주었더니, 둘 다 웃으며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생후 일곱 달 되었을 무렵에도 이모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집에 가자고 심하게 우는 바람에 제 아빠가 세 시에 데리러 간 적도 있다했다. 그렇다면 손주 녀석은 이번에도 집에 가자고 아빠를 종용한 거라는 내 느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인 손주 녀석이 어찌하여 자기 집에 돌아가자는 의사를 표시할까. 제 할머니와 나는, 한 주간에 한번정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선지 낯가림 하지 않는다. 또, 모르는 이들에 대해서도 심한 낯가림이 없는 아이다. 그런데 해가 기우는 시간이 되자 스스로 집에 가자고 아빠에게 보챈 것이다.사람에겐 원래 ‘귀소(歸巢)본능’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손주는 난지 칠팔 개월 때부터 제 집에 가자고 울었고, 오늘은 자기 아빠의 소지품들을 챙기며 집에 돌아가자고 조른단 말인가. 아직 어리기에 대부분 본능이나 본성에 따라 반응할 손주 녀석이 이런 행동들을 보인 것은 사람의 본성에 귀소본능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게 아닐까. 사람뿐 아니라 비둘기, 연어 등 다른 생명체들도 귀소성이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아메바도 몸에 생체자석(生體磁石)을 가지고, 남극과 북극을 오간다는 사실을 연구자들이 알아냈다한다.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은 향수(鄕愁)를 가지고 산다. 나도 그렇다. 중학교 이학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오랜 타향살이를 하고 있어도 여전히 향수를 간직하고 산다. 한 해 대여섯 차례 고향에 간다. 그래도 떠나면 또 고향이 그리운 게 향수 때문이리라. 오래 전에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하지만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다. 향수를 다룬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들도 많다. 향수는 사람의 귀소성향(歸巢性向) 곧, 귀소본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닐까.사람의 귀소본능은 왜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고, 그 끝은 무엇일까. 시인 천상병은 ‘소풍’ 같은 세상 삶을 마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했다. 사람의 귀소본능은 단순히 세상 집에 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노래한 것이리라. 맞다. 인생길은 보이는 집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집으로 가는 여로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집에 살면서도 종교에 귀의하고, 학문에 매진하며, 예술에 심취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과 생명체들이 타고난 귀소본능은, 결국 단순히 둥지나 집에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 삶을 통해 본래의 삶 곧, 유전자에 각인된 참 삶의 집을 찾아 가는 눈으로 주어진 것이라 믿어진다.다시 휴대폰 동영상을 켠다. 손주 녀석은 등에 제 작은 푸른 배낭을 메고, 아빠의 옷이랑 가방을 끌어다 주며 “아빠, 아빠~~”하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보챈다. 녀석의 귀여운 모습 뒤로, 아름다운 또 하나의 집이 오버랩 된다.

2018-11-02

정보의 홍수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지난여름 피서객들이 북적대던 해수욕장은 어디 가고 거대한 쓰레기하치장이 생겨나 있는 게 아닌가. 태풍과 홍수가 바다로 휩쓸어간 쓰레기들을 풍랑이 다시 바닷가로 밀어내어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거였다.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면 땅위의 온갖 쓰레기들이 휩쓸려 바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바다는 끊임없는 자정력(自淨力)으로 그것들을 다시 해변으로 밀어낸다. 일부 유기물은 바다생물의 영양소가 되기도 하지만 자정의 한계를 벗어난 부유물들은 거대한 쓰레기섬을 만들어 대양을 떠다니기도 한다.인류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 살아있는 동안에는 때때로 배설물을 남기고 죽어서는 시체를 남기는 게 고작이다. 그 배설물이나 시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서 식물의 거름이 되는 것으로 완전한 순환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든 쓰레기는 자연계의 순환을 거스르고 저해한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합성수지 쓰레기는 수백 년 동안이나 썩지를 않아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갈수록 적체되는 생활쓰레기는 산업폐기물과 매연, 오폐수와 함께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인터넷의 상용화로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정보의 과잉에 따른 폐해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갈수록 범람하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거라는 예상이다.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는 문제가 아니라 온갖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거짓 정보들과 선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이 쓰나미가 되어 인류를 덮칠 거라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원시시대에는 인위적인 정보가 많지를 않았다. 자연에서 먹잇감을 구하기 위한 정보와 맹수나 재해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냥을 하는 기술이나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를 구별하는 법, 재해나 맹수를 피하기 위한 수단을 부모로부터 익히는 것이 생존을 위한 정보의 전부였다. 미개하고 단순한 정보이긴 하지만 생태계의 측면에선 가장도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것들이었다.불과 오륙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정에서 부모형제로부터 배우는 상식과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고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자연에 대한 정보는 풍성했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 거의가 자연이었다. 거기에는 거짓이나 왜곡이나 과장이 없는 불변의 섭리가 있었다.정부에서는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고 한다.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의 홍수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한다는 측면에서는 수긍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개입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없지 않아서 언론이나 인권의 제한이나 탄압으로 비화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더 크다.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겠다고 대놓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뿐더러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일이다. 기왕의 법규에 따라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마다 적절하게 대응하는 편이 반감과 반발에 부딪치지 않는 일이다.다만 자라는 아이들이 무방비로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는 것에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폭력과 선정과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쓰레기 정보에 휩쓸린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차단하고 금지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가급적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대안이고 교육이 될 것이다. 예체능 교육을 보다 활성화 하고 자연을 접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아무튼 아이들이 정보의 홍수에 침몰하지 않을 건강한 정서와 분별력을 갖도록 각별한 경각심과 노력이 있어야겠다.

2018-10-26

물장사 하세요

▲ 김순희수필가동네 찻집에 갔다.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부스스한 몰골로 멀리 나가기는 좀 그랬다. 걸어서 가도 되는 길 건너 다방이 떠올랐다.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 앞을 지나 다기만 했지 처음 가 보았다.친구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막 반가운 인사를 할 즈음 주인장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달콤한 카푸치노 커피로 메뉴를 통일하자 주인장은 철학을 몇 년 공부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서비스로 사주를 봐준다고 내 생년월일까지 주문 받았다. 잠시 후 커피가 먼저 나왔다. 뜨거운 커피가 적당히 식을 때까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만나지 못한 시간들의 퍼즐을 맞추었다.그러는 사이 사주풀이를 끝냈다며 우리자리로 남자가 왔다. 나는 나무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 아들을 둘 낳을 것이란 말에 그런 것도 나오느냐고 되묻자 아들들이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잘 자라 효도할 거란 말도 보탰다.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깜짝 놀라 결혼은 이미 했고 아이가 둘이라고 말해버렸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우리 집의 균형을 맞추어서 화목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자주 다툼이 생기는 형국이란다. 올 한 해 외국으로 세 번의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이미 북해도와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온 상태였고, 나머지 한 번도 계획에 있었다. 철학 공부를 하다가 용한 점쟁이가 된 것인가. 사소한 것까지 착착 들어맞는 것에 놀란 나는 어디 잘하나 보자하며 뒤로 물러나있던 몸을 세워 그 남자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물었다. 곧 진급을 할 거라고 장담했다. 내가 가진 복으로 친정 부모가 살았는데 결혼하며 그 복을 남편이 받는다고 했다. 어머나, 내가 결혼한 다음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그 말이 맞는 듯도 했다. 큰아들의 미래도 궁금해서 어떤 공부를 시키면 좋겠냐 했더니 기자나 공무원이 좋다고 일러주었다. 둘째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나 재물복이 넘쳐서 큰 부자가 될 거라는 말로 내 기분을 한껏 띄웠다. 몇 십 년 뒤 아들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 걸 물을지 이미 알았다는 듯 그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의 사주이니 물장사를 하라고 했다. 물장사? 뜻밖의 대답에 뜨악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찻집이나 술집을 하면 크게 돈을 번다고 덧붙였다. 기분이 나빴지만 장사에는 자신이 없다며 에둘러 말하자 그냥 얼굴마담으로 카운터에 앉아만 있어도 대박이 날 거란다.남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영 언짢았다. 내 외모가 잘 노는 사람으로 보였나, 나도 모르는 내 몸 어디엔가 숨어있던 술장사의 끼가 튕겨져 나오기라도 했나? 기분이 나쁜 것을 본 친구는 주인장이 돌팔이 같다며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혼하면 아이 둘쯤 낳는다는 걸 때려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여행을 많이 하는 추세이니 세 번의 여행 또한 특별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추리가 가능한 이야기였다. 용한 점쟁이 같던 그 남자가 내게 멋진 커리어우먼이 아닌 물장사 하란 말을 한 이후에는 파리만 날리는 자신의 찻집을 내게 넘기려는 사기꾼으로 보였다.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카운터의 그 남자에게 갔다. 커피값을 계산하면서도 나는 뚱한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잔돈을 건네주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한마디를 더 던졌다.“술집이 싫으면 정수기 대리점이라도 하소. 거, 생수 배달도 물장사구만.”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물장사이야기만 쏙 빼고 오늘 귀인을 만났다고 떠벌리기 시작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0-19

저녁놀 비칠 무렵

▲ 강길수 수필가세레나.한가위를 며칠 전에 지냈습니다.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겠지요. 올 초가을 날씨는 습도가 높아 제겐 여름을 방불케 하도록 더웠습니다. 하지만, 한가위를 지나고 나니 소슬바람 부는 가을 저녁나절을 만납니다. 웬일인지 이런 날이면, 소년시절 겪던 ‘저녁놀 비칠 무렵’들이 생각납니다.꿈 많던 소년의 동공에 비친 저녁노을…. 들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돌아오거나 또는, 소를 먹이고 들어오거나 혹은, 꼴을 뜯어 망태에 메고 집에 올 때 말입니다. 붉은 해는 서녘 산등을 타고 시나브로 내려앉습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녁놀의 황금색 시네마는, 소년의 마음을 홀려내기에 충분했었습니다.소년은 저녁놀에 취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콧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었지요. 배운 적 없는 매혹의 멜로디들이 저절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땐, 그 가락들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옛 흥얼거림이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영가(靈歌)’였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소년 시절 영가를 알았더라면, 음악의 길을 걸어갔을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세레나.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많이 흘러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을 소중하게간직하고 살고 있을 테지요. 제겐 ‘저녁놀 비칠 무렵’이 그런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고향 집이 남서 방향으로 서 있어서 저녁놀이 비치는 날은 언제나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땐 집 출입로도 서쪽으로 나 있어서, 저녁 해와 저녁놀은 마치 친구와도 같이 익숙하게 살았으니까요.아홉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 산골마을은, 대문이나 사립문이 있는 집이 없었습니다. 출입로가 있을 뿐이었지요. 누구네 집이라도 그냥 드나들 수 있어, 동네가 마치 한집 형제간 같이 살았다 싶습니다. 우리 집 뒤쪽에는 야산 자드락에 묘소 몇 기가 있는 잔디밭이 서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네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지요. 잔디밭이 언덕을 이루고 있어 동네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남녀 할 것 없이 잔디밭에 몰려들어 놀았습니다. 열 발 뛰기, 숨바꼭질, 상석(床石)에 앉아 노래 부르기 등의 놀이였습니다. 명절이나 겨울철 주말 등엔, 남자아이들이 모여 자치기를 하며 노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그때 우리들은 놀이터를 ‘양소’나 ‘미뿔’로 불렀는데, 왜 그런 사투리를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끔 양소에 놀면서 저녁놀을 바라볼 때도 있었지요. 마을 지붕들을 병풍으로 둘러 선 앞산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위로 저녁놀이 황금빛왕관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지울 수 없는 동영상으로 제 마음망막에 저장되어 있습니다.세레나.원래 하늘색은 붉다지요. 아침저녁으로 보이는 붉은 하늘이 제 색깔이고, 낮의 푸른색은 하늘의 먼지에 햇빛이 분산되어 그렇다는 과학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 제가 저녁놀에 취한 것은, 원래의 하늘모습에 감응한 것일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하며 살다가 하늘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인생일진데, 어린 저는 본능으로 저녁놀에서 그런 것을 느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많은 세월이 흐른 요즈음도 저녁놀 고운 황혼녘이나,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혹은 교교한 달밤이면, 주어진 제목도 곡조도 없는 즉흥멜로디를 흥얼거립니다. 멜로디 파동에 그 옛날 눈부시던 내 소년이,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바라봅니다. 소년은 행복이자 은총이며, 그리움이자 가슴 시린 슬픔임을 되새기면서….

2018-10-12

꼭두각시

▲ 김병래시조시인·수필가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시한 방북단 일행이 평양에 가서 관람한 북한의 집단체조 공연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그 규모와 기량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얼마나 혹사했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소름이 끼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의 집단체조와 카드섹션은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지만, 아이들을 체제선전과 외화벌이 수단으로 혹사한다는 비판에 몰려 몇 년간 중단을 했다가 이번에 다시 재개했다고 한다. 전체 10만여 명의 학생들을 6개월에 걸쳐 혹독하게 훈련하는 과정이 아동학대와 인권유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지난여름의 유난했던 폭염에도 집단체조 훈련에 동원됐을 아이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실신해서 쓰러지거나 억지로 소변을 참느라 방광염에 걸린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훈련기간 중에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줌이 마려울까봐 물도 제대로 마시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올림픽이나 전국체전 등에서 각종 매스게임을 하지만 목적이나 과정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방북단의 일원이었던 한 중견시인은, 연도에 나와서 열렬히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 표정에서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일사불란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붉은 모조꽃다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장군님 만세를 외쳐대는 주민들의 열광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면, 그게 어찌 감동을 받을 일인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공개처형도 서슴지 않고 고모부와 친형까지도 죽이는 포악한 독재자를 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광경을 보고도 느낀 점이 고작 그것이었다니, 명색이 시인이란 사람의 지극히 피상적인 현실인식에 실망을 넘어 아연해진다.언젠가 북한의 어린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어린 것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저 지경에 이를 수가 있을까.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 아이들의 음성이나 표정까지도 하나같이 똑같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것은 천진한 동심의 아이가 아니라 고도의 기능을 입력해놓은 로봇이거나 꼭두각시의 모습이었다. 편하고 자유로워야 할 어린 영혼들을 그렇게 세뇌하고 혹사한다는 건 결코 감동하고 찬사를 보낼 일이 아닌 반인륜적 죄악일 뿐이다,지난 70년 동안 김일성 일족의 세습 독재는 북한 주민들을 모조리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았다. 유아기부터 일체의 다른 정보를 차단하고 오로지 김일성을 위대한 어버이 수령이자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세뇌교육을 시켰으니 어떻게 정상적인 자아가 형성된 인간일 수가 있겠는가? 얼핏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덜 때가 묻은 순수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현혹되어 실상과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거짓된 선전선동이나 포퓰리즘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연민과 공분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인데도 감동과 감격으로 보았다는 사람들 역시도 알게 모르게 학습이 된 그릇된 이념이나 편견의 꼭두각시라는 생각이다. 남쪽에도 그런 꼭두각시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씁쓸하다.꼭두각시란 팔 다리에 실을 달아서 조종하는 인형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괴뢰(傀儡)라고 하며, 남한에서는 북한군을 괴뢰군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남한 정부를 미제의 괴뢰정부라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홀린 듯 남한에서도 북한 주민이 모조리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을 밖으로 끌어낸 것까진 좋은데, 그것을 마치 독재자가 개과천선이라도 한 양 착각을 하고 호들갑을 떠는 행태도 개탄스럽다.

2018-10-05

그리운 소리

▲ 김순희수필가프랑스대사가 되어 파리에 간 네루다. 잠시 머물렀던 곳인 시골 이슬라네그라의 토박이 마리오에게 그리운 고향의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소니 녹음기를 보내온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을 두고 온 그곳이 고향이라 여겨 네루다는 그곳에 묻혔다. 네루다에게서 시와 사랑을 배운 마리오는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종탑에서 공기를 가르는 종소리, 밤하늘에 별이 흐르는 소리까지 잡아낸다. 영화 ‘일포스티노’에서 주인공 마리오가 하늘을 향해 녹음기의 마이크를 가져가는 장면을 보며 심쿵했다. 나에게 그리운 소리는 무엇인가.내 고향은 안동 남후면 접실. 동네 앞에 낙동강을 향해 가는 내가 흐르고, 그 물을 먹고 무언가를 키우는 들이 넓은 곳이라 접실이라 불렀다. 산 밑으로 옹기종기 붙어 앉은 집에서 밥안개가 피고 고봉밥 저녁을 나누어 먹고 강아지도 밥을 먹을 때쯤 개밥바라기별이 말갛게 얼굴을 닦으면 마을은 점차 고요해 진다.별은 더 밝게 빛나고 우리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가로등은 하나도 없던 캄캄한 밤, 신작로에 자동차가 달려오면 멀리서 부터 자갈이 바퀴에 밀리는 소리가 방에 누운 내 귀에까지 들렸다. 그 소리는 아스팔트길에서 남후초등학교 앞에서 흙길로 내려 설 때부터 시작된다. 우회전해서 강을 끼고 달리는 소리, 윗동네 무릉에서 우리 동네 어귀로 접어드는 소리. 지금은 삼촌이 돌아가셔서 누군가에게 팔아버린 우리 과수원 사이를 가로지른다. 방앗간 즈음에서 코너를 도느라 속도가 늦춰지고. 그러다 향나무 울타리집 앞에서 빗물이 고였다 패인 턱에 살짝 몸체가 닫는 소리가, 우리 집 앞을 지나서 점빵을 지나 누구네 집쯤에 멈추는 것까지 알 수 있던 내 동네의 밤소리. 그 집에 손님이 오는구나. 외지 나가 출세한 큰아제인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방바닥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으면 멀리 초등학교 앞에서 부터 차바퀴가 내게 달려오는 소리가 자그락자그락 턱! 들렸다.갱년기에 접어든 요즘 깊은 밤에도 얕은 잠뿐인 나는 생각만 깊어졌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니 책꽂이에서 오래된 다이어리를 들춰 읽고 그해 그날로 가본다. 읽었던 책을 펼쳐 밑줄 그은 부분에 눈길이 멈추고 왜 이 글귀에 마음이 갔었나 되새김질도 한다.어제는 큰아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공책을 발견했다. 표지에 웃는 아이 사진이 있고 ‘엄마 아빠 들어주세요.’ 란 제목이 붙었다. 아이와 부모의 대화를 여섯 살짜리 솜씨로 삐뚤빼뚤 적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원으로 가져가는 숙제장이었다. 할머니는 누가 낳았냐는 물음에 엄마인 나는 할머니의 엄마가 낳았다고 답했다. 아이는 할머니도 엄마가 있구나 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새벽이 훤해질 때까지 2000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문득, 이 공책은 누구의 추억인가. 내 것인가 아들의 것인가. 며칠 추억의 주인을 놓고 마음속 줄다리기를 했다.책꽂이에는 내 6학년의 일이 적힌 새마을일기장도 있다. 언니와 수박을 놓고 다툰 일, 짧은 글로 일기를 때우려고 쓴 시를 보며 ‘6학년의 김순희는 시인이었는 걸’하며 혼자 킬킬거린다. 6학년 이전에 일기장은 모으지 않았으니 사라져버렸지만 전학에 이사에 오랜 세월 버리지 않고 간직한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추억이다. 큰아이는 저 공책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내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추억은 간직한 사람의 몫이니까.옛 시간을 들쳐보는 이 시간 또한 그리운 날이 오겠지. 그 날을 위해 사춘기 오춘기 갱년기를 지나는 소리를 카카오스토리에 기록한다. 내 몸 안에서 나를 향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 모든 시간이 자그락자그락 세월을 밀어내는 소리에 마이크를 들이댄다.

2018-09-28

잔꾀에 넘어지다

▲ 강길수수필가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스로 작성하여 보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증거물이, 비수로 변신하여 망막을 통해 심장에 파고들었다.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이, 머릿속이 하얀 진공상태가 되었다. 틀린 사실을 알려준 대표에게 변명도, 사과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그냥 멍하게 있었다. “사과할 일 만들고 말았네….”잠시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뱉은 말이다.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눈길이 컴퓨터 모니터로 다시 갔다. 보낸 메일을 열어놓은 화면이다. 찬찬히 뜯어보았다. 분명히 두 군데 틀린 곳이 있다. 두 항목인 단가는 고쳤고, 그 합계 항목은 숫자 두 개 중 하나만 바꾸고 그대로 두었다. 고치다 만 것이다. 따라서 두 단가를 합한 금액이 틀렸다. 한데, 하단의 총합계 금액은 맞게 고쳐져 있다. 또, 머리 부분의 총 견적금액에서 괄호 안 아라비아 숫자는 수정하고, 밖 한글표시 금액은 고치지 않아 그전 금액이 적혀있다. 엉망이다.젊은 날, 취업하자마자 대기업 실험실에서 분석원(分析員)으로 일했다. 실험분석 절차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수십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여러 조작(操作)단계를 거치는 실험분석에서는 하나만 실수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경우도 가끔 생겼다. 분석자가 자기 실수를 모르고 진행하면, 데이터가 안 나오거나 틀린 것이 나온다. 때문에 실험 시에는 착오나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집중과 선택이 강요되는 긴장의 세월이었다.진급을 하며 실험데이터를 적용한 보고서나 정기적 통계작성 보고, 불합격품 처리방안 협의, 연구같은 품질관리업무가 주가 되었다. 이때, 피디씨에이 사이클(PDCA Cycle) 곧, 관리 사이클은 업무수행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계획(Plan), 실행(Do), 점검(Check), 조처(Action)가 그 것이다. 새 제품이나 공정간 혹은, 출하된 제품에서 발생된 품질문제에 대해 생산 또는 개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점검하고, 발견된 문제에 대해 조처를 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점점 실수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그런데, 보낸 한 면의 견적에서 두 군데나 틀렸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품질관리업무를 떠난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애초 빈 양식을 썼거나, 관리 사이클의 ‘점검’만 제대로 했더라도 이런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터다. 좀 편하게 하려고 다른 곳에 썼던 견적을 모니터에 올리고, 내용만 고치다가 이런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선지,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문서 작성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낼 시간에 쫓겼던지, 작업 중 전화 등 급한 일이 생겼었는지, 너무 더운 날씨에 더위를 먹었던지, 아니면, 노화현상이 나타 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원숭이가 제 잔꾀에 넘어간 격이 되었다.구차한 자기합리화를 위한 추론이, 스무고개의 답처럼 차례로 마음에 피어올랐다. ㉠견적작성 중에 급한 일이 생긴다. ㉡작성 중인 견적서를 임시저장 한다. ㉢급한 일을 처리한다. ㉣임시저장된 견적서를 완료된 것으로 착각한다. ㉤견적내용을 확인 않고 메일로 보낸다. ㉥잊는다. ‘그럼, 그랬을 거야. 사람이기에, 오래 안 쓴 관리 사이클을 잊고 지낸 거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은 애써 자기위안을 삼고 있었다. 다행히 견적 낸 일을 맡게 되어, 발주처의 담당자를 만났다. 오류 있는 견적 제출에 대해 사과했다.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처음 견적을 받았을 때, 잘못된 견적을 다시 내달라고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관청에 공문을 내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경험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품의(稟議)나 결재제도는, 결함을 없애기 위한 중복점검 성격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잔꾀에 넘어진 견적오류 사건을, 자기정화능력 향상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2018-09-21

라면 한 개

▲ 김병래 시조시인·수필가라면 하나에 물을 좀 넉넉하게 붓고, 된장 반 술과 파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 다음, 둘로 나누어 찬밥을 한 술씩 말면 우리 내외 단란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끔씩 별미로 먹는 소박한 식단이다. 돈으로 치자면 천 원쯤 될 터이니 소위 ‘천 원의 행복’인 셈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십억이 넘는다는데 무얼 먹든 굶어죽을 염려는 없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배를 채웠으니 식후경, 들판으로 나간다. 더도 덜도 아니게 쾌적한 가을의 볕과 바람, 차츰 황금빛을 띠며 영글어가는 벼들, 높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처럼 몸과 마음이 더없이 자유롭고 한가하다. 이만큼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은 평온이요 여유로움이다.재벌들은 벌어놓은 돈벌이에 노심초사할 것이고, 권력자들은 치열한 권력다툼에 혈안일 것이며, 혹자는 자칫 멍에가 되는 명예에 집착하겠지만, 그 어느 것도 갖지를 못했으니 나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소위 갑질을 일삼는 많이 가진 자들과 그 횡포에 기죽고 멍드는 을들도 많지만, 갑을의 논리를 벗어난 병이나 정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행복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기준과 조건이 다른 것 같다. 행복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행복감이란 다분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바라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그만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행복이고, 반대로 욕구가 아주 소박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생사 모든 것이 그렇듯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도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그렇다고 행복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나 건강에 문제가 없고 가족은 물론 이웃이나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기본조건일 것이다. 일견 대수로울 것이 없는 조건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고루 잘 갖춘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호사다마란 말도 있듯이 세상은 어디에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다만 악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마인드가 행복을 보다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나는 자연인이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요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개 사업에 실패하거나 중병에 걸려서 모든 걸 버리고 홀로 산 속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인데, 의식주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모두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회생할 수 없도록 실패와 좌절이었던 처지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반전의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예를 보여주었다.행복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찾는 것이다. 기왕에 있거나 가진 것 중에서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요소다. 무궁무진한 삼라만상이 그렇고, 그 중에 살아있는 내 생명이야 말로 세상 무엇보다 엄청나고 소중한 행복의 요소다. 그것은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그 모두를 내놓고도 바꾸거나 연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결국에는 빈손으로 병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생명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조건 팔 할은 충족이 된 거라는 생각이다.가뭄과 태풍이 비껴간 들판은 올해도 풍년이다.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에게는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넉넉해진다. 수로에 물옥잠이 자라고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오늘 드디어 청초한 남청빛 꽃이 피어서 또 한 기쁨을 더한다.

2018-09-14

당신의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요?

▲ 김순희수필가책을 처음 자세히 들여다 본 곳은 화장실이었다. 사람보다 바람이 더 자주 드나들 수 있게 문도 따로 없이 입구가 달팽이처럼 생긴 그곳에는 삼촌 고모의 교과서와 참고서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두루마리 휴지나 사각티슈는 구경도 못하던 시절, 볼일을 보고 난 후 그만한 게 없었다. 한 쪽을 부욱 찢어 비벼주면 쓰기에 좋을만치 부드러워진다.그 이전부터 철지난 책들이 거기 있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곱 살 쯤이었다. 처음엔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겼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만히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가 철사고리에 걸어둔 책을 읽게 되었다. 수학공식이나 과학용어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내가 가장 좋아한 똥닦개는 국어교과서와 국어완전정복이었다.한 권을 그대로 책머리에 구멍을 뚫어 손이 닿는 벽에 매달아 두었는데, 펼쳐진 곳을 읽다보면 재미있어서 정작 볼일이 다 끝난 뒤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화장실을 쉽게 나올 수 없었다. 한 장을 뜯어야 뒤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엄선한 소설과 수필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나는 뒷간에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완전정복에는 어떤 글이든지 전문이 실려있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는가 싶은 찰나에 지문이 끝나버려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었다.지금이야 ‘네이버’라는 친절한 선생님이 곁에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눈 앞에 펼쳐주지만 그때는 나 혼자 상상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언니나 할아버지가 미리 앞장을 찢어버린 단원은 이야기의 처음이 사라지기도 했다. 내 상상력은 마구마구 꿈틀대며 담장을 넘어갔고 구리구리한 변소냄새도 소설의 클라이막스 덕분에 오히려 구수해지는 시간이 되었다.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세 살 많은 언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안동에서 떨어진 포항에 살았고, 삼촌과 고모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 대신으로 옷과 학용품을 부족함 없이 사주셨지만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 하셨을 것이다. 언니는 나보다 몇 발 앞선 선배역할을 했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춘희’, ‘제인에어’, ‘여자의 일생’ 같은 명작들을 빌려 와서 읽고 어깨너머 곁눈질 하는 내게 순서를 넘겨 주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읽었다. 언니가 읽은 다음 봐야했고 반납해야 하는 기한이 있는 책이라 읽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 슬슬 재미가 붙어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다.6학년 가을쯤이었나, 삼촌이 월급을 탔다며 서울에서 동화책 한 권을 보내왔다. ‘15소년 표류기’였다. 언니가 빌려온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내 또래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였다. 그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이 아니라 처음 갖는 내책이었으니까. 내 표준전과가 계절이 바뀌면 화장실에 걸리는 운명이 되어도 ‘15소년 표류기’는 오랫동안 책꽃이의 젤 좋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시골아이에게 책은 어떤 것이든 귀한 시절이었다. 삼촌 고모들의 버려진 교과서나 참고서 이외에 내 마음대로 펼쳐 볼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새농민’ 의 부록 ‘어린이 새농민’을 매달 기다리며 그속에 실려온 오성과 한음 이야기에 푹 빠졌다.나는 그렇게 늘 할아버지 그늘에 있었다.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첫 운동회에도 내빈석에 앉아서 달리기 하는 나를 향해 박수 쳐 주시고, 처음 잡지책을 내게 안겨주시며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셨다.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내 인생의 중반부를 응원하며 빙긋이 웃고 계실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이라는 책의 첫 장을 펼쳐 주셨다.

2018-09-07

스펙

▲ 강길수수필가팔월 중순, 들판은 희망이다. 봄에 모내기했던 논에서 초록 벼가 패기 시작한다. 갓 팬 이삭을 살짝 만져본다. 아삭하면서도 보드라운 촉감에 생명과 삶의 비밀이 녹아있다. 우주의 꿈과 벼의 꿈, 농부의 꿈이 하나 되어 손가락에 흘러든다. 먼저 팬 이삭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고향엔 이맘때 한창 논을 맸다. 보리를 베어내고 늦게 모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마에 구슬땀 흘리며 논에 엎드려, 튼실한 벼 포기 사이에 난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는 작업이었다. 방학 때 여러 번 논매기를 도운 적이 있다. 까칠한 볏잎 끝이 땀 맺힌 얼굴을 따갑게 찔러대는 것을 요령껏 피하며 잡초 뽑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손 초벌논매기를 마치면 다음부터는 논매는 기계를 썼다. 벼 포기 사이를 두 손으로 기계를 밀며 걸어간다. 이때 도는 두 바퀴 날에 논바닥이 패여 뒤집어지며 잡풀도 뽑히는 쉽고 신기한 작업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막 고개 숙이기 시작하는 벼이삭에 어떤 기품(氣品)도 함께 서리는 것 같다. 갓 심은 모, 땅내 맡은 푸른 벼, 막 패는 벼이삭에서는 볼 수 없는 격(格)이다. 쪄내는 모의 앳됨도, 심는 모의 간절함도, 땅내 맡은 벼의 싱그러움도, 모두 이삭 되어 고개 숙이기 위함이 아니던가. 고개 숙인 벼이삭의 품격(品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볍씨 뿌려 모 키우고, 때 되어 모심고, 부지런히 가꾸는 농사는 결국 벼이삭이 패 올라 영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농사짓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벼가 잘 자라도록 적기에 물 대고, 잡초 제거하고, 비료 주는 등 도와줄 뿐이다. 볍씨가 싹트고, 자라나고, 열매 맺는 주체는 바로 벼란 사실이다.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면 볍씨에 있는 유전자의 설계내용에 따라, 벼는 싹터 새로운 한 생을 스스로 산다. 벼이삭 모두가 고개 숙여 익었을 때 벼의 품격 즉, ‘스펙(Specification의 줄임말)’은 완성된다. 사람은 이처럼 익어가는 생명현상에 둘러싸여 살기에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마는 게 아닐까.요즈음은 ‘스펙’이란 말이 젊은이들의 취업전선에 바이블처럼 통용되는 시대이리라. 스펙을 쌓아야 경쟁자를 재치고, 내가 뽑힌다는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해 보인다. 번듯한 직장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직장절벽시대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사람의 품성, 품위, 인격 등을 운운 하는 것은 잠꼬대이거나 모자란 사람 또는, 꼰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을 그의 스펙 곧, 학교졸업장이나 자격증, 봉사경력 등으로만 과연 제대로 평가하고 판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스펙이란 명사의 사전적 뜻은 많지만 규격, 기준, 사양, 명세 등이 산업이나 업무현장에서 주로 쓰인다고 본다. 첫 직장을 실험실에서 시작한 이래 스펙을 참 많이도 다루었다. 필요 검체(檢體)의 품질을 실험하여 그 결과를 스펙과 대조하고 조치를 취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시기를 헤쳐 나가는 동안 원료, 공정, 생산, 출하, 수출품들의 스펙이 올무 되어 마음을 옭아맨 삶을 살아왔다. 생산과 판매와 연구 등에 쓰이는 원료, 제품의 품질을 다루던 스펙이 어찌하여 사람의 격(格)을 따지는 데 쓰이게 된 걸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스펙이란 말을 사람의 평가 자료로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상품의 질(質)로 보는 마음이 그 안에 스며든 것은 아닐까.익은 벼가 고개 숙이듯, 인력모집에서도 고개숙인사람 곧, 인격자가 뽑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스펙의 보완책으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수습기간, 추천제도, 연수 등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하는 듯하다. 사람 뽑는 측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현행 방법 이외에 다른 뾰족한 방안이 당장 생각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펙을 사람 뽑는 큰 잣대로 쓰는 현상에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의 격 곧, 인격이 원료나 재료, 제품의 질 차원으로 낮추어져 쓰이는 것 같아서다. 딜레마다.어디, 직장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는 없을까.

2018-08-31

좌편향 시대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기독교 성서에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옷을 벗어 길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초라한 죄수가 되어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나온 예수의 모습을 본 군중들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고 소리쳤다. 로마의 속국이 되어 도탄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뀐 까닭이었다.군중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 예수가 메시아인 척 속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 총독도 놓아주고자 했듯이 예수에게는 사실 아무런 죄도 거짓도 없었다. 유대교 랍비와 제사장들이 씌운 죄명은 신성모독과 혹세무민이었지만 군중들이 반대를 하지 않았으면 빌라도는 주저 없이 예수를 석방했을 것이다. 결국 군중들의 오해와 편견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이었다.군중이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기 쉽다. 그런 민중은 곧잘 정치나 이념의 선동에 휩쓸려 폭력과 광기의 집단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나치스가 그랬고 스탈린의 볼셰비키가 그랬다. 희대의 독재자들은 바로 그런 군중의 힘을 동원해서 자신의 야욕을 채우고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물론 군중의 힘으로 불의를 타도하고 자유를 쟁취한 역사가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광기와 증오로 살육과 숙청을 자행한 역사가 더 많았다. 특히나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은 자신의 독재체제를 위해 날조된 선전선동과 악랄한 숙청에 이어 철저한 세뇌로 인민을 모두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3대 세습에 걸친 폭정과 우상화 사기에도 대다수 인민들은 감히 의구심을 갖거나 저항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우리 민족에게도 의로운 민중 봉기의 역사가 있었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그랬고 기미년 3·1운동이 그랬다. 비록 실패와 좌절로 끝났지만 그 뜻과 정신의 맥은 끊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민중 시위와 봉기가 있었지만 그 공과에 대해서는 좌우의 평가가 현격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다.오늘날은 매스컴의 발달로 민중을 선동하고 민의를 결집하는 일이 아주 손쉬워졌다. 무슨 정보든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정보화 시대에는 군중의 영향력을 무시하고는 경제도 정치도 설 자리가 없다. 누구든지 군중을 설득하고 선동할 능력만 있으면 상당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우파정권의 실정으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군중은 그 여세로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국민의 대다수가 좌측으로 쏠린 현상 앞에서 누구도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펼 여지가 없었다. 고공의 지지율을 업고 좌파들의 전횡이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그 서슬 퍼런 위세에 언론도 공권력도 한통속이 되거나 알아서 기는 경향이 뚜렷한 현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동안 쌓아온 자유와 민주에 대한 내공이 가볍지만은 않은 나라다. 좌로 쏠린 민심과 정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국가는 배와 같아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만 쏠려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좌편향 민심의 상당수를 우로 돌려놓아야 한다. 좌파정권을 견제할 건강한 우파세력의 결집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무엇보다 좌우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북의 정권은 철저한 일인독재체제다. 모든 결정권이 절대존엄이라는 김정은의 손에 달렸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는 체제유지 뿐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리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거나 개혁개방을 할 까닭이 김정은에게는 없는 것이다. 통일의 최우선 목표는 억압받고 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김일성 일족의 마수에서 해방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 대화든 협상이든 그 원칙을 벗어난 것은 모두 반역이고 사기극일 뿐이다.

2018-08-24

건넌들

▲ 김순희 수필가건넌들은 소나기가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았다. 맑기만 하던 하늘이 산모퉁이를 돌자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강 건너 들에서부터 비릿한 비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내가 건너기 어려운 강도 순식간에 건너더니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우리 집까지 와버리곤 했다. 바쁜 소나기도 강을 건너야만 마을로 올 수 있기에 들 이름이 건넌들이었다. 건넌들 앞의 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집 앞에 작은 강이 흘렀고 그 물을 따라 30분 정도만 떠내려가면 큰 강에 이르렀다.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란 뜻인 낙동강이 안동에서 합쳐져서 큰 물이 되어 내가 살던 동네를 지나갔다. 지나면서 만나는 지류들을 한 몸으로 받아들여 몸집을 불렸다.지류라고 해도 강은 강이었다. 한번씩 물이 질 때마다 흐름이 달라지고 흐름에 못 이겨 제방이 깎여 나갔다. 그 강을 우리는 ‘큰물’이라 했다. 큰물이 휘감아 도는 자리는 특히 깊어 내 키를 넘었다. 물의 흐름이 느렸고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바닥이 보였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은 푸른빛이 더 짙어 속을 드러내지 않아 정확한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큰큰물’이라 부르던 그곳에는 용기 있는 동네 오빠들이 들어갈 뿐이었다.해가 긴 여름은 점심 먹은 배가 다 꺼지도록, 햇살에 살갗이 홀랑 벗겨질 때까지 강에서 나오지 않았다. 튜브 같은 것은 구경도 못한 시골 가시내들은 빈 플라스틱 기름통을 의지해 헤엄을 쳤다. 수영이라는 과목은 들어보지도 못한 탓에 언니들이 하는 모양을 어깨너머로 따라하며 자랐다.물장구 겨우 치던 여름, 물에 빠져 한껏 물을 먹은 후 한동안 물가에 가는 일이 줄었다. 하지만 오래참지 못했다. 여름 내내 친구들은 큰물에서만 놀았기 때문이다. 헤엄치기가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하얀 차돌을 던져서 찾아오는 놀이를 즐겼다. 너무 깊지 않고, 조막만한 차돌을 던져 넣으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곳에서 놀이를 했다. 서로 겁쟁이가 아니라는 듯 차례가 되면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으며 하얀 돌을 찾아 나왔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던져 넣으며 우리는 마음의 키를 키웠다.물놀이하기에 조금 스산해지는 아침이 오면 여름방학이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배추씨를 뿌려야 한다는 뜻이다. 만날 노는 게 일인 조막만한 손을 가진 손녀였지만 씨 뿌리는 시기엔 할 일이 따로 있는 농촌이었다.할아버지는 건넌들에다 정성으로 배추 농사를 지었다. 그곳은 거름을 넣지 않아도 농사가 잘되는 찰진 밭이었다. 비가 내릴 적마다 큰물은 누런 황톳물이 넘쳐흘렀다.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가지만 황토는 건넌들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가기에 강물이 거름을 넣어주는 역할을 했다.배추씨를 뿌리는 날, 북을 돋아서 만든 밭고랑을 큰 흙덩이가 없도록 할머니가 잘 다듬었다. 그 뒤를 적당한 간격의 걸음으로 꾹꾹 발자국을 내며 지나갔다. 뒤축에 힘을 주어서 걸어야 했다. 적당한 깊이와 간격을 맞춰야 하기에 이 일은 할아버지가 하셨다. 힘을 주며 디딜 때마다 세로로 갈라진 틈새가 더 벌어졌다. 거기에 흙이 들어가 골이 더 선명해졌다. 마치 오래 쓴 막도장에 붉은인주가 베 있듯 할아버지가 걸어 온 시간들이 스며있는 듯했다.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자 늘 내게 주어질 것 같던 여름방학이 사라졌다. 여름방학이 사라지며 함께 가져간 것은 배추씨를 뿌리기 위해 뒤따라가며 뚫어져라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뒤꿈치이다. 뒤꿈치가 하나뿐인 할아버지도 사라져버렸다.내게 강에 대한 추억을 가득 안겨주고 개구리헤엄이라도 가르쳐준 것은 큰물이다. 큰물과 큰큰물이 모여 큰 강이 되었다. 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맑게 흘러가는 넉넉한 강이 되었다. 나와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 더 큰 낙동강이 되어 흘러갔다. 건넌들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흘렀다.

2018-08-17

목자 없는 양들

▲ 강길수 수필가얼마 전 성당 미사 때 들은 복음(福音)에서,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란 구절이 저절로 마음에 와 닿았다. 돌아오며 왜 그 말이 가슴에 파고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현 우리 국가사회의 모습이 그와 닮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후변화나 국제정치상황을 볼 때, 지구촌도 예외는 아니다 싶었다. 진정한 목자가 없는 시대를 우리는, 지구촌은 살고 있다는 추론이 마음을 자욱한 안개 속으로 밀쳐댔다. 예수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많은 군중을 보고 ‘목자 없는 양들’ 같이 가엾은 마음이 들었단다. 하여, 많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끼니때가 되자, 유명한 오병이어(五餠二漁) 표징(表徵)을 베풀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들이란 산양같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양이 아니라, 목자의 보호아래 길러지는 양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의 목축은 오늘날처럼 기업의 형태가 아니라, 가업(家業)의 형태였음을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가업이란 가족의 생업이며, 생업은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이다.목축생업에서 ‘목자 없는 양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목자 곧, 양치기가 없는 양들은 우선, 위험에 노출된다. 보호자가 없으니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으로, 어디로 가야 먹을 풀밭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길들여진 양들은 먼 곳에 있는 풀을 스스로 알아낼 수 없을 터다. 끝으로, 구심점을 잃어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늘 풀밭을 안내하고 보호해 주던 목자가 없으니, 양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자연환경이 척박한 예수 시대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어쩌면 목숨을 걸고 양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야생의 포식동물로부터 양들을 지켜야 하며, 양들이 먹을 물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양들이 뜯어먹을 풀밭을 알고 있어야 했으리라. 또 풀과 물을 찾아 많은 양들을 데리고, 광야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유목민 삶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유목민에 있어 가축은 바로 가족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에 목자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오늘날의 국가도 속을 들여다보면, 유목민의 목자와 양들 관계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현대 선거제도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목자들은 누구일까. 넓게 보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뿐 아니라, 언론기관도 포함되어야 한다. 나라일꾼을 뽑는 여러 선거에서 여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좁게 본다면, 당연히 정부가 목자에 해당되리라.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국민의 자유, 권리, 의무, 재산 등 삶의 질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목자에 해당하는 기관종사자들이 가져야할 기본 마음은 무엇일까. 바로 ‘목자의 마음’이리라. 끊임없이 양들을 돌보며 지키는 마음, 살아낼 물과 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마음, 앞날을 위해 때로는 양들이 따르기 힘든 길도 마다 않고 이끌어가는 굳센 마음 등일 것이다.지난봄의 남북정상회담, 유월의 미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많은 국민들은 국가안보가 불안하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양떼 곧 국민의 시각으로 볼 때, 북한정권이 진정 겨레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다면 비핵화를 못할 이유와 명분이 그 어디에도 없다. 동족의 머리위에 가공할 핵무기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를 얹어놓은 상태로 북한정권이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요,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그 뒤에 숨은 목적이 6·25남침 때와 같이, 한국의 적화통일에 있다고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한 지당한 시각이다.

2018-08-10

여름밤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는 열대야라는 말도 몰랐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날씨에 따라 더 덥거나 덜 더울 수도 있지만 일일이 온도를 재고 이름을 붙일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다.종일 땡볕 아래 들일을 하고 돌아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감자와 애호박을 썰어 넣은 칼국수나 수제비가 주로 먹는 석식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우선 모깃불을 피워서 여름밤의 무법자들을 막을 일차 방어선을 친다. 그 방어선을 통과한 적들은 부채질로 쫓는다. 기름 먹인 종이를 붙인 태극선 하나면 여름밤의 더위와 모기를 물리치는데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옛날의 여름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계절이었다. 밤마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쳐다보는 밤하늘은 쏟아질 듯 별들이 많고 가까웠다. 세상의 반은 하늘이고 하늘의 별과 달과 은하수는 땅 위의 산과 들과 바다처럼 가까운 것이었다. 달 밝은 밤의 풍경도 그윽하지만 그믐밤에는 반딧불이 불빛이 더 영롱하고 초가지붕 위의 박꽃도 더 새하얗게 보였다.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은 밤마다 들판으로 나간다. 들판 한가운데로 나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부채질을 하며 두어 시간 여름밤을 보낸다. 후텁지근한 열대야에도 들판으로 나오면 그다지 더운 줄을 모른다. 사방이 탁 틔어 어디선가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거나 낮의 열기가 식으면서 차츰 선선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들판 가운데로 나가는 또 다른 이유는 벼논에 수시로 치는 농약 때문에 모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들판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달을 쳐다보면 나는 우주인이 된다. 그까짓 장난감 같은 우주선을 타고 고작 달에나 가는 우주인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을 타고 무한천공을 떠가는 우주적 존재가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눈앞의 세상사에만 코를 박고 온갖 번뇌와 망상에 사로잡혀 무궁무진한 우주의 일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 어느 하나 우주 아닌 것이 없고 내가 바로 무궁무진하고 불가사의한 우주의 일부임을 안다면, 그까짓 덧없는 세상사로 쉽사리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헐뜯고 싸울 일이 없지 않겠는가. 갈수록 끔찍해지는 온갖 사건사고, 세계 최상위라는 자살률, 난무하는 비방과 적개심과 분쟁과 시위의 현상들, 갑질이라 일컫는 가진 자들의 가히 엽기적인 횡포…. 우주적 존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군상의 모습들이다.우리의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만도 천억 개의 항성이 있고, 그 은하계와 같은 우주가 다시 수천억 개가 있고…. 그 밖에는 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게 우주다. 그런 우주의 일부고 본질인 내가 지금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군자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내가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혹이나 망설임이 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말든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고 엄연한 사실이니까.오늘 밤에는 아예 텐트와 막걸리 병을 들고 들판으로 나왔다. 옛날에는 밤새워 물꼬를 지키거나 미꾸라지 통발을 놓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밤중에 들판에 나오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 수백만 평 너른 들판을 독차지한 기분을 누가 또 알란가. 오이와 풋고추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거나해진 기분에 수천만 벼 포기들을 관중삼아 리사이틀을 벌인다. 동요메들리에서 가곡을 거쳐 뽕짝으로…. 그야말로 독무대다.박수갈채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유하는 소리도 없으니, 이 들판의 벼들이 내 노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한다. 그런즉 내 노래의 흥겨운 기를 받은 이 들판의 쌀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기능성 식품으로 특허를 내도 좋으리라. 후텁지근한 열대야를 흥겨움 열(十) 대야로 바꾸는 이 노하우도 함께.

2018-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