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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을 위하여!

▲ 김진호 편집국장“사는 게 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나?”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에게 던져온, 해답없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 부단히 자신에게 물어보고, 책에도 물어보고, 친구·동료·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답이라 할 만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바로 그 질문이다. 이제 불혹(不惑)은 물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지난 요즘 내게 다시 찾아온 질문이다.그러던 어느 날, 법륜 스님이 쓴 `인생수업`이란 책을 보다가 공감한, `답 아닌 답`을 만났다.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 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다.”내 답답한 가슴과 머리, 그리고 질문의 핵심을 한번에 꿰뚫는 말이었다.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다니….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있었다.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이미 한국사람이 돼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한국사람이 됐지?`이렇게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자꾸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이렇게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서 뭐 해.`하는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져들게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제안한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메뚜기도 살고,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구나. 나도 살고, 저 사람도 산다. 모두 살고 있는 데,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걸까? 괴롭게 사는 것 보다는 즐겁게 사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까?`이미 살고 있는 존재로서 이렇게 생각하는 게 건강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그냥 죽는다. 결국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스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사나?”질문속에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숨어있다고 꼬집었다. `나는 특별하다. 그러니 특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해서 괴롭다.`이 세상 사람 누구라도 자기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은 시인은 “나란 존재는 빅뱅이요, 우주의 중심”이라고까지 했다. 내가 없으면 우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란다.그래서 내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삶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그렇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이 보는 어떤 이의 삶은 아름답고, 어떤 이의 삶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게 없다. 모든 이의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거룩하고, 축복할 만한 기적이다.`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쓴 베스트셀러 `할아버지의 기도`란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외할아버지는 건배할 때면 늘 잔을 부딪치며 히브리어로 `레치얌`하고 외쳤다. 히브리 말로 `삶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거예요?”“아니, 그냥 삶을 위해서 라는 뜻이란다.”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레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기도문 같은 거예요?”“아니란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청하느라 기도하지. 그러나 우리는 이미 생명을 지니고 삶을 살잖니. 레치얌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란다.”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 `삶을 위하여`라는 뜻의 `레치얌`이란 말을 건배사로 외쳤다. 이처럼 상실과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절절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기적같이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건배하자. 레치얌!

2015-03-20

눈물젖은 빵

▲ 김진호 편집국장괴테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한마디로 고난과 역경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얘기다. 얼마 전 재미교포 프로골퍼 제임스 한(34)이 프로 데뷔 12년 만에 처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소식은 내게 `눈물젖은 빵`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2003년 프로 데뷔를 한 제임스 한은 대회에 출전할 여유가 없어 백화점 구둣가게와 광고 회사, 골프용품에서 일을 해 출전 경비를 마련했다는 일화를 남겼고, 이런 사연들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여자프로 골퍼 신지애 역시 눈물젖은 빵을 먹고 성공한 경우다. 수년 전 모 방송프로에 나온 신지애는 개척교회 목사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생활조차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를 눈물과 함께 털어놓기도 했다. 신지애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난 후 받은 `눈물의 보험금`으로 골프를 계속해 세계 여자프로골프계를 석권하는 성공을 이뤄냈다.눈물젖은 빵과 함께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는 언제나 감동으로 이어진다. 지난 해 종편채널에서 방영된 서민갑부 박영수씨와 김기성씨 역시 바로 `눈물젖은 빵`의 주인공들이다.박영수씨는 경남 창원에서 손짜장면을 전문으로하는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데, 점심시간마다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뤄 연간 7~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중국집 사장이다. 한때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그는 손짜장면에 가장 중요한 수타기술을 배우기 위해 짜장면집 직원으로 들어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성공을 이뤄냈다.신발수선으로 인생역전을 이뤄낸 억대 연봉의 사나이 김기성씨도 과거 일확천금을 바라며 방독면 마스크사업, 앙고라 토끼분양사업, 커피필터 사업 등을 벌였지만 손대는 것 마다 줄줄이 실패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마흔 네살 이후 허황된 꿈을 접고 신발 수선 일을 택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10년동안 365일 하루도 쉬지않고 일한 그는 지금 국내외 최정상 브랜드 등산화를 수선하는 억대 연봉의 사나이가 됐다.정치지도자 가운데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쉬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눈물젖은 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박근혜는 아홉 살에 대통령의 딸이 됐고 그 위상은 18년 동안 지속됐다. 아버지가 피살된 후 청와대를 나와 권력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는 데, 은둔하다시피 한 생활이 18년 동안 이어졌다. 전 대통령의 딸로서 사회적인 위상도 있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배신으로 박근혜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던 중 정치에 입문해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소신과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선거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1953년 태어날 때 아버지 시중쉰은 서북지방 당·정·군 책임자로 공산당 실세였다. 그래서 1950년대 중국에서 수천만 명이 굶어죽던 시절에도 귀족처럼 지냈다. 그러나 시진핑이 아홉 살이던 때 아버지 시중쉰이 반당분자라는 모함을 받아 연금됐고, 13세가 되던 해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쳐 서북지방 산골마을로 하방(下放)됐다. 그는 철저하게 바닥까지 떨어져 오지 마을 주민과 똑같이 요동(窯洞)이라 불리는 동굴생활을 해야 했다. 농사일은 중노동이었고, 더 힘든 건 이와 벼룩이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대는 바람에 당시 시진핑의 피부는 피투성이였다고 한다.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쳤던 시진핑은 고심끝에 다시 오지로 돌아가 기층 민중으로 태어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이후 시진핑은 6년 만에 지방 공산당 요원이 됐고, 승승장구해 마침내 국가주석의 자리에 올라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이 됐다.성공을 원하는 당신! 지금 당신앞에 있는 `눈물젖은 빵`을 기꺼이 씹어 삼키라. 날이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2015-03-13

세컨드 윈드

▲ 김진호 편집국장스포츠에는 감동이 있다. 인간승리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게다. 지난 주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에 이민 간 재미동포 골퍼 제임스 한(34·한국명 한재웅)의 미국PGA 우승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의 우승소감은 소박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넘쳤다. “대회 우승보다 아버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분된다”고 말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앞으로 몇 주일간 기저귀를 많이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우승상금 120만6천달러(약 13억4천만원)와 함께 2년간 투어 카드, 올해 마스터스 출전권을 함께 따냈다.제임스 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미국학과 광고학을 공부했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약 3개월간 짧은 프로 골퍼 생활을 했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나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프로 골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회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신발가게에서 신발 판매·유통·고객 응대 업무를 하며 돈을 모았다. 캘리포니아 리치먼드 골프장에 있는 골프용품 매장에서도 일했다. 2007년에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활동하다가 2008~2009년 캐나다 투어로 무대를 옮겼다.그는 특히 2008년 캐나다 투어에 출전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한 그의 주머니엔 200달러(약 22만원)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뒤 캐디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과 집으로 돌아갈 비용조차 없어 누구에게선가 돈을 빌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대회를 치르면서 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사이트를 뒤져야 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언젠가는 내 인생에 기회가 올 것이란 울림이 있었다. 한편으론 친구들과 어울리고 주말에 파티를 즐기느라 모든 것을 골프에 쏟아붓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을 돌아본 그는 그 대회에서 8위에 올라 상금 3천달러를 받았다. 당시엔 그 돈이 100만달러 보다 더 크게 여겨졌단다. 그 이후 그는 2009년 미국 PGA 2부 투어인 내셔널와이드 투어 출전권을 따냈고, 2013년 PGA 투어로 올라섰으며, 대회 65번째 출전만에 생애 첫 우승의 꿈을 이룬 것이다.삶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고 주문할 때 흔히 물컵의 비유를 든다. 물이 반 정도 남은 물컵을 보고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남아있는 물의 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물이 줄어들고 있는 지, 늘어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이 늘어나고 있다면 컵 바닥에 물이 조금밖에 없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점점 늘어나 마침내 컵에 물이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주 힘든데 단순히 생각만 바꿔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이 아주 힘들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인지 아닌지를 봐야한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 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나, 아니면 물이 줄어들고 있나.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42.195km를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세컨드 윈드가 찾아온다. 숨이 끊어질 듯 하고, 옆구리가 당기고 가슴이 아프다. 세컨드 윈드의 증상인 데, 그 순간만 지나면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노련한 마라토너는 숨이 멎을 듯한 세컨드 윈드가 찾아오면 기뻐한다. 호흡이 안정되기 직전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이 순간이 바로 세컨드 윈드일 수 있다. 당신의 현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 해도 그것이 세컨드 윈드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그럴 때 꿈은 이루어진다.

2015-03-06

프랑스 육아법

▲ 김진호 편집국장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바르고, 훌륭하게 키워낼 수 있을까. 부모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필자도 대학에서 교육학은 물론 교육심리학까지 공부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깜깜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에게 대드는 행동을 하지 않고,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보채지 않고 일찍 잠드는 아이로 키우는 프랑스 육아법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육아법`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인 파멜라 트러커맨이 쓴 책 `프랑스 아이처럼`의 실전편으로 펴낸 책에 잘 소개돼 있다. 프랑스 육아법은 루소가 “아이를 확실하게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 말에 철학적 기초를 두고 있다.프랑스 육아법에는 세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첫째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줘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데에는 욕구의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이 프랑스 가정에서 가장 신기해하는 조용한 식사시간과 규칙적인 수면시간도 이같은 원칙에서 비롯된다. 정에 이끌려 `이번만은 봐 줄게`하는 한국 엄마와는 달리 프랑스 엄마들은 한번 아닌 것은 절대 아니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따라다니면서 먹이지 않는다. 식사시간 내에 먹지 않으면 엄마가 먼저 먹고 치워버린 뒤 다음 식사 때까지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방송에 나온 프랑스 엄마의 어린 딸은 세 살인데도 밥 안 먹겠다고 떼쓰는 한국 아이를 모니터로 보고서는 “오데뜨, 엄마가 밥 안 먹으면 어떻게 하지?”하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맘마 없어” 라고 대답한다.둘째로 밥상머리에서 교육이 이뤄진다. 한국에서는 식사할 때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들은 밥그릇을 가지고 다니면서 떠먹여주고, 아이는 손에 태블릿PC를 들고 만화영화나 게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프랑스 청소년들의 90%는 주 5~6회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식사자리에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요리에 적응해 천천히 기다리며 먹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전통이 초등학교부터 토론식 수업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된다. 또 배 고프면 언제라도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간식은 구테(gouter)라고 정해진 오후 간식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은 절제와 인내심을 배우는 것이다.셋째로 부모가 아이와 물리적, 정신적으로 확실한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프랑스 엄마들은 통화중에 아이가 칭얼대거나 운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지 않는다. 전화를 끝나면 얘기를 들어주겠다며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 약속을 지킨다. 전업주부도 낮에 영화를 보거나 미용실에 가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탁아소에 유아를 맡긴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영미권이나 우리나라 엄마들은 시소나 미끄럼틀 곁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프랑스 엄마들은 대개 놀이터 주변에 떨어져 있다. 아이와 엄마인생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우리네 엄마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아이에게 휘둘리는 한국 엄마들에게 아이, 엄마 모두가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법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떼쟁이 아이 때문에 육아가 전쟁이 되고 있는 한국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프랑스 육아법에서도 프랑스 엄마들이 마법 같은 재주를 부리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보다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내 아이를 남의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쓰기와 읽기는 네가 먼저 배우기 전에는 남에게 가르칠 수 없다. 올바르게 사는 기술이란 더더욱 그렇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사는 기술을 가르치기가 그리 쉬울리 없다.

2015-02-27

복고(復古), 그 안의 그리움

▲ 김진호 편집국장복고풍이 유행이다. 특히 영화, 음악, 그리고 패션에서 복고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복고열풍의 중심에 서있다. 1950년 한국전쟁을 지나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황정민 분)네 다섯 식구 이야기를 그린 국제시장은 아직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건재하며 관객 수를 추가하고 있는 데, 11일까지 누적관객수만 1천320만명이란다. 한국 포크 음악의 산실인 무교동 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무대로 한 영화 `쎄시봉` 역시 화제다. 이 영화에서는 모티브가 된 `웨딩 케이크`를 비롯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하얀 손수건` `딜라일라` 등 그 시절을 풍미했던 음악이 영화의 적재적소에 버무려져 관객들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를 선물한다.영화 `쎄시봉`의 실제 주인공들인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은 다음 달부터 전국투어에 나선다. 이들은 3월 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2015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란 타이틀로 투어를 시작, 3월 21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 4월 12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들은 2010년 MBC `놀러와`에 함께 출연해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에 불을 지피며 쎄시봉 열풍을 일으켰으며, 2011년 전국에서 쏟아지는 공연 요청에 `쎄시봉 친구들`이란 제목으로 투어를 펼치며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그 뿐이랴. 요절한 대구출신 싱어송라이터 김광석도 다시 뜨고있다. 김광석추모사업회가 후원하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콘서트가 2009년부터 시작돼 한 가수를 추모하는 단일 공연으로는 최장기, 최대 규모의 공연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올해 초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특집이 인기를 큰 이후 패션에서도 복고열풍이 뜨겁다. 온라인쇼핑몰 AK몰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단추 모양 때문에 일명 `떡볶이코트`라 불리는 더플코트가 1억4천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서 전년 동월대비 무려 195배 신장했다. 또 청청패션의 부활로 데님재킷 매출 역시 전년대비 15배 신장했으며, 미 공군들이 입던 항공점퍼에서 유래한 보머재킷 매출도 20배 증가했단다.복고열풍은 `추억은 그리움`이란 등식을 보여준다. 60년대에 출생한 50대 중년이나 1990년대에 출생한 30대 젊은 직장인이나 자신의 어린 시절 유행하던 노래, 옷, 영화, 가로 풍경들에 애틋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사르트르는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비평문에서 “인생은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인 기쁨인, 내일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다”라고 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빛나는 보배라는 얘기다. 어린 시절 겪었던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복고열풍은 그런 의미에서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포항출신 김만수 시인은 시집 `바닷가 부족`에서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이렇게 노래했다.“저무는 숲실바다로 날리어 간/하모니카 소리가 돌아오곤 했다/요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어릴 적/어링불로 불리어가던 그 소리에는/뜨거운 그늘이 있어 저물녘/동쪽으로 길어지곤 했다//오늘 다시/소리 그늘이 노을 속으로 길어지는 걸 본다/아버지 불다 가신/ 바람 칸이 무너진 영창 하모니카/놀랍게도 봄바람속/굴러오는 그 소리를 듣는다// 옛날의금잔디동산에메기같이앉아서놀던곳/노을 지는 강 하구에 앉아/서쪽 포구로 먼저 간다고/먼저 가서 거기 소금 고방 근처에/얼쩡거리고 있으리라고/거친 숨 넣고 빼며 부셨던/그 하모니카 소리 오늘 다시 듣는다//”(시 `하모니카`전문)마음만 젊은 50대로 선 내게 봄 바람속 하모니카 소리가 들릴듯 말듯 은은하다.

2015-02-13

마법의 사과

▲ 김진호 편집국장`증세없는 복지`논란은 얼핏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수수께끼같은 화두다.두 사나이가 긴 여행을 하는 도중, 배가 매우 고팠다. 그런데 어떤 방에 들어가보니 맛있는 과일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져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한 사나이는 “과일은 먹고 싶지만, 너무 높은 데 있어서 손이 닿지않는군”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나는 꼭 저 과일을 먹어야겠다. 아주 높은 데 매달려 있지만 저기 매달려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매달았다는 것이니 우리라고 올라가지 못할 리 없다”고 말한 뒤 주변을 샅샅이 뒤져 사다리를 찾아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과일을 손에 넣었다.`증세없는 복지`역시 이처럼 맨손으로는 닿지 않는, 천장에 매달린 과일같은 현안이 아닐까.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5일`증세없는 복지`논란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대한 전면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자 “무상급식과 보육문제는 전반적 재점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상급식과 보육을 완전 폐기한다고 할 수는 없고, 재검토하겠다는 표현이 완전 포기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아직은 조금 앞서가는 것”이라고 했다.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전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고 밝힌 것에 비해선 다소 후퇴한 셈이다.`증세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기에 이를 전면 재검토하는 문제는 청와대의 조율없이 함부로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가 한 발 후퇴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당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헤아려야 할 새누리당과 대선공약 철회라는 자충수를 둬야만 할 상황인 청와대, 정치권 합의없이는 총대 메기 싫은 정부 등 3자의 고심이 어떻게 정리될 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어떻든 `증세없는 복지`를 도입했던 북유럽 여러 나라들이 재정파탄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걸 감안한,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야 할 국면이다.골머리를 앓고 있을 당·정·청 관계자들에게 유태인의 경전이라 불리는 탈무드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한다. 옛날 어느 왕국 임금님이 외동딸을 갖고 있었는 데, 무서운 병에 걸려 수일내로 묘약을 먹이지 않는 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딸을 무척 사랑한 임금은 딸의 병을 낫게 하는 사람에게 딸을 주고,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포고문을 내걸었다. 왕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벽촌에 세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제들은 각각 부모로부터 보물을 한가지씩 물려받았다. 아무리 멀리 있는 물체라도 잘 볼 수 있는 마법 천리경과 하늘을 날아 어디라도 빠르게 갈 수 있는 마법융단, 그리고 먹으면 무슨 병이라도 낫게 하는 마법의 사과였다. 이 중 마법 천리경을 갖고 있는 큰 형이 왕이 내건 포고를 보고, 공주의 병을 낫게 해주자고 제안했다. 형제들은 하늘을 나는 마법융단을 타고 왕궁으로 가서 공주에게 사과를 먹였다. 그러자 공주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공주와 결혼할 부마를 발표하려 했다. 큰 형은 “내 망원경이 없었다면 공주가 병든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고, 둘째 형은 “마법 융단이 없었다면 공주가 죽기전에 이렇게 먼곳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막내 동생 역시 “사과가 없었다면 병을 낫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임금이라면 누구에게 공주를 시집보낼 것인가. 답은 마법의 사과 주인인 막내 동생이다. 마법 천리경과 마법 융단을 가진 형들은 천리경과 융단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동생은 자신이 가진 보물인 마법사과 자체를 공주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할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가장 고귀하다`는 것이다. 이 나라 복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마법사과를 내놓을 정치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2015-02-06

처음처럼

▲ 김진호 편집국장“불교가 지난 50년 동안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 육사생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군인정신이 있는 데, 도대체 우리는 `중 정신`이 없다. 이러나 국민이 상구보리(上求菩提·위로 깨달음을 구함)만 있지, 하화중생(下化衆生·아래로 중생을 교화함)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최근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린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배중 100인 대중공사`(이하 대중공사)자리에서 스님과 신도 등이 모인 가운데 현 조계종의 풍토를 모질게 비판해 화제가 됐다. 대중공사는 자승 총무원장의 선거공약으로 절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 구성원이 모여 토론을 벌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불교 전통방식을 말한다.대한불교조계종 행정총책임자인 자승 총무원장은 이날 스님들의 `중 정신`부재와 매너리즘을 질타하며 자신의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그는“어려서 출가해 정화(淨化·대처승을 절에서 쫓아낸 일)한다고 절 뺏으러 다니고, 은사(정대 전 총무원장)스님 모시고 종단정치 하느라 중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자신이 종단정치만 아는 사판승(事判僧)이란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래, 맞다. 그렇다고 이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인가”라며 되받아친 뒤 “지금 당장은 쇼로 보일지라도 10년, 20년후에 추수한다는 심정으로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이 나라 불교계가 `중 정신`회복을 자정과 쇄신의 출발점으로 찾고 있다면 이 땅의 평범한 백성들은 무엇을 삶의 기준으로 세워 자신을 바로 세울까. 우리 전통윤리 가운데 선비정신을 따라보자.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 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선비정신은 조선시대 이래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전통윤리다.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 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평생 기자생활을 했으니 기자정신을 기준으로 삼는 게 맞을지 모른다. 기자정신은 뭘까. 처음 기자시험을 볼 때 이야기다. 면접관이 내게 물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그 때의 순진무구한(?) 나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여러 직업이 있지만 기자란 직업이 사회의 목탁이자 빛과 소금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도덕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그게 모범답안인 양 천연덕스럽게 내뱉었다. 진실을 직시하며,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내가 아는 기자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4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그 때묻지 않은 기자는 어디로 갔나.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해본다.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뭔가를 열심히 추구하다보면 종종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경우에는 사람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많다. 개인은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하면서 정작 그 돈 때문에 불행해지는 일이 많다. 가정에서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입시 공부로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도 성적을 비관해서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이다.삶·죽음·인생…. 도대체 알 수 없는 화두를 부여잡고 용맹정진 수도를 해온 스님들 마저 자성의 소리를 내는 이 마당에 나는 얼마나 초심을 지키며 살아왔나 다시한번 자문한다. 돌이켜 선비정신, 기자정신 반 쪽인들 지켜낸 삶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법성게`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正覺)`이란 구절이 있다. 누구나 처음 발심할 때의 마음을 그대로 계속하면 문득 정각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처음 마음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처음처럼`소주 한잔 어떠신가?

2015-01-30

본질을 꿰뚫는 말

▲ 김진호 편집국장중국 고전인 열자(列子)의 `황제편`에 조삼모사(朝三暮四)란 고사성어가 나온다. 중국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바꾸어 말하니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가리킨다.이 고사성어가 `증세없는 복지`를 내세우며, 연말정산 방식을 바꿨다가 `13월의 세금폭탄`논란을 일으킨 여당과 정부를 꼬집는 말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방식으로 변경하는 바람에 올해 보험료, 신용카드, 교육비, 의료비 등 직장인 연말정산의 `4대 공제항목`공제액이 6년전에 비해 13.4%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득 중·상층에 대한 공제가 줄면서 사실상 증세가 이뤄지자 급격한 민심이반이 일어났고, 심각성을 느낀 여당과 정부가 수습에 나서 공제액을 상향조정하는 보완책과 함께 소급적용이란 고강도처방을 내놓은 형국이다.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여당과 정부는 새로운 고민으로 빠져들고 있다.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증세없는 복지`를 고집하는 게 옳으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공법으로 증세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아예 “증세없는 복지라는 말은 위선적 표현”이라며 “깎아주던 것을 원상복구하는 것도 증세인데, 정부에서 증세가 없다고 하면서 증세를 하니 문제”라고 혀를 찼다고 한다. 정책위 관계자도 “복지수준이 이대로 계속 증가한다면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경기에 직격탄이고 모든 국민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언젠가 증세냐 복지냐를 이야기해야 할 날이 올 수밖에 없다”며 원론적 차원에서 증세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야당은 야당대로 총선을 1년 앞두고 연말정산 파동이 터지자 여당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를 거론하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기재위 차원의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윤호중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 의도를 숨기려고 국회와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선 정밀한 검증과 조사와 청문회가 있어야 하고 더 필요하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조삼모사의 방책으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말과 글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구사할 때 힘을 발휘한다.꽃이 만발한 파리의 어느 봄날, 노트르담 대성당앞에 한 눈먼 거지소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러던 중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는 푯말 문구 밑에다 한 마디를 더 써주고 갔다. 그러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소녀에게 다가와 돈을 주면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지나는 사람에게 소녀가 물었다. “여기에 뭐라고 썼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가요?” 그 남자가 덧붙인 한 줄의 문장은 이랬다. `나는 당신들이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봄을 보지 못합니다.`여기에서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눈먼 소녀를 구걸하는 `거지`로 보았지만 그 남자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봄의 아름다움을 눈이 멀어 누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했고, 이를 한 줄의 시처럼 표현해 지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본질을 꿰뚫은 글이 힘을 발휘한 일화다.우리 정치가 본질을 꿰뚫는 말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2015-01-23

굵고 짧게 vs 가늘고 길게

▲ 김진호 편집국장어린 시절 나는 `굵고 짧게 살자`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번뿐인 삶을 폼나고 멋있게 살자는 말이니 옳고, 좋다고 믿었다. 그래서 굵고 짧게 산 위인들의 전기를 즐겨 읽었다. 그들의 신화는 언제봐도 탄성을 자아냈다. 지난 2011년 10월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스티브 잡스 역시 자타공인 `굵고 짧게`산 인물이다. 약관 20대 후반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놔 세상을 뒤흔들었던 그는 죽기 직전에 애플 신화를 낳으며 하나의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태블릿PC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아이패드를 발표하기 위해 TV에 나온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짧은 머리에 항암치료 여파로 홀쭉한 볼, 움푹 파인 관자놀이는 마치 수도사를 연상케 했다. 안경 너머의 눈에서는 젊은 시절의 당당함이나 자신감 대신 섭리에 순응하겠다는 듯한 고뇌와 성찰이 내비쳤다. 누군들 굵고 길게 살고 싶지 않으랴. 남다른 노력으로 기념비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 굵을 수는 있으되 길기는 쉽지 않다. 성취에는 가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 일상처럼 따르게 마련이었을 것이다.“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지난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가 한 연설은 자신의 굵고 짧은 삶을 미리 내다본듯 했다.그러나 별달리 이룬 것 하나 없이 스티브 잡스가 숨진 나이에 근접한 필자는 이제 마음을 바꿔 먹었다. `가늘고 길게`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한국영화 11번째 천만관객의 영화로 떠오른 `국제시장`의 주연배우 황정민이 TV에 나와서 소감을 말했다. “전 늘 관객분들한테 이야기하지만 인생을 가늘고 길게, 배우로서도 가늘고 길게…굵고 짧게는 싫습니다.”그의 농담반 진담반 섞인 소감이 가슴에 와닿았다. 백세시대에 `굵고 짧게`는 저주가 될 수 있다.사실 `가늘고 길게`란 말은 대구출신으로 충암고와 동국대를 나와 1983년부터 OB베어스의 투수로 활약한 야구선수 장호연이 유행시킨 명언이었다. “가늘고 길게 갈게요”를 입에 달고 다닌 그는 OB베어스에서 10년동안 109승을 올렸다. 확실히 `가늘고 길게`선수생활을 했다.내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소리꾼 장사익(65)은 상고 졸업후 보험회사를 비롯해 직장 10여 곳을 다니다가 마흔을 넘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걸로 잘 알려져있다. 장사익은 데뷔이후 20년을 한결같이 노래하는 데, 콘서트할 때 마다 티켓이 매진된다. 그의 노래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이, 또 한편으로는 가슴을 후벼파는 단장의 슬픔과 한이 넘친다. 그의 작곡방법은 독특하다. “해거름녘 좋아하는 시를 벽에 붙여놓고 가만히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와유.” 가사에 소리를 얹고 마음을 담아 곡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선지 그의 노래는 꾸밈없고 편안하면서도 청중의 심금을 울린다. 신곡 녹음을 할 때도 남다르다. 반주 먼저 녹음하고 노래를 맨 마지막에 녹음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모든 연주자와 함께 녹음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는 거기에 대해“오늘 바로 지금의 호흡이 주는 맛과 멋이 있으니까요”라고 답한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구수한 충청도사투리로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흔 살까지 갈라구유. 삐걱삐걱하면서. 죽음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을지, 흥미롭게 기다려유. 가늘고 길게 가야 돼, 우덜은. 스포츠처럼 굵고 짧게 가면 안 되쥬.”굵고 짧기 보다 가늘고 길게 가야할 백세시대다.

2015-01-16

천냥 빚 갚는 말

▲ 김진호 편집국장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리고, 마트에선 직원을 폭행하는 일부 소비자의 `갑질`행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모 방송사 저녁뉴스에 소비자의 친절을 유도하는 마케팅이 보도돼 화제다. 환한 미소와 함께 “경진 씨,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하면서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흔치 않은 풍경이 이어진 것은 존댓말로 주문하는 손님에겐 커피값의 20%를, 명찰을 보고 직원 이름을 부르며 따뜻한 말을 건네면 50%를 깎아주는 이벤트 행사 때문이었다. 무뚝뚝한 말로 주문하면 50% 할증요금을 받는다는 대목에 이르면 마냥 웃을수 밖에 없다. 직원도 손님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손님들도 “직원분이 웃으시니까 저도 재미있고,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게 돼요.”라며 호의적이다.친절에 관한 유머도 있다. 옛날 시골 장터에서 박씨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다. 하루는 젊은 양반 둘이 고기를 사러왔는 데, 가게에 먼저 들어선 양반이 “어이 백정, 고기 한근만 다오”하고 하자 “네, 여기있습니다”하며 고기를 내주었다. 두번 째로 들어선 양반은 어딘지 나이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기가 그래서 “거 박서방, 고기 한근 주시게”하고 반공대로 말했다. 그러자 역시 백정은 “네, 여기 있습니다”하며 고기를 내주는 데, 그 양이 먼저 양반보다 훨씬 많은 게 아닌가. 이를 본 첫번째 양반이 큰 소리로 따졌다. “아니 이놈아, 같은 한근인데 어찌 양이 이리도 차이가 나느냐”그러자 백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아, 네. 그야 손님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분 고기는 박 서방이 잘랐으니까 그렇습지요”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말이다. 고운 말 쓰는 것은 종교를 불문하고 권장사항이다. 지난 연말 산행중에 들른 북한산 승가사 마당 게시판에는 이런 시가 걸려있었다. “자신을 비판한다고 공격적으로 응대하지 마세요/ 모든 다툼은 두 번째 응답에서 비롯됩니다.//마음이 넓은 사람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찍는 도끼에 향기를 뿜어냅니다.” 산사에 이는 맑고 청량한 바람 덕분인지 공감하는 마음과 함께 지난 한해 속좁은 사람이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홀로 반성하며 새해에는 향나무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의 작품에서도 향나무 얘기가 이어진다. 그는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치는 도끼에 향을 바른다`는 제목의 작품에서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발라 주는 삶을 예수님의 삶으로 비유했다. 이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44절)는 성경구절과도 일맥상통해 설교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친절한 말은 어디서도 통한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으로 천년고도 경주를 `품격 있는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새해 포부를 밝힌 최양식 경주시장은 7일 신년인사차 본사를 찾은 자리에서 뜻밖의 고민을 털어놨다. “올해 경주 동궁원 옆에 `제2동궁원`을 조성해 체험관광 테마공원을 만들고, 신라대종 테마파크 조성과 신라 6부전56왕전 역사관 건립, 김유신 장군 옛집 복원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광인프라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 친절한 말쓰기 운동입니다.” 최 시장이 고심할 만큼 경주의 친절지수는 그리 높지않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동북지방통계청과 협업으로 경주시 외국인 숙박관광객 실태를 조사한 결과 종사자의 친절성 항목에서 불만스럽다는 반응이 8.3%로 나타났다. 실제 경주지역 식당·택시 등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말본새는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최 시장은 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언론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였다.친절한 말 한마디는 손님과 서비스 종사자 모두에게 지켜야 할 덕목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새삼스런 요즘이다.

2015-01-09

선택과 집중

▲ 김진호 편집국장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았다. 띠로 풀이하면 올해는 청양띠해로서 진실, 성실, 화합을 의미한다. 십이간지에서 양은 성격이 착하고 유순하며 무리를 지어 살면서 화목하고 평화롭게 사는 동물로서 사회성이 뛰어나고 공동체에 잘 적응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 여기에 빠르고 진취적인 `청색`의 기운이 덧씌워졌으니 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주말에는 서울 삼각산 승가사(三角山 僧伽寺)에 올랐다. 북악산과 남산 등 서울시내를 내려다 보기 딱 좋은 곳에 들어선 절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승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로 756년(신라 경덕왕 15)에 수태(秀台)가 창건, 당나라 고종 때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중을 교화하면서 생불로 알려진`승가(僧伽)`를 사모하는 뜻에서 승가사라 했다고 한다.특히 절 서북방 100m지점에 있는 바위벽에 보물 제215호로 지정된 `석가여래상(구기리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부각돼 있는 데, 그 높이가 약 6m에 너비 5m로 웅장했다. 여래상으로 올라가는 108계단 아래서 부처님 상을 바라보노라니 얼굴에 광채가 나는 듯 했다. 1천년을 넘은 돌 부처님 얼굴에 광채라니 내가 잘못보았나 싶었는 데, 바위 벽에 깎을 때 부터 흰 속살결을 생각하고 깎은 모양이었다. 가파른 산자락에 절과 보탑을 세우고, 얼굴에 은은한 광채를 드리운 부처님을 바위 벽에 현신시켜놓은 걸 보면서 사람의 힘, 종교의 힘, 신념의 힘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중국 한나라때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이광이란 장수가 있었다. 하루는 비바람이 많이 부는 날 산속을 가다가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호랑이를 만났다. 놀란 이광은 본능적으로 활을 꺼내 든 뒤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았다. 시위를 떠나 날아간 화살은 보기좋게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호랑이가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 여긴 장군이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호랑이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였다. 궂은 날씨탓에 바위를 호랑이로 착각하고 활을 쏘았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를 뚫고 깊숙이 박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쏜 화살이 바위를 뚫을 만큼 강하다는 사실에 놀라 다시 한번 시험해보기로 하고 활을 들어 쏘았다. 몇 번을 더 시도해보았지만 다시는 바위를 뚫지 못했다. 그때서야 그는 호랑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의 집중력이 바위를 꿰뚫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서 정신일도 금석가투(精神一到 石可透)라는 말이 생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일도의 상태다. 즉, 어떤 일을 성취하려면 그 일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三昧)의 경지다. 삼매는 범어인 `사마디(samadhi)`를 음역한 것으로서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서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광이 눈앞에 나타난 호랑이 모양의 바위를 보고 오로지 호랑이를 맞혀야 한다는 일념에만 몰입한 상태가 바로 삼매의 경지다. 나중에 그것이 호랑이가 아닌 바위임을 알고 난 뒤에 다시 활로 쏘았을 때 화살이 뚫지 못한 이유는 진정한 삼매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호랑이로 간주하고 쏘았기 때문에 아무리 집중해도 뚫지 못한 것이다. 속으로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도 그것들을 밀쳐놓고 `오로지 이 일에만 집중하자`고 정신을 모으는 것은 삼매가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일에 완전히 몰입이 돼야한다. 시간·장소마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들 때 비로소 삼매의 경지가 나타나며, 큰 일을 이룰 수 있다.새해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선택하라.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목적에 온 힘을 집중하자. 선택과 집중은 꼭 이루고 싶은 일을 이루는 데 좋은 답안이 될 수 있다.

2015-01-02

연말 소회(所懷)

▲ 김진호 편집국장어느 덧 한해가 저물어간다. 계속되는 송년회 속에 분주한 크리스마스를 지나며 문득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명절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말 송년회와 각종 모임이 겹쳐 일년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게 보통이다. 아내의 한숨이 늘어날수록 가장이자 남편인 나와 여러분들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경상도 사람들은 자녀들과 다정하게 대화하거나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른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이 사춘기로 뭔가를 고민을 해도 뭐라고 말을 붙여 위로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지 알지 못한다. 부모로부터 그런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들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사실 심각한 일이다.돌이켜 생각하면 나 자신도 아이들과 그리 자주 얘기하지 못했고,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벌써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됐으니 너무 늦게야 깨달은 셈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런저런 얘기로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안간힘을 쓰곤 한다.동아일보 기자출신으로서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남자나이 서른 아홉`이란 제목의 책을 쓴 김상훈 작가는 “우린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법을 배워야 한다. 가족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가장의 소외는 가장스스로 자신을 가족과 격리시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생계를책임진다는 역할에만 매몰된 나머지 더 중요한 다른 역할들을 모두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면서 공감가는 얘기들을 제안했다. 아내를 CEO로 대접하자, 아내의 마음을 읽자, 아이에게 올인하지 말자, 가족에 군림하지 말고 즐겁게 어울리자 등의 조언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는 조언은 `사랑으로 아이를 채우자`는 것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 아빠를 둔 내 아이들은 아빠를 멋없고, 화를 잘 내고, 권위적으로 지시만 하는 아빠로 기억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 내게 그는 아이들이 성장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빠`로 추억해주기를 바란다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내의 잔소리에는 귀막았던 내가 뒤늦게 공감하니 반성!또 반성이다.이번에는 아내얘기를 해보자. 나이든 부부에게 각각 물었다. 가장 필요한 다섯가지를 꼽아보세요. 먼저 질문을 받은 대다수의 부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돈, 딸, 건강, 친구, 찜질방의 순이었다. 서글픈 것은 다섯번째 안에 남편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대다수의 남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 와이프, 집사람, 아내, 애들 엄마.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나이든 사람들은 웃지않고, 숙연해지고 만다. 결코 웃기지 않는, 웃을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부부싸움은 흔히 `칼로 물베기`라지만 자칫 무심코 내뱉은 남편의 말 한 마디에 아내들은 큰 상처를 입는다.부부관계는 남들은 알 수 없는 속사정이 많다.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자 부부관계를 연구하는 어느 연구소가 어떤 사람과 사는 부부가 가장 오래도록 함께 살까에 대해 조사했다. 여러분도 한번 대답해보시라. 첫째 콩깎지 쓰인 양 마냥 좋은 사람, 둘째 마음이 통하는 사람, 셋째 마음이 통할 뿐 아니라 대화가 잘되는 사람, 넷째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잘 될 뿐 아니라 헌신적인 사람 ….정답은 첫째 콩깎지 쓰인 사람과 사는 경우라고 한다. 생각해 보라. 서로에게 콩깎지 쓰인 부부는 서로 최고의 이상형과 함께 사는 것이니 다른 말을 해서 무엇하랴. 아무리 말이 잘 통하고, 헌신적이라 해도 사람의 사랑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내가 최고라고 믿는 바로 그 사람이 내게 제일 좋은 사람인 것이다. 이는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 마음의 조화(造化)다. 올 연말 가족과 함께 변함없는 마음의 조화를 누리며 즐겁게 새해를 맞으시길 바란다.

2014-12-26

`땅콩 회항`의 교훈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5일 뉴욕 JFK공항에서 발생한 대한항공의 소위 `땅콩 회항`사건이 추운 연말 국민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첫 출발은 그저 있을법한 헤프닝이었다. 오너 일가의 까탈스런 성향으로 인한 직원견책, 그리고 회항으로 인한 약간의 연착과 승객들의 불만토로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국토교통부 역시 부실조사 논란에 휘말려 다시 자체 감사에 들어가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조현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에서 땅콩을 봉지째로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내리라고 지시해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이 공항에 내린 후 비행기가 출발하게 했다. 비행기 기내 규정은 땅콩을 요청한 승객에게 땅콩을 봉지째 보여주고, 먹겠다고 하면 갤러리에 들어가서 뜯은 후 작은 그릇에 담아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사무장이 했던 행동은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현아는 사무장의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대한항공은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1969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만든 회사다. 조 창업주의 성공신화도 꽤 흥미롭다. 그는 1947년 경기에서 화물자동차 사업을 시작했고, 1956년 주한미8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았다. 이때 한진 소속의 트럭운전사가 미군의 겨울점퍼를 트럭째로 남대문시장에 팔아넘긴 사건이 있었다. 조 창업주는 직원 한 명을 시장에 상주시켜 유통중인 미군 점퍼를 전량 다시 사들였다. 회사는 금전적 손실을 입었지만 이 일로 조 창업주는 미군의 신뢰를 얻었다. 미군이 같이 일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후 미군은 1966년 월남의 물자수송을 맡겼다. 월남에서 조 창업주는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직접 트럭을 몰고 군수물자를 날랐다. 월남에서 한진그룹은 1971년까지 5년간 총 1억2천만달러(약 1천200억원)라는 막대한 달러를 벌었다. 당시 한국은행의 가용외화가 4천700만달러였다.그런 우여곡절끝에 세운 대한항공이 조양호 현 회장의 맏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슈퍼甲질`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있는 것이다.이 사건이 일반 기업 사무실에서 일어났다면 기업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로 치부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승객들이 타고 있는 항공기에서 일어났기에 `뜨거운 감자`가 돼 버렸다. 가뜩이나 부정적 인식이 많은 재벌기업의 오너 일가가 `슈퍼甲질`횡포를 부렸다니 많은 국민들 역시 조현아에 대해 공분을 느꼈을 것이다.수 천년동안 유태인의 행동양식을 결정해 온 탈무드에는 인간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키소, 코소, 카소`가 바로 그것이다. `키소`는 `돈 주머니`라는 뜻인데, 그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요, `코소`라는 단어는 본래 `술을 마시는 잔`이라는 말인데, 술을 마시는 법이 깨끗한가 더러운가, 또는 인생의 재미를 어디서 찾는가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소`는 `인간의 분노`혹은 `열정`을 말하는 데, 어떤 일을 보고 분노하는가, 또는 인내심이 강한 인간인가 어떤가를 보면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땅콩 회항 사건을 보면 술에 취한 오너 일가 자제가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으니 키소, 코소가 어떠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요, 어떤 일을 보고 분노하는 가를 가리키는 카소 역시 형편무인지경일 수 밖에 없다.끝으로 퀴즈 한토막. 요령이 좋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는 무얼까. 정답은 요령이 좋은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서 잘 빠져나오는 사람을 말한다.그럼, `땅콩 회항` 조현아는 요령이 좋은 사람도, 현명한 사람도 아닌데, 웬 `슈퍼甲질`일까.

2014-12-19

위록지마와 읍참마속

▲ 김진호 편집국장그걸 농담이라고 하고 있나. 청와대의 실세가 진돗개라니…. 대통령의 썰렁한 유머에 박장대소를 한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도 없다. 그저 안쓰럽다고 할 밖에. 살아있는 권력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그런 청와대를 바라보면 위록지마(謂鹿止馬)만 있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사라진 모양새다.위록지마는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 가운데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얘기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환관 조고가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2세 황제로 삼았다. 그런 연후에 조고는 경쟁관계에 있던 승상 이사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던 중 조고가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내기 위해 한가지 꾀를 냈다. 어느 날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며 조고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이에 대해 2세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어찌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오?”라고 했다. 그러자 조고는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이것이 말이냐, 사슴이냐”고 물었다. 조고를 두려워한 상당수 신하들은 말이라고 동조했으며, 잠자코 있는 사람도 있었으나 일부는 사슴이라고 부정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였다. 그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유할 때 이 고사가 인용된다.지금 청와대가 바로 위록지마에 나오는 형국인 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 게이트와 문고리 3인방 이야기를 아직도 `찌라시`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아직도 형세파악을 못할 리는 없을 텐데…. 언론 보도를 보노라면 문고리 3인방을 둘러싼 얘기들은 점입가경이다.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고 한다. 하지만 검찰인들 진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이 국민적 지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과연 진실은 무얼까. 권력 내부에 도사린 진실을 알고 싶은 국민의 열망은 뜨겁기만 하다.몇 가지 가능성은 있다. 먼저 대통령의 입장에서 본 문고리 권력은 국민이 본 문고리 권력과 다를 것이란 가정이다. 즉,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힘없는 서민의 눈높이에서 청와대 문고리를 지키는 문지기의 권력이란 건 무시무시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0년의 야당 생활을 포함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거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문지기는 단순히 문지기일뿐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는 데, 몇몇의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유언비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대통령이 얘기하듯 이 모든 얘기들이 찌라시 수준의 뉴스일 경우다. 이 경우 청와대 내부 문건 작성자가 누군가의 사주나 조종에 휘둘려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봐야 하니 그 누군가를 밝혀내 엄중히 처벌해야 할 일이다.집권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져나온 이같은 추문들은 연말 송년회 술자리에 맛깔스런 안주감이다. 어찌할 것인가.삼국지 `촉지` `마속전`에서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략할 때 가정(街亭) 전투에 마속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평지에 진을 치라고 했으나, 마속은 자신의 생각대로 산에 진을 쳤다가 대패를 당했다. 마속은 제갈량이 아끼는 장수이자 절친한 친우 마량의 아우였지만 지시를 어긴 책임을 물어 목을 베었다. 아무리 친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도 규칙을 어겼을 때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청와대는 이제라도 읍참마속의 고사를 곰곰히 되새겨야한다.

2014-12-12

보이지 않는 고릴라

▲ 김진호 편집국장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실험이 이뤄졌다. 여섯 명의 학생이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두 팀으로 나뉘어 농구공을 패스하는 데, 실험 참가자들은 흰 셔츠를 입은 팀이 농구공을 패스한 횟수를 세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물론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답을 맞혔다. 그러나 정작 실험자들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두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안 검정 고릴라가 등장해 그들 한 가운데서 가슴을 쿵쿵 치고는 사라졌는 데, 그 고릴라를 보았는가가 실험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참가자의 절반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패스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커다란 고릴라를 못 본 것이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크리슨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행한, 너무나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이다. 이 실험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어떤 한 가지에 집착해있으면 그 외의 것은 바로 눈앞에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인생살이도 그렇다. 눈을 돌릴 줄 모르고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거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눈앞에 보이는 걱정거리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좀 더 폭 넓게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내년부터 담뱃값이 2천500원에서 4천500원으로 훌쩍 오르는 것을 계기로 금연의지를 다지는 끽연가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 대만 피고 진짜 끊는다”라고 다짐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담배를 입에 물며 금연의 어려움을 절감하는 흡연자들이 의외로 많다. 의지 부족이라고 자책하는 경우도 있는 데, 의지만의 문제로 돌릴 필요는 없다. 담배 속에는 니코틴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니코틴의 중독성은 헤로인, 코카인 등 마약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흔히 초조, 불안, 손 떨림 등 금단증상도 바로 니코틴 때문에 발생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아 피우는 사람은 니코틴 의존도가 높은 편인 데, 이런 사람은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기가 어렵다. 이럴 때 금연 보조제를 사용하면 금단증상을 줄여줘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학창 시절, 기계체조와 격투기 등 스포츠를 즐겼던 나는 수 년전 지인들과 등산을 갔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숨이 가빠오는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금연을 결심했다. 담배가 인체에서 산소교환기 역할을 하는 폐를 얼마나 빨리 망가뜨리는 지 깊이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굳은 결심으로 금연한 지 5년여가 흘렀다. 언제나 달고 다니던 기침·가래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웬만한 산을 오를 때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나는 요즘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말하는 것 처럼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담배를 끊은 것입니다.”특히 금연에 성공하고 나니 가족들이 가장 기뻐해주었다. 담배는 피우는 당사자는 물론 간접흡연을 통해 아내와 아이들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애연가의 근거없는 집착, 거기서 비롯되는 사회적 차별은 적지않다. 웬만한 고급식당에서는 손님대접 받기 어렵고, 관공서나 공공건물에서는 사람대접도 받기 어렵다. 길거리나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워도 눈총 받거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추운 겨울,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찬 바람부는 회사앞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 동지들의 모습은 측은하기만 하다. 애연가들은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상종도 못할 사람`이라며 혀를 찬다. 부러운 걸 티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일게다.다시 한번 강조한다. 담배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기호품이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우리 삶에 다가오는 `치명적인 고릴라`를 직시하고, 금연대열에 동참하길 바랄 뿐이다.

2014-12-05

원전정책 이래선 안된다

▲ 김진호 편집국장정부가 최근 울진과 영덕지역 원자력발전소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을 두고 지역민들과 직접 협상에 나섰다. 울진지역은 큰 무리없이 2천800억원 수준의 대안사업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으나, 영덕지역에서는 아직도 지역민들의 불만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은 듯 하다.사실 원자력발전소를 고향 마을에 유치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정부지원금으로 고향발전을 이루기 위해 유치운동을 벌이는 쪽의 심정도 이해되지만 만일의 경우 원전사고를 걱정해 유치반대를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않다.그런데 지난 주말 울진과 영덕 원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비 협상과정을 들여다 보노라니 문득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울진에는 원전이 6기가 있고, 앞으로 신한울원전 4기가 더 들어설 예정이다. 지금 들어서 있는 원전은 권위주의 정권시대에 원전의 위험성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에 세워졌다. 주민들도 원전에 대한 위험성이나 세부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였고, 중앙정부도 지역주민에 대한 특별한 배려없이 소정의 지원금으로 주민들을 달래며 생색을 내왔다.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원전에서 방사능유출 등의 사고가 벌어질 경우 지역주민들이 감수해야 할 피해는 필설로 논하기 조차 어려운 것이다. 살아 생전 다시는 고향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게 원전의 위험성이자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역주민들이 바라는 지원사업비 몇백억원을 주니 못주니 흥정을 벌이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원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금을 주면서 `거지 동냥주듯`해서야 되겠는가. 이번에도 울진지역 주민들이 지원사업비를 올려달라고 하자 정부 관계자는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다가 지원금을 조정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전례가 없는`이유가 예전에는 국민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허락을 얻지 않고 슬며시 세웠기 때문은 아닌가.정부의 지원사업비 책정 기준도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방폐장이 들어서는 경주지역과 원전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인 울진·영덕지역을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경주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3천억원에 플러스 알파, 그리고 한수원 본사 이전 등의 혜택을 받았다. 그에 비하면 울진 영덕에 대한 지원은 터무니없이 적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방사성폐기물은 방사성동위원소의 반감기가 길 뿐 어떤 경우라도 폭발하거나 방사능유출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 이에 비해 원전은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사고위험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시설이기 때문이다.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전은 절대 사고나지 않는다며 안전을 자신하지만 100%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원전이 100% 안전해도 주변 지역민들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원전이니 지원사업비는 후하게 책정돼야 한다. 더 나아가 최근 추진중인 `원전해체기술연구센터`경북 설립은 물론 정부가 국책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동해안원자력클러스터`를 가시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전관련 연구소를 울진·영덕·포항 지역에 설립해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전 하나 없는 수도권에 원전관련 연구소를 짓는 비효율적인 탁상행정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근간을 원자력발전으로 가져갈 생각이라면 기존 원전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원전을 유치하지 않은 지역민들이 원전 유치지역민을 부러워 할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약속한 지원사업비를 내놓으라고 떠들어대야 마지못해 사업비를 내놓는 이런 자세로는 원전정책이 똑바로 가지 못한다. 원전 사업자와 원전 정책 담당자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2014-11-28

자옥아, 자옥아

▲ 김진호 편집국장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김자옥이 죽었대요. 얼마 전까지 드라마에 나와 왕성하게 활동을 했는 데, 이럴 수도 있네요.” 공주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배우 김자옥이 63세의 나이로 갑자기 숨졌다는 소식에 유달리 김자옥을 좋아했던 아내가 무척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무척 좋아했던 배우여서 더 많은 애착이 갔는 데, 사람 사는 게 허망하네요. 하루하루 좀더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나와 가까운, 또는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인생의 허무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마 죽고나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일게다. 오래 살고싶은 욕망에는 인연 맺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집착도 한몫한다. 그래서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또는 손주 볼 때까지 살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싫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대 인도의 왕 아쇼카 형제의 이야기다. 아쇼카에게는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 사는 비타쇼카라는 동생이 있었다. 불교도가 된 아쇼카는 동생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아쇼카는 왕이 입는 옷과 휘장을 방에 벗어놓은 채 외출했다. 때마침 비타쇼카가 대신들과 함께 왕궁안을 거닐다가 왕의 옷과 휘장이 놓인 방에 이르렀다. 대신 중 하나가 말했다. “이 옷을 한번 입어보세요. 당신의 형이 갑자기 죽으면 동생인 당신이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사양하던 그는 거듭된 권유에 넘어가 왕의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았다. 그순간 아쇼카 왕이 돌아왔다.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것은 반역이니 이 자를 체포해 사형에 처하라.”고 소리쳤다. 자비를 청하는 동생의 애원에 아쇼카는 말했다. “네가 내 동생이니 특별배려를 해 주겠다. 네가 왕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니 앞으로 7일 동안 왕의 모든 권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 모든 여자를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즐기는 모든 것을 너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7일 후에 너는 반드시 처형당할 것이다. 그것만은 달라질 수 없다.”7일 후 아쇼카는 사형장으로 동생을 불러놓고 물었다. “너는 아름다운 여자들과 최고의 음식을 즐겼는가? ” 비타쇼카는 말했다. “전 잠조차 하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내가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어떻게 그런 것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아쇼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네가 깨달았구나. 7일 후든, 7달 후든, 7년 후든, 아니면 70년 후든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감각적 즐거움만을 누릴 수 있겠느냐?”법륜 스님은 `인생수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출렁거릴 뿐이다. 바다 전체를 보듯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죽음도 없다.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우쳐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이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그래도 죽음이 두렵다면 종교를 믿으면 된다. 불교에서는 사후세계와 극락이 있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한다. 내세의 유무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다. 증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내세가 있다고 믿는 것이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삶과 죽음은 사람 사는 동안 내내 화두다. 중국의 장자(莊子)는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것인가, 나비가 살고 있는 것인가. 답 아는 사람 있음 연락좀 주시라.

2014-11-21

희망의 힘

▲ 김진호 편집국장`직장인 성공학`으로 유명한 김용전씨가 쓴 책,`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가 가슴을 울렸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힘을 보여주는 일화였다.2006년11월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 해안지대로 여행을 떠난 한 가족이 갑자기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이들의 불행은 11월25일 목적지로 가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산길로 접어들면서 시작됐는 데,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을 놓쳐 겨울에는 폐쇄되는 험준한 국립공원 산악지대로 깊이 들어간 게 화근이 됐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로 눈이 1.8미터나 쌓이게 됐고, 결국 차가 움직일 수 없어 산속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아버지의 이름은 제임스 김. 그는 한 인터넷 매체의 편집장으로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차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걸었으나 산간지역이라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과자와 눈을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는 데, 김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만 먹도록 하고 자신은 굶으며 버텼다. 처음 조난을 당했을 때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켰다. 이후 자동차의 연료가 떨어지자 자동차의 타이어를 태웠고, 눈이 그칠 즈음에는 주변 나무를 구해와 불을 지폈다. 결국 갇힌 지 일주일이 되도록 구조대가 오지않자 그는 구조를 요청하러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다.12월2일 오전 7시, 그는 6시간 정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혼자 눈보라속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가족에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키 높이의 눈속을 26킬로미터나 걸어나갔으나 방향감각을 잃고 돌아오다가 자동차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숨졌다. 차에 남아있던 가족은 그 이틀뒤인 12월4일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김씨의 시신은 이틀이 지난 12월6일 발견됐는 데, 그의 곁에는 얼어붙은 손으로 `가족을 구해달라`고 쓴 종이쪽지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구조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일주일을 굶은 그 상황에서 눈속을 26킬로미터나 나갔던 것은 가히 초인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가 이런 초인적인 힘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 “나는 죽어도 좋다. 가족만은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었을 것이다. 그가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죽어가면서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쓴 쪽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2006년 당시 관련 보도가 나가자 한 네티즌이 “그는 판단착오로 죽은 것이다. 안전한 차안에서 기다렸어야 옳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과연 그런 것인가. 결국 그가 사망했으니 결과론적으로는 맞는 말 같다.하지만 나는 그가 가족을 훌륭하게 구해냈다고 믿는다. 음식이 다 떨어지고, 연료도 다 떨어지고, 태울 수 있는 것 마저 다 태워버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때 그가 용감하게 길을 나섬으로써 가족들에게 `아빠가 구조대를 데리고 올 것`이라는 희망을 줄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아니었으면 나머지 가족들이 어떻게 영하의 맹추위속에서 허기진 몸으로 이틀이나 더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아빠가 만들어 준 희망의 힘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톨스토이는 단편소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웅변했다. 마찬가지로 `절망에 빠진 사람은 무엇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날씨가 차가운 13일 치러진 대학수능시험에서 바라는 성적을 내지 못해 실의에 빠진 학생, 수십통의 이력서를 쓰고도 취업에 실패한 구직자,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중도에 포기해버린 사람, 이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희망의 힘뿐이다.

2014-11-14

인생에 정답은 없다

▲ 김진호 편집국장낙엽이 떨어지고 가을의 정취가 깊어간다. 이럴 때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 음악이다. 필자는 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지만 이 계절에는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대중가요도 심심치않게 즐긴다. 그러던 중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란 노래로 대상을 차지했던 가수 이선희가 부른 `그중에 그대를 만나`란 노래를 만났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느꼈을 법한 사랑과 이별을 시적인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바란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중략)…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되고/ 오~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고,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더 큰 기적이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듣고 난 이후 일주일 동안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랑= 기적= 운명`의 등식을 곱씹고 있다.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후배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만드는 신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는 데, 보수나 대우를 좋게 해준다니 가고는 싶은 데 신생지인지라 미래가 불확실해 망설여진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더 많은 보수를 준다니 과감하게 옮기라고 권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리 쉽게 할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신생지 가운데는 몇달 발행하지 않고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전례를 들며 “신중히 판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는 선에서 그쳤다. 어차피 결정은 본인이 해야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므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좀더 근무하는 것보다 새 회사에서 새 길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적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신생지로 옮기는 게 위험하다는 걸 걱정하는 후배에게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아들 얘기를 한번 더 해야 할 듯하다. 대중음악을 전공하며 록밴드를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을 간신히 돌려 다른 전공(예를 들어 음향공학 등)을 공부하면서 음악을 공부하도록 했는 데,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공부에 전념하게 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듯이 어쩔 도리가 없다 싶었다.중년의 삶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간단하고 쉬운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이나 일을 선택하든 그건 그 나름대로 또 하나의 삶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렇다. 후배들이 찾아와 인생의 선택에 대해 물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해주는가. 사실 남의 사정을 구구절절히 어떻게 알 수 알겠나. 각자의 사정에 맞는 선택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라. 그러면서 잘 살펴보면 대부분 자기 마음속에 답이 있고, 그 이야길 해주길 기대한다. 이런저런 대화끝에 상대가 진짜 원하는 답이 뭔지 알게되면 그 답에 힘을 실어주고, 밀어 붙여주면 되는 것이다.그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할 지 아닐지 아무도 모른다. 회사를 옮기는 게 좋을 지 아닐지, 무슨 일을 해야 성공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한 뒤 후회하며 오답으로 만든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게 단 하나의 정답이다.

2014-11-07

진로체험 교육기

▲ 김진호 편집국장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는 중·고교생들에게 신문사와 기자직을 소개하는 진로체험교육을 지난 5월, 7월 각 1회, 그리고 10월에 두 차례 가졌다. 사실 신문제작은 그리 한가한 작업이 아니다. 필자의 업무스케줄만 봐도 오전 국장단회의, 편집국 데스크회의부터 시작해 오후 편집회의와 기사출고, 신문편집 및 교정, 조판출고로 이어지는 일련의 제작공정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하지만 신문기자란 직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 지 궁금한 중·고등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일도 사회봉사가 아닌가 믿어 시간을 쪼개어 자청한 일이었다.가장 최근에 회사를 방문한 연일중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신문기자란 직업에 대해 동경하는 모습이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먼저 신문을 어떻게 만드는 지를 보여주는 프로세스(과정)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신문제작과정은 일견 단순하다. 취재→기사작성→편집(제목디자인)→조판출고→인쇄→배달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는 몇 시간의 설명도 부족할 수 있다.예를 들어 신문기사의 재료를 모으는 `취재`과정의 어려움은 어느 기자든 책 한권 써 낼 수 있을 정도의 에피소드가 널려있을 정도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작업과정이다. 사회 비판을 속성으로 하는 신문기자의 접근을 반기지않는 사회분위기도 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경찰이나 검찰, 구청 공무원 등 취재원들에게 뉴스가 될 만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을 동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식사대접이나 선물로 정보원의 환심을 사기도 한다. 어떻게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뉴스소스를 얻을 수 있고, 특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게 스트레스로 느껴진다면 취재기자와는 상성이 맞지않다고 충고한다.힘든 취재과정을 거쳐 모은 재료들을 가공하는, 기사작성 과정은 더욱 험난하다. 아름다운 우리 말로, 간결하고 정확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신문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 까 하는 고민이 녹아있어야 한다. 좋은 기사를 쓰는 법에 대한 얘기는 몇 시간이 아니라 밤을 새도 끝낼 수 없는 주제다. 사실 신입기자들에게 기사작성법을 가르칠 때 기사를 잘 쓰는 법보다는 틀리게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칠 때가 더 많다. 기사를 어떻게 쓰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사를 어떻게 쓰면 안된다는 것은 사례를 들며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국어사전을 자주 찾아보고, 글 읽기를 생활화할 것을 당부한 뒤 바른 글쓰기와 관련한 책에 나오는 문법에 맞지않는 문장호응이나 잘못 사용된 단어나 문장사례 등을 몇 가지 소개하고 넘어간다.신문사 조직구조와 직제 소개도 포함된다. 신문사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신문사에 어떤 직종이 있는 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편집국·광고국·판매국·총무국으로 구성된 회사 편제와 편집국장이나 편집데스크의 역할, 편집기자와 취재기자의 차이 등을 설명한다.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신문읽는 법을 소개한다. 매일 20면을 발행하는 경북매일신문 지면 가운데 17면까지는 뉴스나 정보가 실려있다고 한다면 오피니언(여론)면인 18·19면(금요일자엔 17면도 포함)에는 칼럼과 사설이 실려있으며, 이런 글들을 매일 읽고 사색하는 습관을 들이면 글쓰는 법은 물론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대는 정보와 지식과잉 시대다. 그러나 사색하는 법과 삶의 지혜, 어떤 일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매체는 많지 않다. 신문의 오피니언면은 그런 뜻에서 매우 소중하고, 신문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되기도 한다.

201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