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래된 침대 위에 고인 흉한 냄새들이여 너에게 입 맞추는 동안 검은 잇몸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사람의 반대편에서 괴사한 공중이 온통 얼룩져내리고(….)죽은 성기들을 밟고 흰 계절이 온다 너의 입술이 열려 이 밤 가득 썩은 목련들로 낭자해질 때 갓 태어난 시체 위로 내려앉는 눈송이가 자신의 온도를 모르듯이순간들 사이에 거처를 마련하고 사라지는 방들을 내어주면 상한 달 무리들 일제히 쏟아져 들어와 도사리는 저 검고 깊은 아가리 속위의 시의 화자는 관능적인 접촉을 통해 타인과 자신의 싱싱한 생명을 느껴보고 싶지만, 그가 감지하게 되는 것은 죽음이다. ‘너’와의 관능적인 사랑은 죽음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현란하고, 가없이 처연하기도 하다. 시인은 관능적인 사랑의 불가능성에서 빚어진 슬픔 속에서, ‘너’와의 접촉을 통해 떠올리게 된 이미지들을 섬세하고 치밀한 상상력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17
(….)불을 끄고 눈마저 감아야대낮에 잃은 길도 찾아낼 수 있다지기나긴 깜깜 어둠 깊고 깊은 캄캄 밑바닥에서나만이 나의 길인 것을나만이 나의 미래인 것을어둠만이 촛불을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찾은 길을 잃지 않으려면여름도 겨울보다 추워야 한다는 것을눈발이 그쳤다밤중도 늙으면 새벽이 되지만만년을 늙어도 터럭 한 올 휠 수 없다섣달 그믐밤 언 가지를 체온으로 녹이는 도래까마귀목청 한 번 떨치면 반경 600리까지 몸서리치는 고독영험과 고독과 숭고함의 길을 가는 사제로서 전령사로서밤과 겨울의 검은 치마 시인으로서선사 이래 백설보다 순결한 검은 세계를 살며.이 시에 따르면 시인은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자신이 살아갈 삶의 장소로 선택하고 내면의 비밀을 까마귀처럼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유안진 시인은 이러한 시인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도래까마귀’에서 찾아내면서, 그 이미지를 “영험과 고독과 숭고함의 길을 가는 사제”라는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길은 “백설보다 순결한 검은 세계를” 사는 길이라는 역설적인 진실을 표명한다. 이성혁 문학평론가
2021-08-16
다른 곳을 마다하고저 소나무는 왜 벼랑 끝에 서 있을까뿌리 절반을 아예허공에 박아두고 있다절벽으로부터한 걸음 더절벽,가지 위에 커다란 둥지가 걸려 있다저곳에 사는 낭떠러지 새는격랑의 허공에두근거리는 나무의 오랜심장을 올려놓고누구도 꺼내가지 못할 알을추락하면서 낳는다저 “벼랑 끝에 서 있”는 소나무는 “격랑의 허공”에 “뿌리 절반을 아예 박아두고” 아슬아슬하게 추락의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이 소나무 가지 위-“격랑의 허공”-에 둥지를 만들어 사는 낭떠러지 새는 허공을 가로질러 추락하면서 알을 낳는다. 이 알은 추락의 위험을 감내하며 격정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가 남겨 놓게 될 삶의 어떤 핵심을 이미지화 한다. 그 “누구도 꺼내가지 못할” 삶의 핵심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1-08-12
바람의 페달을 밟나봐아득하게 울리는 풍금소리.당신이 떠나고 더욱 멀어진 골짜기 언덕으로눈은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을 파묻고 녹아 흐르네.맹렬하게 사라지는 희디흰 빛 속에갈기를 세우고 내달리는 물줄기의 계절감.떨지 않고 울지 않고침묵으로 닮아가는 돌멩이의 마음가짐으로식탁보에 싸서 흘려보내던 슬픔을 기억해.떨리는 손끝으로 빚어낸 그늘만큼다시 숲을 키우는 꽃 덤불 볼까.(….)사랑하는 당신이 ‘나’를 떠나야만 했을 때,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 당신이 떠난 깊은 밤일수록 당신 눈동자는 ‘마지막’으로 삶을 지탱하는 흰 뼈처럼 빛난다. 슬픔의 거센 물살은 그 뼈마저 부서뜨릴지 모르지만, 그럴 때에도 당신 눈동자는 더욱 빛나며 밤을 지탱할 것이다. 당신이 떠났을 때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위의 시는 이렇듯 선명하면서도 아득하게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2021-08-11
어느 착한 손이 있어 나에게 이렇게사과 한 쪽을 내놓은 것인가아침 식탁에 한 접시 잘 깎은 사과가 놓여 있다몇 번 오가다 봐둔 식당에 다녀오면서언덕 아래 노점에서 사온 것이었다(중략)국광도 아오리도 아닌아무렇게나 비탈에서 자란 조그만 사과였다그래도 오던 길에 원숭이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르기에품 안에 꼭 싸안고 왔다(중략)아침이 밝기도 전에 원숭이들이 다 가져갔다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슴에 품었던 것들을 밤새 잃었다한갓 보잘것없는 것들만오래도록 붙들고 있었는지 모른다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나에게 말간 사과 한 쪽을 내놓고 있다다 늦은 아침에 어느 착한 손이 있어시인은 저기 말갛게 내놓인 잘 깍은 사과 한쪽에서 “어느 착한 손”을 찾아낸다. ‘원숭이’에게 삶의 진실을 빼앗긴 현실에서도, 사과 한 쪽을 ‘나’에게 내밀면서 기적처럼 어느 순간 나타나는, 어딘가에 숨어 있던 착한 손이 있다. 지금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맞잡을 수 있는 당신의 손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기에, 이렇듯 우리는 타인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8-10
옆집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다/ 상관없는 일들이 계속 나의 초인종을 누른다/ 용건도 없는 빈손이 찾아든다궤도를 이탈해 서로를 밀어내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중력에 굴복하는/ 이름도 쓸모도 없는 행성 같은 이웃들이를 테면 옆집 사람의 감정사이사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다정한 말이 될 때/ 거리를 회복할 수 있을만한 몇 종류의 안부도 희박하다/ 지나치게 맑아 할 말이 없는 오늘 날씨처럼(중략)문을 열고 밖에 나서자/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는 옆집/ 고장 난 나침반이 돌아가기 시작한다.위의 시는 이웃이 있긴 있지만, 실상은 부재하는 현실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물론 이는 이웃과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감정적인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 이웃 아닌 이웃의 존재가 시인의 의식의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자극하면서, 어떤 위기감을 전달하는 동시에 의식의 문을 열 것을 종용한다. 인간관계의 “고장 난 나침반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1-08-09
옆집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새로 생긴 대형마트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사람답게 살기는 어려운 법이다. 창가에 놓인 책들이 바래져간다. 책들 사이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온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겠지만, 악은 갈수록 평범해져간다. 베란다 한 귀퉁이 수년간 버려둔 화분에서 알 수 없는 잡초들이 올라온다. 잎과 잎 사이에 거미가 집을 만들고 있다. 평범해서는 사람다울 수 없고, 나는 너무 쓰잘 데 없는 것들만 읽고 써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가족들이 내가 쓴 글들 읽을까봐 두렵다. (중략) 이 문장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장만이 내가 등 돌리고 누울 유일한 곳일까.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전혀 젖지 않는 건조한 삶을 살아가며, 그렇게 우리는 평범해져간다.(악의 평범성) 시인은 “사람다울 수 없”는 평범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벌레를 키우고 거미집을 만든다.(시 쓰기) 그러나 시인은 이웃이 고통 받는 실재와 자신의 문장과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시 쓰기의 의미에 대해 의심하고 번민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의 시 쓰기는 저 실재와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8-08
그는 지방 소도시 관현악단의 만년 첼로 객원연주자언제나 주연들 뒤에서 희미한 반주를 하지한번도 자신만의 서치라이트 안에 서본 적 없는 남자아침에 홀로 먹은 토스트 조각이 도진 위장염을 찔러도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한 끼의 빵과 월세와먼 시골에서 시든 사과를 헤아리고 있을 노모를 위해주어진 선로를 왕복하지(중략)그는 오늘 밤 탈선을 꿈꾼다네나비넥타이 대신두 개의 경쾌한 호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걸치고코발트빛 오토바이로 갈아탈 작정이네(중략)2연에서 전개되는 객원연주자의 꿈에서 그는 ‘주어진 선로’로부터 경쾌하게 탈선한다. 1연이 보여주는 꽉 막힌 현실과 대비되는 이 쾌활한 꿈은 다만 꿈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꿈꾸기조차 포기한다면 삶은 메마른 생존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결국은 세상의 폭력에 철저히 굴복하게 될 것이다. 꿈은 사람을 기계의 한 부품으로 취급하여 소외시키는 세상으로부터 적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다. 문학평론가
2021-08-05
사상 초유의 폭염 속에서도여기저기에서 부고가 날아든다사방이 죽음으로 가동된 장례식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고인을 향해 마지막 절을 올리고고인이 남긴 추억의 외투를 황급히 뿌리치고 부랴부랴 밖으로 삐져나온다사방이 죽음이다오래오래 절친이 되고 싶었던 이도 지난달에 죽었다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늘 흠모했던 분도 어느 날 지상에서 사라졌다스스로 목숨을 끊고, 살해당하고, 강으로, 바다로 뛰어들고지병으로, 교통사고로, 갑자기 심장마비로, 전쟁으로, 기아로이 땅을 떠나고, 떠나가고 있다(중략)시인은 지인의 부고를 들으면서 지금 이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죽음의 범람-또는 폭염처럼 견딜 수 없도록 내리쬐는 죽음들-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저 죽음들에 대해 속수무책인 삶, 다만 죽음의 폭염 속에서 에어컨만 쉬지 않고 틀어대는 것과 같은 악순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시에 따르면 그렇게 생존해가는 ‘우리’는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서로를 외면하고 “철가면을 뒤집어 쓴” 채 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04
떠나기 위해 기다렸다활주로에 반듯하게 쌓인 눈이 사라지기 전까지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유리벽 너머로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짧게 지나가는 한낮의 여명 안에서가랑눈들만 선명하게선명하게 흩날리며먼지처럼 활주로 위로 내려앉았다떠나기 위해 기다렸지만눈은 계속 눈으로 내렸다그것들은 바닥에 닿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저기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까우리는 멈춰버린 광경을 바라보며광경 안에 멈춰 있었다천천히 내리는 가랑눈들 사이로안내방송이 가끔 차갑게 울렸다(중략)위의 시는 ‘코로나19’ 이전에 발표되었지만, 위의 시 각 연의 첫 행에서 반복되고 있는 떠남의 욕망과 기다림의 상황은 ‘코로나19’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고, 세계는 “멈춰버린 광경”으로 현상하며, 그 광경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역시 “멈춰 있”는 현재의 상황 말이다. 위의 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암울한 예견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2021-08-03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알게 되었다별들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것들이어찌어찌 모여서 새로운 별들로 태어난다는 거숨결에 그림자가 있다는 거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빛의 내음소리의 촉감온갖 원자들의 맛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다그대들이 세상이라 믿는 세상이여, 나를 받아라. 내가 그쪽을 먼저 사양하기 전에.오늘 아침 닦아준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말임종게가 늘 탄생게로 연결되는 건 아닐 테지만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우주가 지나치게 쓸쓸하진 않았다위의 시에 따르면 저 별빛을 바라보며 감각하고 있는 우리의 몸에서 별들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탄생하는 저 별무리는 소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겨놓는다. 쓸쓸하게 소멸할 존재들인 당신과 나는 이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별들처럼 우리도 아름다움을 타자에게 남겨놓을 수 있는 존재인 것, 그렇기에 우리는 허무를 딛고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02
저건 가기만 한다오는 것은 알 수 없고가는 것만 보이는 건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숙명인 양 가는 뒷모습만 전부다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우리는 열차의 맨 뒤 칸에서 뒤를 보고 있다마치 기계노동의 습관처럼도무지 누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얼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린모든 걸 배웅하기에 바쁘다(중략)순환의 절반을 버림으로써 얻은이 엄청난 질주와 쾌락우리는 어떤 재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숙명이라는 쏟아지는 별들의 시간을‘시계-시간’은 글자판을 순환하지만 앞으로만 나가면서 순환한다. ‘시계-시간’은 삶을 재생하지 않고 소진케 한다. ‘시계-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이 시간을 누가 운전하는지 모른 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백무산 시인에 따르면 우리는 이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숙명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질문을 유발한다. 문학평론가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