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스무여드렛날이었다할머니는 밭에 씨를 뿌리러 갔다오늘은 땅심이 제일 좋은 날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설씨 문중 대대로 내려온 농법대로할머니는 별들의 신호를 알아듣고 씨를 뿌렸다별과 별 사이의 신호를씨앗들도 알아듣고최대의 發芽를 이루었다할머니의 몸속에, 씨앗 속에, 할머니 주름을 닮은 밭고랑 속에별과의 교신을 하는 무슨 우주국이 들어 있었던가매달 스무여드레 별들이 지상에 금빛 씨앗을 뿌리던 날할머니는 온몸에 별빛을 받으며 돌아왔다할머니의 우주에서는 만물이 서로 교신한다. 이 교신은 기호를 통한 정보 공유와 같은 ‘소통’과는 달리 몸과 몸이 서로 공명하면서 이루어진다. 신호로 교감이 이루어지는 이 자연 세계에서 인간인 할머니가 그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세계의 몸-대지-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노동을 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그녀의 노동은 땅과 별과 하늘과 씨앗과 교신하는 과정 자체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문학평론가
2021-09-14
눈을 뒤집어 쓴 채한 때의 무성했던,마른 풀잎들이제 기억들을 치켜들고 있다바람에 흔들리며마른 줄기 끝 땅 속의 생각들을 간직한 채봄이 되면 푸른 실핏줄에뜨거운 피를 치솟으며붉거나 노란 기억들을 피워올리기 위해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정월 초하루, 폭설 속에서오롯한 정신 하나로지난 해의 낡은 이름표를 달고바람 속에 서 있다“눈을 뒤집어 쓴” 풀잎들이 겨울을 견디며 다시 자신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제 기억들을 치켜들”면서이다.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오롯한 정신 하나”를 견지해야 한다. 인간 역시 죽은 자를 망각의 강 너머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기억하는 오롯한 정신을 가져야 하리라. 그 정신이 바로 자연세계이건 인간 세계이건 죽음을 삶의 세계로 이끌어 올리는 생명력인 것이다.문학평론가
2021-09-13
지하 통로뱀 한 마리 미끄러지듯전율하며 달려가고 있다. 오로지표적을 향해맹목의 정신으로 줄달음치는저일 촉 화살처럼, 불타는 살의는 미친 듯이 씩씩거리며제 얼굴에 부딪치는 암흑의 벽면을깨뜨린다, 무지하게. 뱀이 스쳐간 자리에는 피투성이,피투성이 되어 넘어진 적막의 살점들이 살아 퍼덕인다.위의 시에서 이수익 시인은 삶의 강렬성이 폭발하듯 현현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암흑의 벽면을” “맹목의 정신으로 줄달음”쳐 깨뜨리면서 스스로 파괴되는 뱀의 저 저돌적인 행동을 보라. 뱀은 죽음의 벽과 부딪치면서 주변의 삶을 다시 ‘퍼덕’이게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극단의 지점에 돌입함으로써, 저 뱀은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는 삶을 살면서 ‘적막’을 파열시키고 삶을 삶답게 만들고 있다.문학평론가
2021-09-12
삼베는 수의의 옷감이다. 죽음의 색인 삼베빛은 바로 조팝꽃의 빛깔이기도 하다. 조팝꽃 무더기 속에서 시인이 털썩 주저앉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렇듯 죽음 속에 쌓여 있지만, 초록 잎새들은 “들뜬 발자국들”로 “강마을 가득” 일어서고, 이에 더해 붉은 철쭉꽃들이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로써 시인은 죽음의 시간 속에서 생명이 생성하는 시간이 싹튼다는 것을 새로이 인식한다. 문학평론가삼베빛 저녁볕, 자꾸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산언덕을 덮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여기저기 토해 놓는 곳 거기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리고 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삼베빛 저녁볕’ 전문
2021-09-09
물금은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다. 동시에 물금은 강물의 끝선처럼 그리움의 물이 들어갈 수 있는 한계선-금-이기도 하다. ‘물-그리움’이 결국 그녀가 사는 물금에 닿지 못하게 하는 물의 금. 이 ‘금’ “한복판에서” 시인은 물금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제 무게를 못 이겨 ‘맨땅’에 떨어져버린 그리움이 산산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초로’의 시인은 이 ‘물-금’에서 회초리 맞은 듯 아프게 몽상에서 깨어난다. 문학평론가바닷물이 숭어 떼처럼 파닥파닥 밀려 올라오다 허리쯤에서 기진해 멈춘다 (….) 그녀와 나 사이 매일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다 내 그리움도 그곳까지, (….) 그녀가 사는 곳이 곧 물금이다 대추나무 잎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영혼에 일렁이는 물결무늬처럼 떠있는,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물금, 물금 한복판에서 찾아 헤매이게 되는 물금, 농익은 감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철퍼덕 맨땅에 떨어져 산산이 흩어지는 곳, 초로의 적막이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그곳이 물금이다 - ‘물금’ 전문
2021-09-08
느리게 구르던 수차가 덜컹, 깊은 바퀴자국을 남깁니다사랑하는 동안 이곳은 늪지입니다전선에 맺힌 빗방울 하나가 저에게 다가오는 때를 기다리는 동안시간은 수밀도 익어가듯 깊어갑니다 말갛게 바닥을 탐색하던 빗방울이깜박, 저를 놓으며 온몸에 찰나의 광휘를 두릅니다빗방울이 제자릴 찾는 데는 삼천년이 걸린다는데 삼천년 너머,빗방울 하나가 허공에 떨고 있었을 그날에도하늘은 저리 푸르렀을까요?연일 소소한 바람이 많아진 비 갠 오후 흰 종이 위에-종일 나뭇잎이 웅성거린다, 적었습니다 깊어진 여백으로물푸레나무가 들어섭니다 다 셀 수 없는 마음입니다시인은 저 “전선에 맺힌 빗방울 하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인 시인은 빗방울이 낙하하는 순간이 삼천년이나 걸려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 순간은 삼천년이 압축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간이다. 수밀도 익어가듯 천천히 깊어지는 사랑의 시간은 거대한 세월을 넘나드는 시간이다. 이렇듯 세계에 대한 사랑은 미세한 사물들에서도 익어가는 시간의 질감을 감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9-07
바닥에서도 혼자서씩씩하게 한 목숨 살려왔건만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끌어 덮어도머릿속 구름 일어 잠 못 드는 밤창 밖에는 겁먹은 바람이 덜컹거리고어린 고양이는 울음으로 보채고해소처럼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불면의 수돗물 똑똑 떨어지는 소리여보, 죽으면 끝없이 잠만 자겠지만저것이 다 살아 있다고 가까스로발버둥치는 소리, 오돌오돌 추워서몸 오그라드는 소리고스란히 내리는 눈옷 입고뼈만 남은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나서뼈도 없이 소나무 밑에 심어진 아우도자꾸 생각나서 잠 못 드는 밤창밖의 바람과 어린 고양이, 그리고 보일러와 수돗물이 내는 소리들. 그 소리들은 시인의 마음과 뒤섞이면서 죽음을 감지하는 시인의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탈바꿈한다. 시인이 가까스로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그 소리들은 어머니 아버지, 돌연사한 아우의 실제적인 죽음을 생각하게 이끈다. 시인의 삶은 사랑했던 이들의 죽음이 쌓인 ‘지층’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저 소리들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9-06
시인은 차들로 꽉 막힌 팔당대교에서 “여섯 번째 가로등”을 보고 있다. 시인은 이 가로등을 ‘마지막 남자’로 전치(轉置)하면서 불빛으로 전달되는 사랑의 고백을 상상한다. “세상에 구속된 수상한 층운”-안개-을 마음으로 벗겨내면 저 남자의 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인은 사랑의 말이 도래할 것을 믿고 기다린다. 기다림, 그것은 사랑의 미래를 이곳으로 당겨 고독한 현재를 견디는 삶이다. 문학평론가팔당대교 전후 모든 차들이 뒤얽혔습니다 그러면 여섯 번째 가로등에 한 남자 기대서서 어딘가 맞이합니다 흐르는 강을 동여맬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겨우 몇 번 입을 열었습니다 (중략) 그는 내게 이야기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안개를 풀어냅니다 안개는 세상에 구속된 수상한 층운입니다 그가 가로등에 기댈 이유 있었겠지요 거듭 말하지요 내게 소란 피우지 않는 것 그것이 당신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곧 공사하는 도로 한 귀퉁이에서 사람 대신 야광 불빛을 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나에게 신호를 보낼 것입니다
2021-09-05
밤새 가을비가 내리고 가로수 잎들이 떨어지고 아침이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받고 움츠린 사람들이 점멸하는 신호등을 건너 빠르게 흩어지고 다시 우르르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흩어지고 밤새 앓다가 나간 너는 지금 수서를 지나며 혼자 기침을 하고(중략)나는 청구빌라를 지나 이디아 커피를 지나 성당으로 가고 할 말이 있어서 갔다가 짧은 그림자를 밟으며 되돌아오고 하느님이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나란히 오고 집까지 같이 오고 담장 옆 고인 물속에 구름이 흘러가고 밝게 익는 마가목 열매 옆에서 까치가 갸웃거리고삶과 죽음은 회귀된다. 떨어지는 잎들을 아침이 받는다. 아침의 품속에서, 떨어진 잎들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사태 역시 회귀되며 고통과 치유도 회귀된다. 일상은 그러한 반복되는 회귀로 이루어지는데, 시인은 이 일상의 영원회귀 옆에 ‘하느님’이 함께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 영원회귀의 흐름(시간) 속에서 세계는 ‘마가목 열매’처럼 힘차게 돋아나고 밝게 익으리라는 것도. 문학평론가
2021-09-02
도라지를 찹쌀고추장에 찍어 몇 잔 사발을 들이키니 도라지 냄새가 간밤을 지나 새벽까지 왔다. 닭 울음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나는 산속에 외따로 떨어져 피어 있는 한 송이 도라지꽃! 이럴 때면 으레 바닷가 고향 마을에서 먹던 간간한 우럭젓국이 생각났다.(중략)깊은 바닷속 그 맛의 진국이 펼쳐진 검은 늪에 노랑부리저어새처럼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원하면서도 뒤끝이 개운한 맛인, 억센 우럭 뼈가 내뱉은 해탈의 맛이 새벽 꽃밭에서 서늘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비리지 않은 목소리로 허공에 담백하게 외칠까. 진미 났다!하재일 시인의 감각과 그 감각을 표현하는 상상력은 섬세하면서도 스케일이 크다. ‘우럭젓국’에서 진한 ‘바닷속 맛’으로 비월하는 상상력! 우럭젓국은 우럭의 ‘살-삶’을 지탱해주었던 뼈에서 우러나왔기에 그 맛이 진하면서도 우럭의 ‘해탈’로부터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기에 그 맛은 시원하고 개운하다. 시에 따르면, 삶의 ‘진미’는 죽음에 의해 다다르게 될 삶의 뿌리로부터 해탈되어 우러나올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1-09-01
지상의 모든 나무들은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만습지의 맹그로브 나무들은진흙 위에 뿌리를 내린다지상의 모든 나무들은제 뿌리로 제 한 몸 겨우 지탱하지만습지의 맹그로브 나무들은서로의 뿌리로 서로의 몸을 지탱해 준다(중략)모두 모여 함께 뿌리를 내려서로의 뿌리에 서로의 뿌리를 엮어간다한 그루 두 그루 열 그루 백 그루서로의 뿌리에 서로의 뿌리를 심어간다세세연년 맹그로브 숲을 우거지게 한다
2021-08-31
태초에하느님이 의자를 만들 때그 곁을 달려가던말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목뼈를 곧게 펴고먼 곳을 바라보는 자세에안장을 얹은 것도하느님의 전직인 목수였다사람들이목뼈에 등을 기대고 돌아앉을 때의자는혼이 떠난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아이들이가끔씩 거꾸로 앉아 소리칠 때온 몸을 부르르 떨며의자에 깃든 말의 영혼은 눈을 뜬다그때마다어디선가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 들려온다아이들은 사물을 그 사물의 기능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나아가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발동되는 상상력에 따라 그 사물과 자유로이 즐거우면서도 내밀한 관계를 맺는다. 시인은 이러한 아이의 상상력을 이어 받아 사물들이 살아 있는 동물-위의 시에서는 말-로 변신할 수 있음을 포착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생생한 신성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문학평론가
2021-08-30
가까운 이의 부고를 받고 돌아서는데죽음의 얼굴이 보였다엄마를 데리고 갔던 자여서안부라도 물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중략)엄마는 파란만장,전생의 빗장을 꼭꼭 걸어 잠갔을지도모르는 엄마를 불문율에 부쳐주고 싶은 것이다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는 만날 수도 없는엄마는 비행기,엄마는 여객선,엄마는 기차….기차만 보면 맹목적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아이처럼이런 날은 아무한테나 마음이 달려간다(중략)엄마를 떠올린다는 것은폭설을 맞으며 소실점 밖까지 배웅을 가는 일만 같아서여름 한낮이 문득 춥다죽음이 데려간 ‘엄마’를 떠올린다는 일은 “만날 수 없는” 존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일이다. ‘엄마’를 붙잡으려고 하면, ‘엄마’는 이미 “소실점 밖”에 있는 비행기나 여객선, 기차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떠올리면서 시인은 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시인은 아이가 되어 그리운 ‘엄마’를 떠올리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그 떠올림은 “여름 한낮”도 춥게 보내야 하는 시간을 가져오지만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1-08-29
아마 동쪽에서 왔을 것이다저 울음은무릎을 꺾어 가면서까지 온전하게제 등을 내어주는 늙은 낙타의 순종은걷고 걸어도 사막꿈속에서도 사막자고 나도 사막일 것이다일찍이 깃들지 못한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현기증 나는 증발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아직 도착되지 않은 내일이성긴 가루가 되어 발가락 사이를 더 넓게 벌려 놓았다움푹 팬 기억을 더욱 구부려 울음을 새겨 넣는 일은바람이 시키는 일일까(중략)위의 시에 따르면 삶은 “걷고 걸어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이다. 사막의 삶에서 펼쳐지는 “현기증 나는 증발”로 “일찍이 깃들지 못한 나무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시시각각 나타나고 사라지는 사막의 시간에서 시인은 “움푹 팬 기억을 더욱 구부려 울음을 새겨 넣는”다. 이 새겨 넣기 작업이 바로 시 쓰기일 터, 이에 따르면 시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허공에 새긴 울음이다. 문학평론가
2021-08-26
소식이 깜깜해 달에게로 향한다(….)달에 기댄 날들이 닫힌 맨홀처럼 될까그 달에서 다른 달이 뜨는데,살지도 죽지도 않을 거라던 달 하나 사라진다사막을 괴는 푸른 달 그늘에 누각을 지었다는돈황 월아천먼 곳을 동경하는 나무가 새를 날리던 그곳모래에 묻힌 삼 층 누각에서 내려다본 월아천은그믐달,잘려 나간 손톱이다후미진 방을 전설이 비추고훗날 모래무덤을 파면 작고 환한 달들이 있을까참빗 닮은 그믐달이 흙먼지 빗어 내리는부분월식(….)사막 한 가운데 기적적으로 생겨난 ‘그믐달’ 모양의 호수, ‘월아천’. ‘월아천’은 시인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모여 사막 위에 새로이 탄생한 달이다. 그것은 당신을 잃어 사막이 되어버린 삶에서 기적 같이 탄생한 사랑이다. 시인은 그 ‘월아천’ 밑에 “작과 환한 달들이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위의 시는 지상의 삶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랑이 돋아나는 마음을 지상의 달인 ‘월아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25
밤은 단단하다 낮부터 숨겨둔 이야기들 입안에서 깔깔하다 분명 자신의 그림자를 그림으로 남겨둔 고대의 풍습이 남아 있을 법도 하건만 말랑한 뉠 자리가 나온 이후로, 자리는 온갖 허물들의 지층만 쌓아 올린다 (….) 누워 있던 자리, 잊었던 것은 종종 피 묻은 몸으로 나타난다 모든 화석은 욕창을 앓는다 요컨대 뼈저림의 시작, 끄덕대며 기웃하며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내 성체(成體)는 석탄기나 데본기의 어느 지층에서 발굴될 듯하다 (….) 훌훌 불며 검붉은 물을 마시는 시간, 詩는 그때쯤 혀끝에 달라붙는 것 같다우혁 시인에게 꿈꾸기란 피투성이 몸이 되는 것, 그 몸으로 얼룩진 며칠을 보내면서 “욕창을 앓는” 화석이 되는 일이다. 그 화석에 “오래 붙어 있던 허물들”을 털어낼 때 피투성이 몸의 속살이 드러나고, 그 살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물을 마시는 시간”을 갖게 되면 시가 그의 “혀끝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위의 시는 상처의 시간이 새겨진 내면의 화석을 발굴할 때 비로소 시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24
개와 강아지는나쁜 놈과 착한 놈만큼의 거리다낮과 밤만큼이나 멀고도 가까운 사이욕과 칭찬만큼이나 적대적인 관계개는 부정어의 접두사강아지는 사랑의 대명사천한 것은 개자식이나 손주처럼 귀한 것은 강아지세상의 모든 강아지는개를 빌려 세상에 나왔고세상의 모든 개들도강아지를 거쳐서 왔다밤이 낮을 품고 낮이 밤을 품듯우리는 하나다비틀비틀 취객 하나가 내 옆을 스치며“개새끼”하고 지나간다불교의 ‘불이론’에 따르면 낮이 밤을 품고 밤이 낮을 품고 있듯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사물이나 상태는 ‘불이(不二)’다. 강아지는 개를 통해 태어났고 개는 “강아지를 거쳐서 왔다.” 그러니 취객이 시인에게 던진 ‘개새끼’라는 욕에 대해 시인은 개의치 않는다. ‘개새끼’는 욕이지만 사실 강아지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새끼’라는 말 자체가 ‘불이론’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문학평론가
2021-08-23
푸르디푸른 종이는 구겨지지 않는다구겨지지 않으면 종이가 아니다구겨지지도 않고 접혀지지도 않는 것이하늘에 펼쳐져 있다새들은 시간을 가로질러 나는 법을 모른다아무도 새들에게 천문을 가르치지 않는다아는 것이 없으므로 나는 것도 자유롭다(….)누가 하늘 끝에 별들을 식자(植字)해 놓았나최고의 천문서는 점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가장 멀고 깊은 것은 마음 밖에 있는 것나는 어둠을 더듬어 당신을 읽는다당신의 푸르디푸른 눈빛을 뚫어야만구김살 없는 죽음에 도달하리라이 무람한 천기를 아는 듯 모르는 듯새들은 밤에도 점자를 남기며 날아간다저 하늘에 새겨진 ‘천문-당신’을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읽어본다면, 당신은 천문이 써진 푸르디푸른 하늘을 아득하게 펼쳐내고 있는 우주다. 애인의 영혼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을 우주. 그렇다면 위의 시는 당신의 영혼 속 멀고 깊은 지점에 도달하고 죽고자 한다는, 당신을 향한 기막힌 사랑을 펼치고 있는 일종의 연애시다. 위의 시에서 느끼게 되는 아득한 아름다움은 그러한 사랑의 절절함과 관련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8-22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 너를 마주한 나를 만나러 연안으로 나를 흘러가 봅니다 네게 잠들기 직전이라고 말해 주러그런 내게 너는 물을 밀고 땅을 밀었다고 합니다 밀다가 놓쳤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중에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네게 사이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멀어져서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나 나를 흘러가라고 말합니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연안’은 실제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 속 공간일 터, 물과 땅이 맞닿은 경계지점인 연안에서 강물을 통해 “나를 흘러가”고 너는 밀려온다. “나를 흘러”간다는 말은 비문이지만, 시인은 이 비문을 통해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는 어떤 어긋남, 사랑의 실패를 감지하게 되는데, 이 정체를 포착하기 힘든 슬픔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의 시의 매력이겠다. 문학평론가
2021-08-19
세계의 분주한 노동이 시작되었는데 당신은 잠을 자고 있네. 아이들이 겁먹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지하도의 행인들이 발로 툭툭 차고 가네눈을 떴다 감아요, 아가씨여그것은 오래된 시인의 주문 같네(….)두꺼운 잠의 녹색 담요 귀까지 덮어쓰고눈을 감았다 떠요고집 센 침묵의 아가씨여그것은 어떤 세계의 한숨일까, 어떤 순간의 향기일까. 영원히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당신은 눈을 뜨고,허공의 음부에서태어나는 최초의 비명처럼당신의 완고한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미친 듯 춤추며 모퉁이 저편으로 달려갈 때김수영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역사적인 혁명들이 창출했던 기술이 한국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일상의 삶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기를 요청했다. 이기성 시인은 다시 혁명의 기술이 창출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연은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을 이미지화 한다. 이에 따르면 혁명은 허공에서 최초로 벌떡 일어나는 것, 광기를 머금은 강렬한 순간이자 예측할 수 없는 축제의 춤과 같은 순간이 혁명이 도래할 때의 특성이다. 문학평론가
20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