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새로 생긴 대형마트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사람답게 살기는 어려운 법이다. 창가에 놓인 책들이 바래져간다. 책들 사이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온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겠지만, 악은 갈수록 평범해져간다. 베란다 한 귀퉁이 수년간 버려둔 화분에서 알 수 없는 잡초들이 올라온다. 잎과 잎 사이에 거미가 집을 만들고 있다. 평범해서는 사람다울 수 없고, 나는 너무 쓰잘 데 없는 것들만 읽고 써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가족들이 내가 쓴 글들 읽을까봐 두렵다. (중략) 이 문장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장만이 내가 등 돌리고 누울 유일한 곳일까.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전혀 젖지 않는 건조한 삶을 살아가며, 그렇게 우리는 평범해져간다.(악의 평범성) 시인은 “사람다울 수 없”는 평범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벌레를 키우고 거미집을 만든다.(시 쓰기) 그러나 시인은 이웃이 고통 받는 실재와 자신의 문장과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시 쓰기의 의미에 대해 의심하고 번민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의 시 쓰기는 저 실재와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1-08-08
그는 지방 소도시 관현악단의 만년 첼로 객원연주자언제나 주연들 뒤에서 희미한 반주를 하지한번도 자신만의 서치라이트 안에 서본 적 없는 남자아침에 홀로 먹은 토스트 조각이 도진 위장염을 찔러도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한 끼의 빵과 월세와먼 시골에서 시든 사과를 헤아리고 있을 노모를 위해주어진 선로를 왕복하지(중략)그는 오늘 밤 탈선을 꿈꾼다네나비넥타이 대신두 개의 경쾌한 호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걸치고코발트빛 오토바이로 갈아탈 작정이네(중략)2연에서 전개되는 객원연주자의 꿈에서 그는 ‘주어진 선로’로부터 경쾌하게 탈선한다. 1연이 보여주는 꽉 막힌 현실과 대비되는 이 쾌활한 꿈은 다만 꿈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꿈꾸기조차 포기한다면 삶은 메마른 생존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결국은 세상의 폭력에 철저히 굴복하게 될 것이다. 꿈은 사람을 기계의 한 부품으로 취급하여 소외시키는 세상으로부터 적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다. 문학평론가
2021-08-05
사상 초유의 폭염 속에서도여기저기에서 부고가 날아든다사방이 죽음으로 가동된 장례식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고인을 향해 마지막 절을 올리고고인이 남긴 추억의 외투를 황급히 뿌리치고 부랴부랴 밖으로 삐져나온다사방이 죽음이다오래오래 절친이 되고 싶었던 이도 지난달에 죽었다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늘 흠모했던 분도 어느 날 지상에서 사라졌다스스로 목숨을 끊고, 살해당하고, 강으로, 바다로 뛰어들고지병으로, 교통사고로, 갑자기 심장마비로, 전쟁으로, 기아로이 땅을 떠나고, 떠나가고 있다(중략)시인은 지인의 부고를 들으면서 지금 이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죽음의 범람-또는 폭염처럼 견딜 수 없도록 내리쬐는 죽음들-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저 죽음들에 대해 속수무책인 삶, 다만 죽음의 폭염 속에서 에어컨만 쉬지 않고 틀어대는 것과 같은 악순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시에 따르면 그렇게 생존해가는 ‘우리’는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서로를 외면하고 “철가면을 뒤집어 쓴” 채 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04
떠나기 위해 기다렸다활주로에 반듯하게 쌓인 눈이 사라지기 전까지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유리벽 너머로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짧게 지나가는 한낮의 여명 안에서가랑눈들만 선명하게선명하게 흩날리며먼지처럼 활주로 위로 내려앉았다떠나기 위해 기다렸지만눈은 계속 눈으로 내렸다그것들은 바닥에 닿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저기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까우리는 멈춰버린 광경을 바라보며광경 안에 멈춰 있었다천천히 내리는 가랑눈들 사이로안내방송이 가끔 차갑게 울렸다(중략)위의 시는 ‘코로나19’ 이전에 발표되었지만, 위의 시 각 연의 첫 행에서 반복되고 있는 떠남의 욕망과 기다림의 상황은 ‘코로나19’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고, 세계는 “멈춰버린 광경”으로 현상하며, 그 광경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역시 “멈춰 있”는 현재의 상황 말이다. 위의 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암울한 예견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2021-08-03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알게 되었다별들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것들이어찌어찌 모여서 새로운 별들로 태어난다는 거숨결에 그림자가 있다는 거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빛의 내음소리의 촉감온갖 원자들의 맛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다그대들이 세상이라 믿는 세상이여, 나를 받아라. 내가 그쪽을 먼저 사양하기 전에.오늘 아침 닦아준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말임종게가 늘 탄생게로 연결되는 건 아닐 테지만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우주가 지나치게 쓸쓸하진 않았다위의 시에 따르면 저 별빛을 바라보며 감각하고 있는 우리의 몸에서 별들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탄생하는 저 별무리는 소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겨놓는다. 쓸쓸하게 소멸할 존재들인 당신과 나는 이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별들처럼 우리도 아름다움을 타자에게 남겨놓을 수 있는 존재인 것, 그렇기에 우리는 허무를 딛고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02
저건 가기만 한다오는 것은 알 수 없고가는 것만 보이는 건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숙명인 양 가는 뒷모습만 전부다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우리는 열차의 맨 뒤 칸에서 뒤를 보고 있다마치 기계노동의 습관처럼도무지 누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얼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린모든 걸 배웅하기에 바쁘다(중략)순환의 절반을 버림으로써 얻은이 엄청난 질주와 쾌락우리는 어떤 재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숙명이라는 쏟아지는 별들의 시간을‘시계-시간’은 글자판을 순환하지만 앞으로만 나가면서 순환한다. ‘시계-시간’은 삶을 재생하지 않고 소진케 한다. ‘시계-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이 시간을 누가 운전하는지 모른 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백무산 시인에 따르면 우리는 이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숙명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질문을 유발한다. 문학평론가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