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어머니의 안티카페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8-07 13:48 게재일 2009-08-07 19면
스크랩버튼
요즘 인터넷에선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10대 여중생이 개설한 `엄마안티카페`에 실린 글이다.

`자식을 상처 입혀 괴롭히는 부모가 부모인가. 우린 너희의 노예가 아니야` 라는 주로 자신의 어머니나 가족을 욕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이 카페의 글을 보고 네티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한다.

이 카페 내용에 찬반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양편에서 공감하는 편은 패륜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아동폭력으로 학대당하며 자란 아이라면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안티카페를 개설한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감했고, 어떤 이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학업성적=사회계급이라는 등식이 아이들을 입시 악몽으로 내몰고 있다며 교육 현실을 비판했다.

반대의견은 대체로 패륜의 극치다.

인륜을 거스르는 행동을 한 카페 개설자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며, 다음에 아이 낳아보면 정신 차릴 것이라며 강한 질타를 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소중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르는 숭고한 뜻이 담긴 `어머니`라는 칭호는 그 깊은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실종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인간관계속에서 살다 죽는다. 때문에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시키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좌절하거나 고민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된다. 신속성과 다양성이 요구되는 현대인에게 있어 자신의 상승된 신분과 역할의 요구에 따른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데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지식이다. 이 지식주입의 틀을 교육제도로 볼 때 이 제도가 완성된 인격체에 미치는 역할은 매우 중대하다고 본다.

한국교육에서 주입식교육이나 강압적 교육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우리 민족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교육방식이 다음 세대로 연결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결국 이 악순환은 반복되어 명문대학 입시용으로 변절되면서 획일적인 주입식교육이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의 의식 속에는 선생님의 감시하에 우리는 `학교라는 감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명문대를 위해 `자나깨나 공부 공부`하는 부모의 강력한 주문에 아이들은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장애의 하나인 강박장애의 정신질환을 본인도 모르게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안티카페를 개설한 학생은 내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이미 자신과 가족을 비롯한 바깥세상을 갈라놓은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결여된 단편적인 지식만 있는 사회는 큰 화를 불러오거나 그 민족 자체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도덕과 윤리를 갖춘 완전한 인격체로의 성장은 사랑을 기초로 한 가정교육에서 시작되므로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원초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가 파괴된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 아닌가.

공자가 13년간 천하를 주유할 때 진과 채나라에서 함께 고생하던 공문사과(孔門四科: 덕행, 언어, 정사, 문학)에서 뛰어난 열 명의 제자(孔門十哲)중 덕행으로 뛰어났던 민자건(閔子騫)은 본명이 손(損)으로 자(字)가 자건이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보이는 내용으로 민자건(閔子騫)의 어머니가 죽은 뒤 아버지가 재취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하루는 민자건이 아버지를 위해 수레를 몰다가 말고삐를 놓치자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아보니 손이 얼어 얼음장 같았다.

옷이 얇고 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 후처 소생의 두 아들을 불러 그들의 옷을 만져보니 두툼하고 따스했다. 이에 아버지는 화가 나서 후처와 이절(離絶)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자건은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홑옷을 입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세 아들이 모두 추위에 떨게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며 부탁을 청했다. 이에 아버지가 감동하여 이절하지 않았다 전해진다. `논어 선진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남이 그의 부모나 형제의 말만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없구나`라는 기록을 보아 그의 효심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선조들은 시경을 읽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슬프고 슬프구나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으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하늘같이 다함이 없구나`(哀哀父母, 生我?勞, 欲報深恩, 昊天罔極)라는 대목에 이르면 책을 덮어 놓고 목 놓아 울었다 한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으로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오늘날 이처럼 부모님 생전에 이런 구절을 읊으며 눈물 흘릴 자식이 몇이나 되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술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