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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의 후손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8-17 02:01 게재일 2015-08-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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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고서 경매`에 1953년에 쓰여진 편지 한 통이 올라왔다. 수신인은 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였고, 발신인은 서왈보의 유가족 서진동이었다.

서왈보는 함경남도 원산 출생의 한국 최초의 비행사였으며,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김원봉의 의열단 단원이었고, 1926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신익희와 형님 동생하던 사이였다. 편지에서 서진동은 신익희를 백부(伯父·큰아버지)라 불렀다.

서진동은 당시 부산 신애원(信愛院)에 있었다. 전쟁 고아 중에서도 장애인들을 수용했던 복지시설이다. 6·25전쟁이 휴전될 당시 서진동은 장애인으로 이 고아원에 살면서 신 국회의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백부 대인 각하에게”로 시작된 편지는 “저에게 돈 1만원만 주시옵기를 피눈물로 간절히 바라옵니다”로 끝맺었다. 국회의장에게 취직을 부탁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도장 파는 재주를 익혀 도장포를 내려 해도 돈이 없으니, 1만원만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후의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독립운동가의 집안은 3대가 망한다 했다. 숨어 다니는 처지라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되고, 재산은 모두 독립운동 자금에 투입했으니 교육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수 배호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는데, 부산 피난시절에 굶어죽다 시피했고, 배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노래를 불러 생계를 이어갔지만, 서왈보의 아들 진동은 장애인으로 도장포 하나 낼 형편이 못됐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3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해외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에게 주택알선, 정착훈련, 국민연금 가입 등 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독립운동가의 손자·손녀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도 2년이나 국회에 묶여 있다. 보상금 외에 생계급여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의 유가족들에게 한국국적을 주는 일만 겨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이 정착할`돈 1만원`을 줄 형편은 되는데도 말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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