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갔다. 새해 벽두에는 누구나 새로운 다짐을 한다. 절기의 바뀜을 통해 새로운 성찰과 다짐을 하며 더 높은 비전을 추구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우주의 질서정연한 운행을 대하면서 경천(敬天)과 겸손을 배운다. 인류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과 후대에 대한 책무감에서 추상같은 정의(正義)를 내세우면서 전진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4대 구조개혁을 반드시 마무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긴다고 했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를 벗어나고, 다가올 위기를 미연에 막기 위한 개혁과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미진한 부분이다. 남은 임기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고 했지만 너무 막연하다. 올해 첫 국무회의를 통해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적극적인 내수 보완 대책을 집중 시행하라고 지시했지만 국민들의 주머니가 얼마나 썰렁한 지 깊이 성찰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에 기대를 하건, 친구에 기대를 걸든, 직장에 기대를 두든, 일반적으로 기대 혹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경우의 수는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현실이 암울하거나 비관적이어서 그 현실을 견디기 위한 공상적 차원의 그림이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경우이다. 둘째, 현실이 그런대로 만족스럽지만 그 현실을 그대로 그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희망과 기대와 전략이 필요한 경우이다. 셋째, 현실이 아주 만족스러워서 그대로 안주하고 싶지만 내면으로부터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서 현재의 안정된 환경과 행복을 좀먹을 것 같을 때 의식과 무의식을 최대한 동원해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기대하며 그 현실의 행복을 지켜나가는 경우이다. 우리들은 지금 이 세 가지 차원의 어느 하나에만 속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란 단순한 해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합적 맥락과 관계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약간의 무력감과 좌절의 아우라가 수시로 자극하고, 내면과 외면의 경쟁적 상황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고,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안정적 존재감의 이면에 동전의 양면과 같이 언제라도 상주할 태세를 갖추고 찾아오는 불안이라는 불청객과 동거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주소가 아닐까.
“마흔 살은 다부지게 일할 나이
오늘로 두 살을 더 먹게 됐네.
도소주는 뒤에 마셔도 좋지만
늙고 병들기는 남보다 빠르네.
세상살이는 어떻게 힘차게 하나?
살림살이는 가난을 꺼리겠는가?
은근하게 한 해의 일 다가오는데
매화도 버들도 생기가 돋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1420~1488)이 1461년 새해에 지었다는 `새해 첫날`이라는 시다. 세종에서 성종대까지 문병(文柄)을 장악했던 학자였던 서거정에게 해가 바뀌어 마흔두 살이 됐다. 그 시대 그 나이 사람에게도 새해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도소주(屠蘇酒)는 설날에 마시는 술로 나이 많은 사람이 뒤에 먹는다. 그 술을 뒤처져 마시자 남보다 빨리 노쇠해가는 자신을 느끼며 불안해진다. 세상을 어떻게 기운차게 헤쳐 나갈 것이며, 가난은 또 어떻게 견딜 것인가? 착잡해진다. 누가 그런 불안을 잠재워줄지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래도 불안보다는 희망이 앞선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한 해의 여정, 그 은근한 기대를 곧 꽃을 피울 매화의 움트는 생기와 발랄함에 걸어 본 것이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평)
2016년 병신년(丙申年)을 열면서 희망 가득한 소망과 포부를 다부지게 외쳐보자. 그것은 엄동설한이지만 여름의 열기를 느끼게 해줄 것이고,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마저 경이롭고 때로는 즐길 수 있도록 도전과 모험, 위로와 발견, 경탄과 경외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서거정 시 `새해 첫날`에서 보듯이, 현상이 암울하더라도 `생동을 품고 있는` 자연, 그 자연이 주는 희망을 보면서, 새롭게 향기로운 꿈을 엮어보는 우리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