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br/>⑤ 쪼매 모자란 ‘재디기 아재’의 갱시기 내기… 최후의 승자는?
‘재디기 아재.’
“이름도 몰라요, 성(姓)도 몰라”다. ‘재덕’인지 ‘재득’인지 지금 와서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저 ‘재디기 아재’였다. 마흔 살 쯤 되는, 순박한 사내였다. 어머니 표현으로는, “사람이 쪼매 모자라서 그렇지 더할 데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많이 먹었고, 힘도 장사였다. 고봉밥, 머슴밥으로 네댓 그릇을 먹었고, 장정 열 사람 몫을 해냈다. 동네 힘든 일은 죄다 ‘재디기 아재’ 손을 거쳤다.
많이 먹는데도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뭐, 입 쫌 다실 거 없능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겨울이었다. 동네 어느 집 큰 방에 남정네들 열댓이 옹기종기 모였다. 저녁마다 모여서 라디오를 들으며, 새끼를 꼬고, 음담패설도 해댔다. ‘재디기 아재’도 늘 있었다.
사건(?)이 시작된 날.
마침 그 자리에 ‘재디기 아재’ 버금가게 많이 먹는, 또 다른 아재가 있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모였고, 초저녁에 ‘갱시기’도 한 그릇 씩 먹었건만 두어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것 없느냐는 말이 줄을 이었다.
안주인이 “늦은 밤에 뭐 먹을 게 있는교? ‘갱시기’ 쫌 남았네”라며 제법 큰 바가지 두어 개에 먹다 남은 ‘갱시기’를 내왔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재디기 아재’와 ‘버금가는 아재’는 얼마 남지 않은 ‘갱시기’를 두고 가볍게 다퉜다. 서로 간에 “일로 조바라(이리로 줘봐라)”라고 다퉜다. 라디오 연속극도 끝났다. 바가지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다들 심심했다. 긴 하품소리도 들렸다. 겨울밤은 지겹다. 누군가가 가벼운(?) 제안을 했다.
“봐라, 너그 둘이 싸우지 말고, ‘갱시기’ 먹기 시합이나 한 번 해봐라. 누가 마이 묵노?”
금방 시합 룰이 나왔다.
“세상에 미련한 기 마이 먹기 내긴 기라. 고마, 갱시기 마이 먹기 시합은 한 솥으로 한정한데이. 큰 솥 있제? 그 솥으로 한 솥도 못 먹고 지는 사람은 우리가 먹는 ‘갱시기’ 값까지 다 내야한다. 두 사람 다 한 솥을 먹으모, 고마, 구경하던 우리가 마카 돈을 다 모다가주고 아지매한테 ‘갱시기’ 값 주께.”
2, 3일 후 ‘시합’인지 ‘미련’인지가 열렸다.
‘갱시기’ 솥과 시합용 그릇도 준비했다. 한 솥은 어림잡아 30그릇은 될 법했다. 두 사람 모두 10그릇까지는 휑하니 달렸다. 나중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는 표현을 보면 늘 이날 ‘갱시기’ 먹던 속도가 떠올랐다.
어라, 이상했다. 10그릇을 넘기면서 ‘재디기 아재’의 숟가락 속도가 느려지더니 15그릇을 겨우 넘기고 숟가락을 놓았다. 상대는 쌩쌩했다. 한 솥을 다 퍼먹었다. ‘재디기 아재’ 얼굴에 “이럴 리가 없는데”라는 낭패감이 돌았다.
오랫동안 ‘재디기 아재 갱시기 먹기 시합 참패’는 동네 사람들 ‘인구에 회자’되었다.
허망한 일, 예기치 못했던 일, 실망스런 결과를 받아들면 “재디기 아재 ‘갱시기’ 먹듯 한다”고 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네 꼬마들이 ‘재디기 아재’ 호칭을 격하했다. ‘재디기’로.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재디기 아재’가 우리 집에 왔다. 무슨 이야기 끝에 ‘재디기 아재’가 ‘갱시기 시합 참패’에 얽힌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기요, 참 요상하대요. 알잖아요. ‘갱시기’ 한 솥쯤이야 늘 먹어요. 그날도 그래요. 내기 하러 가기 전에요, 저쪽 옆 동네에요, 귀머거리 할매 혼자 사는 집 있잖니껴. 그 할매한테 부탁해서 낮에 한 솥 끼리가 미리 먹어봤니더. 연습 삼아서…. 그때는 더 큰 솥으로 한 솥을 숨도 안 쉬고 먹었더랬어요. 근데 시합을 한께, 그기 요상하대요. 반 솥 쯤 먹은께 마, 배가 딱 불러서 못 먹겠대요. 그거 참 희한하지요. 연습까지 해봤는데….”
‘更(갱)’은 ‘다시’ ‘새롭게’ ‘고쳐서’라는 뜻이 있다. ‘갱시기(更食)’가 ‘다시 새롭게 고쳐서 먹는다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라고 믿는다.
갱죽은 ‘갱(羹)’+‘죽(粥)’이다. ‘갱’은 국, 국물이다. 국물이 있는 죽이 갱죽이다.
◇ ‘갱시기’, 밥이자 죽이다
‘갱시기’는 갱죽 혹은 ‘갱식’이다.
식량이 부족하다. 게다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밥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있어야 한다. 한식의 기본이다. 국거리와 반찬거리는 늘 부족하고 서글프다. 이때 갱죽은 아주 유용하다.
김치와 식은 밥은 늘 있다. 멸치를 부숴 넣는다. 곰삭은 김치를 넣고 팔팔 끓인다. 식은 밥 한 덩어리를 넣고 끓이면 끝. 갱죽이 된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좋다.
‘갱시기’의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한번 퍼먹고 난 다음, 그대로 둔다. 덥힌 다음, 다시 먹어도 된다.
‘更(갱)’은 ‘다시’ ‘새롭게’ ‘고쳐서’라는 뜻이 있다.
‘갱시기[更食]’가 ‘다시 새롭게 고쳐서 먹는다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라고 믿는다.
갱죽은 ‘갱(羹)’+‘죽(粥)’이다. ‘갱’은 국, 국물이다. 국물이 있는 죽이 갱죽이다. 갱죽이 왜 ‘갱식’ ‘갱시기’와 혼용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갱죽은 ‘따로, 또 같이’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다른가 하면 결국 비슷하다.
‘신 김치+식은 밥’은 비슷하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아무 것이나 넣고 끓이는 것은 아니다.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담은 것이라야 한다. 젓갈 김치 들어간 갱죽은 맛이 맑지 않다. 김치는 신 것이라야 한다. 갱죽의 핵심은 시큼한 감칠맛이다.
일부러 젓갈 없는 김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태백산맥 산줄기 아래에 동네가 있다.
동해안 생선, 젓갈은 높은 산이 막는다. 경북 내륙이다. 서해안 생선은 길이 멀다. 배추, 무를 제외하고는 고작 소금 정도가 흔하다. 양력 1~2월이면 김치는 깊은 신 맛을 낸다. 우물쭈물하다가 봄이 되면 군둥내가 날 것이다. 그 전에 해치워야 한다.
멸치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산골마을, 생선은 귀하다. 국물용 멸치는 멸치가 아니라 때로는 생선(?)이다. ‘갱시기’ 그릇에 드러누워 있었던, 퉁퉁 불었던 멸치가 떠오른다. 날름 주워 먹으면 말린 생선의 쓴 맛이 입안에 퍼졌다.
2003년, 소설가 성석제 씨가 ‘갱시기’에 대한 글을 썼다.
‘갱시기’에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먹었다고 했다. 은근히 약이 올랐다. 성석제 씨는 경북 상주 은척면이 고향이다. 그 지역이 부유한 곳인지, 성 씨가 넉넉한 살림살이였는지 모른다. 그저 “나보다는 넉넉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다.
“초저녁부터 발 밑에서 얼음이 서걱거리는 이맘때쯤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갱죽’ 또는 ‘갱시기’라고 부르던,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 무엇이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인데 흔히 말하는 ‘꿀꿀이죽’과 비슷하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거기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먹기도 했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또 반드시 푹 삭아서 쉰 김치,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후략)”
‘갱시기’는 태백산맥 언저리가 고향인 이들의 소울 푸드(SOUL FOOD)다. 고명이 좀 더 화려해지면서 갱시기는 진화한다. 계란, 콩나물, 두부, 돼지고기, 가래 떡 등이 등장했다. 그래봤자 ‘갱시기’는 ‘갱시기’일 뿐.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갱시기’는 사라졌다. ‘갱시기’는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고 여겼다.
과연 그럴까? ‘갱시기’는 ‘꿀꿀이죽’ 수준의 음식일까?
그렇지는 않다. ‘갱시기’의 핵심은 김치다. ‘갱시기’는 진화, 발전하는 김치가 만들어낸 최고의 음식 중 하나다. 김치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다. 아니다. 고유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다.
김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시경’이다. ‘시경’에는 울 밖의 열린 오이로 오이지를 담근다는 내용이 있다. ‘지(漬)’도 김치다. 장아찌의 ‘찌’ 가 곧 ‘지’다.
일본의 츠케모노[漬物, 지물]도 김치의 일종이다. 서양에는 채소절임인 피클이 있고 중식에도 장아찌와 흡사한 ‘자차이[짜사이]’가 있다. 모두 김치의 일종이다.
‘지’에 대한 기록은 퍽 오래되었다.
주(周)나라 문공(文公)은 공자(孔子)의 멘토다. 문공이 오이지를 먹으니 공자도 따라했다고 전해진다.
고춧가루를 넣은 한반도 김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김치의 위대함은 ‘오래된’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문명국가에는 채소 절임이 있다. 한반도의 김치는 독특하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 진화한다.
한반도의 김치는 수백, 수천 종류다. 한반도 김치의 위대함은 진화와 다양성이다.
외부에서 전래되는 것은 모두 받아들이고 녹여 넣었다. 산초(山椒)로 매운 맛을 얻다가 고추[苦椒, 고초]로 바꿨다.
고운 고춧가루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고추를 절구로 찧다가 기계로 갈아낸다. 고운 고춧가루, 썰어서 사용하는 풋고추, 썬 붉은 고추, 마른고추, 고추씨, 곱게 간 고추씨까지, 한반도의 고추 사용법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고추를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새로운 식재료가 들어오면 머뭇거리지 않고 음식에 다양하게 적용했다. 김치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갱시기’는 김치를 바탕으로 한 지혜로운 음식이다. 발효제 덩어리인 겨울철 김장김치에 식은 밥을 더한다. ‘갱시기’는 한 그릇에 밥, 반찬, 국물을 고루 갖췄다. 냉장, 냉동고가 없던 시절, 식은 밥은 쉬 상한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서 먹기 힘들다.
‘갱시기’는 지혜로운 음식이다. 상하지 않게 하고 냉기도 없앤다. 차리기 편하고, 먹기 좋고, 소화도 잘 된다. 두부, 콩나물, 돼지고기, 가래떡을 넣으면 영양도 그럴 듯하다.
‘갱시기’는 밥이면서 죽(粥)이고 한편으로는 국밥이다. ‘갱시기’는 식사 메뉴이면서 간식이다. 변화무쌍한 김치를 바탕으로 지어낸 우리 고유의 ‘갱시기’는 멀티 플레이어다.
고려 문신 김부식(1075~1151년)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한식이 그러하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우리는 ‘갱시기’가 누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갱시기’를 잊어버렸다.
사족. ‘그 후 재디기 아재’ 이야기를 전한다. 입이 싼 내가 시합 뒷이야기를 온 동네에 퍼뜨렸다. 평소 ‘쪼매 모자란 재디기 아재’는 ‘마이 모자라는 재디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럼 그렇지, 진짜로는 재디기가 이겼제?”라고 했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