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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가고싶구마

등록일 2019-02-07 19:20 게재일 2019-02-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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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돈 주고 봄을 샀다. 한겨울인 집을 떠나 홍매화가 활짝 핀 곳으로 떠나 두 달이라는 시간을 당겨 봄을 맞이하러 간 것이다. 오래 생각하고 떠났다기보다 얼결에 떠난 여행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저기 가 보고 싶다 하며 옆지기를 향해 웃었더니 휴대폰을 꺼내 주섬주섬 예약을 해버렸다.

가고시마행 비행기에 공주고 야구부 학생들이 가득하다.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간다고 했다. 공항에 내리자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인 봄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길가에 개양귀비가 만발했고, 배추와 무청이 푸른 빛깔을 간직한 채 밭고랑 가득했다. 호텔을 향해 가는 길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한 삼나무 숲이 어디나 흔한 풍경이었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숙소에 짐을 풀자 진짜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 여행이라 설레서인지 시차가 극복이 안 되는 것인지 새벽 3시에 깨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부스럭대다 그냥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했다. 해도 뜨기 전 옆 동네인 미야자키로 향하니 구글 맵이 꼬불꼬불 시골동네를 지나가게 했다. 이 동네 농촌마을을 안 가본데 없이 지나다녔다. 덕분에 남편이 운전을 원 없이 했다. 그래도 조용한 시골에서 힐링 하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음식도 먹을 만했고 날씨 또한 신이 우릴 위해 준비한 듯 하늘은 맑고 드높았다. 계획 없이 날아온 곳이라 오늘도 무계획으로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우린 이게 여행이지 하며 웃었다. 도깨비 빨랫판이 둘레를 감싼 아오시마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센멧세니치난을 지키고 선 모아이 상 앞에서는 뛰어올라 인생샷을 찍었다. 오비성 안에 삼나무 숲 곁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그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한참동안 숲을 서성였다. 발에 느껴지는 이끼의 푹신함이 좋아 다음에 도시락 싸서 소풍오자고 다짐도 했다.

삼 일째, 화산섬이 첫 코스였다. 갈 때는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 들어갔다가 섬을 나올 때는 페리에 차를 실어왔다. 세월호 생각도 났지만 15분 거리라 경험해보았다. 센간엔은 맞은편의 화산이 제일 잘 보이는 전망 최고의 정원이었다. 그 정원 앞에 근대 건물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콜라보라고 할까, 잘 어울리는 협연이었다. 빈자리가 없을 만치 여행객들이 한 번씩은 다녀가는 곳이다.

가고시마에 가면 꼭 가보고 싶다고 내가 주장한 딱 한 곳은 시립미술관이었다. 검은 모래찜질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기에 망설임 없이 미술관을 선택했다. 작은 도시 시립미술관에 모네와 르느와르 그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우리 돈 3천원, 두 화가만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피카소, 칸딘스키, 앤디워홀, 세잔, 로댕, 샤갈, 달리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방안 가득이다. 포항시립미술관에 이런 그림이 올 수 있을까싶어 부러워 배가 아팠다. 다음 일정이 있으니 어여 보고 나가자는 남편의 말에 30분만 더 모네의 ‘수련’ 앞에 있자며 졸랐다. 또 언제 여기 다시 올까싶어 발이 안 떨어졌다.

우리가 운이 좋은지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가면 그 곳이 맛집이다. 지인은 대기 줄이 길어서 못 먹고 돌아선 집이란다. 마지막 밤을 보낸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최고였다. 다음 날 돌아볼 여행지가 한눈에 들어와서 더없이 좋았다. 호텔을 설계할 때 창문이 밖에서도 들여다보이게 투명 유리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여행자들의 들뜬 모습을 보여주려고 환하게 창을 낸다는 것이다. 일상의 반대말이 여행이라는 말이다. 여행은 남는 장사다. 여정 곳곳에서 찍은 사진이 남고, 에피소드 가득한 추억이 남고, 소소하게 샀던 전리품들이 가방 가득이다. 카드로 훅 지르고 간 가고시마이기에 다음 달부터 날아들 할부도 남아있다. 하지만 다른 금액과 다르게 여행경비는 볼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래서 무이자 10개월 할부가 끝날 즈음, 또 지름신이 강림할 것이다. 나는 이미 봄의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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