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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거산성서 신라시대 목간 출토

이곤영기자
등록일 2021-04-28 20:22 게재일 2021-04-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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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초 작성시점 가늠할 간지<br/>곡식 이름 등의 글자 흔적 확인<br/>금호강·낙동강 합류지역 통제<br/>물자 집중된 군사 요충지 ‘추정’

대구시 기념물인 팔거산성에서 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木簡)이 출토돼 학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8일 대구시에 따르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 11점의 목간 중 7점에서 글자 또는 글자의 흔적이 보이고, 이 중 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와 곡식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팔거산성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으로부터 최근 발견된 목간 11점을 인수해 색깔 촬영과 적외선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목간은 길이가 약 15∼23㎝, 너비가 2.2∼5.5㎝로, 8점의 목간 중 4점의 목간에서는 3종류의 간지가 발견됐다. 1호 목간에선 ‘壬戌年’(임술년), 6호와 7호 목간에서는 ‘丙寅年’(병인년)이란 글자가 확인됐고, 3호 목간에서는 글자가 있는 부분이 파손돼 두 번째 글자 일부와 세 번째 글자 ‘年’(년)만 확인할 수 있었다.

팔거산성의 전반적인 연대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이어서 임술년과 병인년은 각각 602년과 606년으로 추정되며, 이는 목간을 작성한 시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대구시의 설명이다. 특히 1호 목간에는 ‘임술년’과 이어져 ‘安居<793C>甘麻谷’(안거래감마곡)이 적혀 있으나, 안거래는 현재 해독이 불가하고, 감마곡은 지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3호 목간에서는 ‘<9EA6>’(맥, 보리), 4호에서는 ‘稻’(도, 벼), 7호에서는 ‘大豆’(대두, 콩)라는 곡식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산성에 물자가 집중된 상황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산성의 행정 또는 군사 기능을 짐작할 수 있다.

목간이 담고 있는 내용이 곡식과 관련되고 기존 신라 목간이 출토된 곳이 대부분 군사 및 행정 거점이었다는 점에서 팔거산성도 다른 출토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하면서 물자가 집중되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대구에 있었던 지명으로 팔거리현(八居里縣)이 등장하고 있고 현재 팔거산성 위치가 대구 칠곡 지역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추정해 왔으나 이번에 새롭게 출토된 목간을 통해서 대구 칠곡 지역을 중심으로 하면서 금호강 하류지역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통제하던 곳이 팔거산성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목간에는 ‘王私’(왕사)와 ‘下<9EA6>’(하맥)이라는 표현도 등장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석축 7기, 추정 집수지 2기, 수구(水口) 등의 유구가 발견됐다. 석축은 조사지역 북쪽 경사면에 조성됐으며, 일부 유구가 중복돼 있어 석축 사이에 축조 순서 또는 시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집수지는 남반부 평탄면에 조성됐는데, 추정 집수지 1호는 돌, 2호는 목재를 사용해 조성됐다.

신라 목간이 출토된 추정 집수지 2호는 길이 7.8m, 너비 4.5m, 높이 약 3m, 면적 35.1㎡, 저수 용량 약 10만5천300ℓ로 남북으로 경사지게 땅을 파고 목재 구조물을 설치한 후 돌과 점토를 사용해 뒤를 채웠다. 목재 구조물은 바닥에 기초목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옆으로 판재를 설치했다.

박희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 팔거산성 발굴조사 성과와 출토된 목간 자료 등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팔거산성의 성격을 규명하고 위상을 밝히는 토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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