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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화려한 외양 뒤에는 불교의 원리가 녹아있다

등록일 2022-07-17 18:31 게재일 2022-07-1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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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에 깃든 신라 역사와 경주 이야기<br/>   ⑤  불국의 나라를 꿈꾸다 ⑵ 불국사의 독특한 가람배치
불국사 전경.

□ 복원에서 제외된 구품연지터

취재를 위해 수많은 사찰을 가봤지만 불국사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하는 절은 별로 없다. 여러 번 보았기에 가람 배치도 훤하고 절에 대해 잘 아는 듯하나 누군가 불국사에 대해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불국사의 화려한 외양은 알아도 불교의 원리가 설계에 철저하게 녹아있는 절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문 것 같다.

불국사 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규모가 무려 2천여 칸(3.64㎞)에 이르는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불국사는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소실돼 폐허가 됐다. 17세기 초부터 복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사찰로서 명맥만 유지하다 1969~1973년에 걸쳐 현재의 형태로 복원했다. 유감스럽게도 복원은 온전한 형태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 불교의 원리와 경전에 충실했던 초기 형태로 복원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임진왜란 때 소실, 불완전하게 복원됐지만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 꾸준히 찾아

사찰 입구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석축’

크기 다른 돌 깎아 맞추는 전통건축기법 써

부처님 바로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회랑’

주요건물 나누는 담장역할 사찰 개성 더해

33개 계단, 세속의 인간에 부처의 가르침을

석가탑·다보탑, 석가모니와 다보여래 상징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사이에 구품연지(九品蓮池)라는 커다란 인공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은 조선 영조 3년까지 존속하다 사라졌다고 한다. 절 내로 유입되어야 할 물이 고갈되고 토사가 덮치면서 자연스럽게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1973년 불국사 복원 당시 구품연지터로 추정되는 동서 39.5m, 남북 25.5m, 깊이 2~3m 정도의 연못 석축이 발견됐다. 그러나 단체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복원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랏빛 물안개가 피어난다는 자하문(紫霞門), 물 위에 뜬 누각 같다는 범영루(泛影樓), 물 위의 흰 구름 같은 다리 백운교(白雲橋), 푸른 구름을 닮은 청운교(靑雲橋)도 모두 구품연지를 중심으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방 극락정토를 묘사한 ‘관무량수경’에 “극락정토에는 연꽃이 피어있는 큰 연못이 있다. 물은 맑고 깨끗하여 바닥이 들여다보이고 꽃들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극락정토의 대중들은 이 연지에 둘러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라고 쓰여있다. 이 연못이 바로 구품연지다.

주요 사찰마다 연지를 조성하는 것은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을 이미 사바세계를 떠나 불국토에 들어선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토함산에서 계곡을 타고 흘러 내려온 물이 절 마당의 지하를 거친 뒤 유구를 거쳐 구품연지에 흘러내리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해가 쨍하게 맑은 날이면 물가에 생기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범영루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물길도 막혔고 석재 유구만 남아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가 뒤틀린 모습.
청운교와 백운교가 뒤틀린 모습.

□ 그렝이 기법으로 만든 불국사 석축

불국사가 불완전하게 복원되었는데도 꾸준히 찾게 되는 이유는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절의 형태 때문일 것이다.

불국사는 사찰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석축부터 남다르다. 유홍준 교수는 불국사 건축의 아름다움은 석축(石築)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불국사의 석축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유 교수의 말에 저절로 수긍이 간다. 삼국유사에도 불국사 석축에 대해 “동부의 여러 사찰 중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했을 정도다.

불국사의 석축 조성방법은 크기가 다른 돌을 깎아서 맞추는 한국 전통 건축기법인 ‘그렝이 기법’을 사용했다. 경사지에 두 개의 단을 조성하고 거기에 석축을 쌓았는데, 아랫단은 자연석을 수평으로 절단하지 않고 곡면에 맞추었다. 윗단은 다듬은 돌로 인공적인 미가 풍기도록 쌓았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변화를 주는 석축은 다른 사찰들과 확연히 다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를 쓴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불국사의 석축에 대해 “크고 작은 자연 괴석들과 잘 다듬어진 장대석들을 자유롭게 다루면서 장단 맞춰 쌓아 올린 이 석단의 짜임새를 바라보면 안정과 율동, 인공과 자연의 멋진 해화(諧和)에서 오는 이름 모를 신라의 신비로운 정서가 숨 가쁘도록 내 가슴에 즐거운 방망이질을 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범영루 아래의 석주는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석단 위에 널판같이 뜬 돌인 판석(板石)을 세웠는데, 밑부분은 넓고 중간돌기둥을 지나면 다시 가늘고 길어진다. 기둥 돌은 전부 8개씩 다른 돌로 되어 있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조립했다. 범영루 석주는 수미산(須彌山)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수미산은 현실에 있는 산이 아니라 불교 설화 속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이다.

불국사의 석축물들은 단순히 불교 건축의 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승과 속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석축 밑은 범부의 세계이고 석축 위는 불국토인 셈이다. 흔히 청운교와 백운교가 좌우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계단의 윗부분이 청운교고 아랫부분이 백운교다. 돌로 만든 33개의 다리를 거쳐 자하문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석가탑, 다보탑이 나오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불국정토에 들어섬을 의미한다.

 

불국사 석축.
불국사 석축.

□ 각각의 건물이 독립된 독특한 가람배치

불국사는 가람 배치도 특이하다. 일반적인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이 배열되었는데 불국사는 회랑, 즉 담장을 쳐 각각의 건물들을 독립시켰다.

불국사의 주요 건물인 청운교, 백운교, 범영루, 자하문, 좌경루와 뒤쪽 대웅전까지 회랑이 빙 둘러 있다. 중심건물 뒤에 강당(무설전)을 둔 고대 가람의 전형적 배치형식이다. 회랑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반영된 건축물이다. 정문으로 바로 들어가 부처님을 마주하는 것은 불경한 행위로 여겨 회랑이 일종의 차양막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회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원래 불국사 회랑이 지금처럼 꽉 막힌 모습이 아니라 기둥 위에 지붕만 얹은 일종의 개방식 회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에 나왔던 석가탑과 다보탑의 그림자가 구품연지에 닿으려면 지금처럼 막힌 구조의 회랑이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국사를 관람하면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막아버린 점이다. 자하문을 넘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을 마주해야 하는데 오른쪽 언덕배기를 올라 대웅전과 무설전이 있는 경내로 바로 진입하게 된다.

불국사 보존의 문제나 안전상의 이유가 있겠지만 사찰을 지을 때 석축을 만들고 구름다리를 만든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진 목조돼지상.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진 목조돼지상.

청운교와 백운교 33계단을 반드시 거쳐 경내로 들어오게 했던 이유는 세속의 인간이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 부처의 경지를 깨닫기 바랐던 불교적 사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자하문을 넘어 대웅전에 들어서야 석가탑과 다보탑의 존재가 명징하게 각인된다. 두 탑은 마치 대웅전을 호위하는 무사처럼 늠름하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석가모니가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 다보여래(다보부처님)가 현신한 다보탑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그 설법을 듣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불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은 대웅전 서쪽에 있는 극락전이다.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극락전은 칠보교와 연꽃 모양의 돌이 맵시 있는 연화교를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연화를 넘어서면 극락세계의 정문인 안양문(安養門)이 나오고 극락전의 아미타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극락전 앞에 있는 황금돼지상.
극락전 앞에 있는 황금돼지상.

2007년 정해년, 현판 뒤 처마 밑에 숨어 있던 길이 50㎝ 정도의 목조돼지상이 극락전에서 발견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국사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훼손됐다가 조선 후기에 재건된 건물이다.

훼손되기 전에도 극락전 현판 뒤에 황금빛을 띤 목조돼지상이 있었다는 사료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 후기 이후 복원과정에서 누군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건축에 돼지상을 만들어 숨겨 넣은 곳도 불국사가 유일하다. 황금돼지를 만든 이유에 대한 설은 대략 두 가지다.

황금이 뜻하는 풍요와 부를 중생들이 충분히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는 설, 앞만 보고 달리는 멧돼지처럼 수행자도 멈춤 없이 정진하라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극락전의 황금돼지상이 유명세를 타다 보니 극락전 앞에 쇠로 만든 황금돼지상을 따로 만들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불국사를 찾아 황금돼지상을 어루만지며 인증 사진을 찍는 것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최병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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