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에 대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인쇄된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 중요한 것은 역사를 만드는 일이지, 역사를 쓰는 일이 아니다.”
그가 정확하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역사를 만드는 일 만큼, 역사를 쓰는 일은 예전에도 중요했고, 앞으로 어쩌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껏 불러왔던 역사라는 것이, 이제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데이터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데이터는 인간의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철학, 종교, 윤리 등 모든 분야의 심오한 질문들에 응답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ChatGPT에게 낙태나 이민자 문제 등에 관한 질문을 하면, 매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런 답이 가능한 것은, 사회적 이슈가 될 법한 내용들은 ChatGPT를 만든 OpenAI가 검열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의 편향된 답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잘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여기서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검열 작업이 누구의 생각을 바탕으로 되었냐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글들은 전 세계 흩어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검열을 하지만, ChatGPT에 행해진 검열은 한 조직의 생각에만 기반을 둔 검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글 검색을 할 때, 일일이 링크를 눌러보며 내가 찾는 것과 가장 가까운 검색결과를 분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ChatGPT가 구글을 대체할 것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의 독점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글 검색을 하는 동안은, 우리가 검색 결과를 추려내는 일종의 검열자 역할을 스스로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최소한 진리를 강요받지는 않았다. 아니 최소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인지를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우리에게 주어졌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권을 잃어버리는 중이다.
OpenAI는 계속 중립을 유지할 것이라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회사는 인공지능 기술이 어느 한 대기업이나 한 국가에 속하는 것을 원치 않는 몇몇에 의해 세워진 비영리회사로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몇 억 달러를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공급받는 하청업체가 되어 버렸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을 쫓아내고 공화국을 세운 동물들은 7계명을 작성했고, 그 중 하나는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물이 죽임을 당했는데, 원래 계명은 이미 소리 소문 없이 “이유 없이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로 수정되어 있었고, 어느 누구도 원래 계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 했기에, 그 죽임은 이유 있는 죽임으로 합리화 된 채 그냥 그렇게 마무리 된다.
위키피디아가 시작한지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위키피디아에 있는 문서들에 대해 진리를 판가름하려 드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동물농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진리전쟁을 준비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