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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 다른 시각으로 보기

등록일 2023-07-11 19:36 게재일 2023-07-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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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의 영어 토론 수업 시간, 각 국가의 정치체제가 주제였다.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을 반대하여 직선제 선거를 한 한국. 정변의 공범인 노태우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군사 정변의 주범들이 연이어 대통령이 된 것이 싫었지만, 우리나라가 외국인들 눈에 낮춰 보이는 것은 더 싫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당혹함을 되돌려 줄 심사로, 미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니카라과 내정에 간섭하여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물었다. 교수는 평온한 표정으로 답했다.‘파병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 답을 들은 순간의 충격은 이전의 당혹스러움이 잊혀질 만큼 강렬했다.

내가 가진 국가관이 깨어지는 충격이었다. 국가 안에서 지도자와 국민은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유교적 문화 배경에 더해 전체주의 교육을 받은 결과다. 그것이 유일하고 진리인 국가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국가와 지도자, 지도자와 국민 개인을 분리하여 생각하는,‘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보다 인생에 더 소중한 자산이 되었노라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교수가 되기 전에 십여 년 기업에서 일했다. 새로 인수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성공하고 성장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안팎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회사였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했지만, 회사 구성원들과 6개월간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었다. 모회사에서는 회사가 변하는 속도가 늦다고 채근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구성원들의 제안을 듣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회사의 나아갈 방안을 정했다. 그 이후에는 일일이 설명하거나 강압할 이유가 없었다. 한 마음으로 일하는 임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돌아보면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눈이 열리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우리는 조급하다. 빨리 이루려 한다. 게다가 내 이름으로 이루려 한다. 2년 임기의 임원으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으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한다.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만 오르면 조급병에 걸린다. 진정 성공하려면 먼저 이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좋은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바꾸기보다는 바른 방향에 있는 것을 계속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임기에 마칠 수 없는 더 큰 꿈을 그려 후임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이다. 우파 지도자로서 어떤 좌파 정책의 우수함을 칭찬하면 얼마나 멋질까.

상대편 전임자 정책의 우수함에 손뼉 쳐주는 멋진 지도자가 나오는 날,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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