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된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나름 평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떤 필름 하나가 비밀스럽게 돌고 있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증명하는 촬영 장면들이 담겨 있는 필름이었다. 그 필름은 묘한 감정과 수많은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속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의 SF작가 필립 K. 딕이 1962년에 발표한 한 소설책의 도입부 줄거리이다. 대체 역사 장르에 속한 이 소설은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도 우리 삶의 일부분을 이런 형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필터 버블을 들 수 있겠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진보적 성향의 콘텐츠만 보여주고 보수적 성향의 콘텐츠는 걸러내 버림으로써, 정보를 편식하게 하고 균형 있는 사고를 할 수 없게끔 만든다. 버블에 가둬두고, 나에게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게 되는 것은 강화학습으로 이어져 자신의 생각을 더욱 더 확고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버블에 사실 꽤 익숙해져 있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 있는 MBTI를 보자. 우리를 버블 안에 가둬두고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하는 것에 왜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하고 당연시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우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빅테크의 알고리즘은 각 개인에게 맞춤화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플랫폼이 100명에게 각기 다른 100개의 우주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 우주는 우리를 가두는 버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개개인의 우주에 주입되는 콘텐츠는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준비되지만, 사실 그 과정 중에 인간의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요소들 또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PSY-OPS이며, Cambridge Analytica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8천7백만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 프로파일과 온라인 광고를 이용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영국의 Brexit, 기타 브라질, 필리핀, 케냐 등 여러 선거에서 투표자의 행동에 불공정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우리는 프랑스의 양치기들이 사용하던 표현,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질녘,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의 경계에서,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죽이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시간 말이다. 해질녘, 모든 것이 다 그냥 붉게만 보이는 그런 시간 말이다.
지금 우리 개개인의 우주에 빅데이터와 AI가 걷잡을 수 없이 들어오고 있다. 붉게 물든 하늘 감상에 마냥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깨어 있는 시선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