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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하려면 바꾸지 말아야 한다

등록일 2023-05-02 18:24 게재일 2023-05-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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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영국의 이야기다. 이전 직장동료 부부가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의 관찰과 경험을 기반으로 쓴 책의 제목이다. 수백 년 전통을 가진 대영제국의 나라, 영국은 과거 영광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지만, 아직도 건재한 나라다. 빨리 바꾸는 것이 미덕인 한국인의 눈에는 참 신기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불안해할까 해서 경찰도 뛰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출현하는 요즘, 10년 이후의 사업의 지형을 예측하는 것은 무의하다. 이 급변하는 환경의 와중에도 국가의 미래는 설계되고 또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변화하려면 혁신하려면, 그 지향점을 변경하지 말아야 한다.

1999년 봄 새로 과학기술부 장관에 취임한 서정욱 장관이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했다. 취임 이후 출연연구기관들을 방문하고 기관장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시 연구단지 담당 기자 한 분이 출연연구기관의 신진 과학자들과 장관의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기획했고, 필자도 그 자리에 초청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 계룡산 자락 도예촌의 한적한 찻집에서 장관과 청년 과학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날 모임의 모든 대화는 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는데, 오래 잊히지 않는 장관의 말이 있다. “장관이 바뀌었다고 정부 정책이 바뀌면 어떻게 과학기술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내가 장관으로 취임했지만, 전임 장관이 세운 계획은 바꾸지 않고 지속해서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한 세대, 동서냉전의 시기만 해도 누가 독일의 통일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서독의 통일 과정에서도 바꾸지 않는 것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후 서독에서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권을 바꾸며 수상이 되었지만, 그 기간 동독을 향한 서독의 정책은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서독 정부는 서독의 주민들은 물론 상대방인 동독의 주민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인 주변국들로부터 견고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분단의 상징 베를린장벽은 하룻밤에 무너졌지만, 실제로 통일은 서독 정치인들의 불변함을 통해 수십 년간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책은 대통령이 바뀌는 5년마다 바뀐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에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5년마다 정책과 목표를 변경하니, 5년짜리 계획만 무성하다. 단거리 스프린트는 잘 뛰는데 장거리 마라톤은 꼴찌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의 명암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동시에 OECD 최고 자살률 국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 동시에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의 국가. 이제 우리 다음 세대에도 자랑스러울 나라의 모습을 꿈꾸고 싶다. 그리고 그 꿈 이룰 긴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고 바꾸지 않아야 한다.

바꾸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굳게 방향타 흔들리지 않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바뀌는 환경과 상황에도 본질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힘 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노력이 소중하다.

이제 길게 계획하고 바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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