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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배 여사의 김장하기

이동주 시민기자
등록일 2023-12-14 19:23 게재일 2023-12-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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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순씨 시댁 형제들이 다 같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다.
“봄부터 멸치젓을 담그고 여름에는 마늘을, 가을에는 빛깔 좋고 맛있는 고추를 사서 저장해놓고 나니 겨울이 시작된 지금은 김장 준비로 바쁘네요. 올해에는 물가가 많이 올라 김장 비용이 많이 들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막상 김장철이 되니 무와 배추 값이 많이 안정이 된데다 해마다 김장을 하는 양이 줄어 이래저래 부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경북 봉화에 귀농한지 8년차의 배재순씨는 매년 이맘때면 김장을 하는데 올해는 갑자기 시댁 형제들이 같이 김장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 맏시누이와 통화를 하다 서로 나이 들어가는데 얼굴이라도 한번씩 보고 살자는 말에, 이참에 넓은 마당이 있는 시골 봉화에서 김장을 핑계로 같이 모이자고 한 것이다. 육남매 부부가 다 모인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자리며, 식사며 또 김장준비는 뭘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마침 맏시누이가 이것저것 알아서 챙긴다. 누구는 젓갈을, 누구는 김장 속 넣을 생선을, 누구는 다시 물 낼 재료를, 누구는 고춧가루를, 또 누구는 굴을 이런 식으로 역할분담을 해주니 시골에서는 무, 배추 그리고 같이 모였을 때 먹을 음식만 준비하면 되니 수월하게 일이 진행된다.


남편이 평소 이웃과 잘 지내 온 덕에 무와 배추를 심지 않았지만 이웃에서 그냥 얻어온 무 배추가 김장을 하고도 남아 썰어서 무말랭이로 말리기도 하고 저온창고에 내년 봄까지 먹을 수 있게 저장도 한다.


마침내 모이기로 한 날짜가 다가왔다. 토요일에 모이기로 했는데 금요일부터 바쁘다. 오전에 마트 가서 사 온 소머리는 핏물을 빼기 위해 물을 부어 우려 놓고, 배추는 다듬어 넓은 욕실에다 절여 놓고, 마늘도 두 접이나 까서 준비를 해놓는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배추절인 거부터 한번 뒤집어 주고, 손님맞이 이부자리도 점검을 하고, 남편은 가마솥에 소머리를 삶기 시작한다. 소머리는 소주 한 병과 생강을 넣고 한소끔 끓인 국물은 모두 버리고, 고기는 꺼내서 뼈와 기름기 있는 걸 모두 가려낸 다음, 맑은 물을 붓고 소주와 생강 그리고 약간의 커피를 넣고는 물렁하게 익을 때까지 세 시간 정도를 푹 끓인다.


오후가 되니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먼저 온 막내부부가 절인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놓고, 양산서 출발한 동생도 오자마자 소머리 손질하는 걸 거들고 부산에서 도착한 시누이는 다시 물 준비에 바쁘다. 왁자지껄 시종 웃음이 넘치는 속에 각자 맡은 역할에 분주하다. 저녁만찬으로 종일 준비한 소머리수육을 푸짐하게 내놓았더니, 모두들 맛있다며 빠른 속도로 젓가락이 움직인다. 쫄깃쫄깃, 오돌오돌, 그냥 살살 녹는 듯이 맛있다. 소머리수육이 이렇게 맛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칭찬 일색이니, 준비 하느라 애쓴 남편 표정이 아주 흐뭇해 보인다.


드디어 김장을 하는 날. 늦잠 자는 이 없이 모두들 일찍부터 어수선하게 설친다. 바깥 기온이 차서 데크 위에 있던 탁자를 거실로 들여와 그 위에 비닐을 깔고 양념 버무릴 채비를 하니, 바닥에 앉아서 하는 것 보다 아주 편하고 좋다며 모두들 대만족이다. 여자들은 양념을 버무리고, 남자들은 배추꼭지를 따고, 무도 썰고, 갖다 나르기도 하면서 여자들이 시키는 대로 뒤치다꺼리를 해주니 진도가 엄청 빠르다. 막 버무린 김장에 싱싱한 굴을 싸서 한입 넣으니 이게 또 꿀맛이다. 양념으로 빨갛게 칠해진 입을 보며 서로 웃고 농담도 하니 모두들 정말 즐겁다. 양념에 버무린 배추는 속에다 미리 준비한 갈치와 가자미를 한 토막씩 넣어서 김치 통에다 차곡차곡 담는다.


이렇게 해서 시끌시끌하면서도 즐거웠던 김장은 끝이 나고…. 각자 가지고 온 김치 통을 챙겨서 한꺼번에 왕창 빠져나가고 나니 배씨 가슴 한켠엔 왠지 모를 허전함이 인다. “내년에도 봉화에서 같이 김장을 해야겠다”.


/이동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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