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깨짐의 미학, 그 과거로 부터…’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4-12-19 18:35 게재일 2024-12-20 12면
스크랩버튼
박성표 작가의 작품.
박성표 작가의 작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봤을 땐 세밀한 그림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붓 터치 안쪽으로 균열이 보였다. 극사실주의 작품 속엔 잘게 조각난 수만개의 달걀 껍질들이 형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장을 채운 그림들은 대부분 큰 호수의 작품들이었다. 으스러지기 쉬운 달걀 껍질들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붙여넣고 그 위에 물감을 올리는 지난한 시간이 저절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시간이 균열로 변한 문화재들과 재료의 궁합이 더 없이 어울린다. 전시장 한켠에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책상과 재료를 마련해 두었다.


박성표 작가의 작품.
박성표 작가의 작품.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달에서 선보였던 박성표 작가의 개인전 ‘깨짐의 미학, 그 과거로 부터….’이야기다.

보통 깨어짐은 파괴, 상실을 상징한다. 하지만 작가는 달리 보았다. 깨어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며 나아갈 수 있다고. 그는 모든 물질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며 과거의 깨짐(해체)과 사라짐(소멸)이 현재의 시간 속에 응축된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선택한 재료가 달걀 껍질이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키우던 닭들은 주기적으로 알을 생산해냈다. 가끔 수거시간을 잊게 되면 어미 품안에서 부화된 병아리들이 새로 태어났다. 평소와 다름없던 하루였지만 남겨진 껍질들이 달리 보이던 날이었다. 새로운 오브제의 발견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캔버스에 붙여봤다. 깨어진 껍질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응축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을 통해 투박하지만 첫 작품이 완성되었다. 가슴 속에서 새로운 개체가 깨어남을 느꼈다.


박성표 작가의 작품.
박성표 작가의 작품.

박 작가 역시 여느 화가들처럼 그림이 좋아 선택한 길이지만 현실에 견주어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온몸이 녹아내릴 듯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살면서 어디 좋은 날만 있던가. 바깥 변화에 들썩이지 않고 예민하고 작은 조각들을 습관처럼 붙여나갔다.

그리고 유화물감을 이용한 극사실적 표현으로 조각들을 하나의 생명체로 응축시켜 나갔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들을 모아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러한 방식은 높이 오르기보다 지치지 않고 멀리, 넓게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그의 작업관에 더 없이 어울린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깨어짐과 응축 시리즈를 좀 더 넓은 주제로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특히 과학분야를 미술사적 영역으로 가져와서 그 시각적 선명함을 완성해 볼 생각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지 그 너머에 대한 고찰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고 밝힌 박성표 작가. 그의 넓은 세상을 기대해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