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다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한국방송대<br/>1972년 설립 이후 83만명 동문 배출·9만명 재학<br/>전국 곳곳 13개 지역대, 26개 시·군 학습관 보유<br/>72세 女 만학도 평생 괴롭힌 억울함 풀 용기 얻어
그래도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어지러운 정쟁(政爭) 속에서 무안 항공기 참사까지 더하니 마음은 더 시리다. 걱정꺼리 넘쳐나는 민초들 삶에 불쑥 끼어든 나라 걱정. 밤잠 설치며 속수무책 당하는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간다. 어수선함 속에서도 수시 합격의 기쁜 소식이 들려오고, 새해와 함께 시작된 정시모집이 본격적인 대학 입시 시즌임을 알린다. 인생의 한 문턱이 되는 입시전쟁 앞에 선 수험생들은 내일을 희망하며 가슴을 졸인다.
배움에 뜻이 있다면 수능 성적 없이도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34만~37만원대의 저렴한 등록금으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만 있으면 누구라도 차별 없이 학문적 기회를 제공받는다. 2024년 11월부터 시작한 신·편입 모집은 1월 3일까지다.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라고도 불린다. 1972년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립 4년제 원격대학으로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83만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현 재학생 9만명의 분포도는 2~30대 45%, 4~50대 45%, 50대 이후가 10%이다. 16년간 동결된 저렴한 등록금만큼이나 장학제도도 잘 되어있다. 국가장학금 외에도 방송대만의 별도 장학혜택으로 70세 넘은 고령자 장학금, 24세 이하 젊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학생회 임원에게 주는 장학금 등으로 작년기준 200억을 지출하며 교육복지,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대학이다.
방송대를 알고 삶이 바뀌었다는 78세 최말자씨. 그녀가 18세였던 1964년 성폭행에 저항하다 ‘혀 절단 사건’이 일어난다. 아직 여성 인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기, 정당방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외려 중상해죄로 가해자가 되어 중형을 선고 받는다. 이후 순탄치 않은 삶을 힘겹게 이어가던 그녀가 63세 되던 해 방송대를 알게 된다.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하면서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성·사랑·사회’ 강의를 들으며 묻어둔 과거가 떠올라 그 한(恨)을 글로 썼더니 ‘이걸 어떻게 여태까지 참고 살았냐?’며 학우들이 그녀를 안고 통곡을 한다. 위안과 용기를 얻은 그녀는 부당한 판결에 대한 확신으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다. 사건이 있고 60년만이다. 앞으로 있을 재심 과정에서 무죄를 입증 받아 전과자로 살았던 억울함을 풀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방송대에서 공부를 하며 그녀는 평생 한을 풀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배움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의 교육철학은 ‘모든 이에게 기회를 주는 교육’이다. 교육 시스템은 개개인의 맞춤형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제공되는 배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방송대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졸업은 결코 쉽지 않다. 시공간(時空間)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 13개의 지역대학과 26개의 시·군 학습관을 두고 있으며 포항시학습관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학에서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줘야 할 어른들은 수험생들만큼이나 가슴 졸이며 국회를 쳐다본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주 거론되는 ‘탄핵’‘만장일치’에 대한 의미를 깊이 곱씹어보면서 배움의 의미도 함께 새겨본다.
무안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