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라고 입술로 소리 내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낙동강에 합류하기 바로 전에 자리한 내 고향은 강물 냄새가 늘 묻어났다. 천천히 흐르는 물 옆에 가면 고향같다. 어스름하게 해질 무렵에 아궁이에 불을 넣느라 산밑으로 깔리던 밥안개와 나무 타는 냄새, 그 또한 고향의 향이다. 고, 향. 그 말속에 향기가 들었다.
국립대구박물관 ‘향의 문화사’ 전시에 금동대향로 실물이 와있다기에 가 봤다. 포항은 박물관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가까운 경주와 대구에 박물관이 좋은 전시를 열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려주니 반갑기만 하다. 박물관 한쪽에 커피 향 가득한 카페가 있어서 먼저 들렀다. 연세 많으신 친정엄마 모시고 갔더니, 계피향 가득한 카푸치노를 사주셨다. 입안에 은근한 향을 품고 향의 이야기를 들으러 전시관으로 향했다.
1부 향의 기원을 찾아서, 2부 격식에서 취향으로, 3부 향으로 이어진 마음, 4부 향 문화의 정수, 백제 금동대향로까지 고대부터 현재까지 향의 모든 것을 부려놓았다. 특히 1992년 부여 왕릉에서 발견한 백제의 금동대향로가 제일 관심사였다. 동으로 만들고 금을 입힌 향로인데 발굴한 지 31년이 되었다. 보전이 잘 되었고,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함이 깃들었다. 가장 위에는 봉황이 나르고, 그 아래에는 능선과 봉우리 위에 동물과 사람들을 세공했다. 아래쪽도 엄청난데, 용이 향로의 몸체를 받치고 날아오르려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1월 9일까지 실물 전시하다가 지금은 복제본이다. 복제본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세계의 3대 향은 침향, 사향, 용연향이다. 이 향수의 원재료인 침향나무, 사향노루, 향유고래는 멸종위기다. 사람의 욕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시품 중에 제사상 옆에 ‘교의’와 ‘육각탁자’를 보고 친정엄마가 젊은 시절 보던 물건이라 하셨다. 박물관에 함께 오면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와 고향으로 공간이동 하는 기분이다.
복주머니와 노리개에 비상약을 담거나, 향을 넣었다고 한다. 향수를 뿌리는 것과 비슷한 역할이다. 갖고 싶은 어여쁜 노리개를 뒤로하고 두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자, 향기가 훅 끼쳤다. 전시 주제에 맞게 공간 가득 향을 채웠다. 기획자가 누구인지 아주 기발한 생각이라 칭찬하며 걸었다. 사람 몸집만 한 매향목과 완성도 높은 향완들을 보다가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까지 감상했다.
대구 박물관은 이 전시 외에도 구경할 게 넘쳐난다. 본관에 들어서면 큰 화면이 있는데 전시 관련 영상을 틀어준다. 발 모양이 그려진 곳에 사람이 서면 동작을 따라 하는 모션캡쳐 영상도 나왔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직접 체험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대구 경북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한 관, 도산서원의 사계와 결혼 60주년 기념 잔치 ‘회혼례’를 재미난 미디어아트로 30분 간격으로 상영하니 다리도 쉴겸 보면 좋다. 그 옆 전시관엔 화려한 한복의 변천사가 펼쳐진다. 부모님이 결혼하실 그즈음의 한복도 있어서 어르신들이 보면 더 좋을 전시였다.
또한 국립대구박물관은 ‘2025 설맞이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27~28일, 30일에는 박물관 실내 문화사랑방 및 해솔관 로비에서 다양한 체험 활동이 펼쳐진다. 복을 불러들이는 의미를 지닌 복주머니 무드등 만들기와 나만의 팽이를 꾸미고 야외 마당에서 겨울철 전통놀이인 팽이치기를 해볼 수 있다. 1일 선착순 500명, 준비된 재료가 부족할 시 다른 체험으로 대체되거나 조기 종료될 수 있다. 행사는 무료이며 별도의 사전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입구에 개관 30주년 사진전도 열린다. 볼거리가 풍성한 박물관이 우리 곁에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