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마저 푸르렀던 5월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사는 섬 중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에 다녀왔다. 가파도는 이름에 얽힌 설이 여럿 있었다. 파도가 섬을 덮었다고, 생긴 모양이 가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물결이 더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가파도는 섬의 특성상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해도 섬에 들어갈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도 모슬포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그날의 마지막 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출렁이는 수면 위로 뱃머리가 천천히 나아갔다. 저 멀리 구름 아래 떠 있는 섬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내 가슴은 기대감으로 설렜다.
상동포구에 다다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제주올레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를 걸었다. 그러나 마음에 닿는 곳이 보이면 샛길로 빠져 해안도로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했다. 오솔길 따라 쉬엄쉬엄 걷다가 숨이 멎을 듯한 청보리의 물결을 보았다. 푸름이 바람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며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풀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포항에서 살아온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구만리 보리밭에 간다. 언덕 위에서 바다를 향해 살랑살랑 나붓거리는 보리를 보며, 늘 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을 체감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의 물결이 계절을 지나가게 하고, 보릿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어느 시절의 꿈처럼 다가오곤 했다. 나에게 들숨마다 봄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푸른 숨결인 보리를 섬에서도 만났다. 가파도를 뒤덮은 푸르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다.
봄빛을 머금은 청보리는 바람 따라 쉼 없이 출렁였다. 마치 바다 위에 또 다른 바다가 피어난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보리의 이마는 가볍게 눌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 질서 있고도 유연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한흑구 선생님의 수필 「보리」를 떠올렸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누리는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한흑구 선생님께서는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 창작되어야 하고, 철학이 그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실제로 그의 수필집 ‘동해산문’을 읽어 보면, 시적인 명문장들이 빛을 발했다.
보리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내가 섬 안으로 스며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은 내 등을 떠밀지도 앞서 끌고 가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머물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소망전망대가 나왔다. 높은 곳이라 해도 해발 20.5m로 언덕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뜻밖에도 크고 넓었다. 보리와 바람, 낮고 둥근 지붕들, 그리고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제주 본섬과 한라산은 감동적이었다. 가장 낮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본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그 순간, 마치 땅끝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발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펼쳐지고, 시선 끝에는 구름을 이고 선 한라산이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말없이 하나로 엮여 있는 섬은 오래된 시간처럼 존재했다. 바다와 바람 사이에 떠 있는 가파도에서, 나는 높이와 깊이의 감각을 동시에 느꼈다. 멀리 있는 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고 나의 마음은 고요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침잠했다.
가파도에서 만난 섬사람들은 말수가 적었다. 그들은 밭일을 하다가도 바다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곧바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보리처럼 허리를 숙이고 살아가는 강인한 눈빛의 사람들을 보니 내 가슴이 뭉클했다. 섬의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보리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함께였다. 섬사람과 청보리는 바람에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섬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머무름의 끝이 곧 떠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배에서 뒤돌아보니, 섬은 점점 멀어지고 청보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남은 보리는 더 넓고 깊게 자라고 있었다.
/정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