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틀간 사진 치료 워크숍에 참여했다. 작년에 ‘사진으로 대화할까요’라는 책을 사놓고만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의 저자인 김문희 사진상담치료사가 직접 진행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무지했거나 외면했던 여러 가지 마음 패턴을 발견했다. 그중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치료사가 A, B. C를 말했는데 A에 꽂히면 B와 C는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 것이다.
터널 비전은 원래 시각장애를 뜻하는 의학용어로, 주변부 시야가 사라지고 중심부 시야만 남아 마치 터널 안을 보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심리상태나 한쪽 정보만으로 판단이 편협해지는 인지적 문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같은 사진 카드에서 참여자들이 각자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터널 비전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재난 상황이나 운동 경기, 큰 시험 등 고도의 집중력이 상황에서는 터널 비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본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듣지 않는 내게 치료사가 집중력이 좋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터널 비전은 프레임과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임은 아예 객관적 인지를 못하는 상태인 반면 터널 비전은 대상을 제대로 보기는 하지만 시야가 좁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의 시선을 보거나 사진상담치료사의 피드백이 충분하면 자신의 터널 비전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다면 터널 비전은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많다.
최근 사퇴한 강선우 여가부 장관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의 밑바닥에도 터널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강선우를 비판하는 쪽은 보좌관 갑질에 주목하고, 찬성하는 쪽은 보건복지 관련 입법 발의한 경력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른 것만으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집중한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심지어는 증명되지 않은 논리로 비판하는 데 이르렀을 때 문제가 커진다.
아무리 터널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은 사실을 보여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제시하는 사실을 축소 해석하거나 ‘음모’니 ‘수박’이니 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면 토론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은 이렇게 지나친 해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이 반대하니 적격자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강선우 지명자를 비판하는 쪽과 옹호하는 쪽, 그중에서 논리 비약을 많이 하는 쪽이 더 단단한 프레임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국민 모두에게 사실을 공개하고 토론에 붙여 어느 쪽이 논리 비약이 많은지를 기준으로 적격 부적격을 판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내가 일부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듯이 강선우의 행태를 모두 열거하고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여론은 터널 비전을 자각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퇴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 셈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