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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어진다

등록일 2025-07-31 18:16 게재일 2025-08-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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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철 수필가

이율곡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라고 코흘리개 애들도 안다. 우리나라 최고 고액의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니깐 그 위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원수라는 아버지는 어디 가도 찾을 수 없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인물이어서 그런가? 조선은 분명 유교 문화의 시대이다. 그래서 조선은 부계 중심의 사회로 형성되어 있다. 자식 제사는 없어도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는 당시 풍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영향이 이어져 온다. 제사를 합치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중심으로 제사를 합치지 할머니나 어머니 기일에 맞춰 합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도 반론하지 않는다. 마치 외손자보다 친손자가 더 끌린 듯 부계의 전통은 우리 몸 깊숙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유교의 대가인 이율곡 집안은 달랐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중심의 사회이었음에도 아버지 이원수의 존재감은 간데없다. 심지어 아버지가 계모 권 씨와 재혼하자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율곡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그 영향인가?

불교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중심의 효를 강조한다. 모계를 중심으로 효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부모은중경에,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후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주동 박사가 부모은중경 내용을 보고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를 만든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전부 어머니 찬양가이다. 불교에는 오역죄(五逆罪)라는 다섯 가지 아주 큰 죄가 있다. 오역죄를 범하면 저승에서 가장 지독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 불교의 여러 경전에 묘사된 이 지옥의 고통 받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형벌이다. 다섯 가지 죄 중 맨 처음 나오는 것이 어머니를 해한 인간이 나온다. 아버지는 두 번째이다. 어머니가 더 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그들이 애들을 키울 때 머리를 때리지 않고 대신 귀싸대기를 때릴 정도로 머리를 중하게 여겨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유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민족이다. 부모에게 물을 가져가야 할 때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간다. 어머니에게 물을 먼저 가져가도 바로 아버지에게 물을 건네기에 아버지에게 먼저 가져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고 그 권위는 자라면서 체득되고 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 아버지의 위치가 너무 비참하다. 평생 돈 벌어 먹이고 입혔건만, 돈 안 벌어 오니 대접이 영 신통찮다. ‘부모’란 단어가 ‘모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상한 징후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딸이 제 엄마만 데리고 외국 여행 간단다. 나만 고양이랑 집을 지켜야 한다.

/노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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