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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만 잡으면 면죄부를 쥐게 되나

등록일 2025-08-24 19:42 게재일 2025-08-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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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만 잡으면 면죄부를 쥐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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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우상호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인 사면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데 대한 해명이다. 기세 좋던 지지율이 눈에 띄게 꺾이니 ‘피해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면의 피해자라니 어불성설이다.

 

정치는 권한과 책임이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진다. 이 대통령이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통치행위를 했어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이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구나 원하고, 부러워하지만, 그 책임을 나눌 수는 없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책임이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란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라니….

 

우 실장은 “대통령 임기 중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정무적 판단을 먼저 했다”라면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임 초에 하는 것이,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사면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 전 대표는 형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가석방 요건도 안 된다.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다. 굳이 곧바로 꺼내주려고 결심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나온다.

 

우 실장은 사면하면 국정 지지율이 4~5% 하락할 것이란 대통령실 내부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면했다는 것이다. “무슨 이익을 보기 위해 (조 전 대표를) 사면한 게 아니고, 피할 수 없다면 사면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 대통령이) 고뇌 어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더 떨어졌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주만에 12.2%P가 추락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국민 여론은 사면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NBS조사에서 조 전 대표 사면에 대해 부정 의견이 54%로 긍정 평가(38%)보다 16%정도 높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부정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특별사면(21%)를 꼽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 뜻을 거스
른 ‘결단’이 무슨 영웅적 ‘고뇌’이고, ‘희생’인지 공감할 수가 없다.

 

사면은 사실 지극히 예외적인 조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권은 서로 존중하며 분립한다.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히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면 명단을 보고도 이런 명분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면 제도는 정치보복을 해소하고, 억압과 차별을 해소한다는 왕의 자비다. 왕은 관대함으로 존경받고, 정치적 반대자까지 왕의 통치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면에도 야당 정치인을 포함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들러리다. 더군다나 청탁 사실이 노출되면서 야당의 반대 목소리마저 군색하게 됐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배제했다지만 누가 믿겠는가. 같은 진영에 대한 대폭 사면은 정치적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전 대표,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등을 풀어주는 게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까. 이들은 본인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면 잡범 취급당하며 형기를 채워야 했을 범죄를 정치 탄압이라고 포장한다. 오히려 개선장군인 양한다. 죄를 지어도 권력만 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통을 만드는 꼴이다. 이 대통령도 야당 시절 “국민 통합에 저해되는 특혜 사면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이 정부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표적 수사로 몰았다. 검찰도 정치권에 줄을 서는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검찰도, 경찰도, 심지어 법원까지 신뢰가 무너졌다. 재판을 받아도 사법 정의를 믿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정의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차지한다.

 

재판이 아니라 권력만 잡으면 무죄가 되는 전통을 만들면 정의가 설 땅이 없다. 결국 가진 것 없는 사람만 감옥에 남고,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큰소리치게 된다. 대통령만 되면 수백 명, 수천 명의 재판을 무효로 만들고, 같은 패거리 정치인을 모두 풀어주는 이런 사면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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