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밥 헌터스 시래기 맛집 ‘경주 여기당’
통일전 옆 서출지에 연밥이 익어간다. 둘레에 큰 소나무와 오랜 세월을 견딘 배롱나무가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서출지 바로 옆에 시래기 맛집이 있어 한걸음에 달려갈 거리다.
배가 고팠다. 미리 예약한 경주의 소박한 식당, ‘여기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은 경주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맛집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라 예약 없이 가면 자리가 없어 30분은 기다려야 하거나 그보다 운이 모자라면 솔드아웃이다. 정해진 양의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니 예약은 필수다.
‘여기당’을 처음 소개해 준 친구는 경주에 살지 않는 경기도 친구였다. 연휴에 자전거 여행하려고 트렁크에 싣고 2박3일 다니러 와서 내게 연락했다. 여행자들의 단골집이라고 외지인이 추천한 맛집이어서 조금 의심하며 찾아갔다가 소박한 메뉴판을 보고 진짜 맛집인가 했다. 시래기 비빔밥과 시래기 전 두 가지와 곁들여 목을 축일 막걸리와 동동주가 다였다.
기와지붕 아래 세 글자뿐인 간판만큼이나 단정하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은 글자, 내부 인테리어도 단순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가 손님을 맞는다. 전화로 비빔밥 하나와 전 하나만 시켜도 되냐니까 가능하다고 해서 더 좋았다. 창가 자리에 수저가 세팅되어 우리 자리가 분명했다. 꽃병에 꽃이 이 집 분위기와 잘 어울려 주인장의 센스가 보통은 넘어 보였다.
시래기 전이 먼저 나왔다. 질길 거라 예상했는데 식감이 좋았다. 버섯과 새우가 섞여 풍미를 올렸다. 정갈한 주인장은 전을 찍어 먹는 간장을 손님 수에 맞게 따로 써빙 한다. 송송 썰어진 양파와 땡초를 하나씩 올려 바삭한 전으로 초요기했다. 샐러드도 각자 하나씩 앞에 놓아주었다. 기름에 구운 전과 상큼한 샐러드가 잘 어울렸다.
식기도 전에 전을 다 먹을 때쯤 비빔밥이 나왔다. 둘이서 한 그릇만 시키니 달라고 하지 않아도 여분의 그릇을 주며 나눠 먹으라 한다. 시래기가 부드럽고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 부추 양념장을 곁들여 김에 싸 먹는 방식이 별미다. 함께 나온 반찬도 하나하나 맛있었다. 오이무침, 계절 나물, 무생채, 된장찌개 등 손맛이 느껴졌고, 전부 짜지 않아서 밥과 함께 먹기 딱 좋았다. 다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했다.
이렇게 손님이 늘 많은데 저녁 장사는 왜 안 하냐고 물으니, 오후 2시면 문을 닫고 저녁은 재료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재료가 소진되면 오후 2시 이전에도 문을 닫기도 한다. 욕심부릴만도 한데 소박한 밥상, 단정한 간판, 하지만 좋은 재료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마음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느 때라도 좋지만 특히 가을이 압권이다. 너른 들에 벼가 누렇게 익으면 논뷰가 그저 그만이고, 가로수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그때만 이 주변이 시끌시끌해진다. 미슐랭이 우리나라에 와서 별을 준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가게가 없어져버려 안타깝다는데 ‘여기당’은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 머문다. 경주에서 역사를 느끼고 한끼 맛있게 먹을 곳이 여기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기당’이다.
월, 화요일 휴무이며 주차는 건물 앞에 가능하다. 8월 27일에서 9월 9일까지 휴가이니 그 후에 다녀가기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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