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랑
“벗어 봐요”
지나가는 나에게 속삭이던 너,
못 들은 척 했었지
겹겹이 입고 있다가
때가 되면 벗을 줄 아는 너,
맨몸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는구나
허공을 떠받치고 있는 가지들이 눈부시구나
몇 날 며칠을 혼자 서 있어야
껴입은 욕심을 버릴 수 있겠니,
모든 걸 떨쳐버리고
오롯이 바람 한 점만 걸칠 수 있겠니,
이 시간 이후부터 나의 자화상을
너로 삼기로 했다
….
겨울이 되어 옷 벗은 나무. 시인이 이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은 나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무의 꼿꼿함 때문이다. 물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의 문제다. 자신의 맨 영혼을 세상에 드러냈을 때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오롯이 바람 한 점만 걸칠 수 있”는 영혼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잎 떨군 가지처럼 “허공을 떠받치”며 자유에 도달한 영혼, 시인은 이 나무의 영혼이 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