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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헌재, 尹 탄핵선고 이후의 사회적 파장 고려를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이번 주 중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로인해 서울 종로구 헌재 주위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경찰은 헌재 정문 방향의 인도 양쪽에 투명 차단벽과 질서유지선을 설치해 일반인의 통행을 막고 있다. 지난달 25일 변론을 종결한 뒤 3주 가까이 거의 매일 재판관 평의를 열어온 헌재는 그동안 쟁점별 검토를 마치고 결론을 도출하는 단계까지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이번 주 후반인 20, 21일쯤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결론도출에 난항이 계속되면 오는 26일 예정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 이후로 판결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판관들이 현재 심리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 사건을 먼저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하거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가 중도에 합류하는 것도 선고기일 지정에 변수가 될 수 있다. 헌재가 쟁점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국회와 윤 대통령 양쪽이 제기한 쟁점이 워낙 많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을 도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칫 법적 공정성과 절차적 완결성이 문제가 될 경우, 후유증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윤 대통령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재판관 간 전원일치 의견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헌재는 그동안 자료송달, 재판관 기피신청, 기일 변경 등 모든 사안을 만장일치로 판단해 왔다. 헌법에 따라 파면 결정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만약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린 채 선고가 내려질 경우, 그 파장은 심각할 것이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보수·진보 양진영에 불복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파면 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결정돼, 결정문에 소수의견이 없었다. 그리고 헌재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공정하게 했다는 것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2025-03-17

내란 정국의 역사 기술과 ‘전환기’라는 시대 의식

허민문학연구자 훗날, 오늘의 내란 정국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까? 국회와 선관위를 급습한 12·3 비상계엄의 발동, K-극우의 준동과 유튜브 수익 경쟁, 집권 여당의 부화뇌동, ‘야당 독재’라는 가짜 프레임과 다수 언론의 기계적 중립, ‘키세스 시위대’와 남태령의 트랙터, 아이돌 응원봉과 ‘다만세’ 제창, 내란성 불면과 우울증의 사회적 확산, 개헌 논의의 필요와 반동성 등, 분명 이 연쇄된 사건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과 성취,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대립·갈등하는 정치사의 주요 국면으로 기술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에 남게 될 역사서술의 향방이 가장 궁금한 건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에 대한 구속 취소와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에 있다. 경호처 영장 반려에서부터 예견된 이 기괴한 판결과 의도된 무력한 수용에 대해 역사의 페이지에는 어떤 방식으로 작성해야 하나? 그야말로 남들 보기에 창피한, 특별한 교훈(?)이나 철 지난 의미조차 없는 이 사태를 그 자체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새삼 걱정된다. 물론 누가 작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언제나 중요하다. 반일종족주의나 뉴라이트 역사관을 봐도 그렇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죽은 자들도 적이 승리한다면 그 적 앞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비유한 ‘역사의 천사’는 역사의 진보를 믿기보다는 과거의 잔해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다. 시간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으며 파열과 중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때론 작가 한강의 말처럼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도,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도 있다. 파당 정치나 계급투쟁, 진영 대결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역사의 법정을 바로 세우는 길에 관한 과업이며, 그 문턱에서 말소되어선 안 될 진실한 기억에 대한 사수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당치 않은 비상계엄의 정당성이 운위되는 작금의 사회적 대혼란이 누구에 의해 어떤 관점으로 역사에 남겨지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탄핵 심판은 역사의 갈림길이다. 어쨌든 내란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일종의 ‘전환기’를 맞이할 거란 사실만은 분명하다. 흔히 ‘이행기’나 ‘전환기’라고 불리는 특정한 역사의 국면에는 과도기적인 현상이 관찰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 전후 시기의 단절과 연속, 상실과 회복의 교차를 비롯해 ‘과거의 잔여’와 ‘미래의 현현’이 ‘현재의 쟁점’ 속에서 충돌하거나 병행하는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역사 인식의 방법이 필요하다. 이때 그 방법이란 역사학자들의 학문적인 고심으로부터 확보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대로 정치적 획책으로 도모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내란 이후의 한국 사회는 글로벌한 규모에서 횡행하는 우익 포퓰리즘의 바람에 말려 들어갈지 아니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가 아래로부터 다시 논의될 수 있는 극적 발판이 마련될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역사의 운명이 소수의 법비들에게 달려 있는듯한 요즘의 형국이 심히 불안하고 불쾌할 따름이다. 전환이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일과 가능한 데 불가능했던 일들을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세상이 일거에 바뀔 수는 없다. 조금 지쳐도 더 나은 세계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고달픈 경로라 생각하고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

2025-03-17

값과 가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인터넷으로 난(蘭)을 몇 촉 샀다. 구입한 난의 종류와 재배방법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난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내가 보기에는 잎의 모양이나 색이 조금씩 다를 뿐인데 판매 가격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몇 촉에 만 원 이하의 난이 있는가하면, 일견 비슷해 보이는 다른 종류의 난은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값이 매겨져 있었다. 심지어 어떤 희귀종이라는 난은 20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었다. 풀 한 포기의 값이 보통사람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돈이라니, 놀라움을 넘어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미술작품 중에도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작년까지 경매시장에서 팔린 작품 중에 가장 비싼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르도문디’라는 그림이라고 한다. 무려 4억5천30만 달러에 사우디 왕자가 낙찰 받았다고 하는데, 한화로는 5천억 원이나 되는 가격이다. 그 밖에도 폴 세잔, 폴 고갱, 잭슨 폴락 등의 그림이 3천억 원을 호가했고, 렘브란트, 앤디워홀, 마그로스코, 크림트 등의 그림이 2천억 원 상당에 팔렸다고 한다. 물론 경매시장에 나오지 않고 박물관 같은데 보관된 작품 중에는 그보다 훨씬 더 값나가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난이나 그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것을 그저 준다고 해도 마다할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애호가들은 애지중지 수억 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희귀난도 김매는 시골 아낙네의 눈에는 그냥 귀찮은 잡초로 보이지 않겠는가. 극단적인 예로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수천억 원짜리 그림이 물 한 모금보다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고흐는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를 못했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그림을 빵부스러기와 바꾸어 먹을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요절하고 말았다 한다. 우주 만물에는 원래 차별이나 가격이란 게 없었다. 사람들이 자의로 구분하고 값을 매겨서 경중이나 귀천이 생긴 것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사물의 고유한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가격의 형성은 보통 상품으로서의 가치, 즉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가령 예술 작품의 경우는 시대적·문화적 의미부여와 상업적 계산도 작용해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수긍이 가는 가치일 수는 없을 터이다. 물론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더 많다. 우선은 하늘과 바다, 해, 달, 별, 눈비와 바람 같은 자연이 그렇고, 생명과 영혼과 사랑과 진실이 그렇다. 인간 사회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위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가 삶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게 되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비관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마음먹기 따라서는 누구나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가 있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고, 그것으로 얼마든지 삶의 보람과 기쁨을 창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5-03-17

탄핵 반대 세력을 키운 건 이재명 대표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에도 거리는 소란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비롯한 서울의 거리 곳곳은 물론 구미 등 지방 도시에서도 수만, 수십만 인파가 몰려 아우성쳤다.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업무로 복귀하거나. 양단간에 결정이 난다. 그러고 나면 조용히 끝날까. 탄핵당하면 60일 내 다음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 경쟁으로 관심이 쏠릴까. 탄핵이 기각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지금 거리에 쏟아져 나온 군중은 집으로 돌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군중이 더 흥분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그 결정을 반대하는 군중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흥분하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보지 못한 일이다. 그때도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도록 시위가 이어졌다. 토요일마다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서울 시청과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행진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보다 혐의가 작았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책임졌다. 그런데 왜 지금 더 폭발했을까. 흥분한 보수 인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보수세력은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비상계엄보다 더 두려워한다. 이런 식이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바로 공산화된다”,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논리를 비약하고, 비약해서 쏟아내는 억지를 일일이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이 대표가 뿌린 씨앗들이다. 이 대표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지금도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로 세력을 끌어모은다. 탄핵 반대 세력을 모아준 1등 공신이 이 대표다. 뒤늦게 놀란 이 대표가 광화문 앞에서 연 최고위원 회의에도 빠졌다. 이 대표는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최근 대선이 가깝다고 생각해선지, 우클릭 행보를 했다. 그러고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다시 좌클릭했다. 이 대표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다. 가벼운 말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최근 사법 리스크를 대처하면서도 상식과 다른 해명들이 신뢰를 흔들었다. 지난주 헌재는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 건을 줄줄이 기각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밀어붙인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반부패2부장에 대한 탄핵 심판이다.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탄핵 근거들을 모두 배척했다.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소추였음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소추안을 29번 발의했다. 13건을 강행 처리했다. 역대 모두 합쳐서 16건인 탄핵소추 가운데 3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 정부에서 민주당이 한 것이다. 지난주까지 그중에 8건이 기각됐다. 탄핵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을 기각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탄핵 심판하는 동안 해당 고위공직자의 손발을 일하지 못하게 묶어놓게 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이유로 지적했을 정도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고 한다. 너무 궁지에 몰지 말라는 경구다. 그런데 이 대표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이 대표는 대통령 관심 예산을 모조리 칼질했다. 윤 정부의 국정 방향과 충돌하는 법안을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 내외를 특검으로 몰아세웠다. 당내 정치도 그렇게 했다. 지난 총선 공천이 전형적이다. ‘비명횡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용진 전 의원 낙천 과정은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이 대표와 갈등을 빚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집권하면 상대 정당에도 같은 보복을 할 것 같은 공포를 심었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진 책임의 상당 부분을 이 대표가 떠안아야 하는 이유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16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재밌게 봤다. 제주도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가수 아이유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배우 이지은의 1인2역이 눈길을 끄는데 특히 소녀가장으로 식모살이하면서도 문학소녀의 꿈을 잃지 않는 오애순을 핍진하게 표현해냈다. 생선집 아들인 광식(박보검)과 애순의 패가망신을 겁내지 않는 ‘요망진’ 로맨스가 가슴을 뛰게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극 초반에 등장하는 애순 엄마 전광례(염혜란)의 눈물겨운 모정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부모의 빚까지 떠안았다. 결혼하고서는 해녀 물질하면서 남편 병수발까지 했다. 남편 죽고서 얻은 새서방은 방구석에 누워만 있는 백수건달이라 밥이라도 안 굶기려고 딸내미를 시어머니 집에 더부살이 보냈다. 억척스럽고 강인한 엄마 광례는 언제까지나 애순의 곁을 지켜줄 것 같았지만 애순이 10살 되던 해에 물질해서 얻은 숨병(감압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예감한 광례가 애순의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이면서 말한다. “두고 봐라. 요 꽃물 빠질 즈음 되면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이 대목에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광례는 신산하고 박복한 삶을 산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직 자식만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의 사랑이 ‘제주 해녀’라는 특별한 지역적 문화와 더해져 더 큰 감동으로 밀려왔다. 살면서 만난 여러 사람 중 제주도의 송협 형은 참 각별하다. 낚시로 맺은 인연이 이제는 거의 가족이 됐다. 가족보다 더 자주 통화하고 제주나 내가 사는 안양에서 며칠씩 동숙한다. 내게 “살다가 힘들면 제주 와라”라고 말해주는 이 형 덕분에 세상살이가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끄떡없다. 나에게는 제주라는 피난처가, 거기서 온 맘으로 나를 맞아줄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제주에 가고 싶고, 형이 그립고, 형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언젠가 형이 들려준 어머니 이야기야말로 드라마다. 1945년 제주 안덕면 사계리에서 7남매 맏딸로 태어난 김이선 삼춘은 초등학교를 그만 두고 밭일, 가게일, 동생들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질을 배워 열여섯 살에 해녀가 되어서는 형제섬 근처에서 미역을 캐고, 매년 2월부터 8월까지 강원도로 ‘바깥물질’을 다녔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 밭 사드리고, 돌아가실 때 입혀드릴 수의도 사고, 동생들 옷과 신발을 샀다. 스무 살에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자마자 시어머니께 맡기고 또 바깥물질을 나갔다. 집안 어른이 춥게 물질하지 말라며 일본에서 구한 고무옷을 보내줬는데 전통 해녀옷인 ‘물소중이’를 입은 다른 해녀들이 질투해 못 입게 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바깥물질을 다녔다. 그렇게 두 해 강원도에 다녀와서 보니 사계 해녀들도 전부 고무옷을 입고 있었단다. 닻줄에 발이 걸려 죽을 뻔했다. 물질하다가 시체를 본 적도 있다. 겁이 나도 물질은 그만 둘 수 없었다. 뱃속에서 이미 죽은 아이를 사산하기도 했다. 아이를 잃고 일주일만에 바다에 나갔다. 친정아버지가 “너 경허당 죽는다”고 해도 도무지 말릴 수 없었다. 바다에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다른 해녀들이 미역과 소라를 캐서 나오는 걸 보면 저절로 바다에 뛰어들게 됐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몸을 혹사한 결과 양쪽 무릎을 수술하고, 물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뇌선(진통제)을 하루에 한 번 꼭 먹게 됐지만 젊어서나 지금이나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년 동안 병수발 했다. 물질만으로는 살림이 되지 않아 장사도 했다. 생선, 미역, 톳 등 안 팔아본 게 없다. 낚싯배도 했다. 남편이 떠나고서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낚시 손님들을 태우고 가파도, 마라도로 직접 배를 몰았다. 그렇게 물질하고 장사하고 낚싯배 몰면서 집안 빚을 다 갚고 아이들 공부도 시켰다. 어머니의 일생이 드라마 속 광례처럼 파란만장하다. 어느 겨울 형과 함께 어머니가 담요 덮고 앉아 계신 집에 갔더니 귤을 잔뜩 꺼내주셨다. 현무암처럼 전복 껍데기처럼 거친 손에서 뭉클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바다를 만나러 봄날 제주에 간다. 험한 생의 파도를 넘어 이제 잔잔한 물가에서 볕을 쬐고 계시는 어머니께 “폭싹 속았수다” 말씀드려야겠다.

2025-03-16

덧없음의 위로

나의 삶의 주인공은 ‘나’지만, 언제나 그럴듯하게 멋진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미스터 초밥왕’에서는 주인공 쇼타 옆을 지키는 ‘오바타 신고’라는 인물이 있다. 신고의 별명은 ‘신코’로, 새끼 전어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이른 봄에 나오는 새끼 전어를 ‘신코’라 부르는데, 아직 제몫을 못하는 견습이라는 뜻으로 미성숙하고 불완전 하다는 뜻에서 붙었다. 오바타 신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름보다는 ‘신코’로 불린다. 주인공 쇼타와는 동년배이자 쇼타와 같이 일하는 오오토리 초밥에선 쇼타보다 반년 더 일찍 들어온 선배이지만, 어쩐지 주인공다운 쇼타의 엄청난 활약에 묻혀 오히려 비교당하고 계속해서 혼나며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오오토리 초밥에서 야반도주하여 건설 현장에 일하게 된다. 뭐 어쨌거나 쇼타의 도움으로 다시 초밥 장인의 꿈을 되찾은 신코는 다시금 오오토리 초밥으로 돌아오지만 만화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하루하루 눈부시게 성장하는 쇼타와는 달리, 신코는 완벽한 주연처럼 쇼타의 활약에 ‘굉장해! 정말 굉장해! 쇼타’와 같은 대사만 날릴 뿐이다.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건, 어디서나 주연보단 조연에 가까운 인물이다. 주인공의 활약을 돕고, 주인공의 서사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어딘가 급조한 듯한 ‘신코’ 같은 캐릭터와 같달까. 어디서나 주인공처럼 주목 받는 게 부담스럽고, 실은 주목 받을 만큼의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도,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도 아님을 객관적으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을 조금 달리 해서 영화 ‘트루먼쇼’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가짜 세트장에서 조작된 삶을 살고 있단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고, 죽은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만나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자신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알 수 없는 일들을 겪는다. 그러다 첫사랑 실비아가 모든 것이 쇼라는 사실을 트루먼에게 남기고 사라지게 되고, 트루먼은 그 말을 쫓고 쫓아 결국 자신의 30년간의 일상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TV쇼였단 것을 알게 된다. ‘트루먼 쇼’라는 이름의 이 쇼는 트루먼 버뱅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일상을 촬영해 전 세계에 생중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고,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결국 그는 세트장을 떠나 피지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물론 이 쇼를 제작한 총 책임자이자 트루먼의 삶을 조종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이 스튜디오를 떠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 공작을 펼친다. 하지만 트루먼은 이미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 리스크를 겪더라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행한다. 모두 나를 속이고 있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세상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결국 나아가는 것이다. 이전에 트루먼쇼를 볼 때에는 트루먼이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루먼처럼 용기 있게 알에서 깨어나는 새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트루먼처럼 섬을 떠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만큼의 의지와 용기가 없는 사람임을, 최근에 결국 깨닫고 말았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나는 근래에 새롭게 도전한 모든 것들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론적으로는 많은 실패를 남겼다. 그 실패 앞에서 지나치게 무력했다. 트루먼처럼 물 공포증을 이겨낸 채 다리를 건너 스튜디오 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음, 그렇지 못하다. 마치 미스터 초밥왕처럼 주인공 옆의 그림자처럼 자연스레 깔리는 ‘신코’처럼, 나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트루먼처럼 모든 것이 연출된 가짜 세상을 뛰어나갈 용기도, 결단도, 현명한 지혜도 없다. 그저 이 세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도 못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안다. 실패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며 불편한 쾌락과 조롱을 하더라도 나는 나의 삶을 산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느끼고, 만나고, 해쳐나가고, 견디고 있는 이 모습만큼은 아직까지 내게 진짜이고 진실된 순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가짜 세상을 깨지 못하고 이 속에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이 모든 것이 결국 다 덧없는가? 글쎄,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인간이라면 우선은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 수밖엔 없다. 그 허무함과 덧없음에게서 나는 이상한 위로를 얻는다.

2025-03-16

與野, 헌재 선고에 승복한다는 약속부터 하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지난 주말에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서울, 부산, 울산, 대전, 세종, 춘천 등 전국에서 대규모 찬·반 집회가 열렸다. 일부 헌재 재판관의 퇴임일이 임박한 만큼, 이번 주중 선고일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보수·진보 양진영이 총결집한 것이다. 나라 전체가 내란 상태로 치닫는 살벌한 분위기다. 지난 15일 구미역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기각을 요구하는 대규모 국가비상기도회(세이브코리아 주최)가 열렸다. 국민의힘 나경원·윤상현·이만희·장동혁·강명구·구자근 의원과 전한길 한국사 강사 등이 참석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연단에 올라 애국가를 불렀다. 같은 날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는 ‘윤석열퇴진 대구시민 시국대회’도 열렸다. 민주당을 비롯한 5개 야당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비상시국 범국민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의 조기 파면을 요구했다. 야당 지도부가 총집결했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윤석열 파면 촉구 도보 행진’을 나흘째 이어간 뒤 집회에 합류했다. 일요일인 16일도 양 진영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정치권은 선고 막판까지 헌재 앞에서 릴레이 시위 등을 벌이며 여론전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탄핵선고가 임박하자 각종 음모론까지 불거지면서 양진영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탄핵 찬·반을 놓고 두쪽으로 갈라진 집회가 3개월째 이어지면서 이제 갈등수위가 최고조에 이른 분위기다. 오죽하면 경찰이 폭동대비책까지 세우겠나. 과열된 군중심리를 가라앉히려면 정치권부터 냉정해져야 한다. 탄핵 선고 이후의 국론분열을 조금이나마 걱정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국민통합 분위기를 조성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탄핵당사자인 윤 대통령과 국회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아직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공식적인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국론분열에 가장 책임이 큰 두 사람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은 국민에게 헌재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승복하겠다는 약속부터 해야 한다.

2025-03-16

사교육비 줄일 묘수는?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주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사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쓰인 사교육비는 무려 29조 원이다. 전년보다 7.7%가 증가했고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각종 사교육 경감 대책에도 일선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교육비는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80%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은 참여율이 87.7%, 중학생은 78%에 달한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늘봄학교 운영 등 각종 대안에도 사교육비는 꾸준한 증가세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를 분석해 보니 월평균 59만2000 원. 800만 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이 300만 원 미만 저소득 가구의 7배나 됐고, 반면에 증가율은 저소득 가구가 고소득 가구보다 더 높았다. 또 지역별로 보면 사교육 참여율은 서울이 86.1%로 최고다. 참고로 대구 81.8%, 경북 75.4%다. 1인당 사교육비 역시 서울이 67만3000 원으로 가장 높았다. 대구는 47만8000 원, 경북은 35만6000 원이다. 통계를 놓고 보면 국내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은 줄어들 기미가 전혀 안보인다. 지역별로 편차도 심해 이러다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질 판이다. 사교육 열풍이 줄지 않는 데는 학벌주의, 노동시장 불균형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대구시교육청이 늘봄 확대 등 각종 대안 제시로 사교육 경감에 나서고 있지만 사교육비 추세로 보아 성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교육을 백년대계라 했다. 백년을 내다본 공교육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16

공자, 정치의 근본을 말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청도 인문학’에서 ‘논어’를 읽기 시작한 것도 어느새 10회차 두 달을 넘어선다. 그동안 ‘학이편’과 ‘위정편’을 마치고, 이번 주부터 ‘팔일편’에 접어든다. 복잡다단한 국내외 정세로 인해 공부에 마냥 집중할 수는 없었으나, 나름대로 여러모로 애쓴 점은 확실하다. ‘위정편’을 완독하고 나니 머릿속이 조금은 명쾌해지는 느낌이다. 공자가 정치에서 본질적인 요체를 설파한 ‘위정편’은 2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글 첫머리에 ‘시경(詩經)’을 도입한 것이다. “시경에 들어있는 300편의 시를 한 마디로 개괄하면 생각에 사특(邪慝)함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상당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 혹은 문학과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위정’이라 함은 정치 혹은 정사(政事)를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위정편’에서 정치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정치의 근간 혹은 근본을 설파한다. 공자가 ‘위정편’에서 강조하는 정치의 핵심은 세 가지다. 그것은 학문과 효, 그리고 군자다. 학문은 네 차례, 효는 다섯 차례, 군자는 세 차례 언급되어 모두 12개의 장이 할애돼 ‘위정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공자는 왜 학문과 효 그리고 군자라는 덕목을 강조한 것일까?! 그것은 유가(儒家)의 핵심인 ‘수기치인(修己治人)’에서 기인한다. 선비가 먼저 제 몸과 마음을 닦아 인간이 된 연후에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신을 닦는 행위의 근저에는 효와 학문이 자리한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충이 아니라, 부모를 향한 효를 강조한 공자의 심사가 실로 아득하다. ‘서경(書經)’을 인용하여 효 역시 정치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공자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공자는 효와 형제 우애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 먼저 인간이 된 후에야 비로소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그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식인의 가장 기초적인 자세를 역설한 것이다. 지식인의 개인 수양에서 앎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공자는 ‘학이사(學而思)’라는 공부법을 가르친다. “책만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에게 속기 쉽고, 생각만 하고 책을 읽지 않으면 위태롭다.” 책을 읽되 비판적으로 독서해야 하며, 생각하되 망상(妄想)에 빠지지 말고, 근거를 책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자의 공부법이다. 효와 학문에 이어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를 역설한다. 특정한 용도와 크기, 형태, 색깔과 무게를 가진 그릇으로 군자를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공자는 친하게 지내되 무리를 짓지 아니한다는 ‘주이불비(周而不比)’로 군자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설명한다. 이것은 화합하되 같지 아니하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같은 맥락이다. 벌써 100일 넘도록 진행된 내란 사태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러매 정치와 정치인의 기초적인 덕목을 새삼 돌이켜보는 것이다. 법 기술자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역겨운 상황이 조속히 종결되어 화평한 날들이 오기를 간절히 희구한다.

2025-03-16

달성군 대구 편입 30년, 대구발전 중심축 되길

달성군 논공읍 달성군 청사 앞에는 달성군 100년 타워가 우뚝 서 있다. 1914년 대구군 외곽지역과 현풍군을 통합해 신설한 달성군이 2015년 100주년을 맞아 세운 이 기념탑은 달성군민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과거 100년을 잘 이끌어 온 역사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전국 최고 도농도시를 꿈꾸는 100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긴 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경북도 관할에 있던 달성군은 1995년 정부의 행정통합 조치에 따라 대구시로 편입됐다. 당시만 해도 농촌도시로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달성군은 대구 편입 30년만에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로 부상했다. 100년 타워 설치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들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통합 당시 11만여 명이던 군 인구가 지금은 27만명으로 시급으로 성장했다. 1읍 8면이 6읍 3면으로 바뀌었다. 예산은 편입 당시 722억 원 수준에서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9568억 원으로 증가해 10배 이상 성장했다. 달성군의 평균 나이는 43.1세로 대구는 물론 전국 82개 군 단위 중 가장 젊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달성군의 출생아 수는 5년 연속 전국 군 단위 중 1위다. 합계출산율도 1.05명으로 전국 평균의 2배에 이른다. 대구 편입 30년만에 달성군이 이룩한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화려하다. 지역에 경제적 활기를 불어넣을 산업단지도 4곳에서 대구국가산업단지를 포함해 8곳으로 늘어났다. 산단에 입주한 업체만 1100여 군데에 달한다. DGIST 등 대학과 연구기관, 대구과학관 등 각종 산업인프라가 투자되었다. 특히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유치와 모빌리티, 모터소재 부품·장비 특화단지 지정 등 미래산업으로 발돋움할 여건들이 잘 채워져 있다. 또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이 2032년까지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하면서 달성군은 도농복합도시이자 첨단산업도시로서 착실한 성장이 예고되고 있다. 대구편입 30년 맞은 달성군의 눈부신 성장이 대구 발전의 축으로 지속되길 기대하며 30년 편입을 경축한다.

2025-03-16

환상 방황

전영숙 시조시인 어제도 그 남자 곁을 지나갔다. 집을 나서면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인지 찌든 쉰내가 코를 스친다. 장시간 이발을 하지 않은 머리는 이리저리 엉켜 어깨 뒤로 늘어져 있다. 다행히 검은색 두툼한 패딩점퍼를 입고 신발도 방한화를 신고 있다. 빈 가게 앞 계단에 손을 가슴 위로 모으고 누워 있다. 겨울치고 날이 따스해서 해바라기라도 하나 보다. 그 남자가 움직이는 행동반경은 비교적 일정한 듯 했다. 자주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과 큰 사이즈의 콜라를 먹고 마셨다. 우리 집 근처 약국에서 시작해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재래시장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본 것만 3년이 넘었는데 노숙의 삶이 몸에 익었나 보다. 노숙에 익숙해지면 좀처럼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삶을 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붕괴된 기족 관계, 무너진 가정 경제, 실직 등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요즘은 실직으로 젊은 노숙자의 수가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 동네에서 그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지 궁금했다. 문득 환상 방황, 윤형 방황으로 풀이되는 링반데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산에서 등반 중 본인은 어떤 목표물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방향감각을 잃고 큰 원을 그리며 같은 지역을 맴도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간다고 믿고 움직이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다 보면 사고력이 둔해지고 이런 행동을 무리하게 하면 조난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눈보라나 안개가 많이 끼었을 때 일어나기 쉽고 해나 달 같은 방향을 알려주는 기준점이 없을 때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위기에 처하면 생각이 흐려지고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은 늘 평탄한 길만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안개나 눈보라, 폭풍 같은 것도 만날 수 있다. 그런 어려움이 닥치면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힘든 일이 반복되며 더 깊은 어려움 속으로 들어가면 방향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삶에서 이런 환상 방황을 크게나 작게나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있었다. 단순히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이 아니라 불까지 몽땅 나가서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놓여 있었다. 손을 얼마만큼 뻗어야 비상 호출을 누를 수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향도 거리도 측정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같이 탔던 고등학생과 나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잠잠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이 있어서 밖으로의 연락이 가능했겠지만 그 당시엔 휴대폰이 일상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어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진한 무력감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 누군가는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노숙의 삶을 살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존 폴 디조리아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두 번이나 노숙자 생활을 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스스로 믿었다고 한다. 두 바퀴 스케이트보드로 유명한 강신기 대표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사업을 하던 중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 후 식구들은 처가로 보내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었다. 그러나 인력시장을 나가면서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이 늘 마음에 남아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모나 주변의 격려도 일어서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오늘도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원을 그리는 삶을 사는 그 남자를 지나쳤다. 요즘은 몸이 많이 힘든지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는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 가운데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마음이 작은 불씨로 일어났으면 좋겠다. 자신의 환상 방황을 끝내고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돌아가기를 빌어본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웠으면 싶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말끔해진 그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시조시인

2025-03-16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재훈 영주 부시장 도시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 밀집과 대비되는 지방 소멸의 가속화,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기후 위기, 재난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대두하고 있다. 이제 도시는 스스로 지속 가능한 발전시스템을 마련 해나가야 한다. 무조건적인 개발에만 몰두한 결과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졌듯, 지금 우리가 하는 준비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1월 포브스가 GDP와 군사력, 외교적 영향력 등 국가의 경쟁력을 토대로 발표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에서 6위를, 경제 규모에서는 12위를 차지했다. 눈부신 성과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어떨까. 대한민국은 2024년 기준 총인구 약 5200만 명을 기록해 전 세계 인구 순위에서 20위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경제와 인구가 무슨 상관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경제 동력이자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에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 0.7명을 기록하고 있고,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는 19%에 달하고 있는 등 인구 전망이 밝지 않다. 경제 대국, 문화 대국 대한민국은 한국인 특유의 집념과 지혜가 만들어 낸 결과지만, 인구가 지금의 추세대로 지속적으로 감소 된다면 1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영주시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지자체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다행히 조금씩이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거두고 있는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영주시도 그중 하나다. 영주시는 10년간 감소세를 이어오던 지역 출생아 수가 증가세로 돌아서는 경사를 맞이했다. 지난해 지역 출생아 수는 330명으로 전년 대비 18명 증가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숫자라 할 수 있지만 최근 10년간 감소세를 이어오던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증가세로 전환된 것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시는 국립산림치유원과 연계한 ‘너를 기다리는 설레임(林)’ 숲 태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가임기 여성부터 출산 가정까지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또한 임산부 교실을 운영해 안전한 임신과 건강한 출산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며 육아 준비를 돕고, 지역 임산부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산전검사(혈액검사·소변검사 등)를 지원하는 등 건강한 임신·출산 환경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출산 가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대폭 확대해 둘째아 이상 출산 가정에는 국민행복카드를 활용한 첫만남이용권 3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도내 최초로 산후 조리비 100만 원과 출생 축하금 50만 원을 지급하고, 첫째아 월 20만 원(12개월), 둘째아 월 30만 원(24개월), 셋째아 이상 월 50만 원(36개월)의 출생장려금을 차등 지원해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지역 출생아 증가가 단순히 우수한 출산 정책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영주시의 인구 증가를 위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보다 지역경제의 회복과 발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양질의 일자리와 우수한 주거환경, 경제 성장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자, 인구 증가에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최근 몇 년간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지정 승인, SK스페셜티 5천억원의 투자유치 협약체결 등 가히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많이 거뒀다. 영주시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인구와 자본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위기에 맞서 일자리와 삶의 질이 보장되는 경쟁력 있는 지자체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지역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기에 나선 땀의 결과다. 영주시는 지금까지 이뤄온 경제적 성장과 우수한 출산, 보육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단순 출생아 수 증가에 그치지 않고, 경제 인구와 생산인구 증가까지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방침이다. 떠났던 인구가 돌아오는 도시, 지역형 인구 증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쉼 없이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등 경제적 기회, 문화적 풍요, 사회적 연결망을 결합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오는 도시로, 새로운 기회의 장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도시 영주를 위해 시민과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다.

2025-03-16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김규인 수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삼 년 넘게 계속된다. 양쪽의 인명피해는 너무나도 크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사람도 많다. 우크라이나 국토는 부서지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렵다.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우크라이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의 휴전 제안은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국방부 장관은 종전 조건을 내놓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반대, 2014년 이전으로 영토 복귀 불가,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의 미국 참여 불참 등을 꼽았다. 휴전을 제안하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무기 공급마저 중단한 입장에서 러시아는 답답할 게 없다. 현재의 전황은 러시아에 유리하다. 러시아 내의 쿠르스크 지역 3분의 2를 되찾았고,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군인은 고립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전쟁도 러시아가 유리하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전쟁 비용을 정산하라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절실히 필요한 안전보장은 제시하지 않고, 5천억 달러라는 전쟁 비용을 요구한다. 이를 거부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무기 공급을 전면적으로 중단한다. 무기를 공급하며 응원해 주어도 힘든 싸움을 외면하며,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협상카드로 내민 우라늄, 흑연, 리튬 등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 투자 건도 미국의 양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강대국인 미국은 철저히 사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미국의 마음을 돌릴 카드 하나 없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슬프다. 그런데 이게 남의 일 같지 않다. 사업가 출신 트럼프 생각은 국익 앞에 동맹도 약소국도 없다. 철저하게 주고받는 계산기만 놓여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바닥까지 뒤져서라도 이익을 챙기고야 만다. 상도의도 서로 체결한 FTA도 무용지물이 된다. 막무가내식의 운영이 다른 나라를 옥죄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불똥이 튀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서는 대비책을 세우느라 바쁘다. 미국은 반도체에 대해서도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타국으로의 시장 개척은 쉽지 않고 고민 속에 시간만 흘러간다. 세계 제1의 경제 대국,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세계 경제를 검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국가의 모든 시설이 붕괴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의 철저히 계산적인 태도를 보면서 미국의 관련자를 만나 협상하고 미국 경제에 필요한 우리의 산업을 이야기하고 잘못 인식한 통계는 바로 잡아야 한다. 고율 관세로 미국의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다. 어쩌면 미국 국민에 의하여 이 고통스러운 정책은 멈출지도 모른다. 국민의 인기를 잃은 대통령이 끝없이 정책을 들고 나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최선의 노력으로 버텨내야만 한다.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2025-03-16

다정함보다 예의를

유영희 덕성여대 교수·평생교육원 다정함을 강조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세 권이나 된다. 며칠 전 김민섭의 ‘다정함이란 거래가 아닌 삶의 태도’라는 칼럼을 읽고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이 칼럼에서 김민섭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하면서 상처받지 않게 되면 계속 다정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선한 의지를 강조하는 이런 태도가 얼마나 설득력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가 제시한 근거를 보면 그 의문은 더 커진다. 8살 딸이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자기는 받지 못했다고 슬퍼할 때 친구가 즐거워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를 바라고, 어느 기업의 신입사원이 낯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밥도 사주고 홍삼도 사줬다가 그것이 그 할아버지의 상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을 때도 정확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면서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계속 다정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다정함을 강조하게 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너무 살벌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사회적 재난에 희생당한 사람에게도 조롱의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다정함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회복시켜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출간 시기를 기준으로 처음 나오는 몇 권이 모두 번역서라서 원서 제목들을 확인해보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다정함은 ‘friendliest’다. 동물을 포함하여 친화력이 좋은 생명체가 생존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의 원제는 ‘이타적 충동’이다. 사람들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남을 돕는 행동을 분석한 책이다. 김민섭이 말하는, 상대에게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행하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나마 ‘kindness’를 부제로 쓴 ‘다정함의 과학’이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관계가 있다. 원서 제목이 ‘토끼 효과’인 이유는 실험실에서 진심으로 돌본 토끼들은 다른 토끼와 똑같은 고지방 사료를 먹어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는 연구 결과에 착안했기 때문인데, 건강을 위해서는 영양과 의료로는 부족하고 일대일의 인간관계부터 사회적 돌봄까지 여러 수준의 진정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다정함을 발휘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다정함을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나누는 감정으로 자주 쓰기 때문이다. 두루 쓸 수 있는 표현으로는 다정함보다 예의가 더 적절하다. 예의는 형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먼 사람에게는 상냥하게 대하는 ‘정확하고 성실한 태도’이다. 끝내 딸이 아빠의 조언을 수용하지 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친구란 상대가 즐거운 것으로 만족하는 관계가 아니다. 답례하지 않는 친구는 손절하라는 조언이 딸과 친구를 위해 건강하다. 낯선 할아버지의 청이 지나쳤는데도 해준 것은 시혜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을 뿐 다정함도 아니다. 예의에 맞을 때 상처도 덜 받고 오래 할 수 있다. 혐오와 반목이 가득한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는 다정함보다는 예의라는 절도 있는 태도다.

2025-03-16

화이트데이, 파이데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이다. 굳이 ‘하얀날’이라 하지 않는다. 남자가 마음에 있는 여자에게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날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80년대 일본 제과업체의 마케팅 전략으로 탄생하였고 한국,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다져갔다는 사연과 짝을 이루는 날이지만 우리 조선 시대에도 처녀와 총각의 사랑 나눔 날이 있었다. 가을에 노랗게 익은 은행알을 주워 보관해 두었다가 경칩 날에 함께 까먹으며 은행나무 주변에서 사랑을 확인했다고 한다. 암수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봄날에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더니 주말엔 중국과 몽골 사막에서 발생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와서 온 천지에 누렇게 흙먼지 뿌리고 대기의 질을 나쁘게 할 것이라는데 화이트데이에 황토 먼지(yellow dust)를 뿌리게 되면 봄 내음이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려는 청춘남녀가 흙비에 젖게 되지는 않을지…. 이날 인연을 맺지 못하면 다음 4월 14일 솔로(solo)들은 흑갈색 짜장면을 먹게 되는 ‘블랙데이’의 외로움을 맛보게 된다. 4월에도 짝을 찾지 못하면 5월 14일 ‘옐로우데이’에 노란 카레를 먹으며 연애운을 빌어야 하는가…. 이날은 또 ‘로즈데이’라고도 하니 예쁜 장미 한 다발 주고받으며 사랑스러운 날을 보내야겠지. 이렇게 언제부턴가 매달 14일을 특별한 날로 정하고 젊음의 연애문화를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포틴데이(14일)’ 문화다. 즉, 1월 다이어리데이, 6월 키스데이, 8월 그린데이, 10월 와인데이, 12월 허그데이 등이 있고, 또 같은 숫자가 중복되는 3·3 삼겹살데이, 4·4 클로버데이, 6·6 고기데이, 8·8 라면데이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11·11 빼빼로데이까지…. 이러한 비공식 기념일은 상술의 한 방편이겠지만 소비자와 관련 기업의 상호 작용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자발적 참여문화가 그 기반에 깔려있으며, K-팝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영향이 크고 소비도 촉진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 던져본다, “기념일 참 많데이!” 또 3월 14일은 201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수학의 날’이기도 하고 ‘파이데이’(π day)라고도 한다. 원의 지름과 원둘레 간의 기본 상수인 원주율 3.1415와 같기 때문이다. 이날 각급 학교에서는 갖가지 수학 관련 행사로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또 그 발음이 둥근 빵 파이와 같아서 파이데이(pie day)라고 하여 파이 나누어 먹고 파이 굽기 대회도 하며 3·14마일 달리기도 한다니 참 재미있는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날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여전히 뿌연 하늘 아래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은 듯 헤맨다. 황사를 뒤집어쓴 듯 마음을 덮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극복하고 싱그러운 봄의 맑은 화이트데이를 만끽하려면 파이 대신에 파릇한 봄나물 캐서 전을 부쳐 먹으며 햇볕도 쬐고 행복 호르몬을 많이 만들어 봄을 타지 않아야 한다.

2025-03-13

진정 성공한 삶

노병철수필가 사람들은 살면서 환경 탓을 많이 한다. 아버지가 재벌이었으면, 아니 어머니가 재벌 집 무남독녀라는 설정도 괜찮다. 그랬다면 자기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워낙 없는 집에선 몸뚱이만으로 어떻게라도 해서든지 난국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사람에겐 절실함이 생긴다. 그래서 부자 부모에게 집이라도 하나 얻은 친구와 월세방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경상도에선 “새가 빠진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뭐 빠지게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나이 먹을수록 남는 것은 악다구니뿐이다.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충혈된 눈으로 반항적 기질만 쌓이고 만다. 젊은 시절, 내가 본 책 중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성공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여기서 성공이란 돈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했다. 성공은 곧 돈이 많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얼마나 단순한 논리인가. 머리가 나쁜 것은 여기서도 표시 난다. 그들의 인생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탁월한 기술이 무엇인지만 열심히 뒤졌다. 근면 성실 그리고 절약만이 최선이 아니란 생각이 어슴푸레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즉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4시간, 일주일에 28시간씩 7년간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해 그렇게 피곤하게는 살고 싶지 않았기에 좀 더 손쉽게 돈 벌 궁리만 했다. 1만 시간의 노력은 그냥 우리가 늘 들었던 근면, 성실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안다. 사람은 주제파악이 중요하다. 따라서 1만 시간을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보다 머리 좋은 사람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자신만 죽어라 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남들도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그들은 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달린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수백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겨우 하나 건진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선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머리 좋은 인간도 복 많은 인간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에 나의 전두엽이 빠르게 다가간다. 그렇다. 조건이 충분하지 않는 사람이 살 길은 ‘복’이었다. 결론은 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어차피 성공이란 단어는 비교 대상이 필요조건이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남들보다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이것저것 어렵게 따지지 말고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즐길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이 행복감이 성공이라는 이야기다. 이 말인즉 성공이란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말이다.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성공한 인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결론은 삶의 질이다. 행복도 복인데 복 받는 인생을 살기 위해 즐기는 삶을 찾아본다.

2025-03-13

우정구 논설위원 봄의 절기로 입춘(立春)이 있지만 실제로 봄기운을 느끼는 시기는 경칩(驚蟄)부터다. 얼음이 녹아 내린다는 우수(雨水) 다음에 오는 경칩은 개구리가 놀라서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때다. 농부들도 이때부터 농사 준비에 들어가는 시기다. 기상학적으로는 3월 중순부터 5월 하순까지를 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이제 5월은 더 이상 봄이라 보기가 어렵다. 3월 중순에 들어선 지금 산천 곳곳에서 봄기운을 받은 꽃들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이번 주 들어서는 낮 기온도 18도까지 올라서니 겨울이 저만치 멀리 가버린 듯하다. 봄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도 가슴을 활짝 펴고 따뜻한 햇볕의 봄기운을 만끽한다.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는 말은 고생이 끝나고 행복한 날이 시작됐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젊음을 뜻하는 청춘의 춘(春)은 봄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에 춘 자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름에도 춘 자를 넣고 혹은 봄 자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봄 그 자체가 신선하고 희망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의 봄이나 프라하의 봄처럼 정치에서 봄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봄은 젊음이자 희망이요, 변화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표징이라 하겠다. 지루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돌아왔다. 한 시인은 “봄이 오면 겨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겨울 동안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면서 배운 것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대혼란기에 맞은 올해의 봄에는 모두가 지난 날을 기억하며 희망을 노래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13

난민유치 카드 꺼내든 영양, ‘인구절벽’ 어쩌나

영양군이 지난 12일 유엔난민기구(UNHCR)를 통해 미얀마 난민 40여 명(10가구)을 데려와 정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벼랑 끝에 다다른 인구절벽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단 한 사람의 인구유입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영양군은 그동안 직원들의 가족과 친척, 친지 주소 이전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는 한편, 최대 1억원이 넘는 출산 지원금에다 결혼지원금까지 대폭 늘렸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다. 영양군 인구는 지난 연말 1만5328명으로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 자치단체 중 꼴찌다. 노령화 속도에 비해 출생아수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영양군의 출생아 수는 2023년 30명까지 줄었다. 언제 아기 울음소리 없는 자치단체가 될지 모른다. 반면, 매년 사망자 수가 평균 250여 명에 달한다. 고령화율이 지난해 43.1%까지 치솟았다. 영양군이 이번에 난민 유치를 추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다. 미얀마는 현재 내전 장기화로 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UNHCR가 운영하는 난민촌에서 생활한다. 한국 망명을 희망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만약 UNHCR가 영양군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영양군은 별도의 심사를 거쳐 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2023년까지 국내에 입국한 정착 난민은 모두 248명이다. 영양군은 과거에도 북한 이탈주민을 위한 정착촌 운영 아이디어를 냈지만, 사업비 확보를 못해 포기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써보겠다”고 했다. 경북도내는 현재 영양을 비롯해 고령·청송·봉화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도 기초자치단체 5곳 중 1곳의 연간 출생아수가 100명을 넘지 못한다. 비수도권 인구소멸이 발등에 떨어진 불임을 실감케 한다. 인구소멸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자치단체가 어떤 충격적인 방법을 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해법을 내놔야 한다.

2025-03-13

북극항로 시대 포항시 주도의 새역사 만들길

북극항로 개척이 지역경제 볼륨을 높일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은 10여 년 전부터 이미 포항시가 북방경제 거점도시를 자처하면서 사업 구상을 밝힌 바 있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후 추진 동력이 떨어져 현재까지 구체적인 실행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가 북극항로 개척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부산을 북극항로 허브도시로 키우겠다고 밝힘으로써 북극항로 개척이 지역경제계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북방경제 개척에 일찌감치 관심을 보였던 포항시는 12일 영일만항에서 이와 관련한 관계기관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서 포항시는 “경북도와 협력해 북극항로 개척에 대비해 영일만항을 환동해권 핵심 물류항만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어 관련 조례를 제정해 영일만항이 북극항로 전진기지화 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이 보다 앞서 부산시는 지난 2월 전담조직(TF)을 만들어 부산을 북극항로 허브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안 마련에 들어갔다. 포항과 부산이 북극항로 개척에 따른 경제적 이득 선점을 위해 경쟁구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북극항로 개척은 북극해를 통해 새로운 해상운송 경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 경로는 기존의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경로에 비해 거리가 짧아 물류비용이 절감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북극항로 개척으로 경로가 주는 효과 말고도 이에 따른 경제유발 효과가 상당하다. 새로운 시장 개척은 물론 북극지역 경제 활동을 촉진시킴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가 탄생하게 된다, 선박 등의 항만 이용증가와 고용인력 창출 등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항만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항은 영일만항을 가진 경북 유일의 항만도시로 영남권의 해상물류를 담당한다. 아직은 부족한 영일만항의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북극항로 개척으로 발생하는 수요에 적합한 항만 시설 개선도 서둘러야 한다. 북극항로 전진기지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2025-03-13

강남스타일·수성스타일·영일만 스타일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광주 상무 신도심에서 가장 잘나가는 성형외과나 치과는 병원 이름에 뉴욕이나 파리보다는 강남이 하나 붙어야 한다. 외국어학원은 더 하다. 나는 늘 전복적(顚覆的)인 사고를 한다. 출세는 크게 못했지만, 공무원 아이디어 황제로 자타가 인정했다. 항상 다른 사람과 다른 독창적·창조적·혁신적 사고로 승부한다. 내 존재의 이유이자, 살아가는 사유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면서 정책을 입안해 전국에 자신의 정책이 시행되는 것을 보면 황홀하다. 그러나 수도권에 뒤져있는 지방의 발전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선두를 추격하는 것도, 찬란한 보람과 기쁨을 준다. 늘 역전을 꿈꿨다. 한순간도 소홀히 보낼 수 없다. 나의 업무일지 첫 페이지에는 ‘지방의 반란’을 꽃피우기 위한 다짐이 묘비명처럼 새겨져 있다.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져 수도권 집중은 일극화로 귀결되어갔다. 문화예술 한 분야만이라도 서울과 맞장 뜨고 싶었다. ‘문화수도 광주’ 기치를 내걸고 매달렸던 이유였다. 작년도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 챔피언 전에서 기아와 삼성의 대결 정도가 지방의 분발이 있는 정도였다. 지방은 2류부터였다. 훨씬 더 잘할 수도 있는, ‘살기 좋은 지역풍경 만들기’나 주거정책 등도 수도권에 뒤졌다. 지방은 패배의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2021년 경남 함양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농촌유토피아’ 사업을 벌여 도농상생 발전 길을 열고 농촌지역 재생의 희망에 불붙인다는 소식을 접하고 광주에서 진주까지 초고속으로 달려가 보기도 하였으나 꽃피우지 못하고 시들하다. 지방반란 불씨를 찾고 있던 나에게 희망의 모닥불이 보였다. 하나는 2025 대학입시에서 경신고의 기적과 같은 성과다. 서울 강남8학군 학부모들의 엄청난 교육경쟁 몰입을 따돌렸다. 대학입시 레드 카펫으로 등장한 의예과에 75명 등 의학계열 합격자 수만 105명이다. 강남의 학부모들도 대구의 반란이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신고 외에 경북고·대륜고·덕원고·능인고 등 대구 2학군은 강남 8학군 못지않은 입시성적을 내고 있다. 서울에서 전학 올 조짐이다. 성적 지상주의 대학입시 제도를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입시제도가 전면 개혁되지 않는 한, 주어진 제도에서 승자가 되고 보아야 한다.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을 비롯한 대구고교 교장단과 교사 등 교육관계자,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 수성구에 있는 학원선생님들까지 GRIT(성장성취 동기·재충전과 회복능력·학습의욕·끈기)가 충만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승리다. 둘째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국내 도시 선정에서 전주가 서울을 제친 것이다. 막강한 서울을 이기기 위해 전주를 중심으로 전주 대구 광주 대전이 연합전선을 폈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전주 홍보 영상에 출연, 강한 경상도 액센트를 과시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지방의 반란은 모든 분야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 벨트를 시스템 반도체는 영호남 라인으로 하강시켜 구축하는 대반란을 꿈꾸고 있다.

2025-03-13

병란에 ‘솔 송(松)’ 자를 피하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조선을 유린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백성들은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어디가 안전하다는 속설이 유언비어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 중에도 특히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설이 힘을 얻었는데, 포항지역의 경우 기북면 송을곡(松乙谷)과 죽장면 송내동(松內洞)이 대표적이다. 송을곡은 지금의 기북면 덕동마을의 옛 지명으로,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가 이 속설에 따라 자기 식솔들을 이 마을에 피란시켰다고 전해진다. 송을곡은 우리말 지명 ‘솔골’의 이두식 표기이다. ‘솔’의 뜻을 나타내는 부분인 ‘松’과 받침 ‘ㄹ’음을 표시하는 ‘乙’을 써서 ‘송을(松乙)’로 하고, ‘골’은 ‘谷’으로 표시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정문부가 고향으로 이사할 때 손서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堈)에게 재산 일체를 양여하면서 오늘날 여강이씨 중심의 덕동이 된 것이다. 송내동은 지금의 죽장면 입암리에 위치한 자연마을로 임진왜란 때 동봉(東峰) 권극립(權克立),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선생 등이 피란차 들어와 살았던 곳이다. 권극립 선생이 영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은, 임진왜란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지명에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라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라 하며, 그런 곳을 찾다보니 영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송내(松內)’라는 데가 있음을 알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임진왜란 때 나돌았다는 속설인 “난리가 났을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솔 송(松)’자가 들어있는 곳”이란 말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솔 송’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꽤 많다. 고려의 도읍지인 송도(松都)가 있는가 하면 청송(靑松) 같은 고을도 있고, 마을까지 거명하자면 부지기수다. 그 근거를 암시하는 말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임진록(壬辰錄)에 나온다. “이 때 왜장 소서가 바로 군사를 몰아 강원도로 향하더니 왜국에서 소서의 매씨(妹氏) 편지가 왔거늘, 하였으되 ‘제번(除煩)하고, ‘소나무 송(松) 자’가 있는 곳을 가지 말라. ‘송 자’ 있는 곳을 가면 대패할 것이니, 부디 가지 말라.’ 하였거늘, 청송(靑松)과 송도(松都)를 가지 않고 강원도로 들어가 강원 감사 이래(李來)와 평안 감사 이공태(李公太)를 버히고, 그 골 기생 월천(月川)은 천하의 절색이라 죽이지 않고 첩을 삼아서 주야로 연관정에 놀아 풍류로 세월을 보내더라.” 임진록에 의하면 소서행장(小西行長, 고니시 유키나가)의 매씨(여동생)가 오빠에게 편지를 보내 “‘솔 송(松)’가 있는 곳 가지 말라, ‘송 자’ 있는 곳을 가면 대패할 것이다.” 라고 했고, 소서행장은 매씨의 충고에 따라 청송이나 송도 같은 ‘솔 송’ 자가 들어 있는 곳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그렇듯이 임진록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면, 당시에 ‘솔 송’자가 있는 곳을 피하라는 참언(讖言)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소문이 포항 지방까지 전해올 정도면 이 속설은 당시 조선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명에 ‘솔 송’자가 들어 있는 곳들이 과연 임지왜란을 피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그러한 지명들을 다 조사해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어쨌든 송을곡이나 송내동은 왜병이 지나갔다는 기록이 없으니 무사했던 것 같다. 1990년경 죽장 송내동, 속칭 솔안마을로 필자를 안내했던 죽장 지역의 향토사가 권태한 선생은 ‘솔 송’자를 피하라는 참언의 ‘솔 송’자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솔 송’자가 들어있는 사람은 바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라는 것이다. 이여송을 피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맞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왜군이 ‘솔 송’자가 들어 있는 지명만 피해 다니다가 ‘솔 송’자가 들어 있는 명나라 원군 이여송 장군을 만나 패했다는 것이다. 박창원수필가 ‘솔 송’을 지명이 아닌 인명에 연결시킨 경우에도 근거는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壬辰 島夷蠹國 可依松柏(임진년에 섬 오랑캐가 나라를 좀 먹으면 소나무와 잣나무에 의지할 것이요)”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松柏, 즉 소나무와 잣나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松柏은 나무가 아닌 사람, 즉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이여백(李如柏)을 상징한다. 이여백은 이여송의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와서 벽제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정감록 같은 도참서에서도 ‘솔 송’ 자를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임진란 당시 ‘솔 송’ 자와 관련된 유언비어는 널리 퍼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참설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표현을 즐겨 쓰는 법이니,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특정 글자가 들어 있는 곳을 우회하여 갈 수 있을지언정 싸우자고 덤벼오는 적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3-12

한 사람을 위해 원칙을 붕괴하다니

장규열 고문 법과 원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흔들림없이 공정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법이 특정 개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된 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사례들이 고약하게 존재한다. 최근 법원의 판결과 검찰의 대응이 그러하다. 법원은 구속된 대통령을 석방하기 위해 법률에 명시된 ‘날(day)’이 아닌 ‘시간(hour)’을 단위로 기간을 계산했다. 법관이 정해진 법을 적용하지 않고 그 법을 다시 쓴 것이다. 사법부가 법대로 판결하지 않고 입법부가 하듯이 법을 새롭게 적었다. 이에 검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석방을 지휘하였다. 바꾼 법이나마 그렇게 지킬 것인가 했더니 그도 아니었다. 검찰 내부와 사법계에서 반발이 터져나오자, 검찰은 이제 다시 처음처럼 ‘날’ 단위로 계산하라고 한다. 특정인을 위한 예외적 해석으로 끝났으며 이제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법 해석과 적용이 특정인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증거임에 분명하다. 처음부터 ‘날’ 단위로 계산해야 했다면, 왜 이 때는 ‘시간’ 단위를 적용했을까? 이제 와서 ‘날’로 돌아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행정 판단의 시비거리가 아니라, 법과 원칙, 사회적 신뢰의 문제다. 법이 특정 대상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순간, 공정과 정의는 무너진다. 유사한 사례는 역사에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1974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사임한 후,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닉슨을 사면하였다. 법과 정의의 기준을 고려하기보다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법의 엄정함을 구부렸다. 미국 사회에서 대통령 사면권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2008년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특별사면도 유사한 사례다. 정치적 상황과 타협 속에서 사면이 이루어졌고, 이후에 다시 법의 원칙을 논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법의 신뢰는 무너지고, 국민은 법 앞의 평등을 의심하게 된다. 특정인을 위한 예외가 만들어지고 나면, 이후 다시 원칙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원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더욱이 이번 사안의 당사자는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걸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던 사람이, 법과 원칙이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때 침묵하는 모습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한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예외적 적용의 중심에 그가 선다면 국민은 사회적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묻는다. 법과 원칙이 특정인을 위해 바뀌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공평한 처사인가. 이런 일이 반복될 때, 법치주의는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가. 아이들에게는 법과 원칙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법은 특정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일반을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정인을 위한 예외를 만들면서 법은 신뢰를 잃고 사회적 불신은 증폭된다. 공정과 상식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한 사회적 가치여야 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2025-03-12

TK신공항건설 재원마련에 적신호 켜졌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 ‘TK신공항특별법 2차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가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극렬히 대치하면서 소위가 파행한 탓이다. 이날 민주당은 전주시에 혜택이 돌아가는 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면서 회의장을 나가 다른 안건은 모두 심사보류됐다. 국민의힘 윤재옥(대구 달서구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신공항특별법 2차 개정안은 신공항 및 종전 부지 개발사업에 대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우선 보조와 융자 조항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영개발 방식으로 전환한 TK신공항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이 법안 처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신공항건설 재원마련을 확실히 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TK신공항 건설에는 군공항 건설 사업비 11조5000억 원과 종전부지 개발 사업비 5조9000억 원 등 17조4000억 원이 들어간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여야가 극한 대립하고 있어 법안이 소위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본회의까지의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대 야당을 설득하기도 어려운데다, 공자기금 확보의 결정권을 쥔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대구시는 그동안 TK신공항 건설에 대한 공자기금 융자와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가덕도신공항은 국가재정사업으로 하는데, TK신공항에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데 안 빌려주는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라 할 수 있겠나”라며 국비 지원 형평성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전액 국비로 건설되는 가덕도신공항과 달리 TK신공항은 ‘기부 대 양여’ 사업으로 시행돼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지역 국회의원들은 공자기금 융자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5-03-12

미 철강·알루미늄 관세 시작, 위기를 기회로

미국 트럼프 정부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부과가 현지시간 12일부터 개시됐다. 이번에 관세부과 대상은 볼트, 너트 스프링 등 철강제품 155개, 알루미늄제품 11개 품목 등 모두 166개 품목이며 이는 예외국가 없이 25% 관세가 부과된다. 한국으로선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관세가 부과되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부과가 미리 예고되면서 관련업계는 서둘러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사실상 현재까지 뾰족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이제 시작한 관세부과가 글로벌시장에서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정부와 대책을 협의해 나가야 한다. 트럼프 정부 1기인 2018년에도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됐으나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미 수출물량의 70%로 제한받는 쿼터를 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조항이 폐지되면서 철강과 알루미늄의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 내 한국 철강 점유율은 약 10%에 이른다. 경제전문기관에서는 이번 관세부과로 한국철강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최소 1조원 이상 수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이 중심인 포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짐작이 된다. 특히 관세부과의 영향이 오래갈 경우 포항지역 산업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쿼터제 폐지가 오히려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어 마냥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쿼터없이 무관세 혜택을 누렸던 캐나다, 멕시코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은 기회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쿼터제 폐지로 미국으로의 수출물량을 더 늘릴 수 있게 된 것과 미국이 생산하지 못하는 철강제품에 집중해 수출하는 방법도 미 관세정책에 대응하는 수단이 된다. 다만 자본력이 약한 영세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관세전쟁은 이젠 한국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 관세정책이 시장경제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분석해 돌파구를 찾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5-03-12

남자도 ‘황혼 이혼’을 꿈꾼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주변을 둘러보라. 퇴직한 60~70대 남성들의 푸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젊었을 땐 죽어라 일만 하며 월급 다 가져다주고 살았는데, 직장에서 나오니 이제 아침저녁 밥 얻어먹는 것도 아내에게 눈치가 보인다.”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먹는 퇴직 남성들이 ‘삼식이 남편’이라 불리는 세태를 부정할 수 없다. 변화한 세상이 만든 서글픈 풍경. 이런 현실을 감안한 것일까?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부부가 나이 들어 헤어지는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혼을 원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상담소를 찾은 5065명(여성 4054명·남성 1011명) 중 60대 이상 여성의 비율은 22%로 2004년 6.2%에 비해 3배가 늘었고, 같은 기간 60대 이상 남성의 상담 비율은 8.4%에서 43.6%로 5배 이상 폭증했다. 황혼 이혼을 원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 이혼 상담자의 연령대도 여성은 40대가 가장 많았지만, 남성의 경우엔 60대 이상이 43.6%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심상찮은 일이다. 더 이상 아내와 살고 싶지 않다는 60대 이상 남성이 갈수록 늘어난다. 60대 이상 남성들이 이혼하려는 건 장기 별거, 성격 차이, 아내의 가출이나 폭력이 주요 이유였다. 맞고 사는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아내의 막말과 폭력을 고민하는 남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결혼을 꺼리고, 노년층은 이혼을 꿈꾸는 21세기. ‘해로하는 부부’는 이제 소설 속에서나 만나게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2

무방수날 장담그기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장담그기는 김장 문화와 함께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작년 2024년 12월 3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장 제조법이기에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등재되었다. 장담그기는 콩을 주재료로 메주를 만든 뒤 이를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전통적인 과정을 이르는 것으로,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은 한국인의 일상음식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으며,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세대 간에 전승돼 왔다는 게 등재 사유였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거의 1년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슬로푸드의 끝판왕이다. 초여름에 콩을 심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두어 말린 뒤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쑨다. 콩을 불려 충분히 무르게 삶아 으깬다. 메주틀로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볏짚으로 묶어 두면 곰팡이균이 만들어지는데 겨우내 처마 끝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이월 좋은날을 가려 장담그기를 한다. 먼저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뒤 속에서 볏짚을 태워 살균소독한다. 메주를 씻어 말리고 소금물을 계량해 준비한다.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고, 말린 고추와, 말린 대추, 옻나무, 숯을 적당히 넣고 가늘게 자른 대나무를 항아리 안에 걸쳐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둔다. 볕 좋은 장독대에서 두세 달이 지나면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했다. 몇 백년 묵은 간장을 간직한 종가도 있다고 들었다. 작년 흰머리소녀 모임, 유복혜 선생님께서 ‘장은 무방수날에 담근다.’고 하셨다. 무방수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월의 ‘손없는 날’이었다. 귀신이 날마다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를 하는데, 9와 0으로 끝나는 날짜에는 하늘로 가서 어디에도 없다고 믿었고 그날이 바로 ‘손없는 날’이다. 따라서 ‘손이 없는 날‘은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어 꺼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고, 결혼, 이사, 개업 등 인간의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중 특히 이월의 초아흐레와 열흘을 무방수날이라고 하는 거였다. 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특히 무방수날에 담근 장은 맛이 좋다고 했다. 지난 주말이 무방수날이었고 내 생애 첫 장담근 날이었다. 청도의 유복혜 선생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들어, 잘 소독하신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붓는 참 짧은 공정만이었지만 첫 시도는 설레고 값졌다. 함께한 이솔희 선생님은 이 의미있는 행사를 유튜브에 올렸고, 같이 간 손녀는 일기에 적을 거라고 했다. 매일 햇볕을 가려 받는 유 선생님의 수고가 맛난 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석 달 뒤 장가르기를 위한 또 한 번의 청도나들이가 기대된다. 평생 여기저기서 된장을 얻어먹던 내가 어쩌면 올해부터는 된장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5-03-12

손목 통증의 원인과 효과적인 치료 방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손목 통증은 흔한 증상 중 하나이다. 손목은 사용 빈도가 높고 구조적으로 섬세하기 때문에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의 주요 원인으로는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한 과사용 증후군, 손목을 짚고 넘어지는 등의 외상, 힘줄 염증으로 발생하는 드퀘르뱅 병, 그리고 손목의 안정성을 담당하는 삼각섬유연골 복합체(TFCC) 손상 등이 있다. 이러한 원인들은 손목에 무리를 주어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손목 기능에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보존적 치료와 한의학적 접근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침 치료를 통해 손목 주변 경혈을 자극해 염증을 줄이고 기혈 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부항 요법으로 근육과 인대의 긴장을 풀어주고 어혈을 제거해 통증을 감소시킨다. 또한 뜸 치료는 온열 자극을 통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조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하며, 초음파 가이딩 약침을 사용하여 손상 부위를 정밀하게 확인한 후 약침을 주입함으로써 염증 완화와 조직 재생을 유도할 수 있다. 경추와 팔꿈치 손목의 정렬을 조정하고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추나요법도 손목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보존적 치료 방법으로는 손목 사용을 줄이고 보호대를 착용하여 추가적인 손상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냉찜질과 온찜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염증과 통증을 조절하고 손목을 지지하는 근육을 강화하는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은 생활습관과 연관이 깊으므로 예방이 중요하며 무리한 힘을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거나 테이핑 요법을 활용하여 부담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의학적 치료와 함께 손목의 유연성을 높이는 운동을 병행하면 통증 완화와 재발 방지에 더욱 효과적이다. 손목 통증은 단순한 근육 피로에서부터 만성적인 염증, 인대 손상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에는 간단한 생활습관 교정과 보존적 치료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지만 방치할 경우 만성화되거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단계로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손목을 보호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손목을 사용할 때는 꼭 중간 중간 스트레칭과 휴식을 취해주고 반복적인 손목 사용이 불가피한 직업을 가진 경우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정기적인 손목 관리 및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전반적으로 손목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올바른 자세와 적절한 휴식 근력 강화 운동을 병행하면 손목의 부담을 줄이고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손목 통증이 지속되거나 악화된다면 한의학적 치료를 포함한 전문가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침, 부항, 뜸, 약침, 추나요법, 초음파 가이딩 약침 등 다양한 치료법을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손목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목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이며 평소 손목 사용 습관을 점검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2025-03-12

대릉원 뒷골목

윤명희 수필가 오가는 관광객들 사이로 황남파출소가 눈에 띈다. 예전에 놀란 가슴으로 파출소 문을 열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친구와 황리단길을 걷던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파출소에서 보호자 찾는 전화가 왔었다. 아버지가 뙤약볕 아래 종일 헤맨 것 같다고 했다. 경찰에게 파출소 위치를 물은 나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백발노인의 지친 몸이 소파에 처져있었다. 대릉원 뒷골목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의아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몇 번이나 더 그 곳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러 갈 때마다 왜 연고도 없는 여기서 길을 헤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 없었다. 오래된 그날, 속이 더부룩하다고 병원에 간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엄마만 두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병원에 가져갈 생필품을 챙기는 내 뒤로 아버지는 안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작은 방으로 옮겼다. 울음을 삼키는 아버지 뒤로 효자손도 물병과 컵도 따라갔다. 말리는 내 손을 내치는 아버지를 바라만 보았다. 닫힌 안방은 가족사진이 대신 지키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누웠던 병원 침대마저 내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의 흔적을 못 견뎌 했다. 아버지는 집을 버린 듯 했다. 아들의 학사모를 쓰고 웃는 엄마의 사진을 거실 벽에서 떼어 내렸다. 남은 사진들을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엄마가 아끼느라 넣어 둔 것들을 다 가져가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집을 팔고, 당신이 누우면 세간이 다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은 멀리서 자식들이 와도 자고 갈 공간이 없었다. 이젠 집이 아니라 아버지만의 거처였다. 줄어든 살림만큼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아져갔다. 경주로 이사 오던 날, 아버지를 혼자 두고 올 수 없었다. 함께 이사하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아버지는 어디에 가서 살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아버지가 부르시면 한달음에 내가 찾아 올 수 있는 거리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도 아버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생활하기에 불편한 일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찾아뵐 때마다, 겨우 얼굴만 봤을 뿐인데도 빨리 집에 가라고 등 떠미는 것 또한 변함이 없었다. 자꾸만 밖으로 도는 아버지는 집이 없는 듯 했다. 눈만 뜨면 하릴없는 사람처럼 여명의 산길을 따라 김유신 장군 묘에 올랐다. 다음날엔 첨성대를 한 바퀴 돌고, 그 다음 날에는 중앙시장을 찾아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종일 어딘가를 다니다 해거름해지면 지친 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집 대신 우리 집에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 많았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하룻밤만 지나면 당신의 거처로 돌아가려했다. 아직 남아있는 형제들이 조금만 더 있다 가시라고 붙잡아도 막무가내였다. 자식들의 집이 당신의 집은 아니라는 것을 매번 보여주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그 빈 마음은 우리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버지의 팔순 생신날, 대릉원 근처에 숙소를 빌렸다. 기와지붕이 반듯한 한옥 독채에 형제들이 모였다. 건넌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안방에는 음식상이 푸짐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혼자서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돌아보았다. 나는 창 너머로 한참동안 나무 기둥을 쓰다듬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제 아버지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몇 년 만에 황남 파출소 앞에 서 있는 나는 당신이 왜 매번 그 골목을 헤매고 다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룻밤을 보냈던 그 집이 아버지에게는 엄마와 함께 잃어버린 옛집으로 보였나보다. 나도 쉽게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그 집을 흐린 눈으로 찾아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기억들이 날아다니는, 아버지가 찾아 헤맸던 기억의 집. 대릉원 뒷골목은 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파출소 창문 너머에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자꾸 눈앞이 침침해 고개 숙인다.

2025-03-12

장기(長鬐) 읍성1

우암(尤菴)과 다산(茶山)이 잠시 머물렀다고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영일만(迎日灣)은 저리 푸른데, 결국엔 촌구석이란 이야기지 그러나 사람의, 그리고 아주 먼 일별(一別)의, 꿍쳐놓고 싶은 공간, 지금도 유효한 지도 몰라 반성은 습관으로 반복적이었을까 역모(逆謀)는, 분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서울을 향하는 삶, 그 농밀하고 내면적인 지향(志向), 그렇게 팽개쳐진 삶 그래도 구룡포(九龍浦)와 모포(牟浦)와 하정리(河停里)의 바다는 고요하고 무심하며 여전히 생기발랄 그래서 우리는 뇌록지(磊綠地)2를 관찰하고 날물치3의 시원(始元)을 본다 외지(外地)여도 보석인 땅이 곳곳에 있더라 뭉개고 자빠져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음의 즐겁고 처절한 마스터베이션, 유림만보(儒林漫步)4한들 세상이 움직일까, 나의 용도폐기 뒤엔 세상이 있었다 비로소 고운 모래밭을 걸으며 받들어야 할 백성들의 생활을 기웃거리며 배워야 할 것들, 먹거리를 생각함 끝내 청보리밭 끝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비로소 세상과 결별하고 다시 세상과 조우(遭遇)함. 타박타박 걷고 싶으면 장기읍성에 가면 된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나에게로부터 유배(流配)를 받았기 때문이다. 1. 경북 포항시 장기면 읍내리에 있는 고려, 조선시대의 읍성터. 2. 뇌록은 중간 명도의 탁한 녹색의 돌로 단청의 바탕칠에 사용되는 전통안료가 추출, 장기면이 국내 유일의 산출지로 인정되었다. 3. 생수암(生水岩), 바위 사이로 생수가 나오는 곳의 지명. 4. 愉를 儒로 바꾸어 보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12

정전 예방, 주민 안전을 위한 한전의 노력

박경수 한국전력 경북본부장 한국전력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정전사고 예방과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아파트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변압기 설치 후 15년 이상 경과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아파트 노후도 △가격(저가 아파트 우대) △세대당 전력용량(소용량 우대) △전용면적(소형 평형 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최근 여름철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정전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5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의 수전설비 고장 중 변압기와 저압 차단기 고장이 전체의 3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전은 2005년부터 해당 지원사업을 추진해 아파트 단지의 노후설비 교체를 지원했다. 지난해 연말 기준 경북본부 관할 아파트 중 15년이 지난 아파트는 총 246단지로 전체 아파트의 56.5%를 점유하고 있으며, 25년 이상된 아파트도 109단지에 이른다. 아파트 고객은 구내에 설치한 변압기 등의 수전설비를 아파트에서 소유·관리하고 있어, 한전에서 고장원인 파악과 정전 예방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 정전예방을 위해 올해 아파트 노후변압기를 교체할 경우 변압기 및 변압기부 저압차단기 자재가격의 최대 80%까지 지원할 예정이며, 특히 UVR(저전압 계전기) 위치변경시 공사비의 100%를 한전이 부담한다. 또한, 노후 변압기를 고효율 변압기로 교체할 경우 용량에 따라 최소 160만 원에서 590만 원까지 추가 지원을 제공한다. 이번 사업을 통해 아파트 노후 설비를 조기에 교체함으로써 정전 위험을 줄이고 입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경수 한국전력 경북본부장

202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