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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산 8000억 원 시대를 바라보며

김하수 청도군수 자치단체의 장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면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과 풍부한 예산으로 지역에 꼭 필요하고 지역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일 것이다.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은 하루 이틀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가능하지만, 지역에 필요한 예산 마련은 자치단체장과 공직자들의 노력이 뒤따른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에서 체득했다. 청도는 풍부한 천혜의 자원에 서울특별시 면적과 비슷한 696.53㎢를 자랑하지만, 시대상을 거스르지 못해 인구소멸지역에 포함되며 현재는 4만여 명의 주민이 사는 농촌 도시다. 이로 인해 2021년 청도군의 연간 예산이 5599억원에 그치고 2022년 6317억 원으로 겨우 6000억 원 시대를 맞았다. 2023년 6935억 원이던 연간 예산은 2024년 7018억 원으로 6천억 시대에서 7천억 시대를 2년 만에 달성했다. 2024년 7018억 원의 예산은 자주재원은 500억 원에 그치지만, 지방교부세가 2600억 원, 국·도비사업과 공모사업, 지방소멸 대응 기금 등으로 3918억원을 확보했다. 예산의 절반 이상을 국·도비 보조사업과 공모사업, 지방소멸 대응 기금으로 충당한 것은 인구 4만여 명의 군 단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특히 지난해 37건의 공모사업으로 확보한 1566억 원의 국·도비의 비율이 73% 이르는 우량 공모사업이 차지하는 등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보상받았다. 인구소멸지역에 청도군이 포함되었지만, 앞으로 상주인구는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2022년을 기준으로 2042년을 목표로 발표한 경상북도 장래인구 추계에서 대부분 시·군의 인구가 5~1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청도군은 2022년에 비해 2042년 316명이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316명의 인구 증가가 큰 의미가 있나로 물음을 던질 수도 있지만, 청도군이 고령인구가 많아 자연적인 인구 감소 요인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이다. 청도군의 인구 증가는 문화예술관광 허브 도시 조성을 통한 생활인구 유입과 농업대전환으로 소득 증대, 평생학습을 통한 지역 인재 양성, 복지 체계 강화로 얻은 정주 여건 개선 등의 효과에 따른 것이다. 청도군의 생활인구 유입 효과는 2024년 1분기에 평균 30여만 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7.2배에 달했고 결국 34만 명의 유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8배를 초과로 인구감소지역 중 전국 7위, 경북도 1위를 기록해 미래 청도의 발전 가능성을 증명했다. 청도군은 올해도 11건의 공모사업 선정으로 89억 원을 확보하고 지자체 혁신평가 우수기관, 지자체 적극 행정 종합평가 우수기관, 지방자치단체 복지대상 등 3건의 수상 실적을 기록하는 등 지역주민을 위한 최대의 노력으로 이에 따른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행안부의 혁신평가 우수기관 선정과 적극 행정 종합평가 우수기관 선정은 경북에서 유일하게 2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청도군수의 책무를 다하고자 지난 3월 18일에는 이만희 국회의원과 함께 중앙부처를 동시적으로 방문해 지역의 현안을 설명하고 필요한 예산의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청도의 공무원들과 나는 지금까지의 성적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으로 노력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기 위한 예산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민선 8기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주민복지와 평생교육, 농업, 문화예술관광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것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자세히 살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행정은 지난 11일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한 ‘2025 지방자치 복지대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돌아가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대책도 찾을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직원들의 힘을 믿고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솔선수범의 행정으로 8000억 원 예산 시대와 생활인구 40만 명 달성을 이른 시간에 이루도록 다시 마음을 다져본다.

2025-04-13

기다림

벚나무 한 그루가 겨울 거리에 서 있다. 바싹 마른 가지 끝의 파르르 떨림이 눈에 보일 정도다. 거친 바람의 야유에 그저 흔들릴 뿐이다. 가지 끝을 희롱하던 성난 바람은 잠시 머무르다 휙 하니 떠나버린다. 학원 출근 첫날이었다. 옆 반 선생님이 우리 반의 K를 잘 지켜보라고 한다. 태도도 불량하고 무엇보다도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수업 분위기를 자주 망친단다.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다들 헤드셋을 끼고 바른 자세로 앉아 오디오를 듣고 있었다. 헤드셋을 한 쪽은 귀에 다른 한 쪽은 머리에 삐딱하게 쓴 채 옆으로 거의 눕다시피 한 아이가 있었다. 금방 K인지 알 수 있었다. 광대가 좀 나오고 눈이 작고 가늘며 우락부락한 느낌이었다. 힘도 좀 쓸 것 같았다. 옆으로 가서 반듯하게 앉으라고 했더니 대뜸 욕이 날아온다. 아들 둘을 키워 남자아이들의 반항쯤이야 하던 나도 순간 당혹스러웠다. 한동안 K를 관찰했다. 6학년인 그는 친구들에게도 굉장히 짜증을 잘 내었고 쓰는 단어의 반 이상이 욕이었다. K와 나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달래도 안되고 야단쳐도 안되고. 쉽지 않았다. 억지로 수업을 시켜도 효과가 없을 건 자명한 일이었다. 어느 날 K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집안 얘기는 또 술술 잘 한다. 엄마가 집에서 일을 하셔서 학교 갔다 와도 집에 있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중학생인 형은 공부를 무척 잘 해서 특목고나 자사고를 가려고 한단다. 당연히 부모님의 관심은 입시를 앞둔 형에게 쏠려 있었고 공부가 썩 뛰어나지 않은 K는 뒤로 좀 밀려 있는 것 같았다. K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나름 이해가 되었다. 형도 엄마도 자랑스러워했지만 본인도 인정받으며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아이였다. 그에게는 기다려주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그 후 K와 나는 그런대로 잘 지냈고 중학교에 가면서 헤어졌다. 때때로 그 아이를 생각하면 겨울나무가 생각났다.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물관에 공기방울을 형성해 물의 이동을 막아 얼음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기본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양분들을 뿌리로 이동시킨다. 혹독한 환경에서의 적응과 생존을 위해 성장을 멈추고 에너지소비를 최소화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새봄의 새 잎을 틔우기 위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반드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 시간 속에는 아픔이 있다.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모습이 때로 밖으로는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혹한을 견디고 새봄을 맞을 준비를 저마다의 다른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학기 초에 학원 근처 학교 앞에서 홍보지를 나누어 주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학생이 다가오더니 학원 선생님이시죠 한다. 얼굴은 눈에 익었는데 누구인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모른 척 할 순 없어서 어 잘 지냈니 하고 어물쩍 대답했다. 그 순간 그 아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K였다. 3년 만이었다. 키가 훌쩍 크고 단정한 모습이 많이 낯설어 금방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선생님이 보여 왔다고 하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K는 나름 잘 보낸 것 같았다. 사랑을 덜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환경에 대처한 방법이 다소 불량스럽고 공격적이었어도 그것을 잘 극복한 것 같았다. 욕을 하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살짝 웃음도 나왔지만 의젓해진 그가 너무 기특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웃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앞으로 멋있는 청년으로 성장할 그가 기대되었다. 홍보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나뭇가지 끝이 약간 분홍빛을 띄고 있다. 몽글몽글 앙증맞게 꽃눈을 틔우고 있다. 며칠 있으면 연분홍의 꽃잎이 활짝 그 손을 펼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꽃구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 피우는 꽃은 아름다울 것이다. 모른 척하고 가도 되는데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K의 뒷모습에 그 봄꽃이 오버랩된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4-13

국힘 ‘역선택’ 논란…당원이 현명한 결정할 것

‘역선택 방지’ 조항을 담은 경선룰 때문에 국민의힘이 시끄럽다. 이 조항은 당내 경선을 위한 여론조사를 하면서, 먼저 지지 정당을 물은 후 다른 당 지지자는 조사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경쟁정당 지지자가 고의적으로 ‘약체 후보’를 선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 조항을 도입하면 ‘당심’에 비해 ‘민심’에 강한 후보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국민의힘 경선후보 중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에 갇힌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에게 불리한 조항이다. 반면, 강성 보수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후보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나경원 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 전 의원은 지난 11일 대구시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으면 당심 100%로 후보를 뽑자는 것과 비슷한 제도”라고 반발했으며, 13일 국민의힘 경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경선룰은 두 차례 예비경선(컷오프)을 통해 대선후보를 각각 4명과 2명 순으로 압축하되, 4인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2인 경선 없이 후보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1차 컷오프는 ‘일반국민 여론조사 100%’ 방식, 2차 컷오프는 ‘선거인단(당원) 투표 50%·일반국민 여론조사 50%’ 방식으로 진행하며, 여론조사 때마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다. 국민의힘 경선 선거관리위원회는 당헌·당규에 명시된 이 조항을 바꿀 여유가 없었고, 경선 결과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역선택 방지조항은 민심을 왜곡시키는 측면이 있긴 하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외연확장이 절실한 국민의힘으로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려면 1차 경선 정도는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게 순리다. 그러나 넓게 생각해보면, 당심도 결국은 민심의 일부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이번 대선에서 중수청 외연확장 없이는 자당 후보가 이길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선과정에서 현명한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25-04-13

군맹무상(群盲撫象)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작년 12월 3일 느닷없는 비상계엄으로 초토화된 한국 사회에 단비가 내렸다.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의 사악한 행위가 몰고 온 파국적인 상황에 최초의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무려 123일 동안 이어진 극심한 분열과 혼란 양상이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야만적인 살육이 있은 지 45년 만에 불시에 터진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까지 진행되었다. 내란 수괴(首魁)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정당 대표와 그 수하 국회의원들의 4개월 동안의 기행(奇行)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나는 이번 사태 진행 과정을 청도 촌구석에서 조용히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사태의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겨난다. 나는 그것을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고사성어 ‘군맹무상’에서 찾고자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우리 속담으로 잘 알려진 고사성어가 군맹무상이다. 고대 인도의 왕이 맹인(盲人) 다섯 사람을 불러서 코끼리를 만지게 했다고 한다. 코끼리를 처음 접한 그들은 각자 다른 부위를 만지고 나서 왕에게 소감을 말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자는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했으며,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 같다고 했다. 코를 만진 자는 뱀과 같다고 했으며, 등을 만진 사람은 벽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밧줄 같다고 했다. 맹인들의 말은 모두 맞지만 동시에 모두 틀린 것이다. 그들은 일정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부분에 함몰된 맹인들은 각자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이른바 ‘확증편향’의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 사실과 전체적인 맥락은 상호 보완적일 때에만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는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편향과 호오(好惡)가 있기 때문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받는 것도 없이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살아온 내력이나 경험 혹은 지역 관계 속에서 자기의 입장을 확립한 사람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휩쓸리기 쉽다. 더욱이 개인적인 취향과 믿음, 고집에 가까운 소신을 철석같이 가진 사람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다. 정보와 지식의 원천을 특정 유튜브에 두고 있었다는 자의 망상과 궤변, 끝없는 거짓말과 자기변명은 21세기 정보사회의 실체와 한계를 여실히 폭로한다.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 온 자의 말로(末路)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선사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통치했던 무능한 자와 어리석은 추종자들의 행악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부분과 전체, 사실과 진실, 역사와 미래를 두루 통찰하고, 반성적(反省的)인 자세로 우리 시대와 문제와 과제를 깊이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2025-04-13

구미 국가산단의 변신

우정구 논설위원 산업단지 노후화 문제는 우리보다 산업화가 먼저 일어났던 서구에서는 오래된 과제였다. 노후산단으로 산업이 쇠퇴기를 맞고 청년들이 떠나면서 도시의 몰락을 경험한 도시들은 해외에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도시 가운데 노후산단의 부흥을 통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거나 관광산업 등을 진작하면서 도시의 재기에 성공한 경우도 또한 적지 않다. 빌바오 효과로 유명한 스페인의 빌바오시는 철강산업이 무너진 위기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관광산업도시로서 유명해졌다. 영국 맨체스타 트레퍼드파크 산업단지는 1890년대 조성된 세계 최초 산업단지다. 그러나 영국의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추진한 재생사업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지금은 전성기 이상의 활황 경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전국 최초로 국가지정 1호 문화산단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1호 국가산단이 1호 문화산단으로 지정되면서 갖는 역사적 의미도 있거니와 문화산단으로 변신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문화산단이란 노후산단을 혁신해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미래형 융합산단을 이르는 말이다. 구미시는 이번을 계기로 1조9000억원을 투자해 구미산단 전체를 문화산업 복합형 미래산단으로 확 바꿀 계획이라 한다. 일본의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신도시를 모델로 삼겠다고 한다. 미나토미라이는 1980년대 동력을 상실한 조선 중심의 도시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을 유치하고 일본 3대 미항으로 변신한 곳이다. 구미시의 문화산단 지정과 이에 따른 사업 구상이 일본 미나토미라이를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문화산단 성공 사례로 남길 기대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3

대구시장 권한대행 체제, 막중한 소임 다하길

홍준표 대구시장의 대선 출마로 공석이 된 대구시장 직무가 11일부터 김정기 행정부시장의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됐다.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한 홍 전 시장은 대선 출마와 동시 시장직을 사퇴함으로써 대구시의 권한대행 체제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진다. 기간으로 보면 약 1년 1개월 정도다. 대구시장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면서 대구시민들은 대구시의 주요 현안들이 제대로 돌아갈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민선 8기로 선출된 홍 전 시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그동안 굵직한 지역 현안들을 앞장서 진두지휘해 왔다. 대구의 백년대계 사업인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비롯해 취수원 이전, 군부대 이전, 대구산업구조 개편 등이 대표적 지역현안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신공항 건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소요될 예산도 정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탄핵정국으로 바뀌면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와 협의가 중단됐다. 관련 특별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대구경북특별시 출범을 위한 대구경북 행정통합 역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일부에서는 사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간 지역현안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원과 홍 전 시장의 추진력이 어울려 속도를 냈지만 지금은 두 사람 공백으로 사실상 동력이 떨어졌다. 홍 전 시장은 “내가 집권하면 TK 현안 모두 해결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공약일 뿐이다. 김 시장 권한대행은 이제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대구 현안과 마주해야 한다. 김 권한대행은 대구 출신이며 대구시 기획실장으로서 3년 여 근무한 경력도 있다. 지역 사정에 밝아 지역 현안 대처에도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다. 지역현안 처리의 절차와 연속성을 잘 유지하고 사업의 당위성을 꼼꼼히 챙겨 새 정부 정책에 반드시 연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다.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위한 지역 민생 분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단체장 이상의 리더십을 발휘해 시민들의 우려를 덜어주어야 한다.

2025-04-13

시는 맛있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시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어린 애순이는 ‘개점복’이라는 시로 백일장에 입상한다. “허구안날 점복 점복/ 태풍 와도 점복 점복/ 딸보다도 점복 점복/ 꼬루룩 들어가면 빨리나 나오지/ 어째 까무룩 소식이 없소/ 점복 못봐 안나오나/ 숨이 딸려 못 나오나/ 똘내미 속 다 타두룩/ 내 어망 속 태우는/ 고놈의 개점복/ 점복 팔아 버는 백 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허리 아픈 울 어망/ 콜록대는 울 어망/ 백 환에 하루씩만/ 어망 쉬게 하고 싶네”(오애순, ‘개점복’). 목숨 걸고 물질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감동적인 시다. 1967년 문학소녀 애순이가 교복을 입고 ‘창작과 비평’ 창간호(1966. 1)와 ‘현대문학’ 과월호를 읽는 장면은 문학사적 고증을 잘 해냈다. 무엇보다 ‘폭싹 속았수다’는 험하고 가파른 생을 산 애순이 노년에 쓴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선배 시인이 고모네 아파트에 갔다가 반상회 자리에 불려갔는데 아파트 동 하나에 사는 주민들이 전부 시인이라며 명함을 내밀더란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적혀 있고, 신춘문예 경쟁률은 1000대 1 수준이다. 이토록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에서 온갖 혐오가 넘쳐흐르는 건 의아하다. 시가 정서적 액세서리나 팬시 상품 정도로만 가볍게 소비될 뿐 대중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지는 않아서일까.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영향일까. 그래도 여전히 시의 생산자와 소비자들 사이 신뢰할 수 있는 거래의 지표는 서정성이다. 서정의 본질은 조화와 화해, 그리고 합일이므로 시를 사랑하는 사회엔 미움과 시기, 차별과 소외가 점점 줄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맛집을 판가름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벽면에 시가 붙어 있거나 걸려 있거나 새겨 있거나 갈겨져 있다면 그 집은 ‘찐맛집’이다. 시인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시 옹호론’을 펼치는 게 아니라 경험상 진짜 그렇다. 윤동주의 ‘서시’나 기형도의 ‘빈 집’, 이형기의 ‘낙화’ 같은 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름난 유명 시인의 시 말고 대표메뉴 음식을 찬양하는 시나 식당에 바치는 헌시가 있으면 제대로 된 맛집이다. 수업을 마친 월요일 저녁마다 안양중앙시장의 허름한 순대국집인 ‘대구식당’엘 간다. 거기 거울에 ‘나그네 온달’이라는 한 방랑시인이 쓴 시 ‘골라서 먹는 순대국집’이 붙어 있다. “안양중앙시장/ 중앙통로와 4번 출입구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순대국만 전문으로 하는 나란한 여러집 중 한 집 대구식당/ 상호는 대구식당인데 대구는 없고/ 1번 머리고기만/ 2번 머리고기와 내장/ 3번 머리고기와 순대/ 4번 머리고기에 내장과 순대 등의 맞춤식으로/ 구성을 취향대로 골라서 주문하는 특별한 메뉴판이 있는 딱 한 집/ (중략) 땀 흘려 일하고 보충하는 막걸리엔 필수요 자동인 콤비 순대국/ 시민들의 정서와 애환이 녹아 있고/ 고객 중심 맞춤식으로 배려 깊은 아지매의 풋풋한 정이 배인/ 노가다나 주당들의 단골집 대구식당” 당장이라도 들어가 앉아 순대국에 막걸리를 시키고 싶어지지 않은가? 이 시는 문학적 과장이 아니라 리얼리즘 그 자체다.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에서 30년 가까이 장사하는 ‘아내의 밥상’에는 주인인 유미화 씨가 쓴 십여 편의 시가 식당 안팎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메뉴인 꼬막비빔밥을 소재로 한 ‘꼬비’는 소리내 읽으면 입안에 참기름 밴 양념장의 매콤함과 통통 쫄깃한 꼬막살의 식감이 느껴진다. “오동통 살이 오른 청정지역 벌교 꼬막/ 펄펄 끓는 뜨건 물에 멍울지게 살짝 삶아/ 속살을 발라낸 후 목욕재계 시킨 후에/ 새콤달콤 양념장에 싱싱야채 함께 섞어/ 참기름 깨소금도 솔솔 뿌려 버무린 후/ 양푼에 담아내어 윤기 잘잘 쌀밥 함께/ 쓱싹쓱싹 비벼주니 맛깔난 그 모습에/ 눈이 먼저 달려가서 시장기를 유혹하네/ 입안에서 꼴깍꼴깍 군침돌며 침 삼키는/ 예쁘면서 맛도 좋은 네 이름이 꼬비렸다” 시의 맨 밑에는 “꼬비는 우리집 메뉴”라는 각주가 달려 있다. 음식 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도 물씬 풍기는 시, 한 식탁에 여럿이 둘러앉아 꼬막비빔밥 먹고 싶게 하는 시다. 서정시의 원리인 조화와 합일 그 자체다. 이런 시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천년의 보금자리” 어쩌고 하는 천박한 시보다 천배 만배 낫다. 정현종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고 노래했던가. 그 문장을 나는 “맛집에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먹고 싶다”로 바꿔본다. 시가 있는 식당에서 음식은 시가 되고, 시는 맛있다.

2025-04-13

시작하는 마음

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비 때문인지 아직 다 피지 못한 벚꽃 나무의 꽃잎들이 거리에 지저분하게 내려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도 미처 다 피지 못한 잎들이 떨어져, 온몸으로 밟히고 있단 사실이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대체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두 시간 여를 넘게 같은 곳을 빙빙 돌았다. 집에 가면 이삿짐을 마저 싸야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야 하고, 겨울 이불 두 세트를 세탁하고 건조를 시켜야 하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들을 모조리 먹거나 또는 처리해야만 했다. 몸은 걷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집에서 처리해야할 목록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고, 결국 몸과 마음 모두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결국 집에 오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이사는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졌다. 그간 9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혼자 살면서 이곳은 살긴 좋지만 월세가 부담스럽고 또 너무 좁아서 답답하다는 불만을 달고 살았다. 내 이야기를 일년 반 째 듣던 막내 동생이 그럼 같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거 제안을 했고, 정말 우연히도 조금 더 넓은 집을 보게 되어 한순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이삿날을 잡아두고 잠깐 잊고 살았더니, 어느새 나는 내일인 일요일 오전에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급작스런 변화에 이 모든 것이 정말 꿈이거나 엔딩을 앞둔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이사하는 곳도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오분도 걸리지 않는 건물이고, 결국 이 동네에 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어딘가 아주 머나먼 곳에서 리셋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크다. 또다시 마음이 흔들려 방황할 때면 인스타그램을 켜서 아이패드 드로잉 작가인 여유재순님의 그림을 본다. 거의 매일 올라오는 그녀의 그림은 투박하다. 나는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따스한 색감과 깔끔한 구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준다. 그녀가 주로 그리는 그림은 꽃과 식물, 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여유재순 작가님의 나이는 92세. 친구들은 모두 노인정에 가서 시간을 보낼 때에 자신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코로나 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자 작가님은 무작정 아이패드를 사고, 유튜브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펜을 들고 선을 긋는 것도 못했지만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아 따라 그리고, 유튜브로 강의를 들으며 모르는 것은 메모를 하며 하나씩 배웠다. 그 그림을 본 손녀딸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든 것인데, 벌써 여유재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은 1705개의 그림 게시물을 발행하였고, 9만 팔로워나 모여 있다. 작가님은 현재까지도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꿈을 그린다. 동시에 아주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20대에서 30대로, 나이를 먹으며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 일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만 하며 현실과 타협했을 때 그녀는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그러한 불안감은 내 안의 가능성을 잠재우는 소모적인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아주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배움을 지속했다. 당시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집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꼭 배워야 하겠다고 대답하며 끝까지 수업을 들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넌 바보짓을 퍽도 잘한다’라고 말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통해 배움을 지속한다. 또한 처음은 누구나 잘 알 수 없는 거기에 부끄러움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부끄러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면 그 기쁨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나는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점차 돌려보며,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현재 새로운 시작 앞에서 걱정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비춰졌다. 그러면서 시작 앞에서 두려울지라도, 언제고 그저 시작하면 되는 것임을, 단순함에서 오는 용기와 지혜 앞에서 나는 무수한 위로를 받았다.

2025-04-13

사람도 기계도 노후화… ‘산불 진화시스템’ 개선 필요할 때

황인무 대구 본사 산불 진화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만 벌써 2건의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과 지난 6일 대구 북구에서 벌어진 사고. 각각의 산불을 진화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보면 더욱 안타깝다. 지난 6일 북구 서변동 헬기 추락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시 사고를 목격한 이는 헬기가 저수지에서 물을 담은 뒤 저공비행을 하다 잠시 멈췄고, 물주머니가 위로 튀어 오른 직후 꼬리 날개가 비닐하우스에 걸린 뒤 추락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국토부 등으로 꾸려진 합동조사단이 사고 현장에서 헬기 잔해물 분포도, 인근 폐쇄회로(CC)TV, 전소된 보조 기억 장치,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감식을 다각도로 진행했으나, 사고 헬기의 고도나 속도를 추적할 수 있는 장비를 찾지 못했다. 해당 장치는 불에 타 소실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답답한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체 노후화를 헬기 추락 원인으로 꼽고 있다. 통상 헬기는 운항 기간 20년이 넘으면 ‘경년 항공기(기령이 일정 기간을 초과한 항공기)’로 분류돼 국토교통부가 특별 관리하지만, 도입 헬기의 내구연한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대구지역 산불진화 헬기 역시 노후화된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이 커진다. 지역에는 대구소방안전본부가 2005년식, 2019년식 헬기 2대를 보유하고 있고 달성군청, 동구청, 군위군청, 수성구청이 각 1대의 산불진화 헬기를 민간에서 임차해 운용하고 있다. 임차 헬기는 각각 1975년, 1981년, 2001년, 2010년에 제작됐다. 짧게는 15년부터 최대 50년이 지난 노후 헬기들이다. 이들 노후된 헬기로 산불 위험 기간인 1월∼6월, 11월∼12월 사이에 산불예방활동, 산불진화, 기타(재난 등) 등을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임차비용도 지자체들에게는 부담이다. 정부는 산불 진화가 지자체 소관이란 이유로 국비 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다. 매년 10억원이 넘는 예산이 기초지자체로서는 부담인 것이다. 여기에 헬기 정비를 민간업체가 전담하다보니 지자체가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자체가 정비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조종사의 나이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불 진화 헬기조종사 90% 이상이 육해공군 출신 퇴역 조종사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산불 현장은 특히 연무가 끼어 시야가 나쁜데다 돌풍이 부는 경우도 있어 70대 조종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중한 목숨이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당국이 나서 산불진화에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him7942@kbmaeil.com

2025-04-10

대구와 광주의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대구와 광주는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다. 한쪽은 정치 성향이 우측으로 기울어져 한쪽은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을 뿐, 둘 다 본질적으로 자존심이 세고 변화에 저항하고 고집이 세다. 두 도시 미래 발전전략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여러 훌륭한 대구시장이 있지만, 대구발전을 이끈 최고의 대구시장으로 이상희 시장과 문희갑 시장을 들겠다. 이 시장님은 대구 도시계획 근간인 신천대로를 왕복 8차선에 녹지를 갖춘 형태로 구상하였고, 칠성시장 인근 구간은 시장 정비 후 지상이나 지하도로로 계획하였다. 낙동강을 대구한강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에도 찬사를 보냈었다. 문희갑 시장은 대구 곳곳에 600만 그루 나무를 심어, 대구를 폭염의 도시에서 탈출시킨 분이다. 난 대구를 벤치마킹하여 ‘광주 천만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을 벌였으니, 문 시장님은 전 국토 푸르게 최고 수훈자인 셈이다. 대구와 광주는 내륙도시 한계로, 수출 전진기지가 될 수는 없다. 대신 대한민국 빛나게 하는 지혜의 도시는 될 수 있다. 시대정신은 늘 변한다.‘불과 금속과 돌’의 시대에서 ‘나무와 꽃과 물’의 시대로 변했다.‘기계와 땀’의 시대에서, ‘인간과 눈물’의 시대로 변했다. 대구와 광주에게 부여된 시대적 명제는 무엇일까? 도시를 ‘생명, 자유, 평화’의 꽃이 만발하는 극락도원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대구와 광주는 가장 부자인 도시가 될 수는 없으나,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될 수 있다. 그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담은 도시다. 이런 이념을 추구하는 도시를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티모시 비틀리 교수는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lic city)’라고 부른다. 난 이런 도시를 ‘자연사랑·인간사랑·세상사랑 삼중주 도시’로 명명한다. 핀란드는 유치원 때부터 자연으로부터 ‘배움’을 내면화·생활화했다. 덥고 습해서 짜증 나는 도시 싱가포르는 지도자와 시민들의 지혜로 ‘바이오필릭 시티’ 개념을 도시디자인에 전면 도입, 도시는 부강해지고 시민은 행복해졌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대구시장·광주시장 이하 두 도시 공무원들이 바이오필릭 시티에 미치기만 하면, 두 도시는 승리의 도시가 된다. 우선 두 도시 새로 생긴 공항 이전 적지 250여만 평에, 바이오필릭 시티 조성 사령탑을 만들자. 그리고 이 ‘자연사랑·인간사랑·세상사랑’ 도시 만들기 수법을 대구·광주 전 지역에 확산시키자.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이 대구와 광주를 찾아올 것이다. 호기심 많은 홍준표 시장이 묻는다. “빵 문제, 경제발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요?” 걱정할 것 없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청색 경제 기술도시 요람 만들면 된다. 미국에서 개발한 상어피부 모방 항균 표면은 항생제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병원 내 감염율을 80%까지 줄인다. 청어 비늘 구조를 모방한 태양광 패널 코팅 기술은 기존 태양광 패널보다 15% 더 많은 빛을 흡수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 무궁무진하다. 경제 중흥한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 센터나 플로리다 암 센터 같은 공익 의료 시설을 대구는 군 공항 이전 적지에 광주는 바이오필릭 시티 배경으로 화순에 만들면, 세계 최고 의료 힐링 도시 된다.

2025-04-10

관세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어디까지 뻗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9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상호관세를 84%로 높이는 행정명령에 또다시 서명했다.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이제 중국에 모두 104%의 관세를 부과하게 된 셈이다. 이러자 10일 중국도 미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또다시 8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 간 관세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는 두 나라의 관세 전쟁을 핵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 자동차 게임이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는 게임으로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양쪽 다 크게 다치는 게임이다. 1950년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을 한창 벌일 때, 세계는 두 나라의 경쟁을 치킨게임이라 불렀다. 역사상 국제사회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인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전쟁에 휘말린 경우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힘센 강자들 싸움에 아무 관계없는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를 표현한 말이다. 미중의 관세전쟁에 지금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증시도 9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은 두 나라의 치킨게임 영향력 안에 있는 나라다. 중소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을 벌써부터 걱정한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우리 처지 아닐까. 나라든 기업이든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0

포항지진 피해 주민 보상 더 늦춰선 안 된다

국내 최대 규모 지진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포항지진이 발생 8년이 지났으나 피해 보상에 아직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와 검찰의 수사, 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8년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 피해주민 가운데 2만4000명은 위자료도 받지도 못한 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대구고법이 5월 중 포항지진 손해배상 항소심을 진행할 예정이나 재판이 3심인 대법원까지 이어진다면 최종 판결을 보지 못할 고령의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피해 당사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매년 약 3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기왕 보상이 될 거라면 빨리 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피해보상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강도도 컸지만 1년 동안 여진이 어지면서 시민들에게 정서적, 심리적으로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1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치는 인명 피해와 2만7000여 건의 시설물이 부서지고 훼손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포스텍 연구팀은 포항시민 10명 중 8명이 심리적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포항지진은 정부 조사단의 발표대로 인재였던 것이 2019년 3월 입증됐다. 당시 조사단장인 서울대 이강근 교수는 “지열발전소에 주입하는 고압의 물이 단층을 활성화시켜 발생한 인재”며 “자연지진은 아니다”고 밝혔다. 당시 산업통상부도 “조사연구단의 연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정부와 지질연구기관 등을 상대로 낸 1심 재판에서도 이런 결과를 인정하고 포항시민에 대한 피해보상을 선고했다. 정부가 더 이상 이 사건으로 시간을 끌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포항시민의 뜻이다. 포항지진 범대본은 “죽고 나서 보상이 있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합당한 판결로 사건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항지진은 이미 밝혀진 대로 변명할 수 없는 인재다. 정부가 재판을 이유로 시간을 끈다면 구차하게만 보일 뿐이다. 포항시민의 상처를 보담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2025-04-10

‘6·3 대선’도 무당층이 캐스팅보터 되나

보수잠룡들의 6·3 대선출마 선언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무당층(無黨層)에서는 국민의힘 대선주자 대부분이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각종 대선 때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하는 무당층은 선거판세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주요 주자들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선 50%가 넘는 지지도를 기록하며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6~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무당층(182명) 응답만을 분석했더니, 이 전 대표의 절대우위가 흔들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결과를 보면, ‘이재명 대 오세훈’은 27% 대 36%, ‘이재명 대 유승민’은 25% 대 35%. ‘이재명 대 홍준표’는 28% 대 34%, ‘이재명 대 안철수’는 28% 대 33%, ‘이재명 대 한동훈’은 30% 대 32%를 기록했다. 다만, 이 전 대표는 김문수 전 장관과의 무당층 양자 대결에서는 35%의 지지도를 기록하며 김 전 장관(27%)을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조기대선의 경우, 보수·진보 양진영의 결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무당층 표심이 최대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해왔다. 이번 갤럽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이 무당층을 흡수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한다면,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대표와 접전 양상을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현재 각 당의 주요 잠룡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6·3 대선 레이스가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9일 경선 선거관리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본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룰’에 대해 논의했다. 경선주자들마다 민심(국민여론조사)과 당심(당원투표) 반영비율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이 전 대표에게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면 무당층 유권자를 보수정당 지지자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경선룰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5-04-10

물모이와 물모아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오늘날, 우리는 심각한 물 부족과 산불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경북에서 일어난 역대 최악의 산불은 큰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손실을 가져왔다. 당시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은 입산자의 작은 부주의였지만, 피해를 키운 근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메마른 산림과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초기 대응의 한계, 그리고 절실히 기다렸던 비조차 내리지 않은 환경이 더 큰 비극으로 이어졌다. 결국 많은 공무원과 산불 대응 인력이 밤낮없이 산불 진화에 투입되었으며, 심지어는 입산 자체를 통제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해야 했다. 이제 산불은 봄철 일부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10년을 되돌아보면 산불 발생 빈도는 뚜렷하게 증가했다. 과거 산불은 주로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집중되었으나, 현재는 계절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대형 산불 피해가 빈번해지고 있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날씨가 늘고 강풍이 자주 불게 되면서, 불에 약한 소나무림 중심의 산림 구조는 더욱 취약해졌다. 산불 초기 대응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급격히 퍼지는 산불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데다, 헬기의 야간 투입 제한, 장비의 노후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산불특수진화대의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로 환경 또한 큰 걸림돌이다. 초기 진화가 늦어지면 결국 산불은 더 커지고 걷잡을 수 없는 재난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산불 대응의 현실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이제는 ‘물모이’와 ‘물모아’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물모이’ 운동이란 산 속에 흙과 돌, 나무 등을 활용해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빗물을 모으는 방법이다. ‘물모이’를 통해 주변의 습도를 유지할 수 있고, 산불이 났을 때 초기 진화를 위한 소중한 물을 확보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대형 산불 이후 약 10만 개 이상의 ‘물모이’를 조성해 산림 생태계 복원과 산불 피해 감소에 큰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물모아’ 시스템이라는 국가물관리 통합 플랫폼(mulmoa.go.kr)을 구축하고 있다. 산림뿐 아니라 농업, 도시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물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이 시스템은 가뭄이나 홍수 같은 극단적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모아’ 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게 지역의 물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활용한다면, 장기적으로 산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기후 변화 시대, 산불은 이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체계적인 물 관리 시스템인 ‘물모아’ 구축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물모이’ 운동은 지속가능한 산불 예방책이다. 우리의 숲을 지키고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숲 조성으로 탄소 흡수 능력을 높여 기후 위기 대응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제는 모두가 지혜를 모아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때다.

2025-04-10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노병철수필가 어떤 때는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자기가 손해 보는 짓은 죽어도 하기 싫고 자기 생각만 옳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싸가지 없는 전형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인간은 모든 인간 삶 자체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있는 듯했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듯이 나도 다른 사람 인생에 디딤돌은 못될망정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겠다 싶어 대충 맞춰주고 사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막가파 인간들에겐 왠지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 혹자는 종교인이라면서 어찌 마음을 그렇게 나쁜 방향으로 먹느냐고 수양이 덜 됐다고 나무라지만, 수양은 수양이고 성질은 성질인 것 같다. “난 그 쪽 보다 이 쪽으로 가고 싶어.”“밥은 무슨 밥 그냥 허기만 달래면 되지.”어떤 때는 내가 제 놈의 ‘심부름꾼’이 된 느낌마저 들어서 혼자 여행길을 잡은 지가 꽤 된다. 동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나의 규칙에 따라줘야 하기에 처음 몇 번은 맞춰주더니만, 서로가 불편하니까 이젠 같이 가자는 말도 잘 안 한다. 그 지방 특색 있는 음식은 모조리 다 먹고 와야 하고 어지간하면 내가 보고 싶은 곳은 다 다녀야 하는 나의 특유의 여행습관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혼자 여행하는 인간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지병이 혼자 여행하는 것을 막았다. 운전대만 잡으면 잠이 쏟아지는 이상한 병이 내게 있다. 당뇨로 인한 졸음 현상이 심했다. 그래서 운전대를 오래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나 편하자고 운전만 해 달라는 여행 동반자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관광버스 여행이었다. 아주 저렴하고 운전은 안 해도 되면서 음주가무는 전혀 없는 그런 여행만 전문으로 하는 관광버스들이 생겨났기에 정말 편했다. 하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혼자 아닌 혼자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목적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이 같은 사람끼리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무리가 생겼다. 하지만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고 판단되면 같이 여행을 가지 않았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상한 인간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나를 변하게 했는지 주위 좋은 사람들이 나를 바꿔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식에 변화가 왔다. 우리가 자주 듣는 이야기 중 여행을 가장 즐겁게 하려면 동행자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백번 동감한다. 하지만 이는 나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나를 기준으로 나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린다. 이게 맞는 것일까? 동행자에게 나의 여행습관까지 포기하면서도 맞춰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야 깨달았다. 남들이 보았을 때 ‘나’라는 인간도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인간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론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결정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사람이 옆에 온다는 진리를 말이다. 사람이 사는데 네 가지 ‘연’이 있단다. 혈연, 학연, 지연 그리고 ‘인연’이란다. 그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은 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세월이 알게 해 주었다.

2025-04-10

대통령이 없는 나라

장규열 고문 대통령이 없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은 역사의 한 장면을 강렬하게 새겼다. 최고권력자가 법의 심판을 받았고, 국민은 거리에서 침묵과 함성으로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체념과 분노 그리고 마지막 남았던 희망도 사그라진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서 허전함은 곧 혼란으로 남았다. 책임을 못다한 권력의 잔해들로 남았다. 대통령이 없는데도 낡은 권력과 그 잔재는 아직도 곳곳에 살아서 꿈틀거린다. 부패한 권력체계는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국정농단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일부 세력은 아직도 기득권을 붙들고 움직이고 있다. 경제는 멈췄고 민생은 외면되며 외교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한미 간의 대화는 자취를 감췄고, 보호무역주의적 경제공세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관세폭탄이라는 현실 앞에 대응은 커녕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게 아닌가. 무책임한 정권이 남긴 그림자가 깊고도 어둡다. 시대를 잘못 짚은 비상계엄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지만 국민은 지혜로왔다. 우리는 달랐다. 대통령이 사라진 날에도 아이는 학교에 가고 지하철은 정시에 달렸으며 국민은 법을 지켰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국민에게 있었다. 우리는 과도기의 한복판에 섰다. 두 달도 못미칠 권한대행 체제는 한계가 있다. 나라가 스러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정권 때문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정능력과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 덕분이다. 그렇기에 더욱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책략이나 술수에 나라를 맡기지 않는다고. 잘못 사용된 군경의 위협과 ‘장난같은 게엄’이라는 터무니없는 궤변 앞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던 국민이기에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자격이 있다고. 조기대선은 단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는 혼란의 끝에서 진짜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누구를 위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더 이상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책임질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리더를 요구해야 한다. 선택은 단지 희망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사라졌지만, 국민은 깨어 있다. 혼란 속에서도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길을 찾는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온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온 나라가 한마음이 되었다고. 온 세상이 혹 거꾸로 달린다 해도 대한민국은 국민이 자유롭고 풍요할 내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국민은 많이 배웠다. 자유와 민주의 고귀함과 헌법을 지켜야 할 까닭에 관해 분명히 깨우쳤다. 주권자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언제든지 버려질 것이라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경탄하는 중이다. 지난 몇 달이 모두의 위기였지만, 나라의 역사 위에는 오히려 빛나는 시간으로 새겨야 한다. 국민이 살아있어 나라가 안전하다.

2025-04-09

국힘, 중도외연 확장할 수 있는 경선룰 필요

지난 8일부터 범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줄줄이 출마 선언을 하면서 국민의힘 경선룰에 관심이 쏠린다. 주자들 사이에선 이미 경선룰에 대한 신경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9일 첫 회의를 열고 경선룰에 대해 논의했다. 선관위는 현재 1차 컷오프(예비 경선)에서 4명, 2차 컷오프에서 2명을 추려 본경선을 양자 대결로 치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대선 때는 1차 컷오프에서 8명, 2차 컷오프에서 4명으로 압축해 본경선을 치렀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통령 후보자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50%씩 반영해 선출하고, 여론조사는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컷오프 단계의 비율 조정은 선관위 재량에 맡겨 놓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8일 “당내 경선에서 4자 경선을 하고 난 뒤 당내 수습은 당에서 해야 한다. 양자 경선은 대선을 모르는 멍청이가 하는 짓”이라며, 본경선 양자대결을 반대했다. 홍 시장은 지난 대선 본경선에서 민심에서는 1위를 했지만, 당심에 밀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한동훈 전 대표 측도 “양자 경선은 당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할 우려가 크다”며 홍 시장과 뜻을 같이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을 이기려면 민심이 원하는 후보를 내야 한다. 당 선관위와 지도부에 완전 국민경선을 촉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안철수 의원도 “민심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 8대 2도 좋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민의힘 경선 참여자는 20명 안팎에 이를 정도로 폭주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미래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리더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 선관위는 경선 후보 모두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경선과정이 흥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중도·무당층 민심이 대선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경선룰도 이러한 경향을 최대한 반영해서 결정해야 한다.

2025-04-09

치매와 결혼의 상관관계

홍성식(기획특집부장)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주목받는 병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치매’다. 대뇌 신경세포의 손상이 지능, 의지, 기억 따위를 상실시키는 치매는 대부분 노인들에게서 발병한다. 증상에 따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여섯 살 철부지 아이처럼 행동하며, 심지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 치매는 세상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은 병이 아닐까. 이와 관련,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 하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은 2만4107명을 대상으로 결혼 여부와 인지 장애의 연관성을 오랜 기간 조사했다. 인지 상태에 대한 신경 심리학적 검사와 임상의의 평가가 겸해진 18년 동안의 추적·관찰에 의하면 사별·이혼·미혼인 사람들이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보다 치매 발병 위험성이 40%가량 낮았다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 친구, 이웃과 사회적 교류가 활발했고 보다 자립적이었다. 이런 게 인지 능력 유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연구팀의 부연.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사멸을 불러와 치매 위험성을 높인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결혼이란 관계를 불화 없이 유지시키기 위해선 적지 않은 스트레스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혼을 꺼리는 세태에 더해 과학적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니 앞으론 “나는 치매에 걸리기 싫으니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을 듯하다. 이래저래 결혼이 홀대받는 시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9

흔들리는 지역현안 대선공약으로 준비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6월 3일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14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9일 각각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대선을 앞두고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동시에 대선에 나서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두 단체장이 출마에 나서면서 대구와 경북의 주요 현안들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그동안 윤 전 대통령의 전폭 지원으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TK 신공항 건설,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과 같은 대역사를 착실히 추진해왔다. TK 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미래 100년을 내다본 대역사의 지역 염원사업이다. 행정통합 역시 소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구경북 생존전략 사업의 하나다. 두 사업은 윤 전 대통령의 의지가 실리면서 비교적 순항을 했으나 대통령의 탄핵으로 급제동이 걸린 셈이 됐다. 게다가 두 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행정공백마저 생겨 사업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TK 신공항은 공공개발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이 미뤄져 있고, 2026년 통합단체장 선출을 목표로 한 행정통합은 지방의회 동의 절차 등이 남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도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 준비와 산불 수습, 대구 군부대 이전사업, 대구취수원 이전, 동해심해전 가스개발 등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대선 정국과 리더십 공백으로 주요 현안들이 제때 진행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6월 초 대선이 확정됐다. 대구경북 현안이 대선공약에 반영되도록 하는데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주요 현안들을 중심으로 다시 연구 검토하고 대선공약으로서 충분한 당위성을 갖도록 철저히 준비에 나가야 한다. 공영개발로 전환한 TK 신공항 건설은 지역발전을 위한 대역사이지만 국가균형발전에도 기여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반드시 공영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많은 지역민들이 걱정하는 지역현안들이 새 정부 대선공약에 포함돼 사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초당적 협조도 구해야 한다.

2025-04-09

연극을 보고 나서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취미란에는 어김없이 책이나 영화를 즐긴다고 적는다. 글눈을 뜨면서부터 책을 찾아 읽더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자주 들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도 어딘가 구석진 곳에서 책을 보고 있던 아이로 나를 기억해 주니 나의 독서벽은 꽤나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다. 영화를 즐기는 것도 역사가 깊다. 아버지와 함께 간 극장에서 본 ‘콰이강의 다리’가 여전히 선명하다. 대입 공부를 치열하게 하던 고3 때에도 TV 주말의 명화극장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연극을 처음으로 본 건 고2 때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안톤 체호프 작품인 연극에 배우로 등장한다면서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객석을 채워 주라고 했다. 오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가까이 지내는 친구 몇을 데리고 극장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무대 앞에 몇 되지 않은 의자가 깔려있었다. 무대에 조명이 밝아지자 전통 러시아식 흰옷에 붉은 허리띠를 매고, 목 긴 가죽장화를 신은 오빠가 구부정한 채로 등장했다. 흰머리에 흰 수염을 붙이고 과장적으로 노인 분장한 오빠의 모습이 매우 생경해서 난 괜히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다. 무대 위의 오빠 모습은 이렇게도 기억에 선명한데 그 연극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도 국문과의 밤이라는 축제를 하면 당연히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고, 학과의 선후배들과 친구들이 밤낮으로 연습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가까이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행사 후 찍은 단체사진에 분장한 채로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잠시 부러웠지만 그 정도였다. 연극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나 보다. 이화회 회원들과 ‘친정엄마와 3박4일’을 본 적이 있었다. 워낙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들의 연극이라 볼 만하다고 관람한 거였다. 잘 아는 내용의 연극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무대가 너무나 큰 극장은 연극 감상을 심히 방해했다. 비교적 앞자리에 앉았음에도 도저히 몰입되지 않아 성에 차지 않았다. 연극의 묘미는 무대 가까이에서 배우의 숨소리와 땀방울을 느끼고 보는 것인데. 지난달 배달된 대구문화 소식지에서 대구연극제 뉴스를 접했다. 연극 일정을 꼼꼼히 살폈다. 안톤 체호프의 ‘고니의 노래’를 택해 맨 앞자리를 예매했다. 원래 희곡은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15분짜리 단막극이나 실제 공연은 60분이었다. 지방 작은 극장 68세의 노배우가 연극이 끝난 뒤 프롬프터와 함께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인데, 각색이 많이 된 듯했다. 확인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체호프 희곡 전집’을 빌려 읽기도 했다. 힌트가 될 만한 무대 장치, 젊은 배우의 서툰 분장과 연기에서는 오히려 노배우의 노쇠함 대신 청년극단의 활기가 전해졌다. 그러나 앞자리에서 직관한 배우의 땀방울, 거친 숨소리와 먼지내 나는 무대는 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엔 충분했다. 극장을 나서며 오랜만에 오빠와 통화했다. 52년 전 오빠가 공연한 연극 제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안톤 체호프의 ‘곰’이라며 첫 대사를 또렷이 기억해 들려준다. “좋지 않습니다. 마님, 몸만 상하실 겁니다….” 전화 너머로 건너온 오빠 목소리에서 아주 잠깐 연극배우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 옛날 20대에 늙은 배우를 연기한 오빠는 지금 73살이다.

2025-04-09

한방으로 다스리는 호흡기 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코와 기관지는 현대인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호흡기 문제 중 하나로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 같은 요인들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건조한 환경과 실내 공기 질의 저하도 호흡기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호흡기 질환은 폐와 관련된 문제로 보이는데 폐기능이 떨어지고 담(痰)이 쌓이면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폐는 본래 건조한 것 보단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이므로 습도가 부족한 환경이나 찬바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호흡기가 쉽게 손상될 수 있다. 한의학에선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한약 처방이 대표적이며 폐의 기운을 보강하는 맥문동탕이나 갈근탕 같은 처방이 자주 사용된다. 맥문동탕은 폐를 윤택하게 하여 마른기침을 완화하고 갈근탕은 폐에 쌓인 열을 내려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담이 많고 가래가 끈적거리며 배출이 어려운 경우에는 반하후박탕을 활용하여 담을 제거하고 기침을 줄일 수 있다. 기관지 질환은 증상이 유사하더라도 환자의 체질과 병력에 따라 원인이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한의사의 진료를 통해 맞춤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코 안의 염증인 비염 축농증 같은 류의 병들엔 한약뿐만 아니라 약침 요법을 활용 할 수도 있다. 약침 요법은 한약 성분을 직접 경혈에 주입하여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특히 초음파를 활용하면 정확한 위치에 약침을 투여할 수 있고 또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자율신경까지 조절할 수 있다. 비염과 축농증 등으로 코가 막히는 질환은 익구개 신경절에 직접 약침을 주사하면 코와 눈 주변의 자율신경이 조절되어 막혀 있는 코가 뚫리고 잘 낫지 않는 비염이 개선된다. 성상신경과 미주신경에 약침을 주입하면 자율신경이 조절되어 피로함이나 수면장애 소화 장애 등이 개선되어 면역력이 향상 된다. 생활습관 개선도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실내 습도를 적절히 유지하고 먼지나 곰팡이 등의 유해물질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를 자주 마시는 것도 호흡기 건강에 도움이 되며 도라지차와 배즙은 폐를 보호하고 가래를 삭이는 효과가 있다. 생강차나 귤껍질차도 호흡기를 따뜻하게 하고 기침을 완화하는데 사용된다. 냉 음료 섭취를 피하고 찬바람을 직접 맞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폐활량을 키우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것도 호흡기 건강 유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한의학에선 질병을 단순히 증상만으로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평소 폐의 기운을 강화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산소 운동으로 심폐기능을 강화 하고 아프면 한약과 약침 치료 등의 한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만 아니라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같이 실천한다면 호흡기 건강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건강한 폐와 기관지는 단순히 호흡기의 문제를 넘어 신체 건강과 면역력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관지 건강을 위한 꾸준한 관리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25-04-09

입암서원(立巖書院)

가사천 물소리 맑으니 과연 세거(世居)할 만한 곳이다 안과 밖으로 닦아 문장(文章)과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이렇게 교차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향나무 냄새 쑥떡보다 깊다 우리가 불천위(不遷位)를 바라는가 망연한 불후(不朽)를 꿈꾸지 않고 오직 실용적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형식적인 솟음이 아니라 의지의 표상으로 뜻을 세움이라 헛것에 들썩이지 말고 오직 정좌(正坐)하여 정진하며 읽고 또 읽으리라 뼈에 새겨 각고라 했으니 성리(性理)가 사람의 길에 삐끗한다면 새로이 갈아치울 기개를 배우고 시대에 동참하는 열린 생각을 배우는 것이 학문의 길이 아니겠는가 귀 기울여 듣고 마음 낮추고 후세를 두려워하여 오늘을 직시하는 선비가 되는 것이 눈 밝은 조상의 가르침인 것을, 헌 신짝처럼 신념을 개량할 수 있는 것도 교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동천(洞天)에 머물고자, 그래서 입암(立巖)이다 그래서 선비는 위태로운 사람이다. 어느 들판에서 쓰러지리라. 그 들판이 되어 벌떡 다시 일어나리라. 입신양명은 당대의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 후세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님을 진력을 다해야 한다. 보조 지눌이 말했다. 땅으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9

언제나 최소한의 품위

정미영 수필가 며칠 전,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한 중형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힌 사고였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는 듯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차량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기에, 주변에서 누군가가 구급차를 부르는 듯했다. 그런데도 차량 운전자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품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종종 품위를 ‘고상함’이나 ‘우아함’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품위라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상황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다친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피해자를 몰아세우고만 있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 차량 운전자도 놀라고 화가 났겠지만, 그 감정을 무작정 쏟아내며 피해자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에서 ‘어떤 처지에서도 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기를’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사고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 말로 품위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며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무례함은 순간의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그 흔적은 오래도록 남는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통사고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다스리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해지는 길일 것이다. 그 운전자가 아무리 감정이 북받쳐도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면, 피해자에게도 덜 상처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날의 장면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과연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 감정의 민낯이 자주 떠올라 부끄러웠다. 사회생활에서는 그럭저럭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가정생활에서는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기 힘든 나날이 많았다.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내 자녀에게는 엄격했다. 자녀를 키우면서 욕심이 앞선 탓에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쉽게 표정을 찡그렸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참다운 어른으로서의 태도나 부모로서의 품위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품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상황이 불편하더라도 감정을 억누르는 등의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사람다움을 만드는 것이리라. 품위와 배려,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2024년)’이 떠올랐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병이 든 몸이지만, 끝까지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주인공들은 노력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의 내면 연기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 당시에도 죽음을 앞둔 인간으로서의 품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었었다. 거친 갈등보다는 조용한 방식으로 인간의 따뜻함과 배려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인 것 같아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네 삶은 생각보다 짧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 언제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라고, 야무지게 당부해 본다.

2025-04-09

野, ‘尹·국힘 한몸’ 만들어 대선 치르려 하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일 조기대선과 권력구조개편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 제안에 대해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그는 지난 2022년 대선 때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공약했으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그러나 조기 대선 날짜가 잡히고 집권 가능성이 커지자 같은 당 출신 국회의장의 제안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 대표는 대신, 뜬금없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고 계엄 요건을 강화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이다. 민주당내에서도 “내란수습을 핑계로 개헌을 방관하는 태도가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개헌특위 위원장을 맡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이날 “개헌은 국민의 명령이다. 개헌 데드라인은 이번 대선 투표일이 돼야 한다”며 우 의장의 제안에 찬성했다. 국민의힘 개헌안은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 △국회에서 국무총리 선출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 부여로 요약할 수 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러나 개헌은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반대하면 성사될 수 없다. 민주당은 현재 윤 전 대통령이 연관된 모든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며 재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선 이미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양평 땅 의혹 등 11가지를 수사하는 특검법을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시킨 상태다. 이번 조기대선을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 심판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러니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 대표로선 개헌 같은 다른 이슈가 선거과정에 거론되는 게 아예 싫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민주당이 대선정국을 정치 보복과 사정 광풍으로 몰아가려 한다”고 비판하지만, 마땅한 대응책도 없는 것 같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이러한 대선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당내 경선과정에서 당과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2025-04-08

산불 피해지역 재창조 구상, 피해민 희망되길

경북도가 지난달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로 역대급 피해를 입은 경북 북동부 5개 지역에 대한 복구 계획을 발표했다. 양금희 경북 경제부지사는 7일 언론을 통해 “산불피해 극복을 단순히 재난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거나 그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고 복구와 재건을 넘어 지역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재창조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도는‘경제산업 재창조 2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상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의성을 중심으로 한 내륙 피해지역에는 10만평에 달하는 스마트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영덕에는 스마트 양식 콤플렉스를 만든다. 또 안동 남후농공단지와 영덕 제2농공단지는 강소산업단지로 바꾼다. 청송의 음식테마거리를 재건해 마케팅을 지원하고 청송과 영양에 대규모 체류형 산림레포츠 휴양단지를 짓겠다는 계획 등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국·지방비와 민간자본 유치로 대체한다는 생각이다. 경북 북동부지역 5개 시군에 번진 산불은 사상 유래가 없는 피해를 남겼다. 20여 명의 목숨을 앗고 추정치지만 1조 원 이상 피해가 발생했다. 주택 수천 가구와 농경지, 과수원, 가축, 비닐하우스 등이 모두 불타 피해농민들은 생계수단마저 잃은채 망연자실 하고 있다. 피해주민 가운데는 머물 곳과 생계 수단이 없어져 자식들이 사는 가까운 도시로 떠날 생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복구가 서둘러지지 않으면 곳에 따라 한동네가 몽땅 사라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인구 소멸도가 높은 경북지역의 소멸 위기감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도의 프로젝트가 재난 이전상태로 되돌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재창조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것은 인구소멸에 대한 예방적 조치측면도 있다. 프로젝트 실현에 대한 주민 설득과 이해도를 높이고 지역에서 살아갈 희망을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 피해주민의 주거와 생계수단을 빨리 복구해 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피해지역의 희망 등불이 되도록 착실한 실천을 기대한다.

2025-04-08

대전서 배우자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혼인 건수는 모두 7986건이다. 전년도 보다 53.2%가 증가했다. 증가폭만 보면 전국 평균치(14.8%)의 3.6배나 된다.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계산한 혼인율도 남성이 12.6건, 여성이 12.4건으로 전년보다 모두 4.3건씩 증가했다. 전국 시·도 가운데 혼인 건수와 혼인율 모두 당연히 1위다. 1990년 혼인관련 통계 작성 후 혼인율 1위는 대기업이 많은 서울과 경기, 울산이었다. 이후 행정수도가 이전해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이 9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는 대전이 세종시를 꺾고 1위에 등극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인구추이 속에 대전의 혼인율 증가는 뜻밖의 소식이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방도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살펴볼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대와 30대 청년층 유입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SK온이나 글로벌 바이오기업 머크사 등이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청년층이 늘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지역유치가 관건인 셈이다. 지금 대전은 대기업 자회사와 상징기업 등이 늘면서 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것도 젊은이가 오는 중요 포인트다. 대전시는 신혼부부에게 일시에 5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도 은행과 협력해 돕는다. 그밖에 임산부 배려문화 조성 등도 혼인 증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젊은이가 빠져나가 소멸 위기를 느끼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본받을 내용이다. 좋은 기업이 있고 살기좋은 환경만 되면 서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8

TK당원들의 선택이 국힘 미래 결정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57일간의 조기 대선레이스가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한자릿수인 후보 13~15명이 난립하는데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아직도 심각해 대선전략을 두고 고민이 많다. 부자 돈 걱정하듯이, 이재명 대표의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론 확산을 우려하는 민주당과 대비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대선주자 중 김문수 전 장관은 9%, 한동훈 전 대표 5%, 홍준표 대구시장 4%, 오세훈 서울시장 2%로, 4명을 모두 합해도 20%다. 민주당 이 대표(34%)에 비해 14%포인트나 낮다. 특히 중도층에선 보수진영 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14%로 이 대표(38%)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게 갤럽 분석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황우여 전 비대위원장을 당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대선체제로 전환했다. 일각에선 지명도가 높은 주자들이 많아 경선 흥행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지만, 당내 분위기는 가라앉은 모습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데다 당 내분도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끊임없이 탄핵 찬반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친윤(윤석열)계 일각에서는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경선에 나와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는 모양이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6일 의원총회 자리에서 당 차원의 탄핵반대 집회를 거부한 당 지도부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향후 당내 경선과정에서도 ‘탄핵 찬·반’이 주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당 이 대표가 가장 바라는 일이 지금 국민의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자연인으로 돌아간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도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일과 5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을 관저에서 만났다. 조기대선 얘기도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6일엔 변호인을 통해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며 대국민 메시지도 냈다. 당연히 당 안팎에서 조기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박심(朴心)’ 논란이 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는 ‘배신자론’ 등장으로 당 내분을 가져올 뿐 아니라, 그의 탄핵에 찬성한 유권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당별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치러지게 되면 보수·진보 강성 지지층은 전에 없이 결집할 것이다. 역대 대선처럼 승패는 중도·무당층이 결정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본선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대립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인물이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당내 경선 선거인단 수가 서울 다음으로 많은 TK지역 당원들의 선택이 보수정당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2025-04-08

화재를 막기 위한 안간힘, 화재막이 풍수

지난 달 21일부터 영남지방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여 열흘 가량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유래 없는 재난을 겪었다. 가히 단군 이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집과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타죽고, 국가문화유산을 간직한 천년 고찰이 속수무책으로 소실되는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공포에 떨었고, 대재앙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함에 탄식을 쏟아내야 했다. 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다루면 한 순간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이 되고 만다. 그래서 화마(火魔)라 했다. 그러기에 먼 옛날부터 조상들은 화재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왔다. 서울 광화문 앞에는 돌로 조각한 해태 한 쌍이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조선초 경복궁을 지을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만들어 세운 것이다. 경복궁의 정남향인 관악산이 불꽃 형상이어서 궁궐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므로 관악산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 두는 한편, 화기를 잡아먹는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해태를 관악산을 향해 세워 둔 것이다. 불은 물로 다스려야 한다. 관악산의 모양이 불꽃 형상이니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수신인 용을 만들어 넣는 한편, 대궐 앞에는 관악산을 향해 화기를 억누르는 해태상을 세움으로써 이중, 삼중의 방재 장치를 해 둔 것이다. 산꼭대기에 소금을 묻어 화기를 누르는 곳도 있다. 해인사가 내려다보이는 매화산 남산제일봉(1100m)에 소금단지 묻는 전통이 그러한 예이다. 불꽃 형상인 해인사 남쪽 남산제일봉의 화기가 사찰로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난다는 풍수설에 따라 해인사에서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단오에 맞춰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 따라 소금단지를 묻어오고 있다. 해인사에서는 1695년부터 일곱 번의 화재가 났다. 특히 여섯 번째인 1817년 화재 때에는 팔만대장경이 들어 있는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인사에서 화재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킨 후 남는 물질이다. 이는 곧 바닷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는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남쪽 산꼭대기에 간수를 묻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달이 뜰 무렵, 마을 앞산 정상에 묻혀 있는 간수병을 파내어 간수를 채워 넣는 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은 다음과 같은 유래 때문이다. 조선 철종 때 마을에 큰 불이 나 가옥들이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한 풍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남쪽 동산이 ‘불 화(火)’자 형상이어서 마을에 불이 자주 나며, 불이 나면 반드시 연이어 세 번 난 뒤에야 그친다”고 했다.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화재를 막을 수 있느냐고 묻자, 산 정상에 구덩이를 파고 간수를 묻어 화기(火氣)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날 저녁에 산으로 올라가 간수병에 간수를 채우고 달맞이를 하게 되었다 한다. 이 유래담에 의하면 마을에 자주 발생하는 화재의 원인을 마을 앞산에서 내뿜는 화기 때문으로 여기고, 그러한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간수를 묻는다는 것이다. 마을의 화재를 막기 위해 간수나 바닷물을 병이나 단지에 묻는 의식은 포항시 송라면 광천리, 영덕군 남정리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북송리에서는 지난해 대보름날 묻은 간수병을 이듬해 대보름날 파 보는데, 병 속의 간수가 많이 줄었을 경우 지난 해 많이 가물었다고 인식하며, 앞으로 시절이 좋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 해에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행동을 조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간수 묻기가 방화(防火)와 함께 한해(旱害)를 막기 위한 기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화재와 가뭄은 다 불의 기운이 강한 데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풍수상 화기가 강한 곳에다 바닷물을 묻어 화기를 눌러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모습이다. 박창원수필가 사람들은 바닷물이 화기를 누르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간수가 늘 차 있어야 한다고 보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간수를 보충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는 소금에서 추출한 물이지만 엄연히 바닷물이다. 그러나 간수병에 들어가는 간수는 평범한 바닷물이 아니다. 그 물은 용의 신비스런 생명력을 간직한 신격화된 물이다. 따라서 간수는 살아 있는 용으로서, 비를 내려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주고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신격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보면 간수병은 이 마을을 화재와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는 수호신 구실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도, 현대의 과학화된 장비도 이번의 산불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산불이 번지면 산림에 인접한 어떤 마을도, 그 어떤 사찰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또 50년 이상 땀흘려 가꾼 울창한 이 땅의 산림이 도리어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4-08

포어스(4us), 포스코와 한동대의 아름다운 교육기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명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완연한 봄날이 온 듯하다. 겨울의 초입에 별안간 내려진 12·3 비상계엄령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던 나라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파면시키자 혼란과 불안이 종식되고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봄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탄핵 찬반의 대치가 극에 달하고 돌연한 화마의 상흔이 참혹한 가운데 사필귀정의 결정이 내려져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제는 암울과 갈등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와 평온의 일상 속에 저마다 본연의 역할과 과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날씨가 맑고 밝아 좋아서 청명(淸明)이라 했던가? 청명절에 날씨가 좋으면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가 수월해지고 잘돼 그 해의 풍작과 풍어를 점치며, 들판에서는 봄 논, 밭갈이를 하고 어촌에서는 그물코를 손질하는 등 본격적인 생업활동을 펼치게 된다. 일이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듯이(事雖小 不作不成), 봄에 밭을 갈아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어 후회한다(春不耕種 秋後悔)는 의미를 되새기며 시기와 때에 맞춰 일을 하고 준비하곤 했었다. 학업의 시기도 비슷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배워서 남주나’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배움의 과정으로 다양한 학습을 통해 성장·성숙하고 나아지며, 배움을 체득하면서 결국 그 자신의 삶을 바꿀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의 모티브(motive)는 긴요하고 중대하여 어떤 계기나 기회에 배움의 실마리를 찾아 탐구하고 궁구하여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며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진정 의미 있고 가치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난 주말, 포스코와 한동대가 산학협력을 통해 2년째 펼치고 있는 ‘글로벌 교육기부 프로그램 포어스 제2기 발대식’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이나 취약계층 청소년들의 진학과 취업을 지원하는 ‘포어스(4us)’ 프로그램은 포스코1%나눔재단의 기부금과 한동대학교의 교육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교생 멘티와 대학생 멘토의 1:1 멘토링을 중심으로 학습 및 취업 지원, 진로체험, 방학 진로캠프 등 다양한 테마로 학습활동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즉, 포어스는 서로가 만나 배우고 알아가는 성장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꿈을 구체화시키며 가능성을 열어가는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배워서 나눌 수 있고 그러한 나눔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포어스는 배움과 깨달음으로 새로운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가능성의 여정이다. 그것은 곧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과 밖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질을 깨어 새 생명이 탄생되는 즐탁동시(559E啄同時)의 계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조력으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참여와 헌신의 동시성으로 함께 성장, 변화하여 포항지역과 철강분야의 미래 인재육성에 기여하는 포어스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5-04-08

빈국에서 부국의 희망으로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한 나라의 문화와 사상은 혁신의 중요한 토양이 된다. 혁신은 사람의 생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불교가 뿌리 깊이 내린 나라로 국민의 삶과 정신세계,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의 88%가 테라와다(상좌부) 불교를 믿으며,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등과 함께 남방불교의 기반을 두고 있다. 수도 양곤에 지상 60m의 황금탑으로 유명한 쉐다곤 파고다는 시민들의 휴식처이고, 이승의 고단함은 잠시일 뿐 영생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런 사회문화에 변화와 도전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P사 미얀마법인을 컨설팅 갔을 때 거리의 모습은 우리의 70년대 수준 정도였다. 트럭에 매달려 출근하는 광경과 동자승들이 줄지어 상가를 들러 보시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다나(dana)’ 사상으로 대표되는 보시와 자선의 미덕이 강조되고 불교 사원과 승려를 지원하는 문화가 강했다. 불교의 업(業) 사상과 무상(無常) 사상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명상 수행이 일반적이고 자기 성찰과 내면 수양이 중시되는 감성적 문화로 보였다. 새마을 운동이 도입되어 밀림의 밀짚으로 지은 초가를 일반 도금판으로 바꾸는 작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얀마 법인의 제품은 대형 트럭이 줄을 잇고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업 환경은 열악하고 위험이 상존해 ‘안전하고 깨끗한 작업장 만들기’라는 기치를 걸고 시작했다. 개선 마인드 셋을 위한 교육 때 일 방향 보다 다양한 질문을 통해 공감대 형성에 집중했다. 변화에 지극히 소극적이든 사람들이 ‘나와 동료를 위한 개선 활동’이라는 인식이 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직원들을 5~8명씩 활동팀을 조직하고 자신의 작업장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개선하는 활동들을 사진으로 공유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활발히 움직여 공장 전체 Clean 작업장을 이룰 수 있었다. 월급을 받으면 한 달 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법인장이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라’라는 말에 조금은 의아해 생각했다.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미얀마 경제 구조에 인근 국가의 중고차를 사들여 이동 수단으로 삼는 현실이었다. 수도 양곤에서 22년된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 1시간 40여 분 달리니 시골 마을이 나왔다. 외국인에 호의적이었으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수질과 거주 환경 등이 열악했고 평균 수명이 세계에서 짧은 나라에 속한다고 했다. 사회 의료시스템이나 먹는 물과 생활 환경, 경제적 한계 등이 수명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양곤 수도 시내 큰 호수 두 곳이 있고, 호수 언덕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색다르게 느꼈다. 하늘은 별이 초롱초롱 하고 고요한 호수 분위기는 우리 시골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과 조직을 변화하는 일도 잊은 채 미얀마의 시골 정취에 취했다. 기업 혁신은 종교, 사상 등 구성원의 생각을 지배하는 요인이 토양이 되고 토양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혁신은 성공 할 수 없다.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