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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어스테핑 딜레마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은 정치인 혹은 주목받는 인물이 집앞 등에서 예정에 없는 즉흥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약식기자 회견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도입했다.언론은 출근길 회견 혹은 약식 기자회견 등의 표현을 쓴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기자회견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신선하다” “심사숙고 돼야”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알다시피 도어스테핑은 대중과의 활발한 소통과 다양한 정보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함으로써 주요 기관장의 발언이 실수로 이어지거나 큰 파장을 부를 수 있는 단점도 있다.윤 대통령은 취임 후 현재까지 48일 동안 21차례 도어스테핑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해 대국민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긍정적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답변에서 부작용도 여러 번 나왔다. 국기문란 발언이나 노동부의 주52시간제 근무 개편추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답안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항상 긴장을 풀지 못한다고 한다.문제는 도어스테핑에 대한 긍정 평가와는 달리 지지율이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업무 수행평가가 취임 6주만에 데드크로스를 그었다. 과거에도 대통령의 언론 노출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무게가 더 실렸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이다.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두고 “대통령의 입이 가벼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윤 정부의 도어스테핑이 딜레마에 빠지는 건 아닐까.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28

퇴적공간, 종로3가

종로3가 유진식당에서 냉면과 수육에 막걸리 마셨다. 종로는 늘 정겹고 애틋한 곳이다. 종로3가역 5번출구 ‘송해길’ 송해 선생 흉상 앞에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다. 눈길을 끄는 현수막이 보였다. “송해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ㅡ종로 이웃 성소수자 일동” 송해 선생은 퀴어 축제를 옹호하는 등 생전 성소수자들을 편견 없이 환대했다.‘이웃’이라는 단어 앞에 먹먹했다. 종로3가는 과거부터 성소수자들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곳이다. 생산력 없는 노인들, 장애인들도 종로3가에 모여 별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 해거름 무렵 나이 든 손님들이 노상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 ‘퇴적공간’의 저자 오근재는 탑골공원을 비롯한 종로3가 일대를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아브젝트들의 집적지라고 했다. 하루 3천여 명의 노인들이 모여드는데, 가정이라는 집단에서 1차 추방을 당하고, 사회적 변화로부터 2차 추방을 당한 이들이라고 덧붙였다. 추방당해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이웃’들이다.어느 장소에 오래 다니다보면 장소와 사람이 한 몸이 되는 느낌이다. 장소가 사람에게 스며든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이는 장소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장소애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장소에 대한 사랑이다. 쉽게 말하자면 장소와 살 부비며 사는 동안 정분이 나는 것이다. 마틴 부버의 말을 빌리자면, ‘나’와 장소가 ‘나-당신’의 관계가 되는 것, 무의식과 실존 안에서 주체와 장소가 하나 되는 것”(장석주, ‘장소의 탄생’)이다. 종로3가는 한국 도시 문명이 통과해온 사회·문화적 맥락을 극적으로 수록해온 장소로서 쇠락과 번영이 공존하는 ‘서울’을 대변한다. 종로3가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번영보다는 주로 쇠락을 살아내는 이들이다. 낮술의 흥취가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이유다.종로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돈암동이다. 1989년 2월 18일, 돈암동 세입자대책위 부위원장이던 철거민 정상율은 세입자에게 행패를 부리는 집주인을 말리러 갔다가 집주인이 휘두른 칼에 가슴을 찔려 사망했다. 그는 돈암2동 606-377번지에 살던 소시민이었다. 이 죽음은 재개발 시대 도시 빈민들의 고통을 증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듬해 봄, 돈암동 철거민들의 오랜 아픔과 눈물이 마침내 영구임대주택 건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날 달동네에서는 잔치가 열려 돼지 삶고 막걸리 나눠 마시며 춤추고 노래했다. 그 후 30년이 지나 돈암동에는 근사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김광섭이 ‘성북동 비둘기’에서 묘사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이 울려 퍼지던 “산1번지 채석장”이 지금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다. 재개발 시대는 끝났지만 30여 년 전 정상율의 노제를 지낸 흥천사 입구에는 천원 동냥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청계천 버들다리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도 두터운 점퍼를 입은 채 바닥에 누워 잠든 노숙인들이 늘 있다. 무관심과 소외의 그늘이다. 이번에 성소수자들이 내건 송해 선생 추모 현수막이 뉴스에 보도됐는데, 혐오, 분리, 차별의 댓글들을 읽는 게 고통스러웠다. 한편 종로를 대표하는 노포인 ‘을지면옥’이 이제 헐린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 이전해 계속 장사하겠지만,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아늑함과 곰살맞은 세월의 숨결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 뉴스 댓글에도 흉물이니 슬럼화니 알박기니 하는 천박한 자본논리들만 판친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원조집인 을지OB베어는 두 달 전 강제집행으로 철거됐다. 옆 가게인 만선호프가 건물을 매입해 쫓아낸 것이다. 이제 골목에는 만선호프 뿐이다. 그런 식으로 확장한 만선호프만 10개다. 좋은가? 미친 짓이다.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으나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자본화된 욕망은 밀려난 이들, 약자와 소수자들, 오래된 것들, 이질적 타자를 품지 못한다. 추억과 낭만들이, 이웃들의 삶이 여기저기 철거되는 중이다. 유진식당에서 낮술 마시고 일어나는데, 연둣빛 정장을 멋지게 차려 입은 어르신께서 아무 이유 없이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셨다. 늙고, 낡고, 병들고, 촌스럽고, 조금은 지저분하고, 싸구려지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도 마음을 여는 이웃들이 종로3가에 있다. 이때 종로3가는 대명사다. 사람과 장소가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그곳을 나는 잃고 싶지 않다.

2022-06-28

갓생 살기

요즘 ‘갓생’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자주 들린다. ‘갓생’이란 갓(God,신)과 인생(人生)을 합친 신조어로 꾸준히 계획적으로 살아내는 삶을 뜻한다. 그런데 목표를 설정하는 게 그리 거창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면서, 이루기 쉬운 작은 목표들을 설정한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기, 하루에 한 번 하늘 올려다보기, 밥 먹고 눕지 않기, 명상하기 등 쉽게 행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성취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목표를 지향한다. ‘갓생 살기’의 핵심 포인트는 지속 가능한 꾸준함과 그에 따른 성취감이기 때문이다.과거 자기 계발 열풍이 불었을 땐 유명인이 행하는 루틴을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1년 안에 10KG 빼기, 책을 100여권 읽기 등 다소 거창한 목표를 크게 잡아 노력했다면 이와 다르게 갓생살기는 개인이나 상황에 초점을 두고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는 목표에 집중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삶의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듯, 갓생 살기를 실현하는 이들이 세운 목표는 힘을잔뜩 뺀 채로 ‘개인’에 맞추어져 있다. 하루 영양제 챙겨 먹기, 식사 후 양치질 곧바로 하기, 밥 한공기만 먹기, SNS 이용 시간 제한하기 등 나의 삶에 중점을 두고선 개인이 원하는 행복의 방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경험이나 체험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MZ세대 사이에서 ‘갓생’이 유행처럼 번지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오하명(오늘 하루 명상)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챌린지 게시물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행한 노력을 SNS에 인증하며 자신감을 얻고 또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으며 오늘의 성취를 쌓고 쌓아 나의 삶을 보살피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다.해외선 이미 ‘THAT GIRL’ 챌린지가 한창이다. 유튜브에 THAT GIRL CHALLENGE, THAT GIRL VLOG 등 간단히 검색만 해보아도 게시물들이 폭설 마냥 쏟아진다. 갓생살기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THAT GIRL은 일도 잘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과 자기관리 전부 완벽한 현대 여성을 뜻하는 듯하다.전문가들은 이러한 유행의 흐름을 두고선, ‘갓생 살기’는 코로나 19가 불러온 현상이라 말한다. 제한된 일상에서 많은 이들이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겪었기에 오히려 자신이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주체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삶을 택한다는 것이다.갓생이 트렌드로 자리 잡자 이와 관련된 서비스나 마케팅이 활발해졌는데, 캐시워크는 ‘영양제 먹기 챌린지’ 이벤트를 시행한 바 있다. 14일 동안 빠지지 않고 영양제를 먹고선 SNS에 인증샷을 남기면 CU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프티콘을 증정했다.농심은 수분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른 물 습관 캠페인을 선보였다. 전지현의 하루 물 루틴이란 콘셉트로 하루 중 언제 물을 마시면 좋을지 소개했고, 갓생 사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루 2L 물 마시는 습관을 권장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최근 GS편의점에 방문했다가 신기한 초콜릿을 발견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즐길 수 있다는 ‘오늘 하루 초콜릿’은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초콜릿을 때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침 초콜릿은 칼슘과 비타민 D가 들었고, 점심은 타우린, 저녁은 마그네슘이 포함되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더해진 제품이라 인상 깊었다.오늘 하루 초콜릿을 기획한 GS 리테일의 ‘갓생기획’팀은 ‘공감’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토대로 그간 없던 새로운 먹거리를 꾸준히 내놓는다. 유명 도넛 브랜드인 ‘노티드’와의 콜라보한 노티드 우유와 허니버터땅콩으로 알려진 바프(HBAF)와의 협업한 꿀젤리를 선보이며 특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갓생기획의 굿즈도 존재한다. 갓생을 살겠다는 글자가 쓰여진 다이어리부터 시작해서 MZ세대에서 핫한 ‘인생네컷’을 따라한 무무씨의 갓셍네컷 등 웃음을 자아내는 상품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갓생은 오늘 당장의 ‘나’에 대해 집중한다. 먼 미래의 희망을 막연히 기대한다기보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며 ‘오늘의 행복’에 기댄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사소하고 가벼운 목표여도 갓생을 실천하는 이들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이 다짐과 원동력이 배로 커질 수 있도록, 계속 되는 여러 좌절에도 나아가려는 MZ세대 친구들에게 함께 하잔 응원을 보내고 싶다.

2022-06-28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과 미술가의 사회적 신분

서양미술사를 지역적으로 구분할 때는 대개 알프스 산맥이 기준이 되어 이탈리아를 알프스 남쪽 독일이나 프랑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옛 이름 플랑드르 지역을 알프스 이북이라고 부른다. 종종 미술사 관련 책이나 글을 읽다보면 르네상스 미술을 설명하는 중에 북유럽이라는 명칭이 언급되곤 한다. 이때의 북유럽은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아니라 알프스 북쪽에 위치한 서유럽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중세의 뒤를 잇는 르네상스는 15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중에서 르네상스의 발상지는 꽃의 도시 피렌체이다. 수많은 천재들이 이탈리아에서 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전개해 가고 있을 때 알프스 너머 북쪽 지역의 미술을 지배했던 것은 중세적 전통이었다. 알프스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기 남쪽과 북쪽 지역의 미술가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알프스 북쪽 지역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보다 대략 100년 늦은 1천500년 전후이다.알프스 이북에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전파한 인물은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이다. 회화는 물론이고 특히 탁월한 판화로 명성이 자자했던 뒤러는 1494∼1495년과 1505∼1507년 두 번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미술의 중심 도시들을 두루 다니며 현지 거장들과 친분을 쌓으며 르네상스 미술을 깊이 받아들였다. 이탈리아로의 먼 길을 떠나면서 뒤러는 그가 머물렀던 마을의 모습이나 실제 풍경을 수채화에 담기도 했다. 상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본 풍경을 주제로 한 서양미술사 최초의 작품들로 풍경화라는 장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려져 미술사적 가치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그렇다면 뒤러가 두 번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에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가 경험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에게 익숙했던 그림들과 이탈리아 화가들의 그림은 어떻게 달랐을까?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큰 차이는 자연과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눈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한 후 작품을 제작했다. 설득력 있는 공간을 묘사하기 위해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을 발명했고 정확한 인체 묘사를 위해 근육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해부학을 통해 몸의 구조를 밝혔다.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알프스 너머에서 온 뒤러에게 경이로운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그런데 뒤러가 가장 놀랍게 여긴 것은 다른 것이었다. 격이 다른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사회적 신분이다.중세동안 미술가들은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지만 대부분 이름 없이 사라졌다. 이름으로 기억될 만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미술가의 행위는 창작이 아니라 육체노동으로 여겨졌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위대한 발견 근저에는 기필코 자신들이 남긴 작품이 보잘 것 없는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학식과 정신작용을 통한 창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고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여전히 중세를 살았던 뒤러에게 귀족들에게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즐기며 지체 높은 학자들과 서슴없이 지적 대화를 주고받는 이탈리아의 분위기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에 소장된 뒤러의 초상화는 뒤러가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후에 그려진 것이다. 어두운 배경 위로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뒤러의 모습이 나타난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은 자존감으로 충만해 있다. 흡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아나 그밖에 어떤 거장들도 뒤러에 앞서 감히 이처럼 자신에 차 있는 자화상을 남긴 적이 없다. 뒤러의 자화상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의 자화상은 한 미술가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념비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미술가의 요청으로 읽혀질 수 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6-27

올림퍼스의 노예들 <Ⅶ>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최 회장의 아들이 오십 대의 중년이라 해도 할 이야기는 해야 하는 거니까. 안나의 오빠로 이 자리에 왔으니까. 노마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필립의 얼굴을 보았다. 노마가 말을 하려는 순간 필립이 손을 들었다. 카페의 종업원을 불렀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말씀하시지요.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노마는 필립의 깍듯한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다. 게다가 먼저 말을 꺼낼 기회를 빼앗긴 참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예. 얼마 전 늦은 밤에 안나가 전화를 해서는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다 끊었습니다. 다음 날 이유를 캐물으니 아드님께서 안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셨다고. 회장님이 아드님께 한 이야기라 하던데.-그랬군요. 안나 씨가 그 이야기를 오빠에게 했군요.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그럴 만하지요. 하지만 그런 뜻으로 전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님이 그 말을 전하라 하신 것도 아니고.필립은 종업원이 가져다 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왼팔을 팔걸이에 올려둔 채 몸을 뒤로 기댔고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으로는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습관인 듯 했다. 노마가 말을 할 때는 가만히 있던 손이 필립이 이야기할 때면 어느새 배에 가 있었다.-이 카페는 다즐링이 제일 맛있습니다. 다음에는 이것도 한 번 드셔보십시오. 어쨌거나 안나 씨 마음이 상했다면 유감입니다. 생각하시는 그런 뜻은 아니었으니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막말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그런 뜻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우리 집,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님의 뜻이 그러하니 안나 씨도 마음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준비하시라 이런 이야기였지요. 아버지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해 놓는 것이 좋다. 뭐 이런 충고의 뜻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버지는 제가 안나 씨에게 그 이야기를 한 것을 모르십니다.-아니요. 두루뭉술하게 말 돌리지 마시고 정확히 회장님이 뭐라고 하신 겁니까?-정확하게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듣고 싶으십니까? 흠, 그러지요. 하지만 안나 씨에게 그대로 전하지는 마십시오. 좋지 않을 겁니다. 안나 씨에게 제가 말한 것은 수위를 조절한 것입니다. 들은 그대로 전하면 충격이 클 것 같아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이이기는 하지만 내가 가진 것, 회사 그 어느 것도 손을 댈 수 없도록 하겠다.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말거라. 안나는 그저 노리개일 뿐이다. 놀다 보니 아이가 생긴 것이고. 내게 저 모자는 딱 그만큼이다.필립은 노마가 글자 한 자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이야기했다.-노리개라니, 그게 무슨 말? 이런 씨, 그게 말이, 말이.노마가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다 옆에 있던 쿠션을 들어 빈 의자 위로 내동댕이쳤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던 손님과 주문을 받던 카페 직원이 멈칫 했다. 잠시 노마와 필립을 보다 다시 주문을 했고 주문을 받았다.-아니,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회장님, 아니 아버님이.필립은 노마의 두 팔을 잡아 당겨 앉혔고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들고 와 노마 옆에 놓았다.-그러니까요. 회장님 말입니다. 회장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한테. 아드님께 할 말은 아니지만 본부인도 없는 판에 옛날 말로 안나가 첩도 아니고. 회장님 집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안나도 귀하게 자란 아이입니다. 그리고 안나 인생에 대해서는 한 치의 고려도 없으신 것 아닙니까?노마는 필립의 콧등이 아주 잠깐 찌푸려지는 것을 보았다.-그러게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지만 너무 한 거죠. 이것 참. 그래서 안나 씨에게 넌지시 알려드린 겁니다. 인간적으로. 챙겨 놓을 것이 있으면 챙겨 놓으시라고.필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노마는 화를 내면서도 필립이 고마웠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솔직하고 진심 어린, 그리고 보기 드문 공정한 사람이라 확신했다.-우리 아버지는, 아버지는 저에게도 그런 분이십니다. 회장 아들이니 제가 사장 정도 될 것 같지요? 아닙니다. 이제 전무입니다. 전무가 어디냐 할 수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공채 사원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으면 제 나이 정도에 될 수 있는 것이 전무입니다. 그래도 회장 아들인데, 나이 오십 둘에 전무가 뭡니까? 전무가. 솔직히 말해서 안나 씨 뱃속의 아이를, 제가 저 애는 내 동생이다 하고 마음먹고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뭔가를 약속하고 싶어도 아버지가 안 된다 하시면 못 하는 거지요. 저도 많이 안타깝습니다.노마는 필립이 불쌍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누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건지.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 건지.필립이 노마에게 술 한 잔 하지 않겠냐 물었다. 노마는 거절하지 않았다. 둘은 자리를 옮겼다.술잔을 앞에 두고 필립의 신세 한탄이 계속 이어졌다. 필립은 오른 손으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어린 시절부터 형과 어머니가 죽은 이야기까지, 그리고 늙지만 죽지 않는 아버지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노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아이고, 정말요? 따위의 추임새를 넣으며 필립의 말을 들었다.-그래도 창업주 일가니 주식이라도 있을 것 같지요? 필요한 만큼, 딱 아버지가 필요한 만큼의 주식만 줍디다. 우호 지분 정도. 따라갈 수는 있으나 거스르지 못할 딱 그만큼./김강 소설가

2022-06-27

티웨이항공,‘대구 하늘길’ 활짝 열길 기대

대구시가 7월 5일 오전 11시 대구공항에서 대표적인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 측과 본사 대구이전과 관련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티웨이 항공 본사가 서울서 대구로 내려오기로 합의를 봤다. 대구통합신공항을 거점으로 여객, 물류를 전 세계로 운송하는 대한민국 핵심 항공사로 도약하는데 대구시가 행정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항공사 유치는 대구시의 현안이었는데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국비 건설을 주요공약으로 내건 홍준표 당선인이 이번에 성과를 낸 것이다. 홍 당선인은 지난 21일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인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인적·물적 수송이 원활한 하늘길 없이는 도시는 망한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항공산업을 중요시 하고 있다. 2014년 3월 대구에 첫 취항한 티웨이항공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이전인 2019년까지 대구공항 전체 국제노선 23개 중 16개 노선을 운항했다. 협약에는 통합신공항 노선 개발에 양측이 협조한다는 것과 대구시의 지원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티웨이항공 본사가 대구로 이전하면 일자리 창출, 세수 확보, 공항 활성화 등에 큰 도움이 된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1월 내놓은 티웨이항공 대구 이전 경제효과를 보면, 2019년 매출을 기준으로 생산유발 8천290억 원, 부가가치 유발 1천945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와함께 33억 원 이상의 조세유발 효과와 830여 명의 신규 고용 창출도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대구공항과는 친숙한 티웨이항공 본사가 대구에 온다는 것은 대구로서는 어떤 기업 유치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대구의 공항도시 위상을 높이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티웨이항공은 현재 대구공항 취항 국제노선 2개 모두를 운항하고 있다. 대구~베트남 다낭 노선 운항을 다시 시작했으며 최근 대구∼방콕 정기노선 운항도 재개했다. 티웨이항공 본사유치는 통합신공항 건설에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티웨이항공이 코로나 장기화로 침체됐던 대구의 하늘길을 활짝 열어주길 기대한다.

2022-06-27

고물가시대, 국회가 나서 서민경제 도와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 곡물가 급등 등 대부분이 해외발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어 고물가는 상당기간 진행될 것 같다”는 우려도 표했다. 또 그는 “전기료 인상도 불가피하다”고 말하며 지금의 우리경제가 복합적 경제위기 상황임을 인정했다.지난달 우리경제는 5.4%의 물가상승률을 보였다. 물가상승률이 6%대까지 올라간다면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11월(6.8%)이후 23년만에 처음 겪는 일이 된다. 실제로 시중에 나가보면 오르는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서민생활과 직결된 밥상물가가 많이 올랐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4인가구의 식료품과 식대를 합친 식비는 월평균 106만여원으로 1년 전보다 9.7%가 증가했다. 먹거리의 주원료인 농산물 가격이 상승을 주도했다.밥상물가의 상승은 식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저소득 서민층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대폭 올린 상황에서 밥상 물가까지 올랐으니 서민층이 받을 고통은 불을 보듯 뻔하다.경제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이런 상황이 오래갈 것 같다고 하니 서민층으로선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서민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경제문제는 정부 혼자 나선다고 풀릴 일이 아니다. 여야가 심각한 경제난 돌파에 머리를 맞대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그러나 우리 국회는 안타깝게도 한달 가량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무책임의 극치가 아닌가. 국회가 개점휴업인 까닭에 서민들의 고통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물가 폭등으로 서민의 삶도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다.정치권은 민생국회를 즉시 가동시켜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 지금은 정쟁보다는 국민의 삶을 먼저 살피고 돌봐야 할 때다. 우리경제는 고물가뿐 아니라 고금리, 고환율 등 3고의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 경제계,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더 큰 위기를 넘길 수 있다.

2022-06-27

낙뢰사고 예방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낙뢰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낙뢰는 뇌운(雷雲)과 지표면 사이에서 벼락이 발생해 지표면으로 떨어지는 현상, 또는 벼락을 뜻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만 12만4천447회 낙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보다 51% 정도 증가한 수준이다. 시기별로는 6∼8월에 전체 낙뢰의 71.5%가 집중됐다. 낙뢰가 한번 떨어질 때의 순간 전압은 무려 10억 볼트 이상이며, 최소 5만 암페어의 전류가 흐른다. 벼락을 맞고 사망할 확률은 약 10% 정도로 생각만큼 사망률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벼락을 맞게 되면 나뭇가지 모양의 흉터가 남고, 후유증으로 신경계 이상이나 기억 상실, 성격 변화 등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최근 발표한 ‘대국민 낙뢰 위험 예방 행동요령’을 보면 낙뢰가 예상되거나 발생할 경우에는 가급적 외출을 피하고, 야외활동 중인 경우에는 높고 뾰족한 구조물(나무, 가로등, 전봇대 등)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우산, 낚싯대, 골프채 등을 머리 위로 드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부득이하게 이동해야 한다면, 제방이나 목초지와 같은 지역을 벗어나 한쪽 발만 땅에 접촉하면서 짧은 보폭으로 걷거나 뛰어간다. 운전 중이라면 안전한 곳에 자동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리지 말아야 한다. 산에서 대피할 때는 절벽에서 튀어나온 바위 아래 동굴이나 암벽 아랫부분이 비교적 안전하다. 야외 캠핑 시 텐트와 캠핑카 사이에 금속선을 설치하지 말아야 하며, 낙뢰가 칠 경우에는 금속 재질의 텐트 지지대나 캠핑카로부터 최소 1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여름철 안전사고는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27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이 검찰 편중 인사를 지적하자 “전 정권은 민변 출신들로 아주 도배를 했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민변 도배로 실패한 전 정권처럼 검찰 도배로 현 정권도 같은 길을 가려는 것인가?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가 “저들이 저급하게 나가더라도 우리는 품격을 지키자”고 했던 것처럼, 새 정부는 지난 정부의 잘못을 핑계 삼지 말고 정도정치(正道政治)를 해야 한다.“인사가 만사”라는 금언은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통치의 요체다.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널리 인재를 구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달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과 상식을 역설한 윤 대통령은 더욱 더 합리적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는 ‘아·가·패’(아는 사람·가까운 사람·패밀리)코드라고 비판받고 있으니 연고정치(緣故政治)에 대한 우려가 크다.대통령실의 인사기획관을 비롯하여 인사·공직기강·법률·총무비서관 및 부속실장, 그리고 내각의 법무부장관과 차관, 법제처장, 심지어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정원 기조실장, 금융감독원장도 모두 검찰 출신이다. 게다가 현 정부의 인사시스템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이 특정 인사를 추천하고, 법무장관이 지휘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해당 인사를 검증하는 구조다. ‘검사동일체’원칙에 익숙한 예스맨(yes man)들의 검찰 연고주의가 심히 우려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안보실장은 초등동기, 주중대사는 고교동기, 행안부장관과 경호처장은 고교동문, 서울대동문 장관들의 절반은 법대동문이라는 학연(學緣)이 깊다.이러한 정실인사는 실정(失政)의 원천이다. 대통령의 성공은 용인(用人)에 달려있으며, 용인의 기본은 개방적 인사인데 연고주의는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육부 및 복지부장관 후보자가 이미 낙마했고 새로 임명된 두 후보자 역시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는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하여 국정실패로 이어진다.상명하복(上命下服)의 검찰문화에 익숙한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할 때 권력은 남용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진영논리에 빠진 폐쇄적 인사는 새 정부의 시대적 소명인 협치와 통합에 결정적 장애요인이다. 대통령의 연고인사가 우선은 편하고 쉬울지는 몰라도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조국에 대한 잘못된 인사가 정권교체의 단초를 제공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새 정부의 성공 여부도 대통령의 인사에 달려 있다. 인사에 성공하려면 열린 마음(open mind)으로 이념·지역·성별·연령·학력에 관계없이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반경(反經)의 저자 조유(趙8564)는 “제왕이 될 자는 스승 같은 사람을 신하로 삼고, 폭군이 될 자는 굽신 거릴 자를 신하로 삼는다.”고 했으며, 유비는 삼고초려(三顧草廬)끝에 천재전략가 제갈량(諸葛亮)을 얻었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어떤 인재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2022-06-27

기업과 고객의 상생 솔루션 마케팅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1975년 미국 컨설팅 업계에서 처음 소개된 솔루션 마케팅은 1990년대 경영학 이론과 접목되면서 2000년대부터 글로벌 기업 위주로 확산 추세에 있다. 지금까지 기술은 연구개발부서에서 수행하고 생산부서는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마케팅 부서는 영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다양화되고 있는 고객의 니즈와 치열한 시장에서는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체수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After Service와 Before Service가 결합된 고객지향적 Total Service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이다. 업(嶪)의 개념이 만드는 기업이 모든 걸 결정하는 데서 고객이 주체가 되어 고객감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솔루션 마케팅의 개념은 마케팅과 기술의 결합 또는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솔루션은 고객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발굴하여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 가치를 혁신하고 고객이 쉽게 활용하게 하는 운영 체계 전반을 얘기한다. 철강산업인 포스코를 예로 들면, 하드웨어인 강재와 소프트웨어인 이용 기술을 동시에 제공하는 모델로 기술연구원은 시장지향적 제품을 개발하고 제철소는 고급재를 안정생산하여 마케팅의 고급 재 판매 확대를 지원하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기업의 역할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주요 거점별로 ‘기술지원 센터’를 구축하여 고객의 니즈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객에게 기술을 제공하여 판매된 소재의 불량을 예방하고 판매자와 고객이 상생 공존하는 더욱 진화된 방법인 것이다.솔루션 마케팅은 제품을 제공하면서 고객의 기대 및 이상적 가치를 파악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객과 함께 솔루션을 개발하고 제공하여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첫째, 시장 분석으로 보유한 솔루션 역량을 점검하여 정확하게 평가하고 둘째, 핵심 고객사를 대상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셋째, 운영 프로세스와 판매 프로세스를 점검하여 시장 채널과 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마지막으로 고객 관리 관계 강화를 위한 기술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고객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필자가 솔루션 마케팅을 실제 접목했던 중국 톈진에 위치한 자동차 휠 제조회사를 소개하면, 한국의 P사가 휠 소재인 철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는데 2013년부터 중국 로컬재 사용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필자가 톈진 공장을 방문하여 문제를 진단하였더니 도장 실시 전 휠의 진원도 검사공정의 문제가 심각하였다.진단 결과를 경영층에 설명하고 생산성 향상과 기술력 향상 과제를 고객과 공동으로 수행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여 Lock-in에 성공하였던 사례이다. 고객이 없으면 기업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이며, 사양 산업은 없어도 사양 기업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2-06-27

시간의 마디와 매듭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미끈유월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미끄러지듯이 흘러 곧 하반기로 접어든다. 한해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대선과 지선의 큰 너울을 지나고 나니 벌써 여름이고, 태양도 북회귀선을 지나 남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낮의 길이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시간은 영속적으로 흐르는 나그네(百代之過客)라 하지만, 천체의 운행과 자연만물의 현상에 근거해 연월일시와 춘하추동 따위의 구분과 마디를 정해 놓고 있다.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하고 균등한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예컨대 똑같은 시간이라도 어린아이에게는 더디게만 느껴지고 노인에게는 너무 빠르게만 여겨진다거나, 힘겨운 시간은 지루하고 느리게 가는 것만 같고 기쁘고 좋은 때는 금세 지나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이른바 ‘시간의 상대성’같은 거창한 이론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제각기 시간을 짧은 듯한데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반면, 많은 시간임에도 하릴없이 허비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시간은 절대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활용의 방법이나 가꾸는 정도에 따른 산물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 사실이다.시간이나 어떤 일에 마디나 매듭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식물의 줄기에서 가지나 잎이 나는 부분을 일컫는 마디는, 생장이나 분화가 진행되는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의 중간중간마다 생겨난 단단한 마디가 있어서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와 매듭이 있는 삶 또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마디는 시간을 지탱해주고 삶을 확장시켜주는 시련이자 지혜의 응축이고, 매듭은 진일보를 위한 정리와 각오인 셈이다. 즉, 식물이나 사람은 마디와 매듭을 통해 튼실하게 진화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짧게는 하루, 한달의 계획이나 마감이 중요하고 길게는 분기나 반기, 일년의 목표나 실적을 산출하고 집계하는 것도 일상이나 사회생활에도 마디와 매듭이 두루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5년이나 10, 30년의 중장기적인 청사진이나 자취를 반추하고 정리하는 것은 미래의 포석을 위한 세월의 마디가 그만큼 중차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마디가 약해지면 늘어지거나 부러지기 쉽고, 하는 일들에 마무리가 없다면 성패와 득실을 알 수 없거나 곤고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관과 중심을 잡고 끊고 맺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듣곤 한다.마디와 매듭은 멈춤이 아니라 더욱 강건해지고 유연해지기 위해 안으로 집중하여 자신의 밀도를 높여 나가는 힘이다. 학업이나 취업, 결혼 등 우리는 삶의 수많은 마디를 거치면서 매듭을 짓고 또 새로운 마디로 나아가게 된다. 제대로 마디가 갖춰지고 매듭 또한 잘돼야 삶과 일도 온전해지고 가치로워 질 것이다.

2022-06-27

정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은 없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6·25전쟁 제72주년이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켰다.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 건 눈부신 경제 발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최근에는 우리와 싸우거나, 싸운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있다. 피아가 뒤섞인 전쟁 통에 비무장 민간인으로 이리저리 동원돼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밝혀주려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외면해도 될 만큼 하찮은 생명은 없다.전쟁의 폐허에서, 보릿고개를 넘어 경제 개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어떤 이념이나 국가주의도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화운동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기에 더욱 그렇다.사건의 진실은 조사해 밝히면 된다. 그렇지만 생각의 기본 틀은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이게 왜 현안이냐.” 우 위원장의 발언은 개발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던 논리와 너무 닮았다.왜 민주화를 했나.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생을 내세워 입을 막을 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화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해명해야 한다.우 위원장은 또 “해당 공무원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월북(越北)’을 ‘삼팔선 또는 휴전선의 북쪽으로 넘어감’이라고 풀이해놨다. 말 그대로 이대준 씨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됐으니 ‘월북’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월북’보다 본인의 ‘의지’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우리 사회에서 ‘월북’은 북한으로의 귀순을 의미한다. 전쟁 상태인 적국에 투항한 것이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6·25전쟁 시절 월북자 가족은 연좌제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고 해도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눈으로 본 우 위원장이 할 말은 아니다.월북이 첩보 판단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더구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인 월북은 유죄 판결보다 더한 ‘낙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간첩 사건을 재심하면서 고문이나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를 배제하면서 뒤집었다. 적어도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는 문제라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정리하는 게 옳다. 편의에 따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좋을 만큼 하찮은 인권은 없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유족에게 편지를 보내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행정법원은 관련 서류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관련 서류를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해 15년간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인해버렸다.고 이대준 씨는 도박 빚이 부풀려지고,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인격파탄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가족은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이 없고, 문서도 감췄다. 북한은 범죄자가 탈북해도 송환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대준 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북한 측이 이 씨를 발견한 것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6시간여 뒤 총격하고, 소각했다. 그 사이에 정부의 조치는 알려진 게 없다. 국민이 위험한 처지인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피해자만 비난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적어도 잘못이 있다면 사후에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본사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26

갈 길 먼 대한민국 ESG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해 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 총회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다. 이후 2022년을 기점으로 기업들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도입 트렌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SG 이해 당사자들이 한 차원 높아진 눈높이로 기업들에 ESG 경영을 요구할 전망이고, 기업들의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들은 이제 기존 ESG 1.0 환경에서 진화된 ESG 2.0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ESG 2.0 시대의 주요 변화를 ESG 1.0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ESG 1.0은 투자 자본이 주도한다. 그러나 ESG 2.0 시대는 기업(경영)이 주도권을 갖는다. 기업은 방어와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제적이고 전방위적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둘째, ESG 1.0 시대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위기라고 인식했으나, ESG 2.0에서는 기회라고 인식해야 한다.셋째, ESG 1.0 시대에는 E(환경)에 제한적으로 편중하지만, ESG 2.0 시대에는 ESG 중 S(사회), G(지배구조)의 중요성도 커지고 E는 대폭 확대된다.넷째, ESG 1.0 시대에는 탄소배출권 Scope 1·2 단계로 관리하면 되지만, ESG 2.0 시대에는 Scope 1·2·3단계 모두를 관리해야 한다.다섯째. ESG 1.0 시대에는 소극적 공시를 해도 됐으나, ESG 2.0 시대에는 체계적 공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여섯째, ESG 1.0 시대에는 형식적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했으나, ESG 2.0 시대에는 실질적인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일곱째, ESG 1.0 시대에는 ESG 예산을 비용으로 인식했으나, ESG 2.0 시대에는 ESG 예산을 투자로 인식한다.여덟째, ESG 1.0 시대에는 경영진의 ESG 이해도가 낮았지만, ESG 2.0 시대에는 경영진이 ESG를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해야 한다.아홉째, ESG 1.0 시대에는 CSR 부서가 ESG 부서로 전환하는 등 부서 신설을 했지만, ESG 2.0 시대에는 전사적 ESG 체제로 나아간다.열째, ESG 1.0 시대에는 ESG 워싱, ESG 쇼잉이 발생하지만, ESG 2.0시대에는 가짜 ESG인 ESG 워싱, ESG 쇼잉을 지양하고 근절해야 한다.기업은 왜 ESG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까? 세계 10대 연기금의 투자 방향에서 ESG는 필수가 되었다. ESG를 잘하는 기업은 투자금 유치에 유리하고 ESG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투자를 받더라도 회사채 금리가 높아진다. 기업의 생존과 ESG 경영이 직결되어 있다. 기업들이 착해서 ESG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고 기업의 비즈니스 방향에서 지속가능성이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현재 ESG 경영 90% 이상이 E(환경)에 쏠려있다. E는 돈(탄소국경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탄소국경세는 t당 30유로(약 36달러)다. 그만큼 물건 팔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탄소중립은 이제 비즈니스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다. 환경 즉 탄소중립은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자신을 위해 해야 한다.현대차는 RE100을 2050년에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애플, 구글 등 대표적인 글로벌기업 30곳은 벌써 RE100을 달성했으며 95% 달성한 기업이 45곳이다.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목표는 2028년으로 현대차에 23년 앞선다.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 이하로 떨어져 투자자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E100 선언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투자자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제조공장에서 230만 kWh의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대부분 사업장이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RE100을 달성했거나 2028년까지 달성할 계획인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2050년에 10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선언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무리 기업 실적이 좋고 전망이 밝아도 주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RE100을 선언한 SK이노베이션은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 투자를 함으로써 국제 사회로부터 ‘ESG 워싱’을 의심받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해 국제사회로부터 ‘게으른 기업’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 SK, 현대차의 부끄러운 ESG 경영 성적표다.ESG 이행여부가 기업의 미래이고 기업의 가치로 전환된 것을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은 아직 ESG 경영 1.0 문턱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ESG 경영에 대한 기업들의 대대적인 사고전환과 혁신이 요구된다.

2022-06-26

포항 브랜딩하는 포스코 취업 아카데미

정태진포스코 인재창조원 혁신기술교육센터장 요즘 포스코 인재창조원 포항캠퍼스에는 다소 앳된 얼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청년 교육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이들은 포스코 청년 취창업 교육 프로그램인 ‘포유드림(POSCO Youth Dream)’ 교육 수강생들로,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6개월 이내 졸업 예정인 취준생들이다.젊은 이방인들한테 포스코 인재창조원의 문호를 개방한 것은 기업시민 포스코의 경영이념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데 있어 인재창조원이 보유한 교육·훈련 역량을 십분 활용하기 위함이다. 타깃은 취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한테 기업 관점에서 특화된 진로설계와 경쟁력을 키워주는 일!어느덧 4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포유드림 프로그램은 우리 지역사회는 물론 수도권 등 전국적으로도 제법 알려져 있다.대표적인 것이 연간 1천명 이상의 취준생 교육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인 ‘포스코 취업 아카데미’인데, 단순히 진로선택과 취업전략, 자기소개서 작성 및 면접 스킬을 키워주는 것을 넘어 포스코만의 특화된 커리큘럼이 있으니, 2주간 수행하는 ‘기업실무형 디자인씽킹 과제’ 수행이 바로 그것이다.‘디자인 씽킹’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고객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근본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문제해결 방법론으로, 국내외 유수 기업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포스코 인재창조원에서는 포항시 현안과제를 테마로 디자인 씽킹 과제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예를 들어, 죽도시장 외부 관광객 유입 방안이라든가, 철길숲 스마트화 같은 포항시 뉴딜 과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최근에는 해도동 7080 특화거리 조성 방안, 오천읍 문덕 헬로 부대거리 특화 방안 등 침체된 지역 상권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이러한 지역사회 현안 과제는 포항시 해당 부서와 사전 협의하여 선정한다.2주간의 과제수행 기간에 포스코 취업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문제를 진단한 뒤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신선한 시각에서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구조화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진의 문제해결 로드맵 교육과 코칭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과제수행 결과는 포항시 및 해당 지역 상인회 관계자들을 모시고 발표하여 작게나마 정책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지난주 문덕동 헬로 부대거리 특화 방안에 대한 과제수행 결과를 발표했는데, 참석자들이 가슴뿌듯한 격려를 해줬다.“젊은 교육생들의 아이디어가 좋아 바로 실행해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외부의 비싼 전문가한테 받은 컨설팅보다 100% 더 공감되는 아이디어입니다”라는 칭찬을 받았다.그리고 한 상인회 관계자는 “시·도의원을 초청하여 자리를 만들테니, 한 번 더 발표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포스코 인재창조원의 대답은 당연히 “예, 그렇게하겠습니다”이다.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포항 시민들한테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포항시의 현안과제를 다루기로 작정한 것이었으니 말이다.한 가지, 이렇게 포스코 취업 아카데미의 과제수행은 다양한 젊은 감각과 아이디어를 포항시 현안에 투사하여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숨은 효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지역사회 과제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포항시를 홍보하고, 브랜딩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죽도시장, 철길숲, 영일대 해수욕장, 환호동, 형산강변, 해도동, 문덕동, 구룡포 등 포항시 구석구석을 발로 누빈 우리 교육생들은 교육종료 후에도 이곳을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고, 분명 또다시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즉, 포스코 인재창조원에서 교육을 받는 취업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포항의 홍보대사이자, 또 머지않아 회귀할 포항의 관광자원이 된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실제로, 교육을 마치고 취업에 성공한 많은 교육생들이 다시금 포항을 찾아와 여행을 하며 인재창조원 교수진에 연락을 하는 사례가 자주 있다.포스코 취업 아카데미의 시작은 청년들의 실질적인 취업 역량을 키워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게 원래 목적이었으되, 지역사회 과제수행을 결합하여 포항시 현안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태는 아이디어 뱅크 역할, 나아가 포항시 브랜딩과 미래 관광자원을 육성하는 역할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니, 더 알차게 포항시민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공명하도록 해야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2022-06-26

민선8기 출범 앞두고… “군민이 행복한 영양 만들 것”

오도창 영양군수 민선8기 출범을 앞두고 영양군민들께 고합니다!!~먼저 민선 7기 4년의 시간동안 한결같은 믿음과 신뢰, 그리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군민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난 시간들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군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소통하고 현장을 누비며 열심히 달려 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군민들과의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온 시간이기도 하다.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영양군수에 다시 한 번 도전해 선거 개표결과 81.5%라는 영양군수 선거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이며, 경북 전체 최다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렇게 군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준 것은 영양의 발전을 위한 비전을 반드시 실천하라는 군민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민선 8기에서는 행정의 폭은 한층 더 넓히고 깊이도 내실있게 다지면서 새로운 목표를 삼고 나아갈 것이다. 민선 7기 4년 동안 쌓아온 토대 위에 행복 영양을 만들기 위한 시책들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 군민을 더 편하게, 더 잘 살게,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을 약속한다.민선 8기에는 영양발전 프로젝트 5·1·6 비전과 10대 분야 85개 공약을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먼저 영양발전 프로젝트 5·1·6 비전은 예산 5천억원, 전국 고추생산 1위, 농가소득 6천만원을 달성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해 10월 전국 89곳의 인구감소지역 발표로 10년간 매년 1조원을 지원하는 인구소멸대응기금이 신설됐다. 이에 우리 영양군은 차별화된 시책과 맞춤형 현안을 발굴하고 국·도비 확보를 통해 예산 5천억원 시대를 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또 홍고추 출하장려금을 기존 200원에서 300원으로 인상해 전국 최고가격 수매를 통한 안정적인 농가소득 보장으로 전국 고추생산 1위를 달성하겠다. 특히 국내 최초로 엽채류 특구 지정과 단지를 조성하고 간이집하장 설치와 노지 배추 재해보험 대상 추가, 토마토 스마트 재배단지 조성, 산나물 재배포지 지원, 발효식품 공장건립 등 새롭고 다양한 농업정책 육성으로 농가소득 6천만원을 달성해 경쟁력 있는 부자농촌 영양을 만들 것을 약속한다.그리고 농업, 교통, 지역경제, 정주여건, 공공기관 유치, 주민복지 등 10대 분야 85개의 공약으로 영양의 미래를 확 바꿀 계획을 세웠다. 홍고추 생산장려금 인상, 우량농지 보전, 남부권 일자리지원센터 건립 등 농업분야 지원으로 주민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남북 9축 고속도로 제3차 도로관리계획 반영, 31번 국도 영양진입구간 터널화 추진 등의 교통 인프라 구축으로 편리한 교통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지급,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추진 및 공영주차장 건설과 국개뜰 주거단지 기반 조성, 새뜰마을사업 확대 추진으로 골목상권을 살리며, 군민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더욱 가꿀 수 있도록 하며, 또한 국립 영양자작나무 숲체원과 국유림관리사무소 유치, 농산물품질관리원 영양사무소 승격, 격리전전용 교정시설 유치,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 교육관 건립까지 공공기관 유치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겠다.거기에다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전 군민 건강검진비 30만원 지원, 태양광발전, LPG 배관망 확충, 영양공공도서관 건립 등 에너지, 의료, 교육분야의 혜택을 더욱 늘려 살기 좋은 도시 영양의 모습으로 탈바꿈 시키도록 하겠다.민선 7기의 성과들이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기이다.만약 부족한 점이 있었더라도 그 점을 토대로 정책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들은 앞으로 4년의 시간동안 채워 보완하여 군민들에게 행복을 주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85개의 공약들이 반드시 지켜질 수 있도록 용기 있게 도전하고 끈기 있게 실천할 것임을 약속한다.

2022-06-26

신비한 우주 속으로

우주(宇宙)는, 중국 송나라 육상산(1139~1192)이란 사람이 공간을 ‘宇’라 하고 시간을 ‘宙’라 하면서, 이 두 글자를 합쳐 ‘우주(universe, space, cosmos)’라고 했다.백과사전 역시 우주를 ‘모든 물질과 복사(輻射)를 포함하는 공간과 시간의 전체’라고 이르면서 ‘우주라는 말은 시공(時空)을 뜻할 때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공간·시간을 포괄하고, 지구 밖의 공간을 지구를 둘러싼 원우주(遠宇宙)라고 한다’고 부연하고 있다.이를 보면 우리 동양인들은 우주를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포함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눈에 반짝이는 저 별빛은 수만 년, 아니 수십만 년을 달려온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사랑이나 종교를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분석적으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변색되듯이 어느덧 동심은 사라져버리고 가슴도 삭막해지게 마련이다.시인 윤동주님은 물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B612도 빛이 바래지고 말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 역시 글맛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85?~165?)는 처음으로 하늘의 별을 세어본 후 모두 6천개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웃기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약 2천억~4천억여 개, 우주 총 1천375억여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지구의 모래알 보다 4~5배 많은, 어쩌면 인간의 상상으로는 가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계산해보길 권한다.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태양이 달에 가려서 나타나는 일식이나,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하면서 나타나는 월식, 낮에 보이는 금성 등 일상에서 벗어난 천문현상이 나타나면 왕은 자신의 부덕함을 반성했고, 백성 역시 재난이나 우환에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했다.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고 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유학자 양촌 권근(1352~1409)은 ‘달걀의 흰자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우주 역시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으며, 하늘은 둥글고 끝없이 돈다’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혼천설(渾天), 즉 하늘은 둥글며 끝없는 일주운동(日周運動)을 이해했다.별도 하늘에 영원히 떠있지 않는다. 사람처럼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란 뜻이다. 우리 태양의 수명은 대략 100억년 정도라고 한다. 현재 태양이 약 50억년 정도 되었으니 앞으로 50억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은 이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른 모든 별도 태양처럼 태어나서 진화하다가 결국 소멸을 맞는다.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질량이다. 질량에 따라 별의 크기와 밝기,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별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구름이 모여 탄생되고 진화를 거듭하다가 대량의 기체를 우주 공간에 방출하면서 죽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방출된 기체는 다시 모여 다음 세대의 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처럼 별은 지난 과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네 동경과 꿈을 밝혔던 밤하늘에 별은 여전히 무수히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이 모두를 알려고 하기보다, 별을 보며 희망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용기와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별은 태양이 빛나는 낮에도 반짝이니까 말이다./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6-26

‘주택거래절벽’ 대구·포항, 조정지역 해제를

정부가 조만간 부동산 규제지역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대구와 포항지역 정치권이 국토교통부에 연일 대구·경북의 조정대상지역 지정해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해제하면 심각한 부동산 거래절벽 현상이 다소나마 해소돼 얼어붙은 주택시장에 반전이 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희룡 국토부장관을 만나 대구의 조정대상지역 해제 건의문을 전달했다. 포항출신 김병욱 의원도 이날 원 장관을 별도로 만나 포항 남구를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원 장관은 이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면서도 “일률적인 조정대상지역 해제는 여파를 고려할 때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와 포항 남구는 지난 2020년 말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지역경제가 동반침체되는 사태를 겪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6월 둘째 주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대구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 하락해 지난주와 동일한 낙폭을 기록했다. 이 기간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 하락폭은 세종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높다. 대구에서는 미분양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4월 대구시 미분양 물량은 6천827가구로 광역시 전체의 72%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4월(897가구)과 비교할 경우 미분양이 7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대구에 공급될 아파트가 2만 5천여 가구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분양 사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포항 남구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주요 지표들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3일 이달 말 쯤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규제지역의 단계적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와 포항 남구는 조정대상지역 해제 요건인 ‘3개월 연속 주택매매거래량이 전년동기보다 20% 이상 감소한 지역’에 해당되는 만큼 규제지역 해제에 꼭 포함시키길 바란다.

2022-06-26

대구치맥페스티벌

우정구 논설위원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대구치맥페스티벌이 다음달 6일부터 10일까지 대구 두류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치킨과 맥주관련 100여개 업체가 200여개의 부스를 차려놓고 치맥의 즐거움을 선사하게 되는 이 행사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이다.2013년 시작한 이 행사는 첫해에 27만명의 사람이 다녀갈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행사 개최 4년만에 축제를 찾은 인파가 100만명을 돌파했고. 해마다 100만명이 찾는 축제로 자리를 잡으면서 대구치맥페스티벌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축제가 됐다.올해도 추억의 치맥포차, 치맥 댄스파티, 아이스볼링, 치맥클럽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프로그램으로 고객을 맞을 준비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맥주와 치킨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조합이라 부른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화끈한 푸드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다. 치맥과 대구의 유별난 더위가 왜 조합이 잘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덥기로 소문난 대구에서 열리는 치맥페스티벌이 벌써부터 대한민국 젊은이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하고 있다.대구의 치킨산업은 역사와 정통성이 있다. 대구경북은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국민에게 다양한 육류 제공을 위해 계육산업이 발전했다. 1970∼80년대는 전국 규모의 부화장과 도계장이 5군데나 있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한 곳이다.이를 기반으로 대구에서는 한 마리 닭을 조각 튀김한 후 마늘간장 소스를 발라 내놓는 제품이 개발되고 이후 한국 최초의 양념치킨도 개발된다. 전국적 명성의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도 대구가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된다.대프리카에서 3년만에 개최되는 대구치킨페스티벌이 또한번 전국을 들끓게 할지 궁금하다. 축제의 성공을 기원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26

한 장의 사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은 예정된 궤도와 시간 순차성에 따라 수미일관하게 진행된다. 이를테면 이렇다. 언젠가 잠시 살았던 곳 인근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차를 수리하거나 엔진오일을 교체한다. 저녁마다 방문하는 방송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4년 넘게 산 적이 있다.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와보았던 대구에서 30년 넘도록 인연과 관계를 맺고서 살아간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런 인과율은 곳곳에서 작동한다.개체에서 발생하는 우연이 유기체에서 필연으로 작동한다는 명제가 있다. 소규모로 일어나는 우연이 필연으로 기능한다는 말이다. 작은 우연들의 누적이나 축적이 마침내 거대한 필연을 가져온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눈이 아주 밝은 사람은 작은 우연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대개는 건성으로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득 아, 하는 깨달음의 탄식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서두가 길었던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20년 전 사진과 만나게 되었다. 2002년 7월 12일 날짜가 사진 오른쪽 아래에 선명했다. 나를 포함한 열 사람이 사진에서 여러 가지 표정으로 사진 찍는 이를 응시하고 있다. 반 팔과 청바지 차림의 편안한 복장과 막걸리와 맥주가 놓인 식탁, 그 위에 자리한 마른안주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열린 창 너머로 전등의 밝은 빛이 유리창에 선명하게 비친다.세 사람의 교수와 일곱 사람의 대학원생이 한 장의 사진에 빼곡히 담겨 있다. 20년 전에 우리는 저런 얼굴과 옷차림과 마음가짐으로 여름밤을 보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진의 인물 가운데 몇몇은 소식 두절(杜絶)된 상태고, 몇몇은 여전히 추억을 곱씹는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어떻게 그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인생 행로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종착지점은 누구에게나 다른 의미와 색깔과 무게를 가진다. 각각의 지점에서 우리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 누군가와 맺은 깊고 질긴 인연은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잉태하기도 하고, 원증회고(怨憎會苦)를 결과하기도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주관자는 나나 그 혹은 그 여자나 그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정권 바깥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끝까지 머물 사람과 함께할 관계와 인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최후까지 이어진다. 아무리 좋았던 인연과 관계를 맺은 사람과도 어느 날 홀연히 단절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나의 의지도 그들의 결단도 아닌, 순전히 우연처럼 보이는 사사로운 사건과 갈등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하되 우리는 그런 상황과 인과율의 변화양상에서 구경꾼이나 방관자 이상의 자리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니 수수방관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일 수 있겠다.한 장의 사진에 들어있는 사람들과 맺은 인연과 여러 가지 사연을 떠올리면서 나의 지나간 20년을 반추한다.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환하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2022-06-26

50만 붕괴 일보직전 포항시, 위기의식 가져야

포항시의 인구 50만명이 붕괴되기 일보직전이다. 5월말 현재 인구수는 50만324명이다. 1995년 영일군과 통합이후 역대 가장 적다. 외국인 등록인구를 합쳐도 50만6천216명이다. 지금 상태로 가면 6월말에는 포항시의 내국인 인구는 50만명선 붕괴가 확실하다.포항시가 인구 50만명선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한 도시의 인구는 도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자 도시의 지속발전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자료다. 포항은 인구가 50만명 넘는 경북 유일의 제1 도시다. 50만명선 붕괴는 도시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이곳에 사는 도시민의 자부심에도 상처를 주게 된다.행정적으로 누리던 혜택도 줄어든다. 도시의 자치권과 자율권이 대폭 준다. 남구와 북구로 나뉘어 있는 구청이 없어지고 주택건설, 도시계획 등의 일부 권한이 경북도로 넘어간다.두 개이던 경찰서와 소방서가 하나로 통합되고 구청의 과장자리 14개도 없어진다. 포항시의 부단체장 직급도 2급에서 3급으로 낮아진다.50만명이 무너지면 2년간 유예기간을 주지만 한번 무너진 인구는 특별한 이유없이 회복되기 힘들다.포항시의 인구 문제는 더 이상 물러설 틈이 없다. 지역사회가 위기의식을 갖고 인구 증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면서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 포항시는 작년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을 펼쳤지만 47억이란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인구는 고작 443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의회로부터 “그 돈으로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전비용을 지원하는 단기적 처방으로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포항도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은 데드크로스 상태다. 인구늘리기 정책에 대한 획기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 대기업 유치와 같은 일자리 창출 노력과 더불어 정주여건을 개선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전국에서 육아키우기가 가장 좋은 도시로 탈바꿈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초비상 상태의 포항시 인구 문제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위기의식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2022-06-26

어떤 고기를 먹어야 할까

유영희 작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3대 영양소이다. 그중 단백질과 지방은 콩이나 옥수수, 올리브, 브로콜리 같은 식물성 식품에도 있지만, 특히 고기에 많다. 육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전 인류가 고기의 맛을 버리기도 쉽지 않고, 비타민 B1은 고기에만 있는 영양소라서 채식으로 보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채식을 2년간 하다가 중도 포기한 것도 영양 불균형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축산 고기에 거부감이 있어도, 고기를 안 먹기는 참 힘들다. 그러다 보니 축산 고기 말고 다른 방식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는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그러다 2020년 12월 어느 신문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싱가포르에서 세포증식 닭고기를 시중에 판매해도 된다는 승인이 났다는 것이다. 세포증식 고기는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고기를 말한다. 그래서 세포증식 고기는 실험실 고기라고도 하고 배양육이라고도 한다. 이후 기사를 보니, 21년 4월에는 배달 앱으로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세포증식 고기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교수 빌렘 반 엘런이다. 그는 1999년에 배양육에 관한 이론적 연구로 국제 특허를 획득하고 2002년에는 금붕어에서 유래한 근육 조직을 실험실의 페트리 접시에서 배양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7년에 빌 게이츠가 미국의 인공고기 스타트업인 ‘멤피스 미트’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빌렘 반 엘런이 세포증식 고기를 개발한 이유는 동물 학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기 소비량이 1980년 1인당 1년에 11.3kg이던 것이 2017년에는 55.89kg으로 늘었고, 2020년 유럽 사람들은 81kg, 북미 사람들은 123kg을 먹었다. 이렇게 우리가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은 공장식 대량 축산 시스템 덕분이다. 돼지들이 우리에 빽빽하게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사진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된다. 도축 과정도 모른 척하고 싶다.그런 데다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가축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에서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기 소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면 축산업이 환경을 오염시킬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포증식 고기는 동물 윤리도 지킬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항생제 오남용이나 바이러스 감염 우려도 없다.그러나 세포증식 고기를 선택하는 데 망설이는 사람도 많다. 세포를 증식하려면 동물의 혈청이 필요해서 동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값도 비싸며, 맛도 축산 고기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축산 고기는 맛도 좋고 값은 싼데, 동물 윤리 문제가 심각하고, 세포증식 고기는 동물 윤리는 해결되는데, 맛도 없고 비싸니,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어떤 고기를 먹을까’ 대신 ‘얼마나 먹으면 될까’로 질문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22-06-26

염치 아는 사람

강길수 수필가 바뀐 녹색 신호등에 따라 횡단보도를 중간쯤 걸어갈 때다. 느닷없이 좌회전 소형 승용차가 스르르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앞바퀴가 횡단보도의 흰 선을 한 걸음쯤 차지하며 멈췄다. 속도가 느려 놀라지는 않았지만, 황당했다.‘무슨 이런 차가 다 있어?’하고 속에서 부아가 나려는 순간, “죄송합니다!”라는 음성이 반쯤 열린 운전석 창을 달려 나와 마음을 감쌌다. 목소리는 염치를 아는 운전자의 진심을 실어와 정전기처럼 찌릿하게 가슴을 찔렀다. 마음에 일던 반감이 사르르 녹았다.조건반사같이 운전자에게 접은 우산 쥔 손을 흔들며, ‘괜찮아요!’하고 속말을 얹어 보냈다. 쳐다보니 운전자는 동년배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도 윤슬처럼 일었다.저분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무슨 연유로 신호등 바뀌는 시간을 잘못 헤아리고 교차로에 진입했을 터. 앞 차로에는 직진 차량이 달려오고, 돌아 지나가야 할 왼쪽 횡단보도 신호등엔 초록색 불이 켜져 사람이 걷고 있으니 말이다. 진퇴양난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즉시, 보행자에게 진정을 담은 사과를 한 침착한 분이다. 염치를 아는 멋진 분을 출근길에 보다니, 기쁜 날이다.즐겁게 사무실로 향하는데 생각의 나래가 저절로 펴졌다. 내게 같은 상황이 생겼다면 어찌하였을까. 아마도 멈추어 서서 당황하여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못 했을 터다. 정신 차린 후에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도 피했고 횡단보도 보행자와도 아무 일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란 생각만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거다.이어 마음의 소리가 너울져 왔다. ‘그래. 우리 서민들은 살아있는 거야. 아니,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거야! 오며 만난 운전자 같은 분, 곧 염치를 알아 잘못을 바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반면, ‘민주’라는 탈을 쓴 지도층이란 이리떼들이 염치도 모르고 설쳐 나라를 흔드는 꼴을 그간 민초들은 많이도 보아왔다. 두고 볼 수 없는 서민들이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시대의 선지자처럼 울부짖었다. 하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주류언론도, 관료도 침묵만 해온 우리 사회다.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릴 부정선거 의혹이 선거 결과 통계치와 물증으로 드러나도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는 애써 외면만 한다, 사회정의가 사라져가고, 나라의 빚이 산더미로 늘어나도, 국민은 참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수년간 답답한 세월만 보냈다. 민초들의 눈에 비친 정치판과 관료집단은 말로만 ‘국민’을 팔뿐, 자기나 제 편의 이익과 유, 불리만 따지는 소인배들로 득실거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인 정치인과 관료는 없는 것인가.천우신조로, 지난달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권은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을 위해, 무너져가는 사회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 저변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의심받는 선거 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과제라고 믿는다. 염치 있는 사회를 향한, ‘새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그립다.

2022-06-26

시의회 의장 선출, 순리대로 이뤄져야

김락현경북부 제9대 구미시의회가 시작도 하기전에 의장단 선거로 시끌시끌하다.지난 6.1지방선거 당시 ‘오직 시민들만 바라보고 일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번 9대부터 의장에게 부여된 절대 권한에만 눈이 멀어 시민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지난 18일 국민의힘 구미을 당원협의회는 제9대 전반기 의장후보로 4선의 강승수 당선자를 단수추천했다. 그러자 경쟁자였던 3선의 안주찬 당선자는 “당협위원장인 김영식 국회의원이 의장 후보 선출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당선인은 의장후보 선출을 위한 당협회의 도중 회의장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당선인 5명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장 선출은 구미시의원 본연의 책무임에도 이를 저버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줄서기를 하며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김영식 의원 규탄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에서는 의장후보를 단수추천할까.구미시의회는 대부분의 다른 지역 의회와 마찬가지로 ‘교황 선출 방식’으로 의장단을 뽑는다. 교황을 선출하듯 이전투구나 과열 경쟁 없이 정파를 초월해 신망받는 인물을 선출하자는 의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별도의 후보 등록 없이 전체 의원이 후보가 되기 때문에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12년 한 광역 의회 의장선거에서는 다수의 의원이 1표씩을 받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대다수의 의회에서 의장단 선거 전 의장단 후보를 단수추천하고 있다. 물론 이 방식이 옳다고 할 순 없다.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시의원들 스스로가 만들어 지켜온 방식이라면 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의장단을 선출해 왔던 구미시의회는 경쟁자들 중 ‘양보’를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소란은 없었다.지난 8대 후반기 의장단 선거 역시 ‘양보’의 미덕으로 별탈없이 마무리 된 점을 기억해야 한다.지금 시민들은 경기침체와 치솟는 물가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디 자기 욕심은 내려놓고 ‘시민들만 바라보고 일하겠다’던 그 약속이나마 잘 지키길 바란다./kimrh@kbmaeil.com

2022-06-23

부총리급 지역균형발전부 신설, 검토해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22일 여수에서 열린 민선 8기 시도지사 당선인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방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부총리급의 지역균형발전부를 신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이 지사가 주장한 지역균형발전부는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자치분권을 책임감 있게 실현시키기 위한 부총리급 자리를 말한다. 지난 1월 시민사회단체인 지방분권 전국회의가 대선후보들에게 촉구한 정부 조직에 분권균형발전부 설치를 촉구했던 것과 맥락이 같다. 그동안 지방자치와 균형발전과 관련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방분권위원회와 대통령 직속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운영됐으나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채택했음에도 공공기관의 2차 지방이전을 포함 모든 분야에서 지지부진했다.수도권 인구는 문 정부 들어 되레 늘었다. 역사상 최초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렸다(50.2%).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어느 하나도 수도권에 집중되지 않은 것이 없다. 상대적으로 지방은 청년층의 유출로 인구는 줄고 노령화되면서 소멸위기론이 압박하고 있다.이날 이 지사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려면 서울에 사나 안동에 사나 동일한 교통과 문화를 누려야 한다”며 “지방 낙후의 악순환을 끊어야 진정한 공간적 정의가 실현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방시대를 맞아 지역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중앙정부가 이를 강력하게 지원하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힘을 쓰기가 어렵다. 지역균형발전부 신설은 정부가 지방 살리기에 적극 나선다는 의지의 상징일 뿐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제2국무회의 성격으로 출범한 중앙지방협력회의와 연계가 된다면 효율성과 시너지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윤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국토균형발전 등 지방시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방민의 기대감도 그만큼 크다. 지역균형발전부 설치에 대한 윤 정부의 적극 검토가 있길 바란다.

2022-06-23

대구와 광주의 ‘공항·반도체 동맹’ 성과 내길

영호남을 대표하는 홍준표 대구시장·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인이 지난 2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지방소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토론회에서 두 당선인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 집중을 막아내야 한다는데 깊이 공감했다. 이날 집중 논의된 내용은 영호남의 공항 기능확대와 반도체 산업 유치 문제였다. 홍 당선인이 먼저 “항공 화물의 98%가 인천공항에서 독점해 첨단산업이 물류비용 때문에 수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며 인천공항의 물류기능 편중을 언급했다. 홍 당선인은 “인천공항의 화물·여객 수송 기능을 무안 공항, 대구 공항, 부산 가덕도 신공항으로 20%씩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당선인도 이에대해 “무안 공항을 관문 공항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는 저의 공약이기도 했다. 절박한 광주와 대구가 연대를 통해 위기를 기회 삼아 협력으로 극복해 나가자”고 화답했다.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현안이 되고 있는 반도체 산업 유치와 관련해서는 강 당선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 당선인은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서는 ‘영호남 반도체 동맹’을 맺어 산업과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 당선인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은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인데 그러면 지방대는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홍 당선인은 “대구는 경북대 중심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강 당선인의 제안에 공감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달빛동맹’으로 협력관계를 잇고 있는 대구시와 광주시의 차기 단체장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회를 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새로운 단체장들이 비수도권 대도시들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현안에 대해 토론회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구와 광주는 여야 정치권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도시 모두 인구감소로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기업을 비롯한 국가 모든 자산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려면 비수도권 주요 공직자들이 힘을 합쳐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2022-06-23

개똥 장마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를 장마라 부른다. 평균적으로 30∼35일 정도를 장마기간으로 보고 있으나 이 기간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장마 시작일도 매년 불규칙하다. 일찍 시작된 해는 6월 8일(1971녀)도 있었지만 늦게 시작한 경우는 7월 5일(1982년)도 있다. 마른장마라 하여 장마철인데도 비가 없거나 훨씬 적은 비가 올 때도 있다.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냉습윤한 오츠크해 기단과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에서 생기는 전선이 장마전선이다. 두 기단의 세력이 비슷하여 우리나라에 비교적 오래 정체하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내리는 비가 장맛비다.장마는 영농을 시작하는 봄의 뒤 끝에 따라오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속담도 영농과 연관된 것이 많다. “오뉴월 장마는 개똥 장마다.” 이 말은 개똥은 더럽고 하찮다는 뜻이 있지만 과거 우리 조상이 농사를 지을 때 거름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처럼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긴 장마로 피해를 보지만 농사에 필요한 비를 내려주니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이는 가뭄 피해보다 장마 피해가 더 크다는 뜻이다. 조상들의 농사 경험에서 나온 말로 보여진다.23일부터 전국이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이번 장맛비는 지역에 따라 최다 120mm 이상 많은 비를 내린다고 했다. 우선 오랜 가뭄으로 생육에 지장을 받던 농작물의 해갈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반갑다. 또 가뭄과 폭염 등으로 이어진 짓궂은 날씨 때문에 고생한 모든 이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어 반가운 장맛비다.“개똥같은 장마”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6-23

마침내 도마 오른 경찰권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부 여당과 야당이 경찰권력의 통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부처내에 경찰관련 조직을 신설,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권 행사를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를 두는 등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내용의‘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을 시행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야당은 23일 성명서를 통해 “경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지난 역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목도해 왔다”고 경고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까지 소환했다.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역사를 32년 전으로 되돌려‘치안본부’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며,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회귀하려는 의도라고 외쳤다.이들은 경찰 통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자의 입김이나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경찰위원회, 자치경찰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등 시민의 통제를 확대·강화해서 실질화하는 것이 그 방책이라는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일반적인 부처와는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 국민의 민생과 직결된 풀뿌리 민생조직이자,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야 하는 수사조직으로 기능한다. 경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순간 경찰이 정권을 위한 경찰로 타락하게 된다. 야권의 우려도 일리 있다.그러나 정부 여당의 입장 역시 확고하다. 경찰조직은 치안을 담당하는 내각의 행정안전부 직제하에 있으므로 행안부의 통제 아래 넣겠다는 뜻이다.윤석열 대통령 역시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과 관련, “경찰보다 더 중립성과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검사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면서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어 “과거 경찰은 굉장히 많은 인력의 경찰을 청와대가 들여다놓고 직접 통제를 했다”면서 “만약에 저처럼 그것을 놓는다고 하면 당연히 치안이나 경찰사무를 맡고 있는 내각의 행안부가 거기에 대해서 필요한 지휘 통제를 하고,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요구되는 사무에 대해서는 당연히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원칙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예전 청와대에서는 민정수석비서관 아래 치안비서관실에서 경찰조직을 통제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민정수석실이 폐지됐으니 행정안전부가 경찰조직을 통제하는 것이 맞고,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을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령령 등을 통해 설치해 운용하겠다는 취지다.유사 이래 어느 정치권력이 검찰과 경찰의 권력을 자신의 통제 바깥에 놓아둔 채 방치한 적이 있었던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야당도 그런 속사정을 잘 알면서도 무차별 견제구를 날려댄다.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바란다면 문재인 정부 당시에 논의했던대로 경찰위원회, 자치경찰위원회, 경찰수사심의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등 경찰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면 될 일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치권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없다.

2022-06-23

누리호, 우주의 길을 열다

윤영대 수필가 낮이 가장 긴 날 하지(夏至) 6월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 순수국내기술로 설계·개발된 최초의 우주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자랑스러운 누리호(KSLV-Ⅱ)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3-2-1-엔진점화-이륙’…. 하얀 연기와 황금빛 불꽃을 내뿜으며 남해의 푸른 바다를 힘차게 솟아오르는 누리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마음 가득 환호를 외쳤고 12년간 쌓은 노력으로 난관을 뚫고 개발해온 항공우주연구소 관계자들의 가슴에는 벅찬 기쁨을 안겨주었으리라.약 2분 후 60km 상공에서 1단 엔진을 분리한 후 하얀 점을 남기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매분 수십km씩 솟아오르며 단계적으로 추진체와 덮개를 벗어버리고 15분 후 드디어 700km 상공에 도달했다. 이어 성능검증위성을 분리하고 마지막으로 위성모사체를 초속 7.5km로 궤도에 안착시켰다는 발표를 듣고 모두 안도했다.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이 된 역사적 꿈을 이루었다. 참으로 뿌듯하다. 30여 년간 쌓은 한국우주항공기술의 결정체가 천공(天空)을 뚫고 우주탐사전을 펼친 것이다. 지금 누리호는 지구궤도를 하루 14.6바퀴씩 돌면서 남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누리호에는 카이스트 등 국내 4개 대학이 제작한 4개의 큐브위성이 실려있다. 1주일 후부터 하나씩 우주 궤도에 내려놓으며 우리의 꿈을 위한 새싹을 심겠지. 아무쪼록 각각의 임무가 잘 수행되기를 바란다.누리호는 연소 불안정과 추진탱크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작년 10월 1차 발사를 했으나 마지막 궤도 진입에 실패하였고 이번에도 기상문제와 기체이상 발견으로 두 차례 연기 끝에 드디어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 2027년까지 약 6천9백억을 들여 4차례 더 발사할 계획이 있다 하니 항공우주청의 설립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본다. 총 중량 2백 톤, 성인 약 3천 명의 무게에 총알의 10배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기 위해서 37만 개 부품으로 제작되었는데 300여 민간업체의 기술이 합쳐진 것이다. 미래 우주산업은 4차를 넘어 5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며 선진 각국도 민간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바 우리도 그 꿈을 넓혀야겠다.90년대 초 우리별 1, 2호가 영국 기술을 보태고 프랑스제 아리안 로켓을 빌려 타고 먼 중남미 기아나 우주발사장에서 발사된 지 30년, 우리는 드디어 우리기술로 우리 발사체로 우리 땅에서 누리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남해 고흥반도의 끝 외나로도에서 우주로의 길을 연 것이다. ‘고흥 나로도’라는 지명과의 인연도 기묘하다. 높을 고(高), 일어날 흥(興)에 ‘날다’의 발음과 비슷한 섬 이름…. 우주센터 후보지 11개 중에서 발사 각도와 입지조건 등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는데 포항과 울산도 후보 지역으로 나섰다고 한다.높이 일어설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 강국 대한민국의 꿈과 희망을 싣고 우주의 길을 연 누리호의 성공을 빌며 외쳐본다. 누리호 만세!

2022-06-23

복잡과 단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세상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진다. 자연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사회가 그렇다는 얘기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어 급격히 발전하는 기계문명에 따라 삶의 양식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왔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정보화시대에 들어선 지금, 노년층 서민들은 각종 생활의 정보나 기기들을 따라잡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그런 생활양식의 변화는 그대로 사람들의 심리나 사고에도 반영이 되어서 정신적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복잡계(複雜系) 이론이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산타페연구소의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복잡계란 무수한 요소가 상호간섭해서 어떤 패턴을 형성하거나, 예상외의 성질을 나타내거나, 각 패턴이 각 요소 자체에 되먹임(Feedback) 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했다. 예일대학의 제롬 L. 싱어 교수도 “복잡계란 상호 작용하는 수많은 행위자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행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행동은 비선형(Nonlinear)적이어서 개별요소들의 행동을 단순히 합해서는 유도해낼 수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세상은 물리적 현상이나 사회적 현상이나 너무 복잡해서 방정식이나 간단한 논리체계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요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현상들은 그야말로 복잡계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지난 수 년 동안 우리나라에 있었던 정치적 난맥상과 그에 따른 민심의 동요는 어떤 논리나 이론으로도 명쾌한 해석이 될 것 같지 않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안을 두고도 편을 갈라 정반대 논리와 주장으로 극렬하게 대립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혼란일 수밖에 없다. 특히 그릇된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들은 난동이랄 수밖에 없는 집단행동으로 나라 기강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복잡성은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인류도 본질적으로는 단순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의 한 종이라는 사실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보듯이 복잡한 사회를 떠나서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복잡성은 인위의 산물이며, 그것이 필연적이거나 최선의 선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이킬 수야 없지만 반성과 활로의 모색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성인들이 제시하는 삶의 진리는 간단명료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그렇고, ‘네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도 다르지 않다. 불교의 팔정도나 유교의 인의예지가 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이것이 인간사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온갖 혹세무민하는 요설과 선동에 미혹하지 않을 분별도 거기서 나온다.

2022-06-23

산책길 소묘(素描)

배문경 수필가 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푸른 잎이 투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나무 두엇을 지나자 차도가 나오고 초등학교의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양귀비며 노란 금계국이 화단 가득하다. 오밀조밀한 보도블록을 지나는 길가에 맥문동이 이파리를 단단히 세웠다. 주어진 한 시절을 구가하는 생명의 잔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교문을 나서서 맞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곳은 차들의 길이다. 사고로 가로등이 부서지거나 보도블록이 깨진 흔적이 낭자했던 곳이다.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인 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는 언제쯤 사라질까. 문명은 세상을 밝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길을 건너 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담장과 낡은 건물들이 적당히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에 이르면 갑자기 눈이 뜨인다. 비닐하우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푸른 부추가 자라고 있다.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저 부추의 매운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좀 더 걷다 보니 물을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주의하라는 관리자의 공고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태풍이나 홍수가 나면 이곳을 여닫아 물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뭄에 강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유속은 급하지 않고 넓은 강 중간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처럼 생긴 섬이 하나 있다.지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콸콸 소리를 내는 물은 강둑의 목까지 들어차 모든 것을 삼키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저 나지막한 섬은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장마와 홍수로 인해 강둑조차 파괴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물은 위세가 대단했다.문득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던 뒤꼍의 도랑이 장맛비에 살아 꿈틀거렸다.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와 솥과 나뭇가지와 잡동사니들이 흙탕물에 뒤섞였다. 소는 발버둥 치며 떠내려갔고 나뭇가지는 서로 얼기설기 엉키며 부피를 키웠다. 우르릉 천둥소리 쩌적 번개소리, 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랑물이 생전 처음으로 집을 삼킬 듯이 불어나자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아득한 기억 속의 도랑물 소리가 지금의 강물 소리와 오버랩되어 두렵기까지 하다.오십 년이 지나고서야 태풍의 이름을 찾아보니 ‘올가’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다행이다. 지금은 태풍에 잠겼던 섬은 푸른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꽃들이 싱겁지 않게 장식한다. 섬 주위로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은빛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중심에서 번져나가는 물결무늬가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작은 숲이 살아있어 걷는 길이 충만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큰 기쁨인가.나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산책은 놓친 것을 되새김질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론 일상에 지쳐 머릿속이 잘 감긴 테이프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때 잠시 멍 때리는 휴식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저 눈 부신 태양의 선물과 자연의 이름으로 부여된 각각 다른 모양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기운을 내뿜는다. 나는 연초록 향연에 아득히 취한다. 가슴 가득 바람을 안고 총총히 강둑을 뒤로하며 집을 향해 돌아서자, 방전되었던 심신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다. 일상이 천천히 다가온다.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202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