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시로 쓰는 자서전’ 수업할 때였다. 어르신들의 삶을 이야기로 나누고 그것을 받아 적으니 모두 시가 되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 질문하고 어르신들의 생각을 끌어냈다. 결혼할 때는 어떠했는지, 그땐 그랬지요, 라고 맞장구를 쳐 드렸다. 아이들 키울 때는 어떠했는지?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며 어르신들은 이미 추억 속에 가 있었다. 금방 웃으시다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도 있다며 시무룩해하셨다. 끝없이 달려 나오는 이야기를 녹음하고 기뻤을 때는 기쁜 표정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날은 사진을 보고 시를 쓰는 수업이었다. 어르신들이 갖고 온 사진은 다들 꽃 속에 찍은 것들이다. 예쁘게 차려입은 옷은 봄 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같은데, 표정은 어둑해 보였다. 가물가물한 추억이 된 사진을 보고 오늘에서야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다. 언제, 어디를 누구와 갔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사진에 관한 추억을 반죽하고 부풀리느라 교실이 시끌벅적했다.
“옜다, 선물이다.”
“니, 엄마 보고 싶제?, “니, 엄마도 있고, 나도 있다.”
엄마 친구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설악산 어느 바위 뒤에서 세 명이 찍은 사진이었다. 꽤 오래된 사진 속에 젊은 엄마가 보였다. 한 장의 사진은 추억으로 가는 빗장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보니 젊은 엄마는 싸움을 잘했다. 산비탈 돌짝밭에서는 크고 작은 돌멩이와 숨바꼭질하듯 싸우고 동구 밖에서는 논에 물 대는 일로 이웃과 자주 싸웠다. 옆집 논에서 물길을 돌려야 할 때는 아버지를 앞세우고 뒤에서 요목조목 큰 소리로 따졌다. 그 무엇보다 엄마가 제일 잘하는 것은 자식들을 위한 모든 싸움이었다.
엄마 주머니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 산골 마을에 어스름이 내리면 엄마는 대문을 들어서고 수돗가에 하루치 노동을 부려놓았다. 우리는 엄마 곁에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의 양쪽 주머니에는 이것저것 먹을 것이 나왔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아무것도 없는 날은 부엌에서 눈 깜박할 사이 주전부리를 만들어 냈다.
사진 속의 엄마를 뚫어지게 보았다. 사진 너머 있는 엄마의 무심한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힘든 농사일에서 잠시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려 나들이해서 좋을 텐데, 여행이 즐겁지 않았는지. 엄마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만약 단 몇 초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이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갑자기 교실이 시끌벅적거린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한 사람씩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정했다. 흑백에서 컬러사진까지 다양했다. 이제는 그때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엄마 친구도 설악산의 어느 바위 사진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엄마와 같이 죽도시장에서 옷도 사고 신발도 샀다고 했다. 설악산의 커다란 바위를 보았던 그날은 힘들게 산에 올랐지만 힘들었던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단다. 마치 햇살이 따스한 고향 집 툇마루에 앉아 있는 듯했다. 손에는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서 구입한 ‘효도 관광’이라고 쓴 등 긁개를 들고서.
아마도 그날은 강원도 어떤 간식을 먹었을 것이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고이 싸 온 간식을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의 부른 배를 두드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의 기억은 이제 사진에서만 볼 수 있다. 나는 사진 속 엄마 옷 주머니를 훑어보았다. 아직은 밋밋하지만,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엄마의 사랑이 불룩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