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신춘 음악회

봄 마중을 나갔다. 온화해진 햇살이 걷기에 좋은 날씨라며 수목원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경북수목원을 향해 구불구불 길을 오르며 한 구비 돌아설 때마다 겨울 나목의 가지 끝이 물을 가득 올려놓았는지 발그레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차에 몇 명이 탔는지 확인을 했고, 주차 후에는 열 체크와 방명록도 적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라 우리 말고 서너 명의 산책자들을 넓은 숲에 흩어놓으니 조용했다. 습지원에 들어서니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바삐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소리 사이로 가만가만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였다.(사실 익숙한듯하나 작곡가도 제목도 몰라 검색찬스 썼다는 건 비밀!)겨울 숲은 잎을 발밑으로 일찌감치 보내고 난 가지뿐이라 속이 훤히 드러난다. 습지 사이를 연결한 다리 난간에 십이지신상 조각이 앉아있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아챘다. 꽃과 잎이 풍성한 계절에만 찾아와 꽃과 향기에만 취했었던 탓이다. 휑한 가지뿐인 나무의 발치에 써 놓은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만첩빈도리, 화살나무, 곰의말채나무를 떠듬거리며 가로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그사이 들려오는 가락이 경쾌하게 곡을 바꿨다. 비발디의 사계 중 한 곡인데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렸다. 스마트폰이 식물학자이자 음악선생이다. ‘가을’이 아니라 ‘봄’이라고 짚어주었다. 버드나무는 비발디 곡에 취해 가지 끝이 노르스름해졌고 뾰족한 봉오리를 가득 달고서 ‘나 목련이오.’하는 백목련이 키를 높이고 있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나무들이 있는 유실수원을 지나니 경상북도 시군별 나무와 꽃을 모아놓은 동산이 나타났다.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시군목 이었고 꽃은 장미가 많았다. 3월에는 산수유가 시화인 의성군에 갔다가, 안동시의 매화와 예천군의 목련까지 한꺼번에 보고 와야겠다.연구동 근처로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엇을 키우는지 물소리가 졸졸졸 흘렀다. 그때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 타레가의 스페니쉬기타 연주로 물소리에 섞여들었다. 타레가가 알람브라궁전의 수많은 분수가 만들어낸 물소리를 기타로 표현했다는 그 곡이 오늘의 숲에서 연주되니 좋은 선곡이었다.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무궁화원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 키 낮은 묘목이던 것이 이젠 우리키를 훨씬 넘어서 의젓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라있었다. 한 그루에는 새집도 한 채 들여놨다. 연못을 지나 손님을 기다리는 데크들을 지나니 옴나무, 황금, 지모, 여로, 세잎양지꽃, 이런 이름의 나무와 꽃도 있었구나 싶어 받아 적었다. 딸을 낳으면 심었다던 벽오동, 몸피가 특이한 복자기, 사람주나무, 죽단화, 낙상홍을 지나 눈을 맞고 섰던 기자 이름 같기도 한 박태기나무, 갯사상자, 수크령, 윷놀이가 아니라 윤노리나무, 열대우림에 자랄 것 같은 정글나무도 있었고, 포도는 학명이 그레이프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뜰보리수는 자태가 우아해 우리 집 뜰에 옮겨 심고 싶었고, 여느 소나무보다 잎이 통통한 잎인 금송,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지는 팥꽃나무(찾아보니 꽃 색깔이 팥 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토끼와 친구였던 계수나무, 덜꿩나무는 꿩하고 인연이 있는 거 아닐까 궁금해하다보니 산을 내려왔다.김순희수필가숨고르기 하며 거닐었던 길은 늘씬한 몸매의 메타세콰이아가 파란 하늘이 더 높아보이게 만들었다. 길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밟는 소리가 음악소리이다. 사박사박 사람들이 겨우내 밟지 않아서인지 더 폭신했다. 구름을 가득 품었던 연못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연못 가운데 있는 독도는 인공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어 한 계절은 외롭지 않았다.겨울이 숲에게 주는 휴식 시간 겨울, 꽃 사진 찍느라 바빴던 다른 계절에 들리지 않았던 클래식 연주가 잔잔히 들려 숲을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숲의 속내를 들여다본 산책이었다. 화가 모네가 같은 장소를 시간에 따라 연작으로 그렸던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려준 겨울 수목원이었다.

2021-01-31

구미시의회,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김락현 경북부구미시의회가 2021년 첫 임시회를 동료 시의원에 대한 징계안으로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그동안 제8대 구미시의회의 행보는 역대 최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역대 가장 많은 9명 등원해 기대가 컸지만, 불법 공천 헌금 혐의를 받은 마주희(비례대표) 시의원이 자진사퇴한 데 이어 김택호, 심문식 의원이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국민의힘 권기만 시의원도 미래통합당 시절 도로 개설 특혜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선우 시의원은 시립예술단 단원 선발 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데도 두 차례나 심사장에 포함됐다. 이 밖에도 구미시장에게 시립무용단 안무자 해촉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엄연히 구미시의회 행동강령 위반사항이었지만, 시의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의원이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 장세용 구미시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시의원 5명이 징계받는 등 구미시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김재상 의장과 안주찬 부의장은 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그만 싸움을 멈추고 지역 경제가 회복되는 데 힘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더는 동료 시의원에 대한 제명이나 징계안을 올리는 일 없이 서로 합심해 구미 발전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의장단의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참이나 늦은 감이 있지만, 한낱 희망일지라도 기대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지친 구미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게 아니라 작은 짐이나마 덜어주는 시의회가 되길 바란다. /kimrh@kbmaeil.com

2021-01-28

준비 소홀로 시민 대혼란 야기한 코로나 의무검사

가구당 1명 이상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포항시가 준비 부족을 인정하고 검사 기간을 사흘 연장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전 가구를 대상으로 한 포항시의 코로나 의무검사는 당초부터 준비가 부족했고 무리한 행정명령의 발동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막상 시행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원성과 대혼란이 벌어졌다. 선별검사소에는 아침부터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루면서 온종일 포항시의 졸속행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선별검사소와 인력의 부족으로 행정당국이 정한 6일내 검사 완료가 불가능한 데다 검사 이후 행동지침도 제때 내려오지 않아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는 혼란도 겪었다. 코로나 의무검사 행정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니 포항시의 행정명령이 시민과의 교감 없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됐을까 짐작이 간다.이강덕 포항시장의 사과와 검사기간 3일 연장, 선별검사소 추가 설치 등 포항시의 보완책 발표와 함께 시가 수습에 들어갔으나 행정편의적 발상이 빚은 주민불편과 대혼란에 대한 행정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시민 20만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시행하겠다면서 시민에 대한 사전 홍보도, 시의회와의 사전조율도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시민의 불편이나 반응은 애초부터 고려치 않고 의욕이 앞선 탁상공론식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포항지역의 코로나19 발생이 위중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막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라 하지만 사전준비가 완벽해야 명분도 지킬 수 있다. 명분이 앞선다고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과 시간을 함부로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포항시가 준비 소홀을 인정하고 뒤늦게 추가 보완책을 내놓았으니 남은 기간이라도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 진단검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특히 이번 의무진단검사 대혼란은 그동안 행정기관이 자주 비판을 받았던 권위적 발생과 행정편의적 업무처리에 큰 경종을 주었다. 공직사회가 업무를 결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고 세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포항시로서는 이번 대혼란이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되겠지만 반면교사 삼고 코로나가 종결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2021-01-28

데드크로스 시대

우리나라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른바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감소를 시작했다는 뜻이다.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187개국 중 꼴찌다. 인구를 국가 경제력의 상징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위험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드크로스(Dead Cross)는 주식시장 장세의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다. 주가의 단기이동 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 아래로 뚫리는 현상이다. 장세가 나빠짐을 예고하는 지표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골든크로스라 부른다.선거판에서 1.2위 후보자의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도 골든크로스 또는 데드크로스라 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면 데드크로스고 그 반대면 골든크로스다. 요즘 우리 사회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이 학생 수 감소로 전전긍긍이다. 대학교의 신입생 정원보다 대학 지원자 수가 적어져 신입생 데드크로스 현상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집값이 폭등 하는 아파트의 데드크로스 현상도 걱정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데드크로스 선상에 있다.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이 -1%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등 수많은 경제 주체의 노력이 성과를 못냈다는 뜻이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컸다는 의미도 있다. 코로나 속에 이 또한 데드크로스적 현상이다.정부가 우리 경제의 역성장 폭이 선진국보다 낮아 선방했다는 표현을 썼다. 적절치 않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지금은 자랑보단 경계심을 높일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8

바이든에 거는 기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직업 정치인이지만 오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도전 끝에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 의사당 난입에 이어 사상 유례없는 트럼프의 2번의 하원에서의 탄핵 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취임식이었다.더구나 미국의 오랜 전통인 전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이 없는 적개심이 남아있는 이상한 취임식이 되었다.지금 트럼프 정책에서 허덕였던 각 국가와 한국도 바이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각국은 자국 손익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노선과 정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바이든은 전임 행정부와 철저히 단절하며 미국 안팎의 새 질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이미 수십 개의 트럼프 정책을 뒤집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몽니로 탈퇴하였던 각종 세계 기구에도 복귀하고 있다.바이든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재건하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자유주의의 가치와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깃발을 내걸었다.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패권주의가 깔린 미국에서 의회와 안보 관련 기관의 대중국 매파의 세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북한 문제로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에 중국과의 대립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세계는 미국이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통하여 중국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면서 세계무역 질서를 복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상대와 1% p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으나, 큰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마저 잃었다. 그런 그가 내리 6선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한다.우리는 바이든이 보여준 이러한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미국, 세계를 안정시키고 한국에 밝은 미래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우리는 그의 한국 정책에 특히 주목한다. 자국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세계 경제를 함께하는 정책, 외국기업을 아우르는 정책, 글로벌 경영의 토대를 세울 것을 기대해 본다.주한미군의 안정된 주둔과 대북 정책에서 힘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에서 한국의 현 정부를 설득할 것도 기대해 본다. 대중국 정책도 강한 힘으로 중국을 다스리면서도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유연성을 호소해 본다. 한국 정부는 대북한 굴욕외교에서 벗어나 바이든 정부와 호흡을 같이하며 품격있는 외교, 국방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에 기대한다.

2021-01-28

헌재, ‘공수처 합헌’ 결정…국민감시 중요성 높아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립과 운영 근거를 정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8일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헌법소원심판에서 일부는 기각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각하했다. 공수처법에 대한 또 다른 법적 심리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공수처는 그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집중적인 감시가 더욱 절실하게 됐다. 헌재 전원합의부는 이날 재판에서 “행정 각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형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여러 기관으로부터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수사처가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공수처의 성격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소속되고, 그 관할권의 범위가 전국에 미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헌재는 이와 함께 고위 공직자의 가족이나 퇴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한 것에 대한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공수처에 대한 헌법소원이 ‘위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중대하고 시급한 재판을 1년간이나 끌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대개의 법률가들이 ‘합헌’ 결정을 예측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헌재가 자주 써온 방법대로 헌법소원 청구인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현 정부 들어 보여준 헌재의 성향만으로도 ‘위헌’ 결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예상이 다수였다.공수처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다만 근간 우리 국민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 검·판사들마저도 패거리 정치의 폐해에 종속되어 ‘편 먹기’ 의식에 빠져 있다는 진실이었던 만큼 논란은 이어질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제 거침없을 공수처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괴물 친위조직이 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감시하고 차단해나가야 할 국민의 사명이 훨씬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2021-01-28

추천서를 쓰면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은 곳이다. 국문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한번은 인문대학에서 공간 배분 문제 때문에 재적 인원을 물어본 적이 있어, 120명이라고 했더니 국문과 다 합쳐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아니고, 현대문학만 그렇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외국 유학생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국문학은 돈은 되지 않아도 학문적 열정만은 다른 곳 못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학생이 많다는 건 행복한 소리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할 것이, 이렇게 공부한 귀한 학생들이 막상 박사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가려 하면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나 그런 것이 일자리 적은 요즘 한국 사회 풍토지만 이 박사들은 남들 서른 살도 안 되어 직장을 찾을 때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남은 사람들이다.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책과 자료에만 매달린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박사학위를 들고 대학만 졸업한 학생들보다도 더 적은 월급밖에 주지 않는 강사 자리, 강의전임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으랴.편할 수도, 좋을 수도 없는 마음으로 추천서들을 쓴다. 한 학기에도 여러 통 써야 하는 추천서니까 틀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 맞춰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가려는 대학마다 뽑는 자리도 다르고 가려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공부도 정말 잘하고 논문 수도 많다. 어떤 사람은 논문 수는 좀 적어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큰 덕목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이 위치에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다른 ‘칭찬’이 없을 수 없다.사실, 국문학이라 그렇고, 또 인문학 중의 하나라서 더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뭐든 돈이다, 실용이다, 하는 쪽으로만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진 존재고 그래서 빵만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해야 맞다.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오래 준비한 학생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년 아무 일 아무개 삼가 올림”/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8

쇳물과의 상생(相生)

이성환포항뿌리회 초대회장작금의 포항이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마음에 지역을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호소드리고 싶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은 ‘상생(相生)’,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코로나 역병이 확산되면서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할 개인방역도 나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이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근간이며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행복해지려면 서로가 존중하고 신뢰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 지역에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이고 확산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행정당국의 모습에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또한 지난 2015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 50만 도시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지난 2006년 포항뿌리회가 앞장서 ‘포항시민 인구늘리기운동’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또 얼마 전 지역방송에서 포스코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가 부각되면서 우리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비쳐진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것 하나 지역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떻게 우리 지역이 이런 지경까지 되었을까?나이든 사람으로서, 또한 지역사랑운동에 신명을 바쳐온 본인으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막중한 책임감마저 든다. 우리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 땅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많은 애향 시민들이 있는데도 총체적 난국이 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이 앞선다. 그나마 우리지역에서는 포스코라는 글로벌기업이 50여 년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산업의 쌀’을 생산하며 포항이 철강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환동해중심도시로서 50만 대도시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숱한 애증(愛憎)이 오고갔지만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면서 쌓은 ‘상생’이란 이름아래 포항과 포스코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 때문에 ‘죽음의 도시’로 불리게 된다면 50년 상생의 역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누가 뭐라 하여도 포스코 역시 포항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며 포항 시민 또한 포스코를 사랑하며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제껏 함께 살아온 반세기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한 쪽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보다는 지역사회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고 또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좀 더 폭 넓은 견해도 필요하리라 본다. 포스코가 어려울 때 포항 시민이 앞장서는 등 애정으로 함께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언제나 포스코의 발전이 지역의 발전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성숙된 시민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가 이뤄지고 50여 년 함께한 기업이 100년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는 공생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가 못 넘을 산은 없을 것이다. ‘I ♡ POHANG WITH POSCO’라는 상생(相生)의 기치(旗幟) 아래 우리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것은 ‘쇳물과 포스코’ 그리고 포항이다.

2021-01-28

트로트 신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발명왕으로 불리는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흔히들 그 말을 ‘천재는 영감보다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으나, 에디슨은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인데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타고난 재능이 없이 노력만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같은 노력을 해도 타고난 소질과 재능에 따라 현격한 기량의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각 분야마다 신동(神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유아기부터 어떤 분야에 몰입하고 특출한 능력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아이도 있고, 체육 분야에 특출한 기량을 보이는 아이, 수학이나 언어 분야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천재성이 불후의 음악이 되어 인류에 기여하는 것처럼 신동들은 잘 길러지면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트로트 신동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트로트 가요를 가수들 뺨치게 잘 불러서 환호와 갈채를 받고 있는 걸 본다. 어린아이들이 성인가요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것도 물론 신동이라 할 만하다. 그 소질을 잘 키우면 훌륭한 가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서다.성인들도 갑자기 엄청난 각광을 받게 되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중력상태가 되기 쉽다. 아직 모든 것이 미성숙한 아이들이 갑자기 엄청난 관심과 환호를 받게 되면 정상적인 정서나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타고난 끼와 소질을 아예 무시하거나 막으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 세우는 걸 유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다. 특히 방송매체는 시청률을 위해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연출을 하게 마련이다. 성인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의 정서와 이해의 수준에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그 정서와 기억이 평생을 간다. 노년이 되어도 옛날의 동요를 듣거나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소년기의 아이들에게는 성인가요보다는 그 또래의 사고와 정서에 맞는 동요나 가곡을 부르게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노래는 곡조 못지않게 노랫말도 중요한 법인데, 유행가 가사가 어찌 동심(童心)에 어울린다 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되바라졌다고 하나 그 연령대에 맞는 정서와 동심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이다. 동요보다는 유행가에나 빠져들게 방치하지 말고, 요즘 아이들의 감각에 맞는 노래를 지어서 보급하고 권장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와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에 대한 성찰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28

그들이 왔다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제2차 세계대전 때에 포로가 되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영국의 군인 맥도널드(Murdo Macdonald) 목사는 어느 날 새벽의 감격을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그의 가까운 친구가 전기 기술자인데 그 친구가 비밀리에 라디오를 조립하여 영국의 BBC 방송을 듣고 전쟁의 상황을 수용소 내에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맥도널드 목사를 흔들어 깨웠습니다.여보게 친구야!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고 흥분된 얼굴로 엄청난 감격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전하여 준 말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는 이 희망의 소식이 퍼지자 온 수용소 안에 있던 포로들은 너무 너무 기뻐서 수용소 마당으로 나가 춤을 추며 서로 부둥켜안고 “그들이 왔다(They have come!)”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그러나 연합군 상륙 뉴스를 아직 모르던 수용소 독일군 감시병들은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미치지 않았나 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수용소 포로들에게 외부적인 조건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용소의 벽은 여전히 높고 그 위에 철조망도 여전히 두꺼웠으며 독일군의 총부리와 기관총도 여전히 그들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갇혀서 고통받는 포로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의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연합군인 아군이 그 땅에 도착했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이미 자신들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들이 왔다”라는 소식에 희망이 솟고 기쁨이 넘치며 용기가 생기고 삶에 확신이 온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우울해지고 죽음의 공포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삶의 현장에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소식은 없을까요? 성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상륙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흉용하고 핍박과 고통이 내 곁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상륙 사건입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지구촌에 상륙하신 사건이 바로 예수 탄생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구름 속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과 기쁨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흰 소의 해 신축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우리 인류를 죄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상륙하신 일을 기억하고 모두가 행복한 신축년 새해 맞으시길 소망합니다.

2021-01-27

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인간 승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식이 우려 속에서도 무사히 끝났다.지난 미국 대선에서 80세 고령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현직 트럼프의 공격적인 선거 캠페인에 대응해 최후의 승자가 됐다. 트럼프는 아직도 대통령 바이든을 인정치 않고 취임식에도 참석치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연방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 당했음에도 측근 43명을 사면하고 플로리다 집으로 떠났다.지지자들에게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인들의 관심은 새 대통령 바이든에게 쏠리고 있다.변호사 출신 대통령 바이든의 삶의 궤적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은 20대 후반부터 의회 정치 경력을 꾸준히 쌓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델라웨어 대학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학교 성적은 최하위 정도이다. 우리의 지방의원격인 카운티 의원에 이어 상원의원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6선의 상원의원(1973∼2009년) 시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했고, 오바마 하에서 8년간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1942년생 79세인 그는 3수만에 꿈에 그리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바이든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 경력 뒤에는 굴곡된 그의 삶이 점철되어 있다. 그는 젊은 날부터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말을 더듬어 고생했다. 그는 1972년 아내와 딸까지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그의 장남 보 바이든 마저 뇌종양으로 잃었다. 자식과 아내를 먼저 보낸 그의 가슴은 멍이 들어 있다. 1988년 그는 뇌동맥 파열로 사망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러한 비극 앞에 보통 사람은 정치를 포기했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미국 최고령 대통령 바이든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 승리이다.바이든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미국을 건설할 책무가 놓여 있다. 분열된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의 위상을 되찾는 과업이 급선무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치는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미국을 완전히 분열시켜 놓았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했다. 바이든은 벌써 통합의 상징으로 최초의 흑인 부통령 해리스뿐 아니라 오스틴 국방장관도 흑인으로 임명했다. 그의 경호 책임자 데이비드 조는 한국계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식 압제와 배제의 정치 대신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려고 한다.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에서도 국제 평화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 마저 파기하고, 파리 기후 변화 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도 탈퇴했다. 그는 전통적인 우방에 대한 동맹 외교도 무시하고 방위비 협상마저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 회담 마저 대선용으로 던져 보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 마저 트럼프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린 상태이다. 세계 인권과 평화를 중창하던 미국의 위상은 추락된 지 오래다. 바이든은 추락된 미국 외교부터 복원해야 한다. 바이든에게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

2021-01-27

(학)부모가 답이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코로나19에 무너진 세상은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벌써 1월 달력을 넘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2021년이지만,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올 1월에 대한 기억은 최강 추위와 코로나, 그리고 저질 정치 이야기뿐이다.2021년 1월 1일, 국가 지도자들은 저마다 새해 희망 메시지를 발표했다. 내용이 복사 수준이어서 아쉬웠지만, 희망이 멸종된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 했습니다.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습니다. (중략) 국민이 희망이고, 자랑입니다.” 말한 사람을 모르고 보면 정말 희망적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예전부터 봐왔다. 그것은 교육부의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표어이다. 그런데 두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대통령이 말한 “국민”, 또 교육부가 말한 “모든 아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코로나 시대 교육격차 완화 (….)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공정에 대한 요구에도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대책을 보완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비록 희망 고문이지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박수는 금방 멈추었다. 대신 헛웃음만 났다.그래도 필자는 희망을 믿는다! 왜냐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 성향의 대통령을 보유한 나라가 아닌 우리의 희망인 학생의 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부모님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전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들의 생각은 그 자체가 교육학 개론이었다. 교육의 답을 찾지 못하는 청와대와 교육부에 답이 적힌 그 개론서를 전한다.“시험을 위한, 수능을 위한,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지구인으로 생존하기 위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행복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학교 교육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문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수업 시간의 질문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교육이 삶이 질을 높이는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수치로 평가된 평균적인 삶보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고 (중략) 더 나아가 창조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평생 학교이며,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어 첫 번째 선생님이자, 평생 교사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도, 가정도, 교육도, 그리고 국가도 바로 선다. 이 나라는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룬 주역들을 길러낸 부모를 보유한 나라다. 그들이 바로 이 나라의 답이다.

2021-01-27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앵무를 찾아서 - 의기(義妓)의 표본 염농산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앵무는 100환을 먼저 기부했다.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든지 1천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한다.” 앵무 여사의 담대한 기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김광제 등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전국민을 분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지에서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앵무 여사 같은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생들의 연합인 달성 권번의 대표자로서 기생들을 규합하여 공연회를 개최해 구제활동에 쓰거나 민족운동 후원에도 적극 참여했다.염농산 여사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사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주 나들이를 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빛바랜 비석은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비석과 바로 이웃한 홍영기(81세) 옹을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홍수 피해에 시달린 마을 전답을 앵무 여사가 사재를 털어 방천을 축조한 뒤 학춤을 췄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고자 마을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앵무빗돌’, 방천은 ‘앵무방천’, 논밭은 ‘앵무들’로 불렸지만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대구의 기생이었던 앵무 여사가 하필이면 성주까지 가서 그 큰 토목공사 비용까지 댔을까. 이문기 교수의 ‘대구 의기 염농산의 생애와 성주군 용암면 두리방턴 축조의 의미’라는 소논문에 의하면 방천 앞의 일부 토지가 그녀 소유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단다. 홍수로 유실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농토를 복구하면서 방천둑을 축조하게 되었다. 먹고 살 만했던 앵무 여사보다, 살기 급했던 마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자명했다. 방천 축조에서 염농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제방 축조 후, 국유지로 개척된 농토는 염농산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불하되었다. 시행 주체에게 주어지는 토지 불하권을 마다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당당한 인격권을 외쳤지만 그 권리를 개인의 사욕에 두지 않고, 공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가 국채보상에서 보여준 모범과 상통하는 것이었다.그의 선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37년에는 교남학교의 부흥을 위해 부동산을 희사하여 민족운동의 당당한 후원자가 되었다. 관기에서 은퇴해 음식점을 경영한 돈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가게는 노년까지 계속되었다니 의로운 일에 쓰이기 위한 노동을 끊임없이 한 셈이다. 넉넉한 자산은 물질적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살림이 좋다고 누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대여성으로서 삶의 주체적 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리적 사고로 나라와 사회를 구제하려 했고, 적극적 행동으로 자립적이고도 평등한 여성을 꿈꿨다.앵무빗돌의 머릿돌은 깨어지고 비석 뒷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빗돌집을 오르는 계단은 방치되어 잡풀이 돋았고, 뒤쪽 공터엔 쇠락한 집터만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당국에서 앵무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홍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가끔 취재를 오는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전할 뿐,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살로메 소설가앵무 여사가 축조했다는 두리방천은 앵무빗돌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그때의 축조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방죽을 받치고 있는 돌들 중 빛바랜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것이 앵무 여사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국운동가나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로서의 근대적 여성활동가는 드물지 않다. 앵무 여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머물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의연하게 나섰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평등사상과 민권의식을 고취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했던 사람이 앵무였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앵무 방천을 휘도는 바람마저 당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2021-01-27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억이 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닌가. 사계절을 건너오며 오르내렸던 감염의 기세가 이제는 꺾이는가 싶었다. 조금씩 내려가던 숫자에 또 다시 충격을 주는 듯 집단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하필이면 교회를 비롯한 종교집단발 무더기 감염이 연일 방역을 힘들게 한다. 코로나19가 사상초유라지만, 14세기 흑사병의 그늘에도 교회가 있었다. 역병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였던 교회들 탓에 오히려 확산세가 불어났다고 한다. 21세기 첨단의료와 방역의 현장에서 팬데믹 현상에 종교적 원인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겪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하필 교회 언저리에 들끓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신천지, 인터콥, IEM, TCS. 코로나19의 확산세에 기름을 끼얹은 이들이 하나같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다. 일부 교단들도 방역수칙을 권하는 정부의 노력을 ‘교회탄압’으로 규정하며 거부하는 태도마저 드러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며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집단으로 모이는 일이 방역에 치명적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평소에 이웃사랑을 강조하며 배려와 섬김을 기준으로 삼던 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의료과학의 눈으로 밝혀지고 방역의 수단으로 설정된 ‘거리두기’를 억압의 방책으로 오해하다니! 신앙을 교육과 버무려 어린 청소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면, 이는 이웃을 섬기는 일인가 해치는 일인가. 사회 일반은 방역에 집중하는데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는가.‘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역기조를 거부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영국성공회교단과 미국장로교단도 매우 세부적인 권고사항까지 적시하면서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미국 기독인의료협회들도 교회들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강권하는 호소문을 내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회적인 동의가 눈에 뜨인다.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할 태도는 분명한 게 아닌가. 생명처럼 귀한 예배는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으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모여는 있어도 이웃을 해할지도 모르는 ‘회칠한 무덤’같은 섬김을 누가 기뻐할 것인가.‘네 이웃을 사랑하라.’ 믿음이 높은 곳을 향할수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혼자만 구원에 이르기보다 남들과 함께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올라가는 게 천국이 아니라 여기서 당겨오는 게 하늘나라가 아닌가. 팬데믹이 얼른 지나가고 함께 교회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얼른 오도록 오늘은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탄압이 아닌 방역이 역병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모이지 않고도 믿음의 공동체가 든든해지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2021-01-27

주식리딩방

주식리딩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칭 투자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지않으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주식리딩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카톡방 회원들의 투자성공담이라며 수익이 난 계좌정보 등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투자수익에 귀가 솔깃해진 투자자가 가입 또는 투자 문의를 하면 고액의 회원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회원 가입비를 요구하는 주식리딩방의 경우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를 요구한다. 가입하고 난 뒤 주식리딩방이 지시한 대로 주식거래를 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제서야 납부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해도 상대방은 환불을 거부한다. 위탁투자를 위해 돈을 보낸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고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인다. 가령 개인투자자가 리딩방이 알려준 주식 사이트로 2천만원을 입금하면 얼마 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돈과 수익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돈을 환급받으려면 수수로 등으로 인해 오히려 8천만원을 더 내야 환급이 가능하단다. 만약 요구한 돈을 만들어 보낸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돈을 환급해주기는 커녕 또 다시 “돈을 더 넣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주식에 왕도는 없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7

수도권 인구 집중, 더 고질화 되고 있다

지방의 젊은 인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방도시마다 젊은층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는 지방 도시에 젊은이가 머물리가 만무하다.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15년간 50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수도권은 되레 인구가 늘어났다. 2019년 말로 수도권의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국내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을 넘어섰다.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역전한 것이다.50년전인 1970년도 수도권 인구는 913만명으로 비수도권 인구 2천312만명을 포함한 국내 인구의 40%선에 불과했다.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이제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국내 인구이동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도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는 모두 8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11만1천700명)이후 1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 등 전국 지방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빠져나가 서울 등 수도권의 인구를 늘리는데 한 몫했다. 지난해는 집값 폭등으로 서울에서 빠져나온 인구가 경기도로 주소를 옮기면서 경기도에는 순유입 인구가 무려 16만8천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지방에서 인구 유출이 가장 많은 도시는 대구와 경북, 경남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1만7천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다. 부산, 경남, 울산에서도 작년 한해동안 3만4천명의 인구가 유출됐다. 유출된 인구의 거의 절반은 젊은층이다. 대구에서는 9천410명, 경북에서는 6천209명 등 모두 1만5천여명의 20대, 30대 인구가 수도권으로 순유출됐다.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으로 한동안 주춤하던 수도권 인구 증가세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도시의 인구 유출은 도시의 노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로 이어지면서 도시의 존립 자체를 흔들만큼 심각하다.포항시가 인구 50만명 선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는 것처럼 지방도시들마다 같은 고민에 직면한 지 오래다. 인구 유입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지만 유입이 현실화된 지방도시는 거의 없다. 정부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없이는 고질화된 지방도시의 인구유출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2021-01-27

경찰의 잇단 부실수사 말썽… ‘국민불신’ 씻어내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취중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축소·은폐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경찰 수사관이 핵심 물증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진술들이 쏟아지면서 경찰의 거짓말이 치명적인 동티를 내는 양상이다. 경찰의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택시기사의 증언에 의존해 내사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애초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속속 드러나 ‘국민불신’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7일 사건을 처음 담당했던 서울 서초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다른 진술이 거듭해서 나오면서 검찰은 사건 무마의 배경이 무엇인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경찰은 당초에 택시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단순 폭행 사건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택시기사가 휴대폰에 저장된 복원 영상을 수사관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블랙박스 영상을 복구해 보여준 업주 역시 “경찰의 전화문의에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오히려 “영상 못 본 것으로 할게요”라며 묵살했다는 피해 택시기사의 진술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가 논란이 됐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도 167일간 전담팀을 투입하고도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다.올해부터 ‘수사종결권’까지 확보한 공룡 경찰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경찰 스스로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수준의 엄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재발방지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경찰은 13만의 거대 조직이어서 크고 작은 실수는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경찰 출신 황운하 민주당 의원의 두둔에 한숨이 절로 난다. 경찰의 부실한 ‘사법’ 처리가 계속될 수 있으니 국민더러 그저 양해하라는 말이 과연 이치에 맞는가. 갑갑한 노릇이다.

2021-01-27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

손실보상법, 절박성 살피되 ‘졸속추진’ 말아야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돼온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법에 대해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이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식약처·질병관리청 2021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손실보상을 제도화할 방안을 당정이 함께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여야 정치권이 마주 앉아 벼랑 끝에 다다른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처지를 충실히 반영하길 바란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허점투성이 ‘졸속추진’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강제한 조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은 여야 간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있다. 여당은 입법을 통해 실행하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다른 접근법을 주장한다.나라 곳간지기인 홍남기 부총리의 “재정이 화수분이냐”는 항변에 정세균 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한 뒤, 결국 문 대통령이 ‘보상법 추진’을 지시했다. 법제화에 대해 비판적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다. 안 대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관권, 금권 선거를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난하면서 “공론화 기구를 국회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당장 숨넘어갈 지경인 영세 자영업자를 생각하면 신속하고도 실질적인 손실보상이 불가피하다. 안철수 대표의 아이디어처럼 소모적 싸움을 없애기 위해 국회에 공론화 기구를 설치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선거를 의식해 정치권이 ‘공치사(功致辭)’용으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국민의 처지를 악용하는 최악의 행태다. 여야 정치권이 원칙적으로 큰 이의가 없는 사안인 만큼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의 방안, 그러나 영세사업자들에게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을 넘어서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국민도 죽고, 나라도 망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정략 놀음부터 접어야 할 것이다.

2021-01-26

포항시 코로나 행정명령, 확산세 꺾는 계기 돼야

포항시가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가구당 1인 이상 코로나19 진단검사 실시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주민의 불편을 강제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포항 지역의 코로나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뜻도 된다.포항은 국내 3차례 코로나 유행기를 거치면서 1, 2차 때와는 달리 최근 3차 시기에 경북에서 가장 높은 감염율을 나타냈다. 포항은 그동안 모두 39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나 그 가운데 70%가 3차 유행기에 일어났다. 주 일일 평균 확진자가 5주 전에는 3.6명이었으나 최근 1주 사이 6.3명으로 늘었다. 무증상 감염자도 서울 등 타지역은 30% 수준이나 포항은 40%나 된다.일부 주민들은 포항시가 20만명에 달하는 시민에게 진단검사를 강제하면서 사전 홍보도 없이 갑자기 6일 안에 실시하겠다는 것은 시민 불편을 도외시한 결정이라며 비판도 한다. 안동시가 1가구 1인 검사를 자발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포항시가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그러나 포항지역의 n차 감염이 우려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으면 감염세 확산 방지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도권과 경북 다른 지역의 감염세는 줄어드는 데 반해 포항의 감염세가 늘어난다면 정확한 원인 규명도 해야 한다. 특히 전파력이 강한 20, 30대가 먼저 검사를 받아야 하며 최근 대량 발생으로 주목받는 목욕탕발 코로나 감염세 차단에도 당국이 적극 대처해야 한다.코로나19 확진자는 전국적으로 다소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나 지역별로는 산발적 발생이 여전하다. 특히 다중이용 실내시설이나 지인간 접촉 등을 통한 발생이 연속 이어져 일상 속의 코로나 안전준칙 준수가 절실한 때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누적 확진자 수는 1억명을 넘었다. 세계인구의 1.3%가 감염된 꼴이다. 누적 사망자 수도 214만명에 달한다. 코로나 백신의 공급은 아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이제 보름 후면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는 설 연휴다. 또다시 코로나 확산의 중대 고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포항시의 행정명령이 주민에게 불편을 주지만 기왕 시작했으면 감염세를 꺾는 확실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1-01-26

경찰과 거짓말

사실이 아닌지 알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또 뻔히 드러날 만큼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 한다.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쁘진 않으나 칭찬을 해줌으로써 상대가 희망이나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종종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필요악으로 쓰일 때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고의적 혹은 상습적으로 하면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도 흔하다.미국에서는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은 중범죄로 다스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이 도청보다 거짓 증언 때문에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우리 경찰이 또 한번 궁지에 몰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사종결한 사건의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이 커진 것이다.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는지는 이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 경찰의 증언이 합리적 의심을 받을만한 거짓으로 보인다. 언론도 경찰이 거짓으로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한다.거짓말이 영원히 감춰지길 바란다면 오산이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속성이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으려 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6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 /홍익대 교수

2021-01-25

신라 이전의 역사, 사로국 1

‘기원전 57년,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6촌 촌장들이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했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 짧은 기록은 마치 역사 상식처럼 알려지고, ‘천년 신라’라는 고유명사도 만들었다.그런데 이런 역사 기록이 사실(Fact)이 아니라면? 그렇다. 일반인이 흔히 아는 신라는 이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경주분지에 터전을 잡았던 사로국이 등장했을 따름이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는 4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성립하며, 그때부터 경상도 일대를 영역화한 고대 국가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신라 이전에 경주에서 성장하고 있던 사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사로국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0년(?)~356년으로 추정된다. 400여 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역사 기록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 더욱이 문헌 기록의 초기 역사는 신화, 설화의 형식을 취하거나 후대에 부풀려지고 연대가 맞지 않아서, 당시의 물질 자료를 분석하는 고고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번 칼럼은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을 2편에 걸쳐 다루기에 전반부(사로국의 소개와 주변국과의 관계), 후반부(사로국의 특징, 신라로의 전환 과정)로 나눠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사로국의 영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주시 일원으로 추정된다. 그 내부 구조는 비슷한 사회·문화를 공유한 5~6개의 지역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지역공동체(구, 군 규모의 행정 단위)를 ‘읍락’이라 부른다. 크고 작은 취락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다시 중심 촌락을 매개로 몇 개의 촌락이 뭉쳐 읍락을 형성했다. 이런 5~6개의 읍락이 결합해 초기 국가로 성장한 사회가 바로 ‘사로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국가로 조직화된 사로국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겼을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옮겨간다.사로국 사회를 이끈 중심 집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경주지역으로 유입된 외부 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무렵 사회, 문화 속 가장 큰 변화로 ‘목관묘’(널무덤)라고 일컫는 새로운 구조의 무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목관묘 부장품은 멀리 떨어진 선진 지역으로부터 교역을 통해 입수한 제의용 청동기를 비롯해, 철제 무기, 농·공구 등으로 일괄 교체된다. 이런 물질문화의 변화는 이전 시기 거대한 돌을 이용해 ‘지석묘’(고인돌)를 공동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거리 교역에 기반한 네트워크 사회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결국, 읍락 단위로 내부적 발전을 거듭해 나간 지역공동체에 선진 문화를 가진 외부 세력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정치체인 사로국이 형성되었고, 드디어 역사 무대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장기명학예연구사시간이 흐르면서 사로국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 ‘진한(辰韓)’이라는 경제적·사회적 연맹체를 이루게 된다. 진한 연맹체는 점차 한반도와 그 주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낙랑, 대방, 동예, 마한, 왜 등과 교류하며 역사에 본격적으로 흔적을 남겼고, 그 중심에는 진한 연맹의 맹주로서 사로국이 있었다. 이러한 진한 연맹체의 활발한 대외 교역의 결과물로 중국 한나라의 청동 거울과 동전, 왜(일본)에서 생산한 다양한 청동 무기류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경상도 일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외래계 문물들은 당시 경상도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불리는 회백색 토기 및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함께 사로국의 물질문화를 대표하게 된다.경제적 교역 공동체인 진한 네트워크는 문헌 기록에 남겨진 시점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확인되며, 4세기 중엽에 소속 국들이 사로국에 의해 신라로 통합될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된다. 마치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던 도시국가 폴리스 동맹체제처럼 각기 고유한 영역을 지니고 상호 간에 화합과 견제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삼한의 소국들은 활, 창, 방패와 같은 무기를 잘 사용했고, 비록 다투고 전쟁을 하더라도 서로 굴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라고 기록된 중국의 ‘진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렇지만 당시의 동북아시아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외적 상황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었으며, 사로국의 지배 집단과 내부 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시기 초기 국가는 결코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구조가 아니었고, 국읍이라는 국가 중심지는 고정불변에 가까운 ‘수도’로 볼 수 없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역사상(歷史像)을 제시한다. 최고 지배자의 호칭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이라 불리는 토착 용어로서 존장자(종교 주관 혹은 나이·덕이 많은 사람)를 의미하였으며, 3성(박씨, 석씨, 김씨) 집단이 교대로 이사금을 배출했다거나 국읍에 의한 읍락의 통제가 어려웠다는 상황이 엿보인다. 실제로 탁월한 무덤이나 거대한 건축물은 한 지점에서만 지속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3~4개 유력 집단이 그들만의 근거지를 기반으로 각축을 벌이는 양상을 띤다.하지만 사람과 권력은 어느 순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한 상황을 일순간에 변화시킨다. 더 이상, 바깥에서 불어오는 유동적 국제 정세와 안으로부터 국내 기반을 흔드는 견제 움직임은 국가 권력의 풍향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신라(新羅)라는 고대 국가로 새롭게 일신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와 내부 구조를 모두 장악할 수단과 정당화 기제가 필요했다. 이런 핵심 키워드를 제공한 것이 ‘철’과 ‘통합 이데올로기’였다. 역사적 시간은 점차 흘러,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2021-01-25

‘신춘문예’ 생각

매년 그렇듯 이번 1월 첫 주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며 보냈다. 이른바 ‘신춘병’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1월 1일이면 가슴께가 아리다. 떡국 대신 열등감과 좌절감, 분노를 끓여 먹었던 새해 첫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12월 초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 시즌이 되면 원고를 들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편 사고가 일어날까봐, 혹 시인을 꿈꾸는 집배원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써진 내 등기우편을 열어보고는 감탄하며 자기 이름으로 바꿔 낼까봐 우체국도 못 믿고 직접 갖다 주느라 그랬다. 그때부터 한 열흘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함을 마구 널뛰며 지냈다. 당선소감을 써보기도 하고, 신문에 실릴 사진을 고르기도 하고, 학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 상상도 하고, ‘20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해져 방송에 출연하는 망상에도 빠지곤 했다.12월 20일쯤부터 당선통보 전화가 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든 당선자가 확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1월 1일, 당선작들을 읽기 전 심사평부터 찾아 봤다. ‘예심은 통과했겠지’, ‘내 작품이 거론됐을 거야’… 눈 씻고 봐도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했다. 한 며칠 술만 마시며 지냈다. 내가 쓴 시들이 다 쓰레기 같았다. 삼성 계열사인 중앙일보에 본명으로 응모한 게 탈락 사유일 거라고 ‘음모론’을 써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심사평과 본심진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걸 10년 동안 했다.10년 동안 1월 1일에는 남들 박수나 쳐줬다. 2004년 동아일보 김성규 시인, 문화일보 김지훈 시인은 가까이서 보던 선배들,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2005년 한국일보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넋 놓고 감탄했던 시, 행간에 스민 죽음의 냄새가 시인에게도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를 동시 석권한 이윤설 시인은 정말 대단했다.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은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 이윤설 시인도 지난해 가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미나 시인, 조선일보 김윤이 시인, 2008년에는 경향신문 이제니 시인, 동아일보 이은규 시인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폭행했다. 퍽, 퍽, 퍽, 절망과 감탄, 질투가 피멍처럼! 2009년엔 김은주, 민구, 정영효, 이우성 등 훗날 주목받게 되는 시인들이 나란히 나왔다. 2010년에는 동아일보 유병록 시인, 2011년에는 조선일보 신철규 시인, 2012년에는 동아일보 안미옥 시인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 이병국 시인과 그간 수십 번 최종심에서 떨어진 ‘불운의 아이콘’ 이해존 시인의 경향신문 당선이 기억난다.그리고 2014년, 박세미, 최현우, 이소연 시인이 화려하게 데뷔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신춘문예를 내려놓았다. 연말에 ‘시인수첩’ 신인상에 투고했고, 떨어지면 이제 시 안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그 후 열심히 작품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다. 이제는 12월과 1월의 우울, 증오, 오기, 좌절, 망상, 마음 졸임, 초조함, 술병, 억지웃음, 거짓축하, 겨우 뱉어내는 괜찮다는 말, 눈물 같은 것들과 모두 작별했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신춘문예’는 여전히 아름답다.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등단 제도의 불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등단 제도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춘문예의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중앙일보는 정말로 신춘문예를 폐지했다. 앞으로 등단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피와 땀과 눈물어린 꿈이라면 신춘문예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을 이룬 2021년 당선자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러워요!

2021-01-25

경계에 선 사람들

무대에 선 한 가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호등이 바뀔 때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 사이의 노란 불빛이 3초간 빛나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학력이나 소속사 대신 ‘63호 가수’라고 소개했다.JTBC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출연자의 정보나 배경을 배제한 채, 익명성을 부여하여 출연자의 무대만을 조명한다.30호 가수는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며 소개한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며 자신을 전형적인 실력 없는 사람임을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기에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며 언뜻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조명이 꺼지고 노래가 시작되면 그간 숨겨 왔던 내밀한 경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어색하고 불안정하지만 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연이은 실패와 소외 속에서 꿈을 부르는 간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와 용기와 강인함을 준다. 다시 한 번 무대를 갖게 된 그들의 노래는 열렬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실패와 흠으로 꾸준히 엮었을 경계는 예리하면서도 단단한 테두리가 되어 보였고,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 가까웠다.윤여진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물결을 일으킨 존재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아 새롭게 탄생한다. 63호와 30호 가수는 심사위원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놀라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63호 가수는 투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로 방송 첫 화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다.30호 가수는 이효리의 댄스곡인 ‘치티치티뱅뱅’을 새로운 록 장르로 재해석하여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을 그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해 30년 전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노래라는 경계를 서성이고 확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다양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무수한 경계도 있고, 때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의 경계, 무지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의 경계, 읽기와 쓰기와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경계도 있다.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루 중 불쾌한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찬 퇴근길 지하철에선 어쩌다 부딪친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정류장 앞 오밀조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보았을 때나 일몰을 구경하던 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의 연한 경계가 드러나듯, 잠시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경계는 사물이나 기준을 나누는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구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경계하여 지키는 것이 있고, 반대로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와 자아를 발견하는 경계도 있다. 불교에서는 경계를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라 칭한다. 다시 주어진 무대를 묵묵히 그리며, 살아가며, 꿈과 현실로 행하는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약간의 운과 불운을 생각한다. 무엇을 경계 안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단단한 테두리가 되기도, 철조망이 되기도, 화단이 되기도, 무성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운에 가까워지며 조금 더 명징해질 것이다.

2021-01-25

與圈 ‘검찰 무력화’ 작전, 제2라운드 시작(?)

지난 연말연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무력화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된 뒤 여권에서 공언하던 제도적 검찰개혁이 ‘국가수사청 신설’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에 남은 6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을 신설될 기구로 이관하기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검찰에 일부 기소권만 남기고 모든 수사권을 제거하겠다는 이 움직임은 ‘검찰 무력화’ 제2라운드가 시작됐음을 뜻한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범으로 3급 이상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공수처가 담당하게 됐다. 검찰에 남긴 6대 범죄를 신설이 예고된 ‘국가수사청’에 넘기고, 나머지 범죄는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이 마지막으로 쥐고 있는 수사권까지 사실상 모두 타 기관으로 넘어가게 된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 출범으로 검찰 권력 분산과 권력기관 개혁을 바라는 국민 염원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속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허영 대변인도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 등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고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검찰을 압박했다.그러잖아도 민주당·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 국회의원 107명이 이른바 ‘사법 농단’에 연루된 임성근·이동근 부장판사 탄핵 소추를 제안한 일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또 김진욱 공수처장이 자신의 차장 제청권과 관련해 ‘복수 제청’ 가능성을 언급해 독립성 의지에 새로운 의문이 일고 있는 판이다.집권 여당의 노골적인 ‘검찰 무력화’ 움직임에는 여러 가지 우려가 따라붙는다. ‘수사권 분산’ 같은 중대한 제도변화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민주당의 접근은 아무리 봐도 졸속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검찰의 수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무력화하기 위한 불순한 책략을 ‘검찰개혁’으로 포장해내는 것이라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승자독식’의 꿀맛에 취해 국회를 통법부(通法府)로 전락시키는 비극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2021-01-25

포항 인구 늘리기, 단발성 캠페인 그쳐선 안돼

포항시가 인구 50만명 선 지키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포항시 인구는 50만2천916명으로 한해동안 4천109명이 줄어들었다. 현재의 추세로 본다면 올 연말이면 포항시 인구는 50만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지난해 10월부터 우리나라 인구는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을 시작했다. 인구 감소는 포항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로 부각돼 있다.이런 인구 감소에 자극받아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새해 들자마자 인구 유입을 위한 출산 장려금 지급 등 각종 아이디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지자체의 고육지책이 눈물겨울 정도다. 포항시도 이런 범주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특히 포항시는 인구 50만명이 무너지면 경북도내 제1도시로서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행정적 불이익도 많다. 현재 비자치구인 2개 구청이 없어지며 행정조직이 축소되고 지방재정도 감소돼야 한다.그러나 포항시가 현재 벌이고 있는 인구 유입을 위한 각종 캠페인성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치단체마다 이미 포항시 수준의 선심 정책을 다 내놓고 있어 지자체간 제살깎아먹기가 반복될 뿐이라는 것이다.포항시는 주소이전 지원금 30만원 지급과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 등을 펼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가 출산장려금 1억원을 내건 것과 비교하면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포항시의 인구감소는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자연감소(650명)보다 사회적 감소(3천459명) 요인이 훨씬 크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15∼39세 청년층의 인구 유출이 2만명에 달해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전국적 인구 감소 추세에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겠으나 기업유치나 좋은 일자리 창출은 지자체의 노력이 수반돼야 할 문제다.2018년 상주시가 인구 10만명 유지를 위해 공무원이 상복차림으로 출근하는 충격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단발성 행사로는 인구 유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보육과 교육 등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장기적 안목의 인구 유입책이 있어야 한다.

202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