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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더를 키우는 리더’ 슈퍼보스의 모든 것

“위대한 리더들은 자석처럼 인재를 끌어당긴다”패션계 대부 랠프 로런, 일류 요리사 앨리스 워터스, 광고계 거물 제이 치아트 등등. 이들은 다른 리더와 달리 ‘특별한 성공’을 거뒀다. 자신만 성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 후배들 또한 성공하게 이끌었다는 점에서 다른 리더들과 차별화된다. 이들은 자신만 빛나는 ‘슈퍼스타’가 아닌,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까지 빛나게 하는 리더, 바로 ‘슈퍼보스’였다.미국의 세계적 경영학자이자 러디섭 전문가인 저자 시드니 핑켈스타인(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 교수)은 지난 10년간 인재를 키운 ‘슈퍼보스’에 대해 추적해왔다. 200차례 이상 인터뷰를 실시하고, 수천 개의 기사, 책, 논문, 구술 기록을 샅샅이 살피고, 서른여섯 편의 사례연구를 작성하는 등 광범위하고도 철저하게 연구를 진행해 IT업계, 스포츠계, 광고계, 식료품계, 헤지펀드계, 패션계, 방송계 등 다수의 업계를 아우르는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한다. 각 업계에서 잘나가는 리더 50명 중 15~20명은 한때 한 명 또는 몇몇 ‘인재 육성자들’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슈퍼보스’를 통해 시드니 핑켈스타인은 10년간 추적한 결과물을 집대성해 ‘리더를 키우는 리더’ 슈퍼보스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친다.‘슈퍼보스’는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에서는 슈퍼보스를 정의하면서 연구과정에 대해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2장부터 8장까지는 ‘슈퍼보스의 전술’을 하나씩 공개한다. 세계 정상급 리더들은 사용하지만 다른 리더들은 사용하지 않는 그들만의 기술, 사고방식, 철학, 비밀을 낱낱이 소개한다. 9장에서는 관리자들과 리더들이 슈퍼보스식 접근법을 자신의 커리어뿐 아니라 경영방식,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안내한다.그동안 상식, 심리학과 빅데이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낯설고 특이해 보이는 방식으로 인적 자원을 누구보다 잘 키워내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우리에겐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절실하다. 시드니 핑켈스타인은 다채로운 슈퍼보스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우리가 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끌어오고 고용할지를, 어떻게 리더로 키워낼 수 있을지를, 즉 인재 관리 및 개발에 대한 종합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한다.슈퍼보스들은 인재를 육성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같지만 직원들을 어떻게 동기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통 파괴형, 최고 지향형, 그리고 양육형으로 나뉜다.전통 파괴형 슈퍼보스는 자기 비전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인재를 키운다.최고 지향형 슈퍼보스는 이기기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와 팀을 확보해야 하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그들을 동기부여해 더 높은 성과를 거두도록 밀어붙인다. 양육형 슈퍼보스는 단순히 멘토처럼 몇 가지 유용한 조언을 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치 장인을 사사하는 것처럼 바로 지척에서 업무에 관해 정확히 피드백을 해주며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가르친다.저자는 “사람은 모든 전략의 핵심이며, 어떤 리더라도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무엇보다도 인재 풀을 활성화해야 한다. 슈퍼보스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업상 성공을 거둔다”고 강조한다.이 책은 제이크루의 밀러드 드렉슬러 회장의 추천사처럼 “리더들이 실제로 왕성한 호기심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독려하고 성장시키는지 그 놀라운 인재관리법을 보여준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0-02-06

역사상 최강의 힘을 가진 제국, 미국의 연대기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 바로 미국이다. 어떤 나라도, 국제연합도 제재를 가하거나 압력을 넣을 수 없는 나라, 오직 내부의 분열과 경제 하락만이 스스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초강력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만큼 평화, 자유, 인권을 강조하는 나라가 없을 만큼 미국은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인 지금도 스스로를 공화국이자 세계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임하고 있다. 어떻게 해 미국은 이렇게 강력해졌을까? 왜 미국은 100년이 넘도록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며, 앞으로 펼쳐질 우주시대에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기술과 자본, 자원과 영토, 사회와 제도 등 모든 면에서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간 미국의 성장과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대니얼 임머바르 역사학과 교수는 착안점을 달리해서 이 문제를 생각보자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출간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낸 저서 ‘미국, 제국의 연대기: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원제 How to Hide an Empire)에서 ‘영토’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미국은 두 종류의 영토가 있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 법적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로 말이다. 전자는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이고, 후자는 전세계에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다수의 미국령 섬과 제도, 기지들이다. 점묘주의 제국 미국은 식민지, 미국령 등에서 다양한 자원을 획득해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지로 해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런 영토의 존재가 그간 미국을 얘기할 때는 잊혀졌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오늘날 미국 지도는 50개주로 구성된 익숙한 모습이다. 실제 영토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우선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이 빠져 있다. 이게 전부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퍼져 있는 섬들 등 훨씬 많은 영토와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 미군 기지는 800개가 넘는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그 외의 모든 나라가 보유중인 기지를 다 합쳐도 30개에 불과한데 말이다.이 책엔 ‘로고 지도’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미국을 한정시킨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지도다. 그러나 그 다음 페이지에는 1941년 무렵 미국 영토였던 곳까지 포함시킨 확장된 미국 지도가 제시된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미국령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모두 포함된 지도다. 둘의 차이는 확연하다.미국이 섬들을 점령한 이유는 대부분 군사적 필요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 지도는 대규모 식민지든 아주 작은 섬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배제한다. 게다가 그런 지도는 진실을 호도한다. 로고 지도만 보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균일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자발적으로 편입된 주들로 구성된 연합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사실이었던 적도 없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조약이 비준된 그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주와 영토의 집합으로 이뤄진 국가다.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20세기의 중반을 지날 무렵 ‘식민지’들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이로써 시작되기 때문이다.이 책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문 초고 사진이 실려 있다. 직접 펜으로 교정을 본 초고에서는 필리핀이 지워져 있고 하와이가 부각되었다. 연설의 내용은 일본의 미국 공격을 규탄하는 것이다. 필리핀을 지워버린 이유는 당시 미국인들은 필리핀을 전혀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와이는 달랐다. 미국과 가까웠고, 백인의 거주 비율이 높았다. 실제로는 필리핀이 훨씬 거대한 면적과 인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전쟁에 대한 여론을 고취시키기 위해 필리핀을 없애고 하와이를 부각시켰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미국의 해외 영토인 푸에르토리코를 덮쳐 큰 피해를 입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땅이라는 걸 아는 미국인은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고, 30세 이하에서는 37퍼센트에 그쳤다. 그러나 실상은 전 세계가 미국의 영토나 기지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특히 미국인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0-01-16

격동의 20세기, ‘시일야방성대곡’에서 ‘독립선언서’까지

‘한국 산문선: 근대의 피 끓는 명문’(민음사)이 출간됐다. 우리나라의 고전 명문을 총망라해 각종 매체의 주목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 산문선’(전 9권)의 특별편이다. 우리 고전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안대회, 이현일, 이종묵, 장유승, 정민, 이홍식 6인의 한문학자가 이번에는 20세기의 명문 39편을 엮고 옮겼다. 외세 침략으로 시작된 격동의 시대, 낡은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바꿔 나간 ‘대한 사람’의 시대정신이 약동하는 뜨거운 문장들을 만난다.1866년,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입한 병인양요가 일어났다.이로부터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과 동학 농민 운동 등의 큰 사건들이 잇따랐다. 1897년 조선은 대한 제국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결국 을사늑약을 거쳐 국권이 피탈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건 속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1부 ‘근대의 격랑’에서는 ‘개화’와 ‘독립’이 키워드인 글들에서 일본은 물론 모든 외세에 예속되지 않으려 한 시대정신을 만날 수 있다. 2부 ‘급변하는 사회’는 학문과 예술, 과학과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각자들이 제시한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실었다. 3부 ‘난세의 인물상’은 책에서 가장 문학적인 부분이니 황현, 김옥균, 이건승, 안중근, 민영환, 신채호 등 불우한 시대의 영웅 또는 개인의 내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1-16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해녀 할 거다’

‘물질하면 밥은 안 굶는다’고 할 정도로 한때 어촌을 받쳐주는 든든한 직업이었던 해녀. 하지만 고령화와 고된 노동으로 대를 이을 세대가 사라져 당장 몇 해 뒤에 동해안 해녀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지해녀의 일과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조명한 구술생애사가 나와 화제다.경북여성정책개발원(원장 최미화)과 영덕군(군수 이희진)이 펴낸 ‘영덕 해녀 구술생애사 :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해녀 할 거다’에는 바다와 평생을 함께 해 온 65세 이상 고령의 영덕 해녀들이 들려주는 곡진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대부분 10대 때부터 본격적으로 물질을 시작해 경력 최고 65년, 최소 40년 이상인 베테랑 해녀들로서, 영덕읍 대부리 최고령 해녀인 전일순(82)을 비롯해 창포리 김경자(79), 경정2리 김복조(79), 석리 김옥란(73), 대진3리 이석란(70), 축산리 김순남(70), 삼사리 김임선(69), 경정1리 최영순(68), 노물리 김숙자(67), 금곡리 권순이(65) 해녀 10명이 그 주인공이다.책에는 오래된 경력만큼이나 분투하며 살아온 해녀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 있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3일 만에 물질을 나서야 했던 사연, 어릴 적 앓은 눈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남편도 모르게 지금껏 물질한 이야기,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한 중학교가 미련이 남아 “그때 학교를 댕길라고 울 건데”라며 후회하는 모습,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회한. 옛날에는 ‘금바다’라고 부를 정도로 해산물이 많았으나 바다 환경 변화로 이제는 물질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는 걱정 등 10명의 해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어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여성들의 작은 역사가 오롯이 기록돼 있다.책을 통해 개인 생애사와 함께 해녀로서의 일과 생활, 그간의 변화와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퐁당 자무질(새내기 해녀의 어설픈 물질), 하도불(물질 후 옷을 말리기 위해 지피는 화톳불)과 같은 영덕해녀 특유의 말을 찾아 책읽기의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최미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은 “해녀문화가 경북 동해안 관광의 키 포인트가 돼 새로운 관광문화콘텐츠 개발 및 관광산업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1-13

고전읽기는 학습이 아닌 훈련이 필요한 영역

“사실, 독서는 훈련이다”누구나 고전을 읽고 싶어 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TV나 휴대폰, 인터넷과 유튜브를 들여다보긴 쉬워도 30분간 책에 집중하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를 에워싼 미디어가 문제인 걸까? ‘독서의 즐거움’(민음사)의 저자 미국의 교육자 겸 소설가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미디어가 현대인의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별개로 독서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독서는 TV가 등장하기 전부터 집중을 요하는 활동이었고, 고전을 읽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학습보다 스스로의 훈련과 숙련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전을 엄선해 소개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힘으로 꾸준히 고전을 읽어 나갈 방법부터 체계적으로 알려준다.영미권에서 이미 고전 독서의 길잡이로 널리 알려진 이 책을 열기 전에 저자의 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시리즈로 알려진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해외에서는 고전과 역사를 주제로 자신의 지식을 쉽고 직설적인 문체로 균형감 있게 풀어쓰는 저술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그의 책들은 전 세계 20만 사서와 교육자의 커뮤니티인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의 추천을 받고 있다. 초중고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이수해 문학과 언어 부문에서 미국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이며 미 대통령을 여럿 배출한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에 대통령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해 모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한 저자는, 자신의 독학 경험에 더해 네 자녀를 홈스쿨링으로 키운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을 통해 다른 분야와 달리 고전 독서만은 제도권 교육으로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스스로 훈련해 나가야 하는 영역임을 강조한다.‘독서의 즐거움’의 백미는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과학이라는 여섯 분야의 장르별 독서법과 함께 우리 시대에 꼭 읽어야 할 고전의 목록이겠지만, 그에 앞서 ‘하루 중 독서에 전념할 30분 마련하기’, ‘저녁보다는 아침 독서’, ‘독서 노트에 발췌하고 요약하기’와 같은 구체적이고 간단한 지침에서 시작해 모든 분야의 책을 ‘이해, 분석, 평가’의 3단계에 걸쳐 세 번 읽기에 이르기까지, 주요 고전 목록에 앞서 스스로의 힘으로 꾸준히 고전을 읽어 나갈 방법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이 책은 십여 년 전 출간된 초판에 21세기의 고전 및 과학서 파트가 추가된 전면 개정판으로 1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에서는 고전 독서를 위한 준비와 독서 일기 쓰는 법을, 2부 ‘독서의 즐거움’에서는 소설,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과학서 여섯 분야의 장르별 독서법을 알려 주는 한편, 각 장르별 말미에 해당 분야의 고전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고대의 전통과 현대 작품들 간의 중요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80여 편의 엄선된 고전 목록이 줄거리와 함께 수록돼 한 분야의 기초가 되는 작품부터 시작해 체계적인 독서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0-01-09

‘인생이라는 강’에 ‘용서라는 징검다리’를 놓는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시 ‘새벽별’ 전문)사랑과 고통을 노래하며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시편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당신을 찾아서’(창비)가 출간됐다. 열세번째 시집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눈물의 고해성사를 통해 인간이라는 불씨, 인간이라는 새싹을 살려내”(문태준, 추천사)는 뭉클한 감동이 서린 순정한 서정 세계를 선보인다.진솔하고 투명한 언어에 깃든 “불교적 직관과 기독교적 묵상과 도교적 달관”(이숭원, 해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정결한 시편들이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잔잔하게 울린다. 모두 125편의 시를 각부에 25편씩 5부로 나눠 실었으며, 이 중 100여 편이 미발표 신작시다.정호승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지나온 삶을 겸허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내 시의 화두는 고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살아갈수록 상처는 별빛처럼 빛나는 것”(‘부석사 가는 길’)이고,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가 삶을 성찰하는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눈물마저 말라”버린 “목마른 인생”(‘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고통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고통은 또한 용서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기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에 진심을 바쳐온 시인은 간절한 손길로 “인생이라는 강”에 “용서라는 징검다리”(‘유다를 만난 저녁’)를 놓는다.인생의 의미와 가치,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탐구해온 시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을 사랑과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갈망해온 그의 시선은 늘 “인생을 잃고 쓰러진”(‘겨울 연밭’) 연약한 존재들에게 머물며 삶의 그늘진 구석을 응시한다. 시인은 이제 비루한 삶의 낮은 곳에서도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먼지의 꿈’)을 꿈꾸며 “푸른 겨울 하늘을 날아/붓다를 찾아가는/작은 새”(‘낙인(烙印)’)가 돼 절대적 진리와의 만남을 갈망한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당신을 찾아서’) 절대적 진리의 상징인 ‘당신’을 찾아서 “평생의 눈물이 얼어붙은/저 겨울 강”(‘겨울 강에게’)을 건너는 시인의 열망은 뜨겁다 못해 눈물겹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1-09

왜 인구가 줄어들면 위험하다고만 하는 걸까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인구 절벽’ 등 줄어드는 인구에 따른 사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범지구적 문제다. 인구가 줄어들면 고용 시장이 감소되고, 이에 따라 과거의 인구수에 맞춘 국가 정책이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제반도 변할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과연 위기나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만 할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책을 지금 준비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본의 지성’이라 불리는 우치다 다쓰루(70)가 편저로 참여한‘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위즈덤하우스)은 인류학·사회학·지역학·정치학 등 각 분야별 10인의 전문가들이 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를 주제로 쓴 논의들을 엮었다.우치다 다쓰루는 인구 감소는 중요한 문제지만, 일본 사회에는 아직 위기의식이 부족하며, 위험한 상황이 예측되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회피하는 현실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극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를 진단하고, 냉철하고 계량적인 지성을 모아 미래를 대비할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이 책은 인구 감소 사회에 당면한 지금,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논의들을 제공한다.2019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2019년 인구의 14.9퍼센트를 차지하는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은 48년 뒤인 2067년 46.5퍼센트로 증가하고, 인구의 72.7퍼센트인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67년 45.4퍼센트로 낮아진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문제는 한국의 미래가 달린 주요 논안 중 하나다. 하지만 인구가 사라지는 사회에 대한 불안한 예측만 무성할 뿐, 정작 출산을 적극 장려하려는 지원 정책 수준은 미비하다. 그렇다고 출산율만 높인다고 해서 이런 현상이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인구 감소 문제를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논의들을 담은 이 책은 한국의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로 살펴보는 인구동태와 종의 생존 전략, 인공지능시대의 고용과 경제의 변화, 도시와 지방의 인구 격차와 해결 방안, 만혼화·비혼화의 윤리적 원인, 재정을 축소하는 유럽의 사례와 인구 문제, 도시와 지방을 살려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건축, 지방 주민을 늘리는 문화적 사회포섭,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공동체 운동, 여성에게 출산의 책임을 강요하는 사회 비판, 일본의 ‘사양’과 인구 변화에 대한 정치적 문제 등 다양한 시각으로 인구 감소 문제를 접근하도록 유도한다.인구 감소의 현실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도시와 지방의 인구 격차다. 인구가 몰려들어 포화 상태인 도시에 비해, 지방은 점점 주민이 줄어들면서 소멸되고 있다. 도시에서도 노인 인구는 해마다 증가하므로, 지방을 활용한 인구 분산 정책이 시급하다.이 책의 7장에 실린 일본의 오카야마현 나기초 마을은 도시와 지방의 격차를 줄일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인구 6천 명 정도의 나기초 마을은 2014년 기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출생률을 기록하며 유명해졌다. ‘나기 차일드 홈’이라는 육아 지원 시설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육아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공영 주택을 제공한다. 또한 도시처럼 문화적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도시와 지방의 격차는 줄이고 출산율을 높여 인구 감소 사회의 문제를 헤쳐 나갈 방안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한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위기 상황 이전에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고, 미래 세대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낸다면 인구 감소 사회의 미래는 긍정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축소되고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장만 고집하는 모든 체제에서 한발 물러나 사람이 생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마련한다면 미래 세대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1-02

항일 여성 작가 백신애 중단편선집 출간

일제시대 여성작가이자 항일운동가, 계몽운동가로 활동한 소설가 백신애(1908~1939)의 중단편선집 ‘혼명에서’(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만주와 시베리아를 방황하는 실향민을 그린 ‘꺼래이’, 현모양처 삶을 살았으나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을 그린 ‘광인수기’ 등 그의 문학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주요 작품 16편이 망라돼 있다.소설가 백신애1929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한 백신애는 영천 출신으로 1939년 불과 31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소설 20여 편, 수필 등 30여 편을 남겼다. 생전에 작품집이 출판되지 않은데다 작품이 다소 거칠고 과격하다는 평으로 인해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한국 여성 작가들을 살피는 연구가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백신애 문학의 다양한 가치가 재평가됐고, 이후 백신애는 강경애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한국문학계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백신애의 문학 세계는 극심한 가난과 봉건적 인습의 굴레에 갇힌 여성들의 비극, 또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살아낸 짧지만 강렬했던 삶과 지녔던 치열한 문제의식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1-02

세계 최고 부자의 아내에서 세계 최대 자선단체 경영자로

멜린다 게이츠(55)는 세계 최고 부자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64)의 아내다. 그녀는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 빌 앤 멜린다 자선재단 경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간 ‘누구도 멈출 수 없다’(부키)는 멜린다 게이츠가 자신의 인생과 더 나은 세상,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길에 관해 이야기한다.1993년 빌 게이츠와 약혼 여행으로 떠난 아프리카에서 멜린다 게이츠는 비통한 빈곤의 현장을 마주 한다. 그 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퇴사한 후 가정주부로 살고 있던 1997년, 뉴욕타임스에서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은 그녀는 ‘어째서 세계의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행동가들을 모으기 시작한다.2000년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멜린다의 행보는 명예를 위해 재단을 세우고 책상 앞에서 자선을 실천했던 기존 부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남편 빌 게이츠와 함께 350억 달러(41조7천억 원)를 기부하고 ‘진짜’ 빈곤과 질병 원인을 찾아 전 세계의 ‘현장’을 누빈다. 해당국이 제공하는 통계 숫자는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재단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즉각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 책은 그렇게 찾아낸 세계 빈곤 퇴치의 핵심인 가족계획, 무급노동, 조혼, 여자아이 교육, 직장 내 성 평등 문제 등 9가지 문제에 대해 그녀가 20년간 들인 노력이 들어 있다. 선의와 희망으로 세상을 돕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지금까지 계산되지 않았던 수치와 데이터로 실제로 세계를 바꾸는 담대한 여정이 펼쳐진다.‘여성의 권한이 강화되면 인류는 번영한다.’ 멜린다는 이것이 과거 20년 동안 자선 사업을 하면서 자신이 얻은 통찰인 동시에 그동안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중대한 아이디어였다고 밝힌다. /윤희정기자

2019-12-26

논어 속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수 있는가

“위트를 타고 삶의 미시와 거시 사이를 활강하는 글쓰기”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거리를 차원 높은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요즘 가장 핫한 지식인, 서울대 김영민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새 책이 나왔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논어 에세이’(사회평론)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동양고전 ‘논어(論語)’에 대한 에세이다. 저자는 ‘불후의 고전’을 ‘살아 있는 지혜’로 포장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그의 희망은 소박하다. 고전을 매개로 해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돼보자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몸담은 삶과 세계라는 텍스트일 터, 2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살아남은 ‘논어’에 수많은 이들이 주석을 달고 지금까지도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이자 김영민만의 시선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저자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고전 ‘논어’라는 헌 부대에 지금 ‘세상’이라는 새 술을 붓고, 자신만의 주특기인 본질적인 질문 던지기와 자유롭고 독창적인 글쓰기를 버무려 전혀 새로운 장르를 발효해냈다.공자는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영민은 ‘논어’ 텍스트 전체가 “발화한 것, 침묵한 것, 침묵하겠다고 발화한 것”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침묵을 매질로 삼은 메시지는 그에 걸맞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요구한다. 따라서 이러한 분류를 염두에 두고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자세로 ‘논어’를 탐사해 나가자고 제안한다.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 공자를 통해 단순한 침묵이나 생략으로 보이는 것들이 갖는 전복적인 성격을 간파하기. 이렇듯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직조한 글쓰기로 해당 텍스트를 넘어 보다 넓은 콘텍스트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김영민은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가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한 데 주목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허나 결함이 있더라도 자신의 결함을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윤희정기자

2019-12-26

이해할 수 없는 우연으로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강희영의 장편소설 ‘최단경로’(문학동네)는 한국문학에 또렷한 이정표를 새긴 걸출한 작품들을 산출해낸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5회 수상작이다.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소설가 박민정), “에너지와 기운이 강력한 소설”(소설가 정용준)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작품이다.전임자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발견한 라디오 피디 ‘혜서’와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이 각각 소리의 정체와 사고의 근원을 추적하는 여정에서 불가해한 우연으로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다. 각자 다른 시선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로 정교하게 수렴되는 탁월한 구성력과 완결성, 읽는 이의 마음에 곧바로 가닿는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자인 ‘진혁’으로부터 인수인계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건네받는다. 그런데 우연히 열어본 노트북 맵의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상태이고, 맵에는 진혁이 떠난다던 시드니가 아닌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혁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발견한 혜서는 늘 의뭉스러웠던 진혁의 태도에 의문이 더해져 맵의 검색 기록을 단서로 그의 뒤를 좇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차례의 엇갈림 끝에 애영과 마주친 혜서는, 고등학생 때 진혁과 연인관계였던 애영이 임신 사실을 외면하는 그를 뒤로한 채 암스테르담에서 미술가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19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까?

심리학은 인문학일까, 과학일까, 아니면 그 둘이 융합된 것일까? 우리는 생물학, 철학, 사회학, 의학, 인류학, 인공 지능 등 수많은 학문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심리학에 매료된다. 심리학의 본질은 마음의 작용에 근거해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들은 우리가 자신을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가를 결정한다. 하지만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생물학적 과정들이기도 하다.직관적 인포그래픽과 핵심 설명으로 이름난 ‘세상의 원리 시리즈’ 의 다섯번째이자 최신판 ‘심리 원리: 인포그래픽 심리학 팩트 가이드(How Psychology Works: Applied Psychology Visually Explained)’(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됐다.이 책은 영국 백과사전 출판 명가 돌링 킨더슬리가 기획한 전문 필진의 원고에 더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최신 주석이 포함됨으로써 더욱 이해하기 쉬운 심리 가이드북이다.‘심리학 개론’, ‘심리 장애’, ‘심리 치료법’, ‘실생활 속 심리학’등 4부로 구성돼 이론에서 치료, 개인적 문제에서 실제적 적용에 이르는 심리학의 모든 측면을 다뤘다.1부 ‘심리학 개론’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을 소개하고 심리학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장이다. 심리학의 다양한 접근법들은 사람의 생각과 기억, 감정의 원리를 푸는 열쇠를 찾아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심리학의 발전은 대부분 최근 약 150년 사이에 이뤄졌지만 심리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해 왔다.마음속의 무의식적 갈등이 성격 발달을 결정하고 행동을 좌우한다고 설명하거나(정신 분석학), 사람들의 행동이 세상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학습되는 것으로 잠재의식의 영향과는 관계가 없다는 전제를 기초로 사람들을 이해하고 분석(행동주의)한다.2부 ‘심리 장애’에서 다루는 심리 장애 증상들은 대개 순환적인 사고, 감정, 행동과 관련돼 있다. 4명 중 1명이 일생 중 한 번 이상 정신 장애나 신경학적 장애를 겪는다. 심리 장애를 의학적으로 진단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보이는 신체적, 심리적 증상의 패턴을 특정한 심리 장애의 증상에 해당하는 행동에 매칭시키는 복잡한 과정이다. 학습 장애나 신경 심리학적 문제는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기능 장애들은 수많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에 진단하기가 더 어렵다.3부 ‘심리 치료법’을 통해 심리학 접근 이론만큼 다양한 유형의 심리 치료법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접근법들마다 다양한 치료 방향을 제시한다. 보건 영역에서 심리학은 구성원들의 정신 건강과 그와 연관된 신체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심리 치료들은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사람들이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에 해로운 사고, 행동, 정서를 수정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것을 일깨워 줘 자기 인식을 증진하도록 돕는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각각의 장애에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4부 ‘실생활 속 심리학’에서는 응용 심리학의 각 분야를 다룬다. 효과적으로 학습하려면 뇌 회로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협상할 때 긴장을 줄여 주는 기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광고주들은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기 위해 어떤 심리학 기법을 사용할까? 심리학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 끊임없이 변하는 학문을 구성하는 모든 다양한 이론과 장애, 치료법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교육, 직장이나 스포츠 혹은 개인적 인간 관계나 애정 관계, 심지어는 돈을 쓰는 방식이나 투표 행위조차도 각각 해당하는 심리학 분야가 있으며 누구나 지속적으로 심리학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 광고와 스포츠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방면에 대해 심리학적 연구가 이뤄진다. 사람들이 일할 때나 놀 때나 어떤 식으로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지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19

미술 감상?난,한 곳만 판다

“미술은 어렵다?!” 이 어렵다는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그림감상은 어떨까?‘원 포인트 그림감상’(아트북스)은 미술책 애독자이자 미술 애호가로서 그간 ‘미술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해 온 정민영씨가 그림 앞에서 난감해하는 관람자를 위해 색다른 그림 감상법, 즉 ‘원 포인트 그림감상’을 소개한다.저자의 전략은 이렇다.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소재면 소재, 물성이면 물성, 인물이면 인물, 사물이면 사물, 어느 하나의 요소에 집중해 공략하는 그림감상법이다. 마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배우 유오성(무대포 역)이 “난 한 놈만 팬다”라고 외치며 한 목표물(?)에만 돌진했듯이, ‘그림의 한 요소 패기’ 전략이다. 그렇게 하면 작품 전체 혹은 작가의 의도를 꿸 수 있다는 이야기다.‘원 포인트 그림감상’은 빨리 보고 많이 보는 수박 겉핥기 식의 ‘패스트 감상’이 아니라 천천히 보고 찬찬히 살펴보는 ‘슬로 감상’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을 좀 더 오래 관찰하고 작품을 곱씹어 보면 스스로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작품에 보다 밀착하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을 감상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위해 감상자와 그림 사이에 여백을 두자는 말이다. 그림은 화가의 마음이자 화가가 포착한 세상의 마음이기에, 화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저자가 제안하는 그림감상은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조형요소를 제치고 한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기 전략이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 내재돼 있는 조형요소 중 한두 요소를 파고드는 감상법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작품은 관람자의 눈을 통해 감상당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감상하는 행위를 배제하면 작품은 생명을 잃은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감상은 작품에 관람자의 마음을 주고 전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감상 포인트는 직접적·간접적 요소로 나눠 찾을 수 있겠다. 직접적인 요소로는 소재·구성·색상 등이 있고, 간접적인 요소로는 서명·낙관·작품명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최적의 감상 포인트는 ‘원 포인트 소재’에서 찾는 것이다. 감상 포인트를 소재에서 찾아 나름의 요령이 생기면 그때는 자기 방식으로 감상하면 된다. 물론 감상에 정답이란 없다.그림감상에서 중요한 것은 관람자 저마다의 감상이다. 작품에 대한 선지식이나 선입견 없이 오로지 관람자의 눈이나 마음으로 바라볼 때, 또는 관람자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힘이 발휘할 때 작품은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의 가치는 관람자의 시선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에 더해 지은이는 구글링을 적극 활용해 관련 정보를 감상의 재료로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감상은 ‘검색하기’가 아니라 ‘사색하기’가 되겠다.저자는 구체적으로 60개 작품을 선정해 어떤 포인트에 집중해 감상할 것인지를 안내한다. 예를 들어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을 보면서 그림에 나타난 나부의 새끼발가락에 주목하라는 식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고흐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거리의 여자’ 시엔이다. 고개 숙여 우는 듯한 자세 못지않게 생기다 만 것 같은 새끼발가락 또한 슬픔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저자는 또한 원 포인트 그림감상에서 그치지 말고, 원 포인트 글쓰기로 나아가길 제안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포인트를 중심으로 메모를 한 후 거기에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이 보태지고 더해져 그것이 글로, 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없는, 있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은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작품과 자신의 생을 깊고 넓게 해주는 일, 그것이 ‘원 포인트 그림감상’이자 ‘원 포인트 글쓰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12

“영영 이 시로부터 탈출하지 못한다면…”

‘젊은 시인’ 황인찬(31) 시인의 세번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창비)가 출간됐다. 2010년 22살에 등단한 그는 기존의 시적 전통을 일거에 허무는 개성적인 발성으로 평단은 물론이고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등단 2년 만에 펴낸 첫 시집‘구관조 씻기기’로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두번째 시집‘희지의 세계’에서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이라는 패기를 보여주면서 동시대 시인 중 단연 돋보이는 주목을 받았다.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한결 투명해진 서정의 진수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일상을 세심하게 응시하며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환기하는 “차가운 정념으로 비워낸 시”(김현, 추천사)들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일상의 사건들을 소재로 하면서 평범한 일상어를 날것 그대로 시어로 삼는 황인찬의 시는 늘 새롭고 희귀한 시적 경험을 선사한다. 감각의 폭과 사유의 깊이가 더욱 도드라진 이번 시집은 더욱 그러하다. 특히 김동명(‘내 마음’), 김소월(‘산유화’), 윤동주(‘쉽게 씌어진 시’),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떠나는구나’)의 시와 대중가요, 동요 등을 끌어들여 패러디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시 속에 숨어 있는 시구나 노랫말을 찾아 읽는 재미가 색다르다. 치밀하게 짜인 단어와 구의 반복적 표현, 대화체의 적절한 구사도 눈여겨볼 만하다.시인은 고백하듯이 시를 쓴다. 세상을 앞에 두고 늘 “어떻게 말을 꺼내”고 “어떻게 말해야”(‘불가능한 경이’)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시인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이 이 시에 담겨 영영 이 시로부터 탈출하지 못한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것을 미래라고 부를 수 있다면”(‘그것은 가벼운 절망이다 지루함의 하느님이다’) 영영 탈출하지 못할 그 오래된 미래 속에서, 그리고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세상 속에서 “고독을 견뎌”(‘부곡’)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랑을 되풀이하려는 것 같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12

다시 나타난 ‘불령선인(不逞鮮人: 불량한 조선사람)’ … 잔혹한 간토의 기억

2019년은 일본으로부터 혐한(嫌韓)이 폭풍처럼 불어닥친 한 해였다. 지소미아 조건부 동결과 정상회담 가능성으로 인해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곤 하나, 깊어진 골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미디어와 대중사회는 대혐한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부 넷우익을 중심으로 한 혐한 현상은 이제 주류 미디어의 주류가 됨과 동시에 정부 주도의 혐한 성격도 띠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일본의 ‘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노윤선의 ‘혐한의 계보’(글항아리)가 출간됐다. 이 책은 혐한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혐한 담론의 출현과 정치화되고 있는 혐한까지 그 계보를 그리고 있다.혐한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한국에서 알려진 바와 달리) 1992년 3월 4일자의‘마이니치신문’의 기사였으며, 당시에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원망에 관한 일본인의 인식 부족을 지적하며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다가 이것이 점점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 멸시감, 체념, 우월감, 공포감, 위화감의 현상을 짚는 용어로 사용됐다.1923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가리켜 불렀던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용어가 현대에도 재등장했으며, ‘웃길 정도로 질 나쁜 한국’과 같은 말들이 나돈다. 심지어 “악(惡)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가까운” 게 한국인의 본모습이라고 말한다.현재 일본은 국내 혹은 국제정치에서의 도구로 혐한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눈앞의 현실을 살피는 가운데 그 기저에 있는 뿌리 깊은 내용까지 캐내려 한다. 혐한의 사고방식은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 더욱이 일본 내 문화와 결합되면서 어떻게 거부감 없이 국민에게 주입돼 왔는지를 규명한다.그를 위해 1990년 초반의 혐한 태동기부터 2002년 월드컵 이후 본격화된 시기, 그것의 미디어적 전개, 넷우익과 거리 시위로의 확산, 매 시기 혐한의 변곡점이 무엇이고 이것을 주도한 인물과 책은 무엇인지 등 혐한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정리해낸다. 일본에서 이는 최근의 혐한 움직임과 관련해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린 1부와 박사 학위 논문 ‘일본 현대문화 속의 혐한 연구’를 근간으로 재정리한 2부로 구성됐다.책은 야마노 샤린의 ‘만화 혐한류’를 비롯해 소설 ‘반딧불이의 무덤’‘요코 이야기’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영원한 제로’등 혐한 관련 베스트셀러들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이들 작품이 널리 읽히는 현상 자체가 가족애와 결합된 애국정신의 전형적인 퍼포먼스이며, 혐한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강화돼 가는 모습이라고 평가한다.또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구호’로 나타난 혐한 현상을 간토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대비시켜서 바라보고 왜 증오의 피라미드가 다시 쌓아지기 시작하는지를 살펴봤다.2009년에 30건에 불과하던 혐한 시위는 2011년에는 82건으로 늘어나더니 2012년에는 301건을 기록했다. 3년 사이에 10배 급증한 것이다. 재일코리안은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혐한에 노출된 셈이다. 혐오 발언은 “조센진(朝鮮人)을 죽이자, 학살하자”라는 폭력적인 구호로까지 나타났다. 이는 간토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2-05

‘도시수행자’의 실시간 스트레스 대응 전략

‘참선’1·2(나무의마음)는 1987년에 암울한 세상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홀로 한국에 왔던 스물두 살의 교포청년 테오도르 준 박이 30년 가까이 전통 선방에서 참선 수행을 하고, 이제는 ‘21세기 도시 수행자’가 돼 쓴 에세이다. 미국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젊은이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시행착오를 거듭한 세월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21세기 현대인들의 일상에 꼭 필요한 참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안내서다.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과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참선이 흐리고 왜곡된 마음 상태를 맑고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것,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판단력이 좋아지며 학업이나 업무의 성과도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얼룩 없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니 쓸데없는 생각, 불필요한 감정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이다.저자는 참선을 ‘행복으로 가는 새로운 공식’이라 표현하며, 정신적으로 많은 자극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참선과 같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자기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참선은 온갖 정보와 자극에 쏠린 우리의 의식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의 힘을 기르는 방법이다. 저자가 알려주는 참선은 어렵지 않다. 올바른 자세와 복식호흡, ‘이뭣고?’ 화두, 이 세 가지만 알면 된다. 가부좌로 앉아, 복식호흡을 하면서, “이뭣고?”(‘이것은 무엇인가?’를 세 음절로 줄인 표현)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내쉬면서 “이뭣고?” 하면 된다.저자는 21세기 도시 수행자답게 가부좌로 앉아서 하는 참선뿐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서서, 심지어 누워서 할 수 있는 참선도 알려준다. 참선이 배우기 쉽고 그 효과가 놀랍다는 것을 굳게 믿지만, 꾸준히 오래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참선하는 것을 자꾸 잊어버릴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참선의 효과에 의구심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큼 오래 걸리지 않고, 쉽게 참선을 배워 참선의 혜택을 누리면 좋겠다는 게 저자의 가장 큰 바람이다. 따라서 종교적 당위성에 기대 참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자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경험하고 납득한 것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현대 심리학과 요가, 프라나야마 호흡법 등 참선의 효과를 이해하고 참선을 꾸준히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그 결과도 공유한다.저자는 이미 깨달음을 얻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참선을 하면 불안과 분노, 우울, 자괴감 같은 내적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자 나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편견과 환상만 있을 뿐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한국의 전통 참선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선사로 꼽히는 송담 스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종교적 관습과는 거리를 두고 지극히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참선의 가치와 활용법을 이야기한다. 참선의 효과를 맹신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확인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참선’은 2권으로 이뤄졌다. 1권 ‘참선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인천 용화사를 찾아 송담 스님의 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출가 수행자로서의 고뇌와 갈등, 어렵게 배운 참선의 원리와 방법, 참선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소개한다. 또한 불안과 화, 외로움, 우울, 패배감 같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적 고통을 참선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2권 ‘참선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은 20년 넘게 대중의 관심을 피해온 저자가 송담 스님의 조언에 따라 TV에 출연해 참선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그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출구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고 ‘현실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설렘과 두려움도 털어놓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참선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참선과 리더십, 참선과 과학기술, 참선과 사랑의 관계를 저자만의 시각으로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1-28

‘모든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지 않는다’

노벨문학상·맨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 올해 수상작가에 장 폴 뒤부아(70)가 선정됐다.선정 작은 뒤부아의 최신작 ‘모든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지 않는다’(Tous les hommes n‘habitent pas le monde de la meme facon·롤리비에 출판사).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감옥에 갇힌 덴마크-프랑스계 남자 주인공 폴 한센이 폭력배 출신의 수감자와 감방을 함께 쓰면서 자신의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이다.감옥 생활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죽은 자들과 상상의 대화를 하며 지낸다. 상실과 회한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은 뒤부아가 그동안 써낸 소설 가운데 최고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간 르 몽드는 지난 4일(현지시간) 공쿠르상이 발표된 뒤 수상작에 대해 “화자의 고통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뒤부아는 몽환, 샤머니즘, 해학의 순간들을 빛나게 포착했다”면서 “이 작품에는 시종일관 가벼운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우아함이 있다”고 호평했다.현대 프랑스 소설에 하나의 브랜드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장 폴 뒤부아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적인 삶’‘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케네디와 나’‘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등 네 권의 소설이 2006년 국내에 소개됐고 출간을 즈음해 내한해 서울에서 강연회와 독자 사인회를 갖기도 했다.국내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 4권을 소개한다.△‘프랑스적인 삶’1958년부터 출범한 제5공화국을 배경으로 프랑스 현대사의 환멸과 갈등을 저자의 개인적 좌절과 고난, 가족적 파탄 등 삶 전체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자전적 소설이다. 삶의 길을 찾는 무정부주의자, 사주의 딸과 결혼하는 스포츠 지 기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무 사진을 찍어서 유명한 사진가가 되지만 무력한 남편, 게으른 연인, 있으나마나 한 아버지, 피곤에 지친 봉급 생활자로서의 삶이 주인공 폴 블릭의 생애를 가로지른다.△‘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삼촌에게서 대저택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주인공이 집수리를 하면서 경험하는 ‘노가다’ 세상의 이모저모를 그린 작품으로 전작 ‘프랑스적인 삶’에서처럼 작가 특유의 익살과 유머가 돋보인다.△‘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지독한 절망감에서 ‘살아돌아온’ 한 남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의 작품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외톨이가 된 중년의 남성 폴 페레뮐터. 일년 전 그는 죽고 싶을 만큼 큰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우연히 들른 비뇨기과에서는 생식능력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뒤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삶에 대한 열정을 잃고 한없이 무기력감에 빠져있던 남자. 그는 갑자기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다기보다는 부자연스럽게 생을 포장해왔다”고 느낀다. 그는 삶을 완전히 바꿔보기로 결심한다.△‘남자 대 남자’왜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게 마련인 의문들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결국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두 남자의 맞대결로 끝을 맺는다. 일상적이고 흔한 풍경속에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비극적인 색조, 이를테면 권태, 삶의 위기, 무력감, 욕망의 좌절 등이 담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1-21

울릉도 개척시대 살해 당한 ‘도수 배상삼’ 책으로

울릉도 개척 당시 섬으로 건너가 도벌을 일삼는 일본인들과 그들의 앞잡이 세력을 퇴척하고 개척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지만 살해당한‘울릉도수 배상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창작된 책이 발간됐다.포항 출신 김일광 소설가가 쓴 신간‘동남제도 수호검 배상삼 이야기’(우리나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작품으로 선정했다. 김일광 작가가 쓴 책 속의 배상삼은 대구 사람으로, 본명은 배영준이었지만 동학 농민 운동에 연루돼 경상북도 울진에 피신해 있다가 울릉도 개척령이 내리자 전재환 일가를 따라 울릉도에 오게 되면서 배상삼으로 개명했다.김일광 작가울릉도수가 된 그는 도벌을 하러 오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매우 엄했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특히 1894년(고종 31) 가뭄이 극심했을 때 배상삼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내놓게 해 섬사람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했다.이로 인해 일본인들과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부자들의 앙심을 사게 됐다. 결국 그들은 배상삼이 왜인과 내통, 개척민의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전부 왜인들의 처첩으로 팔려고 한다는 뜬소문을 유포했다.그로 인해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섬사람들까지 그를 원수같이 여기게 만들어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김 작가는 100년 전으로 돌아가서 동남제도 개척사, 망망한 바다를 건너 울릉도로, 백성을 위한 칼·증거, 울릉도수가 된 상삼과 또 한 번의 배신, 다시 현실로 등으로 꾸며진 소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설가의 감각으로 흥미진진한 글을 써내려갔다. 울릉/김두한기자

2019-11-21

폭소가 터지는 와중에 심금을 울리는…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성석제의 산문집 2종이 출간됐다.‘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문학동네)는 그간 작가가 신문과 잡지 등 여러 지면에 발표한 원고를 엄선해 다듬은 신작 산문집이며, ‘말 못하는 사람’(문학동네)은 2004년 출간된 ‘즐겁게 춤을 추다가’를 개정한 것으로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울림과 웃음을 줄 수 있는 빛나는 글들을 추려내 개고 작업을 거쳤다.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시대 해학의 아이콘이자 타고난 재담꾼이다. 그런 그의 유머와 입담은 산문에서도 여실히 발휘된다.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2종은 한동안 사진 에세이(‘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음식 에세이(‘소풍’· ‘칼과 황홀’) 등을 주로 펴낸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본격 인생 에세이’로 소설가 성석제로서, 자연인 성석제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전개한 글편들이 담겨 있다. 성석제 문학의 기원이 된 순간들, 삶이 내재한 아이러니가 빚어낸 웃지 못할 사건들, 일상에서 만난 빛나고 벅찬 장면들이 기발한 문장들에 담겨 펼쳐진다. 세상만물에 대한 남다른 시선, 통렬한 유머, 불평불만으로 보이지만 깊은 사유가 담긴 성찰까지. 능청스러운 와중에 날카롭고, 폭소가 터지는 와중에 심금을 울리는 그의 산문집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위안이, 그의 소설을 좋아해온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돼줄 것이다.신작 산문집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는 모두 4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소설 쓰고 있다’에서는 작가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문학 작품을 접했을 때의 경이로운 순간과 소설가 성석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작가로 살아오면서 정리한 문학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2부 ‘나라는 인간의 천성’은 자연인 성석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에서 만난 소중한 순간들, 기쁨과 슬픔,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순간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3부 ‘실례를 무릅쓰고’에는 사회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돋보이는 글들이 들어 있다. 파괴돼가는 자연, 훼손돼가는 언어, 관계의 본질을 잊어가는 현시대에 날카롭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풍자로 응수한다. 4부 ‘여행 뒤에 남은 것들’은 세상을 둘러보며 깨달은 것들과,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생경한 풍경에서 느낀 경이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말 못하는 사람’에서는 젊은 날의 성석제를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과거의 글이 아니라 젊은 소설가의 치기 어리지만 반짝이는 사유, 시대를 초월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기발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1부 ‘기억’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과 대학생활이 생생히 그려져 있어 한 소설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으며, 2부 ‘편력’에는 작가 성석제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들을 한 문학 작품들과 에피소드들이 기록돼 있다. 3부 ‘바라봄’에는 우리나라의 인간군상들이 펼쳐내는 사회상을 남다른 눈으로 포착해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풀어낸 글들이, 4부 ‘내가 만난 사람’에는 그가 가까이 알고 지낸 세상을 떠난 문인들, 이문구 소설가, 성원근 시인, 김소진 소설가를 회상하는 글들이 담겨 있다. 떠난 사람을 추억하는 그의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담백하면서 동시에 애절한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성석제 작가.바깥에는 소란한 90년대가 거센 연기와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고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별과 별 사이에서 차갑고 더러운 눈, 물이 막 걸음을 떼려는 소년들의 이마에 떨어지곤 했다. 눈앞에서 죽은 소년도 있었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소년도, 떠나지 못한 소년도 있었다.“모두 어른이 되었으리라.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어른이 된다. 어른들은 탐욕과 폭력과 배신으로 자기들의 나라를 만들려 하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었다, 서울하고도 신촌에. 언젠가 미국에 그런 일이 있었듯이.” (40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1-14

중화요리,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맛은 혀끝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미를 느끼는 데 아는 것은 힘이 된다. 맛있으면 궁금해지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중화미각’(문학동네)은 한국중국소설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열아홉 명이 중국 역사와 문학 속 스무 가지 음식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당장 근처 중화요릿집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동파육은 항주의 인기쟁이 소식이 백성들에게 잔뜩 선물 받은 돼지고기를, 다시 백성들과 함께 나눠먹으려고 만든 요리다. 마파두부는 다리 옆 작은 식당 진씨 아주머니가 상인과 노역자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부스러기 고기와 두부에 갖은양념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맛있게 볶은 요리다. 만두, 포자, 교자, 소매, 혼돈…. 소가 있거나 없거나, 옆이 터졌거나 막혔거나. 이름도 모양도 재료도 다양하고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만두는 사람 머리를 대신해 제갈량이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태생부터 애민정신 가득한 음식인 셈. 친숙한 중국 음식 중에는 얽힌 이야기도 조리 방법도 ‘서민적인’ 것이 많다. 어렵지 않기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지역별로 입맛별로 응용하기도 쉬웠다.만두라는 명칭이 원래 ‘오랑캐 머리’라는 뜻의 만두(蠻頭), 사람 머리로 속였다는 뜻의 만두(瞞頭)에서 음식을 뜻하는 만두(饅頭)로 변모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만두의 탄생 배경에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남만 현지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제물로 바쳐 신의 분노를 잠재웠지만 제갈량은 가짜 사람 머리, 즉 만두를 만들어 누구의 생명도 희생시키지 않았다. 제갈량으로 상징되는 중원의 이성적 인문문화가 남만의 야만적 인신제사를 대체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남만인의 생명이나 중원인의 생명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긴 생명존중과 애민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짜장면은 산동 상인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 새로운 맛을 더해 만들어낸 국수다. 국경을 넘어와 변신한 화교표 짜장면은 사실 태생부터 초경계적이었다. 멀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로부터 가깝게는 만주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대륙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기원한 음식문화가 대륙을 가로지르고 발해를 건너 중국 산동에서 만나 탄생한 음식이기 때문이다.호떡은 오랑캐라고 지칭되던, 중국 서북쪽 유목민으로부터 전래된 음식이었기에 ‘오랑캐 호(胡)’, ‘떡 병(餠)’을 써서 ‘호병(胡餠)’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한나라 무렵, ‘병’은 중원으로 들어온다. 당시 황제인 영제가 참깨호떡의 탐식가였다. 이후 호떡은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당나라 문화에 편입되며 동아시아 각지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퍼져나갔다.만한전석(滿漢全席)은 만주족과 한족의 진귀한 요리를 모두 모아놓은 최고의 연회로 알려져 있다. 만한전석의 기원은 강희제가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위해 천수연을 연 것에서 비롯됐다. 무력으로 중국을 통일한 만주족은 폭력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공감을 이끌어내야 했다. 이를 식탁 위에서 실현하려고 연 연회가 바로 만한전석이다.뜻밖에 이 책은 훌륭한 미식 가이드도 된다. 북경오리구이를 굽는 방법으로는 오리에 쇠꼬챙이를 꽂아 숯불 위에서 구워내는 ‘차사오(叉燒)’와 화로 위에 오리를 거꾸로 걸어두고 은은한 불로 굽는 ‘과루(掛爐)’, 그리고 외국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화로 안에서 뜸들이듯 굽는 ‘먼루(燜爐)’가 있다는 사실. 훠궈는 대표적인 요리법만도 여섯 가지다. 입문자에겐 개인 소스를 만드는 일이 심리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데, 어렵지 않게 시작하려면 마장이나 간장을 기본으로 해 다른 것을 첨가해나가는 게 좋다.한편, 중국에는 손님을 열렬히 환대할 때 꼭 내오는 생선 요리가 있다. 약간은 낯선 이름, ‘쑹수구이위’라는 다람쥐 모양의 생선 칼집 탕수 요리다. 그런데 생선이면 그냥 생선이지 왜 하필 다람쥐 모양일까? 이는 쑹수구이위의 재료 잉어가 원래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맛있는 걸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청나라의 대표 미식가 건륭제가 잉어를 요리로 만들어 바치라 명했고, 요리사는 고심 끝에 잉어의 모습을 쏙 감춘 다람쥐 모양을 한 탕수 요리를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그것이 바로 쑹수구이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1-07

절절함과 따뜻함… ‘인간’ 정약용을 만나다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전통한국의 수많은 사상가들 가운데서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평가된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유배생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한 18년이란 유배생활은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줬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등 모두 542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초판이 나온 1979년 이래 다산 정약용을 만나는 가장 친절한 통로 역할을 해온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가 초판 발간 4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정비된 모습으로 출간됐다.정약용이 유배 시기 절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들을 엮은 이 책은 대학자 이전의 인간적인 다산의 면모를 만날 수 있어 오늘날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방관 이종영에게 주는 글을 새롭게 추가했고, 시대 변화에 맞춰 번역과 체제, 장정을 정비했다. 이제 막 고전을 접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과 정약용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더욱더 오래 사랑받는 입문서로 남기 위한 새 단장이다.이 책의 편역자이자 대표적 다산학 연구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섯 번째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세상에 공개하려고 저술한 책에서는 인간 다산의 속마음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아들·형님·제자들에게 보낸 그의 사신(私信)에는 깊은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불운한 환경 속에서도 생활인이자 소통하는 지식인으로서 아름다운 말들을 남겼던 다산의 자취를 이 책 전체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다.각 부에는 아들들이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기를 입에 닳도록 이야기하는 모습(1~2부), 다산과 마찬가지로 귀양살이를 했던 둘째 형님 정약전을 안부를 물으며 깊고 넓게 학문을 토론하는 모습(3부), 제자들의 장래를 걱정해 온갖 지혜를 전수하려는 모습(4부)이 각각 담겨 있다.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단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들들에게 주는 편지글이다. 다산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游)가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엄격하게 격려했다. 이 편지들에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슨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빛나는 명언들과 함께, 불의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다산의 매서운 선비정신이 담겨 있다. 편지를 읽다보면 참다운 길을 가도록 준엄하게 꾸짖는 다산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애끊는 부정(父情)이 넘친다.제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에는 생계를 꾸리는 방법, 친구를 사귈 때 가려야 할 일, 친척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 등 다산의 생활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다산 자신의 저서를 후세에 전해달라는 전언과 함께 저술의 과정과 원칙을 정제해 제시하고 있어, 다산 사상의 큰 줄기를 압축해놓은 글로 읽기에 유익하다.다산 정약용 표준 영정제3부에는 정약용의 강진 유배와 비슷한 시기에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둘째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들을 실었다. 이들 형제는 유배 중에서도 서간을 주고받으며 변함없는 우애를 나눴다. 정약용은 자신보다 더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형의 건강을 염려하고 지극한 마음을 전한다. 특히 두 형제는 심도있는 학문 주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유배지에서도 학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실함을 바탕으로 ‘목민심서’등 정약용의 빛나는 저작들이 탄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제4부는 정약용이 제자와 지인에게 써 보낸 글을 선별한 것으로, 자상한 스승의 마음씨와 더불어 다산의 넓고 깊은 학문세계가 드러난다. 학승 초의선사를 제자로 삼고 시와 선에 대한 깊은 담론을 펼친 것은 너무도 훌륭한 문학론이며, 19세의 어린 소년으로 해배 후 찾아온 이인영에게 해준 이야기는 뛰어난 문장론이다. 지방관 이종영에게 남긴 두 편의 글은 목민관의 자세를 다룬 내용을 담아 ‘목민심서’의 축약처럼 읽힌다. 특히 이 편지들은 다산이 실학자로서 얼마나 튼튼한 현실주의적 사고와 실학사상을 지녔는지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31

‘올재클래식스’ 32번째, 관자·순자·주역 발간

(사)올재(이사장 홍정욱)는 권당 2천900원에 판매하는 ‘올재 클래식스’ 32번째 시리즈로 중국 고전 ‘관자’, ‘순자’, ‘주역’을 출간했다.‘관자’는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을 지낸 관중(管仲, ?∼기원전 645) 사상을 정리한 고전이다.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 주인공인 관중은 중국 최초 정치경제학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는 예의와 염치를 아는 구성원을 기르고, 부국강병을 이룰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다.‘순자’는 합리적 실천 유학을 추구한 순자 사상을 집대성했다. 예치주의를 주창한 그의 저서는 법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천지만물의 도덕과 인간이 본받아야 할 도덕이 내재돼 있어 동양철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주역’은 미래를 예측해, 좋은 일을 추구하고 흉한 일은 피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이 수천년 집약된 철학서다. 64괘에 담긴 자연에 대한 통찰과 인간사의 보편적 지혜를 탐구할 수 있는 주역에 대해 공자는 “만년에 ‘역’(易)을 좋아해, 이 책을 읽다가 가죽끈이 3번 끊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주역 공부에 매진했다.‘관자’는 두 권으로 구성됐으며, 두 종 모두 고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이 번역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24

경계와 단절을 넘어타자를 향한 공감

올가 토카르추크. /연합뉴스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의 대표작 ‘방랑자들’(민음사)이 출간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로 토카르추크를 선정하면서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찍이 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토로한 바 있는 토카르추크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를 통한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 바로 ‘방랑자들’이다. 작가는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작자가 지향하는 이러한 가치가 무엇보다 생생하게 빛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2018년도에는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한‘방랑자들’은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를 촘촘히 엮어서 중심 서사를 완성하는 패치워크와도 같은 이야기 방식이 가장 절묘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물리적인 이주(移住)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위트와 기지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한림원의 평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 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일상에서 탈출해 지하철역 노숙자로 살아가는 여인, 프랑스에서 사망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인 폴란드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다리를 절단한 뒤 섬망증(8B6B妄症)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지중해 유람선으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의 권위자….‘방랑자들’은 여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소설의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한 교파인 ‘달리는 신도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정체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장소를 바꾸는 것만이 악을 쫓아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토카르추크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선언한다.“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본문 19쪽)모스크바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정체 모를 노파의 에피소드를 통해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얽매이게 되면, 근본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관습과 타성에 젖어 익숙한 것만을 찾는 인간은 현재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기계적으로 순응하게 되고, 더 이상 모험이나 행복을 갈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본문 391~392쪽)올가 토카르추크. /연합뉴스토카르추크는 우리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소유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님을 일깨운다.‘방랑자들’은 여러 이야기를 직조한 다성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불과 10여 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중편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은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이 읽으며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또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24

만성염증 방치하면 동맥경화·당뇨·암·치매로 발전

건강 검진을 받아도 이상은 없는데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자꾸만 아프다면? 만성염증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만성염증은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비만, 아토피, 류머티즘, 암, 치매, 우울증 등 현대인의 만성 질환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정상적인 면역 과정이 ‘급성염증(Acute inflammation)’이라면,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지연되는 상태가 ‘만성염증(Chronic inflammation)’이다. 감염 부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급성염증과 달리, 만성염증은 전신에 걸쳐서 오랜 기간 뚜렷하지 않은 반응으로 나타난다. 알 수 없는 통증, 지속적인 피로와 불면증, 우울, 불안과 같은 기분 변화, 변비, 설사, 속 쓰림과 같은 위장관 증상, 체중 증가, 회복이 잘 안 되고 자주 반복되는 감기 등 모호한 증상으로 나타나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도 불린다.만성염증의 원인으로는 세균과 바이러스, 미세먼지, 중금속, 환경호르몬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 진통제, 소염제, 항생제의 무분별한 남용, 지나친 운동과 스트레스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다. 트랜스지방, 첨가물, 정제곡물, 설탕, 잔류 농약 등 먹거리에 포함된 강력한 ‘생체 이물’, 즉 내 몸에 원래 있지 않았던 것들이 지속적으로 몸속으로 들어오면 면역 반응이 일어나 활성산소가 발생하고, 정상 세포까지 상처를 입는 만성염증으로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거리를 고를 때 만성염증을 일으키는 식품과 줄이는 식품을 똑똑히 구분해야만 하는 이유다.만성염증은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염증을 늦출 수는 있지만,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없고, 더 큰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을 바꾸는 것이 답이다. ‘만성염증을 치유하는 한 접시 건강법’(판미동)은 염증을 줄이는 식품으로 어떻게 한 끼 식사를 구성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