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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비롭고 처절하게 기록된 전쟁의 상흔들

‘밤의 책’(문학동네)은 프랑스 현대문학 거장으로 꼽히는 여류 작가 실비 제르맹(66)의 데뷔작이다. 제르맹은 페미나상, 국제라이온스클럽상, 그레비스상, 에르메스상, 파시옹상, 고등학생 선정 공쿠르상 등 다수 문학상을 받았고, 남미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한다.이 작품 역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초자연적 현상과 전설, 민담, 신화를 덧붙여 마술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거대 서사가 펼쳐진다.빅토르플랑드랭 페니엘, 일명 ‘황금의 밤 늑대 낯짝’이라 불리는 인물을 중심으로, 선대의 이야기부터 그의 자손들이 땅 위의 고랑처럼 깊은 전쟁의 상흔들을 살갗 위에 새기며 태어나고 스러져가는 백년의 역사를 담았다. 1870년 보불전쟁부터 1945년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의 길목에서 살아간 페니엘가(家) 사람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두운 밤을 통과하며 마침내 엄혹한 세계와 화해해가는 과정을 실비 제르맹 특유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냈다.“‘밤의 책’은 나의 최고의 소설이다.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 첫 책에서 나는 사람들의 삶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망쳐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 실비 제르맹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0-05-07

유방부터 왕망까지 230년 전한 역사

중국 후한(後漢) 시대 학자·역사가·문학가 반고(班固·32∼92)가 편찬한 전한 시기 역사서 ‘한서’(漢書) 완역본(21세기 북스)이 국내 최초 완역 출간됐다.한 고조 유방부터 왕망이 신(新) 왕조를 수립할 때까지 230년 전한(前漢)의 역사를 100권에 담은 ‘한서’는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와 함께 중국 역사서의 모범으로 평가되고 있다.‘후한서(後漢書)’를 지은 범엽(范曄)은 “사마천의 글은 직설적이어서 역사적 사실들이 숨김없이 드러나며, 반고의 글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사기색은(史記索隱)’을 지은 사마정(司馬貞)은 “‘사기’는 반고의 ‘한서’에 비해 예스럽고 질박한 느낌이 적기 때문에 한나라와 진(晉)나라의 명현(名賢)들은 ‘사기’를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명(明)나라 때까지 이어져 학자 호응린(胡應麟)은 “두 저작에 대한 논의가 분분해 정설은 없었지만, 반고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대략 열에 일곱은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한서’는 품격 있고 질박한 문장과 풍부하고 상세한 서술로 역사가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당대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반고의 잘 다듬은 문체 덕분에 문학적 가치는 ‘사기’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송나라 작가 양만리(楊萬里)는 “이백의 시는 신선과 검객의 말이며, 두보의 시는 선비와 문사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문장에 비유하자면 이백은 곧 ‘사기’이며, 두보는 곧 ‘한서’”라고 평했다.‘한서’(漢書) 완역본은 모두 10권이다. 제왕의 행적을 정리한 본기(本記) 1권, 역사 흐름을 연표로 나타낸 표(表) 1권, 주제별 역사를 서술한 지(志) 2권, 인물을 집중적으로 논한 열전(列傳) 6권으로 구성된다.번역은 일간지 기자 출신 고전 번역가인 이한우 논어등반학교 교장이 했다. 역자 특유의 정교하면서도 정제된 문장으로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고증해가며 최대한 원서에 가깝게 풀어냈다. 그는 서문에서 ‘한서’를 번역한 이유에 대해 “우리의 역사적 안목과 현실을 보는 시야를 깊고 넓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일본에는 ‘한서’가 완역됐는데, 우리는 열전 일부만이 편집된 채 번역된 현실이 부끄러웠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30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

최근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류 작가인 문서정이 소설집 ‘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도서출판 강)를 선보였다.제2회 에스콰이어 몽블랑 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인 ‘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와 2015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밤의 소리’ 등 그동안 전국 규모의 문예지 수상작들을 위시해 단편 8편을 추려낸 ‘작품집’이다.삶의 상처와 비극, 인간 욕망의 복잡성 등에 관한 경험담과 깊이 있는 사색을 담고 있다. 온갖 상처와 오명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도 눈길을 끈다.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소설집의 내용을 간추려 본다.-이번이 첫번째 소설집인가.△예. 지난해 6인 테마소설집 ‘나, 거기 살아’를 내고 처음으로 내는 창작 소설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2018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수혜자로 선정돼 소설집을 내게 됐다.-소설집 제목이 특이하던데.△표제작‘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제목으로 지었다. 대학 시절 인문학 읽기 동아리의 구성원들이 30대 후반이 되어 한 멤버의 장례식장에서 재회한 이후의 일을 그린 작품이다.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육감적인 몸매의 한 멤버가 옛 연인의 영정 앞에 등장하며, 남자들은 그녀와 얽힌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낸다.-소설은 타자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8편의 단편들에는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늘 무언가를 버리거나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골몰한다. 그러나 소설의 이야기는 버림과 벗어남의 직전, 혹은 그 한가운데서 멈추며, 그때 그 욕망은 환상의 상연을 그치고 삶이 껴안아야 할 근본적 아이러니로 날카롭게 귀환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현실 세계에서 부딪치는 상실과 기다림 등 일련의 것들은 독자들에게‘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와 ‘어떻게 살야야 하는가’라는 가치론적 문제를 깊이있게 성찰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소설은 그 본질적 속성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수록작 ‘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과 ‘밀봉의 시간’에는 흉터를 가진 이들이 행하는 필사적인 외면의 시도가 담겨 있다. 은성은 옛 연인이 일방적으로 맡겨놓은 조카와 개를 떠나보내기 위해 “과거 청산 프로젝트”(106쪽)에 착수하고(‘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 ‘나’는 연인이자 운동권 선배였던 K와의 기억을 이십여 년 동안 “완벽하게 밀봉”(139쪽)한다(‘밀봉의 시간’). 이들은 버려짐의 상처를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버려짐을 겪은 이에게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은 경험의 지혜이자,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116쪽)이다. 그러나 과거가 끈질김을 과시하듯 개를 버리려는 은성의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옛 기억들을 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온 ‘나’ 역시 상처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그것들과 고통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과거가 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므로, 나의 소설은 버려진 이들이 맞이하는 새로운 국면, 또 다른 타자들을 향한 대처법으로 나아간다. 그중 하나가 “공격적 수비”(45쪽)다.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슬픔은 머리카락처럼 자라나고, 불행은 밤처럼 점점 짙어”(60쪽)가기 때문에 “누구든 나를 치면 피범벅이 되도록 곱절로 되갚아준다”(53쪽)는 것(‘밤의 소리’). 상처로 점철된 이들에게 이보다 확실한 생존법이 있을까.ㅡ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장편을 구상하고 있다. 완성되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이 홍역처럼 치르는 성장기를 추리기법적인 구성으로 그리게 될 것이다. 인물들이 서로를 증오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하며 또한 서로 연대하기도 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사건 전개가 빠른 소설이 될 것 같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됐으면 좋겠다. 최근에 일어난 사회 현상을 담은 단편들도 쓰고 있다. 쉬지 않고 꾸준히 쓰려고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부산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성장한 문서정은 영남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 ‘밤의 소리’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에스콰이어몽블랑문학상 소설 대상, 천강문학상 소설 대상,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을 받았다.

2020-04-30

100세 철학자의 “한번 멋지게 살아볼까”

‘한 세기를 살아온 철학자가 나이 듦, 건강, 가족, 그리움, 신앙, 사랑, 사회, 소박한 일상 등을 주제로 건네는 70편의 따듯한 글’.대한민국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3일 100번째 생일을 맞아 에세이집‘백세 일기’(김영사)를 펴냈다.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평양 숭실중과 제3공립중을 나왔으며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대한민국 100년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었고, 1947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의 경제·정치발전을 모두 목격했다. 서울 중앙중고 교사와 교감으로 근무한 뒤 1954년부터 1985년까지 31년 동안은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봉직하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해왔다.‘행복 예습’ ‘영원, 그 침묵의 강가에서’등 숱한 저서를 냈고, 2016년 8월 펴낸 ‘백년을 살아보니’는 1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그는 여전히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써 원고 청탁에 응하고, 되도록 강연 요청도 수락한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겠다’는 소박한 봉사 의식의 발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철학이 ‘백세 일기’로 결실했다.한 세기를 살아온 철학자가 70편의 글들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상’,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 100세 지혜가 깃든 ‘삶의 철학’, 고맙고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엮어냈다. 이번 책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한 일간지에 연재한 ‘김형석의 100세 일기’원고에 몇 편의 글을 추가한 것이다.“오래 살기를 잘했다.” 인생의 석양이 찾아드는 지금, 여전히 성실하게 삶의 순간을 채워나가는 이의 짧고 담담한 고백이다. 김형석 교수는 매일 밤, 작년과 재작년의 일기를 읽고 오늘의 일기를 쓴다. 그렇게 충만한 삶의 시간을 새기고, 과거에 머무르기보다는 어제보다 더 새로운 내일을 살기를 꿈꾼다. 그러한 노 교수의 글엔 앞선 100년이란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성실한 삶의 조각들이 반짝인다.“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29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23

전략적 사고 습관이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

성주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와 미육군대학원을 졸업하고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김진항씨가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은‘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라는 점을 강조한 저서 ‘전략적 사고’(좋은땅)를 최근 출간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모두가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최빈국 수준의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을 통해 세계 10위 권의 잘사는 나라가 된 경험을 살리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국가차원에서 새마을운동처럼 ‘전략적 사고 권장캠페인’을 추진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전략적 사고는 ‘미래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큰 틀에서 생각하는 버릇’을 뜻한다. 즉,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시간적 맥락과 공간적 맥락에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해 사전에 여유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대비해나가는 사람이다. 또한 저자는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과 상상력과 감정이입능력,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적수준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새마을운동처럼 ‘전략문화 확산 국민운동’을 전개해 우리 국민들이 공감하고 전략적 사고를 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미래를 예측해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선진국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20-04-23

세계와 정면 대결하는 아나키스트의 출현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아시아)은 단편소설 ‘우리 아빠’로 제21회 심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강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심사 당시 구모룡·홍기돈 문학평론가, 방현석 소설가에게 “발랄한 상상력에 현실의 질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은 ‘우리 아빠’를 포함해 모두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작품집에 수록된 다수의 작품들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선보이면서도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우주로 날아가는 이벤트가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에도 사람들은 한없이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갈등하고 좌절한다.‘알로하의 밤’은 ‘알로하’라는 특이한 성씨를 가진 동명이인들의 모임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그저 성씨가 ‘알’이라는 이유로 겪는 차별과 오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인 시각들을 보여준다. ‘잘 자, 병철’은 역 대합실에서 살아가는 노숙자 ‘병철’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것에 급급해 보이는 삶이지만 “권력 구조 바깥으로 이탈하여 그에 맞서는 병철의 면모 및 방식은 아나키즘에 접근해 있다“(홍기돈, 해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23

성공한 사람들의 표현 방법 그들의 말은 어떻게 다른가

“말하는 방식이 바뀌면 당신의 가치를 50% 더 올릴 수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구글, 인텔, 링크트인, 코카콜라 등 세계 최정상 기업과 리더들을 상대해온 미국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코치 카민 갤로가 화법(話法)의 정수가 담긴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CNN 등에서 앵커로 일했고 ‘최고의 설득’, ‘어떻게 말할 것인가’ 등 화술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쓴 카민 갤로는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맞춤해 평범한 내용에서 핵심만 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팩트에 화력을 붙일 무기로 쉬운 단어 쓰기, 유명인이 쓰는 표현 따라 하기, 훅 만들기 등 상황에 맞는 말하기 공식을 만든 것이다. 이 공식에 능숙해지면 하나의 이야기로 듣는 대상, 제한 시간, 주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해 쓸 수 있는 강력한 스토리 라인을 완성할 수 있다.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2천300년 전에 수사학을 통해 말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제압했다고 말하는 카민 갤로는 신간 ‘말의 원칙’(알에이치코리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근거한 10가지 말의 원칙을 담았다.이 책 1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인류 역사의 굵직한 사건 속에서 빛을 발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링컨이 단 2분의 연설로 미국 국민의 가슴에 권리라는 단어를 깊이 새길 수 있었던 방법, 존 F. 케네디가 서른한 번에 걸쳐 수정한 원고에 담긴 동사 활용과 작법을 통해 수십 년간 전해지는 연설문의 정석과도 같은 표현들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현재 각 분야의 최정상급 전문가로 손꼽히는 과학자, 기업가, 성공적으로 적응을 마친 임원까지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직시하고, 말로써 이를 돌파한 학자와 기업가들의 공통적인 표현 유형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법의 정수인 파토스(감정)를 자극하는 말하기, 전설의 각본가들이 쓰는 3막 구조 말하기, 최소한의 단어로 한 문장을 만들어 표현하는 방법까지 가슴에 남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다.우리가 아무리 좋은 콘텐츠나 남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스스로가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그저 우물쭈물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어떤 경쟁자도 당신을 앞지를 수 없는 특별한 말기술과 당신을 대체 불가한 존재로 만들 새로운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유연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지금 ‘구글’이라는 거대 기업을 있게 한 두 젊은 창업가들을 보라. 이들은 단 한마디로 자신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소개할 줄 알았다. “모든 이용자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공짜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한다”라는, 초등학생도 이해할만한 수준의 문장이 가진 영향력은 창업 투자자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고, 구글의 신념을 궁금하게 했으며 실리콘밸리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회원 수가 경쟁사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던 사이트를 창업 10년 만에 260억 달러(한화 약 31조) 가치로 끌어올린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 역시 비유로 요리하고 유추로 고객의 흥미를 자극하라는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투자자의 마음을 돌렸다. 이 원칙은 그가 매년 단 두 명에게 제공하는 창업 지원 조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빌 게이츠와 전설이 된 CEO들의 멘토였던 인텔 CEO 앤드류 그로브 역시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임원부터 갖추라고 했으며, 스스로 정리한 내용을 10분 안에 전달할 수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16

전체주의 몰락에서 배우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2020년 벽두의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한껏 작아지고 국경도 무의미해진 지구촌에서 ‘서구(the West)’란 더 이상 지리나 인종 상의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질병 앞에 인체는 평등하다고 해서 사람집단들이 공유하는 생각과 가치까지 동등할 수는 없다. 서구란 바로 ‘특정 종류의 생각과 가치의 총합’, 서구문명(the Western Civilization)이다. 왜 오늘날은 이처럼 살기 좋아졌는가 왜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이 망가지고 있는가.‘역사의 옳은 편 오른 편’(기파랑)은 미국의 젊은 보수 논객 벤 샤피로(36)의 서구 문명과 역사의 진전에 대해 논한 책이다.저자가 보기에 역사의 옳은 편, 즉 오른편에 섰기 때문에 세상은 오늘처럼 살기 좋아졌고 옳은 편을 저버리는 집단 때문에 세상은 망가지고 있다.그 옳은 편은 3천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구 문명이고 옳은 편을 저버렸기에 멸망한 집단은 그 반대편에 선 세력으로 지난 세기의 경우 사회주의였다.저자는 서구 문명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대 기독교와 아테네로 상징되는 이성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고 개인과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목적’과 ‘수단’은 이로부터 나온다는 것. 다만 “종교적 가치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우리는 신정국가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성만을 신봉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유물론에 기반한 독재국가가 탄생할 것”이라면서 두 기둥 중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인간사회를 꾸려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지난 세기 문명의 반대편에 선 것은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으로 대표는 전체주의 세력이었다.21세기 들어 몰락한 전체주의의 맥을 잇는 세력으로 저자는 사회주의의 옛꿈을 떨치지 못한 좌파와 인간을 한갓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과학만능주의를 꼽는다. 우파의 탈을 쓴 극우 전체주의, 예컨대 인종주의나 이른바 ‘대안우파(alt-right)’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한국어판 서문에서는 “대한민국의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서구 문명의 근본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한 나라를 발견하게 된다. 세계관의 비교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처럼 극명한 대조를 드러내 주는 사례는 지구상 어디에 없을 것이다” 라고 썼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0-04-09

자신의 마음 돌보고 있나요?

우리는 종종 내 마음과 상관없이 나를 꾸며낼 때가 있다. 상대방의 농담에 화가 나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일이 잘 안 풀릴까 걱정돼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불안감을 숨기며 하고 싶은 일보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을 선택한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따르기보다 ‘그래야 한다’라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다 보니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모른 척하는 것이 습관이 돼 버린다.‘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다산초당)는 국내 최초의 대중 정신건강전문지 ‘정신의학신문’ 창간인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정엽 원장이 내 감정과 생각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인문 심리서다.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책은 많지만 정작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드물다. 저자는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돌본 적이 없다면 몇 살인지와 상관없이 새삼스럽게 자신을 관찰하고 발견하고 이해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더 이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떠밀려가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면, 사는 게 버겁고 힘들어서 자꾸만 무기력에 빠진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일에 이 책이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돼 줄 것이다.△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긍정하게 만드는 자기결정권 연습사람들은 흔히 생각과 감정은 제어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점검할 필요는 없지만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롭다면 그 생각의 뿌리를 직면하고 교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사랑스럽지 않아’, ‘나는 아직 부족해’, ‘나는 특별하지 않아’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그 생각을 만드는 생각의 뿌리가 우리 사고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마음의 덫이 돼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자꾸 붙잡는다.정신 치료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교정적 감정 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은 생각의 뿌리를 바꾼다. 저자는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뿌리가 스스로를 억압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나를 긍정하고 내 생각을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즉 삶의 결정권이 내 손 안에 있을 때 인생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높은 자존감을 위해서는 건강한 자기감이 필요하다최근 몇 년간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며 거의 모든 문제를 자존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는 물론이고 일상의 대화에서도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되며 ‘높은 자존감’이 또 하나의 스펙이 된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것은 자존감의 문제일까?저자는 높은 자존감은 건강한 자기감 위에 세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자신을 존중하는 감각이라면 자기감은 자신을 이해하는 감각이다. 자존감을 해치지 않고 지켜주고 북돋아주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인지하는 자기감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존중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자존감은 주변의 상황, 타인의 반응 등에 의해 언제든 쉽게 흔들릴 수 있지만 자기감은 자신에 대한 개념, 가치관이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전체적이다. 건강한 자기감을 갖출 때 스스로도 존중할 수 있고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는 셀프 심리 코칭정신의학신문의 상담 코너에는 매주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도착한다. 사연을 보낸 이들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나이도 각기 다르지만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을 어려워한다.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고, 뭔가 달라지고 싶은데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조차 모르겠으니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독자들이 전문의를 찾지 않고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만으로도 누구나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셀프 심리 코칭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02

감추어진 실체… 중일전쟁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깨다

20세기를 통틀어 인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계적인 사건을 고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1939년 9월 1일 시작돼 1945년 9월 2일까지 치러진 전쟁이라고 알고 있다. 그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광기 어린 히틀러의 탱크부대가 폴란드 국경을 침범해 넘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일까? 그렇게 보는 게 옳은가? ‘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글항아리)를 쓴 래너 미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은 독일 전차가 폴란드 국경을 치고 넘어간 1939년 9월이 아니라,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근교에 있는 루거우차오(일명 마르코 폴로 다리)에서 벌어진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의 총격전에서 비롯됐다.‘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는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근처에서 벌어진 중국군과 일본군의 국지적 충돌인 ‘루거우차오 사변’으로 시작해 중국 전역은 물론 인도차이나, 버마(현재의 미얀마), 인도까지 확대됐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종결된 8년간의 전쟁을 시대순으로 짚어가며 그 전쟁의 전개 과정과 의미를 분석한다.‘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는 2013년 출간돼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옵서버’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윤희정기자

2020-04-02

항구적 현재에 유폐된 세계서 완전히 새로운 미학을 말하다

‘정크스페이스|미래 도시’(문학과지성사)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의 에세이 ‘정크스페이스’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프레데릭 제임슨이 콜하스 사유를 주제로 집필한 또 다른 에세이 ‘미래도시’를 묶었다. 렘 콜하스가 이끌었던 하버드 대학 디자인 스쿨 세미나 ‘도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쇼핑 안내서’에 수록됐던 글 ‘정크스페이스’는 “20세기에 건축은 실종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지금 도처에서 끝없이 뻗어 올라가고 있는 저 건축물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에 따르면 그것은 정크스페이스, 즉 쓰레기공간이다. 건축은 더 이상 기념비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됐고, 영원한 변화를 갈망하며 언제나 새롭게 재편되길 기다리는 공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이것은 단지 건축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의 종말, 이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영원한 현재에 유폐됨을 의미한다.프레드릭 제임슨의 ‘미래 도시’는 콜하스의 비전과 ‘정크스페이스’가 등장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매우 유용한 텍스트다.제임슨은 현대 도시와 건축,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쇼핑과 상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광범위하게 수행하면서 ‘정크스페이스’가 갖는 의미와 잠재력을 포착해낸다.제임슨은 ‘정크스페이스’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텍스트이며 완전히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4-02

모르는 사람을안다고 착각할 때 범한 오류와 그로 인한 비극

‘타인의 해석’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제공‘타인의 해석’(김영사)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57)의 6년 만의 신작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미국 뉴욕타임스와 선데이타임스, 아마존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 시카고트리뷴에 각각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말콤 글래드웰은 천재적인 글쓰기와 독보적인 통찰력으로 발표한 여섯 권의 책을 모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리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경영저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기자로 일하면서 2005년 타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에 선정됐다.말콤 글래드웰은‘타인의 해석(원제 Talking to Strangers)’을 통해 우리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범한 오류와 그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고, 이 잘못된 전략의 수정을 제안한다. 책의 주제는‘소통과 이해’다.책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안다고 착각해서 비극에 빠진 여러 사례를 보여준다. 오류를 조목조목 짚은 다음, 그 이유를 인간 본성과 사회 통념에서 찾아내고, 타인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말콤 글래드웰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 사건은 백인 남자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라는 흑인 여자 운전자의 차를 멈춰 세우면서 시작된다.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담뱃불을 붙였다. 감정이 고조되고 입씨름은 거북할 만큼 장시간 이어진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경찰차 계기반 위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에 녹화됐는데, 유튜브 영상은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경찰관이 샌드라 블랜드를 차 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로부터 사흘 뒤, 샌드라 블랜드는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 비극의 시작은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지면서”였다. 이처럼 최악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타인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와 갈등의 사례는 무수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타인과 만나고 그를 판단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전문 설계사와 상담한 후에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면접을 치러서 직원을 뽑는다. 그 펀드는 고수익을 냈는가? 면접 점수가 높았던 구직자가 더 능력 있는 팀원이었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라도 ‘아니오’라고 답한다면 당신도 타인을 파악하는 데 서툰 사람이다.저자는 무엇보다 낯선 이를 해독하는 우리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 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낯선 사람은 일종의 위험입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친절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 판단을 하지요. 하지만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런 식의 판단을 내리는 데 굉장히 서툽니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런 약점이 있다고 해서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걸 마냥 피할 수만은 없겠지요. 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다른 사람과 말을 터보면서 시작됩니다. 그 첫걸음은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_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14쪽) /윤희정기자

2020-03-26

“역사 이전 시대‘先史’ 폄하는 잘못된 일이다”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글항아리)는 세계적 권위의 고고학자 헤르만 파르칭거(61)가 쓴 전 세계 선사시대 통사다.국내엔 낯선 이름이지만 고고학자로는 최초로 독일 라이프니츠 상을 수상한 헤르만 파르칭거는 고고학의 초국가적 협력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학술적 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해온 것을 인정받아 로이힐린 상을 받기도 했다. 스키타이 유적 발굴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의 평생의 공력을 한 권에 집약한 것이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다.출간되자마자 언론과 평단은 “고고학적 세부 지식을 펼쳐 보이며 획기적인 해석을 선보였다”(쥐트도이체 차이퉁), “학계의 최신 연구를 포괄했다”(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내용이다”(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라디오), “이 명작은 학문의 언어로 쓰인 인류에 대한 소설이다”(타게스슈피겔) 등 찬사를 내놓았다.책은 1천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고고학, 고고유전학, DNA를 통한 고대 인구사 연구 등 전방위적 학문의 성과를 포괄하고 있다.특히 가설과 논쟁을 검증, 비판, 재해석하는 이 책은 독자가 정형화된 해석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며, 일반에게 널리 퍼진 고정관념을 바로잡아주는 게 큰 특징이다. 유형 유물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서 증거에 근거해 논하는데 과감한 해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진보의 힘을 읽으려는 긍정적 서사가 돋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원시시대 조상들 삶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역사 이전 先史’라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일반적으로 기원전 4천 년에서 기원전 3천 년 무렵에 생긴 기호 체계를 문자의 시초로 본다. 하지만 현대 인류의 조상인 ‘호미니드’는 그보다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직립 보행하고 무언가를 움켜잡는 데 손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신호, 상징, 그림을 이용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이 책에 등장하는 문명들은 우리에겐 분명 낯설다. 한때 출현했다가 사라진 문명들이 살아갔던 혹독한 조건은 우리에겐 미지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섣불리 재구성하기보다는 어떤 유물이 발견됐는지를 확인하는 데 주목한다. 다시 말해 시간의 퍼즐부터 하나하나 모아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개별적 정체성, 사유재산, 사후세계에 관한 의식의 등장, 나아가 영토와 지배 같은 추상적 범주를 이야기한다.현생 인류의 발전에서 단연코 결정적인 것은 불의 사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이들’이라 불린다. 하지만 결정적인 어떤 변화도 ‘혁명’이라 부르긴 어렵다. 즉, 단시간에 이뤄진 것은 없다. 발전, 중단, 후퇴의 국면을 되풀이하며 인류의 역사는 매우 천천히 진행돼 왔다.인간은 주변 환경에서 생존할 만한 식량과 거처만 확보되면 더 나은 것을 향한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인구 증가의 압박으로 인해 생존법을 도모할 필요가 없는 한 수렵 채집의 현실에 머물렀다. 풍족한 자연환경을 가진 지역에서 농업 생산이 매우 늦게 나타난 이유다.문명은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에서 최초로 나타났다. 석기시대부터 인류는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문자 발명 이전이었지만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인류는 기존에 꿈꾸지 못했던 것을 꿈꾸기 시작했고, 자연이 만들어놓은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욕구가 됐다. 이 책은 문자 발명 이전 인류의 700만 년 역사를 비행하면서 인류가 어떻게 역사적 존재가 됐는가를 탐험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3-19

조지 오웰이 들려주는 ‘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마음의 양식’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독서란 기호에 불과할까, 기호라면 얼마나 값비싼 기호일 것인가? 뭇 인간에게 드리워진 압제를 고발하고, 탁월한 방식으로 인류애를 피력해 온 20세기 문필가 조지 오웰은 이 같은 호기심을 지극히 형이하학적으로 해결했다. 오웰은 책에 한 해 25파운드를 쓰고, 담배에는 40파운드를 썼다. 물론 지독한 애연가에게 독서는 흡연보다 값싼 행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계산은 그저 저렴하고 유익한 취미 활동에 투자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투정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책 소비가 계속해서 저조하다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현상이 적어도 독서가 개 경주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 그리고 펍에 가서 한잔하는 것보다 재미가 없어서이지 돈이 훨씬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오웰은 날카로운 화살을 제 자신에게 돌린다.산문집 ‘책 대 담배’(민음사)에는 책을 쓰고, 팔고, 빌리고, 사 본 조지 오웰의 진솔한 면모가 살뜰히 담겨 있다. ‘어느 서평가의 고백’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찬사해야 하는 고통이,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에는 책의 저술을 둘러싼 실질적인 자유에 대한 의구심이, ‘책방의 추억’에는 책이라는 물질을 사고파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진절머리가 기록돼 있다.포장되지 않은 오웰의 산문들을 하나하나 소화하다 보면, 어느새 한 인간의 정직한 지성과 의지만이 줄 수 있는 양분이 전해질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3-19

지금,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세계 4대 성인(聖人) 중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는 우리 인류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의미심장한 철학적 메시지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수 세기 세월이 흐른 후에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넌 누구냐(Who that’s)’라는 경이로운 질문을 또다시 우리에게 던졌다. 과연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가. 무엇에 인생의 가치를 둘 것인가.기업인 출신의 수필가 김인환 씨가 최근 수필집 ‘넌 누구냐(하움출판사)’를 출간했다. 김 작가의 첫 수필집 ‘넌 누구냐’는 기업경영 경험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삶을 성찰하는 진솔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담아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겪고 느낀 일들을 고사(古事)와 함께 엮어 편안한 문장으로 펼쳐내고 있다.김 작가는 나눔경영을 실천해 성공한 기업가이자 유능한 CEO로서 정평이 나 있다. 글 마디마디마다 삶에 대한 고뇌와 성찰이 배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젊은 시절 추억과 사회의 현실, 미래지향적인 방안 등 다양한 색깔의 수필 작품이 빼곡하다.책에서 김 작가는 낮은 출산율로 인해 ‘300년 후에는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유엔보고서를 소개하면서,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조국을 살려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웨딩 산업의 위축, 아동용품 소비급감, 텅 빈 교실에 따른 일자리 감소, 대학정원 축소 등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사회적인 부작용 같은 암울한 미래를 열거하면서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제안도 현실감 있게 내놓고 있다.어쩌면 권력의 힘 앞에서 사라질뻔했던 역사적 사실도 가벼이 터치한다. ‘청와대 비서실장 저격 사건’,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의 진실’ 등 민감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독특한 해석을 제시해 독자들이 반감을 일으키지 않고 읽도록 유도한다. 국가관과 통일관 확립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용기 있는 필력을 발휘하고 있다.일부 진보 인사들의 편협된 시각에 영향받아 온통 비행만을 저지른 것으로 여기기 십상인 일반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화합해 나가야 할 숙명적인 공동체임을 강조한 것도 신선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점이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점도 이채롭다.+과연 우리 시대에 ‘제5대 성인’을 볼 수 있게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어쩌면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이 곧 성인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해석도 제시하고 있다. 영원한 시대의 어른이자 ‘바보 형님’인 김수환 추기경의 위대함도 다시 새겨보고 있다.이번 수필집 제목 ‘넌 누구냐’는 셰익스피어가 대표작인 ‘햄릿’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의문이자 교훈이다. 우리 인간들의 본성을 일깨우기 위한 세기적 질문인 셈이다.김 작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숙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소중한 화두를 던진다. 삶에 대한 고뇌와 성찰을 통해 생애는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다는 귀한 교훈을 얻게 한다.작품 곳곳에서 매사에 성실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기업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직업의식, 수필가로서의 남다른 자부심과 각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 숱한 만남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유려한 필치로 묘사된다.김인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하면서 참다운 모습으로 고귀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마지 않는다”면서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누구나 지난 과거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역사를 알고 시대를 반추하며 햄릿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해갈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3-12

“아흔셋… 사랑이 된다”

“시여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시여’라며 오늘에 이른 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등단 나이 ‘고희(古稀)’를 넘긴 한국 시단의 원로 김남조 시인사진이 최근 19번째 시집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을 펴내며 내놓은 소회다. 올해 93세가 되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으로 살아온 생애 93년, 저무는 해의 빛이 녹아드는 노을 무렵 아흔셋 일생의 황혼을 노래한다.‘마지막’이란 단어 앞에서는 누구나 매무새를 가다듬고 비장해진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오늘을 점검하며 남은 날들을 헤아려 보는 시간. “마지막 시집이라고 여겨지는” 이 책, 시인 본인이 “나의 끝시집”이라 일컬은 이 책 ‘사람아, 사람아’를 엮기 위해 김남조 시인은 갈마드는 한평생의 기억을 쓰다듬으며 에는 가슴으로 한 줄 한 줄 시를 써 내려갔다. 이 시집에 담긴 52편 시 속에 그의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한데 뒤엉켜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 뒤엉킨 생을 읽는 키워드는 단연 ‘사람’ 그리고 ‘사랑’이다. “열아홉 권의 시집을 내고 다른 것도 썼습니다만 많이 쓴 건 사랑이었”(‘WIN문화포럼’ 김남조 시인 강연록 ‘삶의 축복‘ 중에서)다는 시인의 고백대로 과연 이번 시집에도 ‘사랑’이 있다.시인은 “긴 세월 살고” 나서 이제는 “사랑 된다”고, 그것도 “무한정 된다”고 말한다. 그저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고백”까지도 무한정 가능해진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이 “된다 다 된다”고 말하는 그 환희에 찬 탄성에는 ‘사랑’이 ‘되’도록 몸부림쳐 온 지난 세월의 숱한 고행의 흔적이 묻어난다.아흔 평생 1천편 가까이 시를 써 온 그가 가장 많이 쓴 게 ‘사랑’일진대, 단연코 시는 ‘사랑법’을 쉽사리 가르쳐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 된다’를 비롯한 52편의 시들은 간단없는 시적 고행 속에서 묻고 또 되물어 얻어낸 답일 것이다. “철문을 닫고 오랫동안 열어 주지 않”는 시의 맹렬한 질투 속에서도 시를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김남조 시인. 에는 가슴으로 ‘끝까지’ 시의 길을 걸어온 그의 열아홉 번째 시집은 그래서 ‘더없이 가치 있고 귀하다’.‘긴 세월 살고 나서/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이즈음에 이르렀다/사막의 밤의 행군처럼/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그 이슬 같은 희망이/내 가슴 에이는구나’ (김남조 시 ‘사랑, 된다’ 전문)김남조 시인은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시집 ‘목숨’, ‘사랑초서’, ‘귀중한 오늘’ 등과 수필집, 콩트집 등 다수 저작을 펴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장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대상, 3.1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숙명여대 명예교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3-05

루쉰의 절망… 그는 왜 절망했을까

중국의 20세기 문학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인 루쉰(魯迅·1881~1936).루쉰은 ‘아큐정전’, ‘광인일기’등 중국 고대사회를 신랄하게 묘사한 소설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게 됐다.‘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옌롄커를 비롯한 현시대 중국 최고 작가들도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꼽는다.‘고독자’(문학동네)는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서 표제작 ‘고독자’를 비롯한 주요 단편 7편을 엄선해 엮었다.루쉰은 이 작품들을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썼다. 원래 수록된 소설집 이름 ‘방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루쉰이 매우 힘들었던 시기에 쓴 작품들이다. 제국주의 침략과 폭압적인 정치권력 등으로 인한 중국의 혼란은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중국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루쉰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여기에 루쉰 개인사적으로 여러 시련이 닥쳤다. 문학적 동지이자 자신이 부모처럼 돌봤던 동생과 불화가 생겨서 급기야 결별하고 따로 분가해 나오기도 했다. 첫 부인과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그런 가운데 싹튼 새로운 사랑으로 인한 갈등 등이 이어지던 시기였다.좌절과 고민이 이어지던 시기를 그대로 투영한 두번째 소설집‘방황’의 키워드는 ‘절망’이다. ‘방황’은 그의 첫번째 소설집 ‘외침’이 나온 지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외침’에서 루쉰은 공화제 혁명을 추진하던 1910년 전후 중국의 모습을, 즉, 비극적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상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담았었다. 그랬던 그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희망에서 절망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떻게, 왜 바뀌어갔는지 그 면면을 ‘고독자’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3-05

무엇이 영웅을 만드는가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지도자를 만나 관계를 맺는다.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이들의 지도력은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와 진행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종국에는 역사를 바꾼다.신간‘권력의 자서전’(글항아리)은 역사의 주목을 받았던 열두 명의 인물을 추적해 존경 받는 지도자의 표상과 그 반대의 사례들을 ‘열쇳말’로 집약해 소개한다. 늘 군대의 선봉에 섰던 알렉산더 대왕의 ‘솔선수범’과 도덕국가를 꿈꿨던 공자의 ‘비전’, 출신이 아닌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했던 칭기즈칸의 ‘개방’적 사고, 삶에 어둠이 드리워진 순간에도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마키아벨리, ‘공포’로 조직을 다스렸던 발렌슈타인 그리고 관료제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펠리페 2세의 ‘근면’…. 이들의 사례를 통해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사건을 복기하고 더 나아가 무엇이 이들을 성공 혹은 파멸로 이끌었는지 성찰한다. 문장의 행간에 담긴 거장 선학들의 통찰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진리를 안겨준다.저자 김동욱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부터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한경닷컴에서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blog.hankyung.com/raj99’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역사 지식과 취재 현장의 경험을 접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마키아벨리의 ‘학습’: 절망을 위대함으로 바꾼 사상가르네상스기를 지나면서 국민국가의 성립기에 이른 이탈리아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본래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책략과 무력을 함께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이것은 인간해방의 문제가 인간 개인의 도덕적 견지나 이상주의적 인격의 차원에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19년간 집필한 ‘군주론’은 각종 교훈을 담고 있으며 많은 ‘지배자의 스승’이 돼 현재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그루시의 ‘맹목’: 국가의 운명을 비극으로 이끌다1815년 워털루에서 프랑스군의 에마뉘엘 드 그루시 원수는 ‘맹목’으로 나폴레옹의 명운이 걸린 전투의 패배를 불러왔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주력이 박빙의 접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전 병력 3분의 1을 거느리던 그루시가 가세했더라면 프랑스군이 결정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그는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라”는 나폴레옹의 첫 명령에만 집착해 승리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다.△스탈린의 ‘변신’: 20세기 괴물의 탄생제정 러시아 헌병대가 ‘가장 잡기 힘든 인물’로 목록에 올렸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잔혹함 이면에 또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스탈린이 신출귀몰하게 ‘변신’하는 모습에 집중해 키워드를 뽑아냈다. 20세기 괴물로 불렸던 스탈린의 ‘변신’은 러시아 역사에 핏빛으로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탈린은 레닌이 경계할 만큼 영리했고 자유롭게 행동했으며 편견 없는 유연한 사고로 러시아 정계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스탈린의 박약한 윤리 의식과 복잡한 여성 편력, 권력을 향한 공포스러운 집착을 지적하며 그가 러시아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설명한다.△발렌슈타인의 공포 :전쟁과 폐허의 악마근대를 낳은 17세기의 30년 전쟁 때 신성로마제국 지휘관 발렌슈타인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공포’다. “모든 땅이 파괴되고 나서야 평화가 올 것”이라던 공언대로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대량 살상과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아침에 너무 일찍 깨웠다는 이유로 하인을 찔러 죽이는 등 아랫사람에게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2-27

‘조선왕릉 석조문화재’ 총 5권 완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직무대리 김삼기)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진행한 ‘조선왕릉 석조문화재 보존상태 조사’의 성과를 담은 보고서‘조선왕릉 석조문화재’총 5권을 완간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는 조선왕릉의 석조문화재 보존현황을 정밀기록해 체계적인 보존관리와 학술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취지이다.조사대상은 40기의 왕릉(북한 2기(제릉·후릉)제외)에 있는 4천763점에 이르는 방대한 수량의 석조문화재였고, 2015년 첫 보고서를 시작으로 2019년 최종 보고서까지 총 5권에 조사 결과를 담았다.보고서에는 조선 제1대 건원릉(태조)부터 제27대 유릉(순종과 순명황후·순정황후)과 추존 왕릉을 포함했으며, 왕릉별 석조문화재 보수이력, 정밀현황조사, 비파괴 정밀진단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조사연구는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주관하고 궁능유적본부와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이 공동으로 수행했다.5권의 보고서에는 약 500여 년에 이르는 방대한 기간에 조성된 조선왕릉 석조문화재의 손상현황을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분류해 왕릉별 손상정도를 일목요연하게 비교했으며, 주된 손상원인과 정도를 파악해 해당 왕릉에 적합한 맞춤형 보존관리 방안도 제안했다.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portal.nrich.go.kr)에서 열람 가능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2-24

‘사기’의 통찰력으로 현대를 보다

인간과 권력에 관한 영원한 고전 ‘사기’는 52만 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된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요 인간학의 보고다.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이라는 가혹한 삶의 조건 속에서 혼을 담아 써내었기에 깊은 생각의 단초들이 행간에 녹아 있으며 하나같이 명언명구로 장식된 정교한 갑옷과 같은 책이다.‘사기어록’(민음사)은 개인으로서 최초로 ‘사기’를 완역한 동양고전의 대가 김원중 교수가 ‘사기’에서 200여 편의 명구를 뽑아 그 명구가 나온 역사적 배경과 간취할 수 있는 통찰력을 현대적 사유 속에 담아낸, 핵심 어록이다. ‘나’로부터 ‘타인’으로, ‘세상’으로, ‘시대’로 이어지는 맥락을 따라 현시대 당면과제를 놓고,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발분(發憤)의 마음으로 쓴 역사서이다. 진시황이 중국 영토를 통일했다면, 사마천은 관념적 ‘통일 중국’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사마천의 ‘사기’가 가진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지대하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아우르며, 공간적으로는 옛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이민족의 역사까지 다뤘다. 사마천은 인간 중심적 역사관을 기저로 해 탁월한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고, 2000년이 넘도록 ‘인간학 교과서’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사기’속에 생생한 인간상을 담아냈다. 2011년 9월 김원중 교수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인으로서는 세계에서 최초로‘사기’전편을 완역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중 가장 먼저 출간된 ‘사기 열전’은 교수신문‘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최고 번역서로 선정되기도 했다.그러나 김원중 교수가 완역한‘사기’는 4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대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기 열전’만 해도 전체 1천800여 쪽에 달해 독자들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에 김원중 교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뜻 깊을 명언명구를 가려 뽑아 해설을 달았다.‘인간과 권력의 본질’은 무엇이며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파고든 사마천의 성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장들이다.‘사기어록’은 ‘나’로부터 ‘타인’으로, ‘세상’으로, ‘시대’로 이어지는 맥락을 따라 4부로 구별함으로써 지금 당면한 과제의 기준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와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의 풍성한 어록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축하고 있다. 경구도 있고 격언도 있으며 상소문도 있고 서간문도 있고 속담도 있다. 춘추전국시대와 초한 쟁패 과정을 주축으로 하는 격변의 상황 속에서 탄생된 ‘열전’의 어록들이 가장 많지만, 제후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가’와 제왕들의 이야기인‘본기’의 어록들도 수두룩하다.‘사기’의 쉼 없는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인간 개개인의 고뇌와 갈등을 통찰한 데 있다. 천하를 호령한 제왕뿐 아니라 그 아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개인들이 자신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담아낸다. 이를 통해 사마천은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는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역사는 잠재력을 지닌 개개인에 의해 변화한다는 뜻을 새긴다. /윤희정기자

2020-02-20

40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게 되고…

공지영 작가가 2년 만에 내놓는 열세번째 장편소설 ‘먼 바다’(해냄 펴냄)는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에 있어 시간과 기억의 의미를 탐구하며 사랑의 힘을 되짚는다.이번 소설은 육체에 각인된 기억을 완전히 잊는데 필요하다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고 옛 상처들과 화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원고지 670매의 경장편 분량인 이 작품은 감각을 깨우는 속도감 있는 문체로 1980년의 서울과 현재의 뉴욕까지 시공간을 교차하며 첫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애절하면서도 풋풋한 마음과 온갖 세상 경험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장년의 고단함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에메랄드 빛 서해바다와 시간이 박제된 자연사박물관과 9/11 메모리얼 파크 등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상징하는 듯한 독특한 배경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가히 ‘사랑의 작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의미와 모습에 천착해 온 공지영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감성적인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로 단순히 첫사랑이란 일상적인 소재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일, 사랑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윤희정기자

2020-02-20

고대 한민족, 그들의 삶과 생각

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의 권위자인 전호태 교수가 우리 고대사상의 탄생을 돌아보는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창비)을 펴냈다.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수만 년 동안 축적된 고대 한민족의 생각과 신앙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담아냈다.중요한 유물, 유적, 개념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동서양의 신화, 미술, 종교를 넘나들며 우리 고대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설명해낸 이 책은 고대사 공부의 기본서로서는 물론, 가족이 함께하는 역사기행의 길잡이로도 안성맞춤이다.특히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을 비롯해 여러 인물이 등장해 같이 유물을 살펴보고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취해 재미를 더했다. 또한 중간중간 유물과 사상이 생겨날 당시의 상황을 고대인의 시각으로 서술해 생동감 있는 1인칭의 시점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고대의 유물을 지금의 삶과 문화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통찰을 선사한다.1~4장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선사시대의 역사를 되짚는다.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물과 유적을 보며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 진석은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각 시대별 대표적 유물을 차례로 살피며 선사시대의 삶을 만나고 상상한다. 여기서 이 책의 큰 장점이 드러나는데, 역사를 단순히 결과로서, 평면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후기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후반부(6~14장)에서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종교와 사상이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청동기시대 이후 부족국가의 형성에 따라 현실의 권력관계가 중요해지면서 창세신화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영웅신화의 시기가 도래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 가야는 각자의 지배층이 지니는 우월함과 신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시조의 영웅신화와 건국신화를 백성들에게 전파했다.6~7장은 삼국시대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각 나라의 건국신화에 얽힌 이야깃거리들을 풀어낸다. 특히 영웅과 하늘이 신성시되는 이유, 동명왕신화와 가야 건국신화가 여러 갈래의 내용으로 전해지는 이유 등 피상적인 지식으로 신화를 접했을 때는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대목들을 짚어내며 신화의 목적과 상징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8장에서는 샤먼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의 부침을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설명하며 샤머니즘의 원리와 흥망에 대해 말한다. ‘신과 만나는 사람’의 전통이 지금도 남아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떠올리며 읽어내려가다보면, 인간이 가진 근원의 두려움이나 한계가 시대나 문명과 큰 상관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계의 운행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등장한 음양오행론은 9장에서 설명된다. 특히 음양오행론이 역사시대에 한반도에 자리 잡은 종교와 사상에 흡수돼 각각의 이론적 토대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10~14장에서는 한반도에 전파된 불교, 도교, 유교 사상의 주요한 가르침, 삼국에 유입되던 배경과 그에 따른 당시 사회상의 변화 등을 두루 살핀다.암각화와 고분벽화에 대해서 각각 별도의 장을 마련해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시작된 벽화미술의 흐름은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암각화로 이어진다. 5장에서는 암각화가 남겨진 현장에서 이뤄지는 두 가족의 대화를 통해 암각화의 의미를 탐구한다. /윤희정기자

2020-02-13

통근 버스 탈때 쏟아지는 햇빛만이 유일한 사치인 21살 소희…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권여선 작가의 여섯번째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이 출간됐다. 2016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안녕 주정뱅이’에 이어 4년 만에 펴내는 단행본이다. 1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모르는 영역’ 등을 포함해 여덟 편의 단편을 담았다.소희는 일하는 매장에서 박스를 들어올리다 박스 아래에 튀어나와 있던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기지만, 대출금과 옥탑방 월세 등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친구도 못 만나고 친구도 못 만들”며, 갚아야 할 빚과 모아야 할 돈을 백원 단위까지 끊임없이 계산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 그런 소희에게 유일한 사치는 아침 통근버스를 탈 때 쏟아져들어오는 햇빛이다. ‘찌르는 듯 따스하고 무심하면서도 공평한’ 햇빛처럼 소희의 하루하루는 거칠 것 없이 무자비하지만 그러나 끝내 온기가 전해져온다. 그건 “대화가 안 된다 매가리가 없다 무난하다 생각이 없다”는 말 대신 손톱이 다친 소희에게 “조심해야지” 하고 말해주는 할머니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함부로 희망을 말하거나 섣부르게 위로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조심해야 한다고, 아직 멀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만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때문에 ‘아직 멀었다는 말’은 끝을 단정짓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2-13

우리 몸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는 우주 그 자체이다

우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빅뱅은 왜 일어났는가? 아주 먼 미래의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이 우주 안에서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21세기북스)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윤성철 교수가 서울대 인기 교양과목 ‘인간과 우주’에서 진행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우주는 138억 년 전 순간적으로 발생한 대폭발로부터 시작됐다. 이것은 우주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단순한 가설이 아닌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빅뱅우주론은 우주에 관한 여러 굵직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정적인 우주를 표방하는 정상우주론의 자리를 빼앗고 현대 천문학의 중심에 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계속 변하는 것처럼 우주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 같은 현대 과학의 위대한 발견으로, 빅뱅 이후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별의 형성과 진화, 생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밝혀낼 수 있었다.이 책에서 저자는 별을 구성하는 물질과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같다는 사실을 여러 과학적 근거와 이론들을 통해 자세하게 설명한다.즉 별의 내부에서 합성되는 물질은 별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순환 과정을 통해 우주로 퍼져나가 별과 별 사이를 떠도는 생명의 씨앗이 되며, 이는 다시 새로운 별로 탄생되거나 지구에 떨어져서 우리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된다. 또한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 중 하나인 수소는 빅뱅을 통해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 몸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는 우주 그 자체인 동시에 별에서 온 먼지”라는 것이다.책은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인간의 세계관을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아인슈타인의 최대 실수, 우주상수’, ‘여성 최초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세실리아 페인’ 등 천문학사를 수놓고 있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별의 형성과 진화뿐 아니라 경이로운 생명의 기원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