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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날개’ 이어쓰기 이상을 다시 주목하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 ‘날개’중내년은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이 태어난 지 110년째 되는 해다. ‘천재’와 ‘광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 이상은 근대 문인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문학적 자장이 넓고 크다. 그는 시, 소설을 비롯해 수필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으며, 그의 문학은 당대뿐만 아니라 1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에서도‘날개’는 명실공히 그의 대표작으로 이상 문학에 대한 관심을 널리 확장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냈다.식민지 지식인의 불우한 자의식을 그린 소설로, 흥미로운 경구의 삽입을 통해 모더니즘을 실험한 소설로, 자본주의 화폐경제를 재현한 소설로도‘날개’는 그간 다양하게 읽혀왔다.‘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문학과지성사)는 이상의 대표작 ‘날개’를 여섯 명의 소설가(이승우, 강영숙, 김태용, 최제훈, 박솔뫼, 임현)가 새롭게 이어쓰기를 시도한 작품이다.이승우의 ‘사이렌이 울릴 때’, 김태용의 ‘우리들은 마음대로’, 임현의 ‘진술에 따르면’은‘날개’와 동일한 시공간 및 인물을 공유하면서 비교적 적극적인 방식의 이어쓰기를 시도한다.이승우의 ‘사이렌이 울릴 때’는 ‘날개’의 마지막 장면에 주목한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를 외치는 ‘날개’속 ‘나’를 대면하는 또 다른 ‘나’를 등장시키는 이 작품에서는, 정오의 사이렌 소리만 맹렬할 뿐 그 무엇도 분명한 것이 없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사실만이 확실할 뿐이다.김태용의 ‘우리들은 마음대로’와 임현의 ‘진술에 따르면’은 공통적으로 ‘날개’ 속 ‘아내’를 초점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겹쳐지는 작품들이다. ‘날개’에서와 달리 김태용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얻게 된 그녀(‘나’)는 매우 솔직한 여성으로 등장하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등장하던 영화는 이제 끝났고 새로운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라고, 결국 자의식 과잉의 무능한 남편을 버리고 “나는, 우리들은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선언하는 소설로 읽힌다.임현의 ‘진술에 따르면’은 백화점 옥상에서 투신한 사내의 죽음을 조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투신 장면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아내는 “아무래도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것 같다”라고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 임현의 작품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교환과 관련해 ‘날개’의 화폐경제가 의미하는 바를 날카롭게 분석해보는 소설로서 흥미로우며, 현재적 관점에서 더 많은 논의를 가능케 한다.앞의 세 편의 소설이 ‘날개’의 한 장면 혹은 다른 등장인물들을 극대화함으로써 정전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다시 읽기’를 부추기고 있다면, 강영숙의 ‘마지막 페이지’, 최제훈의 ‘1교시 국어 영역’. 박솔뫼의 ‘대합실에서’는 이상의 ‘날개’를 후경으로 설정하면서 ‘다시 쓰기’의 행위에 더 몰두한다.강영숙의 ‘마지막 페이지’는 어떤 불행한 사건을 공유하고 있는 두 친구의 관계가 그려진다. 하나의 방을 비밀처럼 공유하고 있는 ‘나’와 ‘아내’ 사이의 감정 교환과 서로 간의 오해를 그리고 있는 ‘날개’의 구조는 강영숙의 작품 속에서도 어느 정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최제훈의 ‘1교시 국어 영역’은 대입 시험을 치르고 있는 재수생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하고 있는데, 그 의도가 비교적 분명한 풍자소설에 가깝다. 우리가 배운 ‘날개’에 대한 설명들, 즉 ‘현대 문명과의 불화’나 ‘지식인의 내면세계’ 혹은 ‘무력한 지식인의 분열상’이 얼마나 공허한 이야기일 수 있는지를 유머러스하게 확인한다.박솔뫼의 ‘대합실에서’는 이상의 행로를 따라 서울 시내의 거리를, 그리고 동경의 거리를 하릴없이 걷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계속 실패하는 숫자 세기를 반복하면서, 서로 돈을 주고받는 무용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걷다가 멈추고 커피를 마시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걷는다. 박솔뫼의 작품은 ‘무용한 시간’을 재현하는 소설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무용한 시간들은 이야기를 읽고 쓰는 시간들을 자연스럽게 환기한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9-10-17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 그리고 그들의 사랑

시인 백석(1912~1996),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됐다.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1부 운명에서는 백석을 만나기 직전 김영한 여사의 성장기와 기생 김진향으로서의 삶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집안 사정, 기생으로의 입문, 일본 유학과 귀국,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까지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김영한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 그녀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보고자 열여섯의 나이로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으로 입문해 조선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는‘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해‘문학 기생’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다가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하지만 면회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함흥 땅에 주저앉는다. 1936년 가을, 그는 궁리 끝에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 복색을 입고 함흥권번으로 들어간다. 오로지 은인이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기생이 되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다시 들어선 길이었다. 결국 해관 선생은 만나지 못했지만, 바로 그곳에서, 1936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47쪽, ‘마누라! 마누라!’)2부 당신의 ‘자야’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기록이다. 백석이 지어준 ‘자야’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청진동 시절 자야를 두고 ‘세 번’이나 새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냉엄한 신분제 시대의 사랑, 거리에서 지인이나 자야의 손님과 마주칠 때마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이 시인과 기생 커플의 고뇌와 갈등, 백석 집안의 극렬한 반대와 자야의 방황, 자야에게 만주 신경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는 백석의 사랑이 영화처럼 펼쳐진다.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들의 연애사를 뛰어넘는다. 자야가 복원한 그들의 사랑과 고뇌, 갈등을 통해 백석과 백석 시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 ‘바다’‘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이렇게 외면하고’‘내가 생각하는 것은’‘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 흐르는 애틋한 정조의 실체는 그들의 애정전선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는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젊은 시절과 생사조차 알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자야의 애틋한 정이 고여 있다. 여든 살의 청년 백석을 꿈에서 만났는데, 백석이 자꾸만 허기가 지다고 호소하고 돈을 몇천 원만 꾸어오라고 재촉하더라는 대목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더불어 백석 시를 통해 백석을 그려보는 살뜰한 마음,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 시인’으로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 제 손으로 백석의 시선집을 펴내겠다는 신념으로 동분서주하다가 뜻밖에도 한 후배 시인에 의해 발간된 ‘백석시전집’을 가슴에 안고 느꼈던 감격, 그리고 백석의 고희를 맞아 쓴 편지 등은 긴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기는커녕 더욱 짙고 단단해지는 자야의 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해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10

‘보리타작소리’ 등 포항 흥해지역 구전 민요 자료집 출간

1960년대까지 동해안 최대의 곡창지대인 흥해 들판에서 불렸던 민요를 채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민요자료집이 출간됐다.포항시 흥해읍 지역의 농요를 보존·전승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포항흥해농요보존회(회장 박현미)는 최근 흥해지역 구전민요을 채록해 정리한 ‘어절씨구 흥해야! 흥해의 민요’(박창원·박현미 편저)를 출간해 출판기념회를 갖는다.Ⅰ, Ⅱ부로 구성된 이 민요자료집의 Ⅰ부는 지역의 민속학자인 박창원씨(현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가 흥해읍 지역에서 채록한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보리타작소리’, ‘지게목발소리’, ‘어사용’, ‘그물당기는소리’, ‘베짜는소리’, ‘나물캐는소리’, ‘상여소리’, ‘월월이청청’등과 국악인 박현미씨(현 흥해농요보존회장)가 최근 흥해 출신 김선이 기능보유자로부터 채록한 ‘치이야칭칭나네’ 등 총 80여 편의 민요를 악보, 녹음CD와 함께 실었다. Ⅱ부는 박창원씨의 논문 ‘흥해지역 민요의 전승양상’이 실려 있다. 240×190cm, 243쪽. 경북도의 향토농업문화계승보전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민요자료집 출간에 대해 박현미 포항흥해농요보존회장은 “이 책을 통해 흥해농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앞으로 흥해농요의 보존·전승을 위한 교재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흥해에서도 민요가 잘 보존된 북송리, 죽천리 등에서 카세트 녹음기로 민요를 채록했던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은 “흥해는 논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라 어느 지역보다 ‘모심는소리’가 잘 보존돼 왔다”고 말하고, 보존·전승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포항흥해농요보존회는 13일 오전 9시30분 흥해종합복지센터에서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열고, 오후에는 흥해농요경창대회를 개최한다. /윤희정기자

2019-10-10

나쁜 습관을 사용하는 5가지 방법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하지만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하지만 제때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좋다는 걸 알지만 운동도 음식도 조절하지 못하고 자꾸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나쁜 습관은 없다’(판미동)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나쁜 습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고,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 주는 책이다. 조직 습관 개선 컨설턴트인 저자 정재홍씨는 나쁜 습관을 개선하려면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그 출발점인 생각과 감정 등 내면의 습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습관이라는 지름길을 이용하는 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미 굳어진 나쁜 습관이 있어도 이를 의식적으로 사용해 다른 지름길을 내면 좋은 습관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심리학과 뇌과학, 습관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 감정, 신체반응을 다루는 5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나도 모르게 되돌아가는 나쁜 습관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한다면, 자신의 한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나쁜 습관을 넘어서 원하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저자는 습관을 뛰어넘기 위해 그 바탕에 있는 자신의 내면대화(생각, 감정, 느낌 등)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에니어그램의 머리형(생각), 가슴형(감정), 장형(행동)의 유형 구분법을 적용해 주로 활용하는 내면대화에 따라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자신의 유형에 맞게 습관을 다루면 매우 효과적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느 순간 다시 원래의 습관대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생각에 거리감 두기’ ‘감정 저장고 비우기’ ‘불편을 이용하기’ 등의 다양한 기법들은 자신에게 맞게 나쁜 습관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2019-10-03

타인, ‘지옥’인가 ‘놀이공원’인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심층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인터뷰어를 꼽는다면 단연 지승호 작가를 떠올릴 것이다. 2002년 이후 지금까지 50여 종의 단행본 인터뷰집을 낸 지 작가는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라 할 만하다. 그의 인터뷰어가 돼본 사람이면 한결같이 그의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열정과 노력에 탄복한다. 이번 그의 인터뷰집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두근두근,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싱긋) 서문에는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각각의 ‘신’을 한자로 풀이하며 그의 인터뷰어 영업비밀을 살짝 드러낸다.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눈치가 있어야 하고, 신하가 돼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고, 운때가 맞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며, 실패를 맛보고도 거듭 도전해야 한다고. 그와 함께 작업을 해본 편집자들은 또 그가 ‘섭외의 신’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는 인터뷰 상대를 대부분 자신이 직접 섭외한다. 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승섭 교수, 김규리 배우, 강원국 작가, 목수정 작가, 강용주 의사, 이은의 변호사, 주성하 기자, 서지현 검사 등 화제의 인물들이다. 이 책은 이들을 만나 묻고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민감하고 절실한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솔직하게 짚어본 산물이다. 여덟 인터뷰어들 역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와 그들의 고통을 주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이번 인터뷰집은 2018년 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월간‘인물과 사상’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골라 묶은 것이다. 다만 지면상의 한계 탓에 대체로 인터뷰어들의 핵심적 주장을 저마다의 어투를 살려 담았다. 이 책에서는 인터뷰어 모두가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발언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지적하면서 앞으로 어떤 사회로 바꿔나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그런 점에서 우선 사회역학 분야를 연구중인 김승섭 교수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좌파건 우파건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건강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전제하에 사회 자원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는 것.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나서도 다시 병을 유발하는 환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해, 그리고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그는 말한다. 의사 강용주와 목수정 작가, 서지현 검사 등은 폭력적 사회에서 정치성을 떠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이번 인터뷰집은 저자가 스스로를 응원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 서문에서는 20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들으면서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저자의 근황이 엿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녹취를 푸는 과정은 언제나 신나고 좋았다며 인터뷰를 놀이공원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두근거리는 인터뷰어가 되자고 다짐하면서 이번 인터뷰집이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기대하기도 한다. 사르트르가 했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을 변주한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라는 제목에서도 ‘이제부터라도 힘 닿는 한 즐거운 놀이공원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저자의 각오가 묻어난다.“지승호: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점 더 지옥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는 내가 바로 타인일 테니까요. 저 역시 제가 힘든 것만 생각하면서 타인을 지옥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타인에게는 지옥이었겠지요.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타인을 다시 놀이동산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 한, 저 역시 타인에게 놀이공원 같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그러면 일도 다시 즐거워지겠지요. 일상의 고통을 좀더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겠지요. 이 책 역시 여러분의 놀이공원이자 대화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앞으로도 ‘설렁설렁’ 인터뷰를 해나가겠습니다. ‘설렁설렁’이라는 말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움직이는 모양’이라는 뜻입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10-03

‘Memento Mori’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과연 당신이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삶인가 죽음인가?, Memento Mori,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사람이 늙어간다는 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누구나 결국엔 닿는 삶임에도 젊었을 때는 무관심하고 나이가 들면 두려워한다.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뉴캐슬대학의 교수를 지낸 피터 존스 박사는 저서 ‘메멘토 모리’(교유서가)에 고대의 나이 듦과 죽음에 관한 사료를 풍부하게 담았다.특히 로마제국의 대표적 지성인이자 네로 황제의 조언자였던 세네카는 노년과 죽음을 주제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와 함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키케로, 역사가였던 플루타르코스, 로마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호메로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인들의 생각도 이번 책에서 들어볼 수 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노년과 죽음에 대한 고뇌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로마인은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로마인들의 삶은 짧고 고단했다. 신생아의 3분의 1이 출생 한 달 이내에, 절반은 5세 전에 질병, 영양 결핍, 열악한 위생으로 사망했다. 게다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가 20세 전에, 거의 80퍼센트가 50세 전에 사망했다. 죽음을 언제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접했던 로마 시대 사람들은 죽음과 질병, 그리고 이를 이겨내야 도달할 수 있는 노년에 관해 부단히 사색할 수밖에 없었다.로마인들은 수명이 짧았기에 노년은 종종 신들이 주는 귀중한 선물로 여겨졌다.호메로스와 키케로를 비롯한 여러 문인과 철학자에게 노인들은 풍부한 경험과 지혜의 원천이었다. 키케로의 대화록 ‘노년에 관하여’에서 대 카토는 ‘활동적인 일을 할 수 없고, 신체가 쇠약해지며, 거의 모든 쾌락을 박탈당하고, 죽음이 멀지 않다’는 노년에 대한 네 가지 비판을 차례로 반박한다. 활동적인 일에는 젊음과 체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하려면 노인의 판단력과 경험과 권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년에 중요한 것은 체력보다도 정신력이며, 사람은 지식을 쌓고 배움을 지속하는 한 나이듦을 의식하지 않는다. 노년에는 예전만큼 쾌락이 중요하지 않으며 성욕, 야망, 연회나 음주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만큼 만취와 불면의 밤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사후세계에 관해서는 가능성이 두 가지뿐인데, 하나는 죽음으로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고 하나는 죽음이 영혼을 영생의 장소로 인도하여 행복하게 지내게 하리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두려워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반면 언제나 중도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두 극단인 청년기와 노년기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청년은 경험이 모자라서 미숙하며, 그렇다고 노인이 되고 경험을 쌓아도 저절로 지혜가 생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은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남자의 가치를 쓸모없는 늙은이와 끊임없이 대조해 보여주곤 했다. 오늘날 대중매체가 알려주는 노년의 대처법은 로마 철학자들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단을 조절하라, 사람들과 어울려라, 몸과 마음이 깨어 있도록 활발히 움직여라. 그에 더해 산아 제한과 위생 및 생활수준 향상으로 나이듦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엔 죽음을 마주하게 되며, 뭐든 뜻대로 될 것 같은 이 세상에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바로 이것이 현대인과 로마인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로마인들은 결코 죽음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대인들에게 삶은 짧고 고단했으며 육신은 젊든 늙든 온갖 질병에 노출돼 있었다. 인간은 자연 혹은 ‘운명’이 던져주는 것을 최대한 기품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키케로는 노년의 죽음을 오랜 여행을 마치고 뭍으로 다가가는 여행자에 비유했으며, 스토아주의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렇게 썼다.“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그러니 너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자연이 너에게 의도한 대로 쓴 다음 흔쾌히 쉬러 가라. 때가 된 올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나무에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 _254∼255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9-26

동아시아 상상력과 환상의 보고 ‘산해경’에 나타난 한국문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인 ‘산해경’은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이라 할 고전으로 역대에 걸쳐 비상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정작 ‘산해경’과 주변 문화의 상관성에 관한 탐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국내 최초로‘산해경’역주본을 발표해 한국 지식 사회에 ‘동아시아 상상력’이라는 화두를 던져 신선한 충격을 줬고 이후 30년간 ‘산해경’연구에 매진해 온 신화학자인 정재서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산해경’과 한국 문화의 상관성을 집중적으로 고찰한 ‘산해경과 한국 문화’(민음사)를 출간했다.‘동이계(東夷系) 고서(古書)’로 통칭되는 ‘산해경’에는 고대 한국 관련 내용이 풍부히 담겨 있어 한국 문화와의 친연성은 근원적이다. 아울러 장구한 역사 동안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교섭을 고려하면 한국 문화에 수용된 ‘산해경’의 양상과 의미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벗어난다. 그럼에도 ‘산해경’과 한국 문화의 상관성을 고찰한 책이 전무한 것은 우리 학계 일각에 존재했던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속지주의(屬地主義)적 인식, 신화·상상력 분야에 대한 인식이 취약했던 학풍 등과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는 ‘산해경’의 적용 범주를 중국 대륙 밖으로 확장해 ‘산해경’이 지닌 동아시아 상상력의 공유 자산적 의미를 실감함은 물론, 한국 문화의 해석 근거를 기존의 국학 범주에서 벗어나 ‘기서(奇書)’에까지 확대해 한국 문화의 근원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9-19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 구상 시인 시‘오늘’ 중에서고(故) 구상 시인(1919~2004)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첫 평전이 나왔다.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구 시인의 85년 삶을 담은 ‘구도 시인 구상 평전’(분도출판사)을 출간했다.사제의 길을 걸어보려다 기자와 종군 작가로 일하고 휴머니즘에 천착한 시를 쓴 작가의 정신을 돌아본다.가장 문학적인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닌 소박한 진실이라는 본질을 추구한 구상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조명했다.구상 시인은 한국 문학계에서 전인적 인격과 지성을 지닌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항상 ‘시의 언어 뒤에는 그 말의 내용과 일치하는 등가량(等價量)의 체험과 진실성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명확한 시관(詩觀)의 실천을 강조해왔다. 기교의 경지를 넘어서는 적확 간명한 수사로써 의미의 정곡을 조준하는 데에도 시인이 단연 으뜸이었다.이러한 작품세계는 ‘영성과 윤리도덕’의 구현이라는 입장에서 뛰어난 문학적 순기능을 펼쳐왔으며, 대사회적 문제들을 소재로 삼은 시작들은 시대의 참된 예언자적 메시지로 남아왔다.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의 투철한 책임감은 해방작품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6·25 전선에서는 민족통일을 향한 비원을 담았으며 1공화국 정권 하에서는 저항적 사회시평집을 내고 투옥을 당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터도 찾아 전쟁의 도덕적인 잘못을 꼬집기도 했다.시인은 한국에서 연작시를 처음으로 쓰고 또 가장 많이 쓴 작가다. 그의 연작시집에서는 치열한 존재론적 인식과 강렬한 역사의식, 그 체험의 부피에서 오는 메시지가 뿜어져나온다.대표작의 하나인 ‘초토(焦土)의 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전쟁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연작시다. 대표적인 신앙시작으로 꼽히는 ‘그리스도폴의 강’은 2년간 시문학지에 연재된 연작시. 50편으로 이어지는 시들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신앙적 직관으로 조명함으로써 읽는 이들을 깊은 침잠과 관조의 신앙적 세계로 이끌었다.‘밭일기’, ‘까마귀’(1981),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유치찬란’(1989) 등의 연작시에서는 파란에 찬 역사와 병고로 수없이 죽음을 체험한 시인의 자전적 고백을 담았다. 또 자기수행의 표상과 물질주의, 현실의 부조리 등에 대한 경고도 깊이 드러낸다.이 외에도 시인은 다수의 시집과 수상집, 사회평론집, 희곡 시나리오집 등을 남겼다.시인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에 포함됐으며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영어와 프랑스어, 독어, 스웨덴어, 일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각국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있다.서울여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문학 비평에 진력해왔다. 특히 시문학 연구를 통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9-19

그때 그 여자들, 사적이며 공적인 ‘나’의 이야기

현재 한국문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소설가 은희경(60)은 풍부한 상상력과 능숙한 구성력, 감각적 문체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중견 작가다. 은희경은 동시대 여성들 마음을 잘 그린 덕분에 성공적인 작가가 됐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이중주’로 당선된 이후 ‘새의 선물’,‘타인에게 말걸기’, ‘아내의 상자’등의 작품으로 문학동네 소설상, 제10회 동서문학상, 제22회 이상문학상, 제38회 동인문학상, 제14회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의 작가로 자리매김했다.은희경 소설의 특징은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일상의 고민과 문제를 심도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던 ‘여성성’을 지우고, 일탈을 시도한다.최근 그는 장편소설‘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태연한 인생’(2012년)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깊이 숙고해 오랫동안 쓰고 고쳤다.특유의 분위기는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전작들이 그랬듯 여성들의 관계 속에서 사회성 짙은 메시지가 진하게 묻어난다.2017년의 ‘나’는, 작가인 오랜 친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그때’는 너무나 다르다.은희경은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낸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무엇보다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해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이야기는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시작된다. 대학 동창인 그들은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고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밀착될 일도 없”는,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소설가 은희경. /문학과지성사 제공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1977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 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들은 각자 “성년이 되어가는 문으로 들어가” “낯선 세계에 대한 긴장과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간다(2016년 작가 인터뷰).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춰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작가의 말’)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윤희정기자

2019-09-05

인간의 삶과 자아는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종교사회학의 세계적 권위자 스티브 브루스의 ‘사회학’(교유서가)은 사회계급, 범죄와 일탈행위, 교육, 노동, 종교, 나아가 정치적 분파에 관한 연구들을 거론하며 자아가 사회에 의해 형성되고 거꾸로 사회가 자아에 의해 형성되는 방식을 탐색함으로써 사회학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이번 전면개정판에서 저자는 사회학의 본질을 규명한다. 아울러 사회과학에서의 ‘과학’을 강조하며 새로운 의제나 발상이 사회학을 형성하긴 하지만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사회분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또 사회학이 사회과학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할 때는 사회학 특유의 연구대상에서 유래하는 고유한 이점과 난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연구대상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사회적 행위의 규칙적 패턴을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 설명에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데, 우선 공평무사를 목표로 삼는다. 일반인은 보통 자신이 지닌 문제는 사회 탓으로, 자신이 거둔 성공은 자기 공로로 돌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질병, 가난, 실패, 불행의 사회적 원인은 물론이고 건강, 부, 성공, 행복의 사회적 원인에도 관심을 가진다.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은 또 증거에 입각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뿐 아니라, 개인보다는 일반적인 것이나 전형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이른바 인간 행동의 일반적 원칙을 끌어다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학자들은 일반적 원칙을 만들기 위해 개인의 인생을 연구한다고 저자는 상기시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29

상위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신간‘20 VS 80의 사회’(민음사)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저자 리처드 리브스(50)는 미국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상가이자 경제학자다. 이 책은 불평등에 실제 책임이 있는 상위 20퍼센트가 어떻게 사회를 망치고 있는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리처드 리브스는 최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고수하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상위 20퍼센트, 즉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다. 중상류층의 위선적인 태도와 불공정한 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불평등 논의의 큰 흐름을 바꾼 화제의 책이다.“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편리한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유의미하게 분석하려면 ‘중상류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20 VS 80’이라는 불평등의 구조를 인지하고, 논의의 초점을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이 책에서 주로 설명하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춰 봐도 결코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중산층이 세계적 경제 침체 속에서 점차 해체되고 있다면, 이 책에서 포착하는 중상류층의 행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유사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중상류층의 모습은 매우 익숙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의 현상은 이와 같은 맥락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과 같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도 상위 20퍼센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분명한 수치와 논거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 또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20 VS 80의 사회’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다.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달리 성공의 기회는 평등하기는커녕 상위 20퍼센트가 사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상류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육, 대입, 인턴과 고소득 일자리 등 성공의 기회를 독차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한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의해 현실이 된다. 이렇듯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의 격차를 확대한다.중상류층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유리 바닥은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을 일컫고자 저자가 제시한 용어로, 저자는 경직된 하향 이동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위해 유리 바닥을 깔아 주는 중상류층 부모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불평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원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 사재기와 이러한 사재기로 인해 만들어진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고학력을 갖추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상류층은 표면적으로는 불평등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최상위층인 슈퍼 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던 것 역시 중상류층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29

고려인 강제 이주사 다룬 가장 생생하고 뜨거운 노래

시는 물론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창작·연구 작업을 통해 문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으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동순(70) 시인의 신작 시집 ‘강제이주열차’(창비)가 출간됐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한 이래 시인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입지를 굳혀온 한편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전집’을 발간한 것을 비롯해 분단으로 매몰된 많은 시인을 발굴해 문학사에 복원하는 등 연구자로서도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이번 시집 ‘강제이주열차’는 시인의 열여덟번째 시집으로 구소련 시절 스탈린 정권이 자행한 고려인 강제이주사를 다룬 연작 성격의 작품집이다. 제1부 ‘강제이주열차’에서는 부제 그대로 강제이주사를 집중적으로 천착했다. 이 시집에서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목이다. 시인은 80여 년의 세월 동안 소외와 무관심 속에 방치돼왔던 강제이주 문제를 자기 문학의 화두로 삼고서 그 시절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었”(‘우리는 무엇인가’)던 고려인들의 처절한 수난의 역사를 세세하고 실감나게 복원해낸다.제2부 ‘슬픈 틈새’에서는 사할린 한인들을 주로 다뤘다. 역사학자 반병률 교수의 해설에 언급된 바와 같이 사할린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일본 간 분쟁의 장이었던 곳으로서 무수한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아픔이 서려 있다. 시인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만리타향에 뼈를 묻은”(‘강제징용자’) 사할린 한인들의 기구한 세월을 그려냈다.제3부 ‘두개의 별’에는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시인은 고려인 묘지에 나란히 묻힌 두 혁명가 홍범도와 계봉우를 기리기도 한다. 특히 시인은 전10권에 이르는 서사시 ‘홍범도’(국학자료원 2003)를 집필하기도 했던바, 홍범도 장군이 대한독립군을 창건하면서 공포했던 ‘유고문’의 형식을 빌린 ‘신 유고문(新諭告文)’은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29

위기는 자본주의의 정상적 메커니즘의 일부다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똑같을까? 자본주의에 미래가 있을까?영국의 사회학자인 저자 제임스 풀처는 ‘자본주의’(교유서가)에서 자본주의의 기원부터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단계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와 발전에 대해 논한다. 자본주의의 여러 형태들을 살펴보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과연 지구화됐는지 탐구한다.또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기에서 최근의 경제위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위기 경향을 검토하고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떨지, 현실적 대안이 있을지 논한다.이번 전면개정판에서 저자는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그릇된 통념과 오해를 바로잡는다. 투기를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저자는 투기가 가격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방법이기도 하며,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서 자라나는 불가피한 파생물이라고 말한다.“위기는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특징 중 하나다. 내부에서 작동하는 역동적이고 누적적인 메커니즘이 너무 많은 탓에 자본주의는 장기간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 생산자들 간 경쟁, 자본과 노동의 갈등, 투기 버블을 부풀리다가 터뜨리는 금융 메커니즘, 자산 갈아타기 등은 모두 애초부터 자본주의의 특징이었던 불안정성의 원천이며 앞으로도 의심할 바 없이 그러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22

‘어떻게 하면…’ 100세 철학자의 행복한 인생

“아름다움의 의미와 영원에 대해 깨어 있는 청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한국 1세대 철학자이자 명수필가인 김형석(100)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에세이집 두 권을 잇따라 펴냈다.올해로 100년째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 교수는 전국에서 강연회를 올해에만 150여 회 소화한데 이어 수십년간 써온 글 중에 현재에도 유효한 내용들을 선별해 책 두 권으로 엮은 것이다.열림원에서 펴낸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이야기’와‘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조용히 이끌어 준다.이번 책에서 김 교수는 책 앞에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았듯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그가 들려주는 인생 경험과 철학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해지고 무의미한 일에 땀 흘리는 사람은 행복해질까!’“무엇이 행복일까요? 그리고 사람은 언제쯤 철이 드나요? 김형석 교수에게 사람들은 늘 질문하곤 한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많이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이제서야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내 친구들이 ‘김 교수가 가장 철이 없으니 제일 오래 살 거야’라는 농담을 자주 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아요.”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김형석 교수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김형석 교수는 데카르트의 말을 빌려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체험하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경험한 사실이 없다면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폭넓은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체험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인간적 삶이 무엇인지조차 희미한 오늘날, 우리는 사실상 각자 혼자만의 섬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형석 교수는 사랑은 주면서 받도록 돼 있는 것이며, 완전히 고립된 삶이 있다면 사랑은 머물 곳이 좁아지고, 결국 고독은 사랑이 없는 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는 김형석 교수가 고독을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 바치는 사랑과 영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지난날 철학자로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던져온 대화들을 담고 있다. 영원한 것을 찾고 그것을 사랑하는 일이 삶의 과제이자 철학적 문제였던 젊은 날의 고독한 대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그것이 무(無)에서부터 온 인간의 본질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정신적 존재라는 점이 새삼 깊은 위안을 준다.우리가 존경하는 수많은 사상가들 특히, 풍부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들은 과연 군중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까? 김형석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깊은 사상은 정신적 대화에서만 이뤄지며, 그 대화는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는 김형석 교수가 교육자로서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사유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는 인생이 본질적으로 모순이라는 사실을 철학자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그 모순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간의 조건’ ‘만나고 사랑하는 것’ ‘우리가 가야 할 그곳’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 이 책은 정체성 상실의 시대에 소중한 자아를 발견하고 실패와 상실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번뇌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삶의 원칙을 깨닫게 한다.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던 철학자 소크라테스, 헤겔, 공자, 예수의 이야기도 100세 철학자의 입담 속에서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때가 오면 누구나 야간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열차는 그대로 달리기 때문에 내린 사람의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이 인생의 야간열차에서는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내리고 싶어도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같은 순간에 죽음을 택했다고 해도 열차에서 내리면 모두 자기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공존(共存)이란 삶이 허락된, 열차 안에서만의 일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인생의 야간열차를 탄 채 달리고 있다. 백 년쯤 지나면 열차 안 사람은 모두 바뀐다. 50년만 지나도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반이나 사라져 간다. 그동안 어두운 열차 밖으로 이미 내렸기 때문이다.”-‘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55p. ‘야간열차 이야기’ 중에서/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9-08-22

“詩는 빵이다” 순수와 참여를 넘나드는…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기본적인 송가’(Odas Elementales·민음사)가 국내 최초 완역돼 출간됐다. 네루다는 굴곡진 라틴아메리카와 칠레 현대사의 주역 중 하나로서 ‘문학 투사’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으로부터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서구의 가장 고전적인 시인이라는 평가도 받은 ‘서정과 순수’의 시인이기도 했다. 평생 2천500여 편이 넘는 시를 남긴 네루다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주체와 객체, 역사와 신화, 부드러움과 단호함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유연함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손쉬운 일반화를 거부하였다.이 시집은 분명하게 민중의 삶을 향하면서도 ‘단순한 언어의 미학’으로 높은 예술성을 달성한 네루다 후기 시 미학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네루다는 지역 일간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시를 연재하기로 하면서 특이한 조건을 하나 걸었다. 바로 문예면이 아니라 뉴스면에 시를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의 시는 독자들의 삶과 호흡하며, 몇 년간 인기리에 연재됐다. 네루다는 시는 모름지기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것이 돼야 하며 최고의 시인은 우리에게 일용할 빵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이런 그의 오랜 시적 신념이 마침내 가장 적절한 시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 바로 이 송가 시리즈다. 민중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그가 평생에 걸쳐 옹호해 온 가난한 민중에 의해 폭넓게 읽혔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점에서 거장의 가장 야심찬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이 책의 시는 알파벳 순서대로 정렬돼 있다. 공기(Aire)에서 시작하여 포도주(Vino)까지, 네루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시로 썼다. 이 순서에는 어떤 위계도 차별도 없다. 시인의 투명한 눈을 통해 옷과 토마토, 양파 등의 소박한 일상 사물에서부터 기쁨과 슬픔, 질투와 평온 등의 감정, 아메리카라는 땅과 세사르 바예호 같은 자신이 사랑했던 동료 시인, 여름과 비, 숫자, 게으름 등,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된다.“비가 돌아왔다.하늘에서 돌아온 것도서쪽에서 돌아온 것도 아니다.나의 유년기에서 돌아왔다.밤이 열리자, 천둥이밤을 뒤흔들고, 소리가고독을 쓸어갔다,그리고 그때비가 도착했다,나의 유년기의비가 돌아왔다,처음엔성난돌풍 속에서,나중에는어느 행성의젖은꼬리처럼,비는타닥타닥 끝없이 타닥타닥끝없이”―‘비를 기리는 노래’에서짤막한 시행은 신문 지면에 싣기 위해 판형에 맞춘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위한 네루다의 의도적 선택이었다. ‘언어의 미다스 왕‘이라 불렸던 네루다의 유려한 솜씨로 수수한 진정성과 강렬한 서정, 서사시적 우아함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네루다는 서시(序詩) ‘보이지 않는 사람’에서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새로운 시적 자아를 밝힌다. 남과 다르다는 우월의식과 교조주의, 그리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내 형제 옛 시인’에 대한 결별의 선언은 과거 자신의 시를 포함한 기존의 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제 ‘보이지 않는 사람’인 ‘나’는 피 흘리며 아파하고 땀 흘려 노동하는 모든 이들인 ‘우리’다. ‘나’는 핍박받는 민중의 영웅적 대변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의 ‘기본적인 것’, 친숙하고 소박한 사물들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상들을 그대로 전달하는 투명한 존재다.이 시집은 이데올로기적 논란을 비껴가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중 독자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으나 공공의 책무를 지닌 노동자로서의 시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버린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경제적 수탈을 비판하고, 여러 정치적 폭력에 항거하는, 색채가 분명한 시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네루다는 이러한 시들 역시 정치적 구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민중을 향해 흘러들 수 있도록 근원적 휴머니즘의 시세계를 구축해 냈다.송가(Ode, Oda)는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에 의해 그 원형이 확립된 서정시의 형식이다. 핀다로스는 당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성대했던 네 개의 스포츠 제전(올륌피아, 네메아, 퓌티아, 이스트미아)의 승리자들을 영웅으로 격상시켜 엄숙한 주제와 품위 있는 문체, 웅장한 합창시의 형식으로 칭송했다. 고대 그리스 이후로도 송가라는 형식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시대, 권력자 혹은 영웅의 고귀함을 찬미하는 웅장한 장시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러나 네루다는 지금껏 송가의 대상이 된 적 없는, 혹은 진지한 ‘시’의 주제도 된 적 없던 아주 소박한 보통의 것들을 주제로 선정하고 이를 송가라 불렀다. 이로써 시의 엄숙함과 권위를 탈피하는 한편 일상은 숭고의 차원으로 격상되는 사건이 일어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9-08-15

‘어떻게든 되겠지’가 가장 위험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기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잘 살아남는 이들은 어떤 유형의 인간일까.확신을 갖기보다 중립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미래를 더 정확히 예측한다. 이들은 성실성, 신중함, 성찰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질적인 시각들을 아우르는 통합성, 상세한 정보에 근거한 판단, 지속적 정보 갱신의 특성을 나타냈다. 이들 부류는 어느 예측 정보도 한 번에 신뢰하지 않고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으며,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질문을 내놓거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나갔다.예측의 정확도가 높은 개인이나 미래지향적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학습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학습이 아니다. 모르게 하는 것을 밝혀내는 학습이다. 이들은 관심이 없어서, 논리적으로 해명되지 않아서, 경험하지 않아서, 기존 관념을 벗어나서, 알고 싶지 않아서, 내 생각과 달라서, 너무 엉뚱해서 간과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자신의 눈을 가린 인식의 장벽을 하나씩 허물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예측했다.또 한 가지, 자아효능감이 높은 개인은 그렇지 못한 개인보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자기회복력이 높다. 미래 자아효능감을 가지려면 미래 예측이라는 일종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신간 ‘미래 공부’(글항아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관계와 네트워크를 만들고, 새로운 관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생존력을 높이고 성장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15

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생의 시작과 끝 담담히 담아내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60)가 2000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인간 존재의 반복되는 서사, 생의 시작과 끝을 독특한 문체에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아름답지만 황량하고, 때론 고독한 피오르를 배경으로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또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 짧은 소설은 작가 특유의 리듬과 침묵의 글쓰기를 통해 한 편의 아름다운 음악적 산문으로 읽힌다.포세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내놨다. 그의 역량은 장르를 불문하고 뻗어나가 희곡과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에세이, 어린이책까지 전 세계 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다.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브라게 명예상, 스웨덴 한림원 북유럽 문학상, 국제 입센상을 비롯 유수의 문학상으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바지런한 산파의 움직임, 산모의 고통 어린 숨, 이제 곧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기대와 걱정. 소설은 노르웨이 해안마을 어딘가, 한 살림집에서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이 잘못돼 아내나 아이나 아내와 아이 모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찬 남자의 내적 독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념은 분명 그들을 도와 온갖 나쁜 일로부터 구원해줄 신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 남자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처 단어가 되지 못한 외마디 모음과 뒤섞인 아내의 비명이 길게 이어진 후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초조한 시간은 끝난다. 그렇게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장이 바뀌고 그사이 긴 시간이 흘러 요한네스는 노인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너무 외진 곳이었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이곳에 터전을 잡았고 고깃배를 타고 나가 생계를 꾸렸다. 아내도 친구도 곁을 떠난 지금, 적막하고 고독하기만 한 요한네스의 삶에서 근처에 사는 막내딸만이 의지처가 돼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의 하루가 막 시작된 참이다. 썰렁한 집안에서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별다른 기대가 없는 일상,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고 원래 그대로인데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듯하다. 늙은 몸도 무게가 거의 없는 듯이 가뿐하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들, 풍경이 어쩐지 너무 달라 보인다. 요한네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08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축 세우기

“왜 툭하면 불필요한 자책과 자기비하에 시달릴까? 어떻게 하면 자존심을 지키며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누구에게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이 같은 열망, 인정받고 싶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또 만족시킬 수 있을까?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가 ‘참 괜찮은 나’를 만나는 자기 탐구의 길잡이로 나섰다. 40만 부가 판매된 전작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가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를 줄이는 것을 주제로 했다면, 신간‘오늘 참 괜찮은 나를 만났다’(김영사)에서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위로와 칭찬, 이해와 수용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것이 우리의 내면에 균형과 조화, 나아가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내면의 중심축을 바로 세울 때 자신을 향해, 그리고 상대방을 향해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기대다. 근원적이면서도 대단히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름난 경험 많은 상담가답게 인간의 내밀한 욕구와 필요를 하나하나 차분히 응시하면서 자존감과 자기 확신에서 편안한 인간관계와 합리적인 사회생활, 그리고 더 성숙한 삶에 이르는 여정을 안내한다.잠들기 전 오늘 만난 사람들에 대해 필름을 돌려본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금이라도 거부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좌절과 우울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예민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도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적에게조차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 때문일까.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격려받고 싶다. 이 같은 필요를 지닌 이들에게 저자는 스스로에게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하고 말해주라고 조언한다.이렇게 책은 먼저 인간의 정신적 생존에 꼭 필요한 자존감, 자기 긍정, 자기 확신의 문제를 다룬다(1, 2장).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후회와 자책에 불필요할 정도로 빠져들곤 한다. 말하자면 내면의 중심축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하고 때론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할 때도 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그렇게 하여 자신의 내면의 곳간이 넉넉해질 때, 이러한 자기 긍정의 토대 위에서 다른 이들과 좀 더 편안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3장). 특히 직장생활과 조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루는 대목(4장)과 대표적인 심리적 문제들을 짚어보는 대목(5장)은 저자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이 빛을 발한다. 어려운 정신의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쉽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강점인데, 상담 중 만난 실감나는 사례와 문학작품 및 영화에서 가져온 이야기는 자연스레 읽는 이에게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격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언, 이를테면 휴식, 취미, 독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글들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6장).삶이 너무 고단하고 인간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더 좋은 삶의 전망을 포기하고 당장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사소한 것들에만 관심을 두기 쉽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현실의 문제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더 나은 삶, 편안한 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귀중한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먼저 나의 내면이라는 곳간이 풍성해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나는 그 곳간을 채우는 양식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내면의 중심축이 확고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아니면 외국어를 배우려고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소한 내면의 중심축이 치우치는 일은 없지 않을까?” _10쪽다음은 양창순 박사가 제안하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5가지 자존감 수칙.1.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일을 잘했으면 그런 자신을 칭찬해준다. 그런 칭찬이 쌓여서 내 마음의 자산이 된다.2. 남의 탓, 환경 탓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분노에 사로잡혀 귀중한 시간을 써버리는 것보다 더 큰 낭비가 있을까.3.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데 천재가 아닌지 돌아본다. 실제 일어난 일에 눈덩이처럼 더해지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4. 인간관계도 날씨와 같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생각하자. 상대의 행동을 다 나와 연관해 생각하는 것이 지나치면 관계망상이 된다.5.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으면서 남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103-107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9-08-08

‘日거리의 사상가’그신랄한일본사회비판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우리나라에 수출규제를 단행하면서 한일 갈등이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일본은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들먹이며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비이성적인 행태로 우리나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일부 우익 정치가들이 무례한 망언을 일삼으며 일반 시민들 사이에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일찍이 일본의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아베 내각을 향해 ‘독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던 일본의 대표적 지성 우치다 타츠루(고베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현재 일본 사회가 강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어떤 형태인지, 대응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자꾸만 외부에서 찾으려는 정치담론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지난달 중순 한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일본 엘리트층의 ‘파국 원망’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좀 더 구체화했다. “기존 체제를 개선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는 아베는 자신의 무능함을 사과하느니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 파국적 상황이 만들어지면 아무도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나만 망하는 것은 싫다. 모두가 함께 망하면 내 무능력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논리”라는 것이다.‘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은 우치다 타츠루가 일본의 진보적 신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에 6년 동안 연재한 인기 칼럼을 모은 책이다. 연재 기간 동안 일본에서는 두 차례의 정권교체와 오키나와 기지 이전 논란, 올림픽 유치 캠페인, TPP 협정 참가, 독도 및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잇따랐고, 무엇보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집단 자위권을 인정하는 안보법 개정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다.우치다 타츠루는 다양한 시사 쟁점을 다루며 현재 일본이 처한 불안과 위기의 징후들을 읽어낸다. 그가 포착하는 일본 사회의 면면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미의 시대에 사회 곳곳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가 시스템의 낙후성을 만천하에 드러냈으며, 공적 신뢰가 심각하게 무너진 나머지 근본적인 재편은 바랄 수도 없고, 정치가와 관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들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은 없으며 이대로 가면 불가피하게 활기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체념과 아무리 혼자 발버둥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답답하고 무력한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우치다 타츠루가 “전후 일본의 모든 정부 중 가장 무능한 정부”라고 평가하는 아베 정권은 이제 새 질서를 만들 힘도, 비전도 없기에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파국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치다 타츠루는 몇몇 사회 엘리트들의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이고 성숙한 시민들,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참여로 사회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한다.이제까지 100여 권의 책을 발표하며 우치다 타츠루가 일본 사회를 일관되게 비판해온 논지는 ‘어른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가 말하는 어른이란 “적절할 때 적절한 곳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지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없을 때에도 적절하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 일본의 문제는 그러한 어른, 곧 성숙한 시민, 지성인이 점점 사라지고 정치도, 그것을 말하는 언어도 갈수록 단순화·획일화, 유아화·열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비록 듣기 거북할지라도 ‘아무도 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함으로써 위기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으며, 소시민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해가면서도 동시에 더 넓은 시야에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며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성숙한 시민, ‘위대한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이 책에서 우치다 타츠루가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은 당연하게도 아베 신조 총리다. 그는 ‘아베노믹스’를 ‘아베 거품’ 즉 언젠가 휴지조각이 될 것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려는 이들이 순박하고 어설픈 먹잇감을 꾀는 노름판이라고 단언한다.우치다 타츠루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법, 특정비밀보호법, 공모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일본 국민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전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전쟁을 개시할 마음이 있는 정부’를 갖게 됐다고 통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01

쏟아지는 가짜 뉴스와 정보, 진짜 돈과 자산을 지켜라

‘페이크’는 전 세계에서 4천만 부 이상 판매된 재테크 밀리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의 최신작(미국 현지 2019년 4월 출간)으로, 현재 시장에 만연한 ‘가짜 돈’, ‘가짜 교사’, ‘가짜 자산’의 실상을 파헤친다. 기존의 부자 아빠 시리즈에서 밝히지 않았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쉽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돈과 투자의 비법을 들려준다.이 책은 현재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가짜 돈과 자산들이 무너지면서 사상초유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금융 및 경제와 관련된 복잡한 개념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며 그 문제점을 짚는다.2008년 700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파생상품 시장이 붕괴해 세계 경제가 무너질 뻔했다. 부채담보부채권(CDO), 주택저당증권(MBS), 신용부도스왑(CDS) 등의 파생상품, 즉 가짜 자산이 그 원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금융계의 엘리트 계층들이 ‘금융 공학’을 통해 가짜 자산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 규모는 2008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1천200조 달러(141경 원)에 달한다.저자는 이러한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짜 자산과 진짜 자산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가짜 자산은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고, 그 실패 비용은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하면서 실용적인 기준은 “자산은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는 것”이고, “부채는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 가는 것”이다. 저축 계좌나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 ETF, 연금 계획 등은 가짜 자산이다. 투자자가 투자금과 리스크를 전부 부담하지만 수익은 일부만 얻는, 즉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 가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더불어 이 책에서는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는” 무한수익을 창출하는 금과 부동산, 사업체 등 진짜 자산을 구축하는 원리와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8-01

작아서 더 아름다운 미생물의 매력속으로…

위대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지구는 첫 화석이 만들어진 뒤 내내 ‘세균의 시대’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30억 년 전부터 지구의 암석 속에서, 바다 속에서 번성해 온 세균류는 지구에서 가장 유서 깊고,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물량을 차지하는 지배적인 존재였다. 세균만이 아니라 고세균류나 바이러스류까지 포함한 미생물의 역사는 더 오래되고 깊다. 지구가 소행성과 혜성의 대규목 폭격에서 막 벗어나 식기 시작했을 때인 40억 년 이전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암석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구 미생물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사실 지구 역사의 4분의 3의 기간 동안 생명의 역사로 치면 6분의 5 기간 동안 지구에는 미생물만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의 역사와 다양성은 미생물의 역사와 다양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무시돼 왔다.지구의 진정한 지배자 미생물의 왕국은 1673년 네덜란드 옷감 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을 발견해 이슬 한 방울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러나 이제 레이우엔훅으로부터 350년 정도 흐른 지금 인류는 미생물 왕국의 힘을 이해하게 됐다. 아니, 현대 인류 문명 자체가 미생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빵, 술, 김치 등을 만드는 식품 산업은 물론이고, 보톡스, 항생제, 백신, 항암제 등을 개발하는 제약 산업, 심지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에너지 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의 곳곳에서 미생물학이 다양한 모습으로 활약하고 있다. 미생물이 없으면 이제 우리는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질병 치료조차 원활히 받을 수 없다.신간 ‘아름다운 미생물 이야기’(사이언스북스)는 현대 사회의 필수 교양으로 부각되고 있는 미생물학에 대한 종합적인 개괄서다. 김완기 아주대 의과대학 약리학과 교수 겸 대학원 의생명 과학과 교수와 최원자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교수 겸 대학원 에코 과학부 교수가 함께 펴낸 이 책은 40년간 분자 생물학과 미생물학 분야에서 연구와 교육을 해 온 두 저자의 경험과 지혜가 오롯이 녹아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25

낮은 자세로, 공손한 마음으로 사소한 일상을 품어안는 시

세상을 바라보는 온유한 시선과 유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순박한 시편들로 개성적인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고영민 시인의 신작 시집 ‘봄의 정치’(창비)가 출간됐다. 2002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서정시의 다채로운 변주를 보여주며 17년간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왔다. 따뜻함과 삶의 비애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의 시는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일상적인 소재에 곁들인 유머와 해학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친근한 언어로 정통 서정시 문법에 가장 충실한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은, 그간 지리산문학상(2012)과 박재삼문학상(2016)을 수상하면서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봄의 정치’는 박재삼문학상 수상작 ‘구구’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생의 활력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오롯한”(안지영, 해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의 섬세한 시어와 결 고운 서정성을 간직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물의 존재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표제작‘봄의 정치’를 비롯해 총 66편의 시를 4부에 나눠 실었다.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생명의 새로운 경지를 발견해내는 시인은 “어떤 속삭임도/들을 수 있는 귀”와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내가 어렸을 적에’)으로 사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일상의 소재들을 마음껏 부리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미와 무의미의 내밀한 관계를 안과 밖으로 변주하면서 “안에서/밖을 만드는”(‘밀밭 속의 개’) 시적 사건들을 포착해낸다. 더불어 시인은 “액자를 떼어내고 나서야 액자가 걸렸었다는 것이 더 뚜렷해지는”(‘액자’) 이치를 깨달으며, 부재로 인해 존재가 드러나는 삶의 역설적인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응시한다.시인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멸돼가는 존재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입속에 새끼를 넣어 키우는/물고기”(‘입속의 물고기’)같이. 낮은 자세로 다가가 사물에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끝내 아무것도/움켜쥐지 못한”(‘조약돌’) 존재들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공손한 마음으로 사물의 본성을 일깨우며,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생의 뒷면을 따듯하게 품어안는다.송재학 시인은 “고영민의 시공간에서는 일상과 온기가 서로 살고 있다. 서로의 계절이기도 하다. 현실의 상상력이면서 현실의 반대 혹은 기억들인 온기는 일상을 울울하고 헐렁하게 포옹한다. 울울할 때 시인의 말은 겸손해지고, 헐렁하다면 시인은 말을 줄인다. 고영민의 시가 애틋한 소이연이 저러하다. 오래도록 시인은 날짜들에게 죄다 공손했다. 윤달이 필요할 때마다 고영민의 시집을 뒤적거려야만 했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25

먹구름 위 뚫고 올라갈 ‘내면의 힘’을 길러라

한국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인 조신영씨는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조신영의 새벽편지’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매일 아침 경북매일 지면을 통해 그는 위안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해주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엘리베이션 파워’는 조신영 작가가 2018년 4월부터 11월까지 주말, 공휴일 가리지 않고 200일 동안 매일 한 편씩 써 내려간 칼럼 중에서 50편을 추려, 책의 형태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2시에 일어나 글을 썼다. 날마다 엘리베이션 파워를 기르기 위한 그만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매일 새벽 6시면 완성한 글을 블로그 (blog.naver.com/dyhope) 이웃들과 경북매일에 연재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나눴다. 조신영 작가 특유의 따스하고 감동적인 글은 아침 출근길 마음을 새롭게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뿌리 삼아 엘리베이션 파워를 기르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고 감동할만한 이야기로 풀어내 구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자아냈다.6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경청’,‘쿠션’의 저자이기도 한 조 작가는 생각을 생각하는 힘, 즉 엘리베이션 파워(Elevation Power)를 기르는 일이 삶의 자유를 확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는다.그는 “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의 비결은 먹구름 위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내면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힘을 엘리베이션 파워라고 합니다. Elevation에는 ‘위로 올라가다’라는 뜻 이외에도 ‘고결한’이란 뜻도 있습니다. 부단히 내면의 정원을 가꾸는 정성이 이런 고결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계속될 것입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반사적 삶이 아닌, 내면의 가치에 이끌려 살아가는 주도적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먹구름 위 눈부신 삶은 내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는 목적지입니다”라고 전했다.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불안감에 짓눌리지 않고 마음껏 자유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안녕한가? 우리는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고단한 우리를 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으로 안내한다. 먹구름 아래 사회적 날씨에 저항하며 의미를 향한 존재로 거듭나기를 갈망한 이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이 책에 담긴 50편의 이야기는 일상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엘리베이션 파워의 가치를 알려준다.책은 프롤로그, 1부 먹구름 아래, 요란한 삶 2부 먹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힘, 엘리베이션 파워 등 2부 11장으로 구성돼 있다.1963년 서울 출생인 조신영 작가는 엘리베이션 파워를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생각학교ASK를 설립, 운영 중이며 고전적 교육 방법인 트리비움(문법, 논리, 수사)으로 리버럴 아츠 (Liberal arts)를 생각학교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새벽 2시부터 글을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을 생각하는 힘에 관한 책을 지속적으로 쓸 예정이다.“먹구름 아래 우리 삶은 치욕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순간도 있습니다. 한계가 우리를 낙담케 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굴복하면 안됩니다.” ‘엘리베이션 파워’ 33쪽“삶이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 걸음을 하는 이유는 대오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오각성 없이 먹구름 위 눈부신 삶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엘리베이션 파워’123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25

‘현대 심리학 거장’ 알프레트 아들러의 삶과 이론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인간의 열등감을 다룬 대표적인 개인심리학자다. 그는 인간행동을 권력에서의 의지로 설명하며 열등감을 보상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삶이 지속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닌 능동적인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주체적으로 설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내면의 열등감은 자아실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설명했다.최근 출간된 ‘아들러 평전’(글항아리)은 알프레트 아들러라는 인물과 그의 개인심리학 이론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아들러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전기인 이 책은, 현장 심리학자이자 전기 작가로 미국 예시바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중을 상대로 긍정 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펼치고 있는 에드워드 호프먼 교수의 저작이다. 그가 1994년에 쓴 이 책은 아들러의 전생애를 한 권에 담고 있으며,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이론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첫 등장과 발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오늘날 현대사회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인간의 질적 삶을 중요시하기 보다는 물량적 가치와 결과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기에 급급해 하며 더 우월한 삶, 인정받는 삶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한다. 그러나 희망과 삶의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점차 불안이 커지기 시작하고 결국 개인의 성취보다는 과열된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스스로 실패했다고 느끼는 열등감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열등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다. 그러나 알프레트 아들러는 그의 개인심리학에서 인간은 누구나 목표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열등감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고 정의했고, 사람들이 이러한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수용할 용기와 사회를 향한 관심을 가질 경우, 인간 내면에 잠재된 창조성을 통해 이를 극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헀다. 즉, 인간은 열등감을 이겨내고자 하는 본능으로부터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하며 인류의 발전 또한 열등감의 산물이라고 언급했다.일반적으로 열등감은 자신감 상실이나 현실 회피 등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분류되지만, 아들러는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분류했다. 열등감은 인간이 목표를 가지고 좀 더 잘 살아가려고 할 때 수반되는 것으로, 열등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기결정성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는 개인 내면에 자리한 열등감을 마주하고 극복방안을 찾는 순간이 한층 더 우월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의 발로이기 때문에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안은 무한한 창조능력인 자유의지임을 강조했다.특히, 그는 사회적인 소속감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며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아성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인중심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인간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유와 책임을 지는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바라봤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공동체 의식을 겸비하고 있다면 건강한 정신 상태를 지니게 됨으로써 심적 해방감을 얻게 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처럼 아들러는 인간에게 잠재돼 있는 사회성을 고양시켜 능동적으로 삶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이 책의 서문은 알프레트의 아들 정신의학자 쿠르트 아들러가 직접 썼다. 아들러와 관련된 저작은 많이 나와 있지만, 대부분 아들러와 프로이트의 초기 관계와 뒤이은 결별 등 이런저런 이야기에만 집중돼 있거나 아동, 성인, 가족과 관련된 이론과 치료 기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쿠르트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아들러)와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낸 최초의 본격적인 전기”다. 이 책은 아들러의 인생사뿐 아니라 그가 직접 만났던 수천 명의 사람과 현대 심리학 전체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심리학자로서 성장한 이야기들을 모두 담았다. 프로이트와의 관계 등 지엽적인 내용에만 매진한 다른 책들과 차별적으로, 호프먼 교수는 특히 미국에서의 아들러의 경력까지 자세하게 서술했다. 평생을 ‘프로이트의 추종자’로 불리며 쌓였던 아들러에 대한 오해가 이 책을 통해 풀린다. 또한 처음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무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들러의 미국에서의 생활을 상세하게 알렸다. 아들러의 개념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 외에도 아들러의 생애를 의미 있는 역사적 맥락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역시 특별하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아들러와 그의 삶, 격동의 역사를 모두 만나보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18

‘20세기 포스터 모더니즘 선각’ 보르헤스와 마주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20세기 중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각자로 평가받는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사 형식으로 문학과 철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남겼다. 보르헤스는 ‘픽션들’, ‘알레프’ 등의 단편소설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소설가였고, 생전 주제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수천 쪽에 달하는 에세이를 남긴 산문 작가이자 평론가였으나, 무엇보다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를 첫 책으로 내며 문학 여정을 시작한 시인이기도 했다.최근 민음사에서 출간한 그의 시선집 ‘창조자’는 라틴아메리카 문학 연구 및 번역에 앞장서 온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교수의 번역으로 이뤄졌다.‘창조자’는 보르헤스 만년기의 대표 작품집 ‘창조자(El Hacedor)’(1960)의 주요 수록 시와 보르헤스 시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별도의 여섯 편을 함께 엮었다.“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내리지 말기를.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신은 빛을 여읜 눈을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눈에 선사하네.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 같이까다로운 책들을.”―‘축복의 시’에서보르헤스의 시 세계는 그의 나이 30세였던 1929년과 50대 중반이었던 1955년 이후, 즉 청년기와 만년기로 나뉜다. 이를 가르는 중요한 사건은 시력 상실이다. 특히 ‘창조자’는 보르헤스가 눈먼 후 공동 저작 외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으로, 갑자기 암흑세계에 빠진 심경을 최초로 드러낸 것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이러한 ‘눈먼 도서관의 주인’ 보르헤스를 오마주하기도 했다.보르헤스 역시 자신의 내면 세계가 가장 진하게 녹아 있는 작품으로 주저 없이 ‘창조자’를 꼽았다. 단편소설의 플롯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의 자기 고백적 목소리는 보르헤스 문학의 미로를 푸는 열쇠가 바로 시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들은어느덧 내 영혼의 고갱이라네.분주함과 황망함에 넌덜머리 나는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아라발의 감미로운 거리,불후의 광대무변에 질려대평원그리고 참으로 광활한 하늘이 자아내는가없는 경관으로 감히 치닫지 못하는소박한 집들이 있는,자애로운 나무들마저무심한 한층 외곽의 거리들.이런 모든 거리들은 영혼을 탐하는 이들에겐행복의 약속이라네”─ ‘거리’에서청년기의 보르헤스는 ‘울트라이스모’(일종의 전위주의 운동)를 제창해 모더니즘 일변도였던 아르헨티나 문단 쇄신에 앞장섰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간,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룬 지방색이 강한 자유시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눈먼 후 만년의 그는 정형시에 주력했다. 운율과 리듬을 맞추는 것이 기억과 구술에 의존해야만 했던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텍스트에 대한 집요한 검열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혹자는 그가 일생 동안 청년기 시에 수차례 개작을 거쳐 ‘울트라이스모’와 지방색을 없앤, 아예 새로 쓴 다른 시가 되었다고 평하기도 한다.이번‘창조자’에 수록된 청년기 대표시는 개작 전 초판본을 번역했다. 보르헤스 애독자라면 누구나 찾아보고 싶었던 초기 보르헤스 시의 전위적인 작품부터 가장 잘 알려진 보르헤스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후기 시의 원숙함까지 한 권에 담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11

삶과 삶이 교차하는 그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순간

‘무엇이든 가능하다’(문학동네)는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거장 미국 여류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63)의 신작 소설집이다. 삶의 깊고 어두운 우물에서 아름답고 정결한 문장으로 희망을 길어내는 스트라우트의 여섯번째 소설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위치한 가상의 작은 마을 앰개시를 주요 무대로 해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삶을 아홉 편의 단편에 담아 엮었다.작가는 제각기 자기 몫의 비밀과 고통과 수치심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욕망과 양심의 충돌, 타자를 향해 느끼는 우월감과 연민, 늘 타인에 의해 상처를 입으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스트라우트는 언제나 우리 삶의 근원에 자리한 외로움과 인간의 존재 조건이 지닌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 책에서 작가는 한층 더 예리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내적인 갈등을 조명한다.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는 인생의 말년에 어쩌면 진실은 지금껏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 무너지고(‘계시’), 부유하고 풍족한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배우자의 추악한 비밀은 끝없는 번민과 고통을 낳으며(‘금 간’), 또다른 이는 전쟁에서 자신이 목격하고 저지른 끔찍한 일들로 인해 순수에 대한 혐오와 동경을 모두 지닌 채 방황한다(‘엄지 치기 이론’). 소설 속에서 삶은 상실의 연속이자 상실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는 과정이다.스트라우트에게 인간의 삶은 그 모든 결함과 맹점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과 연민의 대상이다. 삶에 내재한 근본적인 한계는 그 한계가 극복되는 순간을 더 빛나게 만드는 어둠이다. 작가는 우리가 매일 서로에게 무지와 오해를, 크고 작은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열리는 찰나의 순간, 그런 선의로 충만한 순간들 역시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11

‘역사저널 그날’ 고려편, 드디어 책으로 만난다

민음사에서 펴낸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는 KBS의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와 깊이를 온전히 책으로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역사(History)가 지닌 이야기(Story)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한 이 시리즈는 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7년 ‘조선’ 편이 완간된 후에는 고려 편의 출간 시기를 묻는 독자들의 문의가 잇따를 정도였다.‘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은 방송의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고스란히 지면으로 옮겼다. 동시에 방송에서는 시간 관계상 빠르게 언급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쉽게 풀어 설명해 천천히 되새길 수 있게 했다. 요소마다 첨부된 풍부한 도판과 상세한 사료는 고른 호흡으로 독서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방송과는 다른 형태로 몰입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은 1 왕건에서 서희까지 2 강감찬에서 최충헌까지 3 만적에서 배중손까지 4 충렬왕에서 최영까지 등 총 네 권으로 구성된다.2013년 가을에 첫 방송을 시작한 KBS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흐름을 가장 먼저 이끈 TV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역사를 지루하고 딱딱하며 일방적인 지식이 아니라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수다로 풀어내면서도 가볍지 않은 울림을 전해 줌으로써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 결과 주말 저녁의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도 돋보이는 성과를 냄으로써 2019년 현재 세 번째 시즌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16년,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건국에서 멸망까지 장장 8개월여에 걸쳐 고려사 전체를 다룬 것이다. 방송 사상 유례가 없는 프로젝트였다. 고려 편 방송은 여러 시청자의 호평을 받으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10세기 초, 한반도에 다시 한번 분열의 시대가 도래했다. 힘을 잃은 신라 왕실을 대신해 혼란을 수습할 자는 누구인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1: 왕건에서 서희까지’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해 후삼국을 통일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분열은 극복됐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거듭된 혼인은 후계 다툼을 낳았고, 약해진 왕권을 일으켜 세우려는 광종의 노력은 또 다른 후유증을 남겼다. 외침도 있었다. 거란의 첫 번째 침공은 서희의 활약으로 막아 냈지만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거란의 재침을 불러왔다. 고려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자주와 종속, 저항과 순응의 갈림길에서 문명 대 야만, 농경 대 유목이라는 구도는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러나 북방 민족이 언제나 한반도를 위협하는 요소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 강감찬에서 최충헌까지’는 외부의 적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강감찬은 귀주에서 거란을 물리침으로써 고려에 100년의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흥망성쇠의 이치는 변화를 불러온다. 북쪽에서 거란을 대신해 여진이 새롭게 대두했다.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면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전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서경 천도론자들은 실패하지만, 세력을 키운 무신들은 마침내 고려사의 주인공이 된다. 13세기 초, 몽골고원에서는 난립하던 부족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에 모여들었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강타할 폭풍의 전조였다.‘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만적에서 배중손까지’는 무신 정권 치하에서 몽골의 침입으로 존망의 갈림길에 선 고려를 살펴본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반란과 하극상의 시대는 최충헌의 집권으로 진정됐다. 그러나 곧 몽골이 맹렬한 기세로 고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고려는 28년간 몽골에 맞서 싸우며 저항하지만 한계에 달하고, 마침내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다. 고려 태자가 몽골의 대칸을 직접 만나고자 길을 나선 것이다. 고려의 명운을 건 협상은 성공할 수 있을까? 고려는 몽골의 질서 아래에 편입되는 길을 택함으로써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멸망을 피했다. 그러나 마냥 다행스럽기만 한 일이었을까?‘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4: 충렬왕에서 최영까지’는 원 간섭기에서 시작해 위화도 회군까지 다룬다. 쿠빌라이 칸의 딸과 혼인한 충렬왕, 쿠빌라이 칸의 손자 충선왕은 고려를 존속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고려의 독립은 끊임없이 위협당했다. 개혁 군주 공민왕은 원의 기황후에게 맞서고 신돈을 등용하기도 하며 마지막 혼을 불태우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이성계가 최영을 처형하면서 드디어 고려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이 급전직하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