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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유의 충돌과 조화 속 동아시아 문화의 기원 돌아봐

극심한 문명의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그 핵심은 종교적 대립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하나의 종교로 수렴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유교, 불교, 도교의 가치를 다채롭게 수용한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을 경험했다. 세 가지 사유의 치열한 충돌과 융합을 통해 한·중·일을 묶는 ‘동아시아 세계’가 형성돼 동아시아의 다원주의적 문화를 함께 발전해온 것이다.고대 중국에서부터 이어진 유교와 도교 전통 아래 외래종교 불교의 유입, 토착신앙의 발전 등 1~8세기 동아시아는 인간과 삶에 관한 다채로운 생각들이 얽히고설킨 사유의 용광로와 같았다. 우리의 기틀을 이루는 세 가지 사상은 국가 통치이념인 유교, 내세를 기원하는 불교, 개인 수양을 위한 도교로 나뉘어 충돌 끝에 조화를 이뤘다.고대사 연구자로 문화재청장·문체부장관 등을 역임한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사학과)는 최근 펴낸 신간 ‘사유의 충돌과 융합-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21세기북스)에서 다섯 명의 인물의 고전 속에 드러난 동아시아 문화의 생생한 기원을 들여다본다.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 우리나라 삼국의 사상적 흐름이 담긴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일본 문화의 기원이 된 ‘일본서기’의 기록을 통해 우리 의식 깊숙이 자리한 화합과 상생의 정신을 새긴다.이 책에서 저자는 각국의 고전에 기록된 사유의 충돌과 각 융합의 흔적을 드러내는 데에 주목했다. 중국 당나라의 오긍이 집필한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를 통해 유교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간 동아시아 가치관의 기틀을,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고려 김부식과 일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나라 삼국의 문화와 사상적 흐름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를 통해 사상의 수용을 통해 국가의 틀을 갖춘 일본을 돌아본다.“본래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은 천신과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비롯하여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불교가 융합된 것이다. 결국 토착 신앙인 자연숭배 신앙에 유교적 가치인 충효 사상,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 불교의 이상인 집착과 구애를 받지 않는 자비와 선행까지 모두를 아울러 함께 실천한다는 의미이다.”-‘유·불·선을 융합한 풍류도 정신의 부활’74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20

대중투자사회가 시작된 역사적 맥락과 관점 고찰

오늘날 사회를 ‘대중투자사회’라고 진단하고 투자의 역사를 중요사안별로 정리하면서 경제적 인간 혹은 투자하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박진빈 경희대 사학과 교수와 김승우 스웨덴 웁살라대학 경제사학원 연구원 등은 책 ‘투자 권하는 사회’(역사비평사)에서 오늘날 사회를 ‘대중투자사회’라고 진단한다.‘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등 투자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는 이제 일상어가 됐다.10명의 저자들은 대중투자사회가 시작된 역사적 맥락과 관점을 고찰한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 그리고 투자시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경제적 인간 혹은 투자하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각 글은 한국은 물론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특정 투자 붐을 주목한다. 그 현상이 일어난 배경과 추동시킨 조건과 주체, 그리고 일반 국민을 ‘투자자’로 소환시킨 기법과 정책 등을 살펴보며, 근대사회 이래 ‘투자’의 실태와 사회적 영향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일반인이 투자시장으로 초청·호명됐던 배경 및 귀결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김승우 연구원은 20세기 초부터 대중투자사회로 진입했던 미국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지금도 시장에 적용되는 주요 투자 전략의 역사적 기원과 의미를 살핀다.박진빈 교수는 1920년대 광적으로 등장한 미국 플로리다 부동산 개발과 투기 열풍을 조명하고, 최은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1904년경부터 1910년대까지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토지 투기 양상과 일제 식민 당국의 정책 지원을 분석한다.이 밖에도 책은 1970년대 중산층이 등장하며 대중화한 국내 부동산 투기(송은영), 1980년대 후반 증시 호황기에 등장한 개미군단(이정은), 버블 시기 일본에서 나타난 투기·투자의 특징과 의미(여인만) 등 투자와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한다. /윤희정기자

2023-04-20

민주주의는 어떻게 자유주의 없이도 번영하는가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조사이아 오버 교수(역사학·정치철학)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원초적 민주정’부터 유럽의 계몽기와 근대를 거쳐 20세기 중반까지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사상의 경합과 명멸을 조망하면서 민주주의의 참뜻과 가능성을 탐색한 책이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적 권위체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하나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신을 자본주의사회로 부르는, 혹은 그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라 지칭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나라들 역시 스스로를 민주주의라 부르며 정당화한다.저자는 자유주의를 통해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를 제한해야 한다는 ‘자유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자칫 ‘자유’ 쪽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있다며 자유주의가 민주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자유주의 가치를 선별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그는 자유주의와 민주정의 결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민주정이 자유주의를 포함해 다른 어떤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이론과 결합하지 않고도 그 자체만으로 여러 가지 바람직한 생존 조건들을 효과적으로 증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자유주의와 민주정이 양립할 수 있는지 상호 배타적인지를 알려면 우선 민주정과 자유주의를 따로 떼놓고 탐구해야 한다”며 “원초적 민주정의 조건으로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과 함께 공동체의 규칙과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지켜지는 ‘시민적 존엄’”을 특히 강조한다. 저자는 순수한 다수결주의가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한 정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것은 민주정의 타락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하나의 원형적이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정치체제의 유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책에 피력된 오버의 주장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번성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민주주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무효임을 밝힌다.두 번째로, 오버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제3자의 통치 없이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개인들이 설립한 가상의 사회인 ‘데모폴리스’에 기반한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넘어 오늘날에도 민주주의가 그 원초적 형태로 어느 정도로나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이같은 사고실험은 아테네의 시민적 존엄성(시민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민의 존엄성은 성인 시민 누구나 정치적 참여에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같은 인정은 서로 다른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사회적 균형으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다.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존엄성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엄하게 대해야 하며, 공직자 역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마찬가지로, 힘 있는 공직자나 힘 있는 개인이 시민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굴욕감을 주고, 시민을 어린아이처럼 무능력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동료 시민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시민은 책임감 있는 성인이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기에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치킨·맥주·삼겹살·과일·국수·빵… 맘껏 먹고 살 빼는 ‘과탄단 분리식단’

‘치맥, 삼겹살 다이어트’(비엠케이)는 석 달 만에 10kg을 감량한 생생한 다이어트 체험기와 성공 노하우를 담았다. 저자 일보접근(필명) 씨는 다이어트의 성과를 좌우하는 최후의 보루인 식단 조절로 10kg 감량에 성공했다. 저자는 다이어트 식품 사재기부터 식욕 억제제, 운동, 단식, 지방흡입술까지 20년 넘게 살 빼는 데 좋다는 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 끼니 씨름 선수처럼 먹고도 살이 빠지는 원리로 ‘과탄단 분리식단’을 소개한다.분리식단은 미국의 유명 건강 컨설턴트 하비 다이아몬드가 쓴 책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에서 소개한 방법이다. 20대 내내 90kg이 넘는 비만으로 고생하며 각종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그는 자연위생학을 접한 뒤 한 달 만에 25kg을 감량했고, 이를 75세까지 유지했다고 한다.자연위생학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하면 몸속의 독소가 빠지면서 비만에서 벗어나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자연 치유 개념 중 하나다. 여기에서 파생된 분리식단은 ‘우리 몸은 위에서 한 가지 이상의 농축음식(가공처리·조리를 통해 물이 제거된 음식)을 동시에 소화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음식을 섞어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 배합의 원리’를 적용해 만들어졌다.굶기는커녕 배 터지게 먹어도 좋다는 일보접근 씨의 희한한 다이어트의 규칙은 간단했다. “하나, 섞어 먹지 마라!”. 아침엔 과일, 점심은 탄수화물, 저녁은 단백질을 먹는 ‘과탄단 분리식단’을 실천했다. 한 끼에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먹지 않고 한 가지 영양소만 섭취했고 꼭 채소를 곁들였다. 이것만 지킨다면 그 양에는 제한이 없다. “규칙 둘, 단맛 내는 첨가물 먹지 마라!” 설탕을 주원료로 하는 각종 소스와 양념, 첨가물들은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주범일 뿐만 아니라 현대 성인병을 부르는 ‘소리 없는 살인자’다.첫째 주에만 2kg이 빠지고, 한 달에 4kg, 석 달 만에 10kg을 감량했다. 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10kg에 성공한 저자의 식단을 그대로 부록에 실었다.섭취 및 조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금지 식품과 이유, 허용되는 양념과 금지 양념, 감량에 성공한 후 유지기 식단 완화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나를 찾아가는 별자리… 나의 강점·가능성 탐구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내 재능은 무엇일까? 내 성향에 이 직업이 어울릴까? 요즘은 MBTI(성격유형검사·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자신을 알려는 MZ세대가 많다. 사실 MZ세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나는 ‘I’라서 이렇고, 너는 ‘E’라서 그렇다.” 이렇게라도 자신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별자리 오디세이’(비엠케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천문해석학인 점성술을 통해 자신의 별자리 차트를 해석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점성술(占星術·별자리·어스트롤로지·Astrology)은 천체 현상을 관측해 인간의 운명과 장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하늘의 현상은 언제나 인간이 경외심을 품는 대상이었고, 이러한 현상과 법칙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은 일찍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고 있는 육십갑자(六十甲子)나 황도12궁(黃道十二宮) 등은 이러한 사상이 반영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옛날 사람들은 별, 즉 천체의 움직임이 인간의 생활과 자연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도 천체의 움직임이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점성술 관찰 대상은 주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이었다. 예를 들면 목성과 금성은 행운의 별이며, 화성과 토성은 불행과 재난의 별이라고 생각했다. 또 두 개의 행성이 만나면 전염병이나 흉년, 혹은 혁명 같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징조로 보았다. 특히 혜성은 불길한 징조로 여겼는데, 느닷없이 나타나는 혜성은 균형의 파괴자로서 역모와 재난 등 나쁜 전조로 해석됐다. 중세에는 나라마다 점성술사를 두고 별의 움직임을 늘 관찰하도록 했다.점성술을 통해 운명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성 유닛 그룹인 우주살롱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인간과 우주의 상호관계에 토대를 두고 자신이 태어난 날들의 별의 배치를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표현하게 될 에너지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저자들은 MBTI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편적으로 규정할 뿐 자기답게 살도록 이끌어주지는 못하고 16개 성격 유형 중 하나로 압축할 따름이라고 본다. MBTI는 자신을 단적으로 규정하는 데 그치는 반면, 별자리는 ‘나’에 대한 규정을 넘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준다고 설명한다.“각양각색의 개성을 찾는 시대에 별자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매혹적인 도구다. 왜 늘 감정이 예민하고 힘들었는지, 직업에서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관계에서 배려만 하다가 지치는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 수 있다. 실용적인 해석법과 일상 활용 팁을 알려주는 별자리 출생 차트 워크북을 채우다 보면 자신에 대한 밑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질 것이다. 몰랐던, 때로는 알지만 숨기고 싶어했던 자신의 삶의 목표, 감정의 경향, 삶에 대한 태도, 연애관, 가치관, 무의식까지 알아보는 이 작업은 매우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06

“인류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

이제 겨우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자마자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 인구 폭발(한국의 경우는 인구절벽), 날로 심화하는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AI의 일자리 뺏기까지 대다수가 인류에게 부정적인 신호다.그렇다면 정말로 인류의 미래는 암울한 것일까? 어떤 학문보다 데이터를 신봉하고, 증명과 검증에 철저한 경제학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오데드 갤로어는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통합성장 이론’의 창시자다. 2021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며,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석학이다. 통합성장 이론은 인류사 전체에 걸친 개발, 번영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갤로어는 경제학자로서 일생을 바쳐 얻은 통찰을 세계 각지에 공유했으며, 그렇게 얻은 통찰과 발견을 모아 최근 ‘인류의 여정’(원제 The journey of Humanity)’(시공사)을 펴냈다. ‘인류의 여정’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갤로어의 첫 책으로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 출판됐다. 영국 진보 언론 ‘가디언’은 이 책을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라는 평을 남겼다.‘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인류의 여정’에는 경제학자인 오데드 갤로어가 바라보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 거대한 담론을 담았다.“지식과 기술이 이토록 엄청나게 진보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건 수명과 삶의 질, 그리고 물질적 안락함과 번영 정도로 가늠하면 인류의 생활 수준은 대체로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는 이 정체의 근본 원인인 ‘빈곤의 덫’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인류의 여정’ 1장 ‘첫걸음’ 중에서“이 여정 끝에서 나온 전망에 대해 미리 말해 두자면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다. 지구의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궤도를 봐도 그러하며, 이런 관점은 기술 발전을 진보로 보는 문화적 전통과도 일치한다. ”(21페이지)책의 1부 ‘인류의 여정’에서는 ‘경제적 활동’의 범위를 저 멀리 30만 년 전으로까지 확대해 인류를 고찰한다. 인류의 몸부림이 산업혁명으로 결실을 맺기까지의 ‘여정’을 인구, 소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대탈출로 인한 인종과 문화의 분화, 먹고사는 문제와 제도의 다양화, 산업혁명 발생에 시간차가 발생한 이유와 그 차이가 끼친 영향 등을 지리와 문화의 요소를 더해 설명한다.저자는 이제 세계 출산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인적자본 형성과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는 ‘티핑 포인트(급변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는 “인류가 환경과 기후에 미치는 불리한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하며, 인류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서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16

기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재편되고 있다

남극 대륙을 둘러싼 해빙(바다얼음) 면적이 지난달 13일 기준 191만㎢로 1978년 시작된 위성 관측 사상 최소를 기록했다. 북극보다 온난화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던 남극마저 기후변화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인류가 위협적인 기후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 대응이 최근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30년 가깝게 ‘환경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가 지금까지 기후와 한국 경제를 위해 헌신한 연구 성과를 한 권으로 집대성한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다산북스)을 펴냈다. 경제학자라는 신분답게 기업이나 정부의 의사결정에 자문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홍 교수는 기후문제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주체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는 환경문제를 넘어선 경제문제로 우리의 일상이나 주거 환경, 그리고 경제성장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응전략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 그리고 국가의 위상이 재편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다.‘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은 기후위기가 환경, 과학,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온 지구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대두된 지금, 대한민국이 그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수 있는지 가장 한국적이고 경제적인 해법을 제시한다.홍 교수는 환경을 가계와 기업에 이어 제3의 경제주체로 지칭하며 우리 실생활에 이미 깊숙이 작용하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만 공급받도록 한다는 ‘RE(Renewable Electricity)100’ 선언이다. 기업이 2030년 60%, 2050년까지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 선언에 가입한 세계적 기업에는 납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에 불과한 실정이다.홍 교수는 “기후위기는 이제 환경문제를 넘어 산업·일자리·인구 이슈”라고 봤다. 예컨대 탄소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석탄발전소를 점차 퇴출시키면 발전소가 밀집된 충남 지역에서는 일자리가 대거 사라진다. 인구절벽 시대, 지역 일자리 감소는 지방 소멸을 부추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려면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를 묻는 기후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홍 교수는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지구 온도 상승이 야생동물의 생존율을 높여 초래한 인류의 위기 중 하나였다. 이 글로벌 감염병은 관광업과 요식업, 항공업과 물류업을 마비시키며 일자리를 빼앗았고 경제활동의 사슬을 군데군데 끊어놓았다. ‘기후위기’가 ‘질병 위기’로, 이어서 ‘경제위기’로 변모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미국과 유럽은 ‘기후경영’으로의 전환에 가속을 붙이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5%까지 높일 계획이며,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을 사회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글로벌 기업들도 앞으로 7년 이내에 재생에너지로 전면 전환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OECD 국가 중 단연 꼴찌인 우리나라로서는 당장 눈앞에 비상등이 켜졌다.이제는 투자자들도 ‘기후’를 투자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연구 결과 환경문제를 일으킨 기업들의 주식 가격은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 이후 떨어진다. 바야흐로 기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탄소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저자 홍종호 교수가 기후위기는 ‘환경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라고 지적하는 이유다.기후문제는 우리의 가계경제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비가 쏟아지는 날 부잣집 아들 ‘다송’의 집과 반지하에 사는 ‘기택’의 집을 번갈아 보여줬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통해 자산 격차가 우리의 생활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개봉하고 나서 불과 1년 후,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영화적 허용’이 아님을 실감하게 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02

최영미 신작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 14년 만에 시사부터 일상까지 엮어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화려하게 등단한 최영미(62) 시인이 신작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이미출판사)를 냈다. 나이 서른에 도발적인 시어로 독자들을 흔들었던 최 시인은 어느새 회갑을 넘겼다. 지난 2017년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뒤 문단의 냉대와 외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글을 쓰고 글로 먹고살았다고 한다. 2019년엔 출판사들이 시집 출간을 외면해 1인 출판사를 직접 열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의 새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는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2009년) 이후 14년 만에 묶은 본격적인 산문집이다. 산문집은 최 시인이 2013년부터 최근까지 매체 등에 발표한 글을 3부로 엮었다. 미투 등 논쟁적이며 시사적인 주제부터 축구·야구 등 스포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발견을 담백하고 치열한 언어에 담았다. 자신 몸에 마치 총처럼 보이는 기둥을 관통시킨 자화상 ‘부러진 기둥’을 그린 멕시코의 국보급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년)에 관한 이야기로 산문집은 시작한다. 최 시인은 “프리다처럼 몸이 여러 차례 부서지고 병실에서 지내다 보면 자기를 오래 들여다볼 수밖에. 고통을 잊기 위해 아름다움으로 도피한 화가”라며 “인생과 예술의 관계를 이보다 명징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라며 감탄을 표한다. 책 제목 역시 화가 프리다 칼로를 두고 그가 아는 어떤 이가 했던 말에서 나왔다.1부는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등 미투 재판 사회문제를 다루는 논쟁적이며 시사적인 글을 모았다.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할 때 고은 시인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시작돼, 생활수필이지만 재판 냄새가 나는 글들이 꽤 있다. 2부는 축구·야구·수영 등 스포츠 칼럼들을 모았다. 3부에는 유년의 추억, 호박잎, 사업자가 된 사연, 집수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행복 등 생활의 냄새가 진한 이야기들이 담백하게 펼쳐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3-02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감독·젤렌스키 주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있다. 현재까지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러·우 전쟁이 세계에 미친 악영향은 심대하다.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등으로 러시아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침략 세력인 러시아를 ‘절대 악(惡)’으로,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절대 선(善)’으로 받아들인다.국제관계학 전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사계절)에서 러·우 전쟁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그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러·우 전쟁의 원인, 경과 그리고 이 전쟁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통해 전쟁의 해법을 탐구한다.저자는 러·우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탈냉전 이후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자유주의 패권의 확장’을 꾀하는 미국의 ‘네오콘(Neo Conservatism)’이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의 전쟁이라기보다 미국과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벌이고 있는 ‘대리전’이라는 것이다.저자는 “포화에 스러지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맞은편에 또한 전쟁에 희생되는 러시아 국민이 있지 않나? 푸틴이 자국 병사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음을 맞게 하는 독재자라면, 역시 자국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젤렌스키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세계는 과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수십만 발의 포탄과 수십 대의 탱크가 정말로 ‘평화’의 수단인가? 그렇게 구축하려는 평화에 러시아는 포함되는가, 배제당하는가?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이 전쟁을 숭고한 선과 절대 악의 대결로 볼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그러면서 “아마도 이 전쟁 또한, 무수한 전쟁들이 그러했듯이, 국제정치의 한 과정이자 현시점의 지정학적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어떤 지정학 전략과 또 다른 지정학 전략의 충돌”이라고 강조한다.전쟁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측면이 있지만, 원인은 복잡하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에 위협을 가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나치즘과 결합해 러시아인들이 밀집한 돈바스에서 인종 청소를 시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을 일으킨 건 러시아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촉발했다는 근거다.또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무장 해제와 나치즘 제거, 동남부 지역의 주민 보호를 목표로 하는 ‘특수군사작전’ 명령과 동시에 키예프와 하르코프, 오데세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핵심 시설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 러·우 전쟁이 시작됐다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 서방의,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른바 진보 리버럴 네오콘이 만든 정의라고 주장한다.저자는 “실제로 2014년 이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과 질의 군사 장비와 훈련, 자문을 최대한 제공해 마치 서방의 자본 및 기술과 남방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하듯이 미국 및 나토의 군비와 재정, 첨단 무기, 정보 및 장비로 무장한 양질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맞상대로 육성됐다”며 “이 전쟁은 미국의 리버럴 혹은 진보 네오콘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바둑돌로 들고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쟁’이다. 또한 이 전쟁은 미국이 감독하고 젤렌스키가 연기한 드라마다”라고 주장한다.미국과 유럽의 ‘오판’과 ‘책임론’도 제기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년 2월 1일자 모스크바발 비밀전문을 보면 “러시아는 나토에 의한 포위로 자국의 안보 이익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방 세계는 진작부터 나토의 동진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자급자족이 충분히 가능한 러시아를 과소평가해 경제제재에 나선 결과 전쟁 이후 오히려 석유와 가스 등 원자재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미국에서 통상 ‘매파’로 불리는 우익세력이 전쟁에 반대하는 반면 ‘네오콘’이 주류인 미국 민주당과 좌파가 전쟁을 지지하는 ‘기현상’을 분석한다.‘친미’를 최핵심으로 하는 한국 역시 전쟁 이후 재편될 글로벌 다극 체제 속에서 경제·정치적으로 큰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개전 초기부터 나는 이 전쟁은 고전적 전면전(적지, 적 영토의 점령을 동반한 적의 완전 섬멸과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제한전(limited war)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 정치적 목표에 과연 우크라이나 전역의 군사적 점령과 이후의 정권 교체까지 포함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푸틴은 개전과 동시에 이 전쟁의 정치적 목표로 ‘돈바스 해방’, ‘나치 제거’, ‘탈 군사화’를 제시했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치고 있는 특수 군사작전은 바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인 셈이다. -2장 ‘전쟁의 원인과 성격’ 중 36쪽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붉은 수수밭 원작 작가 ‘모옌’의 자전적 에세이 자신 삶 솔직하게 엮어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莫言·68)의 산문집(아시아, 上·下)이 출간됐다. 모옌 산문집의 국내 출간은 2012년 ‘모두 변화한다’ 이후 11년 만이다.중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은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 ‘홍까오량 가족’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번 산문집은 2010년 중국에서 출판된 모옌이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새로 엮은 모옌의 산문(莫言散文新編)’에 수록돼 있는 59편을 번역한 것이다. 소설 창작과 관련한 비화뿐 아니라 문화 예술 감상평, 여행기 등 다양한 주제가 망라돼 있어 ‘과묵한 작가’로 알려진 모옌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화를 직접 겪은 모옌이 중국의 이러한 변화와 자신의 인생을 교차점을 통해 역사와 경제, 사회가 한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맞물려 나가는지 사실적으로 담아냈다.한국어판에서는 독자들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내용에 따라 4부로 나눠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상권을, ‘다른 세계와 나’라는 제목으로 하권을 묶었다. 모옌 작품의 기원을 밝히는 에세이들과 그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들을 1부 ‘붉은 수수, 그 고향은 어떻게 내 소설이 되었는가?’, 2부 ‘삶을 질투하지 않는 문학, 문학을 질투하지 않는 삶’으로 나눠 수록했다.1부에서는 산동성 가오미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문화대혁명을 겪고 인민해방군으로 활동하던 자신의 삶을 흥미로운 소설처럼 써내려갔다.2부는 모옌 개인의 이야기에 더해 중국의 현대사와 관련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모옌의 비판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관찰과 사색도 담아내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104세 김형석 교수,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믿음의 여정 기록

‘국내 최고령 철학가이자 수필가, 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이야기다. 한국 나이로 꼭 104세가 된 김 교수가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여정을 기록한 책 ‘그리스도인으로 백년을’(두란노)을 펴냈다. 부제에는 ‘김형석 교수의 믿음 삶 가르침’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일제강점기인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가난과 전쟁을 겪었고, 전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실향민이기도 하다. 70여 권의 저서 중 10권에 달하는 기독교 관련 서적을 펴낼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잘 알려져 있다.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신앙을 접했던 그에게 신앙은 그가 지치거나 힘들 때 매달려 용기를 얻은 생명줄이었다. 그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인물과 신앙과 관련된 여러 미담을 소개한다.기독교의 교리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진리가 더 소중하고 그 진리가 복음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고 고백한다.1부 ‘나는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가’는 김 교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건강을 주시면 내일보다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고, 60대 이후로도 꾸준히 집필과 강연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2부 ‘일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삶’은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제자 교육,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살라는 부친의 당부, 이상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노선을 바꾸게 된 과정 등을 소개한다. 3부 ‘예수의 가르침을 내 것으로 하다’에선 성경에 언급된 △탕자의 비유 △자유케 하는 진리 △충성된 종 △나중 온 사람에게 더 베푸는 은혜 △옥토 밭 등에 대한 깨달음을 제시한다. 4부 ‘나라와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완성하는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강조하며, 하늘 나라의 일꾼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이끌어 내야 하는 교회의 역할도 밝히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6

“보람된 삶의 고민 장편동화에 담아”

‘염라대왕의 재판-세 개의 문’표지 포항에서 활동 중인 중진 서가숙사진 작가가 새 장편동화 ‘염라대왕의 재판-세 개의 문’(고래 책빵)을 펴냈다.어떻게 살아야 각자의 삶을 보람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긴 동화다. 서 작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에서 만족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설정했다. 그는 죽음 후 염라대왕 앞에 선 사자와 강아지, 소가 사람으로 환생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했다.주인공은 죽어서 지옥에 오게 된 사자와 강아지, 소다. 세 동물이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해 인간으로 환생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았다. 서 작가는 독자들이 이 세 동물들을 통해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가며 살아가길 바랐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자 하는 사회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해 희망을 갖고 노력할 때 행복해진다”며 “후회는 적게 하면서 하루를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보람된 삶이 될 것이라는 세 동물의 참회에 우리는 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동화와 마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서 작가는 포항에서 30년 넘게 동화와 시, 수필을 쓰며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포항 형산문화제에서 시 장원과 수필 우수상을 받아 등단했으며 백산전국여성백일장에서 시 장원·우수상, 종합문예지 ‘문예감성’ 동화 부문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또한 동화 ‘도깨비들의 사람체험학습’, ‘학교를 끊을 거예요.’, ‘우리가 친구 맞니’를 비롯해 수필집 ‘행복해지는 법’, ‘숨은 행복 찾기’, 역사소설 ‘내 사랑 부용공주’, 성인동화 ‘복수의 화신 변학도’ 등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15

국부론에 가려진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

올해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1790)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다. ‘경제학의 성서’인 저서 ‘국부론’(1776)으로 대표되는 그는 많은 이가 경제학자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도덕철학자, 즉 윤리학자였다. ‘국부론’보다 앞선 저서 ‘도덕감정론’(1759)에서 볼 수 있듯 18세기 유럽의 많은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와 번영을 가져오는 법칙은 무엇인지 탐구했다. 그의 묘비에도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씌어 있다. ‘국부론’의 빛에 가려 있었던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를 다시 보고, 놀라울 만큼 평등주의적인 그의 생각을 바로 읽자는 신간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글항아리)가 출간됐다.오랫동안 경제지 기자로서 애덤 스미스 문제와 번역에 천착해 오고 있는 저자 장경덕 씨는 그런 이력을 살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두 원전 텍스트를 재번역해 애덤 스미스에 대한 상투적인 해석과 오랜 편견을 걷어낸다.저자 장경덕 씨는 “이 책은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의 옹호자라는 편파적인 오해에서 구해내기 위해 ‘자유’라는 개념부터 다시 파헤친다. 오히려 그는 일생 ‘도덕감정론’의 개정을 거듭하며 공감하는 인간상, 이타적인 인간상을 정립하려고 애썼다. 그는 노예해방선언보다 한 세기 앞서서 노예제를 비판했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해가 부딪칠 때면 거의 예외 없이 못 가진 자 편에 섰다”고 설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난 좌절의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백혜선 첫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다산북스)는 중견 피아니스트 백혜선(57)의 첫 에세이집이다.1989년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홀’ 독주회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백혜선은 30년이 넘는 경력의 중견 피아니스트로,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 선정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9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3위) 등 다수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낸 백혜선은 현재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책에는 4살 때 건반 앞에 앉은 이후 50년 넘게 연습을 거듭해오며 깨달은 인생 내공을 담았다.흔히 사람들은 연주자를 보며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화려한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연주자가 지닌 극히 일부의 측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주자의 인생은 당장이라도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좌절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백혜선이 이 책에서 주로 보여주려는 것도 연주자의 영광이 아닌 좌절의 순간들이다. 그는 책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답고 정제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가장 못생긴 발’을 내민다. 30여 년의 국제무대 경력 동안 꼽은 최악의 연주, 콩쿠르 탈락 후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낸 슬럼프 시기, 사람도 잃고 돈도 잃은 채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지낸 불우한 시간마저 고백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 어둡고 부족한 면모들이 자신의 내면을 훨씬 더 정확히 표현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고단했던 순간을 서술하는 중에도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을 향한 의지이자 음악적으로 자신을 거듭 계발하려는 집념이다. 유머러스하고 가볍고 편한 문체로 글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좌절이란 곧 특권이라고. 즉, 좌절과 불안과 걱정은 성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라고. 어디가 됐건 ‘여기가 종착역’이라며 눌러앉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앞으로 찾아올 좌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며 백혜선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사악한 독재자인가 성공적 지도자인가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은 독재자로 유명하다. 스탈린은 흔히 대량 학살을 저지른 사악한 독재자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류의 악인으로 낙인찍힌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은 러시아 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때때로 되살아난다. 1990년대 옐친 통치 시절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강제 이행하며 발생한 물질적 박탈은 스탈린과 스탈린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푸틴이 집권한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 엽서와 기념품이 인기를 끌었다.”신간 ‘스탈린의 전쟁’(열린책들)은 제2차 세계 대전과 복잡한 20세기 국제 관계에서 소련의 지도자로서 스탈린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스탈린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영국 출신의 스탈린 및 소련 군사 및 외교 정책의 역사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스탈린의 잔혹성을 솔직하게 탐구하면서,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군사 지도자이자 자본주의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을 꾀한 노련한 외교관, 전후 소련의 개혁 과정을 주도한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증거도 발견해 낸다.책은 주로 스탈린의 인생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데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에서 스탈린이 사망한 해인 1953년 냉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 영국, 미국의 대연합에서 소련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에서 시작한 이 책은, 대연합이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했는지, 소련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후 이 연합이 왜 붕괴했는지를 탐구한다. 이에 더해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의 리더십과 전후 소련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살펴본다.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독일에 맞선 전쟁에서 스탈린이 군사 지도자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그는 엄격한 규율과 가혹한 처벌로 장교들의 후퇴를 단속하는 동시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들을 북돋웠고, 정치적으로는 애국주의에 호소했다. 규율을 위반한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형벌 부대를 운영할 정도로 가혹했고,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주민들까지 포격할 정도로 잔인했지만, 전쟁터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는 군사 지도자 위치에서 스탈린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저자는 스탈린이 결과적으로는 냉전 시대를 열었지만, 냉전은 결코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스탈린에게 영국·미국과의 대연합은 군사적 연합뿐 아니라 정치적 동맹을 의미했으며, 이를 통해 히틀러와 영국 및 미국 내 반공산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소련 체제를 방어하고자 했다. 1945년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 전후 처리를 위한 논의 자리에서 스탈린은 외교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나 오해와 입장의 차이로 스탈린은 돌아서고 말았다. 저자는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으나, 미국이 개입하자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한 점도 그런 맥락에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스탈린은 서방 세계의 지도자들보다 평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종전 후, 스탈린은 피해를 입은 국토를 재건하고, 사회와 경제를 평시 체제로 운영하고자 했다. 이 시기 민간 행정 기구와 민간 법원이 여러 권한을 돌려받았고 절차가 합리적으로 발달했으며, 경제 운영이 체계적으로 바뀌고 기술 관료들이 능력을 발휘했다.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들이 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적·이념적 행동주의가 덜 채택되고 관리와 기술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비록 소련과 서방 세계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체제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활동들을 검열하고 숙청을 단행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저자는 소련의 전후 체제는 전전 체제보다 더 이완된 질서로 이행하는 과도기 시스템이었다고 평가한다.저자는 스탈린이 “현실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였으며, 소비에트 시스템이나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지 않는 한 타협하고 변할 각오가 되어 있는 지도자였다”며 “확실히 스탈린은 노련한 정치인이었고, 영리한 이데올로그였으며 매우 뛰어난 행정가였다”고 평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2

김도일 첫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 출간

포항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소재로 세상과 인간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소설가 김도일이 최근 첫 번째 소설집 ‘어룡이 놀던 자리’(도서출판 득수)를 펴냈다.‘어룡이 놀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힘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질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으며, 궁극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에서 시작된 책이다.김도일(49) 작가는 등단 7년 차로서 현재 포항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단편 ‘디어 마이 엉클’로 제9회 포항소재문학작품공모 대상을 받고 지역에서 자신의 문학을 촘촘히 축조해가고 있는 신진이다.이번 소설집 표제작인 ‘어룡이 놀던 자리’를 비롯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써온 소설들은 포항 이야기의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지역을 넘어 더 깊은 문학적 세계로 천착해 들어가고 있다는 평이다.“포항과 역사, 가족 같은 소재들을 마주한 채 한참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오랜 시간 그런 용기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는 김도일은 이번 소설집에서 역사와 현실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진중하게 다룬다. ‘어룡이 놀던 자리’는 우리가 과거의 힘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디어 마이 엉클’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고 죽어간 포항 학도병 이야기를 다뤘다. ‘관목(貫目)’은 할아버지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고엽제 피해를 입고 베트남 여인과 결혼했던 아버지, 그리고 나(철수)의 이야기가 쳇바퀴 돌듯 바다와 베트남으로 이어진다.노대원 평론가는 “김도일 소설의 공간 배경의 중심은 분명 우리나라의 한 지역이지만, 소설의 심층 주제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죄의식에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김도일 작가의 문학적 천착이 그저 가벼운 유희에 불과한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김도일이 그려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역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찾아간다”고 평했다. 이어 “가족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도 순진한 태도를 버리고 역사적 상상력과 비판적 상상력을 통해서 돌아보려고 한다. 그는 한 지역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흥미로운 소설로 재탄생시킬 줄 아는 스토리텔러이지만, 현실과 역사, 이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 보게 하고, 서로를 비추어 보게 하는 리얼리스트”라고 분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2-01

설빙학 개척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글항아리)는 1936년 세계 최초로 인공 눈(雪)을 만든 일본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1900∼1962)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우키치로는 동시대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였던 데라다 도라히코의 제자로 잘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와 문학적 소양을 나눈 스승의 영향이 그의 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당시까지만 해도―어쩌면 지금도―과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눈’이라는 자연 현상에 매혹돼 현미경으로 그 형상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세계 최초로 눈을 만들어낸 과학자가 된 여정만 보아도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을 엿볼 수 있다. “흐트러짐 없는 결정 모체, 날카로운 윤곽, 그 안에 박힌 다양한 꽃 모양, 그 어떤 탁한 색도 섞여들지 않은 완벽한 투명체”,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미학임을 그는 눈 결정을 처음 들여다본 그 날부터 알아챘던 것이다.이후 우키치로는 가장 흔한 육화형 결정에서부터 장구 모양, 포탄 모양을 한 수십, 수백 종의 눈 결정을 관찰해 분류하고, 눈이 생성되는 조건을 밝혀내 저온실험실에서 인공 눈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눈이 만들어지는지까지 정리해냈다. ‘눈의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 결과는 세계 최초로 자연에서 눈 결정을 촬영한 윌슨 벤틀리에 이어 ‘눈 결정: 자연 눈과 인공 눈(Snow Crystals: Natural and Artificial)’이란 제목으로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나카야 우키치로의 위대한 점은 홋카이도라는 북쪽 지방의 특성을 잘 살린 연구를 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눈, 얼음, 안개, 번개, 서릿발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생성 조건을 밝혀냈다. 특히 눈 결정에 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야외 관찰에만 머물지 않고 저온실험실을 만들어 공기 중의 수증기량과 온도를 변화시켜 자유자재로 눈 결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알래스카와 그린란드에도 다녀와 지구 각지에서 나타나는 눈과 얼음의 성질을 분석했고, 세계 최초로 ‘설빙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개척했다.그는 생전에 눈과 얼음에 관련된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적인 문제를 폭넓게 다룬 30여 종 이상의 산문집을 남겼다. 이 점에서는 스승인 데라다 도라히코보다 더 폭넓은 시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파악한 과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과학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강연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져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은 나카야 우키치로의 수많은 산문 가운데 북쪽 지방에서의 연구 이야기와 함께 그가 교류했던 과학자들과의 추억, 일상에 숨어 있는 과학과 비과학 등 독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글들을 주로 싣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주기를 희망한다.이 책을 엮은 그의 말처럼 표제작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와 함께 책에는 일상의 풍경을 담은 글에서부터 엄격한 과학 정신을 논한 글까지 나카야 우키치로의 다양한 에세이가 실렸다. 나뭇가지를 ‘마녀의 머리칼’처럼 헝클어놓는다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홋카이도의 설국, 심지어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저온실험실에서 꽁꽁 언 몸으로 연구를 계속하던 그의 글엔 뜻밖의 따뜻함이 서려 있다.동료 과학자들과의 일화, 젊은이들과 후대를 위해 적은 글, 자연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은 쓰인 지 한 세기 가까이가 지나고 그들 모두가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생생하고 어쩌면 그리운 감각을 선사해준다. 또 과학의 발달로 지금은 완전히 구시대 이야기가 된 과학계 이야기 역시, 과학을 정밀한 학문으로 대하며 세상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에는 낡음이 전혀 없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1-12

동물들에게서 배우는 리더십

국내 진화생물학 권위자인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생명과학전공) 교수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동물들의 리더십을 조명한 책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장 교수는 ‘5가지 진화 테마로 읽은 리더의 조건’을 부제로 한 이 책에서 코끼리와 꿀벌 등 집단생활을 하는 20가지 동물들을 통해 리더십은 생존을 위한 생명체의 한 형질이라는 점을 밝힌다. 리더십도 행동이나 형태처럼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겪는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고찰한다. 책은 크게 리더십을 둘러싼 5개의 진화생물학적 테마로 분류된다. 1부에서는 다양한 동물 사회가 등장하고, 각 사회마다 독특한 리더십을 소개한다. 2부는 게임 이론을 이용해 마침내 리더십의 진화를 조명하고, 리더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3부에서는 불공평한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4부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필요한 의사결정 방식과 과정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5부에서는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인 협력에 초점을 맞춰 협력을 잘 이끌어내고 결속력을 다지는 리더십으로 귀결한다.장이권 교수는 동물의 소리를 연구하는 야외 생물학자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SERICEO 리더십·경영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EBS ‘해요와 해요’, CBS ‘장이권의 지금, 자연은’에서 신비로운 동물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리더십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라는 형질로 인해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이익은 리더뿐만 아니라 팔로워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팔로워는 리더만큼의 이익은 얻지 못하지만, 혼자 사는 개인보다는 높은 이익을 누려야만 집단에 남는다. 동물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집단이 와해되는 시점은 팔로워가 더 이상 집단에서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 때다.” (‘인류 밖에서 찾은 완벽한 리더들’ 99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1-12

“세상 모든 이야기의 힘 전하고 싶어”

문학과 심리학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정여울 작가의 신작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한겨레 출판)이 출간됐다.평소 “내 인생을 지켜준 힘은 문학에서 나왔다”고 자주 이야기해 온 작가는 이 책에서 문학으로 치유받은 자신의 값진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동서양 고전은 물론 권여선, 윤이형, 이언 매큐언, 니콜 크라우스 등의 현대 문학, 영화와 음악 같은 대중문화까지도 넘나들며 문학이 말을 걸어오는 시간 속으로 독자를 친절히 안내한다.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외로운 문제아 홀든을 보며 “믿어주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가든파티’에선 조용한 배려의 아름다움을, ‘바리데기’에선 사랑받지 못한 자의 원한 없는 사랑을 일깨운다.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선 고통을 직시하며 고결한 품성을 잃지 않은 신화 속 인물을 발견하기도 한다.정여울 작가는 “문학 속 이야기는 늘 현재의 이야기, 우리의 삶, 지금 나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며 “온 힘을 다해 이를 알리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여울은 문학, 여행, 심리학, 예술 관련 에세이를 쓰며 문학 평론가로 활동했다./윤희정기자

2023-01-12

포항 동네 시리즈 ‘우창동 이야기’ 출간

포항지역학연구총서 시리즈의 10번째로 ‘우창동 이야기’(나루출판사·사진)가 출간됐다. 이 책은 포항지역학연구회 이재원 대표와 권용호 박사가 함께 엮었으며, 우현동과 창포동이 조선 시대 고개 이름에서 포항시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동(洞)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서술했다.‘우창동 이야기’는‘기록’‘지형’‘기억’‘변화’‘사람’등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기록’에서는 ‘우현’과 ‘창포’의 역사적 유래를, ‘지형’에서는 아치골·소티재·마장지에 얽힌 이야기를, ‘기억’에서는 연탄공장과 동해중부선의 옛 자취를, ‘변화’에서는 동네 형성기에 들어선 학교·아파트·공공기관의 이야기를,‘사람’에서는 동제와 동네 어르신들의 회고가 소개돼 있다.특히 ‘기록’에서 조선 시대 문헌·지도·비문·시문을 통해 550여 년에 이르는 우창동의 역사적 유래를 시기별로 기술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 연탄공장, 큰굴과 작은굴, 옛 소티재 길 등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과 사진도 많아 보는 이를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이재원 포항지역학연구회 대표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도로 확장으로 우창동의 현재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다.이 대표는 또 “‘우창동 이야기’가 앞으로 우창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포항시 역사의 일부분으로 100년 이후에도 후손들에게 현재의 우창동을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물이 되길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이재원 대표는 현재 포항지역학연구회 대표이자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겸직교수로 있으면서 방송과 저술 등 다양한 모습으로 포항의 숨은 가치를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용흥동 이야기’, ‘포항의 숲과 나무’ 등이 있다, 권용호 박사는 포항지역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발한 기고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옛 지도로 보는 포항’, ‘포항 한시’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1-03

세계적 소설가·동화작가가 전하는불안으로부터 멀어지는 성찰과 지혜

‘불안의 밤에 고하는 말’(위즈덤하우스)은 판타지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영국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매트 헤이그의 에세이다.매트 헤이그는 ‘마음 건강 전문가’, ‘마음 치료사’로 통한다. 20대 초반에 자살을 시도하다 자신이 우울증과 불안 장애임을 깨닫고는 주변의 도움으로 우울감을 떨치고 건강을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주효했고, 전업 작가가 됐다고 한다.이 책에는 오랜 불안장애를 딛고 얻은 그만의 인생철학과 더불어 레이 커즈와일, 유발 하라리, 대니얼 레비틴, 앨리스 워커 등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석학의 알려지지 않은 성찰과 지혜가 빼곡히 담겨 있다. 매트 헤이그는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세상의 소음을 더는 우리 내면에 끌어들이지 말 것을 강조한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라고, 끝없는 충격과 공포의 물살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라고, 부족한 너 자신에게서 벗어나라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탐내라고, 손에 잡히지 않는 미지의 행복을 꿈꾸라고 충동질하는 세상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야 한다. ‘바깥’에 갇혀버린 시선을 우리 ‘안’으로 가져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진보’이자, 긴 세월 지독한 고통을 지불하고 그가 얻은 행복의 정답이었다.명상, 마음 챙김, 산책, 소비로 잠재우지 못하는 우리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그는 개인의 연약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조급함과 불안함에 시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며, 그렇다면 가장 시급한 일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잘 개조해서 다시는 세상이 우리를 붕괴시키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라 단언한다. /윤희정기자

2022-12-29

정수일의 일생, 감동적인 한국사·세계사 ‘한눈에’

88년 일생 전반을 문명사 연구에 매진했던 문명사학자 정수일(88)의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아르테)가 출간됐다.중국 연변 출신인 저자는 1955년 중국의 국비 연구생 신분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떠났다. 이후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일했고, 튀니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부와 명예, 유망한 미래를 내려놓고 자신만의 길을 갔던 그를 두고 세상은 ‘분단 시대 비운의 천재 학자’(뉴욕타임스), ‘문명교류학의 길을 연 위대한 사상가’(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라고 평했다.저자의 인생에는 이상야릇한 흥밋거리와 격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조영물이 수두룩이 널려 있어 개인 일생의 기록을 넘어 한국사와 세계사가 조우하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세간의 풍문을 포함해 저자의 인생 처세에 관한 언설은 다채롭다. 중국의 첫 국비유학생(카이로대학), 유망한 외교관,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으나 후회 없이 단념한 사람, 가족을 뒤로하고 민족 통일의 광야에 나선 통일 역군, 당당한 민족주의자, 상반된 두 사회제도하에서 살아본 ‘이색인(異色人)’, 6개국 국적으로 세계를 누빈 다국적자, 음지와 양지를 넘나든 ‘이중인(二重人)’, 남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사람, 분단 시대의 ‘불우한 천재 학자’, 종횡 세계 일주를 수행한 세계주의자, 제3대 세계실크로드학회 회장을 지낸 실크로드학의 학문적 정립자 등 폭넓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저자는 미수를 맞은 이 시점에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실타래를 한 오리로 엮어내는 ‘주제어’를 떠올렸다. 그 주제어는 바로 ‘시대의 소명에 따름’이라는 화두다. 저자는 20~21세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시대인’으로, 그저 소정된 시대의 피조물로 소명에 따라 뚜벅뚜벅 할 일을 좇아 걸어왔을 뿐이라고 회고한다.“어떤 이는 나더러 ‘경계인’이니 ‘통일인’이라고 하는데, 두루뭉술한 ‘경계인’도 아니고 통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통일인’이라 불리는 것은 가당치 않다”라고 역설하며, 일찍이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를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세계사와 민족사를 통틀어 보기 드문 난세와 격동으로 점철된 시대를 살아온 ‘시대인’임을 고백한다.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에는 무수한 시대의 질곡 속에서 각인각설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인생 역정이 담겨 있고, 그의 인생관, 세계관, 자연관, 학문관, 도덕관이 허심한 어조로 기록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2-29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라”

“인간은 살려고 태어났지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그날까지 악착같이 살아갈 거라 어금니를 물어봅니다.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자석에 끌려가듯 어차피 죽을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 박필우 수필집 ‘까르페 모리’ 중에서산문집 ‘까르페 모리’(홍익출판)는 대구의 스토리텔링 작가이자 답사작가, 수필가인 박필우 작가가 지난 2020년 수필집 ‘심행수묵’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책이다. 역사의 현장과 문화재 답사로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는 현재 스토리텔링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이 책 표제 ‘까르페 모리’는 ‘까르페 디엠(이 순간에 충실하라)’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합성어다. 삶을 성실하게 즐기되 인생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는 뜻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다. 농익어가는 삶의 후반기에서 느낀 소소한 일상, 꾸준한 사색에서 얻은 단어와 문장을 따르다 보면 ‘인생 앞에서 겸손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생활적 사고를 느낄 수 있다.그런데 하필이면 수필집, 혹은 산문집도 아닌 잡문집일까? 책을 펼쳐 보면 금방 작가 의도를 알 수 있다. 짧고 긴 글, 낙서 같은 시를 등장시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투박한 그림까지 덧칠했으니 저자 의도대로 잡문집이 맞을 듯하다.이 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눴다. ‘어린 나’가 제삼자가 되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 벗 등 저자가 살아오면서 부대낀 인물들 사연, 역사, 하늘과 별을 비롯해 지나간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았다. 또 저자 자신이 노년을 기다리며 노년을 바라보고, 최근 살아오면서 새롭게 알아가며 느꼈던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뇌해 건져 올린 생각을 담담하게, 혹은 즐겁게 들려주고 있다. 결국에는 팍팍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에서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저자 의지가 담겼다.1부 과거진행형 ‘쉼’에서 작가가 직접 겪었던 어린 시절 추억부터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느꼈던 길고 짧은 단상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놓았다.2부 현재진행형 ‘까르페 모리’, 즉 이 책의 표제와 같다. 성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되 죽음을 기억하라는 겸손과 진실이 담겨 있다. 박필우 작가 3부 미래진행형 ‘역사를 따라 길을 걷다’는 말 그대로 전문 답사작가가 쓴 역사기행수필이다. ‘역사는 미래 거울’이라는 의미다. 중국 시안부터 우루무치까지 실크로드를 비롯해 터키 이스탄불,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현장은 물론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화마에 휩싸였던 코소보 프리슈티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보스니아 사라예보·모스타르 등을 두 번에 걸쳐 답사한 후 폭력의 사연을 담았다. 폭넓은 시선으로 답사작가만이 낼 수 있는 여수를 온전히 풍기는데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역사수필의 신선함이 있다. 역사를 비딱하게 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서 인물과 사연을 막힘없이 풀어내 앎에 즐거움을 선사한다.전체를 보면 다듬어지지 않아 세공되지 않은 원석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짧은 문장과 긴 호흡이 어우러지면서 특유의 다이나믹한 단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거침없는 문장과 필력이 곳곳에서 드러나 따뜻한 이야기마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중간중간 호흡을 끊어 비워둠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적절하게 어우러진 사진과 함께,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다소 투박한 그림이 분위기를 더해 시선을 붙들어 맨다.박필우 작가는 예천 출신으로 ‘심행수묵’, ‘나한전 문살에 넋을 놓다’, ‘유배지에서 유배객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2-29

미래학자 리프킨 “진보의 시대는 끝났다”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기후는 따뜻해지고 있으며 지구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 인간종(種)은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혼란에 대책이 없는 상태다. 산업 발전을 이끈 효율성의 원칙이 우리를 지구의 지배적인 종으로 뒀지만 결국 자연계의 파멸을 이끌었다. 어떻게 대멸종을 피하고 삶을 지속할 것인가?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민음사)에서 죽어가는 진보의 시대를 해체하고 부상하는 새로운 문명의 서사를 제시한다. 8년의 집필 기간 끝에 완성돼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지난 1일 동시 출간된 이 책은 그가 50년에 걸쳐 글로벌 경제와 사회, 거버넌스 혁신, 기후변화 등에 대해 연구한 결과가 집대성돼 있다.진보의 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효율성은 시간을 조직하는 최적 표준이 됐고, 그에 따라 인간종은 사회의 풍요를 향상한다는 목표하에 점점 더 빠른 속도와 점점 줄어드는 시간 간격으로 천연자원의 수탈과 상품화, 소비를 최적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에 몰입하게 됐다. 그렇게 자연이 고갈되는 과정에서 공간은 수동적 천연자원과 동의어가 됐고 정치와 경제의 주요 역할은 자연을 재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됐다. 이러한 지향성은 인류를 지구상의 지배적인 종으로 올려놓은 동시에 자연 세계는 파멸로 이끌었다.리프킨은 이 책에서 진보의 시대가 효율성에 발맞춰 행진했다면, 새롭게 부상하는 회복력 시대는 적응성에 발을 맞춘다고 말한다.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의 이행은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 프로세스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거대 복합기업에서 유동적인 공유로 블록체인을 형성하고 민첩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식재산권에서 오픈 소스 지식 공유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 지수(QLI)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의 전환을 포함한 경제 및 사회의 전면적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젊은 세대는 이미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생태 자본으로, 소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 책임주의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대의 민주주의에서 시민 의회와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로 전환하고 있다. 동일선상에서 공감과 생명애가 새로운 규범이 되면서 냉정하고 무심한 이성은 약화하고 있다. 인간종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오늘날, 리프킨은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에 대한 창을 열어 주며 지구에서 다시 생명이 번성할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대담한 청사진을 제시한다.와튼스쿨 명예 교수인 제리 윈드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회복력 시대’는 자연을 우리 종에 적응시키는 것에서 우리 종을 자연에 다시 적응시키는 것으로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세계관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이다.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는 학습에 새로운 방식의 교수법을 제공하도록 교육 시스템을 재구상하고 재창조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야 진보의 시대에서 회복력 시대로 변혁적 전환을 이룰 수 있다. 미래의 구상에 관한 리프킨의 놀라운 실적을 고려하건대 이 새 책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복력 시대’는 읽고 이해해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행동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진정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2-08

돈·권력에 감염된 사회… 신예작가 방서현 첫 장편소설

최근 첫 장편소설 ‘좀비시대’(리토피아)를 펴낸 방서현 작가는 충남 출신의 신예작가다. 올해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방 작가는 학습지 방문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물질만능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더는 순수성을 찾아볼 수 없고, 양심 또한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은 모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처음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나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인 것이다.작가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 시대임을 선언한다. 공동의 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들이라고 이야기한다.제도권 교육에서 현실 세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연우와 수아. 그들은 이십 대 젊은이들로 교과서적인 지식은 많이 갖추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 대한 지식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자본의 세계에 대한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부푼 꿈과 환상을 품은 채 학습지 회사에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다르다. 자본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속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선하고 바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속 사람들은 어느새 인간이 아닌 좀비가 돼 있다. 좀비가 돼 타인들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려고 한다.한편, ‘좀비시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은 국내에서 발간되는 우수문학도서를 선정, 보급함으로써 국민의 문학 향유와 체험 기회 확대 및 삶의 질 제고가 목적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2-08

들리나요, 아픈 지구별의 목소리

윤석홍 시인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의 부제로 쓰인 말인데, 우리 삶 속에 가는 곳마다 나보다 한 수 위, 고수가 숨어있다는 뜻이랍니다. ” -본문 중에서포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윤석홍 시인이 첫 산문집 ‘지구 별이 아프다’(도서출판 나루)를 펴냈다.산문집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보고 느낀 일상의 기억과 삶의 편린을 시인의 마음 한곳에 담아뒀던 글을 일월의 ‘근하신년’으로 시작해 십이월의 ‘이별의 종착역’까지 월별에 맞는 주제로 매주 한 편씩 꺼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윤 시인은 이 산문집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한 재난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은 아픈 지구별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그널의 의미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한마디로 저자는 우리가 말로만 ‘환경을 보호하자’라고 말하기에 앞서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고 말한다.저자는 “우리는 아침마다 24시간 쓸 수 있는 하얀 종이 한 장씩을 받는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고 쓸 수 있다. 여기에 그리고 쓰는 것은 마음이다.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그 넓은 하늘을 백지 삼아 편지를 쓰고 싶다. 그보다 더 진솔하고 깊은 대화가 있을 수 없다. 그 대화는 늘 내게 힘을 주고 다독거려 준다. 그 사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에 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라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환경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분노하는 자연’, ‘황사가 주는 선물’, ‘사람이 문제다’나 독서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시끄러운 도서관’, ‘책 읽는 노년의 아름다움’, ‘책과 생존의 무게’ 같은 작품은 무거운 제목과 달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이별의 종착역’에서는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숙명처럼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갈아탈 때마다 짐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은 왜일까. 해마다 낡아져 가는 우리네 여행 가방은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새해라는 열차로 갈아탈 때 지금보다 가벼워지기 위해 무거워진 여행 가방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다. 버리고 비우며 한해 보내고 새해 맞으시기를 바란다”는 글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윤석홍 시인 김일광 동화작가는 “이 산문집은 소소한 일상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촌 우리들 모습을 담아냈다. 매주 한 편씩 불편한 마음으로 때론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글들을 통해 무심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잠시 되돌아보게 하고 위로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라고 추천의 글을 썼다.윤 시인은 근래들어 재미있는 글쓰기로서 세계 3대 트레일이라 알려져 있는 존 뮤어트레일 여행기 같은 도보여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전하는 글을 써 왔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지게 된다. 삶은 굴러가는 구슬과 같다. 긁히고 금이 간 구슬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법”이라며 “큰 비 온 뒤 물꼬 터지듯 편편 기억들을 살리고 일기장에 묻어두었던 것을 꺼내 햇볕에 말려도 좋겠다는 생각에 묶게 되었다”고 말했다.윤 시인은 1987년 동인지 ‘분단시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저무는 산은 아름답다’ ‘경주 남산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 ‘북위 36도, 포항’이, 여행 산문집으로 ‘존 뮤어트레일을 걷다’ ‘길, 경북을 걷다’가 있다. /윤희정기자

2022-12-08

美 기업들, 中 정부의 대리 로비스트 되다

신간 ‘제국의 충돌’(글항아리)은 중국 정치경제 분야의 선도적 전문가인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미·중의 역학관계를 분석한 책이다.저자는 모든 사안에서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의 원인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지 않다고 본다.이는 명확히 자본 간 경쟁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지정학적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중 관계는 오바마 정부를 기점으로 밀월관계에서 좀 더 경쟁적인 관계로 변해왔다고 분석했다.‘제국의 충돌’에서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 사이의 변화가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 변화의 기저에 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세간에 나오는 다수의 설명이 미·중 관계 악화를 민주주의 체제-권위주의 체제의 대립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저자는 마르크스주의-베버주의적 관점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어떤 행위자들이 각각 더 중요한지 다면적으로 분석한다.특히 미국은 세계 권력과 국제적 위신을 유지하려는 베버주의적 강박에 따라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여기는 반면, 재무부·국가경제위원회·의회 등은 거대 기업의 영향력에 대해 더 개방적인 편이라고 바라본다.세계 1, 2위 경제 대국으로서 두 나라의 비중을 합치면 GDP에서는 세계 전체의 거의 40%, 국방비에서는 50% 이상을 차지해 향후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며, 21세기 미래의 세계질서 또는 혼돈을 결정짓게 된다.하지만 저자는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통계 자료들을 근거로 중국이 성공적인 경제체인 것은 맞으나 많은 영역에서 미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중국의 현재 문제는 좀 더 구조적인 것으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많은 국유 기업에서 발생한 과잉생산 및 부채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시진핑 정부는 외국 기업과의 더 공격적인 경쟁을 개시했지만, 이는 사실 중국의 불안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8세기부터의 중국 경제사를 훑으면서 국가의 통제와 불안을 읽어낸다.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자본 간 경쟁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 몇 년간 지정학적 경쟁은 불가피하게 심해질 것이다. 다만 저자는 낙관론을 잃지 않을 근거도 있다고 본다.지금 두 제국의 대립은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경쟁 관계와 굉장히 유사한데, 다행인 점은 중국이 점점 군사화되고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도 당시의 독일보다는 훨씬 덜 군국주의적이라는 것이다.저자는 미·중 간의 관계는 악화할 게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는 WHO, WTO, UN과 같은 글로벌 통치 기구에서의 경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