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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로마 시인의 진정한 행복·삶의 지혜 담아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를 담은 책 ‘가난과 은둔의 현자 호라티우스’(문학동네)가 출간됐다. 호라티우스는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했다. 처음에는 그도 출세를 꿈꿨지만, 막상 겪어본 도시 로마와 아테네에서의 삶에 실망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그의 시와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호라티우스는 농촌 삶의 원리를 ‘가난’, ‘은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정’ 등 세가지로 나누고 농촌 삶을 구성하는 이런 원리들이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원리라고 가르치고 설득한다.그는 오늘날에도 유명한 ‘시골 쥐와 서울 쥐’ 우화를 풍자시로 지어내 이를 표현했다. 시골 쥐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간다. 하지만 이내 거기서 요란한 소음, 개의 위협 등을 겪고 그곳은 자기가 찾던 진정한 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서 시골 쥐는 다시 그의 고향, 농촌으로 되돌아간다. “길을 나서라(Carpe viam)”가 후에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카르페 디엠)”로 바뀔 것임을 알리는 극적인 순간이다. 부와 권력을 좇는 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지만, ‘현재의 삶’이 주는 평온은 자족한 자에게 돌아간다. 아직도 회자하는 그의 유명한 말 ‘카르페 디엠’은 그의 이런 삶의 태도에서 나왔다.궁벽한 삶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술과 우정 덕택이다. 그는 한적한 시골에서 벌어지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충만한 행복을 찾는다. 연세대와 카이스트에서 라틴어와 그리스·로마 문학을 가르치는 김남우 박사가 썼다. /윤희정기자

2022-11-03

임신·출산 걱정말아요… 알아두면 유용한 꿀팁 ‘팡팡’

신간 ‘당신의 위풍당당한 출산을 위한 가이드’(도서출판 비엠케이)는 출산을 앞둔 여성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을 짚어주며 이같은 출산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1장에서는 임신 초기 신체변화에서부터 나에 맞는 의료진 찾기, 또한 임신 중 해서는 안 되는 일과 임신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목욕과 명상법 등 임신은 병이 아니므로 최소한의 의료 개입만으로도 얼마든지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다고 알려준다.또한, 출산하는 여성은 원하는 병원과 의료진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라고 일깨워 주며, 산모 각자 자신에게 맞는 출산 계획을 세우고 병원과 의료진에게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며 산모의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2장에서는 진통 준비물 및 도움이 되는 팁·진통하는 자세·밀어내기 등 본격적으로 출산에 대해 알아본다.쌍둥이 출산과 세 번째 출산에 대한 팁도 전한다.마지막 3장에서는 출산 후 모유 수유와 산후 허브 목욕, 진짜 부모가 돼가는 과정, 신생아기 이후의 육아 등 안정적인 산후 회복과 육아에 대해 알려준다.출산 둘라(Doula)이자 출산 교육자인 저자 린지 블리스는 친언니 또는 동네 인생 선배처럼 생생한 출산 경험담을 전한다.이 책은 출산을 준비 중인 산모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줄 ‘아주 똑똑한’출산 가이드북이 돼 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2-11-03

‘제철보국’ 빛바랜 기치만 남은 포항의 생존 기록과 미래 모색

‘포항과 포스코’ 표지. 채헌(55) 경영학 박사가 도서출판 나루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산업화를 이끌어온 기업도시 포항을 본격 탐구하는 책 ‘포항과 포스코’를 출간했다.이 책은 ‘55년 기업도시의 연대기-쇠락하는 지역 중공업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지역혁신기관인 (재)포항테크노파크에서 21년째 근무하며 지역혁신클러스터, 테크노폴리스, 지역혁신산업 육성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산업화를 이끌어온 기업도시 포항을 본격 탐구했다.채헌 박사는 “포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면서 포항의 성장과 부침에 대해서 정리하고 미래의 대안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50만 기업도시의 경제적 부침을 돌아보면서 포항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지금이야말로 포항이 계속 50만의 삶의 터전으로 그 자부심과 명성을 유지하면서 지속될 수 있을 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1부 ‘철강도시의 탄생과 성장 배경’에서는 포항이라는 철강도시가 탄생하고 성장해온 배경을 다룬다. 5만의 어촌도시가 50만 인구로 성장하는 2000년까지의 일들을 기술한다.2부 ‘성장하지 않는 기업도시’에서는 포스코가 민영화되고 사명이 바뀌는 2000년 이후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 시기, 박태준 회장의 영향력도 사그라들고 선출된 지방정부의 위상은 강화된다. 포스텍은 다른 지역의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테크노폴리스는 의욕적으로 추진됐으나 좌절됐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활기를 되찾은 죽도시장의 모습도 살펴본다. 포항을 구성하는 다양한 경제 구성체의 역할과 특징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본다. 채헌 박사 3부 ‘포항의 미래, 어떻게?’에서는 20년 전부터 포항의 대안으로 언급됐던 스페인의 빌바오, 미국 피츠버그, 일본 키타큐슈, 영국의 셰필드 등 선진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기업도시 포항의 위기를 포스코와 포항이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전체적으로 분석한다. 포스코와 철강산업단지는 어떻게 활력을 찾아야 하는지,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이차전지 소재산업의 투자와 가능성도 살펴본다.포스텍 등 지역대학의 역할, 해양관광도시로서의 가능성도 조망한다. 마지막으로 포항시, 포스텍, 포스코 3개 주체의 관계설정, 포항시의 역할, 포스텍의 협력 방안을 거버넌스 관점에서 모색한다.채 박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행정학 석사, 위덕대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포항테크노파크 정책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1-02

‘아픈 나무에서 아픈 나무들 본다’ 김만수 시인, 열번째 시집 출간

“고운 볼 뼈가 피워 올린/봉숭아 꽃밭이 뭉개졌다/서낭에 바람 들이치고/노을 멍들던 날/떼 화살이 날아와/아득히 날리어 와/그녀의 몸에 박혔다/개털 같은 씨앗들이 몸에 쌓이고 쌓여/은하를 건너 /초승달이 된 소녀/기억 속에 피어나는 꽃” - 김만수 시 ‘달개비 꽃’ 부분등단 36년째를 맞는 포항의 중견 시인인 김만수(68) 시인이 최근 열번째 시집 ‘아픈 나무에서 아픈 나무들 본다’(현대시학·사진)를 펴냈다.지난 2020년 아홉 번째 시집 ‘목련 기차’를 출간한 후 2년만에 내놓을 만큼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서정성 짙은 미학을 펼쳐보인다. 김만수 시인 자연·사람·사물 주제로 자신의 일상을 담은 소박한 시집을 통해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힘든 시간들을 건너오며 시인이 겪고 보고 느낀 것들을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시 해설을 쓴 손진은 시인은 “김만수 시인은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현재 공간과 이웃들의 삶에 대한 정직한 기록과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번성했던 시절 그 곳 사람들의 과거 기억을 소환하고 진정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라고 평하고 있다. 복효근 시인은 “이 시집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쓸쓸함”이라고 말하고 있다.김만수 시인은 포항 출신으로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소리내기’,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 ‘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눈썹’, ‘산내통신’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0-19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며 재해석하라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온 인류 지식의 근원은 무엇일까? 한 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아서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지식은 과연 존재할까?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물리학 교수이자 양자 컴퓨터의 대가로 이 시대 위대한 사상가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도이치는 말한다. “그 어떤 이상적 지식의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다고 믿었던 지식은 이따금 우리가 오류를 범하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오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객관적인 설명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데이비드 도이치는 인류에 새로운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이론물리학 최고 권위자에게만 수여되는 폴 디랙 상과 메달을 수상했다. 그의 학문적 연구 과정을 다룬 신간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알에이치코리아)는 과학뿐만 아니라 수학, 역사, 철학, 정치를 넘나들며 지식의 진보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이 함축하는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밀도 있게 살핀다. 책은 영국 ‘가디언’지로부터 “금세기 가장 똑똑한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천동설은 고대와 중세 과학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이 학설은 당시 사람들에게 불변의 진리였는데, 당시의 신 중심적 세계관을 뒷받침하며 오랫동안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았다. 이후 약 2천 년의 시간이 흘러 천동설은 경험주의의 오류로 규명됐고 그 자리를 지동설이 대체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새롭게 정립된 우주관에 기반해 인류는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진보는 수많은 사람이 진리라고 믿었던 지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며, 세상을 재해석한 과학계의 선구자들 덕분이었다.지식 진화에 관한 가장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작업물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도이치 또한 이 같은 선구자다. 그는 인류의 지속적인 진보가 가능했던 이유를 ‘과학적 방법론’에서 찾으며 기존의 과학 이론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해 지식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웠다. 그는 이론적이든 실용적이든 모든 진보는 단 하나의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바로 우주적 수준에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이른바 ‘객관적인 설명’이다.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적 가설이 아닌 우리가 가진 가장 훌륭하고 진보된 과학을 비롯한 역사, 정치,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우주의 법칙, 인간의 조건, 지식, 진보 가능성 사이의 깊은 관계를 탐구하고 확립한다. 치밀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그의 학문적 배경지식에 웅장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진 이 책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현실의 문제에 맞서 인류의 진보를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데이비드 도이치는 대표적인 지식 혁명기였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아테네의 플라톤 아카데미의 역사적 순간들을 거론하며,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진리가 거짓으로 밝혀지고 새로운 진리가 정립됐던 과정들을 세밀하게 설명한다. 그는 이를 통해 끊임없는 진보를 위해선 무한한 창의성이 필수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지식의 진정한 원천은 비판의 자세에서 나온다는 점을 꼭 짚어 말한다.저자는 전작 ‘실체의 구조’내용을 발전시켜 문명의 역사, 도덕적 가치 그리고 정치 제도 등을 살펴보며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나열한다. 이 외에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인공지능(AI)의 진화 프로그램에 인간이 임의의 숫자를 넣어도 올바르게 지식을 도출할 수 있는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래한 밈(meme)에 대항해 인간은 어떻게 지식을 창조할 것인지, 수나 도덕, 미학과 같은 추상적인 실체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어떻게 축적해 나갈 것인지 등등 흥미롭고 다양한 실험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인간은 오류를 범하는 존재로, 현재로서는 우리의 지식이 아무리 결정적으로 보일지라도 잠정적이고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0-13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와 대안

신간 ‘책임 정당: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후마니타스)는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샤피로 두 저자가 현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달의 전통을 이어받은 저자들은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을 “통념을 반박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문제의 진단과 대안에서 확실히 논쟁적이며, 현재 민주주의 정치에 불만이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저자들은 시민에게 권력을 주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더한 ‘풀뿌리 분권화’가 오히려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키우는 역설에 주목한다. 여러 나라에서 시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주고, 유권자와 조금 더 가까운 정치인이 선출되는 방식으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지만, 효능감이 떨어지고 신뢰도도 낮아진다는 것이다.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들은 “소규모 유권자 집단의 비위만 맞추는 일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협소한 유권자층에 빚진 정치인은 대다수 유권자에게 이로운 정책과 상충하는 근시안적 의제의 포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세계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이른바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의사결정과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강화하면 민주적 책임성이 증가한다’는, 자명한 진리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반대 효과, 즉 오히려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와 좀 더 가까운 정치인이 선출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증진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 또한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저자들은 또한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제도 설계자들이 기대한 바와 다른 비례대표제의 취약성을 꽤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사민주의 세력은 여러 개의 좌파 정당으로 분열되는 현상을 겪고 있고 좌파 진영의 분열은 비례대표제를 위험한 우파 포퓰리즘에 노출됐다.저자들은 또한 비례대표제에서는 과격 세력이 자신들의 호소를 온건하게 조정할 유인이 적고, 대중을 극렬 소수와 고도로 양극화된 정치의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예비선거를 시행하는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는 극렬 소수에 봉사하는 정치인에게 너무 쉽게 보답한다. 불만스러운 유권자들이 중도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경한 해결 방안을 원하는 것은 다수대표제나 비례대표제나 같지만, 비례대표제에서는 그들이 의석을 얻는다고 강조한다.저자들은 결론 부분에서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역설을 해결할 열쇠는,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과 책임성 있는 정강 정책을 놓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규율 잡힌 두 개의 정당(또는 선거 연합)을 만들어 내는 선거제도, 즉 영국식 양당제다.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을 진단하고, 유권자 집단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한 정책을 약속할 수 있는 규율 있는 정당, 내구성 있는 정당, 즉 책임 정당(정치)이 왜 필요한지를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0-13

의성 출신 김락기 시조시인 6번째 시조집 출간

김락기 시조시인 의성 출신의 산강 김락기 시조시인이 최근 창작시조집 ‘복사꽃은 그리움끝에 핀다’(넥센미디어)를 출간했다. 김 시인의 시조집으로서는 6번째이지만 자유시집, 칼럼집 등을 포함하면 11권째다. 김 시인의 창작활동은 시조가 대종을 이루지만 가끔 문인화나 크레파스화를 그리면서 시·서·화를 넘나드는 딜레탕트(dilettante·호사가) 예술인으로 자처하기에 내용이 자유분방하고 색다르다.김 시인은 지난 2014년 사단법인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을 맡을 때부터 시조의 범국민문화와 세계화에 힘써왔다.임선묵 전 단국대 국문학과 교수는 김 시인 시조의 ‘문체’에 대해 “흔하면서 대접 받지 못하는 소재, 그러한 소재에 얽힌 서민의 소박하고 진솔한 삶, 이들 조건에 맞는 투박한 언어의 선택과 배열, 소재에 얽힌 작가의 체험적 생각, 특유한 표현의 솜씨 등등 이러한 의미 전달의 정황에 개입한 작가의 개성이 결합하여 이룩한 문체”라면서 “시조의 오랜 관습적 문체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참으로 대단한 문체의 탄생”이라고 했다.이 책은 산강의 자평집 성격의 앤솔로지이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창작 시조를 ‘산강 시조’라 명명하고, ‘시조다운 시조는 정형률을 지키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락기 시인은 의성 도리원 인근의 한적한 시골마을 덕은동에서 태어났다. ‘도리원(桃李院)’은 이름 그대로 복사꽃과 오얏꽃이 피는 고을이어선지, 이 앤솔로지 표제 ‘복사꽃은 그리움 끝에 핀다’로까지 연이 닿는다.그는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후, 대구에서 고교시절을 보낸 후 서울 상계동 수락산 자락에 터를 잡고서, 줄곧 불암산·도봉산·북한산들을 바라보며 눌러 살고 있다.김 시인의 필명은 산강(山堈)으로 산언덕(산기슭)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문청시절 봉산문학회 동인으로 문학에 발을 디디고, 제7회 단대신문 학술·문학상에 시조로 당선된 후, 계간 ‘시조문학’과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시조와 시 부분에 나왔다.연작시조 ‘바다의 심층심리학’으로 시조문학 창간 50주년 기념작품상을, 시조집 ‘삼라만상’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자유시집 ‘고착의 자유이동’으로 제9회 문학세계문학상을, 연시조 ‘무시래기를 삶으면서’로 제6회 역동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10-13

20세기 철학사 큰 봉우리, 하이데거 사상의 숲으로

하이데거는 20세기 철학사에 큰 봉우리로 우뚝 자리하고 있다. 현대 서양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이데거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철학사에 있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이며 피해 갈 수 없는 외길이기도 하다. ‘하이데거 극장 1·2’(한길사)는 언론인이자 ‘니체 극장’, ‘즐거운 지식’, ‘담론의 발견’ 같은 인문서를 냈던 고명섭 씨가 하이데거의 삶과 사상을 10여 년간 탐구한 연구서로서 하이데거 사상의 광대한 내면에 펼쳐진 사유를 800쪽 안팎인 두 권의 책에 찬찬히 짚어낸다.책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형이상학자의 반열에 드는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비교적 충실히 소개하면서도 과도한 배경 설명을 자제하고 독자를 하이데거 사상의 숲으로 바로 안내한다. 다른 많은 학술적인 책과 달리 하이데거의 사상을 놀랄 만큼 상세하게 분석하면서도 독자들을 추상적 개념의 포로로 만들지 않는다.책 제1권은 하이데거 최대 작품인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전기 사유를 탐사한다. 여기서는 ‘현존재’ 곧 인간을 탐구함으로써 ‘존재’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제2권은 또 다른 주저 ‘니체’를 중심에 놓고 니체와 대결을 벌이며 최대의 장관을 연출한 후기 사유를 조명한다.저자는 “하이데거와 마주한다는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를 필연적으로 묻는 일, 곧 ‘진리란 무엇인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면으로 묻는 일이다. 하이데거는 일찍이 ‘철학의 본질은 유한한 존재자의 유한한 가능성’이며 ‘인간 존재는 이미 철학함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우리는 이미 철학 안에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학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있는 한 우리는 누구나 철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9-22

여전히 ‘먼 곳’ 중동의 속살 깊이 있고 재미있게 풀어내

중동의 정치, 문화, 비즈니스에 대한 생생한 체험과 외교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권태균 전 아랍에미리트(UAE) 대사의 ‘아부다비 외교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다’(도서출판 BMK)가 그 책이다.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거쳐 조달청장으로 있던 저자는 2010년 UAE 특임대사로 임명돼 2013년까지 근무했다. 한국이 최초로 UAE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UAE가 중요한 경제외교 현장으로 부각될 때였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저자의 UAE 대사 임명은 원전 수주를 계기로 해서 에너지, 건설, 보건 등 다양한 협력을 중동에서 전개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를 배치할 필요성에서 출발했고, UAE는 지난 10여 년의 기간을 거쳐 중동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됐다.지난 몇 년간 우리와 중동이 많이 친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중동은 여전히 ‘먼 곳’이다. 근본적으로 중동은 우리의 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범위에 따라 30개국이 넘고, 아랍인으로 구성된 아랍 국가만 22개국에 이르기에 간단하게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그뿐만 아니라, 중동에 관한 언론 보도는 전쟁과 테러 소식 일색이고, 중동에 부임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좋은 안내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그런 이유로 중동에 사업이나 거주 목적으로 온 상당수의 사람은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로 저자는 UAE 대사로 일하면서 사업에 섣불리 접근해 실패한 사람, 계약을 한국식으로 생각하다가 고생한 사람, 일이 상식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원인을 알지 못해 당황하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났다. 저자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해소하기 위해 중동에 관한 강연이나 기고 요청이 오면 거절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쓰게 된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급속하게 경제 부국으로 부상한 걸프만 연안의 산유국들, 흔히 GCC(Gulf Cooperation Council) 국가라고 부르는 6개 왕정국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왕정이며, 산유국이고, 소득수준이 높은 이 국가들은 비즈니스가 왕성한 자본주의 체제에 기반하여 중동에서도 가장 안정된 평화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UAE를 중점적으로 다뤘다.외교 전선에서의 생생한 경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왕정의 실상, 그리고 중동에 사는 외국 특히 UAE 왕실 이야기와 외교 현장의 일화, 인근 다른 나라의 이야기 등 내용의 폭이 넓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1부 ‘중동의 정치는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수니와 시아로 대변되는 중동 정치의 기본 구조와 현대 중동 왕정의 성립 과정, 중동 왕정의 위상, 아부다비 왕가의 기원과 발전,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경쟁의식 등을 다뤘다.2부 ‘중동의 외교 현장을 뛰어다니다’에서는 산유국에 원전이 필요한 이유와 일본 후쿠시마 사태 속에 거행된 원전 기공식, 왕실 전용기로 전개된 아덴만 해적 이송 작전과 중동의 사막에 온 특전사 등을 서술했다.3부 ‘중동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에서는 중동에 대한 공포와 실상을 비롯해 중동의 가볼 만한 여행지, 문화 허브인 아부다비, 중동에서 살면 행복한 이유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저자는 책머리에 “UAE 대사로 발령받은 때는 원전 수출 과정에서 한국과 UAE의 관계가 최고조에 이른 만큼 하루하루가 긴박했고 일은 태산 같았다. 당시에 얻은 중동 경험과 지식을 혼자 간직하고 있기보다는 가급적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9-22

‘확실히 알고 있다’는 건 우리의 착각

이제껏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읽고 탐색하는데 사용한 도구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경제 전망은 수시로 빗나가고, 선거에서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금융 모형이 실패하고, 기술 혁신이 위험 요인으로 돌변하고, 소비자 조사는 현실을 호도하는 현상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우리는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마크 트웨인의 경구처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파이낸셜 타임스’ 편집국장이자 인류학 박사인 질리언 테트는 저서 ‘알고 있다는 착각’(어크로스)에서 기존의 사회 분석 도구들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복합적인 원인들을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세상 속 진짜 문제를 읽어내기 위한 도구로 인류학을 제시한다.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인류학은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면에 감춰진 무언가를 포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문제를 새롭게 통찰하는 학문”이라며 “오늘의 세계에 (인류학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다.그는 “우리의 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든 사회과학자든, 타인을 연구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게으르게 짐작하고 편견에 휩쓸리기 쉽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우리가 사는 방식을 ‘정상’으로 여기고 다른 방식은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모든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질리언 테트는 중국 속담 “물고기는 물을 볼 수 없다”를 빌려와 ‘어항’ 밖으로 뛰어내릴 때 비로소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문화를 수용하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맥락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을 때 그 사회에 맞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대표 사례로 소개하며 ‘혁신적 금융 상품’, ‘파괴적 금융 공학’과 같은 용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리스크가 어떻게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만약 이 사태를 금융 엘리트의 눈이 아닌 인류학자의 렌즈로 바라봤다면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리스크와 금융계 내부 모순을 사전에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그 밖에도 애완동물과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사료 업계에서 반전을 일으킨 소비재 기업 마스의 사례, 에볼라부터 코로나19까지 세계 각지를 휩쓸고 간 전염병 대응 사례를 통해 빅데이터나 통계만으로 놓치기 쉬운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인류학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우리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인류학의 힘은 우리가 사회과학에 귀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숨겨진 무언가를 보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사회과학에 귀를 기울이면 내부인이자 외부인이 되기 위한 민족지학 도구를 수용하고 아비투스와 상호관계, 센스메이킹, 주변 시야와 같은 개념을 차용할 수 있다.질리언 테트는 책 후반부 월스트리트와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에서 인류학이 어떻게 사회적 침묵을 밝혀냈는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방법을 소개한다.이런 분석의 틀을 도입해 정치와 경제, 기술을 다른 렌즈로 들여다볼 수 있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세상의 침묵을 경청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25

삶을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문장 속 ‘인생’

신간 ‘인생’(청색종이)은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견 작가 하창수(63)가 등단 35주년을 맞아 펴낸 에세이다.전업 작가와 번역가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124편의 글로 묶었다. 이 에세이에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밤새 뒤척이는 깊은 문장들이 가득하다.저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을 때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서른다섯 번 읽으며 삶이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소설가와 번역가로 수십 년을 지내오면서 삶이 조금쯤 명료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세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영원히 규명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할수록 책상에 앉아 한 문장 숙명 같은 언어를 이어가는 작가는 끝내 명확함에 이르긴 어렵더라도 다음 생을 위해 공덕을 쌓듯 써야 한다는 애틋한 기원을 갖고 있다.그는 소설 아닌 글을 많이 썼지만, 산문집을 묶는 데 인색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마지막 산문집이라 생각하고 무거운 표제를 달았다”고 한다.포항 출생인 하창수 작가는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 2017년 단편 ‘철길 위의 소설가’로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25

아태평화교류협회 ‘평화친구’ 제7호 출간

‘평화친구’ 제7호 아태평화교류협회(대표 안부수)가 지난 2020년 12월 독자들의 마음에 ‘평화 텃밭’이 되겠다는 취지로 창간한 계간지 ‘평화친구’(아시아) 제7호가 올해 여름호로 최근 출간됐다.이번 호에서는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가 진행한 제4차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 및 안치식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아태협은 2004년부터 이번 4차 유골봉환까지 총 215위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 안치했다. 2022년 6월 30일 제4차 유골봉환에 모셔온 38위는 대일항쟁기 당시 노무동원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강제동원 희생자유골(16위)’ ‘강제동원 피해생존 사망자 유골(13위)’ ‘강제동원피해 유족의 유골(9위)’로 구분된다.안부수 아태협 대표는 기획 연재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과 조국 봉환 현장을 가다’를 통해 사할린, 홋카이도 등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조사한 일지를 공개한다.‘평화친구 이야기’에서는 권서각 시인이 권정생 선생을 향해 보낸 애달픈 편지를 소개한다. 또 권정생 선생이 5·18 꼬마 상주 조천호 군에게 보낸 편지를 함께 읽으며 평화를 향한 열망을 되새겨본다.이밖에도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의 칼럼과 ‘내 안의 평화’를 위한 김용국 시인의 시와 산문 등 독자들의 마음에 ‘평화 텃밭’을 가꿔줄 글들을 담고 있다. /윤희정기자

2022-08-24

민족시인 한흑구 들여다본다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 시·소설·평론·수필·영미문학 번역을 아우른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의 백광(白光). 60∼70년대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명수필 ‘보리’의 작가 한흑구(본명 한세광·1909~1979).포항 최초 근대적 지식인, 전국적 문학인이었던 한흑구의 삶과 문학 전반에 대해 살펴보는 연구서가 나왔다.‘한흑구의 삶과 문학’(아시아)은 도서출판 아시아가 지난 2년여 동안 기획, 현장답사, 학술대회 등을 진행하며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다각도로 연구한 논문들을 한 권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한 첫 연구서가 출간된 것이다.이 책은 방민호 서울대 교수의 ‘한흑구 문학의 특질과 한국현대문학사에서의 의미’로 시작된다. 문인 한흑구의 면모를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충실하게 더듬는다. 이를 통해 한흑구가 한국현대문학사의 빈 공간을 채웠던 소중한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였음을, 그리고 수필가였음을 설득력 있게 조명하고 있다.이경재 숭실대 교수의 ‘불멸의 민족혼 한흑구와 그의 소설에 나타난 미국’은 미국을 다룬 한흑구의 모든 소설을 대상으로 해, 당대의 미국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참조해 그의 소설에 드러난 미국 표상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이 교수는 해방 이전 한흑구 소설의 미국 표상이 지닌 의미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한명수 문학평론가는 ‘흑구 한세광은 민족시인이었다’에서 한흑구가 일제의 압박과 박해를 견디며, 꿋꿋하게 민족의 자존심과 자리를 지킨 민족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치밀한 논증과 엄격한 해석을 통해 민족의식과 당당한 지조가 한흑구의 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산문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흑구의 삶과 문학’표지(왼쪽)와 한흑구 작가 박현수 경북대 교수는 ‘한흑구 초기시의 모더니즘 경향과 칼 샌드버그의 도시 민중시학’에서 우리에게 낯선 시인 한흑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한흑구는 문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시를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시를 지속적으로 써온 시인이다. 박현수는 한흑구 시 중 재미 기간과 그 이전의 시를 초기시라 규정하고 이들 시에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도시성과 민중 지향성을 분석하고 있다. 안미영 건국대 교수는 ‘한흑구의 영미문학 수용과 문학관 정립’에서 한흑구의 문학과 그가 수용한 영미문학의 관련성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특히 한흑구가 영미 소설 번역을 통해 흑인의 인권뿐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주목했음을 밝혀내고 있다.안서현 서울대 교수는 ‘해방 이후 한흑구 수필과 민족적 장소애’에서 그동안 미발굴됐던 한흑구의 수필 수십 편을 새롭게 발견해 공개하고 있다.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한흑구의 수필관은 물론이고, 그의 수필세계의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 실었다.이 책에 수록된 마지막 글인 한명수 문학평론가의 ‘인터넷 게시 사전류에 나타난 한흑구의 이력에 관하여’는 인터넷에서 널리 유통되는 사전류에 등재된 한흑구의 이력에 관한 오류들을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류영재)의 일원으로 기획, 학술대회, 연구서 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대환 작가는 “이상의 연구들은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해명하는 데 그 길목을 참으로 집요하고 성실하게 살펴보았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는 논문들이다. 그럼에도 한흑구라는 거목이 차지하는 기존 한국현대문학사에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결코 겸사만은 아니며, 한흑구를 한국현대문학사의 집에 제대로 영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23

1930년대 ‘남학생 일기’ 번역본 대구·학교 풍경 고스란히 담겨

‘남학생 일기’ 번역본. /대구교육박물관 제공 일제 강점기 경북고 재학생이 일본어로 쓴 일기장이 번역 출간됐다.대구교육박물관(관장 김정학)은 1930년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 재학생 안장호 군이 일본어로 쓴 일기장을 번역한 ‘남학생일기’를 펴냈다고 밝혔다.이 일기장 원본은 대구근대역사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대구교육박물관이 2018년 개관 당시 출간한‘여학생 일기’와 짝을 이룬다.당시 남자 고등보통학교 학제는 5년제로 1932년에 입학해 1937년에 졸업한 안군은 1, 2, 4, 5학년의 학교생활을 일기장에 기록했다.번역본은 총 6권의 일기 중 일제 강점기 당시 상황과 학교 풍경, 교육 상황 및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내용을 위주로 발췌해 학년별로 구성했다.일기 외에도 책 곳곳에는 1930년대 한국사, 대구 상황, 교육제도 등에 대한 설명을 함께 실었고 일기에 등장하는 장소나 행사에 대한 주석, 당시 신문 등 각종 시각 자료를 첨부했다. 안장호 군의 사진. 여학생 일기가 황국 신민화 교육에 순응했던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남학생 일기에는 그에 대한 주인공의 비판적인 입장도 담겼다.‘나는 생각했다. 생명이 중요한가, 칙어(勅語)나 교기(校旗)가 중요한가’라고 쓴 대목에서 안군은 인간의 생명보다 칙어와 교기를 중시하는 가르침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입학식 풍경, 교장 훈화에 대한 반감, 교련 훈련에 진저리치는 모습, 신사참배, 병영훈련 및 각종 일본 왕실의 기념일 강요 등을 비롯해 대구역 앞 12차선 도로 개통, 미나카이백화점 개점, 대구비행장 개장 등 당시 대구 풍경도 담고 있다.‘남학생 일기’ 번역본은 이달 중순부터 대구교육박물관 방문객에게 무료로 배부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17

인간은 ‘실패를 해낼 줄 아는 동물’이 되어야 한다

신간 ‘실패를 해낸다는 것’(민음인)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막연한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 새롭게 도전하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이다.전 국회의원(17대, 19대)이자 법조계, 정치계, 학계, 문화계를 넘나들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최재천 변호사가 6년간 다양한 실패 사례를 모으고 분석해 체계화한 실패학 기본서이자 종합서다.‘실패학’이란 실패에 대해 연구해 얻은 성공 비결과 삶의 지혜를 공동체와 공유하는 학문으로, 이 책에서는 개인의 실패부터 기업, 사회, 국가의 실패 사례까지 총망라해 그 근본 원인과 대안을 살펴본다. 나아가 실패에 너그러운 문화와 패자부활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 ‘실패의 플랫폼’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이 책은 인간을 ‘실패하는 동물’이라고 명명한다. 살면서 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고 실패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실패하는 사례와 사람이 더 많은데, 왜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만 과도하게 찬양하고 실패는 금기시하며 감추려 드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각종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성공이 아닌 실패가 인간의 본질이라 규정하고, 실패를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사회의 핵심 과제임을 밝힌다. 실패에서 성공 비결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실패를 직접 경험하고 맞부딪쳐 기꺼이 ‘실패를 해낼 줄 아는 동물’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이 책의 1부 ‘실패를 위한 변론’에서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의 전환을 이끈다. 2부 ‘실패 문화를 분석하다’에서는 다양한 각도로 실패 사례들을 비교 분석하고 체계화한다. 3부‘실패를 해낸다는 것’에서는 실패를 기꺼이 해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들을 위한 제안이 담겨 있다.실패를 과정으로 여기고 모험심을 존중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와 달리 우리 사회는 유난히 실패에 가혹하다. 성공 스토리에 집착하고 성공한 사람을 과도하게 찬양하지만 실패는 철저하게 개인화하고 죄악시하여 실패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실패에 대한 공론화 불가능하고 실패 사례 연구도 이뤄지지 않는다. 실패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문화가 없고, 실패한 사람이 다시 회생할 제도도 없다. 한마디로 ‘실패의 플랫폼’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이 책은 개인의 실패 뿐만 아니라 사회의 실패, 국가의 실패, 시스템의 실패까지도 다룬다. 사회 구조적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노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저자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마음껏 실패하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정하고 드넓은 운동장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사람과 사회와 나라가 실패를 ‘잘’ 해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폭넓은 사유, 다양한 사례, 간명하고도 힘찬 필치로 쓰인 ‘실패를 해낸다는 것’.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꿈꿔 왔던 일에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11

‘알 수 없음’의 상태일 때 극도의 긴장감에 빠진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어떻게 떨칠 수 있을까?’저명한 독일 뇌과학자이자 당뇨병학자인 아힘 페터스 독일 뤼베크 대학교 교수는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인 불확실성에 의한 스트레스를 다룬 책 ‘불확실성의 심리학’(에코리브르)에서 불확실성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유독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기 쉽다고 주장한다.사랑, 기쁨, 분노, 공포, 시기심, 비애 등은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감정이다. 하지만 시대별로 저마다의 요구와 고유한 감정이 있다. 흔히 이런 것들은 그 시대만의 새로운 도전과 압력의 분명한 징후다. 저자는 ‘불확실성’을 우리 시대의 가장 심도가 깊은 감정으로 꼽고 이를 분석한다.그는 이 책에서 불확실성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의학적으로도 이 감정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스트레스 연구가들이 설명하는 ‘유독한’ 스트레스로 이어져 심각한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불확실성이 우리의 무엇을 바꾸고, 왜 우리를 병들게 할 수 있는지 의학적·심리학적·사회적 맥락을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가 삶의 많은 영역에서 불확실성을 새롭게 평가하며 이를 통해 어떻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스트레스는 모든 생명체가 알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단세포생물도 의식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불안한 태도를 보인다. 스트레스는 생명과 관련해 중요한 것이 부족하거나 생존이 위험할 때는 반드시 나타난다.저자는 이 책에서 뇌과학의 관점에서 무엇이 우리의 불확실성을 변화시키는지,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언제 좋고 언제 나쁜지, 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더 잘 다루는지, 무엇이 우리를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게 하는지, 그리고 의식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를 설명한다.미래에 나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재함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만 할까 하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알 수 없음’일 때 우리는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빠진다. 이때 머리를 모래에 처박는 타조처럼 순간만 모면한다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맡기는 전략을 취하면 정보의 업데이트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결국 타인에게 예속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만다.생존이 위험해질 때 동물은 코르티솔(호르몬의 일종)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부신이 커지고, 흉선이 축소되며 위와 장에 궤양 증상이 나타난다. 80여 년 전 캐나다 화학자 한스 셀리에는 이런 현상을 ‘스트레스’라고 명명했다.이때부터 스트레스는 주로 부정적 뉘앙스를 띠었지만 사실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다. 스트레스는 나에게 내가 문제를 인지했으며, 내가 싸우는 중이며, 행동하는 중이며, 해결하고자 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적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바로 불확실성이다.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 나쁜 감정이 일어나고, 이때 뇌는 최고의 전략을 발견하도록 절약 모드에서 학습 모드로 바뀐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출구 없는 스트레스는 유독하고, 그 결과 우울증·심근경색 같은 최악의 상태를 가져오므로 주의해야 한다.저자는 어떻게 하면 불확실성과 안전하지 못한 상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 주면서 공감, 신뢰, 확실성이라는 사이클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곤경에 처한 다른 이들을 공감하고 도와준다. 거꾸로 스트레스와 불확실성 상태일 때는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11

전국 최초 면 단위 향토문예지 ‘서숲문학’ 창간

지역 출신 문인들의 문학작품을 실은 종합 문예지 성격의 ‘서숲문학’이 면 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창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에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위치한 ‘서숲’을 중심으로 과거에 행정구역 상 같은 면이었던 기계면, 기북면 출신의 문인 20여 명의 시, 수필, 소설 등 장르별 문학작품 80여 편이 수록돼 있다.이 책은 2021년 11월 지역에 거주하거나 전국에 흩어져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출향작가 20여 명이 ‘서숲문학회’를 창립해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문향(文鄕)의 자존감으로 지역의 문화예술을 진흥 발전시키기 위한 첫 성과물로 발간된 것이다.‘서숲문학’창간호에는 초대회장을 맡고 있은 최규원 수필가의 수필‘샛바람 타고 온 그리움’, 포항12경 시로 두드러진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오낙률 시인의 시 ‘현내리 다방길’ 등 8명의 시 48편, 그리고 서울에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는 권유경 수필가의 ‘피안의 성’ 등 9명의 수필 33편과 소설 1편이 실려 있다.서숲문학회 초대회장 최규원 수필가는 발간사에서 “서숲문학회가 맑고 푸른 기계서숲, 기계천, 새마을 운동 발상지 등 우리 고향을 지켜온 문학적 소재를 발굴하고 그 자취를 남겨 놓음으로 먼 훗날 후손들의 창작활동에 보탬이 되고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또한 기계 출신의 저명인사 손봉호 교수는 축사에서 “기계, 기북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정겨운 고향이며 가장 문학적인 모티프가 되는 서숲문학회를 통해 서로 다독하고 연찬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고향을 시가(詩歌)로 노래하고 문예작품으로 드러내어 주민들의 문학적인 소양과 정서순화에 도움을 주고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문향 기계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서숲문학회는 최규원 초대회장, 오낙률 사무국장 외 시 분야 7명(오낙률, 김창준, 최규목, 이협우, 최상문, 배영벽, 조형제), 수필 분야 9명(최규원, 이상정, 권유경, 서영태, 이시연, 이천수, 김석종, 신석택, 김진만) 등이 잔잔한 걸음으로 꾸준한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한편, 기계 서숲은 조선 성종 때 농사철 풍파와 하천 범람으로 고생하는 농민들을 위해 성균관 진사를 지냈던 이말동 선생에 의해 숲이 조성돼 현재 울창한 소나무숲을 바탕으로 포항시 ‘맨발걷기 좋은 장소 20선’에 선정돼 ‘숲속 음악회’를 여는 등 시민들이 즐겨찾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8-01

극한 환경에서 인간 본성을 마주하다

“2년여에 불과하지만, 돌아올 때 그들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음의 압박을 목격한 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몇몇 선원은 돌아와 온갖 증세에 시달렸다. 피로, 끊이지 않는 두통, 신경성 문제, 불면증, 심장 이상 증세, 숨 가쁨, 현기증….”‘미쳐버린 배’(글항아리)는 최초의 남극 과학 탐사를 배경으로 한 논픽션이다. 저자인 미국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줄리언 생크턴은 1897년 남극 탐험을 떠난 벨지카호 선원들이 조난에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해 많은 울림을 준다. 벨지카호 사람들의 대담함, 불굴의 용기, 상황 대처 능력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또 그것을 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지 스릴러 걸작이다.저자는 1897년 8월 16일에 출항했다가 1899년 11월 5일 벨기에로 돌아온 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조명하고자 시도한다. 항해일지와 선원들의 일기, 책, 미공개 기록 등을 토대로 5년간 벨지카호의 여정을 좇았고, 현지 조사를 위해 남극에 직접 가보기도 했다.1897년 벨지카호의 남극 원정에는 19명의 선원이 함께했다. 이 배를 이끈 인물은 31살의 사령관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였다. 유서 깊은 벨기에 귀족 가문 출신인 제를라슈는 어려서부터 선박 모형을 갖고 놀며 오로지 바다 위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에 입대했고, 이후 네덜란드 원양 선박 등에서 일했으며, 마침내 마음속으로 품었던 원정대를 직접 꾸리기로 결심했다. 제를라슈는 과학적 임무를 탐험의 첫째 목표로 삼았지만, 세계지도 하단에 있는 텅 빈 공백을 채우겠다는 낭만적인 꿈도 품었다. 그리하여 3년 넘게 이 탐험을 계획했고, 함께할 사람들을 구했으며, 기금을 모았다. 하지만 그의 주위에 낙관주의자들은 별로 없었다. 제를라슈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확고한 결단력으로 마침내 투자자들과 정부 지원까지 끌어냈다.그는 단순히 모험정신을 넘어서 이 탐사로 벨기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짙은 애국심, 가문의 이름을 빛내겠다는 명예욕까지 품었다. 애초에 드 제를라슈가 세운 목표는 위도 75도 부근에 있는 남자극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남자극점의 정확한 위치를 정하면 향후 항해사들이 나침반 판독을 더 정확히 할 수 있을 테고, 따라서 벨지카호의 결정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었다.19명의 선원은 오합지졸까진 아니더라도 정예 요원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구성원으로는 제를라슈의 오랜 벗 단코, 아직 대학 졸업을 못 한 23세의 폴란드 출신 지질학자 아르츠토프스키, 27세의 동물학자 라코비차 등이 있었고, 1년 내내 고르고 고른 선원들도 자격 미달이 꽤 있었다.책은 이들의 탐험 정신, 명예욕, 과도한 승부욕, 괴혈병에 걸려 창백하게 무너져가는 모습, 단조로운 통조림 음식에 미쳐가는 정신 상태 등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몰입감 있는 서사를 전개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범속한 인간들과는 달랐다. 끊임없이 신체 단련을 하고, 남극 빙하에 갇혀서도 살아남을 만큼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며 식물, 동물, 지질학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0년은 걸려야 작업이 마무리될 정도로 이들 과학자가 새롭게 발견해 가지고 온 표본의 양은 방대했다. 배는 1897년 8월 16일에 출항했다가 2년도 더 지난 1899년 11월 5일 아침에야 돌아온다. 그사이에 선원 한 명은 바다에 빠져 죽고, 다른 한 명은 질병으로 죽는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배에서 가장 경험 많고 신뢰할 수 있었던 갑판장 톨레프는 정신이상 증세를 안고 돌아오며, 그는 이후 평생 수용소 같은 농장에 갇혀 지내는 말로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두 사람, 그중 한 명인 쿡은 감옥에 갇히고, 다른 한 명인 아문센은 영웅이 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저자는 추적과 조사, 치밀한 서사 능력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최초의 목표였던 남극점 도달에는 실패했지만, 이들의 위대한 도전은 많은 과학적 성과를 남겼다. 펭귄과 심해어, 동·식물 표본 등이 새로 이들에 의해 발견됐고, 기상 및 해양학 관측 기록들은 학문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들의 탐험은 남극의 중립화에 큰 역할도 했다. 그들의 도전 정신과 연대는 오늘날 미국 항공우주국 대원들의 귀감이 되는 것을 넘어서 도전을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2-07-28

“현재 모습이 나의 전부를 규정할 수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55·피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의 신간 ‘당신에게 보내는 아침편지’(지식중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코로나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당사자의 눈으로, 관찰자의 시각으로, 세상의 관점에서 이치와 원리를 곰곰이 따져가며 50년 인생에 켜켜이 쌓인 생각, 관점, 태도, 의지, 방향 등을 6행 안팎의 글로 매일 써 내려간 글들로 구성됐다.언뜻 보면 좋은 문장을 엮어놓은 글 모음처럼 보인다. 독자 중에는 누군가 쉽게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운’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자세하게 내용을 살피면 “어?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한 내용이 그득하다. 신문기자이자 칼럼니스트였고 정치평론가, 방송 제작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광화문살롱이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비롯해 여러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다.책은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던 기간 실시간 상황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써 내려간 글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340일 이상 일일 1시간 전후의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현실과 자신과 각각 대화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과 꾸준히 생각을 나눴다. 똑같아 보이는 전혀 다른 반복, 익숙하지만 새로움의 연속인 시간,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동료지만 매일 변하는 새사람으로 인식하며 글쓰기를 지속했다. ‘매일 쓰고 생각하며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고행의 결실을 얻어갔다. 그렇게 나온 책이 ‘당신에게 보내는 아침편지’다.저자는 책에서 누구에게나 닥치는 당연한 문제를 예외적으로 피해 보려는 방식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라고 있다. 고민과 걱정을 넘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행동’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유한다. 결과 자체보다 과정을 통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인생의 가치를 얻는다고 확신하고 있다.지식중심 출판사 측은 “사람마다 처지가 같지 않고 생각이 다르며 해결의 수단 또한 제각각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나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이 갖길 바란다”고 밝혔다.저자는 프롤로그에 “고통을 덜고 있든, 더하고 있든 어떤 지점에 있더라도 현실은 현실이다. 다만 현재의 모습이 나의 전부를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기고 지는 문제는 덜 중요하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주인공으로서 삶을 개척하며 여럿이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7-28

위기의 문명… 환경 생태학자의 ‘탈성장’ 대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10년 6.8%에서 2020년 -0.9%까지 하락해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향후 10년 내에 0%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경제가 더 발전하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자원을 다량 소진했고, 이로 인한 자연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공학 교수로서 생태계의 물질순환을 연구한 박지형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는 ‘재난문명’(나남출판)에서 인간의 과도한 경제 활동으로 인해 불평등과 환경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후기 자본주의 산업문명을 ‘재난문명’이라고 칭하고, 재난문명의 원인을 에너지, 물질대사, 탄소라는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 책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추구하는 무한 성장 때문에 “끊어진 순환”이 결국 자연과 인류 모두를 위태롭게 함을 경고했다. 이 책은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인간의 믿음이 자연과 인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최신 통계와 과학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탈성장과 생태사회주의라는 이론적 대안과 지역화폐 제공을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등의 현실적 대안을 함께 제시한다.그리고 에너지, 물질대사, 탄소라는 세 가지 주제어를 중심으로 재난문명의 원인을 분석한 후, 탈성장과 생태사회주의를 이론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 또한 탐색한다.이 책에서는 인류세 환경위기의 뿌리인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모순과 대안을 탐색한다. 저자는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자연환경과 경제가 모두 타격을 입는 과정을 짜임새 있게 전달한다. 또한 한강의 시료를 직접 분석해 한강이 석유기원물질에 의해 오염됐다는 사실을 밝히는 등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이 책은 에너지, 물질대사, 탄소,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이 세 주제를 중심으로 과학이론과 최신 통계를 기반으로 무한 성장의 문제점을 분석한 후 그 대안을 제시하는 순서로 서술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7-14

세계적 미술가 강익중 38년 작품 인생 담은 화집

세계적 미술가 강익중(62)의 화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송송책방)가 출간됐다.이 화집에는 강익중이 뉴욕으로 간 1984년 이후부터 올해까지 작업한 주요 작품들의 이미지와 작업하는 모습, 작품 설치하는 현장 등을 담은 사진, 작가 인터뷰, 작업 노트 등 지난 38년 동안 작가의 작품과 삶이 들어있다.1994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멀티플/다이얼로그’를 할 때 사진처럼 역사에 남은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고, 작가의 가족 및 지인들과 찍은, 작가 개인의 역사에 의미 있는 사진도 있다. 강익중의 대표적 스타일인 ‘3인치 캔버스’를 처음 그릴 때인 1985년 당시 작업하는 사진도 실려 있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 작품의 연결성 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재배치했다. 강익중 작가의 삶과 작품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셈이다. 따라서 500쪽짜리 이 책에는 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배열에 어떤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된다. 3인치 작품 사진에서 여러 명의 인물로, 인물에서 구 형태의 작품들로 이어지다 강물이 돼 흐른다.또한 여러 번 넘기다보면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백남준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같은 ‘내가 아는 것들’ 전시의 재미난 문구도 눈에 띈다. 먼지 가득한 작업실에서 목재를 자르는 작가도 보이고, 영국 런던 템스강에 띄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설치 작품에 감탄하게 된다. 그 가운데 백미는 천진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강익중 시 모음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7-14

오리엔트-중동 역사 되살리다

오늘날 ‘역사’라는 개념을 관성적으로 구분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서양사’와 ‘동양사’로 나눈다.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면서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을 독점했고, 동서양의 균형을 내세우며 인위적으로 육성된 ‘동양사’는 중국사 일변도였다. 나머지 세상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됐으며, 서양사와 동양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히 분리된 채 이어져 오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됐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에 관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희수(69)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신간 ‘인류 본사’(휴머니스트)에서 이는 속속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이라고 역설한다.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2000년 인류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인류 본사’에서 이 교수는 고대사부터 1만2천 년의 인류 역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꿰어낸다.이 교수에 따르면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2천 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천400 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저자는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탐독하는 획기적 사건이며,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인류 본사’는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아대륙,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아우르며 이 일대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통해 오리엔트-중동 세계의 1만2천 년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해냈다.발굴과 동시에 역사학의 근간을 뒤흔든 아나톨리아 문명을 시작으로 오리엔트 문명의 주요 제국들을 선명히 조명함으로써 ‘척추가 끊어진 채 전해져오던’ 인류사의 뼈대를 바로 세운다.문화인류학자로서 상대주의적이고 현지 중심적인 관점으로 그곳만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려내는 저자의 답사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천 년 전 유적지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200여 장에 달하는 컬러 사진과 지도 또한 현지의 기운을 한껏 또렷이 전달한다. 생경하기만 했던 오리엔트-중동 문명을 국내에 오롯이 알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저자의 기념비적 역작으로 손색이 없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7-14

자기과시·관종,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5월 18일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팸플릿을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모습을 두고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성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광주) 내려가는 길에 가사 몇 번 읽어보는 성의만 있었어도 이런 참상은 안 벌어졌겠다. 팸플릿이라니, 대체 무슨 만행인가’라는 글을 남겼다.”언론 기사, 시사 토론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각종 SNS 등에는 특정 사안에 분노하며 자신이 역사의 옳은 편에 있음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신이 더 돋보이고자 ‘같은 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우리 진영은 감싸고 상대 진영에는 가혹한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그랜드스탠딩’이라고 한다. 미국 텍사스테크대 철학과 조교수 저스틴 토시와 볼링그린주립대 철학과 조교수 브랜던 웜키는 최근 번역 출간된 책 ‘그랜드 스탠딩’(오월의봄)에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뭐라고 딱히 꼬집기는 어렵고, 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문제적이라고 느끼는 이 현상을 바로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적확히 짚어낸다.그랜드스탠딩이란 ‘남들의 관심을 얻고, 자기과시를 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철학자인 지은이들은 특히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그랜드스탠딩하는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라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낸다.저자들은 도덕적 그랜드스탠딩이 도덕적 이야기라는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귀한 도구를 함부로 사용하면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데 주목한다.특히 많은 경우의 그랜드스탠딩이 자신의 도덕성을 자랑하려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무례를 범하며, 고의든 아니든 다른 사람을 기만한다는 것이다.특히 지금은 SNS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수천, 수만의 관중들에게 자신의 도덕성을 얼마든지 전시할 수 있는 시절이다.즉, ‘도덕적 이야기’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오용되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신간 ‘그랜드스탠딩’은 우리의 공적 담론이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특히 ‘상대편’이 아니라 ‘우리’가 도덕적 이야기를 이용해 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스스로를 좋게만 보이려고 하는지 묻는다.철학자인 저자들은 이 문제를 포착하는 데 학제 간 연구를 통한 다각적 접근을 활용해 철학적 논증에 더해 여러 풍부한 자료와 근거를 동원한다.이 책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을 근거로 그랜드스탠딩이 무엇인지, 왜 이런 형태를 띠는지를 설명하고, 도덕철학을 활용해 왜 그것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지 논증한다. 그리고 그랜드스탠딩이 민주주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료하게 제안한다.책은 “공적 담론을 자기과시 도구로 접근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며 니체주의의 시각을 인용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탁월한 사람’은 선한 목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도덕적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위상을 얻으려는 일말의 노력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강조한다.저자들은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SNS로 인해 도덕적 이야기의 오·남용에 노출되는 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다만 공적 도덕 담론이 개선될 수 있도록 애쓸 필요는 있다며 ‘인정 욕구 재설정’과 ‘믿음 바로잡기’ 등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