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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법과 정의에 대한 19가지 근원적 질문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흉악범죄들의 법 판결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의구심을 품어보았을 것이다.‘과연 법원의 판결은 공정한가? ‘범인의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벼운 것은 아닌가?’ 혹은 반대로 ‘다른 사건들에 비해 범인의 형량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등등 때로 우리는 사건 이후 법원이 어떠한 판결을 내리는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보며 때로 그 기준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져 회의감을 느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억울할 수 있는 법 판결’이 타인이 아닌 당장 나에게 들이닥친 문제라면 어떠할까? 법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모순적인 판결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항변할 수 있을까? 법치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며 응당 그 규칙에 따라야 한다. 문제는 우리는 법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법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며 기능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한스미디어)의 저자 폴커 키츠는 심리학과 법학 전공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 책에서 19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법치국가가 어떻게 법의 기준을 설계해갔는지 추적한다. 19가지 사례는 모두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다.‘평화적 연좌 농성은 위법일까?’ ‘국가는 테러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게도 존엄성은 있는가?’처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주제뿐만 아니라 잊힐 권리, 여성 할당제, 동물보호,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교육권, 동성결혼, 안락사 등 토론이 필요한 주제까지 그 범위가 넓고 깊다. 각 챕터는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해 당사자가 법에 의심을 품게 된 이유, 고민의 범위,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 모두를 상세히 담고 있다.책에 담긴 19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며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법 판결이 어떻게 탄생되는지도 지켜볼 수 있다. 종국에는 법치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필수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법 사용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의 법은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몇 년 혹은 몇십 년에 걸쳐 싸운 결과물”이라며, 법이 정의로울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결국 ‘우리’에게 있음을 강조한다.이 책은 독일 현지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서독이 타임지라 불리는 주간지 슈피겔, 벨트,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 독일 국영방송국인 ZDF 등 많은 언론에서 극찬을 받았다.2017년 국내 출간했고 이번에 개정판을 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9-07

이대환 ‘붉은 고래’ 20년 만에 독자 만나

지난 2004년 전 3권으로 출간돼 주목을 받았던 포항 출신 이대환 작가(65)의 장편소설 ‘붉은 고래’가 20년 만에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문학전문 인터넷 매체 ‘문학뉴스’가 새로 마련한 ‘다시 읽는 문제작’에서 ‘붉은 고래’를 5일부터 매주 화요일, 금요일 주 2회 연재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현재 절판 상태로 놓아둔 ‘붉은 고래’를 연재가 끝나는 2025년 여름쯤에 ‘굵직한 단권’으로 복간할 계획이며 이번 기회에 군데군데 손질할 생각도 하고 있다.장편소설 ‘붉은 고래’의 주요 인물은 포항 출신의 허씨 삼형제다. 맏이는 재일 조총련 간부, 중간은 남한 정권의 권력자, 막내는 남한에서 성장해 일본의 큰형을 만나고 북한에 들어갔다가 남파된 후 십수 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다.소설의 첫 장면은 공민권을 회복한 막내(허경욱)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작은형의 아들(허시우)과 조우한 모습이다. 이후 둘이서 한 달을 바쳐 유럽 대륙을 거의 한 바퀴 돌게 되며, 여행길에서 삼촌은 틈틈이 조카에게 가족사(삼형제의 인생)를 들려준다. 여정의 종착은 모월 모일 모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기필코 만나야 하는 사람이 기다리는데, 그는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맏형의 아들이다.허경욱이 이야기하는 가족사가 소설의 날줄을 이루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일제 말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포항·일본·북한이고, 소설의 씨줄은 허경욱과 허시우의 유럽 여정으로 20세기 말의 유럽 여러 지역과 사람살이의 풍경이 예리한 시선에 포착된다.소설책 ‘붉은 고래’의 맨 앞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따로 적혀 있었다.‘넘어설 경계도, 지켜설 경계도 없는 자유로운 바다에서 맘껏 호흡하며 찬란하게 유영할 그날을 위해’작가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며 쓸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과연 자유로운 유영의 그날은 미래의 어느 고개 너머에 널브러져 잠자고 있는가? 언젠가 눈을 뜨고 먼지를 털며 일어나 오긴 오겠는가? 이런 소망이 벌써 스무 해쯤 묵었다. 세월 참 빠르다. 인생은 더 빠르다. 빠른 것은 전진의 자취를 남겨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민족 현실, 남북 관계는 나쁜 궤적을 그려놓았다. 그것을 ‘번복의 반복’이라 불러도 되겠다. 그러는 가운데 21세기 들어 한국 소설은 분단 현실을 줄곧 유기해오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붉은 고래’는 지금 여기로 불려 나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이대환 작가 한편, 이대환 작가는 최근 명수필 ‘보리’의 작가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새로운 형식의 평전으로 쓰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장대한 오페라에서 아리아만 따로 빼내 정연한 시계열의 질서를 부여하는 형식이다. 부제는 ‘Han’s Aria 한흑구 아리아’, 제목은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다.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강덕 포항시장이 의기를 세워서 포항시가 한흑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니, 비록 오래 지각을 했어도 너무 당연한 그 좋은 일에 대해 후학으로서 우리나라 독서계와 포항시민에게 선생의 진면모를 제대로 알리려는 작업”이라고 밝혔다.작가의 작업 진도에서 오늘 현재 한흑구 선생은 “권력·명성·돈이 보장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솔가해 12시간짜리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와서 영일만 수평선으로 막 해가 솟아오른 시각에 포항역 광장으로 나섰다”고 한다. 한 편의 아리아 같은 글이 100편쯤 이어지는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는 언론 매체의 매일 1회 연재를 거쳐 새해맞이 무렵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9-04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 자립의 길을 묻다

에너지전환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핵에너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과제로 떠올랐다. 에너지전환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과 더불어 중앙집중 방식에서 지역분산형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포함한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당연히 국가나 지방정부의 정책변화와 함께 에너지정책의 추진 주체인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돼야만 에너지전환은 성공이 가능하다.녹색도시, 저탄소 도시 건설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위현복(62) (사)한국혁신연구원장이 최근 칼럼 모음집 ‘위현복의 인간, 기후, 에너지’(삼정기획인쇄·사진)를 펴냈다.저자는 지난 2년여간 경북매일 전문가 시사 칼럼인 ‘시사포커스’에 연재한 ‘에너지 효율화와 RE100 달성’ 주제 칼럼들을 신문 지면 사진과 함께 책으로 엮었다. 시사포커스는 본지가 창간 30주년을 맞이하던 2021년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자세 등 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야심 차게 기획한 콘텐츠다. 이번 칼럼 모음집에는 2021년 8월부터 시작해 지난 21일까지 저자가 쓴 30여 편의 칼럼이 실렸다.세계 주요 국가들이 저마다 그린 뉴딜 정책을 내놓으며 에너지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 연료가 고갈됐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처럼 화석 연료를 계속 썼다가는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는 전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은 인류를 더 높은 차원의 문명사회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저자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탄소배출을 제로 상태(탄소중립)로 만들고, 에너지 자립을 실현할지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다. 그는 우리 모두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RE100을 실천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탄소중립’, ‘ESG 경영’, ‘탄소 국경세’로 명명되는 거대한 에너지전환 시대가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국민 모두가 구경꾼처럼 무덤덤한 것에 대해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가도 기업도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된 기후변화 대응·탄소중립을 위해 모든 선입견과 감상적 판단을 떠나 냉철히 세계적인 추세와 현실을 직시해 도전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고 기업과 국가경쟁력 향상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은 20대 대학 시절부터 사회혁신과 경제발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1989년 여론조사회사 (주)리서치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15년부터는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한 도시개발을 위한 (사)한국혁신연구원을 설립해 녹색도시, 저탄소 도시 건설을 목표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30

대경대 김건표 교수, 한국연극의 현장과 인물을 기록한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펴내

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국내 대표적인 연극연출가와 행정가, 평론가, 극작가, 연극배우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낸 ‘한국연극의 승부사들(부제: 김건표가 만난 대한민국 연극인 50人)’을 지난 28일 출간했다. 사진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이 출간한 ‘한국연극의 승부사들’은 연극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들인 배우, 작가, 연극연출가, 연극평론가, 행정가와 제작 기획자들의 전문성과 삶과 인생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다. 이순재, 명계남, 김병춘, 故 강태기, 남동진, 신현종, 김미숙, 지춘성, 전국향, 김귀선 등 연극무대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생생한 이야기에 배우와 연극 전공자들에게 유익한 연기표현 방법과 무대에서의 배우의 역할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연기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출과 행정가로는 심재찬, 오세곤, 기국서, 유홍영, 한태숙, 조광화, 김광보, 송형종, 박장렬, 윤시중, 최용훈, 이승철, 안경모, 최원석, 전인철, 정범철 등이 연극연출과 무대의 삶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지난해 여석기 평론가상을 수상한 김기란 평론가가 유일하게 평론가로 참가했으며 대구공연의 승부사로 알려진 김종성 대표(고도예술기획)를 통해 몇 해 전 불황의 공연계에서 뮤지컬 명성황후를 유치해 성공으로 이끌었던 이야기도 있다.  김건표 교수는 기억에 남은 배우로는 이순재 선생과 (고)강태기 배우를 꼽았다.  이순재 선생에 대해 김 교수는 “이미 공연한 작품을 재공연하면서도 팔순의 나이에 대본에 볼펜을 칠하며 맡은 배역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신인배우처럼 느껴졌고 암기력을 잃지 않고자 미국 역대 대통령 이름을 습관처럼 외우시는 모습, 국회의원을 하셨는데도 평생 배우로 살아오신 원칙과 배우 인생철학을 잃지 않으려는 소탈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강태기 배우는 “수백 회를 한 공연에도 숙소로 돌아와 대본을 펼치고 대사를 읽을 때마다 역할이 새롭게 느껴져서 맡은 배역을 매 순간 표현하고자 매 순간 공부를 했다고 말하던 기억이 새롭다”고 밝혔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3-08-30

김유신은 어떻게 신라의 영웅이 됐나

‘한국=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국내외적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과 6·25 전쟁을 겪으며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꾸준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역량 강화로 한국은 어느덧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나라가 성장한 만큼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이 얽혀 있는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늘었다. 비교적 적은 인구와 경제 규모라는 제약을 가진 한국이 앞으로도 국제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소장 역사학자인 황윤 작가는 ‘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소동)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신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이 놓여있는 혼란한 국제 정세가 여러 세력이 외교, 군사, 문화, 경제를 동원해 서로 견제하고, 동맹을 맺고, 대립했던 7세기 삼국시대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김유신, 말의 목을 베다’는 고구려, 백제에 비해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지 신라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유신을 통해 알아본다.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신라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왜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본다.더불어 혼란의 시대에 차별받는 가문의 자제로 태어난 김유신이 기회와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방식을 알아보며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하는 덕목과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이 책은 신라에서 차별받던 가야계 가문에서 문(文)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태어난 김유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와 압박을 일탈로 피하는 것이 아닌 정면으로 이겨내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타고 있던 말의 목을 베고 결국 무(武)를 상징하는 신라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독자는 차별적인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차근히 성장해나가는 김유신의 모습에서 인내와 도전 의식, 강인한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내 성공으로 발전시키는 김유신의 전략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신라가 멸망한 뒤에도 김유신은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인정받았다. 근대에 들어 신라와 김유신이 외세의 힘을 빌려 민족을 억압한 세력이라 비판하는 견해가 생겨났지만,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생긴 오해에 가깝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도와 정치적 변화를 앞장서 이끌었으며 내부 분열을 통합해 신분과 지역 차별로 고여 있던 신라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골품제로 신분을 구분하는 신라에서 혈통의 반이 가야계였던 김유신은 어깨에 짊어진 가문의 존립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그 모든 무게를 정면으로 버텨낸다. 필요하다면 악당 역할마저 자처해 임무를 완수해 내는데, 저자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영웅은 바로 김유신처럼 인내와 노력 끝에 올라간 자수성가형 인간이라고 말한다. 김유신에 관한 설화 등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이어지는 것은 그가 단순히 한때 신라를 지배한 권력자나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장이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배경을 지닌 위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저자는 특히 김유신이 역경을 헤쳐나가며 보여준 통합과 리더십의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오늘날 우리가 신라와 김유신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2013년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을 전면 개정해 새롭게 내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24

“바로 지금 행동하세요” 희망의 사도가 전하는 끝나지 않은 메시지

“희망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희망을 어떻게 정의하시죠?”“희망은 우리가 역경에 맞서 계속 나아가게 해 주는 힘입니다. 희망은 살아남은 것들의 특징이고 생존의 본질이에요.”-‘희망의 책’ 본문에서‘희망의 책’(사이언스북스)은 30년 넘게 동물과 인간, 환경의 권리를 위해 전 세계에서 활약해 온 제인 구달(90) 박사의 최신 인터뷰집이다.1934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본머스에서 자란 제인 구달은 ‘최초로 야생에서 침팬지를 연구한’ 행동학자다. 23살이던 1957년 케냐 방문 중에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처음 만난 이후 1960년 탄자니아 곰베 지역에서 야생 상태의 침팬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제인 구달은 ‘희망의 책’에서 시간이 지나면 침팬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다 포기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침팬지와 환경에 대한 염려는 그가 곰베를 떠나게 된 이유였다.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전역의 침팬지들에 대한 위협을 깨닫고, 1986년 6개국 현장을 방문한 이후 비단 침팬지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 전반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자 전 세계를 다니기 시작했다.그녀가 1977년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는 현재 세계 28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전 세계적인 풀뿌리 환경운동 모임인 뿌리와 새싹(Roots Shoots)은 1991년에 “모든 사람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철학에 따라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한국 내 뿌리와 새싹 소모임 운영 관리와 지원 업무는 2013년 설립된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총괄하고 있다.“무엇보다도 유달리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나는 진심을 다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하기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은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창문은 닫히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자연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행동에 옮겨야 한다. 바로 지금,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제인 구달이 책의 공저자이자 기획자인 더글러스 에이브럼스는 전작 ‘기쁨의 발견’에서 달라이 라마,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를 만나 나눈 대화를 담아낸 바 있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 희망이 사라진 듯한 이 시대, 희망의 메신저 제인 구달과의 만남은 곧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절실한 것이 됐다.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희망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희망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며 어떻게 희망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2부 ‘희망에 대한 제인의 네 가지 이유’는 희망의 네 가지 주요 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인 구달은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을 희망의 이유로 꼽는다. 3부 ‘희망은 끊임없이 갱신된다’는 제인 구달의 여정이 처음 시작된 시절에서 출발해 다음번 모험에 대한 기대로, 희망으로 마무리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24

영혼의 안식처·용기의 원천 세계적 명사들의 정원 생활

인간은 자연에서 모든 치유의 힘을 얻었으며 인류의 문화, 정치, 역사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명사들에게 생명력을 제공해 왔다. 신간 ‘인생정원’(스노우폭스북스)은 환경설계에 거장으로 주목 받는 서울대 성종상 교수가 세계적 지표로 평가받는 업적을 이룬 명사들이 집의 형태 속에 함께 공존해 온 정원(마당, 텃밭)에서 어떻게 그 힘을 얻었는가를 다룬다.저자는 지난 15년 동안 책에 소개된 각 명사들의 실제 정원을 두루 찾아가 현재 또는 과거의 정취를 사진으로 담았다. 태어나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결국 현세대가 기억하고 기릴 만한 발자취를 남긴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정보를 담아 역사와 인생 희로애락의 발자취를 맞대 독자의 읽는 정보의 폭을 넓힌 책이다.집을 먹고 자는 곳을 넘어 한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드러내고 그 안에 깃든 내면의 힘이 융합되고 창조되는 공간으로 확대해 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획일화된 주거문화 속에 거주하는 개인의 사고를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평생 쉴 곳을 찾아 헤맨 헤르만 헤세가 정착의 꿈을 만끽했던 가이엔호펜 농가를 들여다보며 그 영혼의 안식을 위로하고, 신생국 미국 건설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이상적 국가의 표본으로 들어내고자 했던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카데미컬 빌리지를 통해 그 정신적 통찰을 고찰할 수 있다.용기와 의지로 2차 세계대전 속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 남은 처칠과 그 용기의 원천이 돼준 처칠의 유명한 정원인 차트웰에서 평화의 귀중함을 되새겨 볼 수 있다. 비운의 왕자로 기억되지만 그 풍류와 문화적 혼이 탁월했던 안평대군의 집 수성궁과 무게정사에서 그의 예술인다운 삶 역시 조망할 수 있다.그 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다채로운 이야기꺼리들을 통해 지적 정보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을 기대하도록 고안된 책이다. 책은 조선과 해외 12명의 명사들의 정원과 삶, 그리고 생을 빗대 볼 수 있는,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300여 장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저자는 책의 서문에 “특별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유명인사들, 영향력 있는 명사들의 정원 생활을 엿봄으로써 삶에서 정원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며 “그들의 삶에서 정원의 의미, 가치와 역할을 엿보며 우리 자신의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24

최라라 시인의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

포항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는 최근 최라라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사진을 출간했다. 책은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 △잔치국수나 먹으러 갈까 △고립예찬 △사랑은 죽지 않았다 네 파트로 나뉘어 55편의 따스하고 편안한 이야기로 독자의 눈길을 잡아끈다.책을 쓴 최라라 시인은 “누구에게 상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상처에 아파하며 주저 앉지만 또 어떤 이는 그 상처를 치유하며 더 나은 삶으로 나가기도 한다.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을 읽으며 독자들이 삶 속에서 겪는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가는 “나에게 희망이나 꿈같은 것들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것이다. 내가 만나지 않으려고 자리를 떠나 버린 후에야 나에게 당도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희망적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더했다.최라라 작가는 2011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공동산문집 ‘당신의 가장 중심’을 썼으며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계명대대학원 간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포항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22

“자연과 함께하는 노년의 삶이 행복이죠”

“황혼에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즐거움과 행복의 바로미터입니다. 나무를 보호하고 숲을 산책하면서 산을 오르내리는 일상의 생활은 건강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충실하게 합니다.”최근 수헌 장은재 전원생활 수필 3집 ‘황혼의 Beautiful’(바른디자인)과 ‘노거수 물음에 답하다’(바른디자인)를 펴낸 수필가 장은재(69) 씨.누구나 한 번쯤 마당 있는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이미 지어진 집에 들어가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지은 집에서, 문밖을 나오면 건물이 아닌 자연의 산야가 눈 앞에 펼쳐지는 집에서 사는 삶은 모두에게 로망일 것이다.13년째 영덕군 창수면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지난 수년간에 걸쳐 준비해온 전원행 과정과 그동안의 전원생활 속 소확행의 체험들을 소개한 수필집을 펴낸 장 수필가를 지난 14일 만났다.-책 제목이 ‘황혼의 Beautiful’이다. 제목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지금까지 살아보니 노년의 삶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황혼의 Beautiful’이라고 했다.-전원생활 수필집 ‘황혼의 Beautiful’ 외 2권의 책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황혼의 삶은 격정적이지 않으면서 무료하지 않고, 무료하지 않으면서도 할 일이 있어야 한다. ‘황혼의 Beautiful’은 전원생활 중 경험한 에피소드와 지난 추억을, ‘꿈과 함께 자연과 함께’는 자연에서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사계 산책’에는 사계절의 경험과 사색을 담았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동안 펴낸 8권의 저서 중 ‘명산과 문화유산 체험’, ‘노거수 생태와 문화’ 등의 저서는 문화관광부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소개해 준다면.△‘명산과 문화유산 체험’은 경북 명산 80개와 주변의 문화유산을 소개한 책이다. 경북은 천혜의 자연 보고이며,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이 담긴 ‘문화의 곳간’이라 할만하다. ‘노거수 생태와 문화’는 노거수의 다양성과 서식처의 생태 환경, 마을 주민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각 개체의 데이터베이스도 부록에 수록했다.-최근에 ‘노거수 물음에 답하다’라는 수필집이 나왔는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나무와 숲, 산, 자연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거수는 지구의 생명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 사는 생명체다. 숲은 산림이 원형이며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고 있는 집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자연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현재의 전원주택에서 살게 된 계기와 집 짓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면.△퇴직하면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리라 마음먹었다. 집 지을 때 현장에 가보지도 못했으나 좋은 건축가를 만났고, 집을 잘 지어 주어서 영화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집 짓는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집 지었다고 하니 모두가 잘 믿지 않더라.-전원주택에 살면서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원과 숲을 산책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면서 글을 쓰면서 지냈다. 정원과 텃밭은 일거리가 있으므로 무료함을 잊을 수 있다. 건강 관리와 힐링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명상과 문화유산체험단을 소개해 준다면.△‘경북 명산과 문화유산 체험’ 책을 발간하면서 도움을 주신 분들과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경북의 명산과 문화유산을 체험하고 홍보하는 산사랑 단체다. 1998년도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자연 사랑 운동을 하고 있다.-전원에서의 제2 인생이 행복한지. 일과는 어떻게 이뤄지나.△새벽 새소리를 들으면서 정원을 산책하면 어제보다 좀 더 자란 텃밭의 채소와 나무들을 보게 된다. 계절마다 뿜어나오는 나무와 꽃의 향기를 맡고 아침 붉은 노을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면서 산다.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수많은 시골 중 영덕군 창수면에 자리를 잡았는데 장 수필가에게 영덕군 창수면은 어떤 곳인가.△영덕은 맑고 푸른 동해바다 해안을 걷는 블루로드가 있고, 금빛 모래밭의 해수욕장이 많다. 늘 신선한 바람과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낙동정맥 자락을 감고 도는 아름다운 계곡과 울창한 숲은 산소를 뿜어낸다. 휴양과 힐링은 물론, 살기 좋은 고장이다.-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한국산림문학회 회원으로서 평범하지만, 재미와 감동, 정보를 담은 산림과 노거수에 관한 수필을 쓰고 싶다. 그리고 ‘선월정 장촌마을의 후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제실과 관련된 조상의 삶과 가계의 문헌 등을 조사해 문중 자손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15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가… 육체와 영혼의 치유 과정

“우리는 천상의 영역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열기 위해 산을 오릅니다. 산은 존재의 또 다른 영역입니다.”- ‘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본문 중에서베스트셀러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로 뜨거운 희망의 언어를 전한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신간 ‘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와이즈맵)으로 돌아왔다.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이미 밀란 쿤데라, 페터 비에리 등과 어깨를 견주는 살아 있는 지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 번역돼 사랑받고 있으며, 프랑스 3대 문학상인 메디치상을 비롯해 르노도상, 몽테뉴상, 뒤메닐상 등 굵직한 수상 이력이 작품성을 뒷받침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날카로운 사상가인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배경이 있다면, 그것은 브뤼크네르가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산악지대를 떠나지 않은 ‘산사람’이라는 것이다. “오직 산만이 내게 육신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라고 말하는 그는 산을 “우리 자신을 우리 너머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영혼의 공간으로 여긴다.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은 이번 책은 그의 철학이 태동한 본고장이자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산’에서 쓰였다. 산을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책’이라 말하는 브뤼크네르는 산과 우리 인생이 매우 닮아 있으며, 그 비탈마다 깨달음의 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산에서 체험한 일화와 함께 등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철학, 문학, 예술, 역사 등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력으로 빛나는 그의 사유는 산에서 만난 흙과 미물에서부터 생의 의미와 고뇌에 이르기까지 폭넓고도 거침없이 전개된다.그는 “근육을 통해 깨닫고”, “몸의 고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산행의 마법을 인생에 적용하는 법을 알려준다.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정상으로 향하는 비탈진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사상이 태동하고 무르익은 공간인 ‘산’은 광활한 철학의 무대가 돼 다양한 인생의 주제들을 초대한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시작되는 책은 등산의 과정에 느낄 수 있는 육체와 영혼의 치유는 물론, 삶 전반에 걸친 문제들로 시야를 확장한다. 자연을 향한 인간의 도전의지와 두려움,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 한 개인이 나이듦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산속의 모든 것이 생각의 재료가 된다.세상에 같은 모습의 산은 없고, 매 산행은 다른 감정을 일으킨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산의 풍경이 변하듯, 등반가가 지나고 있는 인생의 단계에 따라서도 산은 다른 울림을 전해준다. 노련하고 열정이 넘치는 등반가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발자취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끝없이 흔들리지만 결국 정상을 향한다. 그런 그의 희망찬 언어와 삶을 녹여낸 ‘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은 다가올 날들에 대해 불안과 기대를 모두 갖고 있는 이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줄 것이다.“나중에 다시 시작하더라도 일단 포기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 보면 금방 절뚝거리게 되지요.”/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10

‘리더십 게임’짐 에드워즈 지음·인문

30여 년간 비즈니스 관련 언론계에 종사하며 10여 개의 미디어 기업을 거쳐 온 짐 에드워즈의 신간 ‘리더십 게임’(푸른숲)이 출간됐다.저자는 작은 무명의 블로그로 시작해 전 세계에 약 600명의 저널리스트를 두고, 총 9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세계적인 비즈니스 매거진으로 성장한 ‘인사이더’전 편집장으로서 저자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터득한 조직 관리의 기술을 책 한 권에 모두 담아냈다.저자는 리더십이 지나치게 과장된 개념이라고 말한다. 보통 리더라고 하면 장군, 설교가, 사회운동가처럼 카리스마 넘치고 언변이 좋은 인물을 떠올리겠지만, 그런 퍼포먼스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같이 “가보자고!”를 외치는 상사를 팀원들은 반기지 않는다는 것. 좋은 관리자, 유능한 팀장이 되기 위해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저자가 전하는 리더십 매뉴얼 28가지 원칙만 있다면 누구나 좋은 상사가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저자가 전하는 리더십 매뉴얼 몇 가지를 소개한다.팀원이 높은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관리의 핵심이다. 팀장이 업무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지나치게 타이트하게 잡을수록 팀원들이 느끼는 번 아웃은 심각해진다. 팀원들에게 업무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사소한 일을 목록에서 없애라고 확실히 못 박아둘 필요가 있다. 인정과 칭찬을 아끼지 마라. 모든 일에 고맙다고 말해라. 유능한 사람을 팀원으로 채용하라. 큰 그림을 팀원에게 공유해라.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8-10

왜 좋은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걸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 15만원을 포기할 수 있는가? 아마 누구나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 대학생들에게 돈을 가질 것인지, 기부해서 사람을 살릴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자 57%만이 기부를 선택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꽤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왜? 그저 귀찮아서? 변하는 것이 없으니까? 사람은 원래 답이 없는 존재이니까?독일 본(Bonn)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이자 독일 최고의 행동경제학자로 꼽히는 아르민 팔크는 자신의 저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김영사)에서 우리 마음과 행동의 모순이 생겨나는 이유를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풀어낸다.우리는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도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면서도 마트에서는 가장 싼 달걀을 집어 든다. 왜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을까?이 책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착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6가지로 정리한다. 행동경제학의 렌즈로 바라본 인간 본성의 비밀이 밝혀진다.△손해를 보면서까지 좋은 일을 해야 할까? - 비용이 우리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우리는 희생이 따르더라도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실제 선택의 순간이 오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도 아까워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대학생들에게 100유로(약 15만원)를 받을 것인지, 기부해서 사람을 구할 것인지 물은 결과 절반 조금 넘는 학생들만이 기부를 택했다. 250유로까지 돈을 올리자 이 비율은 29%까지 떨어졌다.△이 정도면 착하게 보이지 않나? - 인정 욕구가 어떻게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가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강한 나머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상황이 오면 종종 ‘회피 전략’을 사용한다. 못 본 척 지나친 뒤 몰랐다고 하는 식이다.‘도덕적 회계’도 흔하다. 쉬운 작은 선행으로 나쁜 행동을 만회하는 것이다.△좋은 일을 한다고 행복해질까? - 감정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인간은 감정적인 존재다. 선 밖의 사람에게는 베풀지 않고, 행복하면 더 베푼다. 그렇다면 선한 행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팔크 교수의 실험 결과,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350유로를 쓸지, 목숨을 구하지 않고 100유로를 가질지 무작위로 선택했을 때 단기적으로는 사람을 살린 사람이 행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했다고 한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지 않을까? - 다른 사람의 태도가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호혜주의는 인간의 기본 행동 원리다. 상대방의 비용, 신뢰, 태도가 나의 비용, 신뢰, 태도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휼렛패커드의 창업자 데이비드 패커드는 제너럴일렉트릭에서 일하던 시절 회사가 창고를 엄중히 지켰더니, 직원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도둑질”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휼렛패커드를 시작할 당시 부품 창고를 항상 열어놓았다. 신뢰를 얻은 직원들은 도둑질하는 대신 부품을 자유롭게 가져가서 연구했고, 이는 더 큰 성과로 이어졌다.△굳이 내가 옳은 일을 해야 하나? - 책임이 분산될수록 도덕성은 희박해진다총살 명령은 항상 여러 명이 집행한다. 누구도 상대의 죽음에 온전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기에 더 쉽게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팔크 교수는 이를 ‘중심축’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는 상황일수록 도덕적 행동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어차피 ‘좋은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 - 물려받은 성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더 선하게 행동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이타주의 성향은 몇만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예를 들어, 가축 사육을 주로 하던 민족의 후예들은 농경 민족의 후예들에 비해 오늘날까지도 싸움과 갈등에 더 쉽게 휘말리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저자는 후천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0년간의 추적 연구 결과 어릴 때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쭉 더 친사회적인 경향을 보였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3-08-10

철학과 예술, 시대와 문화 ‘꽃의 여왕’ 장미의 모든 것

가장 널리 알려진 꽃이자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명명되는 장미.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선물로, 오일과 향수로, 화초로, 예술적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문화적 상징으로 인류와 함께 해왔다.미술사학자인 사이먼 몰리 전 단국대 교수가 쓴 ‘장미의 문화사’(안그라픽스)는 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장미를 단지 아름답기만 한 식물이 아닌 인류에게 예술적, 종교적 영감을 제공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문학, 회화, 종교, 식물학, 정신분석학 등의 철학과 예술, 시대와 문화를 넘나들며 장미를 주제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장미 인문학이라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장미는 저자의 말처럼 “모든 꽃 가운데 ‘평화와 진리와 애정의 무한한 속삭임’을 전하는 매개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꽃이다. 저자는 장미에 부여된 ‘꽃의 여왕’이라는 한정된 인식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장미가 인류에 남긴 철학적이고 예술적이며 인문학적인 의미를 찾아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저자의 시선이 닿는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신화부터 종교, 정신분석학, 심리학, 문학, 회화, 식물학, 가드닝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문화, 더 나아가 산업 분야에 스며들어 있는 장미의 흔적을 찾아 풍성한 장미사를 엮어낸다. 유일신을 숭배하는 기독교에서 이교도의 상징으로 배척되던 장미가 어떻게 기독교의 신성함 안으로 유입됐는지, 장미가 가진 특유의 물질성이 왜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은유가 됐는지, 각 시대별 화가들은 장미를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의미로 구현해 내고 있는지, 소설과 시에서 장미는 어떤 시어와 메시지가 됐는지 작가와 작품들을 통해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물론 이 책은 꽃이자 식물인 장미를 조명하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다. 수많은 장미의 종류와 이름을 소개하고, 장미 애호가와 육종가들이 장미를 대중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교배의 측면에서, 산업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특히 장미가 비즈니스화되면서 환경문제나 생태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장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조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장미를 바라보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27

세계적 위기 속 과학이 가야할 길은

‘과학 따르기’가 인류에게 지금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있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진보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행성의 미래도 과학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연구실 밖의 일이며, 폭넓은 공적 논의를 거쳐야만 한다.우리 시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이자 현명한 과학자로서 오랫동안 공적인 목소리를 내온 영국의 우주학자이자 천체물리학자인 마틴 리스(81)는 신간 ‘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서해문집)에서 과학의 놀라운 발전이 오늘날 절박한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향하도록 전 세계의 과학자, 정책 입안자, 시민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시민이 과학에 대한 ‘감각’을 갖기를, 모든 과학자가 ‘공공’에 대한 감각을 갖기를 촉구한다. 그래야만 과학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마틴 리스는 평생에 걸친 과학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은 그저 과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사회적·공적 공간의 일부가 돼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과학은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1장에서는 오늘날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과학이 맞닥뜨린 거대한 글로벌 과제들을 살펴본다. 즉 과학에서 커다란 변혁을 겪고 있는 ‘기후와 환경’, ‘생물 의학’, ‘컴퓨터와 머신러닝’ 영역이다. 물론 일부 기술은 지나치게 빨리 발전한 나머지 우리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실수나 오류에 따른 기술 오용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위험과 이익 사이에는 언제나 균형점이 있다. 따라서 대중의 우려를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불균형한 인식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2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설명한다. 과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전달돼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고, 현대 세계 그리고 미래 세계의 기반이 되는지 살펴본다. 또한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응용한 결과가 전문지식을 훨씬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시민과 정치인들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비윤리적이거나 위험하게 적용되지 않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장에서는 과학자들이 일하는 기관과 연구소 등 과학 공동체의 세계를 다룬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제들이 점점 더 국제적인 협력과 대응을 요구하게 되면서, 국제기구와 아카데미의 역할은 강화될 필요가 있는 가운데 과학은 말 그대로 글로벌한 문화이며, 전문가들과 여러 대학·아카데미 사이의 국제적인 접촉이 더 긴밀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4장에서는 과학과 교육의 문제를 살펴본다. 과학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직업을 선택한 결과다. 이때 충분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 과학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충분한 인센티브를 비롯해 적절한 교육과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과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과학을 어떻게 적용할지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학습은 평생 이뤄져야 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교육은 특권을 가진 소수에 국한되지 않고 포괄적이고 유연해야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27

영국은 왜 그토록 빅토리아 여왕을 사랑할까

영국 빅토리아(1819~1901)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 때 64년간 여왕 자리를 지킨 군주다. 지난해 11월 별세한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까지 가장 긴 기간 동안 왕좌를 유지한 그녀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만들었다. 남편 앨버트 공과의 금슬도 좋아 무려 9명의 자녀를 뒀고, 아들딸이 유럽 각국 왕가 귀족과 결혼해 자손을 퍼뜨리면서 훗날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리게 된다.신간 ‘여왕이 사랑한 사람들’(글항아리)은 영국의 한 시대를 대변하는 불굴의 아이콘 빅토리아(1819~1901) 여왕을 리턴 스트레이치가 펴낸 책이다.리턴 스트레이치는 전기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거장으로서 찬양 일색의 전기를 거부하고 그간 부각되지 않았던 역사적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발굴해냈다. 그가 부활시킨 여왕은 거대한 영연방을 호령하던 군주,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영국 그 자체였던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적 대변혁의 중심에 있었으나 그 자신은 매우 보수적이었고, 여제라는 칭호까지 얻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았으면서도 사실은 권력이 매우 빈약했으며, 왕좌에 앉아 근엄한 표정을 짓기보다는 시시때때로 종종거리고 감정을 폭발시켰다. 또한 여성 참정권이라는 굉장히 혁명적인 화두가 떠오른 시대의 ‘여성’ 군주였으나 여성들의 새로운 목소리를 혐오했고 스스로 평생 여인이길 자처했다.그렇다면 빅토리아 여왕을 여왕이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스트레이치는 이를 밝히기 위해 여왕과 여왕이 열렬히 사랑하고 혹은 지독히 증오했던 일곱 명의 인물을 불러낸다. 여왕의 어머니 켄트 공작부인, 가정교사 레첸, 남편 앨버트 공, 그리고 정치적 동반자 혹은 숙적이었던 멜버른, 파머스턴, 글래드스턴, 베컨즈필드 경이다. 이들이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여왕과 맺은 은밀하고 절절한 관계가 역사, 정치, 로맨스의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지고, 이들은 결국 빅토리아 자신과 함께 영국 국민이 사랑해 마지않은 ‘빅토리아 여왕’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게 된 시대를 일구어내는 데 이른다.하지만 빅토리아가 단순히 만들어진 여왕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스트레이치는 한편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진실성’을 조명한다. 어린 시절 유별날 정도로 정직한 아이였던 빅토리아는 죽을 때까지 그 진실성을 간직했으며,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가족과 정치인, 국민 앞에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런 면에서 빅토리아는 아주 보기 어려운 정치인, 나아가 드문 미덕을 지닌 인간이었다. 빅토리아의 사랑도, 증오도, 애달픔도, 그리고 군주로서의 자부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까지도 모두에게 낱낱이 드러났으며, 이는 재위 기간 몇 번이나 위기와 갈등을 불러왔으면서도 결국 대중이 그녀에게 공감하고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했다. 스트레이치의 가감 없는 서술로 여왕의 우스꽝스러운 면모와 한계점, 즉 툭 튀어나온 입과 거기에 고인 아집, 군주답지 않게 촐싹거리는 걸음걸이와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 뛰어나지 않은 지적 능력과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 등이 나열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글 속에서 우리는 영국이 왜 그렇게 빅토리아 여왕을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여왕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여왕을 사랑하게끔 만드는 이야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27

인간 우월함이란 허위 버려야

“구석기말 인류는 고작 400만 명에 불과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80억에 이른다. 인간은 의기양양하다. 이렇게 번영한 건 인간의 지적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실패는 여행비둘기처럼 갑자기 온다. 인류의 유전자는 서로 아주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는 대개 동일한 질병에 걸리고 동일한 이유로 죽는다. 쌍둥이가 되어 가는 인류는 여행비둘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진화인류학자인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신간 ‘인간의 자리’(바다출판사)에서 인간의 우월함이라는 허위를 버려야 인류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공존 없는 독존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자리는 자연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지 않고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기존의 진화론에 의문을 던진다. 짝짓기를 예로 들어, 일부 진화론자는 수컷이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에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는 한 사람과 백년해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진화한 인간 본성은 하나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인간 본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기능으로 진화한 전략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저자는 사랑, 양육, 우애, 동성애, 협동, 자원 저장, 이동성, 영양 섭취, 노화와 죽음, 공격성, 건강과 혐오 등 보편 행동에 담긴 인간의 특정 전략과 그것이 진화한 생태적 맥락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이제껏 나온 그 어떤 진화론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가득하다.“사랑은 장기적 보상이다, 입양은 인간화된 탁란이다, 출산은 투자이고 자식은 보험이다, 평화로운 사회라는 건 서로의 거리가 멀 때나 가능하다, 동성애가 첫 번째 사랑이다, 우리는 먹으려고 산다, 역마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더 불행하다, 저축은 강박증이다, 덕과 이타성은 희생이 아니라 체외 자원 저장이다, 노화와 죽음은 살기 위한 것이다, 혐오는 면역 기능이다” 등등.저자는 다종다양한 동물 이야기를 인간 이야기와 교차하며 이런 도발적인 인간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물도 결혼하고 이혼하며 새끼를 키우거나 버리고 노래하고 협력하며 재산을 모으고 늙고 병든다. 우리가 인간적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동물도 갖고 있다. 동물의 특성을 동물이 진화한 환경에서 갖게 된 전략으로 파악하는 만큼 인간의 특성 역시 그렇게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특성이 아니라 ‘전략’으로서의 인간 행동을 다루면서 인간 중심인 편견을 버리도록 유도한다. 인간 본성을 아는 것은 그 본성을 되도록 모두에게 그리고 유리하게 바꾸도록 유도하는 통찰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인간의 전략적 본성을 아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다. 배신과 질투가 유리한 전략인 사회는 고통스럽다. 비친족 입양에 따른 아동학대와 영아살해가 만연한 사회는 끔찍하다. 서로를 공격하고 외부인을 배척하는 사회는 고립되어 절멸한다.” /윤희정기자

2023-07-13

현대의 사랑과 성, 결혼의 민낯 펼쳐내

장편소설 ‘비밀정원’으로 제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던 박혜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차밍스쿨’(아시아)이 출간됐다. 예비 신부들을 위한 기숙 학교라는 가상의 공간 ‘차밍스쿨’을 내세워 현대의 성과 사랑, 결혼관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펼쳐낸다.차밍스쿨에 입교한 일곱 사람, 유지원, 윤세라, 김보람, 김윤영, 허미리, 임슬기, 소시은은 저마다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차밍스쿨에 괜찮은 신붓감이 있는지를 탐색해줬으면 좋겠다는 중매쟁이에게 고용돼 온 아르바이트생, 적극적으로 차밍스쿨의 설립 취지에 감화돼 부모를 설득해 입교한 사람,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등쌀에 시달리다 들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쓰고 싶은 소설의 소재를 찾으려고 들어온 작가지망생도 있다. 다양한 개성과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게 되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하고, 저마다의 삶도 예상하지 못했던 국면을 맞게 된다.‘차밍스쿨’은 결혼을 앞둔 이들만이 아니라 결혼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입교생들은 규정상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수업을 듣는다. 어머니들은 그 수업을 통해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억지로 이어온 자신의 결혼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윤희정기자

2023-07-13

윤회와 고뇌의 순환이 끝나는 ‘적멸’의 세상

“고요는/고요를 더하고/더께를 이룬/고요는/형상이 없다//없음이,/보이지 않음이/소박함이/숨어 있을 치열함이/감동을 주는 곳/…/백흥암 극락전 마당에 빛과 그림자가 내려앉았다/아!/절집 건물로 둘러싸인/작은 마당/아무것도 없는데/탄성이 절로 나온다//왜일까/알 수 없는 아득함/뛰는 가슴/단아한 아름다움….”-곽성일 시 ‘아! 백흥암’ 부분30여 년간 신문기자로 활동 중인 경북일보 편집부국장 곽성일사진 씨가 최근 시집 ‘지금이 적멸이다’(더봄)를 펴냈다.‘지금이 적멸이다’는 30년 넘게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활동해온 곽성일 시인의 첫 단독시집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60여 편의 시를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엮었다.곽 시인은 2017년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장을 지낸 정민호 시인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지금은 적멸이다’에는 긴 호흡의 글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산문시 형식이라고 하기에 어색한 느낌의 긴 산문 형식의 글도 더러 있다. 그런 글들은 짧은 수필에 가깝기도 하다.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 이야기를 서로 끌어주는 시화 형태의 글이 혼재된 점도 기존 시집의 형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조금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이 시집에서는 현실 세계의 가장 일상적인 삶의 장면들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주변의, 먼 곳의, 때로는 상상 속의 자연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자연을 통해 관조하며 성찰한다.여국현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신문기자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의 그를 스쳐 간 많은 일은 그에게 어떤 흔적과 그림자를 남겼을까 궁금했다”며 “그의 글에서는 그와 우리가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이 아니라 그 너머 그가 꿈꾸는 세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여 시인은 “곽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자연과의 합일을 넘어 모든 존재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되는’ 세상, 윤회와 고뇌의 순환이 끝나는 ‘적멸(寂滅)’의 세상인 듯하다”고 평했다.곽 시인은 “신문기자 30년, 건조한 기사 문장의 도피처로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시집은 그 결과물”이라며 “즉흥적으로 시집을 내기가 두렵기도 하다. 눈앞의 세상을 인식할 때부터 가졌던 부끄러움이 지금도 여전하다. 그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번 용기를 내본다”고 소감을 밝혔다.한편 곽성일 시인은 포항 청하 출신으로 건국대 정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경북일보에서 행정사회부 부국장으로 취재기자 겸 데스크를 맡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13

유홍준 교수 ‘답사기’ 시리즈 30주년 기념판

신간 ‘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는 우리 국토의 명작과 명소를 명문으로 전해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30주년 기념판이다. 5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국내 최장수 베스트셀러 ‘답사기’ 시리즈에서 한국미의 정수이자 K-컬처의 원류를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14편을 가려 뽑아 한 권에 담았다.유홍준 교수는 우리 문화유산을 향해 ‘사랑하면 알게 된다’의 철학을 설파해왔고, 한국미의 원류를 말하며 언제나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미학을 강조했다. 이번 ‘아는 만큼 보인다’는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국토예찬을 담은 제1부 ‘사랑하면 알게 된다’와 한국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화유산 명작을 해설한 제2부 ‘검이불루 화이불치’로 구성해 우리 문화의 당당한 자신감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독자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한 글들의 에센스를 모아 오늘날의 독자들이 한국미와 한국문화 고유의 특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국토의 어느 곳을 가든 풍부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줄 가장 충실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저자는 영암 도갑사에서 시작해 안동 병산서원, 청풍 한벽루, 한라산 영실, 영주 부석사, 경주 불국사, 서울 종묘와 창덕궁 등 대표적 문화유산을 살펴본다. /윤희정기자

2023-07-13

‘민족시인’ 이상화의 작품세계 새롭게 조망한다

‘이상화 문학전집’ 표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가 최근 ‘이상화 문학전집’(박이정)을 출간했다.2년 전인 2021년에 펴낸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는 이상화문학 평론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화의 문학 자료와 기록을 총집결한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사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이상화 문학전집’은 저자의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나온 책으로서 이상화 연구자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이 책은 총 3부와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1부는 이상화 시전집으로 기발표된 이상화의 시에다가 이번에 추가로 발굴된 4편의 시가 포함돼 있다. 2부는 이상화 산문전집으로 1장은 문학 평론, 2장은 창작 소설, 3장은 번역 소설, 4장은 수필 및 기타 산문, 5장은 새로 발굴한 이상화 편지와 문서, 3부는 이상화 시를 바라보는 눈으로 구성돼 있다.이번에 이상화의 시 작품 4편을, 번역소설 1편, 수필 1편과 편짓글 24편을 새로 발굴해 실었다.1927년 제2회 ㅇ과회(영과회)전시회에서 이육사와 함께 ‘없는 이의 손’, ‘아씨와 복숭아’, ‘예지’라는 작품을 전시했는데 앞의 두 작품은 제목만 발굴해 실었으며,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함께 ‘나의 침실로’라는 작품을 5연으로 간추린 작품을 삼천리 제7권 제1호(1935년 1월호)에 발표한 작품을 이번에 발굴한 것은 매우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상화 시인 스스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작품을 정갈하게 다듬어 다시 잡지에 발표한 것으로 그의 시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이번에 출간된 ‘이상화 문학전집’이 앞서 발간한 책들과 다른 점은 그간의 책들에는 없었던 이상화의 시 4편과 번역소설 및 새로 발굴한 이상화 편지와 문서들을 엮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소 왜곡됐던 이상화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그동안 이상화 시인에 대한 평가를 크게 둘로 나눠보면, 첫째는 ‘민족시인 이상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저항 시인으로 존경하는 시인’이라는 것이다.둘째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술과 여자들을 끼고 있는 한량의 이미지다. 그러나 두번째의 평가는 전혀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나의 침실로’는 유미적 퇴폐주의적인 작품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를 통해 식민지 조국의 빼앗긴 대지에 봄이 오기를, 사랑하는 임이 이 밤이 다하기 전에 내 품으로 오기를 기원한 작품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빼앗긴 들과 성모 마리아의 하늘을 통해 조국광복을 기원한 작품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첫 번째의 이상화를 대한민국 대표 저항 시인으로 우상화하는 것보다 두 번째의 한량의 이미지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저자 이상규 교수는 두 번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배경을 오랫동안 연구했고 그 결과를 이 책에 할애했다.또한 이번의 ‘이상화 문학전집’에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잠자고 있는 다량의 이상화의 편지를 발굴해 소개했다. 이상화의 일본 행적과 1927년 이후 그의 족적을 읽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상화 연구의 새 지평이 열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대부분의 편지가 숙부인 소남 이일우에게 돈을 부쳐달라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그동안 이상화 시인의 생가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도 거론이 없었는데, 이 책에는 이상화 시인의 생가를 표기함에 라일락뜨락의 사진과 함께 올바른 지번의 표기가 돼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2002년 1년 동안 이상화고택보존운동을 통해 시민의 모금으로 이상화고택의 보존을 이끈 이상규 교수는 “당시 고택보존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과 선언문을 통판에 실어 고택에 영구 보존함으로서 국채보상운동의 시원지로서 그리고 시민문화운동으로서의 대구시민들의 자긍심을 살려나가고 싶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11

“결혼하는 딸들에게 축복과 사랑의 마음 담아”

포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성환 수필가가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들의 축사를 모은 ‘딸아, 행복했으면 좋겠다’(도서출판 득수)를 펴냈다. 결혼하는 딸들에 대한 축복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40편의 축사들을 모아 정리했다.차성환 수필가는 “딸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들의 제일 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라는 기획의 말을 통해 책을 엮어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딸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웃음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의 마음 △나는 이렇게 신부 아버지가 되었다 △부록 등 모두 5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다. 딸을 시집보냈던 아버지들의 글을 모아 정리해 그들 삶의 의미와 행복에 대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차 수필가는 이번 책에 대해 “딸보다 먼저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와 딸을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계속해서 이어주고 그들이 살아야 할 바람직한 삶의 방향까지 제시해 주는 한 권의 잠언록이 되길 바란다”며 “비록 한 권의 책이지만 앞으로 자식들의 결혼을 함께 하게 되는 부모들이 써야 할 축사에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차성환 수필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포스코퓨처엠 홍보 부서에서 근무했다. 다양한 문학공모전 등에서 수상했으며 현재는 포항에서 다양한 글쓰기 모임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산문 앤솔로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한편 ‘딸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오는 27일 포항의 문학 사랑방인 ‘책방 수북’에서 북 콘서트‘언니네 책 다방’을 통해 독자와의 만남을 가질 계획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04

한흑구의 ‘수필문학’ 반세기 만의 재회

포항 출판사 득수에서 최근 복간한 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왼쪽)과 ‘인생산문’ 표지. /도서출판 득수 제공 한국 수필문학의 고전인 한흑구 수필집이 50여 년 만에 복간됐다.일지사에서 발간한 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1971)과 ‘인생산문’(1974)을 포항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에서 최근 문단에서 있는 한흑구 문학에 대한 조명, 포항시 차원의 한흑구 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의 온전한 복원 등을 위해 때맞춰 두 권의 수필집으로 복간하게 된 것이다.한흑구(1909∼1979)는 ‘나무’, ‘보리’, ‘노목을 우러러보며’ 등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독특한 경지를 연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필집은 오래전에 절판됐고,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국과 평양, 서울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던 그가 1948년 포항에 정착한 후로 1979년 작고할 때까지 ‘은둔의 사색가’로 살았기 때문이다.‘동해산문’과 ‘인생산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그 첫 번째가 83편의 주옥같은 수필이다. 한흑구의 수필은 자연 속에서 성스러움을 찾고 사명을 깨달았으며, 이러한 자세는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투영된다. 그는 “모든 예술은 진선미 가운데 미를 찾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맥락에서 “참된 것이 아름다운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 참된 것”이라는 존 키츠(John Keats)의 문학관을 신봉했다. 한흑구 생전 모습. 두 번째는 당대 문인 이효석, 유치환, 조지훈, 서정주, 김광주와의 인연 그리고 음악가 안익태와의 미국 시절 이야기다. 중국에서 돌아온 김광주와 미국에서 돌아온 한흑구는 서울에서 만나 직장 생활을 함께하며 거의 매일 술을 마신 술벗이었다. 한흑구와 유치환과의 인연은 평양과 서울을 거쳐 부산 피난 시절, 그리고 포항까지 이어졌다. 부산 피난 시절 한흑구는 동광동에서 조지훈을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됐다. 한흑구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교 신문학과에 다니고 있을 때 만난 안익태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안익태는 한흑구가 음악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한흑구의 뒷바라지 속에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그 밖에 김동환, 이효석, 서정주 등과의 애틋한 인연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서술돼 있다.마지막으로 한흑구의 수필론이다. 그는 ‘수필론’, ‘수필의 형식과 정신’에서는 수필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을 펼쳐낸다. 한흑구는 수필이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수필론과 이에 바탕한 수필을 통해 한흑구는 수필이 한국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한흑구 수필집 복간본은 일지사 판(版)을 저본(底本)으로 삼았으며,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범에 따랐다. 또한 비학산(飛鶴山)을 비악산(飛岳山)으로 오기(誤記-‘숲과 못가의 새 소리’, ‘인생산문’)한 것 등 일부 오류는 바로잡았으며, 지금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문인, 단체, 지명에 대해서는 180개의 각주를 달아 한흑구의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03

故 정영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정영상문학전집 : 감꽃과 주현이’ 책 표지 “소나 돼지들의 똥과 오줌을쓰라린 속으로 받아들이며서로 끌어당기며 사는 것들그리하여 쉬지 않고오로지 썩는 일에만 몰두하여겨울에도 뻘뻘 땀 흘리며썩으면 썩을수록 더욱 정신 차려논 밭으로 나가쓰라린 속이 기쁨으로열매 맺힐 때까지 사는 것들”-정영상 시 ‘두엄’ 전문순정하고 강고한 시정신을 보듬고 이 세상의 ‘열매’들을 위한 ‘두엄’ 같은 삶의 길로 나아갔던 정영상 시인. 1993년 4월 3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한 정 시인의 30주기를 추모하는 ‘정영상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아시아)가 출간됐다.정영상 시인은 1956년 포항시 대송면 적계못 마을(남성동)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포항고교 시절부터 시와 인연을 맺었다.국립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 미술과를 졸업한 뒤 1989년 전교조 교사들의 대규모 해직사태 때 안동시 복주여중에서 해직돼 안타깝게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시간을 맞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했다.“아들로서, 지아비와 아비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미완에 그쳐버린”(이대환 작가) 생을 살고 떠난 고인은 시인으로서 생전에 두 권의 시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와 ‘슬픈 눈’을 펴냈고, 타계 후 유고 산문집 ‘성냥개비에 관한 추억’과 유고시집 ‘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이 출간됐다. 2003년 4월에는 공주대 교정에 ‘정영상 시비’가 세워졌다.이 문학전집에는 정영상(1956∼1993)의 시 255편과 그의 희소하고 귀중한 산문 18편이 수록돼 있다. 독자와 정영상의 대화는 그의 고향 풍경·어린 시절을 짚고 넘어가야 독자가 그의 시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에 유고 산문집 제1부의 유년 이야기들을 맨 앞에 배치했다.이어진 시편들은 시집 세 권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유고 산문집의 제2부에 모아둔 전우익 작가·신경림 시인·박원경 교사(정영상의 부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정영상의 편지들과 제3부에 모아둔 그의 단상들, 그리고 시집에 붙은 ‘시인의 말’과 ‘발문’은 수록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의 ‘정영상론’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정영상 시인. /아시아 제공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시집들과 산문집을 새로 디지털화해서 엮어낸 ‘감꽃과 주현이’출간에는 정영상 시인을 더 널리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고향의 선후배 몇 사람과 출판사 아시아의 뜻이 담겨 있다.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글 어느 한 편을 읽어도 한 자 한 자 박아 쓴 장인의 손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는 본디 그림이 전공이기도 하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원고지 위에 글을 가지고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빠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마치 귓가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은 나무와 벌레와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얘기들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적었다.엮은이 이대환 작가는 “서른 해 지나서 새로 읽어도 정영상의 작품들은 이 책에 실은 18편의 산문에 잘 나타난 그대로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년시절에 체화한 집안이나 이웃 농민의 빈궁 현실에 대한 쓰라린 애절과 직시의 고통, 그리고 교편을 잡은 1980년대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지와 극복의지를 담은 시 255편은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자라난 곡식들이다. 순정성, 이것이 사람 정영상의 진면모”라고 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21

자연에서 거닐기,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행복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해지고 싶다면 걸어라. 가장 단출한 인간 행위인 ‘걷기’와 ‘행복한 삶’을 관통하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조언’.산책부터 하이킹, 등산과 같은 도보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 쉴 곳을 찾고, 건강을 증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의 저자 알베르트 키츨러는 자연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걷기의 가치가 건강 유지나 ‘힐링’ 차원의 휴식 그 이상이라고 본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을 뒤로하고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걸음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만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독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철학가이자 걷기 예찬자이기도 한 저자는 대자연과 하나 되며 자기 자신의 중심에 가닿았던 크고 작은 걷기의 경험과 함께 걷기를 즐겨 한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와 철학적 사유를 엮어낸다. 또한 노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동서양 고대 철학자들이 ‘행복한 삶’에 관해 설파한 지혜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행복에 이르는 근본적인 요소들을 걷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세세한 결은 다르지만, 동서양 고대의 현자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을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의 상태로 봤다. 이런 상태는 외부 조건이나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길어내는 것’이었다.저자에 따르면, 사색적으로 자연 속을 걷는 활동을 통해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진실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이 단순한 신체 활동으로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걷기가 삶에 미치는 힘을 일찍이 발견한 사상가들 중에는 걷기를 열렬히 예찬한 이들도 많았다.독일의 유명 철학자인 저자는 고대 철학에서 삶의 난관을 돌파하는 해결책을 찾아왔다. 그는 고대 철학자들이 설파한 ‘좋은 삶’, ‘행복’에 이르는 근본적인 요소들을 우리의 단출한 행위인 걷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발길을 딛는 단조로운 운동이 주는 리듬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점진적인 ‘변화’를 체험한다. 명상하듯 평온하고 균형 있는 마음에 이르면 일상의 근심이나 걱정은 하찮아진다. 따사로운 햇볕이 피부에 닿는 걸 느끼며 나뭇잎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매혹적인 대기의 분위기에 취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순전한 기쁨을 맛본다.간혹 악천후나 험난한 지형을 만나 헤매다 보면,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 외엔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많지 않음을 겸허하게 배우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자기 인식’이다.“침묵 속에서 홀로 자신의 생각에 젖어 걸어갈 때 (….) 이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황, 타인과의 관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 혹은 큰 기쁨을 주는 것들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소풍이면서 자신만의 은신처를 소유하는 것과도 같다.”(17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15

섣불리,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지난 2012년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약 ‘문단의 아이돌’로 떠올랐던 황인찬(33) 시인의 신작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가 출간됐다.이번 시집에는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황인숙)라는 평을 이끌어낼 만큼 탁월한 감각으로 빛나는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을 포함해 64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일상적 제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화(詩化)하는 황인찬은 우리 주변에 놓인 사물이나 사건들을 보고 섣불리 안다고 말하지 않고,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그 모르겠는 것들에 신중하게 하나둘 이름을 부여하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를 써나간다. 그는 ‘이게 내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고 말한다.‘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는 “그걸 사랑이라 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없는 저녁’)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빛의 언어로 충만한 황인찬의 시에는 명백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지 않은 역설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사진 속에 남아 고정되고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이미지들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너무 좋아하면서 언젠가 누군가와 남도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 정말 좋았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말하게 되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아는 사람은 다 아는’ 중에서 /윤희정기자

2023-06-15

위기, 권력을 낳다

예외적인 시대는 예외적인 일을 해내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 예외성의 공통요소는 다름 아닌 ‘체제의 위기’다.‘역사를 바꾼 권력자들’(한길사)은 그러한 예외적인 지도자들, 특수한 방식의 권력 행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만들어낸 20세기 유럽 지도자들에 관한 사례연구다. 즉, 각자 다른 배경과 다른 정치체제로부터 등장한 그들이 어떻게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권력이 20세기 유럽을 어느 정도로 바꿔놓았는지를 다룬다. 저자 이언 커쇼(80)는 나치 독일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다. 히틀러의 기념비적인 전기를 쓴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이 책에서 ‘개성과 권력’을 주제로 12명의 유럽 지도자들을 도전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분석해내고 있다. 이 책은 흔히 교훈성과 위대성에 초점을 맞춘 평전이나 전기와는 그 접근법이 다르다.12명의 인물을 한 권에 다뤘지만, 이 책은 결코 ‘축소형 전기’가 아니다. 방대한 역사 문헌과 자료를 토대로 치밀하게 분석한 깊이 있는 연구서이면서도 대가다운 저자의 역사 인식과 통찰, 명쾌한 필력으로 인물들의 ‘개성’과 20세기 유럽 역사의 결정적 국면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역사의 변혁에서 한 개인의 역할과 영향’이라는 역사학의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문제를 저자는 놀라우리만치 균형된 시각으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듯 탄탄하게 풀어낸다. 이 책에서 다룬 지도자들은 모두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여는 데 중요한 방식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렇게 했다. 위기는 권력을 행사해 거대한 충격과 유산을 남긴 개인이 등장하는 배경이다.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전쟁과 학살의 선동자 히틀러, 대숙청을 단행한 공포의 정치가 스탈린이 책의 전반부를 연다. 이어서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항독(抗獨) 의지를 불태운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폐허 위에 서독을 재건한 백전노장의 정치인 아데나워, 스페인 내전의 국민파 반란 지도자 프랑코, 유고슬라비아의 절대권력자 티토가 중반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강한 영국을 만든 ‘철의 여인’ 대처,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끈 새로운 유럽의 건설자 고르바초프,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유럽통합의 견인차 콜이 종반부를 구성한다.이 지도자들을 보면 독재자도 있고 민주주의자도 있으며, ‘파괴적인 인물’(Destroyers)도 있고 ‘건설적인 인물’(Builders)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과는 별개로 이들을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했다는 하나의 사실이다. 그가 거칠 게 없는 독재자라면 어떻게 해서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가 민주주의자라면 어떻게 해서 헌법에서 정한 제약을 극복하고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독재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라면 권력 행사의 이론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개성과 환경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한다. 왜 어떤 개인은 출중하고 탁월해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행사해 정치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개성과 힘, 그리고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특정한 인물의 성격상 장점이 어떤 때에는 정치적으로 호소력이 없다가 다른 때에는 매우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인물을 카리스마 있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과 조건,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지도자 개인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역할이 가능했던 비인격적, 구조적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변화에 한 인물의 개성이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자’ 시도한다.“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 있는 인물은 가급적 피하고 개성은 덜 화려하더라도 (모든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토의와 건전하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실현가능하고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제시하는 인물을 택하겠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6-15

근대문학의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

우리 문학의 무대로서 뚜렷한 아우라를 지닌 근대 문학의 ‘장소들’, 그리고 지난날 우리가 꾸었던 ‘꿈’ 한국의 근대 문학이 움튼 서울, 조선의 무수한 청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건너갔던 도쿄, 그리고 휴전선 너머 압록강과 두만강, 개마고원과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우리 작가들의 생생한 숨결이 뜨거운 발자취….폭넓은 독서와 여행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남일(66)이 최근 ‘한국 근대 문학 기행’(학고재)이라는 담대한 기획으로 ‘서울 이야기’, ‘평안도 이야기’, ‘함경도 이야기’, ‘도쿄 이야기’ 4부작을 펴냈다.‘어제 그곳 오늘 여기’(2020)를 통해 아시아의 근대 문학 작품을 지도 삼아 서울과 도쿄, 교토와 오키나와, 사이공과 하노이, 상하이와 타이베이를 가로지른 데 이어 이번에는 뚝심 있는 발걸음을 우리 땅으로 옮겨 오롯이 한국의 근대 문학에 집중했다. 한국 문학의 근대를 이룬 작가들이 미처 당혹감을 떨치지 못하던 시대, 그 시절 문학의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된 분단 이전의 우리 땅이 대장정의 출발지이자 목적지가 됐다.40년 넘게 소설을 써온 김남일은 “등단 이래로 수많은 외국 작품들을 읽어왔으면서도 정작 우리 문학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말고는 딱히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읽은 기억이 없다”고 반성한다. ‘한국 근대 문학 기행 4부작’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의 근대 문학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처음부터 딱딱한 문학사론의 틀을 배제하고 ‘문학 기행’이라는 형식을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전 문학 작품을 좌표 삼아 소설 속 도시와 촌락, 산과 들을 되짚으며 그 장면 장면에 담긴 ‘사람’과 ‘삶’을 들여다보기로 작정한 만큼, 이 방대한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역시 소설처럼 읽는 가운데서 저절로 한국 문학사의 큰 줄기를 그릴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김남일은 오래전 작가들이 풀어놓은 글줄을 속속들이 곱씹는다. 그러고는 주먹만 한 눈송이가 하늘을 채우던 북방의 눈 내리던 밤 풍경부터 함흥과 제주에서 온 유학생이 뒤섞인 서울의 교실 풍경까지 생생하게 우리 눈앞으로 옮겨놓는다. 반세기 넘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저자는 고정된 풍경화로 그칠 뻔한 장면들을 유려하게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되살려냈다.지도에서 사라진 길, 마음마저 멀어져 쉬이 갈 수 없는 곳, 그 길을 안내하는 소설가 김남일이 글로 그린 근대 풍경 ‘한국 근대 문학 기행’은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지이자 보고인 서울에서 시작한다. ‘서울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화두로 박태원, 염상섭, 채만식, 김남천, 윤동주, 유진오, 이광수 등 근대 문인의 삶과 문학을 둘러싼 풍성한 일화를 소개한다. 김남일의 풍부한 문학사적 지식, 근대와 고투한 문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 남다른 인문적 식견, 인간과 시대를 바라보는 곡진한 마음을 깔고 덮으며 신선한 자극과 배움을 얻는 즐거운 독서가 그 안에서 펼쳐진다.(권성우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평안도 이야기’는 진달래꽃 피고 지던 소월의 영변 약산, 이효석이 서국주의(西國主義)의 꿈을 키웠던 평양의 푸른 집, 김남천이 벗들과 술 마시던 성천의 눈 내리던 밤 풍경…. 이제는 갈 수 없는 휴전선 너머 우리 땅과 우리 문학 이야기 등 평안도 사람들과 문학에 관한 진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함경도 이야기’는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와 문화지리를 망라한 두터운 독서를 바탕으로 함경도를 재해석해냈다.(고명철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김남일 소설가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던 이용악의 두만강, 아직 철저한 민족주의자이던 시절 육당 최남선이 벅찬 가슴으로 올랐던 백두산, 그러나 지금은 우리 눈에서 아득히 멀어진 ‘북방’의 문학사적 복원이다.‘도쿄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키, 루쉰, 홍명희와 이광수.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의 제도(帝都)를 꿈꾸던 도쿄에서 동아시아의 다른 작가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던 한국 근대 문학 작가들의 뒷모습을 숨김없이 찾아간다.김남일은 1983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전태일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제비꽃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권정생 창작기금을 받았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었고, ‘한국과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했다. 현재 동료 작가들과 함께 소모임 ‘아시아의 근대를 읽는 시간’을 꾸려가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5-18

인간의 마음·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때로는 인간종의 성공이 지능 때문이라고 설명되지만, 사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다.”모든 종이 저마다 독특하나, 인간은 그중에서도 특히 독특하다. 인간은 지난 1만 년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수억 권의 책을 집필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원자를 쪼개고, 인터넷을 발명했다. 인간은 뜨거운 열대우림부터 꽁꽁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말 그대로 지구를 장악했다. 그러나 동시에 소나 개 같은 가축, 쥐나 집파리 같은 공생동물, 진드기나 벌레 같은 기생동물들의 막대한 번식을 초래했다.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진화생물학과 케빈 랠런드 교수는 지난 25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동아시아)에서 그 답이 우리의 문화 그리고 문화적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 것이 바로 문화이며,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 짓는 데 동원되는 언어, 협력, 초사회성과 같은 우리의 다른 특징들 역시 문화적 능력의 결과라고 답한다.저자는 책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된 이유로 누진적인 문화의 발전을 든다. 여기서 문화란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지능도 어느 정도 성공과 관련이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통찰력과 지식을 한데 모으고 각자의 해결책 위로 새로운 해결책을 누적해 나가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o.com

2023-05-18

“독일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현대사에서 독일만큼 극적 반전을 보여준 나라가 있을까?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 등 씻기 어려운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국가는 패망하고 국토는 분단됐으며 국제사회의 불신과 경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한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경제부흥과 통일을 이뤄냈고 전범 국가의 오명을 떨쳐버리고 국제적 신뢰를 다시 얻었다. 그리고 세계사적 격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하나의 독일을 이뤘다. 이후 통일의 혼란과 후유증을 치유하며 새로운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로서, 그리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서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김황식사진 전 국무총리는 최근 펴낸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2’(21세기북스)에서 전후 독일의 민주 정치, 특히 그 정치를 이끈 총리의 역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설파한다.김 전 국무총리의 독일 총리 연구는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인식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전범국 오명을 씻고 통일과 번영을 이뤄낸 독일 정치에서 한국 정치의 변화 방향을 찾고자 한 것이다. 2022년 1월 출간된 1권은 우리 정치도 대립과 갈등의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펴낸 2권은 1권에 이어서 독일 역대 총리 4명의 정치 역정을 중심으로 독일 정치와 총리 리더십의 강점을 살펴본다.1권에서는 콘라트 아데나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쿠르트 키징거, 빌리 브란트의 정책을 분석했고 이 책에서는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어떻게 격변의 시대를 이끌었는지를 분석한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와 갑작스러운 통일 분위기 조성 이후 독일 총리들은 열강을 설득하며 평화적 통일을 이뤘다. 그리고 통일 이후 혼란을 극복하며 유럽과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 세계 중심 국가로 올라선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공헌을 한 총리들의 리더십은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겪는 분단국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이번에 발간한 2권엔 지혜와 신념으로 나라의 품격을 높인 헬무트 슈미트, 뛰어난 판단과 결단으로 독일 통일을 완성한 헬무트 콜, 신념과 희생으로 독일 재성장의 토대를 놓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성실과 실용으로 독일과 유럽연합(EU)을 관리한 앙겔라 메르켈의 리더십을 담았다. 책 후반부에는 독일 정치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들도 김 총리만의 시각으로 정리해 덧붙였다.저자 김황식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1978~1979년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수학하고, 2013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공부했다. 비록 독일 관련 전공학자는 아니지만 김 전 총리는 그 후에도 틈틈이 독일을 오가며 우리가 참고할 만한 국가발전의 모델을 꾸준히 탐구해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