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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준석 현상, 새로운 리더십의 과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6세의 이준석이 보수 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준석은 나경원, 주호영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대표로 취임하였다. 개혁과 진보를 앞세운 민주당에서도 볼 수 없던 돌발 사태가 보수 야당에서 발생한 것이다.30대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이 나라 정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국회의원 한 번 하지 않은 이준석 대표는 과연 보수 야당의 개혁을 잘 이끌 것인가. 그는 과연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안철수 현상처럼 거품으로 흐지부지 끝날 것인가.우선 이준석 현상이 등장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준석의 당선은 돌출현상이 아닌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결과이다. 이 나라의 고질적인 서열의 정치, 진영의 정치, 구태의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불러온 불가피한 현상이다. 특히 보수 야당은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여당 역시 폐쇄정치, 내로남불 정치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여야 공히 계파 정치, 꼰대 정치는 정치의 효능감을 상실케 하고 그 누적된 불신, 불만이 30대 정치인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이준석의 당 대표 취임 후의 행보는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그의 첫 출근시의 자전거 이용은 당대표의 전통적 격식마저 파괴해 버렸다. 그는 박근혜의 키즈임을 자임하면서도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하여 야당의 난제였던 탄핵의 강을 건너뛰었다. 그는 광주를 찾아 5·18의 원혼을 달래고, 노무현의 묘소를 찾아 그의 정치적 업적까지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공약대로 당 대변인 선발을 토론 배틀 방식으로 채택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당직인선도 무사히 마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러한 30대 이준석의 정치 행태는 정치권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제 1야당은 그간 당의 위기 시마다 비대위 체제를 가동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 후에도 계파 정치는 겉으로 희석되었으나 내부 분란은 잠재되어 있었다.이준석 등장은 야당의 수구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당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이준석의 당대표 취임은 야당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 내 초선의원들의 입지는 강화되고, 청와대도 20대 비서관을 임명하였다. 결국 이준석의 당대표 취임은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를 견인케 하고 있다.이준석의 새로운 리더십은 지속될 것인가. 과거 안철수 현상처럼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란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준석은 우선 당 대표 경선에 나타난 민심과 당심의 이반 공간을 잘 메꾸어야 한다. 후보 경선과정을 공정 관리하여 그의 리더십을 보다 확충해야 한다. 결국 그는 내년 대선에 승리해야 한다.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그 역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격변하는 이 나라 정치에서 30대 당대표의 리더십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2021-06-30

학생에게 시험 선택권을!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요즘 독서실은 만석이다. 특히 주택가에 있는 독서실은 몇 주 전부터 자리가 아예 없다. 이런 현상은 7월 둘째 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바로 중고등학교 시험 때문이다.독서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청소년들이 밤을 낮 삼아 학문(學問) 연구에 매진하는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이런 모습은 교육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나라의 일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반적인 것이 일방적으로 변해가는 이 나라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헛웃음을 친다. 그리고 말한다, 과연 이 나라에 학문이 있기는 있냐고! 대학조차 취업을 위한 암기 시험의 장이 된 판에 중고등학교야 오죽하겠냐고!아마도 이 나라 독서실 모습을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그것이 암기를 위한 맹목적인 공부일망정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학생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 학생은 상상 속 주인공처럼 책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길을 찾는다.그런데 모든 일에는 100%가 있을 수 없듯 독서실 풍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독서실 인근 주택가에 사는 지인은 시험 기간만 되면 학생들의 고성방가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간혹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나가보면 어린 남녀학생들이 서로 뒤엉켜 흡연은 기본이고 음주까지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고 한다. 그들을 좋게 타일러 보지만 자신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고, 간혹 어떤 학생은 아저씨가 뭐냐면서 대들기도 한다고 했다.그러면서 필자에게 따져 물었다, 그런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학교에서는 무슨 교육을 하냐고! 집에서는 학생의 그런 모습을 아냐고! 학생을 사지로 내모는 시험은 왜 있냐고!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구호가 헛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독서실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 주변에서 배회하는 소수의 학생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특정 누군가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빚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한다.코로나19로 제일 힘든 것은 학생이다. 불규칙한 등교와 수업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온라인 수업, 그로 인해 들쭉날쭉한 수업 진도, 그리고 시험! 분명 지금 시험은 시험을 위한 시험에 불과하다. 학사 일정 때문에, 줄 세우기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는 명분 없는 시험!그 명분 없는 시험 때문에 우리 학생들의 정신과 미래와 희망이 병들고 있다. 학생들을 아프게 한 주범인 국가와 사회와 학교와 어른들은 무책임하게 모든 것을 학생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그들에게 제안한다, 학생의 호칭을 바꾸는 것도 좋지만, 정말 학생을 믿는다면, 교육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학생에게 시험에 대한 선택권을 줄 것을!

2021-06-30

청소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고등학생 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 공부와 장래 계획에 대해서 고민과 스트레스가 쌓인 나머지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닌가.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중 31.2명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1위라고 한다. 그런 중에 청소년 사망원인 첫째가 ‘자살’이라고 한다. 학교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행복하기 위하여 하는 게 공부가 아닌가. 즐겁고 행복하려고 나아가는 길에서 불행하여 고민이 쌓인다면 그게 바로 문제가 아닐까. 피어보기도 전에 스스로 생명을 거둘 어두운 생각에 이른다면 이는 사회병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일으켜야 할 교육의 현장이 사회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어린 생명이 교육과 관련한 고민을 삼키다 못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음에도 교육을 맡은 이들로부터 이렇다 할 생각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힘들어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는 어른들의 억지가 아닐까. 한 학생의 잘못된 선택 탓으로만 돌리며 거듭 발생할 불행 앞에 눈감을 것인가. 학교와 가정에서 매일 만나는 기대와 요구, 억압과 혼돈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사회는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나라의 교육과 미래를 설계하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원색적인 논리만 내세울 것인가.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과 상생은 어디로 사라지고 경쟁자들 간의 극심한 아귀다툼으로만 몰아가는가. 일등만 대접받는 풍토는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할 일이 저렇게나 많은데 공부를 잘 해야만 그걸 할 수 있다는 오해와 착각은 어디서 생겨났을까.학교와 교육당국은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인성과 소양이 다음 세대의 밑천이 되어 남들을 밟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금씩 손해보더라도 여럿이 즐거울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실력을 기르는 까닭이 남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어서임을 깨우치도록 이끌어야 한다. 나 혼자 성공하여 잘 살겠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도록 들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슬픈 뉴스를 접하고 꿈쩍도 않는 학교와 교사는 반성해야 한다.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약육과 강식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한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상생을 이야기해야 한다.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다.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오늘 일상이 혹 이해되지 않거든 차라리 저 먼 앞날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긴 여정 인생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꿈을 꾸었으면 한다.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남들과 무엇을 나눌 것인지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꿈이 나를 밀어올려 억압과 스트레스도 거뜬히 이겨내는 당신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귀한 것은 나의 꿈이 아닌가. 청소년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1-06-30

메아리없는 ‘집값하락론’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집값하락론’을 잇따라 주장하고 있으나 시장에서 별무반응, 메아리가 없다.홍 부총리는 최근 한달여 동안 벌써 세번째 ‘집값이 고점에 가깝다’며 하락을 경고하고 나섰다. 홍 부총리는 지난 달 30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집값이 장기 추세를 상회해 고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집값 하락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2일에도 한국은행이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를 인용, “단기적으로 소득과 괴리된 주택가격 상승이 있으나 갈수록 과도한 레버리지가 주택가격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홍 부총리가 ‘집값 하락론’을 꺼내든 건 지난 5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였다. 그는 지난 3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도 “서울 아파트 가격(실질가격 기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정을 받기 이전 고점에 근접했다”며 미국의 조기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가능성과 국내 대출규제 강화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홍 부총리의 잇따른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홍 부총리의 전망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주택공급대책들이 모두 벽에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과천청사 유휴부지 주택 4천호 공급계획은 철회됐고,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1만가구 공급 역시 좌초위기다.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공급대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가 각종 대출규제 등을 통해 거래를 막으면서 거래량 자체는 줄었지만, 집값은 고공행진하고 있는 것. 정부가 규제일변도의 부동산 정책만으로 집값폭등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 싶어 의아할 뿐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30

자전과 공전

김규종 경북대 교수 황망하게 상을 치르고, 초제(初祭) 모시고 여드레 만에 돌아온 집 마당에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공사판의 어지러움이 완연하다. 한 달을 넘긴 공사가 이제는 정리되었으면 한다. 하기야 상당 기간 세차장을 찾지 못한 탓에 승용차도 말이 아니어서 도중에 세차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터.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게 실상 적잖다.저녁이 다가올 무렵 가방 하나 둘러매고 길을 나선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들로 걸음을 옮기곤 했다. 오늘은 허청허청 발걸음이 무디다. ‘그래, 넌 이제부터 너의 내부에 강고한 의지처를 찾아야 한다.’ 헤어지기 전에 막내 누이에게 전한 말이다.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모친과 함께한 누이이기에 상실이 누구보다 크다. 차라리 누이를 위로하라!오늘따라 트럭들이 누런 먼지 풀풀 날리며 질주한다. ‘그래, 농번기 아닌가. 내가 잠시 피하면 그만 아닌가.’ 구름장에 가려진 저녁해가 살며시 얼굴 내밀고, 먼 곳에서 뻐꾸기 운다. 한사코 달려드는 하루살이 무리와 떼로 날아가는 오리가 요란하다. 우렁이들은 어린 모의 줄기에 알을 낳아 후예를 기르고 있다. 창공에 여객기 한 대 날아간다.노란 루드베키아가 하얀 망초와 곳곳에 얼려 화사한 정취 선사한다. 아쉬운 낚시꾼 하나가 청도천을 배회한다.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왜가리와 학이 귀소(歸巢) 서두른다. 그들에게 손 흔들다가 잠시 상념에 든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지구별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을 텐데, 왜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할까.’뉘엿뉘엿 넘어가는 서녘의 태양에 작별 인사하니 해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붉은 구름장만이 그곳에 태양계 주인이 있었음을 웅변한다. 지구는 시속 1,609킬로미터로 자전하며, 107,160킬로미터로 공전한다고 한다. 시속 16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속도감이 상당하다. 그것의 10배로 지구는 스스로 돌고 있다.자전의 66.6배 속도로 지구는 태양을 공전한다. 우주선 속도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광활하고 허허로운 우주공간을 팽이 돌 듯 날아가는 푸른 지구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왜 우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필시 인간이 감촉하기에 지구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 아닐까?!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세운다. 자신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구는 오늘도 요란하고 시끌벅적하다. 우리도 언젠가 홀연 불귀의 객이 되리라는 자명한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에 깊이 침윤된 채 그것들의 수인(囚人)으로 존재한다.만약에 우리가 지구별의 미미한 구성원의 하나일 뿐이고, 타자의 도움과 사랑으로 살고 있음을 안다면! 삶은 짧게 주어진 위대한 축복이자 기적이기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밀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검붉은 저녁노을이 가뭇없이 사라져간다.

2021-06-29

인지저하증

국내 치매환자는 10년간 4배 정도 증가할 만큼 가파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9년 치매로 진료받은 환자는 79만9천명으로 이는 2009년 18만8천명보다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여성이 56만으로 남성 23만보다 2.4배 많고 연령별로는 85세 이상이 가장 많다.60세 미만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40∼59세는 연평균 증가율이 15%에 달했다. WHO는 2050년 치매로 고통받을 사람이 세계적으로 3천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치매 Dementia의 어원은 “정신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능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고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의 손상을 입어 생기는 병이라는 의미다.과거에는 노망(老妄)이라 불렀다. 늙어서 망령을 부린다하여 노인이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질병으로 인식했다. 기억력 등 정신을 잃어버리는 질환의 특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는 별명도 있다. 치매환자 뿐아니라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병이라 현대의학의 난제로 손꼽힌다.치매예방을 위해서는 머리를 많이 쓰는 활동이 좋다고 한다. 최대한 건설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직업 중에는 수학 교사가 치매에 걸릴 확률이 가장 낮다는 평도 있다.치매라는 이름에 대해 국민의 44%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복지부의 국민 인식조사에서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한다. 치매 용어를 변경할 경우 대체 용어로는 인지 저하증이 31%로 가장 많았다.정신분열증이 조현병으로, 간질은 뇌전증, 나병은 한센병으로 바뀌어 부른 사례가 있다. 국민의 부정적 인식으로 사회적 편견을 유발한다면 치매의 병명을 바꾸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6-29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작가라면 누구나 작품집 원고를 묶어 유명 출판사에 투고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채택되지 않을 경우 친절한 출판사는 원고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을 담아 회신해준다. “이러이러한 부분은 좋았으나 이러저러한 점이 아쉬워 원고를 돌려드린다”고 말해주면 납득이 된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는 출판사가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을 때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침과 맞지 않다”고 한다든가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출간할 수 없다”고 하면 따져 묻고 싶다. 대체 내 작품이 왜 채택되지 않았느냐고, 영 형편없는 저 아무개의 작품보다 내 글이 못한 게 무엇이냐고.도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시즌에도 꾸준히 잘한 한화 불펜 투수 강재민이 선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성적 지표상 다른 선수들보다 모든 부분에서 뒤쳐진 NC 2루수 박민우가 뽑힌 것도 의아함을 자아냈다. 선수 선발 전권을 가진 김경문 감독은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티브이 중계화면 말고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선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불식될 논란이다.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연일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경선에서 강조했던 공정과 경쟁이 주요 당직자 임명 과정에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호평을 얻는 중이다. 대변인단을 선출하는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의 경쟁률이 무려 141대 1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16강에 오른 참가자들의 면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토론배틀 다음은 ‘정책 공모전’이라고 한다. 인재를 등용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보수야당은 이렇게 새로운 시도로 국민의 이목을 모으는데, 여당은 ‘페라가모 구두’, ‘따릉이’, ‘병역 의혹’, ‘X파일’ 같은 구태 공작 카드만 남발하고 있다. 국민들은 피곤할 따름이다.청와대는 최근 25세 대학생인 박성민 씨를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했다.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박성민 비서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준석 돌풍에 어떻게든 대응하고자 부랴부랴 기획해낸 이벤트성 인사로 보일 뿐이다. 자질은 둘째 치고 많은 국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공정성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선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느냐는 것이다. ‘낙하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청와대와 여당은 “이준석 대표도 박성민 비서관이 훌륭하다고 말했다”며 박 비서관의 능력과 자질을 주목해 달라 읍소하는 중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정부가 지닌 고질적인 근시안이 드러난다. 국민들 특히 2030세대는 박 비서관의 실력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어떤 선발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와의 비교도 어불성설인 게 이 대표는 여론조사, 토론회, 당원과 일반 국민이 참여한 투표 등 전국에 생중계된 치열한 경선 과정을 거쳐 선출됐고, 박 비서관은 느닷없이 임명됐다. 인사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박 비서관 임명을 두고 정부는 ‘젊고 능력 있다’는 피상적 인상만 국민들에게 주장할 뿐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당 활동 외에 취업 경력이 없는 박 비서관이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1급 공무원에 발탁된 것 자체가 불공정이라고 말한다. 명문대 졸업생이 5급 행정고시에 도전할 때 보통 3년 이상을 공부하는데, 행정고시는커녕 그 어떤 경쟁도 치르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 된 박 비서관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온 노력들이 다 헛되다는 허무함마저 든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면야 파격 승진도 물론 가능하다.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 실력을 가지고 다른 실력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벌여 선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실력만이 자격요건이라면 실력이 입증될 만한 검증 과정이 공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박성민 비서관보다 더 유능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뛰어난 스펙을 쌓아도 지원 자격조차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이 청와대와 박 비서관을 지켜보고 있다. 합당한 인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부디 제대로 된 청년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 뛰어나다는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2021-06-28

배달 음식 공짜로 먹는 방법?

한 달 정도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공들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금요일 저녁이 되면 배달 앱을 열어보게 된다. 클릭 몇 번만으로도 깨끗하게 손질된 샐러드와 채소 주스를 집 식탁 위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으니까. 훨씬 다양한 재료가 섞인 질 높은 샐러드를 먹는 것도 좋거니와 직접 채소를 고르고 씻고 손질하여 믹서기에 갈아야만 주스 한 잔이 완성되는, 그 아주 번잡한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니! 게다가 식사를 마친 뒤 남는 시간엔 취미도 즐길 수 있고, 잠도 빨리 잘 수 있으니 얼마나 합리적으로 손쉬운 행복인지!그치만 이 편안한 과정을 습관으로 삼는 순간 식사는 끼니를 해치우는 행위로 변질하고 만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미리 반찬을 만들어 두고, 밥을 지어 냉동고에 소분 해 놓는 과정 자체가 확연히 생략되니 일상의 질도 ‘빨리’와 ‘대충’으로 대체된다.게다가 일회용품이 가득 쌓인 쓰레기통을 보자면 대단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단 위기감마저 드는데, 나의 쾌적함을 위해 택하는 것들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괴로울 수밖에.최근 인터넷에선 배달 음식 공짜로 먹는 방법에 대한 글이 화제로 떠올랐다. 음식을 시킨 뒤에 재료가 상했다는 둥, 맛이 변했다는 둥, 열어 보니 알 수 없는 벌레가 들어 있다는 등의 불만을 배달 앱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있지도 않은 문제점을 애써 발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대부분 환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니 결론은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처럼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가 배달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해 별점이나 리뷰를 악용하는 이를 블랙 컨슈머라 부르는데, 나날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별점과 댓글을 권력이라 착각하며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최근 한 블랙 컨슈머가 자신이 주문한 새우튀김이 상했다며 무리한 환불을 요구하자 이를 대응한 해당 점주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위의 문제가 심각히 불거지면서 각 배달 앱에선 리뷰 전담 대응팀을 꾸리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대책은 없는 상태다.한 배달 업체 측은 악성 댓글이나 별점 테러가 심각하다 판단할 경우 30일 비공개 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30일간 비공개 처리되는 동안 새로운 리뷰가 쌓여 아래로 밀릴 테니 거의 삭제나 다름없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하는 것일 뿐, 별점 하나에 자신의 인생까지 되돌아보게 된단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불랙컨슈머가 나날이 날뛰는 데에는 이 사람이 블랙컨슈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불투명한 정보 때문일 것이다. 가게의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에 비해 이 사람이 몇 번째 주문인지, 과연 댓글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있는 팩트 체크가 없다.그러니 아이디 옆엔 신뢰성을 확인 할 수 있는 등급이라든지 어떠한 표식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블랙컨슈머는 하나의 가게에서만 별점 테러를 남기는 것이 아닌 여러 가게를 돌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므로, 이 사람이 블랙컨슈머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또한 별점 높은 순으로 음식점을 정렬하는 부분도 불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가게를 별점으로 성적을 매겨서 나누어버리는 건 특정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획일화하겠단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고 각 가게마다 음식 맛이 다를 수 있는데, 굳이 별점을 내세워 순위로 나열하는 것이 꼭 필요한 건가 싶다.별점이 높을수록 맛집으로 평가되는 만큼, 별점 조작이나 알바를 고용하여 리뷰 작업을 맡기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는 리뷰가 정보 공유를 하는 공간이 아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공간으로 변질되므로,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정직하게 장사하는 가게와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뿐이다.이런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세상살이 다 그런 거라며, 정직함만으로 세상을 헤쳐 나아갈 수 없단 말을 덧붙이지만. 글쎄, 세상은 왜 헤쳐 나아가야 하는가. 댓글과 별점 테러로 내가 가진 힘만 과시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없는 부분을 보완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삶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후의 세상을 꼭 필요로 한다.

2021-06-28

문무왕, 신라 동궁을 창조하다

신라의 통일을 이룬 문무왕.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은 왕실의 권위와 왕조 창건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월지(月池)를 조성(674)하고 동궁(東宮)을 창조(創造·679)한다. 여기에서 동궁 건설은 말 그대로 창조라는 단어가 쓰였다.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지었길래 창조라는 단어를 썼을까?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창조라는 단어는 총 2회 확인되는데 첫째는 황룡사, 둘째는 동궁이다. 황룡사의 규모와 9층 목탑 등을 본다면, 당시 동궁의 조성이 끼쳤던 사회적 파급력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이러한 동궁을 설명함에 앞서 같은 사적명으로 묶이고 있는 월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월지는 근·현대까지 雁鴨池(안압지)로 불렸으며, 2011년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에는 바다에 임해있는 전각이라는 뜻의 臨海殿址(임해전지)로 불려왔다. 이후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여러 연구를 통해 연못의 본래 이름이 월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명칭에 대해 여러 연구자들도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동궁은 그 사정이 조금 다르다. 현재는 동궁의 위치와 영역, 역할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동궁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월지 서편에 위치한 대형 건물지들의 역할과 기능, 실제 동궁의 범위와 위치, 왕궁 내부에 위치한 內帝釋宮(내제석궁)인 天柱寺(천주사)의 위치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먼저 월지 서편 건물지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아보자. 최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난 A건물지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닮은 내부 구조(내진열의 減柱), 복도(回廊)로 둘러싸인 건물지, 대형 적심, 출입시설에 설치된 踏道(답도) 등의 특징을 통해 정전(正殿)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추정의 배경은 A건물지보다 격이 높은 건물이 경주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A건물지가 정전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왕의 궁성인 월성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점도 동궁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다음은 동궁의 위치와 역할이다. 그림을 참고하면 동궁의 위치로 추정된 곳은 크게 네 곳으로, 월지 서편 건물지와 동편 영역을 포함한 곳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 월지의 동편을 동궁· 월지 서편은 월지궁으로 보는 견해, 국립경주박물관의 남측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가 기존에 있었고, 최근 동궁과 월지 A건물지의 서편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이렇듯 연구자마다 다양한 학설을 제시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동궁과 월지에서 동궁은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다만 월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동궁 관련 유물, 문헌에서 확인되는 동궁관(東宮官) 기구(機構)속에 월지 관련 관청명 등으로 볼 때 월지 주변에 동궁이 있었던 것은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다음으로 동궁의 기능에 대해서 살펴보자. 동궁은 태자의 거처 혹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헌 속 임해전에서 펼쳐진 많은 횟수의 주연(酒宴)을 예로 들며 태자의 교육기관 내에 연회를 베풀던 임해전이 위치한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즉, 외국의 사신 접대나 연회가 펼쳐지는 전각이 있는 곳에 태자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 그 골자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절대적인 왕이 군림하고 관할하는 왕궁 내에서 태자의 교육과 연회를 같은 영역에서 치루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의견 또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김경열학예연구사 마지막으로 왕궁 내부에 위치한 사찰, 내제석궁인 천주사의 위치이다. 천주사에 대한 단서는 동궁과 월지 주변에서 발견된 ‘천주’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1점이다. 하지만 언제든 위치 이동이 가능한 기와라는 점에서 기와의 출토지가 천주사가 될 수 있는 근거는 빈약하다. 다만 1975~7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한 안압지 발굴조사에서는 다량의 불교 관련 유물이 확인되었다. 본존불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대형 청동제 부처 귀를 시작으로 장식 용도로 추정되는 板佛(판불), 여러 점의 금동제 불상 등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 주변에 천주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도 천주사의 명확한 위치를 웅변해주지는 않는다. 이 또한 발굴조사 범위의 확장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동궁과 월지는 수많은 경주 관광객들이 한번은 꼭 들리는 소위 ‘핫’한 관광명소 중 하나로 자리했다. 동궁과 월지를 발굴조사 중인 필자도 화려한 야경과 고풍스럽게 복원된 건물 사이를 걷노라면 마치 왕이 되어 궁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많은 연구자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수수께끼도 숨겨져 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동궁과 월지에 관한 여러 수수께끼들을 함께 풀어가며 유적지를 관람하신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2021-06-28

허구와 현실의 소멸하는 경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때 영화 그 자체의 내적인 요소에 집중할 때도 있지만 그 영화의 바깥쪽이 궁금한 영화가 있다. 전자가 영화 속 내용과 상황에 몰입하고 감정 이입을 통해 감상하는 영화라면, 후자는 그 영화가 만들어지던 현장 상황이 궁금한 영화라고 하겠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보다는 그 영화가 촬영되었을 때 카메라의 뒤편이 궁금한 것으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하기보다는 제작 현장을 통해 완성된 내용을 바라보고 싶은 영화다.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거나 인공세트를 쓰지 않고 현장에서 촬영하는 방식과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광만으로 촬영하는 방식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란 영화 스타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위의 제작방식으로 구축해 놓은 것이다.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87년)를 시작으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91년), ‘올리브 나무 사이로’(94년)는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과 영화 현장, 촬영 방식 등에서 다양하게 얽히고 엮이며 ‘코케 3부작(영화가 촬영되었던 지명 이름)’ 또는 ‘지그재그 3부작(영화 속 등장하는 마을의 구불구불한 길들에서 차용)’으로 불린다.가장 먼저 제작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코케에 사는 어린 주인공이 친구의 숙제장을 돌려주기 위해 옆 마을로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이후 1990년 이란 북부에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 지진으로 인해 영화 촬영지 였던 코케 또한 지진 피해를 크게 입게 되는데, 감독은 아들과 함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했던 두 소년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코케로 향하는 대부분의 길들은 사라져버렸고, 그곳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들은 차들로 꽉막혀 있다. 길을 찾아 인근 마을을 돌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루 아침에 살던 집이 사라지고, 미로처럼 얽혀 있던 골목과 길들이 사라졌으며, 가족들이 죽었어도 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영화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이다.3부작 마지막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스타일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영화제작을 위해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배우를 캐스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제작 현장이 어떠했다는 것을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영화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지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상황인지 모호해진다. 영화 속에서 어떤 내용의 영화를 만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 편의 영화는 각각의 분명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 속에서 동일한 기억을 지닌 이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영화에 등장하고 사라진다. 촬영장 역시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 되었다. 영화는 분명히 허구의 드라마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은 그 허구의 현장에 실제로 영화의 내용처럼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의 영화는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고 카메라 앞과 뒤의 상황들이 혼재되고 뒤섞이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이 묘하게 몰입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지그재그의 길을 오가며 영화는 배우들의 계속되는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마지막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간다. 바로 세 편의 영화 기저에 깔렸던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전진하며 진보하는 삶의 긍정성이다. 사라져가는 경계에 놓인 카메라는 개입하지 않는다. 분명히 감독의 계산된 연출에 의해 촬영됐을 영화겠지만 영화 속에서 감독은 자신의 흔적들까지 지워 나간다. 이를 위해 카메라는 그들 앞에 등장한 낯선 물건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소품처럼 자리잡는다.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완성된 영화다. 기존의 영화였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가 반복된다. 완전하고 확실한 허구의 구조를 가진 영화보다는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재 상황들을 끌어 들이며 영화는 가장 독특한 사랑 고백과 재미를 선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게으른(?) 카메라를 통해 확인할 것이다. 우스우면서도 묵직한 장면이 두고 두고 오래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2021-06-28

이준석의 혁신정치가 성공하려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보수’가 ‘혁신보수’의 역동적 이미지로 변신했다. 여야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당에서 먼저 폭발했기 때문이다. 36세의 정치신예, 이준석의 당선은 변화를 열망하는 민심(民心)이 당심(黨心)을 추동한 정치혁명이었다. 졸지에 ‘꼰대진보’로 내몰린 여당은 야당에 뒤질세라 ‘혁신경쟁’에 나서고 있다.이준석의 혁신정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는 대표수락연설에서 “공존·공정·혁신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문제해결중심의 국민정당으로 발전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성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한 것이다. 당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변화와 자강(自强)’을 주문했다. 지하철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모습은 탈권위, 실용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당선된 이후 당원 가입이 평소보다 10배나 상승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말해주는 것이다.반면에 이준석 대표의 경험부족과 젊은 혈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가 제시한 반페미니즘은 남녀 갈라치기라는 공격을 받고, 능력지상주의는 보수가치의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보 인선에 적용하겠다는 자격시험이나 토론배틀은 정치적 흥행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 체질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노회(老獪)한 보수꼴통들의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허물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리더십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당의 ‘혁신과 통합’이라는 상충되는 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보수와 꼰대보수의 분열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이준석의 혁신정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대표의 올바른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당선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세대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당을 혁신하는 한편, 당 밖의 유력 대권주자들을 영입하고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야권후보 지지율 선두에 있는 윤석열의 영입에 실패할 경우, 당은 균열될 것이고 이준석체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당 안팎의 비판과 고언(苦言)을 경청하고 자기성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혁신정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 중진들의 역할과 책임도 무겁다. 중진들은 경륜과 지혜로서 젊은 대표의 강점은 밀어주고 약점은 보완해주어야 한다. 권력의 이해관계로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중진들이 먼저 낡은 사고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열망, 특히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2030세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혁신에 부응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라.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중진들이 2030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2021-06-28

RE100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이다.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처음 시작됐으며, 여기서 재생에너지는 석유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RE100은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일종의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크게 태양광 발전 시설 등 설비를 직접 만들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서 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RE100 가입을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본부인 더 클라이밋 그룹의 검토를 거친 후 가입이 최종 확정되며, 가입 후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받게 된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SK(주),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브로드밴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 지난 해 11월 초 한국 RE100위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산업통상자원부는 RE100이행을 위한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오는 10월 도입한다고 28일 밝혔다. 현재는 발전사업자나 전기판매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전력시장을 통해 거래해야 하며, 재생에너지만 별도로 구매할 수는 없다.직접 PPA가 도입되면 기업 등 전기사용자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했음을 인증받아 RE100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에 RE100이 꼭 필요하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확연해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28

전면 등교 독이 되지 않아야 한다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의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왔다. 2021년 2학기에는 전면 등교가 교육부로부터 결정되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전국 1천명 미만(수도권 500명 미만)이면 학생들의 등교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확대되며 이동수업과 이동 교실도 과밀 과대 학급을 위해 확대 운영될 것이다. 일부 언론을 통한 학교의 반응은 다소 차갑다. 수도권 지역에서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넘는 학교에는 여유 있는 공간이 없다. 교실을 어디에 설치할 수 있느냐” 등 코로나19의 장기적인 대책으로 미리 대비를 해야 했으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과대 과밀학급이 아닌 학교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교실 여유가 없는 학교에서는 많은 고민이 예상된다.2학기부터 전국 대학에도 대면 수업이 확대된다. 대학의 대면 수업은 실험·실습·실기나 소규모 수업, 전문대부터 시작해 코로나 백신 1차 예방 접종을 완료하면 전 국민의 70%가 접종을 하게 되는 9월 말 이후 확대된다. 하지만 식당, 도서관 등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시설은 자제한다는 계획이다.교육부 통계자료를 보면 학부모 10명 중 8명은 전면 등교에 찬성하고,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학부모 77.7%, 교원 52.4%, 학생 49.7%이다. 돌봄 문제가 큰 초등학생 학부모는 79.2%가 2학기 전면 등교에 찬성했다.또한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2학기 전면 등교를 부정적으로 보고 온라인 원격 수업을 선호한다. 초등학생의 76.6%, 중학생 40.9%, 고등학생 26.1%이다.교사는 학생들 간 학력 격차, 학력 수준의 양극화, 학습 부진, 수업 결손 해결 등으로 찬성을 하고 학생의 시차 등교, 시차 급식, 과밀학급 학생 수 감축, 점심시간 급식지도 및 방역 지원, 일일 등교 현황 보고 지양, 고위험군과 임산부 교사 업무 재배치 등을 2학기 전면 등교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다.학교에서도 2학기 전면 등교수업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은 수능시험을 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많아 작은 문제에도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철저하게 준비해서 학부모가 걱정하지 않고 학생이 안심하고 학교에 등교해서 수업에 열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에는 학생이, 학생은 학교에, 교실에는 학생과 교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생동감 있는 학교가 되고 운동장에 잡초가 잘나지 못하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전면 등교를 시작한 경북교육청은 서서히 안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코로나19의 변이 바이러스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고, 7월 19일부터 시작하는 1차 접종이 끝나도 모든 학생이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 전면 등교가 독이 되지 않게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19를 잘 극복하고 학교가 아이들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 모두 함께 극복하자.

2021-06-28

요구와 기대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담장 위 능소화의 배웅 속에 유월이 가고 있다. 길손인양 건듯건듯 불어오는 바람 결에 이제 막 피어나는 능소화가 나풀나풀 반기지만, 미끈 유월은 어느새 슬며시 상반기의 담장을 미끄러지듯이 넘고 있다. 초록 잎새의 변조 속에 여름채비를 하는가 싶었는데, 별반 해놓은 일도 없이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세월여시(歲月如矢)가 새삼스럽기만 하다.상반기를 보내면서 저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진척과 성과가 있었는지는 각자가 헤아리고 챙겨야 할 몫이다. 개인의 목표와 계획, 애씀과 성취의 정도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 반복되는 무채색 같은 일상을 무지개빛 아름다움과 설레임으로 채우는 것은 순전히 자기자신이 새롭게 추구하고 힘과 정성을 쏟아 나가기에 달린 것이다. 하는 일이나 하고자 하는 과업의 경중 완급을 가늠하여 믿음과 의욕으로 몰입하고 밀어부치면, 자신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요구와 기대를 어느 정도는 부응하고 충족시키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요구와 기대는 어쩌면 사람의 일생에 늘 따라붙고 함께하는 바람과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 자라면서, 자라나 배우면서, 배우고 일하면서, 일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성장, 성숙과정에서의 요구와 기대는 늘 존재하고 결부되며 이어지게 마련이다.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 성공과 출세를 바라는 일은 모든 부모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희망사항일 것이다. 부모로서의 바람과 요구 속에 자식으로서의 요구와 기대가 어우러져 가정이 굴러가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그러나 인간생활에 있어서 요구가 지나치게 많거나 기대가 너무 커지게 되면 예기치 못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 요구(要求)란 받아야 할 것을 달라고 청하거나 모자람을 보충하고 과잉을 배제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예컨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몸조심하고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과 비슷하다. 반면 기대(期待)는 자녀들이 학업을 성취하고 사업에 성공해서 출세하고 잘살게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일들은 요구하는 수준과 기대하는 범위의 차이와 괴리 속에 차질과 파행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숱하게 나타난다.최근에 조직과 사회적인 시스템의 요구와 기대수준의 엇박자로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을 가져와 안타깝기만 하다. 철거건물 붕괴사고나 물류센터 화재사고 등은 직간접적인 사고원인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을 간과하거나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부분을 너무 안이하게 경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조직이나 시스템, 제품이나 운영 등에는 조건과 능력에 부합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과 기대수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러한 요구나 기대에 따른 절차나 검토, 확인사항이 결여되거나 편법에 휩쓸리게 되면 결국 폐단과 불행이 파생하게 된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지키고 해야 할 것에 대한 요구치와 이루고 바라는 정도에 대한 기대치의 적절한 균형과 보합으로 보다 알찬 하반기를 맞을 일이다.

2021-06-28

대중교통 활성화가 필요하다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소상공인과 대중교통이다.코로나19의 1차 대유행시기였던 지난해 2월부터 대구·경북 주요 도시들의 대중교통 통행량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확진자수에 비례해 대중교통 통행량이 등락을 거듭했다.시민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고 승용차 이용을 선호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하면서 개인들의 전반적인 통행수요 자체가 감소하기에 이르렀다.대구시의 경우 도시철도 연간 수송인원은 2019년 1억6천753만5천명에서 2020년 1억986만5천명으로 전년 대비 약 34.4% 감소했고, 연간 수송수입은 2019년 1천208억1천500만원에서 2020년 770억1천500만원으로 전년 대비 약 36.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버스의 연간 수송인원은 2019년 2억2천965만4천명에서 2020년 1억6천143만4천명으로 전년 대비 약 29.7% 감소했고, 연간 수송수입은 2019년 2천263만6천400만원에서 2020년 1천603만2천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약 29.2%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도시마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대중교통에 대한 보조금은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됐고, 결국 도시마다 재정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급기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대중교통 운행을 감축하는 고강도의 대응책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대중교통 운행 감축은 시내버스보다 농어촌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비대면 문화의 확산, 온라인 쇼핑의 증가 등이 개인들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생활방식의 변화 등으로 비롯된 대중교통의 수요 감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교통의 위기는 개별 도시들의 재정부담 증가로 귀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승용차 통행수요의 증가로 인해 도로교통 혼잡을 초래할 것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하면서 탄소저감 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탄소저감 정책은 국가단위에서는 탄소저감 기술의 개발과 ESG 경영의 강화, 에너지원의 변화(화석에너지 사용 축소) 등을 통해 실현될 수 있으나, 도시단위에서는 대중교통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왜냐하면, 대부분 도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탄소배출원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 중단기적으로는 대중교통수단의 고급화, 대중교통 요금의 다양화를 추진할 수 있다.우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대중교통수단 내 공기 질 관리, 승차밀도 축소, 최소 운행서비스 확보, 급행버스 도입 등을 통해 대중교통수단의 고급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 다양한 요금제도의 도입을 통해 통행자들의 대중교통수단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예컨대 첨두시와 비첨두시를 구분한 시간대별 차등요금제 적용, 정기권 제도의 도입, 이용빈도 연계 요금제도 도입 등을 시도할 수 있다. 아울러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는 승용차 교통수요관리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승용차 교통수요를 관리하지 않고는 대중교통 활성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강제적인 승용차 교통수요관리(예 : 승용차 부제 운행)는 대중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중소도시의 경우 여러 가지 불편을 가져올 수 있어 경제적인 규제 혹은 유인책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도시 내 급지별 주차요금체계 조정과 주차단속의 강화, 카풀에 대한 유인책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는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추진할 수 있다.대중교통 중심개발(TOD: Transit Oriented Development)을 추진함으로써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도 불편함이 없도록 계획적인 도시개발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대중교통 중심개발은 도시철도 역세권이나 버스정류장 주변지역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에 고밀도 도시개발을 제도적으로 유도해 시민들의 승용차 의존도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의 종말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제2 혹은 제3의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고,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모든 인류가 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탄소저감은 이제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됐고, 개별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교통 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지금이야말로 대구·경북도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탄소저감을 위한 시간은 우리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2021-06-27

2050 탄소중립과 P4G 정상회의

유성찬​​​​​​​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 지구의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는 ‘6도의 멸종’이라는 책에서 1℃가 상승하면 매년 30만명이 기후질병으로 사망하고, 2℃가 상승하면 인천공항지역이 침수, 3℃가 올라가면 뉴욕·런던이 침수된다. 4℃가 상승하면 유럽 중앙지역 온도가 50℃가 되고, 5℃가 상승하면 북극온도가 20℃가 되어 얼음이 완전히 사라진다. 또 히말라야의 빙하도 소멸, 바닷가 도시들은 멸망한다고 예측했다.지구온난화의 마지막에는 ‘늑대와의 춤을’의 주연,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워터월드’처럼, 인간은 배를 타고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물 위에서만 살아야 한다. 지구는 현재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인류는 유엔차원에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방지, 곧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해왔고, 그 대책을 1997년의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기후협정으로 세워 왔다.2015년 12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올해 2021년 1월부터 각국에게 적용될 기후변화대응을 하자고 195개국 모두가 약속을 했다. 그리고 2016년 11월 발효됐다.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여했었지만, 파리협약은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첫 번째 기후협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 와중에 트럼트의 명령으로 2017년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하였다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2021년 올해, 파리협약에 복귀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을 믿어보자.기후변화대응과 지구온난화 극복은 궁극적으로 산업과 생활에서의 탄소중립으로 표현된다. 탄소중립은 인간생활과 산업활동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파리협약의 목표도 탄소중립이다.2015년 파리협약 당시에는 203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2도 이내로 제한하고, 되도록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제48차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 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섭씨 2도가 아닌, 명확히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더 강력한 내용의 합의문이 선언되었다.그리고 우리 정부는 2020년 12월 7일, 탄소중립 추진전략으로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탄소중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 등을 발표했다.‘2021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가 지난 5월 30~31일, 서울에서 열렸다. P4G 서울정상회의는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첫해에 세계적인 이슈이자 전 지구적 생존과제인 기후변화대응, 탄소중립의 환경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게 해준다.우리나라는 대내적으로 한국형 그린뉴딜로, 국제적으로는 P4G를 통해 지구촌을 기후변화대응과 탄소중립사회로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또 전세계의 121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 목표 기후동맹’에 가입한 상황이고, 우리나라도 작년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국 실현 선언을 하였다.P4G는 정부기관과 기업·시민사회 등 민간부문을 포함한 온 사회가 참여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만들기 위한 국제적인 협의체이다. 국제사회와 민관이 공동으로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협력과 탄소중립을 이행하고 인도, 멕시코, 베트남과 같은 개발도상국과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그 이유는 지구를 지키는 일은 민과 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인의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P4G에는 한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베트남, 멕시코, 남아공 등 12개국 중견국과 SK텔레콤과 도요타, 네슬레, 델 등 140여개의 세계적 기업, 세계경제포럼과 도시기후리더십그룹, 기후정책이니셔티브 등 기관과 시민사회도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 SK그룹이 환경부문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코로나19 팬데믹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가이고, 코로나19이후에 미래환경산업과 4차산업혁명에 걸맞는 고용창출을 준비하는 한국형 그린뉴딜 정책과 반도체생산 국가로서의 면모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을 부러워 하고 있다.반대로 코로나19로 인해 도쿄올림픽이 위태로운 일본은 성노예전범국가임을 부정하고 전세계인을 향해 거짓과 위선으로 대응하고 있다. 스가총리의 G7회의에서의 행태와 도쿄올림픽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경북도의 땅 독도를 탐내는 것을 혼내기 위한 하늘의 노여움인지도 모르겠다. 신재생 에너지와 탄소제로의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탄소중립 선진국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2021-06-27

윤석열, ‘사조직’에 의존 말라

심충택 논설위원 근거없는 악의적 루머를 퍼뜨리며 내년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는 ‘X파일’과 ‘정치유튜버’들이 어떤 식으로든 법적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 한 시민단체는 “X파일은 윤 전 검찰총장과 그 가족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의 허위사실이 적시된 괴문서”라면서 “성명불상의 X파일 최초 작성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측도 친여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TV에 대해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공감TV는 ‘윤석열 X파일’ 중의 하나를 만든 출처로 최근 확인됐다. 그들이 만든 파일에는 윤석열 전 총장의 성장과정, 아내와 장모의 각종 의혹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윤 전 총장 측은 섣불리 대응을 했다가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해 고발시기는 조율하고 있는 모양이다.‘윤석열 X파일’을 보면 주로 윤 전 총장의 가족을 마타도어 대상으로 삼아 그를 대권주자에서 낙마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선거판을 이처럼 무법천지로 만드는 행위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혼탁선거를 막기 위한 정공법은 검찰이나 경찰이 고발이 들어오는 즉시 신속하게 수사를 벌여 진위(眞僞)를 가려내는 것이다.‘윤석열 X파일’을 처음 언급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성철 씨는 “4월 문건과 6월 문건은 다른 곳에서 작성됐다. (자신에게 X파일을 전달해준 사람이) 6월 문건은 ‘여권으로부터 받았다’는 표현을 썼고, 4월 문건은 ‘어떤 기관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장씨의 주장이 맞다면 이 파일을 만든 주체가 어디인지 가려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씨는 이 파일을 공개할 경우 “명예훼손·허위사실 유포가 될 수도 있다”며 파일을 파쇄해 버렸다.정치권은 지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저마다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 파일을 이용하고 있다. 실체 없는 파일을 두고 온 나라가 이전투구를 벌이는 양상이다. 앞으로 이러한 괴문서는 대선 기간 내내 꼬리를 물고 나올 것이다. 이번 대선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생태탕’, ‘페라가모 신발’ 논란처럼, 온갖 흑색선전과 정치공작이 횡행하는 혼탁한 선거가 돼 후폭풍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윤 전 총장은 내일(29일) 서울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권도전 선언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마 선언식에서 X파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은 할 것이다.앞으로 윤 전 총장은 집권여당이나 야권 경선과정에서 제기될 X파일 해명요구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기면 된다. 윤 전 총장도 대권에 도전하는 일이 그렇게 순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좌파진영이나 야권내부 대권주자들과 승부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사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조직으로 구성된 캠프는 쉽게 사분오열(四分五裂)될 수 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을 우군으로 만들어 흑색선전과의 전쟁을 치러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2021-06-27

트램도시

철도 위를 달리는 객차를 말이 끄는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마차철도(Horse Car) 시대다. 19세기 초 버스가 등장하기 이전에 말이 견인하는 수레를 궤도 위에 올려 다니게 하여 사람이나 화물을 이동케 하는 때가 있었다.그러다가 말 대신 전기로 동력을 바꾸면서 등장한 것이 트램이다. 1887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트램은 압도적으로 싼 시설비와 가격에 비해 뛰어난 수송능력 덕분에 전 세계 도시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1899년 12월 서울 서대문-청량리 사이에 처음 개통됐다. 그러나 1920년 이후 기동력이 우수한 버스가 보급되면서 트램시대도 쇠퇴기를 맞았다. 서울에서 운행되던 트램도 1968년 이후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그러나 트램은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염물질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고, 지하철이나 경전철에 비해 공사비가 저렴해 유럽 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프랑스 리옹시는 1957년 트램을 폐지했다가 2001년 트램을 재도입한 도시다. 트램을 재도입한 리옹시는 자가용 분담률을 15%정도 감축하고 자가용에 과도하게 배분된 도로 공간을 재조정하는 효과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1904년 도입한 트램을 발전시켜 현재는 2층 구조의 노면전차를 운행하면서 도시의 교통수단이자 도시 이미지를 살리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대구에도 트램 도입이 시동을 걸었다. 대구시는 도시철도와 연계되는 트램 도입을 구체화하고 본격 사업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트램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이색적이며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교통수단이다. 트램 도입에 대한 대구시민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27

잊혀져 가는 기억, 6·25전쟁

윤영대수필가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삼천리 무궁화 강산이 포화에 얼룩져버린 지 벌써 71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칠순 후반을 넘은 노인들이다. 국가를 위기에서 건지고 민족중흥을 이룬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풍요로워진 삶의 꿈에 젖은 젊은이들에게는 기억의 뒤편에 묻힌 역사가 될까 염려된다.6·25전쟁의 날, 맑은 햇살 아래 7번 국도를 따라 해파랑길을 기웃거리며 장사해수욕장의 전승기념관을 찾았다. 솔밭 사이 바닷가 모래밭에 배 모양의 조형물이 있기에 바다 카페인 줄 알았는데, 작년 6월 개관한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전시관 ‘문산호’라는 것을 알고는 한번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어 온 터다. 1997년 장사 갯벌에서 LST문산호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 잊혀진 기억 속에서 건져내어 세운 실물 크기 전시관이다. 모래밭 위에 세워진 긴 데크를 걸어 상륙함을 타듯 열린 입구로 들어갔다. 첫 전시실에 들어가니 유리모래판에 쓰는 ‘샌드 디지털 방명록’이 있어 서툰 솜씨로 ‘잊지 말자 6·25’를 썼더니 큰 화면에 나의 샌드아트가 나타났다.1층으로 내려가 화살표를 따라 처음부터 2층까지 살펴본다. 전쟁의 배경과 학도병의 결성, 출동 그리고 작전과 참여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영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장사상륙작전은 낙동강까지 밀려난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상륙선은 태풍으로 좌초됐으나 나이 어린 대원들의 강인한 정신으로 상륙에 성공하여 6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적 제2군단의 보급로 차단과 후방 교란의 임무를 완수한 후 구조함을 타고 철수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투였다.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않고 전투경험도 없는 학도병들로 제1유격대대를 결성하고 작명174호를 수행하며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했지만 적군 270명을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로 만들어져 2년 전 개봉되었다.‘영웅’ 전시실은 전체가 유리 바닥이고 그 아래 모래판에는 이 작전에 참전한 772명의 이름표가 하나하나 놓였고, 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는 학도병들의 모습을 하얀 조각물로 꾸민 곳도 있다. 이때 구조선을 타지 못했던 39명의 영령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까. AR 증강현실 체험과 소총 사격 게임도 오락 삼아 해보고 넓은 갑판으로 나가니 탁 트인 바닷가에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가까운 갯바위 위의 낚시꾼들과 소나무숲 아래 캠핑족들의 평화로운 모습들…모두 문산호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는지? 무심한 듯 오늘을 즐기고 있다.전승기념공원으로 나와 해변에 있는 영웅들 군상 조각의 손도 잡아보고 ‘전몰용사위령탑’ 앞에서 손 모아 참배했다. 마침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오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멍한 모습이다. 6·25날인 줄 몰랐단다. 이날 밤 KBS ‘다큐on-70년의 기억’을 보니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르는 젊은이가 53%나 된다. 잊혀져 가는 전쟁의 기억이 안타깝기만하다. 숲에 앉아 옥수수빵을 한 입 먹으니 어릴 적 맛있던 강냉이떡의 기억이 가물댄다.

2021-06-27

꾀꼬리 같은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마을길을 지나다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옷차림이 운동복이라 산책 가셨더냐는 말을 인사삼아 건넸다. 대답이 재미있다. “영웅이 데리고 산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그 분이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더러 보았던 터라 “아~ 그 강아지 이름이 영웅이 인가보죠?” 했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강아지 아니고 임영웅이요.” 이어폰으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뒷산에 다녀오시는 길이라 한다. 그의 광팬이라 노래 들으며 산길을 걸으면 지루하지도 않고 힘도 덜 들어서 좋다 하셨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좋은 음악은 메마른 영혼조차도 따뜻이 녹여 일깨우는 명약이니까.종편채널의 가요경연 프로그램인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의 울림은 대단히 컸다. 특히 ‘미스터 트롯’은 임영웅이란 히어로를 탄생시켰고 결승전 무대에 오른 6명의 가수들은 현재까지도 여러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맹활약 중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트롯 열풍과 함께 장르가 다른 음악도 경연프로그램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보이스 킹’, ‘팬텀싱어’, ‘라우드’ 등 공중파와 종편을 불문하고 다수 편성되어 있으며 수준 또한 놀라울 정도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수준이 세계적임을 증명해 보인 방탄소년단의 등장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노래 ‘다이너마이트’가 미국의 빌보드를 장악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최근에는 ‘버터’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다이너마이트’의 기록을 넘어선 쾌거다. 데뷔 8주년을 맞아 진행한 온라인 콘서트에는 세계 195개국에서 133만 명이 몰려들었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문화의 힘은 대단하다. 특히 농축된 예술문화의 힘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다. 대중예술문화도 공들여 준비하면 그만큼의 박수를 받을 것이며 지역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우리 지역 출신의 유명 작곡가 가요제는 근본 취지에 맞게, 그리고 항구적인 발전을 위한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의 명예를 더욱 높이고 지역의 연예예술인들도 자존을 지키며 발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운전을 하며 무심히 듣고 있던 FM클래식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내 노래를 들으면서 조수미가 나를 위해서 노래한다.’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감흥이 또 다를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했다.가치 있는 일은 잘 가꾸어야하겠지만 억지로 만들기 위하여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진정한 가치다. 필자는 요즘 보기 드문 음치지만 음악의 가치는 안다. 불러서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들어서 행복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종종 뵙는 식물원 원장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식물원은 눈으로만 보는 곳이 아니라 귀조경이 먼저라 하셨다. 그래서 ‘이목구비’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다. 지지배배 우는 온갖 새들의 소리가 신이내린 소리인 듯하다.자주 만나는 뮤지션 후배의 말이다. “얼마나 목소리가 고우면 꾀꼬리 같다고 할까요?”

2021-06-27

상생(相生)이 우선되는 사회가 우린 필요하다

최영조 경산시장 ‘고진감래(苦盡甘來)’, 참으로 오랜만에 입에 올려보는 사자성어다.고생 끝에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고진감래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었다.새마을운동에서 보듯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고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위안거리였고 서로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현실에서 고진감래를 이야기하면 현실감이 없는 사람, 옛날 사람이라는 핀잔이 뒤따른다.이처럼 우리의 주변에서 사라지는 단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개인주의가 확장되며 ‘우리’라는 단어가 힘을 잃고 있으며 배려, 협조, 기다림 등의 단어들이 퇴색되고 있다.그 자리를 일확천금(一攫千金), 로또, 주택청약,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땅 투기 등이 차지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자리 잡았다.선조는 부유하지 않아도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의식주(衣食住)만 해결할 수 있으면 행복했다.힘들게 살아도 손님 대접할 줄 알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정으로 이웃은 사촌처럼 가까웠다.하지만, 현재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며 사랑, 배려, 나눔의 샘물이 점점 고갈되고 그 자리를 폭언과 폭력이 채우고 있다.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이웃이 이웃을 아무런 이유 없이 가해를 가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빼앗는다.의식주는 우리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꼭 필요도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변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되었다.인구 28만 명이 거주하는 경산시의 주택 보급률은 현재 123%에 이르지만 내 집이 없는 시민들도 있다.열심히 노력하고 아끼면 살 수 있었던 집이 어느 날 모든 것을 끌어다 붙여도 가질 수 없는, 가진 자만 더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 되어 버린 것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지역민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자치단체장으로서 서글프다.3선 임기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상생을 이야기하고 싶다.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자금이 투자되고,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편의시설이 갖추어진다 해도 서로가 아닌 나만이 고집 된다면 우리의 삶이 행복할까?우리가 아닌 나만 강조되는 사회라면 내일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려면 서로를 위한 사랑과 배려, 칭찬, 나눔이 필요하다.성경에 “밭의 곡식을 다 베지 말고 과부와 고아를 위해 남겨두라”는 구절이 있다.밭 귀퉁이에 조금 남긴 곡식이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가진 자들이 힘들고 약한 자를 항상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즉 가난하고 힘든 자들도 사회구성원임을 잊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리라.종교를 떠나서라도 우린 경주 최 부자의 선행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중에서도 남을 돕는다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뭉클하지만 정작 자신이 행동에 옮기기에는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왜냐하면, 내가 아니더라도 남이 할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강하고 아직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경산시는 착한 가게 등 착한 나눔을 정기적으로 할 방법을 찾았고 지금도 계속 나눔에 동참할 사람들을 찾는 나눔의 도시가 되었다.경산은 앞으로도 발전가능성이 무궁하며 여러 가지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어떠한 사업이라도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우리나라에서 내 나라로, 울 엄마에서 내 엄마로 세상이 변하고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가족이 없었다면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없고, 사회가 없다면 가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남을 배려하는 상생의 문화가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2021-06-27

팝콘수국

밤마실을 다녀오는 길, 신항만 도로에서 우리 동네로 내려서자 하늘이 잘 보였다. 핑크빛 달이 둥실 떴다. 오늘이 보름이었지.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며 차의 속도를 줄였다. 아파트 가까이 갈수록 달이 건물 사이로 숨어버린다. 도시인들을 낯설어하는 어여쁜 달을 조금 더 보고 싶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달에 취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와 핸드폰을 열어보니 톡방마다 달 사진이 올라왔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 찍었는지 토끼들이 밟아놓은 자취가 선명한 분홍 달이 수다방마다 휘영청 떠올랐다. 스트로베리 문이라 이름 붙여진 달이다. 여러 사진 중에 유독 동그란 달이 오늘 발견한 수국의 색을 닮았다.수국을 보러 간 이는 홍차 모임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다. 오늘 같은 날 차를 달여놓고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을 즐기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분이 있어서 모이게 됐다. 요즘 집을 리모델링 중이라며 가진 물건 정리도 할 겸 마구 나눠주신다. 족자 하나를 꺼내시며 그린 화가의 사연과 그 그림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동화처럼 들려주어서 차향과 이야기에 취하게 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눈빛에 사연이 가득 고여있어 삶이 참 풍부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듣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그림값으로 차 한잔 대접하려고 지인의 집 근처 카페에 가자고 했다. 야생화 가득한 정원을 가진 집이다. 논길을 따라 길을 잡으니,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것도 논과 밭 가에 찻집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셨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도 오늘 처음 와본다고 해서 비밀의 숲을 찾아가는 파랑새가 된 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늦은 오후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오늘은 우리들만의 정원이 되어주었다. 함께 간 두 사람 모두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꽃이 길을 안내하는 오솔길을 걸으며 내내 탄성을 터뜨렸다. 꽃 이름이 무얼까 검색도 하고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오후의 정원에서 풍기는 향에 취해 말소리도 부쩍 줄었다.하지(夏至) 무렵은 수국의 계절이다. 정원 곳곳에 수국이 한창이었다. 문 앞에 푸른 빛의 수국이 손님을 맞고, 정원 중앙에 사과나무 밑에는 연분홍빛의 아나벨수국이 수런거렸다. ‘어머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감탄 속에 신기한 색의 수국 한그루를 발견했다. 짙은 인디안핑크 같기도 하고 회색이 살짝 섞인 것도 같은 오묘한 색이었다.다들 와서 보라고 불렀다. 꽃잎의 생김새도 여느 수국의 모양이 아니었다. 꼬글꼬글한 입들이 모여 도란거리는 모습이 앙증맞은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무릎을 굽혀 꽃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 장의 꽃잎이 네 갈래로 안으로 오목하니 말려들어 다부지게 오므린 아기의 손 모양이다. 그 안에 이슬을 가득 담으려는 건가. 한참을 들여다보며 넋을 놓았다. 이런 색은 누가 만들어 냈을까 궁금해 꽃을 가꾸는 친구에게 이름을 물으니 팝콘수국이라고 했다.밤이 깊을수록 달 사진이 톡방에 더 많이 떠올랐다. 볼수록 자태와 색깔이 팝콘수국과 닮았다. 달 사진 사이에 팝콘수국의 사진을 올렸다. ‘오늘 보름달과 닮았지요?’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팝콘수국이란 꽃도 처음 보고 그 모습이 보름달과 닮아있어서 더 그랬다. 수국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머물렀기에 라틴어로 ‘물그릇’이란 뜻을 간직했다. 이름에 어울리게 작가들은 초여름 비가 오는 날을 묘사할 때 수국을 등장시켜 시인에겐 푸른 은유가 되고 수필가에겐 분홍색 복선이 되기도 한다.달이 음력 오월 보름의 하늘로 마실을 나오는 날에 맞춰 분홍빛 수국이 환하게 떠올랐다. 연두색 연서(戀書)를 써서 쪽지로 접어 수국 가지 속에 숨겨놓았다가 오늘 환하게 펼쳐 보이려고 달과 힘을 합쳤다.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다 남은 힘으로 팝콘이 툭툭 터지듯 수국에 가득 담긴 물을 끌어당겨 꽃잎을 틔웠다. ‘뻥이오~’ 하는 예고도 소리 소문도 없이 밤하늘 가득 팝콘수국이 폈다. /김순희(수필가)

2021-06-27

6월 25일의 단상(斷想)

이석윤포항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 부위원장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1주년이 됐다. 그간 참으로 기나긴 세월이 흘렀고 지금도 시간은 지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을 당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밀리고 말았다.포항은 당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양측 간 치열한 전투가 1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북한군은 영덕과 강구일대에 있는 국군을 우회해 후방에 있는 흥해와 포항을 점령했다.지난해 지역에서 발간된 ‘포항 6·25’에 보면 그때 포항에 있었던 경찰 병력들은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침투해있던 북한군 게릴라들의 후방 교란 등을 저지하고자 치열하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적혀 있다.고인이 되신 필자의 할아버지(故 이동덕 경위)도 경찰관으로서 국군 제3수도사단과 미 제24사단, 71명의 학도병들과 함께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숨막히는 전투에 참가하셨고 사찰형사 특공대장으로서 연일지서를 탈환하며 선발부대의 일원으로 포항에 최초로 입성했다.이후 할아버지는 이러한 공적으로 1952년 10월에 대통령 무공훈장과 경찰 신분임에도 군인에게만 수여되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됐고 매년 우리 가족들은 6월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남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6·25 한국전쟁을 겪지 않고 성장한, 심지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관심도 없고 내용도 전혀 모르는 현재의 우리 전후 세대들은 국가와 민족보다는 개인주의가 점점 익숙해져서 갈수록 호국정신과 안보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자유와 평화, 번영은 순국하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라는 것을 모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내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그간 부족했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보훈을 위해 노력해주시길 진심으로 당부드리며 여야도 국가보훈 대상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로운 삶과 자긍심을 더욱 고취할 수 있도록 큰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2021-06-24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가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托卵)으로 새끼를 기르게 하는 새로 잘 알려져 있다.얌체짓으로 보이지만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몸통은 큰 데, 다리가 짧아 알을 품기가 어려운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확률이 높지만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걸 번식방법으로 선택해 진화했다. 그러나 탁란 성공률은 10%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뻐꾸기 90%가 탁란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첫 번식때는 잘 속지만 두 번째 번식 이후엔 뻐꾸기 알과 자기 알을 구별해서 골라내기 때문이다. 뻐꾸기 탁란과정을 보면 어미 뻐꾸기나 새끼 뻐꾸기 모두 필사적이다. 먼저 어미 뻐꾸기는 알을 낳기에 적합한 ‘붉은머리오목눈이’둥지를 찾아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집을 짓고있거나 이미 알을 품고있으면 안 되고, 알을 낳기 시작해 2~4개 있는 둥지를 찾아야 성공확률이 높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야 하니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둥지를 비웠을 때 얼른 자기 알 1개를 낳고, 붉은오목눈이 알 가운데 하나를 먹거나 버린다. 여기까지가 뻐꾸기 어미의 역할이다. 그 다음은 뻐꾸기 새끼의 몫이다.붉은오목눈이보다 며칠 먼저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남아있는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지만 처절하다. 눈도 못뜬 채 깃털하나 없는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밀어내려고 넓은 등판과 날개를 이용해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다가 다 못밀어내고 남은 알이 부화하면 태어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린다. 둥지안에 혼자 남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보다 덩치가 더 커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뻐꾸기 새끼는 배가 고프면 마치 “먹이를 안주면 천적에게 들키게 하고 말거야.”하는 것처럼 시끄럽게 울어댄다. 이런 협박(?)으로 어미가 먹이를 계속 가져오게 만든다. 그래야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동남아시아나 인도까지 혼자 날아갈 수 있다.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는 지 새끼 잃고 남의 새끼 키우느라 생고생이다.난데없이 웬 뻐꾸기 얘기냐고 하겠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 가운데 여권에서 크느라 고생한 사람들 얘기다. 바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그들이다. 이들은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가 둥지에서 살아남기까지 해야했던 비정한 생존경쟁 이상의 경쟁을 치르고 오늘의 자리에 올랐으리라.정부 여당은 이들이 야권의 당당한 대권주자로 거론되자 윤 전 총장에게는 X파일로 위협하는 반면, 대권 출마선언을 고려중인 최 원장에게는 중립성·독립성을 들어 흠집내고 싶어한다. 김 전 부총리에게는 아예 “여권 후보로 나와달라”며 구애작전에 나섰다.모두 허망한 짓이다. 장성한 뻐꾸기가 둥지 위를 날아 제 갈길 가려는 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무슨 재주로 막겠는가. 둥지에서 날아오른 뻐꾸기에게 이제 그만 미련을 버리시라 권한다.

2021-06-24

빈과일보의 폐간

빈과일보는 홍콩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반중(反中) 매체다. 빈과일보를 창간한 사주 지미 라이는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나 11살에 홍콩으로 넘어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파산한 의류공장을 인수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지오다노를 창업해 아시아 굴지의 의류기업으로 키운 사람이다.빈과는 사과를 뜻하는 중국식 한자어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제호를 지었다 한다. 사주는 1989년 중국 정부가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하는 과정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음해 넥스트 매거진, 1995년에는 빈과일보를 창간했다고 한다.빈과일보는 작년 홍콩 보안법이 만들어진 이후 중국과 홍콩 정부를 상대로 날선 비판을 해오다 지난 12월에는 사주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홍콩의 친중 매체들은 지미 라이를 외세와 결탁해 홍콩정부를 전복하려는 선동적 인물이라 평했지만 그는 홍콩 내에서는 범민주진영의 원로로 대접을 받아왔다. 홍콩 보안당국에 의한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의 잇따른 체포와 회사재산의 동결 등으로 빈과일보가 결국은 폐간을 선언했다. 24일 자를 끝으로 빈과일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언론의 자유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준 또 하나의 국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빈과일보 모회사인 넥스트 매거진의 루이스 웡 편집장은 “언론의 자유를 만끽했으므로 후회는 없다”는 말로 폐간의 심정을 밝혔다. 또 홍콩의 한 교수는 “빈과일보가 폐간되면 홍콩은 가장 큰 민주적 가치 하나를 잃게 된다”고도 말했다. 미국 등의 비판에 홍콩 당국은 “언론의 자유 침해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홍콩 보안법 발효 1년만에 반중언론의 폐간이 진행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6-24

끝나지 않은 6·25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이 동족살상의 전쟁을 일으킨 지 72년이 되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동안 계속됐던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지금까지 휴전상태로 있다. 6·25전쟁의 발발부터 전개과정은 명약관화한 일인데도 아직까지 논란거리로 만들려는 자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인데, 이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6·25가 김일성의 남침이었다고 말하는 걸 꺼리는 자들이 있다니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김일성이 남침준비를 해놓고 소련의 허락을 받기 위해 몇 차례나 스탈린을 찾아가서 간청한 사실도 이미 다 밝혀진 바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재가를 미루던 스탈린이 1950년 4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비밀리에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야 중국이 동조한다는 조건으로 남침전쟁을 승인하였다. 이처럼 6·25전쟁은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이 치밀하게 모의하고 계획한 전쟁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비하지를 못하였다. 그해 6월초엔 사단장 등 지휘부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고, 6월 23일부로 경계강화 조치를 해제시켜 전방부대 병력의 3분의 1가량이 외출이나 농번기 휴가를 나간 상태였다.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였다. 김일성은 그날 오후 1시 35분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이 오늘 아침 옹진반도에서 해주로 북침을 하여 반격을 한 것’이라고 남침을 은폐하였다. 졸지에 기습을 당한 국군은 사력을 다해 대항하였으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에 역부족으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다. 남침 사실을 보고받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지시했다. 유엔은 신속히 북한의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38도선 이북으로 퇴각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를 무시하자 유엔군의 파병을 결의했다.유엔의 결정에 따라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병력을 지원했고 5개국이 의료지원, 39개국이 물자나 재정을 지원했다.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서 9월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하고 낙동강전선까지 밀고 내려왔던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명령으로 10월 1일에는 국군 3사단이, 7일에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었고, 10월 19일에 국군1사단이 평양에 입성했다. 여세를 몰아 선발대는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10월 1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여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1952년 서울을 재수복, 3월 말에는 38선을 회복하였다. 미국과 소련이 막후 접촉에서 휴전에 동의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그리고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최장기간 휴전상태로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처지다. 더구나 김정은 일당은 지금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있다. 북쪽의 비대칭 핵위협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공조를 공고히 하는 수밖에 없다. 6·25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악의를 가지고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해악이다.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진상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2021-06-24

지역균형과 의과대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정년을 마친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어디서 살 것 인가?’이다. 많은 포스텍 교수들은 정년퇴임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편한 도시 생활이 좋기도 하고 자녀들이 직장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러는 가운데에도 포항이나 경주, 대구 등 영남 쪽의 조용한 곳을 찾아 퇴임 후 남은 생을 즐기며 보내려는 분들도 종종 있다. 필자도 포스텍을 떠나 디지스트가 있는 대구 현풍에서 살다가 다시 아주대가 있는 수원에서 지내고 있다. 물론 주말에는 포항, 대구 등 영남권으로 자주 내려와 지낸다.포항이나 현풍, 그리고 영남권에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전원적인 환경이 있고 맑은 공기와 여유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 완전 은퇴 후에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 시설이다. 전국이 문화적으로 평준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의료시설이 비평준화 되고 있는 게 문제다. 포항이나 현풍의 공통점은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이 없다는 점이다.최근 지역의 대학별로 의과대학 설립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대학별 특성을 살려서 지역 내 성격이 다른 복수의 의대를 유치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포항에는 포스텍의 특성을 살려 연구중심 의과대학, 안동에는 안동대에 공공의료와 백신연구개발에 특성화된 국립 의대를 유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경북 북부지역에 공공보건의료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치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권역별로 국립대학 내 의과대학(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치하고 국가는 학생에게 수업료·교재비·기숙사비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요즈음 포스텍은 오래전부터 염원이었던 의과대학을 세우려는 욕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경북지역은 전국 평균 의사 수가 서울의 50%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포항에 의대를 설립하는 일은 시급한 것이고 포스텍이 설립된 30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되었던 문제이다. 경북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2017년 기준 1.34명으로 거의 전국 최하위라고 한다. 물론, 상급종합병원도 전무한 실정이다.경북뿐만 아니다. 여러 지역에서 지역 대학과 지자체들이 의대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의대 유치 논의가 코로나19 사태로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빠르게 떠오르는 모양새다. 대학 간 경쟁을 넘어 전문대와 일반대 연합전선으로 확대되는 등 다각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이제 전국 지역의 평준화를 통해 수도권 인구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인구분산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에 하나가 의료 시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균형을 위한 의과대학 설립과 대학병원 등이 지역마다 좀더 많아져야 한다. 특히 역량 있는 대학들에게는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여야 한다.전향적인 정부의 사고가 절실할 때이다.

2021-06-24

산업화와 민주화, 그 다음 서사는?

장규열 한동대 교수 최근 2030 청년층의 대두에 관한 해석이 여러 가닥이다. 지난 세기 산업화의 높은 언덕을 힘들여 넘어온 세대가 있었다. 곧이어 건너왔던 민주화라는 산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길지도 않았던 반세기 남짓 세월 동안 성큼성큼 지나온 이야기들이라서 모두에게 익숙한 것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1950년대 이후 세대에게 한국전쟁이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던가. 1980년대 이후 세대에게는 유신도 광주도 기억 속에 없는 서사인 셈이다. 지난 역사로부터도 배워야 할 테지만, 오늘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지나가는 중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서사(敍事)는 무엇일까.대한민국의 국격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아닌가. G7체제를 D10(Democracies10)으로 확장하여 재편하면서 대한민국이 들어갈 모양이다. 국제적 경쟁구도의 아래쪽에서 오로지 모방하고 추격하던 세월을 넘어 어느덧 앞자리에 와 있다는 게 아닌가. 그게 사실이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넌 후에 우리가 다듬어야 할 스토리의 성격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닐까. 잘 살아보겠다는 산업화의 다짐을 건너며 사람답게 사는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는 누구든 보듬고 아우르며 나누고 소통하는 가운데 이웃에 유익을 끼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잘 사는 나라에서 사람다운 삶이 펼쳐지며 주변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나라 안의 다문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 낯선 얼굴들을 위한 배려는 얼마만큼 하고 있을까. 2018년 현재 다문화가구원이 100만을 넘었다. 5천만 인구의 2퍼센트에 달한다. 학생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생 가운데 이미 4퍼센트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고 한다. 나라 밖을 살피기 전에 우리 안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낯선 그들을 그저 낯설게만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라의 다문화정책은 다양한 문화를 우리 문화로 받아들이겠다는 인식과 다짐으로 시작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우리의 생존과 자존감을 세우려는 노력이었다면 우리의 새 지평은 ‘세계를 담는 큰 그릇’이어야 한다.모방과 추격 끝에 추월하고 있다. 앞자리에 서서 어제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과거를 닮은 습성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얼른 찾아내어 버려야 한다. 생각이 내일에 닿아야 하며 그러려면 상상력과 창의로 승부해야 한다. 껍데기만 젊은 가짜는 차라리 배격해야 한다. 공정과 평등은 기본이 아닌가. 젊은 생각과 싱싱한 꿈으로 가득한 세대가 나타나야 한다. 나이로만 정하지 않기로 하자. 숫자에만 휘둘리지 않기로 하자. 세계를 바라보는 너른 지평을 향하기로 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넉넉한 시선을 만나기로 하자.역사에서 배우는 민족이 되자. 전후 상처에서 산업화로 일어났으며 그 부작용을 민주화로 극복했다면 이제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웃과 세계를 담는 백성이 되었으면 한다. 인류가 저질러 온 실수와 패착에도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살려내는 세상, 멋지지 않은가.

2021-06-23

델타변이

델타변이는 2020년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를 가리킨다.당초 ‘인도 변이’로 불리다가 ‘델타 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가운데 알파(α·영국) 베타(β·남아프리카공화국), 감마(γ·브라질)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우려 변이(Variant of Concern)’ 중 하나다.WHO는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성이 증가하거나 중증도에 변화가 있는 경우 △백신과 치료제 등의 유효성 저하가 확인되는 경우 ‘우려 변이’로 지정하고 있는데, 델타 변이는 지난 5월 우려 변이로 분류됐다.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백신으로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파 속도가 빠른 데다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인도를 비롯해 델타 변이가 확산된 지역의 코로나19 환자들은 복통, 메스꺼움, 구토, 식욕 상실, 청력 상실, 관절 통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원래 WHO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주요 발생 지역명을 따서 영국 변이, 남아공 변이, 브라질 변이, 인도 변이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특정 지역과 국가를 차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5월 31일 △영국발 변이(B.1.1.7)는 알파(α)로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B.1.351)는 베타(β)로 △브라질발 변이(P.1)는 감마(γ)로 △인도발 변이(B.1.617.2)는 델타(δ)로 명명했다.‘델타 변이’의 세계적 확산이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낳고 있다. 집단면역의 완성이 델타변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방역당국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한시 빨리 서둘러주길 바랄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23

행복을 담는 그릇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그날에 잡을 고기를 잡아 놓고 여유롭게 누워 쉬고 있는 어부를 보고 한 부자가 말하길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더 큰 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큰 부자가 되면 뭐하느냐?”고 어부가 물으니 자기처럼 평안히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지금 평안히 삶을 즐기고 있는 중이요”했다. 소확행을 생각나게 하는 앤소니 드 멜로의 글이다.얼마 전부터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은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사회학자들은 미래가 없는 절망적인 청년들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 나서면서 이 말이 생겼다고 한다. 청년들이 큰 꿈을 가지지 않고 현실 도피적 이기주의, 꿈과 이상을 쟁취할 진취성이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면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미래가 암울한 칠포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현실적인 생존전략으로 이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미국의 신경생리학자 애넛 비튼과 이스라엘의 루드 그로스 이서로프라는 사람이 자살하여 죽은 시체와 자연사 하여 죽은 시체를 놓고 뇌의 구조를 정밀 분석해 보았더니 사람의 뇌 속에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있는데 자살한 사람의 경우 보통 사람보다 아홉 배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엔도르핀에 대한 반응인자’이다. 행복한 사람은 뇌 속에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작아서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지만 자살자의 경우는 행복의 그릇이 너무 커서 왠만한 것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뇌 속에 행복을 담는 그릇의 크기에 달렸다는 것이 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옛날보다 더 살기 좋아졌는데 왜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더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지는 나라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더 높을까? 그들의 뇌에는 우리의 뇌 보다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고 뇌 과학자는 말한다.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여 또 다른 남편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예수는 이 여인에게 또 다른 남편에게서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만으로도 그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생수를 찾으라 했다. 이는 행복의 그릇을 크게 하지 말고 사소한 것으로도 채울 수 있는 작은 행복의 그릇을 만들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뇌 속에 행복을 담는 너무 큰 그릇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