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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나무에 대한 경배

소나무는 꿋꿋하다. 모양새가 참으로 아름답고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아 초목의 군자로 부른다. 우리 땅과 우리 삶에 잘 적응한 나무이다. 그래서 애국가에서 민족의 푸른 생명력을 소나무에 비유했다.‘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소나무의 생동력은 줄기에서 뻗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용트림하며 구불구불 올라가는 줄기의 형상은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다. 품새 또한 침엽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디 심어 놓아도 품격 있게 보인다.소나무 중의 으뜸은 금강송이다. 줄기는 붉으며 가지가 넓지 않다. 울창한 숲에서 햇빛을 받아 살아남으려고 성큼성큼 제 키를 키운다. 백두대간의 산골에서 함박눈을 이기고 비바람을 견디며 곧게 자란다. 하늘을 향해 높이 우뚝 솟아 기골이 장대하다. 그래서 국가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 금강송을 벨 때는 예를 갖추었다. ‘어명이요!’라며 왕의 부름을 받았음을 먼저 알리고 도끼질했다. 실려 간 금강송은 국가건물의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쓰였다.소나무는 씨앗에 날개가 있어 솔방울에서 천천히 떨어지면서 날아간다. 어미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마을이나 논과 밭 근처에 솔숲이 형성된 것이 이 때문이다. 넓은 들판에 서 있는 소나무는 다른 식물과 햇빛이나 땅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나무는 키를 키우기보다는 가지의 폭을 넓게 펴며 자란다.소나무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키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쏟는 나무 아래서는 자박자박 느릿한 걸음으로 탑 돌듯 주변을 돌아본다. 솔솔 부는 솔바람에 솔가지가 흔드는 소리에도 귀를 전부 열어야 한다. 제 키보다 더 크게 양팔 벌린 소나무 아래서는 앉거나 눕거나 엎드린 자세로 요리조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고는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오관을 활짝 열어 소나무가 내뿜는 기를 느껴본다. 오늘은 사람보다는 소나무 입장이 되어보고 소나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말을 걸어본다. 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에는 오래된 반송이 한그루 서 있다. 소나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이다. 토지대장에 등재된 주인은 성은 석(石)씨이요, 이름은 송령(松靈)이다. 매년 그 세금으로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마을의 단합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나무를 사람과 같이 하나의 인격체로 여긴 석평마을의 소나무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좋은 예이다.먼저, 소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석, 송, 령. 그리고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묵례했다. 강렬한 봄볕이 정수리에 닿아 뜨거웠지만, 소나무가 내뿜는 날숨을 들여야겠다는 욕심에 가슴부터 열었다. 어깨를 곧게 펴고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기운을 끌어와 ‘후’ 하고 뱉었다.석송령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다. 소나무 뿌리 주변에 흙이 다져지면 생장에 좋지 않기도 하지만, 나무 아래 막걸리를 뿌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과일을 두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소나무는 사람이 뿌려주는 막걸리에 취해 흥에 겨워했을까, 아름드리 몸통 앞에 놓인 바나나, 사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울타리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석송령이 지닌 이야기 따라 90년을 거슬러 간다. 이순혜 수필가 석평마을의 이수목 노인은 자식이 없어 날마다 걱정이었다. 어느 날, 꿈에 들리는 또렷한 소리 “걱정 마라, 걱정 마라” 선명하고 우렁찬 소리에 노인은 꿈에서 깼다. 노인의 걱정이 소나무에 닿았는지 소나무가 꿈에 나타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을의 영물인 소나무에 노인은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노인은 군청을 찾아가 토지의 소유주를 새 주인에게 옮겼다.천천히 석송령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석송령은 하늘로 높이 솟구치기보다는 오히려 넓게 가지를 펴면서 600년을 살아왔다. 크게 펼친 팔이 힘들어 돌기둥으로 떠받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쭉쭉 뻗어 갈 것 같다. 내일은 비바람에 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릴지라도. 건너편에 석송령의 아들 소나무가 높이를 쑥쑥 키우고 부지런히 양팔 벌리며 가지를 넓히고 있다. 아버지를 이어 석평마을의 안녕을 위해 그렇게.석평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마을의 화목을 지키는 영물(靈物)이라 믿는다. 소나무에 한 번 더 경배(敬拜)하고 발길을 돌렸다.

2021-06-09

대북 무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기로 돌아가 버렸다.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 비방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과 보수층으로부터 대북 ‘구걸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라는 정책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임기 1년도 채 남지 않는 기간에도 남북 화해의 불씨를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냉담하면서 대통령까지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무작정 북한의 호응만 기다릴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대화 제의 거부 배경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 북한의 급박한 내부 경제 사정이 대화 재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 역시 코로나 방역에 매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는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국경선 완전 통제라는 원시적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듯하다.또한 지난해의 수재와 자연재해는 북한의 농업생산량을 감소시켰다. 여기에다 김정은의 경제 개발 5개년 개혁마저 김정은이 스스로 실토한 것처럼 실패하고 인접 중국과의 국경무역량도 현저히 줄었다. 이러한 북한 내부적 위기 상황이 대외 협상력을 억압하고 있는 형국이다.북한은 과거 내부적 주민 불만을 외교적 형식을 통해 잠재우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개발된 핵전력을 앞세워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김정은 정권은 수령의 보위를 국가의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독재자 후세인이나 카다피의 말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다. 김정은 자신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한 트럼프에 대한 향수를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선미후남, 통미봉남이라는 대미 협상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러한 입장에서 북한 당국은 우리의 대북 대화 제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들은 남북 간의 어떠한 합의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실효를 못 거둔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의 역사적인 판문점선언도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라는 틀 속에서는 한 치도 진척될 수 없었다. 더욱이 북한 당국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10·4 선언이 정권이 바뀜으로써 휴지가 되어 버린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당국은 남북대화보다는 미북 대화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이런 정황에서는 정부가 대북 무시 전략이나 무관심 전략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그간의 평화프로세스로 포장된 대북 화해 포용 정책을 당분간 포기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개성의 남북 공동 사무소 폭파, 표류 남한 공무원의 확인 사살에도 유감만 표명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 당국은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은 어떤 경우라도 유지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거부하는 대북 협상보다는 우리 스스로 선제적으로 대북 무시 전략으로 기다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매달릴수록 북한 당국은 이를 더욱 외면하기 때문이다.

2021-06-09

마스크 무도회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학생들이 마스크를 안 벗으려고 합니다. 점심에 밥을 받아서 그냥 버리는 학생이 많습니다.”어느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그의 말에는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도저히 부끄러워서 마스크를 못 벗겠다고 합니다. 식당 가림막이 투명이어서 마스클 벗으면 모든 학생이 자신의 맨얼굴을 볼 건데, 밥을 안 먹었으면 안 먹었지 벗을 수가 없다고 너무도 단호하게 말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학생들 얼굴을 모릅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학생이 생각났다. 그 학생은 마스크 때문에 거의 매일 교무실에 불려왔다. 그 당시에는 교실이나 학교에서 이유 없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교사들은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마스크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많은 교사는 “지시 불이행” 항목을 적용해 그 학생에게 벌점 폭탄을 내렸다.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점을 받는다. 코로나19 예방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분에 학생들은 학교는 물론 집 안팎 모든 곳에서 마스크 안에서 산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법률까지 정해졌으니, 할 말 다했다. “어떤 학생은 성형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코로나가 끝나도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스크에 숨은 아이들 모습이 안타깝습니다.”작년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지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스크가 인류를 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부작용 또한 크다. 마스크가 막은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소통의 길까지 막아버렸다.마스크는 가면과도 같다. 가면을 오래 쓰고 있으면 내가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마스크를 벗은 자신 모습에 기겁(氣怯)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문제는 문제다. 성인들이 이러한데 학생들은 오죽할까?코로나19의 가장 큰 부작용은 학생들의 사회성 결여다. 사회성 형성의 기본은 만남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학생들은 만남의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그러니 사회성이 길러질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마스크 무도회와 같은 학교에서 과연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코로나19도 이제 서서히 종점을 향하고 있다. 사회 많은 부분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력 격차 해소와 같은 의미도 없는 성적 이야기뿐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학생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겠다고 하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제라도 제발 공부 병에서 벗어나 하루에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어주자. 마스크를 벗었을 때의 혼돈은 지금의 혼돈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2021-06-09

젊은 나라를 기다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60대가 주도하던 판이 흔들린다. 한 때 40대 기수론을 들어보았지만 30대가 지도자 반열에 선 모습은 사뭇 낯설다. 늘 보던 얼굴들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경험과 관록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보지만, 이제는 고인 물이 되어버린 당신들의 세상이 아니었던가.젊은 정치인이 선배들을 간결한 논리와 수려한 말솜씨로 마주하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다. 그가 만들어낼 충격과 변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관심을 모은다. 젊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판에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20대와 30대는 함께 뛸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선배들은 저 현상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진보의 깃발이 높기는 했지만, 함께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놓쳤던 모양이다. 공감과 배려를 말하기는 했지만, 바라보는 지평이 좁았던 모양이다. 민생의 현장과 청춘의 난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88만원 세대와 헬조선이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건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젊은 세대는 놀라우리만큼 소외되었다는 자각에 이르고 말았다. 나라경영에도 청년정책은 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고 결론은 언제나 나이든 기득권층에게만 과실이 돌아가는 듯 보인 게 아니었을까.노동현장의 안전사고, 병역과 군대의 현실, 대학입시와 대학교육, 페미니즘과 성차별, 공교육과 사교육의 부조화, 취업장벽과 불투명한 미래….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젊은이들과 관련된 정책 어젠다는 많은데 어느 하나 시원하게 정리된 게 없다.분노할 만도 하다. 그러니 젊은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는 생각도 맞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생각이 젊어져야 하고 지향점이 싱싱해야 한다. 누가 맡아도 그가 바라보는 앞길에 청년의 기운이 있어야 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그가 나이가 젊다는 까닭으로만 표심이 움직인다면 우리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젊은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의 생각이 실제로 ‘청년의 기운’을 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나이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경고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이가 젊어도 생각이 고루할 수 있고, 노년에 이르러도 젊은 생각을 샘처럼 퍼올리는 어른들이 있다. 일으킨 바람에 어울리는 젊은 기운이 나라 안에 폭넓게 번져가길 기대해 보자.이번뿐이 아니다. 앞으로 만날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우리는 젊은 생각과 싱싱한 기운을 찾아야 한다.청년들 뿐아니라 모든 세대가 젊음을 회복해야 한다. 희망과 기대를 접었다는 사람처럼 불행한 이는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떠오를 무지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온다. 젊고 싱싱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넘실대는 청년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생각이 젊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기반 위에 새 기운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1-06-09

프롭테크

프롭테크(Proptech)는 부동산 자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동산 서비스 산업을 말한다. 프롭테크의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부동산 중개 서비스, 빅데이터를 이용한 부동산 가치 평가 등이 있다.부동산 중개, 사이버 모델하우스 같은 3차원(3D) 공간설계, 부동산 크라우드펀딩,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건물관리 등도 프롭테크에 해당한다.한국에서는 지난 해 7월부터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다방이 원룸 전세·월세 계약을 모바일에서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는 전자계약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다방의 전자계약은 임차인, 임대인, 공인중개사 3자가 앱에서 전자서명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공인인증서를 깔아야하는 국토부 전자계약시스템과 달리 토스나 카카오뱅크처럼 간단한 인증절차만 거치면 된다. 계약 체결 후엔 앱에서 보증금 및 월세도 바로 결제할 수 있다.부동산 플랫폼 업체 1위인 직방은 최근 헤이카카오와 카카오 스마트 스피커에서 음성으로 부동산 정보를 검색 및 확인할 수 있는 ‘부동산 봇’ 기능을 출시했다. 카카오의 인공지능 플랫폼 ‘kakao i’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인 카카오미니에, “헤이카카오”라고 부른 뒤“OO동 OO 아파트 시세 알려줘”라는 식으로 아파트 정보를 물어보면, 카카오미니가 “O억O천만원입니다. 출처는 직방이에요”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부동산 봇 역시 프롭테크의 산물이다. 뭉치돈이 굴러다니는 부동산업계에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프롭테크 산업의 성장세는 자못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09

당신의 등불은 빛나고 있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 남유럽 어느 조그만 마을에 해가 지고 어두움이 짙어 오면 하얀 집들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다만 마을을 굽어보며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당만은 어둠을 지키듯 깜깜한 채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교회를 ‘많은 등불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400년 전 이 교회를 지은 공작에게는 10명의 예쁜 딸이 있었다. 공작은 어린 딸들이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딸들이 성장한 다음에는 바느질하는 모습, 궁전을 장식하려고 꽃다발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그런데 딸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게 되자 공작은 매우 슬퍼졌다.사람들이 위로해 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딸들의 자리가 제각기 있는데 어느 한구석이 비면 집안은 어둡고 쓸쓸하오.”그런 중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시집간 딸들이 모두 돌아와 잔치를 베풀고 공작을 기쁘게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먼 나라의 왕비가 된 딸이 오지 못해 매우 슬퍼했다. 나머지 딸들은 악사를 동원하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버지를 위로하였지만 아름다운 딸의 노랫소리를 대신하지 못했다.나이가 많아지자 공작은 후세에 남길만한 무엇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생각 끝에 아름다운 교회당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위로를 얻게 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회당이 완성되었을 때 공작은 딸들에게 보여주었다. 건물의 아름다운 선, 성스러운 내부 장식, 조각품, 색유리, 어느 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것이 없었다.교회당을 돌아본 딸들이 “그런데 아버지, 등불은 어디다 걸죠? 교회당 안에 등불이 없어요?”라고 물었다.공작은 기다렸다는듯 미소를 띠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말이다. 이 늙은 아버지의 특별한 계획이란다. 등불을 거는 데가 없지? 교회당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등불을 들고 올 거야.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 하나씩 나누어 줄 멋진 놋쇠 등을 준비해 두었단다.” 그리고 말을 잠시 끊었다가 이었다. “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의 어느 한구석은 어둡고 쓸쓸할 거야.”그로부터 400년, 그 조그만 놋쇠 등불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져 내려왔다. 누구나 그것을 고이 간직했다. 이 오래된 교회에서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면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등불을 가지고 언덕 위 교회당으로 올라간다. 교회당은 늘 마을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아무도 자기 자리가 어둡고 쓸쓸한 구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2021-06-09

대월동화와 공룡뼈

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대월동화(大月東火)란 말이 있었다. 한자사전이나 사자성어 모음집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문을 좀 안다고 해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단어다. 하지만 대구에서 학교나 청장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대구백화점은 월요일이 휴무고 동아백화점은 화요일에 쉰다는 뜻으로 일반인이 만들어낸 인조단어다. 대구와 동아백화점은 지역의 대표 유통기관으로 대구시민을 비롯 비교적 가까운 구미 경주 포항 등 인근 시군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성장을 함께 해왔기 때문으로 그만큼 시민들과 더불어 기업경영이 지속됐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양 백화점은 토종으로 지역경기의 큰 축을 담당해 왔지만 거대자본을 앞세운 수도권의 대형백화점이 몰려오면서 변화하는 세태를 극복하지 못한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더불어 대월동화라는 단어도 지워졌다. 수십년동안 함께 해왔던 기업이 영원히 같이갈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결국은 문을 닫는 사태를 보면서 시도민들도 많은 상념이 교차됐다.경북도에는 박물관 등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도청 앞마당에 있다가 청내 어린이집 옆으로 이동해 전시중인 공룡뼈다. 공룡 몸체가 아닌 뼈를 전시한 것은 ‘변화지 않으면 이렇게 앙상한 뼈만 남게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이철우 지사는 2018년 도지사 취임 후 다음해 세계적 기업인 구글 본사를 방문해 큰 감명을 받은 후 길이 10.5m, 높이 3.5m 크기의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의 뼈 조형물을 설치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후기 백악기에 생존한 육식공룡으로 가장 힘이 세 당시를 주름잡았던 공룡이다.이 지사가 공룡뼈를 설치한 것은 직원들에게 ‘변해야 산다’는 것을 강조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지사는 취임 초 “경북도 공직사회가 생각 이상으로 활력이 없고 변화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다”고 진단하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부 불평을 잠재우고 해피댄스와 맨발걷기, 간편복장 등을 도입한 것을 비롯 급기야 공룡뼈까지 가져다 놓았다. 이는 공직사회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심어주기 위한 이 지사의 몸부림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도정에 만족할 만한 변화가 보인다면 이 공룡뼈를 검무산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대월동화와 공룡뼈에 대해 재삼 반추해본다. 지역의 버팀목이었던 대구와 동아백화점도, 백악기를 주름잡았던 공룡도 변화하는 세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졌다. 이 지사가 그렇게 강조한 변화의 바람이 도정내에서 과연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는가를 한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 됐다. 내년이면 이철우 지사도 4년간의 지사 임기가 끝난다. 물론 재선의 길이 있겠지만 초임 임기 내 화두로 삼은 ‘변화의 길’이 그만큼 험난하고 어려웠던 만큼, 과연 어디까지 변화했는지 중간 결과물이라도 한번 보고싶은 마음이다. 지금 공룡은 도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가 완성돼 공룡이 도청을 떠나 검무산으로 가는 날이 언제일까. 진정 이 날이 오긴 올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도청에서 뼈만 앙상한 채 지나가는 길손의 눈팅대상으로만 있을 것인가. 오직 도청 공직자와 이 지사만이 해답을 낼 뿐이다. 많은 시도민이 지켜보고 있다.

2021-06-08

마린온 헬기

마린온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한국형 헬기인 수리온을 기반으로 만든 상륙 기동헬기다. 해병대를 뜻하는 마린(Marine)과 수리온(Surion)이 합쳐진 이름이다. KAI가 2013년 개발에 들어가 함정·해상 환경의 비행성능 검증을 거쳐 2016년 개발을 완료한 헬기다. 해병대는 2018년 1월 마린온 1·2호기를 도입하면서 해병대 사상 최초로 항공전력을 보유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동안 해병대는 자체 기동헬기가 없어 한미연합작전에 동원된 미군 상륙 기동헬기에 의존해 훈련을 받아왔다.마린온 헬기는 장거리 통신용 무전기와 전술항법 장치를 장착하고 있으며 최대 순항속도는 265km다.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으며 기관총 2정도 장착돼 있다. 특히 함상 운용을 전제로 개발했기에 기존의 수리온과는 달리 상륙함 내부에 기체를 수납할 수 있도록 헬기의 회전익 부분을 접었다 펼 수 있도록 했다.2018년 7월 17일 마린온 2호기가 경북 포항에서 기체 결함으로 이륙 직후 13초만에 추락 폭발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해병대 장병 5명이 순직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 해병대 항공전력 보유 계획도 큰 차질을 빚었지만 사고 수습을 둘러싼 논란도 크게 일어났던 사건이다.특히 철저한 원인 규명을 요구한 유족과 군부대간의 신경전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사고 원인은 기계부품 결함으로 결론이 나고 책임 소재는 결국 밝히지 못했다.유족의 고소로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를 벌였으나 결과는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로 종결됐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수사 결과에 누구보다 유족의 마음이 허망했을 듯하다. 특히 군 장병 희생에 대한 국가의 보답이란 측면에서 보면 매우 실망스런 결과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08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은 누구일까?! 온갖 고난과 난관을 돌파하지만 끝내 위로받지 못한 장발장인가, 법률의 주구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자베르인가, 아니면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가 그를 대신해 총 맞고 죽은 에포닌인가?! 단언컨대 미혼모이자 코제트의 엄마인 팡틴이 제일 불쌍하다.팡틴은 바람둥이 애인 톨로미에스에게 버림받고 홀로 코제트를 기르다 악질적인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장에 들어간다. 200년 전 프랑스는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미혼모를 박대했다. 미혼모에 문맹인 팡틴은 공장에서 쫓겨나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다가 아이 때문에 머리털을 자르고, 생니를 뽑다가 끝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만약 그녀가 문맹이 아니었다면, 인생 행로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무상으로 교육하지 않는 사회는 죄악’이라고 주장한 위고는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관철한다. 1880년대 일이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조선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프랑스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대학과 대학원도 무상으로 교육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가운데 16개국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교육을 개인의 선택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다. 내가 유학했던 도이칠란트는 1945년 제2차 대전으로 나라 전체가 폭삭 망해버린 그 이듬해인 1946년부터 전면적인 대학 무상교육에 돌입한다.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의 그들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행한 까닭은 교육이야말로 그들의 미래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변변한 부존자원이 없는 도이칠란트의 미래 먹을거리는 오직 교육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모든 외국 유학생들까지 무상으로 교육했다. 나는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많은 국민이 부실한 사립대학 문제와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걱정한다. 천만번 옳은 말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부실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을 시급히 재정비하여 퇴출하거나,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가가 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 분명히 타개할 방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재정적인 면은 훨씬 수월하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대학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연간 12조원 정도라고 한다.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15년 동안 정부는 200조가 넘는 돈을 출산장려대책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작년에는 사망자 숫자가 신생아 숫자를 능가하는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했다.애먼 일에 헛돈 쓰지 말고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면 대학 무상교육은 분명히 가능하다. 무상교육으로 젊은이들과 학부모들의 큰 시름 덜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출산 장려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와 교육부는 거시적이고 대승적인 판단을 했으면 한다.

2021-06-08

현장개선의 불씨, QSS활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은 성공한 기업들의 혁신활동을 벤치마킹하고 자구책을 세워보지만,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기에는 경영진의 높은 관심과 지원으로 활발하게 혁신활동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영진이 바뀌거나 지원이 소홀해지면 금세 멈춰 버리고 만다. 그만큼 혁신을 추진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실행하고 유지시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혁신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외부의 영향없이 스스로 일상적으로 지속해야 하고, 개선문화로 정착시켜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도출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꾸준히 실천하는 혁신, 경영진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혁신활동으로 정착시킨 포스코 고유의 현장 개선활동인 QSS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QSS는 Quick Six Sigma의 약어로 Quick은 단순히 ‘빠르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전적인 의미로 ‘역동적인’, ‘활기찬’의 뜻도 내포하여, 전원참여 속에 지속적인 낭비제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포스코는 15년 이상 중단없이 QSS활동을 추진하고 있고, 안전·환경 개선과 설비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세계적인 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로부터 10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되기도 했었다.이는 QSS활동을 통해 포스코 고유의 혁신 DNA를 내재화한 임직원들이 생산, 품질 등의 가시적인 유형의 성과는 물론, 직원 간의 신뢰증진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점진적인 무형의 변화가 더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외부에서도 포스코 QSS를 벤치마킹하려는 발걸음이 쇄도하고 있고, 이 활동은 제철소에서 해외법인, 그룹사, 협력사 쪽으로도 확산 전개되고 있는가 하면 동반성장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중소기업에도 활발히 전파되고 있다.포스코의 QSS가 성공하게 된 노하우의 첫째는 의식변화이다. QSS활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주제는 ‘마음가짐’이다. 계층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잠재된 의식을 일깨우고,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둘째는 전원참여이다. QSS활동은 전원이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운전부서 관리자가 현장에만 활동하게 하거나, 정비부서의 적극적인 참여 부족, 사무부문의 지원이 미흡해지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Top의 의지와 실천이다.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활동해 어려움과 보람을 함께 느끼면서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셋째는 인재양성이다. 모든 활동의 기반은 사람이다. 개선의지와 역량을 갖춘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여 QSS전문역량을 교육하고 개선마인드를 향상시켜야 한다. QSS개선리더는 개선 전문인력으로서 4개월간 Off Job으로 개선과제를 수행하면서 QSS제반활동을 익히고 체득하여 현업에 복귀해서는 혁신의 불씨 역할을 해야 한다. 여타의 기업에서 QSS혁신활동을 도입, 적용해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혁신활동으로 자리매김되어 자사의 독창적인 혁신문화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1-06-08

구미시 최초 4급 개방형직위 공모… 진실은 무엇인가

김락현 경북부 구미시가 역대 최악의 경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며 최초로 시도한 4급 경제기획국장 개방형직위 공모가 최근 도마위에 올랐다.공모를 통한 임용시험으로 선발된 양기철 경제기획국장이 “(자신은) 영입이 된 입장이라 시장이 어떤 면을 보고 영입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분명한 것은 구미시는 양기철 국장을 영입한 사실이 없다.지난해 6월 29일에 첫 공모를 진행했으나 적합한 인사가 없어 같은해 8월 3일 재공고를 했고, 이 때 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한 사람이 바로 양기철 현 국장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영입이 된 입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동안 경제기획국장으로 임명이 된 후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낙하산 인사’를 스스로 인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당당히 임용시험을 거쳐 들어온 인사는 ‘영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리 없기 때문이다.양 국장의 그동안의 행보도 구미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사업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양 국장은 이번 구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구미시장과) 중점적이고 핵심적인으로 추진하는 경제는 현재 트랜드인 탄소중립이나 RE100 (Renewable Energy 100)같은 새로운 비전의 사업”이라고 했다.하지만, 취재결과 장세용 구미시장은 단호하게 “현재 구미시가 추진하는 핵심사업은 스마트산단과 산단대개조 사업”이라고 못 박았다.양 국장은 정말 구미시의 핵심 추진사업을 모르는 것일까.구미시 경제기획국장 개방형직위 공고문에도 주요 직무내용으로 △경제기획국 업무 총괄 △투자유치 및 대회협력, 홍보 활동 △스마트산단 조성, 산단대개조 사업 등이 표기돼 있다. 그것도 공고문 첫장에 표기 돼 있어 공고문을 본 사람이라면 몰랐다고 하긴 힘들다.그렇다면, 양 국장이 구미시의 입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누군가는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게 없다”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만 구미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다. 그리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고, 아픈 일도 없다.대의(大義)를 위해 아프더라도 옳은 결단을 해야 할 때다./kimrh@kbmaeil.com

2021-06-07

그들만의 사랑이 누구나의 사랑이 되는 순간

이안 감독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다룬다. 1960년대 서부, 남성성의 상징과도 같은 두 카우보이의 20여 년에 걸친 관계를 그리고 있다.만년설로 뒤덮인 여름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방목하는 양떼를 돌보던 이들은 그곳의 혹독하고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서서히 피어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순간 훅하고 들어오는 감정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것 같다.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양떼들을 돌보던 두 명의 남자는 그들에게 찾아온 감정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목장주에게 들킨데다가 우박을 동반한 폭풍우로 인해 몇 마리의 양을 잃어 버리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산을 내려온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20여 년의 세월 동안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한다.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랑(퀴어 시네마)을 다루면서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의 맥락이 대단하다. 누구는 그들의 사랑 때문에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누구나의 사랑’에 관한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하다.우울하고 퇴폐적이며, 어두운 것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대자연의 풍광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이별이다.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그들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것은 눈빛과 표정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는 브로크백 마운틴이다.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공간은 그들에게 시작의 공간이었으며, 만남의 공간이며, 둘만의 온전한 장소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온전히 감정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공간을 두고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조금 다른 의미의 해석도 가능한데, 우선 그들의 직업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카우보이(cowboy)라는 직업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지만 소몰이꾼으로 서부개척 시대의 주역이었다. 숱한 서부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우보이도 모두 소떼를 몰고 다니지 양떼를 몰거나 돌보지 않는다. 아무래도 양떼를 몰고 다니는 카우보이는 익숙하지 않다.영화의 제목이며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이며, 그 이후에도 오붓한 시간을 이어가던 만남의 장소였던 곳이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일주일에 한 번 부식과 필요한 물자를 지급받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것을 빼곤 여름 한 철의 그곳은 그들에게 온전히 둘만이 존재하는 ‘에덴동산’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카우보이라기 보다는 에덴동산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영화 초반에 그들에게 양들을 방목하는 일을 주면서 목장주인 아귀레는 지켜야하는 규율을 전달하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고 에덴동산에서 살아갈 규율과 금지된 행위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이 둘의 관계는 태풍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목장을 방문한 목장 주인에게 들키고 마는데, 이때 목장주는 높은 자리에서 망원경으로 이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마치 신이 지상의 피조물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앵글이 잡힌다.목장주의 규율을 어겨 양떼를 잃어버린 것으로 이들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하산하고 일자리를 잃는다.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던 아담과 하와는 신의 규율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야기와 겹친다.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추방된 이들은 각자의 길로 돌아가 일반적인 가정을 이룬다. 4년 후 잭의 엽서를 받은 애니스는 이후 1년에 한번 꼴로 만나서 추방된 땅 에덴동산과도 같았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선까지 끌어올린 것은 침묵과 여백의 연출이며,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그들에게 에덴동산이 되어 주었던 브로크백 마운틴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침묵과 여백 사이로 잔잔한 감정들을 포진시키며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묵직하고 아프며 슬프게 달아오른다.광활한 대자연의 풍광이 작은 사진 속에 담기고, 잊혀진 소품의 등장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그 여운은 길고 오래도록 남아 잊혀지지 않는 한 편의 영화로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2021-06-07

신라인이 본 세계… 유물에서 보이는 국제관계

“흙으로 사람 모양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는 한 신라의 공인(工人)은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사람 모습을 만들고 있다. 작은 크기에 최대한 특징을 표현해야했는데, 특별한 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한 모습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역에서 왔다는 특별했던 ‘그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집중하고 있다.”월성해자에서 출토된 서역인의 모습을 한 토우(土偶)를 통해, 그 토우를 만들던 신라 공인을 떠올려 보았다. 그 공인이 만든 독특한 복장의 토우는 1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일반적으로 토우는 작은 크기(2~10cm 내외)에 그 특징을 정확히 담아낸다. 토기뚜껑이나 항아리 등에 장식적인 기능으로 부착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한 눈에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임신한 여인이 가야금을 뜯는 모습, 남녀의 성행위 장면, 얼굴이 풍선처럼 동그랗게 과장된 사람,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등이 인상적인 토우의 모습 등이다.앞서 월성해자에서 출토된 독특한 복장의 토우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복장(服裝) 표현을 비교적 충실히 하고자 했던 제작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비록 팔 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출토되어 자세를 완전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행동 혹은 자세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얼굴과 몸은 과장되지 않게 일반적인 비율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가장 관심을 끈 것은 서역인으로 추정되는 복장이었다. 머리에 띠와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천을 덧댄 터번을 두르고 있다. 팔 부분의 소매가 좁은 카프탄(caftan·지중해 동부사람들이 입는 셔츠 모양의 기다란 상의)을 입고 있으며 허리는 꼭 맞게 조여져 윤곽선이 드러나고 무릎이 살짝 덮이는 길이다.이러한 복장은 효율적인 이동성을 고려한 기마민족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서아시아나 당(唐)나라에서 호복(胡服)으로 불리던 소그드인(Sogdian·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를 근거지로 하는 현재의 이란계 주민)의 옷과 유사하여 서역의 영향을 받은 차림새로 볼 수 있다. 정확한 유래 지역과 민족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그 동안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다양한 서역 유물을 통해서도 그 연결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서역의 유물로는 이국적인 로만글라스(Romanglass·로마제국에서 제작되어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유입된 유리제품), 장식보검(계림로 14호분 출토) 등이 확인된 바 있다.서역 사람의 모습으로는 괘릉(원성왕릉)의 무인석상과 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의 토용(土俑)등이 알려져 있다. 왕릉에 부장된 로만글라스, 왕의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모습의 무인석상 등을 통해, 당시의 교류는 우연의 산물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극적인 신라 외교의 일면임을 이해할 수 있다.지금 한창 발굴조사 중인 월성에서 최초로 확인된 신라의 아주까리(파마자)씨앗은 교류의 새로운 단면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아주까리 씨앗은 주로 기름을 사용하는데 머릿기름이나 약용 식용 혹은 등잔용 기름등으로 이용하였다. 신라시대를 기록한 ‘삼국사기’ 혹은 ‘삼국유사’에는 남겨진 바가 없었는데, 이러한 아주까리에 대한 흔적을 월성해자의 깊은 흙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아주까리의 출현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씨앗이 한반도 자생종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아주까리 씨앗은 인도 및 아프리카 등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월성에서 찾은 길이 9mm, 폭 7mm의 아주 작은 씨앗이 어떻게 신라에까지 왔을까? 또 그 사용법과 재배 방법은 누가 누구에게 전달해 주었을까? 단 1점의 아주까리 씨앗은 우리에게 지금부터 풀어야할 많은 질문과 숙제를 남겨 주었다. 최문정 학예연구사 우리에게 남겨진 서역사람들의 모습은 보다 적극적으로 당시의 국제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서역의 물건과 이국적인 식물 혹은 동물들을 배에 싣고 저 먼 지중해 바다를 지나 우리에게 당도했을 것이다. 혹은 먼 사막길을 거치며 수많은 밤과 낮을 지났을 것이다. 먼 곳에서부터 신라까지 직접 운반한 사람들은 용강동 고분의 토용처럼 덥수룩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 터번을 쓰고 긴 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다. 먼 바다 혹은 길을 지나 신라에 당도한 그들도 신라의 문화를 배웠을 것이다. 그 곳은 활기가 넘쳤을 것이고,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호의적인 교환은 신라가 한반도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에서 더욱 확장해나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어느 신라 공인이 담은 서역인의 모습과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아주까리 씨앗을 통해 우리는 신라 사람들과 서역인들이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여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단서들이 모여 연결된다면, 신라의 다양한 교류 관계의 실타래를 모두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6-07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게 운전은 먼 이야기였다. 학창시절에는 스쿨버스로 통학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십 분 거리에서 자취했다. 어쩌다 먼 곳으로 놀러 갈 일이 생기면 동행하는 친구의 차에 훌쩍 올라타면 그만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서는 난폭운전을 하네, 승차감이 별로네, 하고 평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이루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내겐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게 남이 운전해주는 차인데. 왜 그렇게 힘들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나 BMW(Bus, Metro, Walk) 타고 다니잖아” 하는 시답잖은 농담에는 은근한 진심도 섞여 있었다.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뤄 놓은 지 오래였다.인생이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평생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살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나 역시도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경제 사정에 맞춰 이사 간 집의 교통이 좋지 않아 약속을 잡으면 두어 시간은 기본이요, 버스와 지하철 몇 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출퇴근도 문제였다. 차로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가 버스를 이용하면 두 시간이 훌쩍 넘었고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무척이나 지쳤다. 고심 끝에 나는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차를 구입했다.다들 가지고 있다는 ‘장롱 면허’라도 있으면 곧바로 운전 연수라도 받겠다마는. 나는 면허는커녕 자동차 핸들조차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파란불에는 가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아는 교통 법규의 전부였다.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던 날, 강사님의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저 꼭 면허 따야 해요. 차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강사님은 나를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간절함이 엿보인다는 거였다. “이를 악물고 해요.” 강사님의 말에 나는 다짐했다. 운전학원 역사상 최단 시간 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필기시험과 기능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 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달달 외워 필기시험에 단박에 합격했고 그 어렵다는 직각 주차도 거뜬히 해냈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처음 도로로 나갔을 때는 그야말로 황망한 기분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내가 벌써 도로를 달리지? 그나저나 원래 도로가 이렇게 살벌했던가? 조수석에 탈 때는 몰랐는데… 머릿속에서 나를 태우고 달렸던 운전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운전 고수였구나. 이 극악무도한 무법지대를 거침없이 누볐구나. 그들의 운전 실력을 멋대로 평가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실전이었다.뒤에서 빵빵대는 커다란 버스와 승용차들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공포의 순간이 다가왔다. “정신 차려. 여기서 들어가야 해요.” 강사님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흔쾌히 속도를 줄여 끼어들 수 있게 해주는 차도 있었지만 반대로 속도를 높여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차도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옆 차선에서 차들이 줄줄이 들어와 도저히 끼어들 수 없을 때, 별수 없이 예정된 도로를 지나서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발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 절규에 강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들었다. “본인이 끼셔야죠. 누가 끼워줘요.” 아, 그렇구나. 도로는 정말 혼자의 싸움이구나.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이 작은 공간을 내 손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이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차와 차 사이로 끼어들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면허를 취득했다. 여전히 도로는 무섭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휘발유 값과 현재 교통 상황을 알리는 뉴스도 이젠 훌쩍 가깝게 느껴진다. 비상등을 켜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그널을 목도하면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기에서도 나름의 소통 방식이 있구나. 그리고 나도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붙였구나.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다.그리하여 어느 도로에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를 만난다면 답답해하는 대신에 안쓰럽게 봐주시라. 지금 운전석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도로를 노려보며 사투를 벌이는 중일 테니.

2021-06-07

문신, 누구에게도 유해하지 않은

어느새 기온이 25도를 넘어서곤 한다. 반팔 티와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찌감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내 팔과 다리에 새겨 넣은 몇 개의 자그마한 문신들 때문이다.나는 이십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몇 개의 문신을 몸에 새겼다. 온 팔과 다리를 휘감은 커다란 문신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문양 몇 개를 조그맣게 몇 군데 새겼을 뿐인데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사로잡게 되곤 한다. 제일 오래된 문신은 오른 손목에 새긴 것인데, ‘Difference is not evil’이라는 허세 가득한 문구를 작은 팔찌처럼 둘렀다.가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姓)을 새겼고, 왼 손목에는 해와 달이 겹쳐져 있는 모양을 새겼다. 왼쪽 전완근 쪽에는 내가 사랑하는 밴드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귀엽게 그려넣었고, 오른쪽 이두근 쪽에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나무꾼을 그려넣었다. 오른쪽 발목에는 제일 좋아하는 동물인 범고래 두 마리를 그려넣었고, 양 손날에는 말씀 언(言) 자와 절 사(寺) 자를 새겨 합장을 하면 시 시(詩) 자가 되도록 새겨넣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문신은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바로 반영구 눈썹문신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예술적인 목적이나 패션의 목적으로 받은 것이라면, 이것은 미용을 목적으로 받은 것이다. 우리가 문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다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개수가 어느 정도 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 문신인가요? 그럼 안 지워지나요?’인데, 레이저 시술을 받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간혹 문신과 타투라는 용어를 달리 생각하여 문신은 안 지워지는 것이고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워지는 피부 염료인 ‘헤나’와 타투를 혼동해서 생긴 경우다. 문신과 타투는 같은 말이다. 다음으로 빈번하게 듣는 질문은 ‘아프지 않나요?’인데, 이는 부위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내 경우 도저히 참지 못할 만큼 아픈 부위는 없었고 부위에 따라서 잠시 잠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아프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아팠던 곳은 손날과 가슴, 안 아팠던 부위는 팔뚝이었다. ‘왜 했나요?’ 또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멋으로 했다. 어렸을 때는 대단한 신념이랍시고 문장이나 글씨들을 새기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나름의 멋으로 한 것이고, 대부분의 그림 문신들은 그냥 예뻐서 몸에 새긴 것이다.마지막 질문과 답으로 인해서 간혹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예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훼손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귀를 뚫는 행위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도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여러 유교적 규범들과 함께 재고가 필요한 문제이고, 오히려 그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작년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문신사법 제정을 언급하였다. 한국타투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문신 행위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며, 법원은 문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업무를 하는 경우에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박 의원은 “많은 시민들이 미용이나 자기표현의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문신 시술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합법화하고 문신사를 전문직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나 산업·보건적으로도 모두에게 이득”이라며 문신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한국타투협회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연간 국내소비 650만 건의 소비자를 보호하고 직간접적으로 22만여 명의 안전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하여 문신사법 제정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문신은 이미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예술행위로 간주되어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이 문신사에 대한 소정의 자격 또는 요건을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법적으로, 그리고 인식면에서 문신사, 그리고 문신 피시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팔과 다리에 있는 자그마한 그림들이, 또는 누군가의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문신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유해하기에 TV화면은 이를 모자이크 처리해 버리는가. 어째서 눈에 보이는 곳에 문신이 있는 사람은 경찰관이 될 수 없는가. 법률과 인식, 양면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1-06-07

다함께 만드는 행복도시

강석암​​​​​​​흥해읍 지역사회보장協 민간공동위원장 생각지도 못한 지변(地變)으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불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11·15 지진이 발생한 지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망연자실한 우리 시민들을 일일이 잡고 위로할 수도 없을 만큼 참담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발 빠른 초동대응을 시작으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포항 흥해지역 특별재생사업’을 비롯한 지진대응 매뉴얼을 체계화하여 체계적이고 일원화된 지진 대응체계 구축기반을 마련한 덕분으로 지진으로 흔들린 흥해지역에는 오는 2023년까지 총사업비 2천257억원을 투입해 도시재생 작업이 추진된다.포항시가 지난 201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토부로부터 승인받은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직접 피해지역은 재개발 및 재건축을 추진하고, 그 밖의 지역은 거점 공공시설을 비롯한 도시재생사업과 주민분담금을 최소화하는 자율주택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등 지진의 상처가 곳곳에 남은 흥해읍을 새로운 도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최근들어 하나둘씩 가시적인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흥해읍 남성리 대웅파크2차 철거부지에 문화·체육·복지시설이 입주하는 복합커뮤니티 조성공사가 시작됐다.전파(全波) 판정을 받은 ‘경림뉴소망타운’ 철거 지역에는 지상 2층 규모의 다목적 재난구호소를 올해 말까지 준공하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농구, 배드민턴 등 시민의 생활체육 여가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재난 시에는 안정적인 이재민 구호 지원 등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마찬가지로 전파 피해 아파트인 ‘대성아파트’ 부지에 특별재생사업으로 확정된 흥해공공도서관과 현장지원센터, 키즈카페, 장난감도서관, 시립어린이집으로 구성된 ‘아이누리플라자’를 건립하는 ‘행복도시 어울림 플랫폼’의 공구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오는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하기로 했다니 다행이다.포항시는 이밖에 사업을 추진하는 중간중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부족한 점은 추가사업 발굴 등을 통해서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이강덕 시장도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재생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꼼꼼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사업추진을 통해 주민 삶의 터가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아울러 ‘공동체’라는 살아 숨 쉬는 지역사업을 통해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 앞선다.우리는 ‘지진’이라는 초유(初有)의 사태를 겪으며 큰 피해를 보았지만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굳은 의지와 모두가 ‘우리’라는 하나 된 마음이 흐트러진 땅 위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우리 흥해는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과 예의범절을 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정신문화의 고장이다. 특히 그 삶의 터전 속에는 ‘신바람’과 ‘흥’이라는 희망의 유전자가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지금 우리는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행복도시 흥해!’를 다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2021-06-07

포스코의 나눔과 베풂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6월의 아침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경쾌하다. 저만치 보이는 포스텍 소나무숲 주위로는 백로와 왜가리가 유유히 날고, 효자아트홀 앞의 숲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사방에서 합창으로 들린다.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가 앞집 지붕 위로 보이는가 하면, 우거(寓居)의 뒤뜰에는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눈과 귀와 가슴을 열면 보이고 들리며 느끼는 것들이 많아서 누리달이라 하는가? 녹음이 반가운 6월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몸바친 수많은 분들과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혼신의 몸부림이 처절했었던, 위국 충의와 민중항쟁을 기리고 기념하는 때이기도 하다. 거룩한 뜻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숭고한 헌신과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보전되고 국민들의 안위가 보위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6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고 경건하게 선열을 기리고 위훈을 되새기며 추모와 보훈의 뜻을 다지게 된다.호국보훈의 달에 감사와 보은의 뜻을 담은 나눔과 베풂의 손길들이 참으로 가상하게 여겨진다. 포스코의 특별 봉사활동주간, 이른바 ‘2021년 글로벌 모범시민 위크’에 포항·광양·서울·인천지역의 그룹사·협력사는 물론 포스코그룹이 진출해 있는 6개 대륙, 53개국에서 기업시민 구성원인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봉사활동과 재능 나눔을 대대적으로 펼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코로나19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고, 특히 올해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는 의미로 지구를 살리기 위한 친환경활동 등으로 실시됐다. 작년에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를 되새기는 보훈기념물을 헌정하고,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서 조경작업 등의 환경정화활동을 하기도 했었다.여름의 길목에 이와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로 지쳐가는 이웃과 시민사회에 생기를 불어넣고, 시원한 녹음을 드리우는 푸른 숲처럼 위무와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고마운 일이 아닐까? 봉사는 남을 배려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자발적인 의지와 섬기고 받드는 자세로 타인에게 도움과 용기를 줘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다만 일회성, 쇼맨십의 봉사활동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진정성과 공익성이 나타나도록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코가 지난 1991년부터 지역사회와의 자매결연을 시작하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포스코봉사단을 창단해 임직원이 함께 하는 나눔의 토요일, 맞춤형 재능봉사, 1%나눔재단의 지원사업 등으로 체계적, 장기적인 사회공헌활동의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할 것이다. 나눔과 베풂은 소박한 마음으로 이웃과 더불어 정성을 쏟을 때 아름다운 감동으로 피어난다. 학식과 재능을 나누고 일손과 노력을 더하며 온정과 물질을 베풀면 주변과 사회가 더 밝아지고 따뜻해지리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풂으로써 느끼는 보람과 만족감은 그렇게 해본 사람만이 체득하고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그렇게 베풀고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한결 향기롭고 살맛나는 행복한 누리가 될 것이다.

2021-06-07

가상인간

가상인간은 진짜 사람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외형에 인공지능(AI) 기술로 목소리를 입힌 캐릭터를 가리킨다.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LG전자가 선보인 가상인간 김래아가 큰 화제다. ‘래아’(來兒)는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김래아는 개발 당시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7만여 건에 달하는 실제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추출,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3D 이미지를 학습시켰다. 또 자연어 정보를 수집해 목소리와 언어도 갖췄다.LG전자는 래아에게 나이와 직업 등을 부여했다. 래아는 올해 23세의 여성으로, 본인을 싱어송라이터 겸 DJ라 소개한다.실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어 팬들과 일상도 공유하고 있다. 현재 게시물은 80개, 팔로워는 9천625명이다. SNS 게시물 상 래아는 흔한 20대 여성과 다를 바 없다.유튜브에서는 가상인간 ‘루이 리’가 화제다. 루이 리는 노래와 춤이 특기인 22살 여성 인플루언서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1만9천여 명을 보유, 각종 팝송 커버 영상을 올리거나 일상 속 브이로그를 공유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루이 리는 온라인 쇼핑몰 ‘생활지음’의 모델로 발탁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다.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를 끄는 가상 인간은 ‘릴 미켈라(Lil Miquela)’다.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를 합해 500만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미켈라는 캘빈 클라인, 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 했다.릴 미켈라를 만든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는 2019년 13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진짜같은 가짜’가 인기를 끄는 첨단과학 발전이 눈부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6-07

알맞은 삶을 위하여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꼬마 요정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지요./ 백합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골짜기에서./ 그에게 왜 그렇게 자그마한가 물었지요. / 그리고 왜 키가 자라지 않느냐고요. // 꼬마 요정은 얼굴을 찡그리곤, 눈을 들어 / 나를 뚫어지게 보고 또 보는 것이었어요./ “나에겐 이 정도의 크기가 알맞아.” 그가 말했지요./ “너에겐 너 정도의 크기가 알맞듯이!” - 존 켄드릭 뱅스‘꼬마 요정’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20년 전 큰애에게 사준 동시집 ‘동생의 비밀’에 나오는 시다. 며칠 전 김경일 교수의 ‘적정한 삶’을 살자는 주장을 듣다 보니, 이 시가 생각났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은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를 뿐 우열은 없다고 한다. 자신의 그릇 크기에 알맞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자신의 그릇 크기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극대화를 추구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도 하고 지당하기만 한 말이라고 외면하기 쉽다. 동의한다 하더라도 내 그릇이 어떤지 잘 모르고 삶에 적용하기도 막막하다. 20년 전 내가 그랬듯이.그러나 지금, 저 시를 대하는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내게 알맞은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제는 알맞음이나 적정함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극대화한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은 아니다. 돈이나 지위를 극대화하려는 마음은 애당초 많지 않았기에 아쉬움도 별로 없지만, 학문의 길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은 아직도 불쑥불쑥 뒷머리를 잡아당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나간 선택을 아쉬워할 것인가?사실 알맞음이나 적정함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알맞음은 시행착오를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고요한 장소를 찾아 명상하는 것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도 자신에게 알맞음을 찾아가는 방법이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올해는 꼭 매주 공부 모임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운 좋게도 딱 맞는 인원이 모여서 몇 달째 매주 공부를 하고 있다. 첫 주제로 인지심리학 관련 책을 선택했다. 지난주에는 1년 후에 내게 다가올 새로운 경험을 상상해보고, 그 경험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이런 작업은, 현재 내게 불편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자각으로 고통을 줄여준다는 치료적 효과도 있지만, 1년 후 내 삶을 내게 알맞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보편적 효과도 있다.대학 재직 때는 우수 강사로 뽑히는 동료가 부럽기도 하고, 잘 팔리는 인문학 저술가를 보면 남몰래 열등감이 폭발하기도 했다. 페북에 좋아요가 몇백 개씩 달리는 인플루언서 페친도 나의 무능을 자극했다. 매주 공부를 하면서 내가 못났기 때문에 그것들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이 내게 알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서로 격려하면서 공부하고 함께 성장하는 작은 공동체적 방식이 내게 알맞은 크기인가보다 하는 발견도 덤으로 얻는다.

2021-06-07

칠곡할매글꼴을 아시나요?

백선기​​​​​​​칠곡군수 스마트 시대를 이끌었던 혁신적인 제품 아이폰(iPhone) 신화의 주인공인 스티브 잡스가 글꼴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스티브잡스는 대학을 중퇴했고, 캠퍼스 내 수업 도강을 하던 중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은 경험을 2005년 한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내 인생의 전환점은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통해 타입과 타이포그래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고 했다.스티브잡스는 학창시절에 배운 개러몬드(Garamond) 서체를 현대적으로 개선해 ‘Apple Garamond’ 서체로 발전시켰다.Apple Garamond 서체를 애플사의 모든 제품과 광고캠페인에 적용해 애플만의 독자적인 감성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성공신화를 만들었다.다양한 글씨체가 많은 사회일수록 이를 활용한 글꼴과 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하고 관련 산업이 성장한다.글꼴은 디지털 강국과 디자인 강국으로 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한글 글꼴산업은 과거에 비해서는 성장했지만 아직도 양적으로나 질적인 측면에서 주요 선진국 언어에 비해 미흡하다.최근 저작권 걱정 없는 무료폰트 배포가 붐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아직 사용자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이러한 상황에 지난해 12월 우리 칠곡군에서 이색적인 글꼴을 제작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400분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일제강점기 전후 태어나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한글 문화유산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다.글꼴은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등 5가지다.할머니들은 자신의 손 글씨가 영원히 보전된다는 설명에 한 사람당 2천 여 장씩, 총 1만 장에 글씨를 써가며 글꼴 제작에 정성을 들였다.칠곡군에는 고향과 어머님의 따뜻한 정을 품고 있는 칠곡할매글꼴 열풍이 불고 있다.로얄사거리, 회전교차로 등 칠곡군 주요 거리에는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이색현수막이 내걸리고 있다. 반듯하고 가독성이 좋은 글씨체가 아니라 마치 초등학교 저 학년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 같다.현수막 하단에는 글꼴의 주인공인 칠곡할머니 다섯 분의 이름이 등장한다.칠곡군 공직자들이 내미는 명함도 삐뚤빼뚤한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됐다.저 역시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한 다섯 종류의 명함으로 할머니 글꼴 홍보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왜관 시장 상인들은 칠곡할매 글씨체로 제작한 메뉴와 전단지를 사용한다. 고객에게 정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칠곡군에서 시작된 칠곡할매글꼴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주)한글과 컴퓨터가 제작한 한컴 오피스 프로그램에 탑재되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애용하는 한글프로그램에서 칠곡할머니들의 글꼴을 사용할 수 있다.또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에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이밖에도 대한민국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경주 황리단길에 칠곡할머니의 글꼴로 제작한 가로5m, 세로10m의 대형 글판이 내걸렸다.스티브잡스가 Garamond 서체를 통해 새로운 혁신 제품을 만들었듯이, 21세기 디지털 가상공간에서도 우리의 서체가 오랫동안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글꼴이 생성돼야 한다.이를 위해 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글씨체 등 기록문화자원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한다. 또 개인별 손글씨체를 기증받고, 이를 상업적,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작권 등 법제도적 측면을 강화하고 지원해야할 것이다.디지털 시대의 글꼴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작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2021-06-06

숲이 전하는 소나타

숲에서 듣는 빗소리는 녹색 소나타이다. 올해는 며칠에 한 번씩 비님이 오시니 푸른 연주를 듣기 위해 내 발길이 자꾸만 숲으로 향한다. 첫 방문 때 보이지 않던 나무가 두 번째엔 눈에 띄었고, 맑은 날에 미미하던 으름덩굴 꽃 향이 빗소리에 묻어오니 더 진했다. 며칠 전 찾아간 가로숲은 미나리냉이가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초록 융단에 별을 박은 듯했다.‘의로운 성’이라 이름할 만큼 의로운 선비가 별처럼 많았던 곳이 어디일까? 바로 의성이다. 남부의 반촌이라 불리는 산운마을이 있는가 하면, 북부의 반촌으로 알려진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사촌 마을’이 있는 곳이 의성이다.사촌마을은 풍수상 명당으로서 딱 하나가 부족했다. 마을 뒷산으로 문필봉이 떡 버티고 서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서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오른쪽 지형은 광활한 들판이어서 우백호가 없었다. 그래서 풍수를 위해 방풍림을 심었는데 지금 이 숲이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된 ‘사촌리 가로숲’이다. 마을에서는 서쪽에 있는 숲이라 하여 ‘서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가로숲이라는 이름은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조성한 숲이라서 붙여진 명칭이다. 간혹 길을 의미하는 ‘가로(街路)’로 잘못 알기도 한다. 원래의 이름은 마을 남서편의 바위 언덕을 가리고 마을 서편의 긴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어 ‘가리쑤’라고 불렀다. 이곳은 물길이 짧고 모래가 많아 비가 오면 물이 한꺼번에 흐르고 금방 땅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어서 물길도 보호하고 바람도 막아 마을 터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숲을 만들었다. 이 숲이 우거지자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과 홍수를 막아주어 사촌마을은 살기 좋은 터전이 되었다.사촌 가로숲에는 오래 사는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팽나무를 심었다. 그 사이에 키를 맞추고 선 아카시아도 아름드리로 자라 향기를 바람에 실어 마을로 보낸다. 마을을 이룰 때 심은 나무들이 이제 수령이 600년에 이른다. 길이 1㎞에 폭은 45m 정도의 숲 사이를 흐르는 물길은 큰비가 오면 하천 바닥에 흙이 많이 쌓이고 나무들도 자주 유실되었기 때문에 숲과 하천 관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씩 인근 10리 안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흙을 걷어 내고 숲을 돌보았다고 한다. 숲의 소유는 마을을 일군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이며, 관리는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의성군으로 넘어갔다. 마을에 서림계 문서인 ‘서림 계문부(西林契文簿) 병인년(1926) 5월 일’과 ‘임원록(1987)’이 남아 있다.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마을에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했는데, 신라 시대 한 명, 조선 시대 류성룡이 있었다. 아직 한 분이 남았다. 큰 인물이 태어나면 항상 전설이 따르기 마련이다. 서애 어머니가 서애를 낳기 위해 친정집에서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가던 중 갑자기 산기가 와서 가로숲에서 해산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서애의 경우 외가에서 태어났다.사촌마을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1392년으로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안동의 회곡에서 이주해 오면서이다. 오래된 마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을에는 지은 지 100여 년의 한옥들만 보인다. 그 이유는 임진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이 마을을 왜군들이 불태웠고, 구한말에는 명성황후 시해 후 이곳에서 병신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또다시 마을을 불태우는 바람에 황폐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사촌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택은 1582년에 지은 만취당으로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만취당에는 만년송이라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만년송’이라는 소나무 이름을 붙였지만,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병신의병도 모두 지켜본 증인이다. 가만히 나무를 올려다보니 세 번째 정승이 의병 그들이라고 내게 전한다. 가로숲에서 들려오는 녹색 소나타가 만년송을 흔든다. /김순희(수필가)

2021-06-06

국민의힘 全大는 외연 넓히는 場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달 청와대 5당 대표 오찬 간담회에서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에게 “거기 진짜 이준석이 되냐”고 거듭 물었다고 한다.집권당 대표로서는 다양한 테이블에서 마주앉아야 할 제1야당 대표가 누가 될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송 대표의 질문에는 호기심 반, 우려 반의 감정이 교차한 것으로 보여진다. 거침없이 의사표현을 하는 이준석과 마주앉아 협상을 하는 자기모습을 그려보면 기가 찰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에서도 현재 국민의힘 변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이 전 최고위원이 최근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할 변화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4·7 재·보선 참패 후 강성당원들의 문자폭탄으로 변화의 흐름을 놓쳤던 여당으로선 아프게 느껴질 부분이다.한국정치사에서는 한번도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는 30대 정치인이 당 대표 선거에서 선두를 다투는 적은 없었다. 어느지역이냐, 몇선이냐로 승부가 결정되던 보수정당 전대에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선거역사가 오래된 미국과 유럽에서는 젊은 정치인들의 도전으로 당이 혁신되고 국정운영이 획기적으로 바뀐 사례가 다소 있긴 하다.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 보면 민심은 국민의힘에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것을 건강하게 보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역동성과 의외성은 생명이다. 이준석 돌풍을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당원과 보수층의 열망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4·13 총선 참패 이후 수없이 혁신을 내걸었으나 일반 국민 눈에는 여전히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심은 지금 제1야당에서 나타나고 있는 격식파괴, 탈권위적 비전을 접하면서 정치권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이분법 진영 논리로 국민을 분열시킨 기존 정치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며칠 남진 않았지만 아직 변수가 있긴 하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문항 역시 스스로 지지자라고 주장한 응답자들의 지지율이다.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당원들의 선택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론조사와는 달리 투표장에 가면 ‘경험 없는 당대표가 대통령선거를 어떻게 이끌까’라는 분위기가 확 퍼질 수도 있는 것이다.누가 당대표가 되든 이번 전당대회에서의 이준석 돌풍은 제1야당이 환골탈태 수준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힘이 정권교체 대안세력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지역·이념·세대별로 고른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준석 대세론’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계파·배후설이 계속 나오면서 전대분위기가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선거과정에서 당연히 나올 수도 있는 논란이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야권파이를 키우는 장(場)이 돼야 한다.

2021-06-06

호국의 달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다. 무덤에 꽃을 장식하며 남북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던 데코레이션 데이에서 유래 돼 기념일로 정해졌다.미국은 이날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고 국민은 전몰장병을 기리기 위해 거리에 나와 꽃을 뿌리는 행사도 한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1월 11일을 현충일로 삼는다.우리는 24절기 중 9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망종(芒種) 날을 현충일로 잡았다. 예로부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는 사초와 성묘를 하고 6월 6일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졌다. 망종은 보리가 익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때라 농경사회에서 가장 좋은 날로 손꼽힌 날이다.정부가 6월 6일을 현충일로 잡은 것은 이런 전통 풍습과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이 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함으로써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마침 6월은 1일이 의병의 날이고 29일은 제2연평해전 추모일이 겹쳐 호국보훈의 정신을 살리기에 적합한 달이다. 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 희생정신을 통해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에도 좋은 때다.어제가 현충일이다. 북한의 침범으로 발발한 전쟁에 희생된 전몰장병과 순국선열의 고귀한 호국정신을 되돌아 본 시간이었다. 특히 이달은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돼 어느 시기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 것도 의미가 있다.대구 경북에는 호국의 정신을 기릴 많은 보훈시설이 있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나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낙동강 승전기념관,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등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한 번쯤 이곳을 방문, 그들의 호국정신을 새기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6-06

뉴어바니즘 시대의 도시계획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도심의 황폐화, 도시의 무질서한 공간확산 및 주거지의 교외화로 인한 통행거리의 증가와 낭비적 교통수요의 발생, 도시 내 대기오염의 증가와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개선하고자 도시계획가와 도시 전문가들의 뜻이 모여 시작된 새로운 도시계획 사조(思潮)이다.뉴어바니즘은 도시 토지이용의 지나친 기능 분리와 도시의 외연적 확산이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도 악화시킨다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대두한 개념이다.뉴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도시계획 사조를 잉태한 이러한 문제 인식은 미국 도시들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매우 적절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도시들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는데도 매우 적절한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도시들도 개별 도시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미국 도시들의 개발과정을 시차(時差)를 두고 답습했던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우선 미국 도시들의 경우를 보면 승용차의 대량 보급과 함께 미국인들의 쾌적하고 넓은 주택수요를 충족시키려고 도시 외곽지의 택지개발을 추진한 결과 도시의 외연적 확산이 보편화됐고, 도심은 야간에는 불이 꺼진 유령의 도시가 됐다. 그 결과 미국 도시들의 도심은 범죄의 온상이 됐고, 주거기능은 쇠퇴했다. 그리고 도심에 남아 있는 일부 주거기능은 저소득층의 주택수요를 충족하기에 급급했다.우리나라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에서 새로운 주택공급을 위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함으로써 시민들의 통행거리와 통행시간을 증가시킨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이러한 사례는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주택공급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하다 보니 시민들의 통행거리와 통행시간 증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도시에서 도심의 쇠퇴를 가져온 것은 물론이고, 도심에서 주거기능이 거의 사라짐으로써 학교가 폐교되고 야간에는 도심이 활기를 잃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이처럼 도심의 주거기능 축소, 도시의 무질서한 공간확산 및 주거지의 교외화, 도시 토지이용의 지나친 기능 분리 등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도시문제를 종합적으로 개선하고자 뉴어바니즘이 새로운 도시계획 사조로 나타난 것이다.그리고 뉴어바니즘은 1990년대부터 다양하고 구체적인 도시계획 기법을 통해 현실에 접목되기 시작했다.예를 들면 스마트 도시성장(smart urban growth), 압축도시(compact city), 혼합적 토지이용(mixed land use), 대중교통 중심개발(TOD: Transit Oriented Development)을 들 수 있다. 스마트 도시성장은 신개발지의 개발보다는 기개발지 내에서 주택, 상업, 업무 기능의 개발을 강조함으로써 신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보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이 추진되는 도시재생사업도 스마트 도시성장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압축도시는 도시의 무질서한 외연적 확산 대신에 기개발지나 신개발지를 개발할 때 고밀도로 개발함으로써 자연환경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 직주근접(職住近接)을 유도해 시민들의 통행거리 감소와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그러나 무분별한 압축도시의 개발은 녹지공간의 확보를 저해할 수 있어 개발밀도의 선택과 녹지공간의 확보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혼합적 토지이용은 도시 내에서 토지이용의 지나친 기능 분리는 시민들의 원거리 통행을 발생시키고 교통비용의 증가와 에너지의 낭비를 가져올 것이라는 인식 아래 토지이용의 무분별한 분리 입지보다는 토지이용의 적절한 혼합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 시도되기 시작했다.대중교통 중심개발은 도시철도 역세권이나 버스정류장 주변지역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에 고밀도 도시개발을 유도해 시민들의 승용차 의존도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는 목적을 가진다. 따라서 대중교통 중심개발도 궁극적으로 도로교통 혼잡을 완화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뉴어바니즘을 현실에 접목하도록 시도한 이러한 도시계획 기법들은 우리나라 도시들에서도 활발하게 적용돼야 한다. 도시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도시기본계획을 비롯해 도시관리계획과 각종 사업계획에서도 스마트 도시성장, 압축도시, 혼합적 토지이용, 대중교통 중심개발의 개념을 구체화해 적용돼야 한다.특히 많은 도시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과 도시정비사업에서도 스마트 도시성장, 압축도시, 혼합적 토지이용, 대중교통 중심개발의 개념이 도시의 규모와 특성에 맞게 적용돼야 한다.이제 대구·경북지역의 도시들도 뉴어바니즘 시대의 도시계획 기법들의 도입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힘써야 한다.

2021-06-06

‘홈 트레이닝’ 바르게 하고 계신가요?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실내 및 야외에서 하는 운동시간도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살천지’, ‘확찐자’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운동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그래서 집안에서 자기의 체중이나 소도구를 운동 부하로 이용하는 ‘홈 트레이닝’ 인구가 늘고 있다.그런데 집에서 간편하게 하는 운동일지라도 잘못된 자세나 동작은 통증 발생과 부상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관절의 비대칭 변화는 점차 근육들을 변형시켜 신경의 기능까지 저하시킨다. 게다가 잘못된 호흡은 운동효과는 물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간편한 홈 트레이닝도 제대로 알고 해야 하는 이유이다.스쿼트(Squat) 운동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효과적인 맨몸 운동 중 하나이다. 스쿼트 운동은 우리 몸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다리와 엉덩이를 만들어주고 혈액순환의 개선과 건강한 관절과 뼈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잘못된 자세와 동작으로 하는 스쿼트 운동은 무릎과 허리 부위에 통증과 부상이 따를 수도 있다.스쿼트 운동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잘못된 자세로는 먼저 무릎이 전방으로 지나치게 쏠려 발끝 선을 넘어서는 것인데,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체중이 무릎에 과하게 실리게 되어 무릎 부위에 통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허벅지가 안쪽으로 회전하면서 무릎사이 간격이 좁아진 형태인데, 이런 경우 엉덩이와 허벅지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며 무릎통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이밖에도 허리를 포함한 어깨가 둥글게 말린 자세는 허리에 압력이 가중되어 허리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스쿼트 운동의 올바른 자세는 우선 다리를 어깨넓이나 조금 더 넓게 벌리고 허리를 곧게 세운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가슴과 등을 반듯하게 편 자세로 의자에 앉듯이 무릎을 구부린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자세를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기 쉬운데, 처음에는 상체를 약간 전방으로 기울이다가 동작이 익숙해지면 차츰 편 자세로 변형하면 된다.그런 다음 허벅지와 지면이 수평을 이루면 호흡을 내쉬며 일어선다. 이때 복부에도 힘을 주면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허리는 굽히지 않도록 한다. 올라갈 때는 내려올 때보다 약간 속도를 내는데, 내려갈 때와 올라갈 때의 비율은 1.5 대 1이 효과적이다. 물론 초보자, 또는 재활에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1 대 1 비율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스쿼트 운동에 참여하는 주요 신체부위와 그에 따른 동작을 정리해보면,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며 허리는 부드럽고 곡선을 유지하며 펴준다. 무릎은 발끝보다 앞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며 최대한 90도를 유지하고, 엉덩이는 의자에 앉는 기분으로 앉는다. 특히 호흡이 중요한데, 앉으면서 들이마시고 일어나면서 내쉬는 것이 효과적이다.스쿼트 운동은 방법도 중요한데, 자기 체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릎을 붙이고 똑바로 섰을 때 무릎 사이 간격이 2.5cm 이상이면 무릎내반슬, 즉 ‘오다리’라 한다. 오다리의 경우 발을 모으고 하는 ‘내로우 스쿼트’가 효과적이다.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내로우 스쿼트는 일반 스쿼트에 비해 다리 내전근에 자극이 커서 내전근이 약해 무릎과 다리가 벌어진 상태인 오다리를 교정하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서 넙다리곧은근, 척추세움근 및 가쪽넓은근이 더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나이가 많고 근력이 적어 스쿼트 동작이 어렵다면, 다리를 어깨 너비보다 더 벌리는 ‘와이드 스쿼트’가 효과적이다. 와이드 스쿼트는 발 사이 간격이 넓다보니 자세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무릎에 힘이 덜 들어가는 편이라 다소 유연성과 근력이 떨어지는 중장년층에게 적합하다. 스탠스 너비가 넓어지면 무릎관절을 굽히는 근육(뒤넙다리근, 햄스트링근)이 더 활성화된다는 연구의 결과도 있다. 다만, 어깨 너비 2배 이상의 ‘쩍벌’ 수준으로 다리간격을 벌리고 하면 엉덩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이같이 자신이 특별히 발달시키고자 하는 하체 근육들이 있다면, 내로우 스쿼트이든 와이드 스쿼트이든 운동 방법을 선택해서 조절하면 된다. 그러나 극단적인 내로우 스쿼트나 와이드 스쿼트는 통증과 부상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더욱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스쿼트 동작을 했을 때 무릎 통증이 느껴진다면, 무릎을 30도 정도만 구부리는 미니 스쿼트가 효과적이다. 무릎을 30도 정도만 구부리게 되면 연골판에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자세와 동작으로 하는 운동은 부적절한 감각정보를 중추신경에 전달하여 잠재적 상해를 야기할 수 있다. 비대칭 자세로 스쿼트 운동을 지속하게 되면 잘못된 감각정보로 인해 허리, 무릎, 대퇴이두근 등에 심각한 부상의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간편한 홈 트레이닝도 정확한 자세와 동작을 제대로 알고 해야 약이 된다.

2021-06-06

장미, 함박웃음 메시지 내다

강길수 수필가 요즈음은 아침마다 즐겁다. 또, 당황스럽다.“어서 오세요. 잘 다녀오시고요. 호호!”하고 함박웃음 머금은 인사를 받으며 출입문을 나서기 때문이다. 문 오른쪽, 담장과 서로 벗 삼아 기대어 활짝 핀 얼굴들이 초록 손을 흔든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은 담장과 그 벗이었다. 한데, 올해는 왜 유달리 사람을 더 사로잡으려는 듯 일제히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일까.웃는 벗과 어우러진 담장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마운 줄 올해 처음 알았다. 원래 아름다운 모습에다, 절박한 시대의 메시지까지 덤으로 선물하니 어찌 기쁘고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1년 반 이상 이어지는 안개 속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강제로 시행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국민의 일상을 많이도 집어삼켰다. 총체적 난국에,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로 겨우 속풀이나 해야 하는 무기력한 우리 민초들의 일상….반복되는 무기력 앞에서도 눈을 뜨게 한 6월의 함박웃음 머금은 상기된 얼굴들. 둘러보니 웃는 얼굴들이 우리 아파트담장뿐 아니라 공터 펜스 아래도, 학교 담장에도, 방송국 화단에도, 동네 공원에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근년 들어 봄꽃들이 한꺼번에 더 일찍, 더 활짝 피어나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 봄엔 이팝꽃이 유달리 하얗게 오더니, 올핸 장미꽃이 상기되어 웃는 얼굴로 아침마다 달려왔다.장미꽃을 비롯한 봄꽃들이 근자에 왜 한꺼번에 활짝 피어날까. 사람들은 봄꽃들 앞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무심하겠지. 나처럼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인간과 공동운명체이면서 가장 큰 생태계 구성원인 식물의 경고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인공위성이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 성간을 날고, 소행성과 화성에도 착륙하여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우리 사는 푸른 지구별이 잘못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우리는 다가올 5G(generation) 이동통신과 그 이후 시대를 코로나19로 앞당겨서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온 분야를 더 자동화되고, 더 빠른 사물인터넷 세상으로 만든다. 그러면 오프라인 곧, 대면 관계가 거의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이루어 간다’고 인간은 지금 뻐기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 세계가 가상 세계이고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보이지 않는 지배자들이 욕심내고 있을 수도 있다. 나아가 인체와 기계가 결합한 포스트휴먼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들 눈에 지구 어머니가 애써 참아내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보일까. 그렇다면 저 장미꽃들의 매스게임 같은 함박웃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아름다운 부름을 듣고 애틋한 메시지를 보며 당장 실천해야 한다. 제발 지구환경을 지키고 개선하는 대명제 앞에 나라 간, 정치세력 간, 문화나 종교 간의 이해득실을 따져서는 안 된다. 우선 지구 어머니를 구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장미는 지금 아우 꽃봉오리를 맺을 겨를도 없이 일제히 피어올라 6월의 하늘과 산하, 마을과 도시에 함박웃음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우리 함께 지구별을 구해내어요!’ 라고….

2021-06-06

‘호국문화의 길’을 걷다

윤영대 수필가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이맘때가 되면 6·25 전쟁의 상흔이 생각나고 그 일선에서 산화해간 선열들의 호국정신을 받들고 싶어진다.올해 6월 6일은 66회 현충일이다. 추모의 마음을 다짐하기 위해 현충탑을 찾아보니, 6·25 전쟁의 최후 보루가 되어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대반격의 기점이 되었던 포항지역에는 28곳의 현충 시설이 있다.먼저 수도산 덕수공원에 있는 충혼탑으로 갔다. 나루 끝 철길 숲이 시작되는 오른쪽 산길 옆의 하얀 충혼탑 표석을 따라 깨끗한 꽃길을 올라 넓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육·해·공·해병 그리고 경찰과 학도의용군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힘차게 외치는 좌우 청동 군상 두 개가 중앙에 조용히 선 횃불 모양 탑을 지키듯 한다. 알고 보니 호국영령들의 눈물을 표현한 물방울 조형물이 무궁화 꽃 기단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전투 장면이 길게 새겨진 뒷벽 부조의 뒤로 가면 위패봉안실에는 6·25때 전사한 군인 등 호국영령 2천295위의 위패가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셔져 있다. 탑 앞에 놓아둔 하얀 국화 앞에서 손 모아 묵념을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내려와 그린웨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포항여고 앞 ‘학도의용군 6·25전적비’로 갔다. 6·25 당시 포항여중 전투에서 펜 대신 총을 잡고 교복을 입은 채 싸운 71명의 학도의용군을 기리기 위해 5년 전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8월 그날 새벽, 북한군과의 전투 상황을 묘사한 아트타일 벽화로 둘러쳐진 잔디밭에는 한 손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학도병 동상과 이우근 학도병의 애끓는 편지가 새겨진 동판이 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라고 절규한 학도병은 끝내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학도병의 편지에 끌리듯 발길을 돌려 탑산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으로 갔다. 짙은 6월의 녹음에 싸인 둥근 기념관은 군번도 없이 산화한 어린 꽃봉우리 47명 등의 영령들이 봉안되어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조용히 들어가서 정면의 학도의용군들 사진에 목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박격포, 소총, 따발총 등의 무기와 함께 학도명단과 학생증 등 유품들을 살펴보고 현충 시설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자료와 책자를 건네준다.오른쪽 숲길 입구, 학도병 자식을 애잔한 손짓으로 잡으려는 어머니 동상 옆으로 계단을 조금 올라간 산마루에는 ‘포항지구전적비’가 힘차고 좀 더 오르면 청동 부조의 ‘전몰학도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 뒤돌아 내려다보니 동해의 푸른 바다가 평화롭다. 마지막으로 송도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미 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와 ‘포항지구전투전적비’로 가서 흐릿한 비문을 손으로 어루만져 읽고 바닷가에 서서 포항지구 전투를 상상해 본다. 요즈음 SNS에는 숙연히 추념해야 할 현충일이 대체공휴일 논란으로 법석댄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21-06-06

아듀! 대백 본점

대구시민에겐 대구백화점보다는 대백이란 이름이 훨씬 더 친숙하다. 1944년 창업주 구본흥 회장이 설립한 대구상회에서 출발해 1969년 주식회사 대구백화점으로 변신했던 동성로 소재 대백 본점이 이달 말로서 영업을 끝내고 역사의 길목으로 사라진다.대백 본점은 폐점에 앞서 6월 한달동안 본점 1층에 마련된 특별공간에서 고별 전시회를 개최한다. 대백 77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각종 사진물과 기록물 등을 전시하고 대백에 대한 대구시민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대백 본점은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면서 대구시민에게는 쇼핑센터 이상의 의미가 있는 역사 공간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이곳에 세워진 백화점은 동성로에서 최고의 만남의 장소다. “대백 정문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관용어로 쓰일 정도였다. 대구시민의 대백 사랑 또한 유별했다. 전국에서 지역에 본사를 둔 백화점이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 남아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하다. 대구백화점과 쌍벽을 이뤘던 동아백화점이 2010년 이랜드 그룹에 인수되면서 대백은 지방에 남은 전국 유일의 기업이다.1973년 신세계백화점이 대구에 진출했다가 대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했다. 1997년 IMF 사태 때는 부산의 5개 백화점이 폐점되고 광주 화니백화점이 부도를 냈으나 대구 백화점업계는 명맥을 이어갔다. 특히 대구백화점은 지방유통업체로서는 최초로 코스피에 상장되는 기록을 세웠고 1984년 유통업체 최초로 은탑산업훈장도 받았다.대구시민과 함께 52년을 동행한 대백 본점의 폐점은 대기업에 밀려난 지역백화점의 퇴출이라기 보다 대구시민의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추억 장소가 사라진다는데 더 큰 아쉬움이 있다. 대백 본점의 고별전이 유난히 마음을 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6-03

문재인 정부 3대 실책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시행된 여러 경제정책들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고,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정책을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 아마 부동산정책이 1번이고, 그 뒤를 이어 일자리정책과 탈원전정책이 꼽힐 듯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대변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패착 중 패착으로 매겨질 법하다.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던 문 대통령은 취임4주년 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인했다. 실패 원인은 뭘까. 공급정책이 아닌 수요억제책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부동산값이 뛰는 것은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주택자들이 많이 사서 문제니까 다주택자들이 사지 못하게 수요 억제를 하면 주택시장은 안정화될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과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수요 억제책은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언젠가 수요가 들불처럼 일어서 급등하는 시장이 연출되고 만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3억에서 8억으로 뛰어오른 서울의 아파트 값 폭등 앞에 고개를 숙였다. 또 취임 직후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어놓고 매일같이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이 요즘 일자리 만들기에도 실패했음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산업의 영역에 따라 경기 회복이 불균등하고, 일자리의 양극화가 뚜렷하며, 무엇보다 일자리 사정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2월과 비교해 아직 30만 개의 일자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청년과 여성의 구직난이 계속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영난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탈원전정책 역시 세계적인 원전건설기술 보유국인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입혔다. 원전 기술 자립을 위해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한국 표준형 원전은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국에서 스스로 ‘원전의 위험성’ 운운하며 건설을 포기한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없다. 또 우리나라에 있는 원전은 모두 가압경수로 방식이다. 원자로에서 물이 담긴 용기에 간접적으로 열을 가해 데우거나 끓이는 중탕(重湯)방식으로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리니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적다.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탈원전정책을 내걸고, 건설이 완료된 신한울 1·2호기 가동을 가로막고, 합법적으로 추진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조차 재개하지 않고있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으로 탄소제로의 원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선진국들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원전 가동이 불가피하다면서 탈원전 때문에 석탄, 갈탄을 때고 있는 독일과 메르켈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갈 길은 먼데, 해가 저무는’ 처지가 된 문재인 정부가 저질러놓은 3대 실책을 어떻게 주워담을 것인지 걱정스럽다.

2021-06-03

모내기 풍경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모내기철이다. 논배미마다 물을 가득 싣고 트랙터로 써레질을 하여 이앙기로 모를 심는다. 소를 몰아 논을 갈고 손으로 모를 심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이앙기 몇 대가 드넓은 들판에 모내기를 끝내는데 불과 일주일 남짓 걸린다. 손으로 일일이 모를 심는 데는 온 동네 사람들을 총동원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던 시절과는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모내기철은 농번기 중에도 가장 바쁜 때였다. 보리를 베고 타작을 하는 일과 겹치기 때문이다. 논에도 이모작으로 보리를 심었으니, 그것을 베어내고 나서야 논을 갈아 모를 심었다. 초등학생들까지 일손을 도우라고 가정실습이란 명목으로 일주일가량 휴교를 했다.모내기를 하려면 당연히 물이 있어야 한다. 봄 가뭄이라도 들면 저수지가 없는 천수답 주인은 하늘만 쳐다보며 애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길도 온 들판을 다 적시기에 넉넉하지 않으면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끌어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들판에서 밤샘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물꼬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죽하면 ‘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제 논에 물 들어가는 걸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지금은 저수지 정비는 물론 들판 곳곳에 관정까지 뚫어서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양수기가 작동을 하도록 되어 있으니 웬만한 가뭄쯤은 걱정이 없다.모심기는 혼자서 할 수가 없었다. 품앗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모심기일 것이다. 웬만한 논이면 열 사람 이상의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돌아가면서 손을 모아 모를 심어주는 품앗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할 때에는 흥을 돋우는 노래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동네마다 노래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있어서 일하는 분위기를 흥겹게 한다. 새참으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돌리고 매기고 받는 모심기노래에 맞추어 모를 심다보면 노동의 고단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들이 넓은 우리 고장에선 모심기 노래를 비롯한 농요가 발달했는데 기계 영농으로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다행히 최근에 농요보존회를 발족해서 그 명맥을 이으려는 분들이 있어 여간 반가운 마음이 아니다.달라진 영농방법은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요즘 들판에는 개구리가 거의 없다. 트랙터로 갈고 써레질 하는 바람에 땅속에서 월동하던 개구리들이 무사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제초제와 살충제의 살포로 메뚜기 같은 곤충들과 수생벌레들이 드물어져서 그것을 먹이로 하는 새들도 개체수가 줄었다. 이맘때쯤이면 강남에서 돌아와 분주하게 날아다닐 제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지저귀던 종달새 소리를 들은 기억도 까마득하다.1960년대까지는 농업이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이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농업인구였던 것이 1970년대부터 급감해서 지금은 전체인구의 5%이하로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기계영농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농촌문화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오랜 세월 이어오던 모내기 풍경이 사라진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21-06-03